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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미녀들의 수다'의 베라가 쓴 책을 놓고 인터넷이 시끌시끌합니다. '미수다'에서 베라의 캐릭터는 '뭘 말해도 웃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으로 잡혀 있죠. 같은 독일 사람인 미르야가 다소 딱딱하면서도 분명한, 흔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독일 사람' 이미지인 반면 베라는 부드럽고 밝은 이미지라 인기를 끌었죠.

그런데 그 '스마일 베라'가 독일에서 출간한 책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Schlaflos in Seoul)'이 문제가 됐습니다. 이 책의 내용을 부분 번역에서 인터넷에 올린 몇몇 사람들에 따르면 '작정하고 한국을 까려고' 마음먹은 듯한 내용이라는군요.

원문을 보지도 못했고, 본다 해도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처지에서 책의 내용이 한국을 비하했는지 아닌지 뭐라 말하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데 좀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런 내용을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이 사건을 보도한 수많은 매체들의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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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책의 내용에서 사람들이 흠을 잡는 부분은 * 한국인을 쥐에 비교했다 * 한국은 채식주의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나라다 * 한국여자들은 미니스커트를 입으면서 다리를 가리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 * 등등입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쥐에 비교했다는 부분은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한국의 지하철을 출퇴근시간에 타면 서로 밀고 밀치는 환경이 끔찍하다. 지하철을 탈 때는 파리에 있던 시절을 연상시켰다. 서울이나 파리같은 대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누구나 남들을 앞질러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때 나는 내 누이가 키우던 쥐들을 생각했다.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쥐들이 있을 경우, 쥐들은 서로를 물어뜯어서 우리는 그 쥐들을 떼어놔야 했다."

최초의 번역자와는 다른 사람인 블로거의 번역을 참고했습니다. 구체적인 번역 내용은 이 분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wunderba/50069746349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과연 이 부분이 '한국인을 쥐에 비교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는 좀 의문입니다. 쥐라는 동물을 유쾌하게 느낄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만큼 출퇴근 시간의 만원 전철에 오르는 것 역시 불유쾌한 일이라는 것도 분명합니다. 여기서 쥐라는 것은 그 불쾌감의 상징일 뿐, 이를 '한국인=쥐'라는 비교로 보는 것은 지나친 자학 증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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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누군가 '63빌딩에 올라가면 오가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인다'고 썼다고 칩시다. 이걸 '그 아무개가 한국인들을 벌레에 비유했다'고 주장하는게 그리 온당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번역이 좀 거칠기는 합니다만, 이 글을 읽으며 느낀 것은 일단 '스마일 베라'와는 좀 다른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뭐든 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 같았던 스마일 베라와는 달리 이 책을 집필한 베라는 상당히 냉소적입니다. 한국어 교육원에 다닐 때 담임 선생님이 계속 아내로부터 걸려 오는 전화를 받아 가면서 노래방에서 제자들과 어울리는 광경을 묘사한 부분을 보면 이런 한국 남자의 태도가 그리 아름답게 비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과연 이런 비판이 절대 해서는 안되는 성질의 것인가 하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한국인이 외국 생활을 하면서 우리와는 다른 외국인들의 삶의 태도에 대해 다소 희화화된 글을 쓰는 경우는 지금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일본은 없다' 처럼 지독하게 악의적이고 왜곡된 글을 쓰는 한국인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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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디에나 정도의 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에도 소개된 미즈노 슌페이 교수의 경우는 그 뒤통수 때리기의 정도가 정말 극심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름 한 글자를 바꾼 필명까지 사용하면서 그동안 한국에서 보여준 털털한 웃음과 전혀 다른 면모를 과시한 미즈노 씨는 다시 한국에 발 붙일 자리가 없어야 마땅합니다. 다만 베라의 경우를 미즈노 슌페이 교수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아무래도 꽤 무리가 있을 듯 합니다. 베라는 학자도, 한국 전문가도 아닙니다. 그저 자기의 인상을 그대로 서술한 일반인일 뿐입니다.

(아울러 아직도 한국을 미개국 보듯 하는 일부 선진국 매체들의 보도 내용에 대해서는 분개하거나 항의할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일반인'들에 비해 '언론 매체'들은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고 비판할 의무가 훨씬 무겁기 때문입니다. 즉 미즈노 슌페이 같은 '학자'들이나 구로다 가쓰히로같은 '기자'들의 발언이나 논설은 주목할 필요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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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떠오르는 것은 '미수다'에서 요즘 모습을 볼 수 없는 캐서린의 경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캐서린의 실종이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수다'가 한국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발언을 한 것 때문에 '미수다' 제작진으로부터 퇴출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미수다', '작가가 써 준대로 방송하는 미수다'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베라 사건에서 볼 때 결국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누구인지는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바로 한국에 대한 사소한 비판도 견디지 못하는 것은 '미수다'가 아니라 '한국 여론'이, '네티즌'이었던 겁니다. 베라의 잘못이라면, 한국인들이 이렇게 속좁은 사람들인 줄 모르고 섣부르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았다는 점일 겁니다. 아직 한국인들을 잘 몰랐던 것이죠.

('미수다'에서는 좋은 말만 하던 베라가 한국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데 배신감을 느끼신 분들도 꽤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번 사건의 반응들을 보면, 왜 '미수다'가 한국 찬양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만 하지 않습니까?^^)

누군가와 친구가 되기 위해 부드러운 말투와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내게 다가오는 누군가가 모두 칭찬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그리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칭찬에만 반색을 하고 사소한 비판에는 불같이 화를 낸다면 과연 누군들 그 사람에 대해 '뒷다마'를 까지 않게 될까요.

누구든 남들의 행동 가운데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좀 더 넓은 마음으로 헤아려 '아, 이런 것은 이래서 다르구나'라고 이해한다면 그게 더 좋은 것이겠지만, 그냥 본 대로 받아들이고 '이런건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고 해서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일일히 '망언' 이라고 규정하고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일부 매체나 기자들도 이제 좀 철이 들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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