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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시는 분들에게 장진영이라는 배우는 어떤 배우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인에 대한 예의에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장진영은 단연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이 표현을 '였습니다'라고 써야 한다는게 참 안타깝습니다. 연기력으로, 미모로 장진영과 경쟁할 만한 30대 여배우는 감히 '없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1997년쯤의 일이군요. 지금은 사라진 현대방송(HBS)의 '연예특급'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고인은 탤런트 김승환씨와 함께 MC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도 그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고인을 처음 알게 된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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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장진영은 미스코리아 출신(1993년 충남 진)이었고 미모와 몸매로 주목을 끌었지만 아주 장래가 촉망되는 신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장진영의 소속사는 스타들의 집결지였죠. 이승연 장동건 김지수가 한창 빛을 발하고 있었고 원빈과 윤손하가 발군의 신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뒤늦게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는 양정아와 장진영이 있었습니다.

스타군단의 막내...란 쉽게 스타들의 후광으로 떠오를 수 있는 위치이기도 하지만, 본인이 얼마나 욕심을 내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당시 소속사 대표의 말은 "갖출 건 다 갖췄지만 본인이 그리 열심히 하려는 의욕이 없는 것 같다. 스스로 하려는 뜻이 없으면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쪽이었습니다. 당시에도 미모와 몸매는 눈이 번쩍 뜨일 정도였지만 이 대표의 예상대로 장진영은 쉽게 스타덤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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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장진영의 첫 모습으로 기억하는 것이 1999년의 '순풍산부인과'지만 그 전에도 장진영의 출연작은 여러 편 있었습니다. 1997년 출연작인 '내안의 천사'때 OST 표지(위 사진)에서도 아랫줄 오른쪽 장진영을 못 알아 보실 분도 있을 겁니다. '마음이 고와야지'같은 드라마에선 극중 비중도 꽤 컸습니다. 단지 히트작이 없었을 뿐이죠.
 
농담처럼 베스트극장 '그와 함께 타이타닉을 보다'가 대표작이라고 말하던 무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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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장간호사 역할은 이미 연예계에서는 '유망주라기엔 너무 세월이 흘렀고, 자리를 잡았다고 보기엔 너무 지명도가 떨어지는' 장진영이 하기엔 좀 아슬아슬한 역이었습니다.

어쨌든 드라마에서 주연급으로 출연했던 배우가 하기엔 너무 작은 역이었죠. 말하자면 백의종군인 셈입니다. 아마도 장진영이 '어디 한번 열심히 해 보자'고 각오를 다진 것이 '순풍산부인과'를 전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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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의 손짓에 응한 장진영은 '반칙왕'에서 송강호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관장 딸(요즘 드라마 '드림'의 손담비 역에 가깝군요) 역으로, '싸이렌'에서 신현준의 애인 역으로 출연합니다. '반칙왕'은 좀 주목을 끌었지만 '싸이렌'에선 영화도, 장진영의 역할도 전혀 주목을 끌지 못했습니다. 그냥 '주인공도 애인이 있어야겠지?'라는 데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캐릭터였죠.

하지만 전혀 의기소침하지 않은 채, 천연덕스럽게 "다음부턴 좀 비중이 큰 작품을 골라야겠다"고 말하던 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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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장진영은 마침내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 지금껏 개인적으로 한국 공포영화 사상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윤종찬 감독의 '소름'에서 그야말로 소름끼치는 열연을 펼칩니다. '소름'은 철거 직전의 낡은 아파트를 배경으로 '저주'라는 것의 본질을 파고드는 걸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걸작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데에는 장진영과 김명민이라는 두 주인공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아무도 '연기력을 갖춘 배우'라고 생각지 않았던 장진영으로선 자신의 가능성을 이 한편으로 증명해 보인 셈이죠. 영화는 그리 히트하지 못했지만 김명민과 장진영, 두 배우의 이름은 한국 연예계에서 '더 비싸지기 전에 빨리 잡아야 할' 명단에 오릅니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첫번째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안습니다.

사실 그리 흥행작도 아닌 영화에서, 그리 연기력이 검증되지 않은 배우에게 이런 상이 주어진다는 건 파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와 장진영이 던진 파문이 컸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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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꽃 향기'가 조금 아쉬움을 남긴 화제작이었다면 '싱글즈'는 로맨틱 코미디의 여자주인공으로도 장진영을 능가하는 배우는 없다는 확신을 주는 흥행작이었습니다.

김주혁과 장진영이라는 배우의 절묘한 호흡이 '한국에서도 이런 장르가 성공할 수 있다'는 모범사례를 만들었죠. 장진영은 이 작품으로 두번째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흥행과 평단의 호평을 한손에 거머쥐었습니다. 장진영으로서는 '귀여운 여자'의 이미지로도 변신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는 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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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05년 '청연'의 흥행 실패, 2006년 '연애, 그 참을수 없는 가벼움(이하 연애참)'의 부진이 좀 안타까웠습니다. 특히 '연애참'은 장진영이 자존심을 건 열연을 펼쳤지만 제작편수 증가와 한국영화 인플레이션의 틈바구니에서 관객 동원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자존심만 강한, 실속이라곤 없는 고참 호스테스 역을 맡은 장진영의 연기가 돋보였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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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영화대상 여우주연상 수상 발표 때, "감독님에게 서운했고, (김)승우 오빠에게 서운했다"며 눈물을 흘리던 장진영의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그리고는 2007년작 '로비스트'가 있었고, 그 이후로 장진영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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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와 데뷔 연도에 비해 장진영이 실제로 주목받은 기간은 매우 짧은 편입니다. 관객 동원으로 봐도 장진영은 천만 관객은 커녕 300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도 갖지 못한 배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였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고인에 대한 인사치레가 아닙니다.

장진영은 대형 스크린을 혼자 채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였습니다. 또 활동기간이 훨씬 더 긴 배우들 가운데서도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발군의 적응력을 보인 사례는 현역 여배우들 가운데선 찾아보기 힘듭니다. 지금까지 해낸 기록만으로도 대단한 배우임을 확인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고인이 조금만 더 일찍, 연기로 인생의 승부를 걸었더라면 아마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장진영보다 훨씬 더 큰 배우로 남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씩씩하고 밝은 성격에 두주불사의 친화력을 자랑하던 이 배우가 아직 한창 나이에 이렇게 팬들의 곁을 떠난 건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때 병세가 회복되어 바깥나들이도 할 수 있다던 그가 어느새 저 세상 사람이 되어 있다니, 이렇게 글로 조상하는 일도, 참 부질없이 느껴집니다.

부디 저 세상에서도 더욱 빛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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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재'. 역시 이 노래겠죠.



P.S. 출생 연도가 최종 확인되어 1972년으로 정정합니다. 오해를 끼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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