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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수술로 신분을 바꾼 주인공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어린이들의 나이로 볼 때 치열교정 정도는 나올 것 같기도 합니다 - 물론 점으로 정체를 바꾼 해리는 나왔죠^) '하이킥'은 재미있습니다. 9월 정도까지만 해도 '하이킥'이라고 하면 '거침없이 하이킥'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지붕뚫고 하이킥'이 '거침없이 하이킥'의 추억을 충분히 대체하고 있는 듯 합니다.
과연 이 두 편의 '하이킥'의 차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거침없이 하이킥'도 너무나 재미있는 시트콤이었지만, '지붕뚫고 하이킥'은 전편과는 달리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웃음 속에 슬쩍 묻혀 있지만, 아마 많은 분들이 눈치채셨을 겁니다.
물론 요즘은 시트콤의 축이 지훈(최다니엘)과 정음(황정음), 준혁(윤시윤)과 세경(신세경)을 둘러싼 4각 관계 쪽으로 옮아 왔지만 이 시트콤이 초반에 자리를 잡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신애(서신애)와 해리(진지희)의 관계입니다.
모든 게 신기하고 탐나는 신애와 100을 갖고 있으면서도 1을 내주기 싫어하는 욕심 많은 해리의 다툼은 많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신애를 동정하게 하고, 눈물과 웃음을 주곤 했습니다. 특히나 어린이답지 않게 어딘가 그늘이 져 있는 신애의 표정이 어른 시청자들에게는 직격탄을 날리기에 충분했죠.
제작의도는 분명합니다. 김병욱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서, [순박한 시골 자매의 눈을 통해 현대의 도시인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지를 조명해보고 그를 통해 행복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쳤고, 충분히 그 의도를 관철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뭐 보탤 것도 없이 원래 포함돼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자녀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태도를 정면으로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귀한 자녀'에 대한 입장 말입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볼 때, 신애와 해리의 관계에서 가장 분통터지는 일은 아무도 해리를 적극적으로 제어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특히 부모가 그렇습니다. 정보석이든 오현경이든, 부모 중 어느 한 쪽도 해리의 만행(?)에 정면 대응하지 않습니다. 그저 느긋하게 '...하지 마라...', '엄마가 그러지 말랬지' 하는 정도로만 막을 뿐입니다. 가끔씩 이순재가 약간 강경한 태도를 취하곤 하지만 그도 잠시뿐입니다.
즉 해리가 신애에게 가하는 만행들은 모두 어른들의 방조 속에서 이뤄집니다. 이 부분에 대한 시청자들의 분노도 꽤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나마 해리에게 제재를 가하는 사람은 삼촌 지훈과 오빠 준혁 정도입니다. 해리가 뭔가 위해를 가하려 하면 지훈이 아예 해리를 번쩍 들어 다른 데로 옮겨 놓거나 준혁이 쥐어박는 정도죠.
하지만 준혁에게는 해리를 강하게 제어하지 못하는 원죄(?)가 있습니다. 해리가 세경에게 "야 이 그지 똥꼬야"하고 부를 때 준혁은 화를 내며 "왜 그런 식으로 부르느냐"고 야단을 치지만 해리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준혁도 과외언니한테 야야 하면서 뭘 그러느냐고 대응하죠.
이건 사실은 준혁도 성장 과정이 그리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준혁도 예의범절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 같은 것은 교육 과정에서 그리 큰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거의 20년 전부터 수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핵가족화, 한자녀 가정의 보편화, '내 아이는 특별해' 라는 식의 전 사회적인 마케팅 등등이 복합적인 원인일 겁니다. 즉 생활 형편은 나아지는 반면 투자해야 할 자녀의 수는 줄어든 결과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왕자님과 공주님들이 대량으로 육성된 것이죠.
학교 생활을 통해 이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은 교사들도 '야단치는' 역할을 가정으로 떠미는 형편입니다. 안 그런 교사들도 있겠지만 제가 아는 교사들은 "요즘 아이들은 선생님보다 엄마를 100배 쯤 더 무서워한다"며 학교 생활을 통한 교정의 가능성에 상당히 비관적이더군요. 그런데 그 '엄마'가 야단을 치는 주제는 '왜 공부 안 하니' 뿐이라면 아이들의 인성에 대한 훈련은 과연 누가 맡아야 할지 의문입니다.
(네.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이젠 정말 빼도박도 못하는 영감태기가 되어 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안 그런 아이도, 안 그런 엄마도, 안 그런 선생님들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 일각에는 이런 식으로 '아무도 야단치지 않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꾸밀 사회가 과연 어떤 것이 될까에 대한 우려가 싹트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이킥'의 해리는 그런 정경을 단적으로 압축해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나마 '하이킥' 속 해리는 세경과 신애 자매의 등장에 따라 어느 정도 교정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는게 위안일 듯 합니다. 이미 해리는 동화책 사건으로 신애의 가치를 어느 정도 인정했고, '애기똥과 아빠똥'을 통해 도움을 받기도 했죠.
과연 해리가 이 시트콤이 끝날 때까지 신애에게 지금 같은 입장을 취할지(물론 김병욱 감독의 스타일로 볼 때 해리가 쉽게 개과천선(?)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만^) 궁금합니다.
P.S. 2주간에 걸친 이승기의 '비어 캔 치킨' 고집을 보면서 '귀한 아들'과 '아무도 야단치지 못하는 아이'에 대한 생각이 이쪽에도 적용될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물론 이건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황현희와 안영미가 아이들 그룹에 대한 악담을 할 때마다 종이컵 든 손을 떠는 것과 비슷한 경우일 수도 있을 겁니다.^^)
P.S.2. '하이킥' 최고의 수혜자는 왠지 최다니엘이 아닐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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