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도 아닙니다. 지난해 4월 경기도 안양에서 두 명의 초등학교 재학생 어린이가 성폭행을 당하고 무참하게 살해되 시신도 버려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여론은 불타올랐고, '범인을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그때 뿐이었다는게 결국 또 드러났습니다. '나영이 사건'의 결과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잘 잊어버리는 사회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해 줬을 뿐입니다.
<<이 글은 지난해 4월, '혜진-예슬법'이 새로운 이슈로 등장했을 때의 시점에 쓰여진 것입니다. 과연 지금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비교해보시는 데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그리 변한 것은 없습니다.>>
엊그제 '혜진-예슬법'이라는 새로운 시사용어가 등장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새로 추진된다는 이 법은 아동 성범죄를 엄벌하자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2025393
내용중에 눈길을 끄는 대목만 뽑아 봅니다.
법무부는 1일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아동 성폭력 사범 엄단 및 재범 방지 대책'을 보고하고 안양 초등생 살해 사건과 같이 13세 미만의 아동을 대상으로 유사성행위 등 성폭력을 가한 뒤 살해한 경우 해당 범죄자를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는 내용의 가칭 '혜진ㆍ예슬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법률 전문가도 아니고 그 근처에도 가 본적이 없는 저로서는 정말 당황스러운 대목입니다. 아니 그럼, 저렇게 나쁜 놈들을 지금까지는 대체 어떻게 다뤘다는 얘길까요.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어이가 없었습니다.
미성년인 친딸을 강제로 성폭행한 범죄자에 대한 선고 기사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2012279
울산지법 제3형사부(재판장 곽병훈 부장판사)는 자신의 친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A씨에 대해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죄, 강제추행죄를 적용해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친딸인 피해자를 수회에 걸쳐 강간 및 강제추행한 사안으로 패륜적 범행에 해당한다는 점과 피해자가 입은 육체.정신적 상처 등을 감안해 중형을 선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경우에 5년이면 중형이군요. 아니 대체 5년이 정말 중형이긴 한 겁니까?
이 뿐만이 아닙니다. 어린이나 마찬가지인 정신지체 2급자에 대한 성범죄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2001415
전주지법 제2형사부(조용현 부장판사)는 13일 항거 불능의 정신지체 2급 소녀를 성폭행 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장애인 준강간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모씨(60)에 대해 징역 2년 을 선고했다.
다음을 보면 더 기가 막힙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는 점, 피고인이 범행을 끝까지 부인하는 등 뉘우치지 않는 점 등에 비춰 그 죄책이 매우 무거워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만약에 피해자(또는 부모)가 합의라도 보고, 탄원이라도 해 주고, 피고인이 범행을 뉘우친다고 연기라도 하면 그냥 풀어줄 태세로군요. 어이가 없습니다.
놀랍게도 실제로 그랬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1948921
대전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김상준 부장판사)는 2일 지난해 10월 충북 충주시 한 아파트 계단에서 이 아파트에 사는 김모양(당시 6세)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던 정모씨(50)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 정도면 원래 집행유예가 가능한 거였군요.
김 부장판사는 “피해 어린이의 어머니가 수사기관에서 ‘(피고인을) 세상에서 살아 남지 않게 하고 싶은 마음뿐이고 이런 범행이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달라’ 고 호소했다”며 “뒤늦은 감이 있지만 그 어머니의 호소에 합당한 답변을 마련하는 일에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자, 이렇게까지 거룩한 말씀이 있어야만 '징역 3년'이라는 엄청난 중형을 때릴 수 있었단 말이군요. 그럼 위에 나오던 징역 7년은 실로 엄청난 형벌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수사기관에서 저렇게 말을 했다는 건 1심 재판부도 저 '호소'를 잘 알고 있었다는 건데, 그럼 대체 그때는 왜 집행유예라는 판결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더구나 이런 것도 있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1&aid=0000193854
그러나 오히려 친족간의 범죄라는 점이 처벌이 약화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이동근 공보판사는 “우리 법원의 경우 대체적으로 피해자측이 처벌을 원하는 경우 7년,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 4~5년의 징역형이 선고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 이 7년이 다른 사건의 경우에는 얼마나 큰 중형인지 한번 보겠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8&aid=0000801060
공사업체로부터 1억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강종만 전남 영광군수가 1심에서 징역 7년의 중형을 선고받아,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될 경우 군수직을 잃게 됐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870447
멀쩡한 남편이 숨졌다고 허위 신고해 7억 원 대의 보험금을 챙긴 부부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광주지법 형사6단독 문준섭 판사는 24일 허위 사망신고를 통해 거액의 보험금을 타낸 혐의(사기 등)로 기소된 박모(40)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뇌물 1억원을 받아 드신 군수나 죽었다고 사기를 쳐 보험회사를 등친 범인의 잘못이 가볍다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범인들이 7년 형을 받는데, 어린아이나 미성년자들이 평생 안고 갈 정신적인 상처를 받게 한 범인들이 3년, 5년, 심한 경우에나 7년 형을 받는다는 건 너무 약한 처벌이란 생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7년이면 얼마든지 다시 나와서 활개(?)를 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일산 어린이 납치미수사건의 범인 이모씨도 본래 12년형을 받았다가 2심에서 10년으로 감형받고 복역한 뒤 출감해 2년만에 이번 사건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이 어린이가 큰 일을 당했다고 치면(물론 지난 2년 사이에도 피해자가 없으란 보장이 없지만), 대체 10년이 길다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1948725
일산 초등학생 납치 미수범 이모씨는 10여년 전에도 5~9세 여자 어린이들에게 똑같은 성범죄를 저질렀던 상습범이었다. 이씨는 1995년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5차례에 걸쳐 여자 어린이들을 위협해 성폭행하거나 미수에 그친 혐의로 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5건의 범행 모두 이번 사건처럼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이씨는 95년 12월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탄 여자 어린이를 흉기로 위협해 6층까지 데려갔다 여아가 소리치며 도망치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다.
그러나 이씨는 1시간30분 뒤 같은 아파트에서 2층 비상구 계단을 지나던 여아를 위협해 옥상으로 올라가 주먹 등으로 폭행하고 성폭행했다. 이씨는 다음해 2월과 3월에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여자 어린이를 옥상으로 끌고가 성폭행했고, 반항하는 어린이에겐 흉기로 위협하며 폭행했다.
이 정도의 범죄력을 갖춰야 간신히 10년을 가둬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저지른 짓을 생각할 때 10년은 너무 짧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그런데도 이 10년이 너무 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입니다.
http://www.freezonenews.com/news/article.html?no=25478
13세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최근 잇따라 일어나 국민들을 격앙시키는 가운데 법무부가 ‘혜진.예슬법(가칭)’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아동 대상으로 성범죄를 하고 살해한 경우 법적 형량을 사형 또는 무기징역으로 무겁게 하자는 법률이다.
그러나 진보진영에서는 벌써부터 이 법의 실효가 없을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진보신당 이선희 대변인은 2일 논평을 통해 “구멍난 치안은 처벌 강화로 해결이 안된다”며 “아동 성범죄의 경우 낮은 처벌이 범죄 재발의 원인이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 대변인은 “10년을 복역하고도 똑같은 범죄를 다시 저지른 일산 초등생 납치 미수범의 경우를 보라”며 “‘혜진.예슬법’에 의해 예상되는 범죄 차단 효과는 극히 적고 인권 침해의 여지만 넓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 범죄자가 형을 사는 동안 잘못된 성 인식과 인권 의식에 대해 교정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교도 프로그램이 개선되어야 한다”며 “기존에 있는 법이라도 제대로 시행하고 경찰은 시국 사찰로 넋을 놓지 말고 민생 치안에 주력하라”고 말했다.
이 분의 생각으로는 이런 경우에도 10년이 결코 낮은 처벌이 아니었던 것이군요. 보통 사람의 입장에선 분통이 터집니다. 물론 '교정과 재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에도 일리가 있지만, 저 말 속에는 '10년이나 되는 중형을 받고도 결국은 재범이 일어나지 않았느냐'는 말에는 10년이면 매우 무거운 벌이란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사실 이런 낮은 양형은 판사들의 직업윤리를 의심하게 합니다. 현직 판사일 때 일반적인 판결의 형량을 낮춰 놓아야 결국 변호사로 개업했을 때 그 득을 보게 될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현직 판사로 재직할 때에는 엄청나게 엄격한 양형을 매기다가 변호사로 독립하면서 이번에는 피고인의 편에 서서 가벼운 처벌을 호소한다면 아무래도 그만치 설득력이 떨어지겠죠. 한국 사법부가 일반적으로 가벼운 양형에 치우치는 데에는 이런 정서가 배경에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이 고개를 들 때도 있습니다. 물론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물론 요즘 들어 젊은 판사들을 중심으로, 죄질이 나쁜 범죄자는 마땅히 법이 규정하는 한도 안에서 엄격한 처벌을 받게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볼 때, 특히 어린이나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 범죄자의 경우 언제쯤 일반인들의 법 감정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형량이 매겨질 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전자팔찌나 범죄자 신원공개가 인권 침해라는 분들은 제발 이럴 땐 좀 빠져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끝)
자, 다시 2009년 10월의 시점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지난해 6월, 가칭 '혜진-예슬법'은 통과됐습니다. 부모의 간청에 따라 '혜진-예슬법'이라는 이름은 쓰지 못하게 됐지만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가중처벌이라는 취지는 살려서 입법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물론 4월에 들끓었던 여론은 6월이 되어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는 사실 역시 잊어선 안됩니다. 심지어 4월에는 닥치는대로 기사를 쏟아내던 언론들도 6월에는 잠잠해졌고, 형량 강화 사실을 보도한 매체도 얼마 안 됩니다.
그럼 대체 형량은 얼마나 강화됐을까요.
13세 미만의 여성에 대하여 ‘형법’상 강간죄를 범한 자가 집행유예로 풀려나지 못하도록 법정형의 하한이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서 7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상향 조정됐다. 또 13세 미만의 사람에 대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유사강간행위를 한 자에 대한 법정형도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서 5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상향 조정됐다. 유사강간행위에는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성기는 제외)의 일부나 도구를 삽입하는 행위가 추가됐다.
아울러 13세 미만의 사람에 대하여 ‘형법’상 강제추행죄를 범한 자에 대한 법정형도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 조정됐고, 13세 미만자를 상대로 성폭력범죄를 범하고 상해를 가하거나 상해에 이르게 한 자에 대한 법정형은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으로 가중 처벌하고 있다.
또 13세 미만자를 상대로 성폭력범죄를 범하고 살해한 자에 대한 법정형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으로 함을 명확히 하고, 죽음으로까지 이르게 한 자에 대한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으로 가중 처벌하도록 개정됐다.
정말 중형이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이번 사건의 범인은 위 기사의 '강화된 기준'에 따라 처벌됐습니다. 단, 위 기준에 따라 법이 정한 가장 경미한 선의 처벌을 받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법원의 기준에 한탄이 절로 나오는 아침입니다.
(아울러 대체 왜 대한민국 법원은 알코올 중독이나 음주자의 범행이 좀 더 관대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정말 의문이지만, 이것까지 건드리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우울한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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