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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기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세 개'가 무엇이냐는 넌센스 퀴즈가 있었습니다. 정답은 '아이템 세 개'. 이와 유사하게 '기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물고기가 뭐냐'는 것도 있었죠. 정답은 아이디어(魚)였죠. 그만치 기획 회의라는게 지긋지긋했다는 뜻입니다.

요즘 기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건 아마도 '섭외'일 겁니다. 기자들뿐만이 아닙니다. 방송국에서도 구성작가의 역량으로 집필력 못잖게 섭외력이 중요한 기준이 된지 오랩니다. 연예인들의 지위가 급상승하면서 사회 전분야에서 연예인 섭외의 수요가 밀려들고 있습니다. 이제는 대학 축제는 물론 어지간한 고등학교 축제에도 연예인들이 필수라더군요.

QTV '열혈기자'에서도 출연자들을 자주 좌절시키는 것이 바로 이 섭외입니다. 요즘 '내가 만약 저런 미션을 받았다면 어떻게 됐을까'하는 생각을 가끔 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일반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친구들은 과연 어떻게 연예인들을 섭외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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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V에서 진행중인 '열혈기자'는 연예기자가 되기를 원하는 열두명의 도전자가 매주 미션을 수행하고 최종 승자 1명이 채용되는 리얼 서바이벌 프로그램입니다. 도전자들은 첫회부터 섭외의 무서움을 맛봐야 했습니다. 첫 미션이 각각 3명씩의 연예인 이름만을 받고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그들의 위치를 찾아가 사진을 찍어 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저렇게 '맨땅에 헤딩'을 하라면 잘들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잘들 해 내더군요. 내심 놀랐습니다. 이 친구들에게 최근 네번째 미션으로 주어진 것이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연예계 현상을 영상 뉴스로 만들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첫번째 미션이 '사진만 찍어 오면 된다'는 것이었다면, 네번째 미션은 한 단계 더 어려워 진 셈입니다. 이번엔 최소한 인터뷰까지 따 와야 하기 때문이죠.

이들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 지켜봤습니다. 팀마다 대응 방안이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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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팀. 이 팀에는 삼촌이 방송국 간부인 K양이 있었습니다. K양에겐 정말 든든한 백그라운드인 셈이죠. K양은 첫번째 미션 때에도 삼촌의 도움을 적잖이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삼촌의 도움으로 K양은 웬만한 취재 공력으로는 가기 힘든 곳까지 출입하며 영상에 담았습니다. 물론 이들이 친척의 도움으로 앉아서 문제를 해결한 건 아닙니다. 서울에서 속초까지 한걸음에 달려가 음악 페스티발을 취재하는 열의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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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앉아서 쉽게 떡먹기를 한 팀'은 두번째 팀이었습니다. 이 팀에는 모 기획사 사장님이 집안 어른들과 친분이 두텁다는 K군이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이 팀은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여성 5인조 카라 측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촬영 내용은 정말 영양가가 넘쳤습니다. 지상파 방송사의 연예 프로그램에서 취재를 나갔어도 저렇게 협조가 잘 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죠.^^ 하지만 문제는 쉬운 떡을 그냥 먹었을 뿐, 참신한 구상이나 기획은 눈에 띄지 않았다는 문제점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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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팀. 이 팀 멤버들에게는 '방송국 삼촌'도, '기획사 사장님과 친한 삼촌'도 없었습니다. 결국 '일반인의 뼈저림'을 가장 심각하게 느낀 것도 이 팀이었죠.

이들은 (1) 연예인의 이름을 죽 적는다 (2) 인터넷을 이용해 기획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전화번호를 따낸다 (3) 기획사마다 전화를 한다는 단순 무식 돌파력의 3단계 노선을 채택했습니다. 오기 하나로 수백명의 기획사에 전화를 한 것이죠. '영상 인터뷰를 하자'는 내용으로.

그렇게 해서 딱 한명의 연예인을 섭외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물론 인맥 없는 섭외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영상 뉴스=연예인 인터뷰 섭외'라는 선입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은 여러 모로 아쉽습니다. 반드시 인터뷰만이 영상 뉴스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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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어려움 끝에 간신히 섭외에 성공하니 기쁨 두배.)

이렇게 세 팀의 미션 해결 과정을 살펴보다 보니 문득 궁금증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잘 아는 매니저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몇 사람과의 대화를 편의상 한 사람으로 정리했습니다.)

- 혹시 요즘 일반인들로부터 섭외 요청이 있나?
"글쎄, 일반인이라니, 어떤 일반인들 말인지?"

- 이를테면 행사 섭외.
"뭐 행사전문업체를 통해서 올 때가 더 많다. 그냥 일반인들이 바로 들어오는 경우는 별로."

- 대학 총학생회 같은 곳은 자기네가 직접 연락을 하잖나.
"그런 데는 이미 프로고... 그 친구들은 자기네끼리 정보 교환도 하고 해서 이제 사정에 아주 빠삭하다. 몇군데 학교가 연결해서 가격 네고까지 들어온다."

- 고등학교는?
"고딩들은 아직 '아무개 방송사 누구 피디 아들 다니는 학교' 이런 식으로 오는 경우가 많지. 고딩들이 직접 전화해서 섭외하고 하는 일들은 드문 것 같다. 학부형들이 대신 전화한다."

- 드물다면 있긴 있단 말인가.
"있긴 있었다. 그런데 아직 애일텐데 너무 애 아닌 척 해서 좀 재수없었다. 지가 어른인줄 아는 것 같았다. 애들은 좀 애 같은 맛이 있어야지."

- 그래서 안 갔나.
"스케줄도 안 맞고 해서 안 갔다. 뭐 재수없어도 조건 맞으면 갈수 있었지."

- 일반인이 직접 연락하면 잘 해주나.
"학교 방송제에 축하 영상 따 달라는 연락은 엄청나게 많이 온다. 다 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런건 웬만하면 해주려고 한다. 사인 해 주는 거랑 비슷하고... 안해주면 요즘은 인터넷에서 씹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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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료봉사, 자선 요청도 많을텐데.
"사실 이런게 더 부담스럽다. 시간 많이 뺏기고, 돈은 당연히 안 되고... 한군데 가면 거기는 가고 왜 우린 안 가냐는 말도 나오고. 거기다 가끔 사기도 있다. 분명 무료 행사라고 갔는데 가보면 사람들이 '돈내고 들어와서 이게 뭐냐'고 한적도 있다. 그렇다고 거기까지 가서 무대에 안 올라가면 욕은 우리가 먹는다. 웬만하면 검증된 곳만 하려고 한다."

- 결혼식 축가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해달라면 사실 난감하다. 그래도 아는 사람의 축가라야 가수도 할 맛이 나지 않겠나. 가끔 아는 피디의 친구의 친구까지 해달라는 사람도 있는데 솔직히 이건 양심불량이다. 축가 해주고 돈 달라 할 수도 없고 - 물론 주면 받긴 하지만 - 가수한테 미안하다. 팬들 축가는 해준 적 있다."

- 일반인이 연예인 섭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달라.
"잘 알면서 왜 그러나? 일단 뭐니뭐니해도 인맥이 최고다. 기자도 있고 피디도 있지만, 매니저만큼 연예인 섭외 잘 하는 사람은 없다. 아는 매니저가 있으면 최고다. 같은 처지라서 한번 도와달라고 하면 다들 도와준다. 언제 입장이 바뀔지 모르니까."

- 그게 안되면?
"팬클럽 회원이라도 있어야지. 싸이 1촌이라도 아무 관계 없는 것보단 나을 거다. 물론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도 정성을 보이고, 세상 이치를 좀 알만한 사람이면 얘기 못할 사람 없다. 페이 문제도 있고, 사기도 많으니까 경계하는거지 우리가 무슨 사람을 가리거나 하는 건 아니다. 정성을 들이고 믿음이 가고 하면 도와줄 일은 도와주고 돈 받을 일은 돈 받고 한다. 그렇게하면 중간업체 안 끼고 할수도 있지. 뭣보다 정성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평소 알고 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키워드는 결국 '정성'이었습니다.

'열혈기자' 멤버들이 만난 클릭비 오종혁의 말도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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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오해하시면 곤란합니다. '미리 연락 안 하고 현장에 가서 몸으로 부딪히는게 낫다'는 말이 아닙니다. 현장에서 땀에 범벅이 되어, 이 사람이 나를 진정 필요로 하고 있고, 이런 정성을 갖고 있다고 설복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는 뜻이죠. )

결론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 가장 중요한 건 정성과 진심이더군요. 여기에 인맥을 더하면 제목에서 말한 세가지 조건이 완성됩니다. 정성과 진심이 통할 때라면, 당장은 안 될 일이 있을 지 몰라도 궁극적으로 안 될 일은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개인적으로 이 프로그램에 관여하면서 참 많은 걸 느끼게 됩니다.

물론 '맨땅'에 헤딩한다고 뭐든 그 자리에서 해피엔딩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해피엔딩은 먼 미래의 일까지 감안해서 얘기하는 겁니다. 정말 진심을 담아 노력하면 당장은 안 될지 몰라도 언젠가는 더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가장 손쉬운 길인 '인맥'을 형성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 바로 '정성'과 '진심'이기 때문이죠. 이건 반드시 연예인 섭외에서만 통하는 얘기는 아닐 겁니다.

P.S. '인맥이 중요하다'고 해서 저한테 부탁하진 마세요.^ 저 힘 없습니다. 그리고 그냥 가지 마시고 아래 추천을 좀 꾸욱.;;

P.S.2. QTV '열혈기자' 방송시간입니다.

화요일 오후 11시 (말하자면 '본방'은 이때입니다)
목요일 오전 1시
금요일 오후 6시
토요일 오후 9시
일요일 오전 11시
월요일 낮 1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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