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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헌터스'를 둘러싼 논란에 눈길이 갔습니다. 멧돼지 문제라는 것은 예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멧돼지 사냥을 오락 프로그램으로 한다는 건 아무래도 좀 무리가 있을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예상대로 반발이 만만찮더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멧돼지는 잡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다른 어떤 '동물사랑'의 말로 표현을 하더라도 현재 농가가 입고 있는 멧돼지 피해의 가장 큰 원인은 멧돼지 개체수의 과잉 증가에 있습니다. 개체수를 강제로 줄이지 않으면 피해를 막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지만 TV 화면에서 피를 보여줄 수 없다는 것 역시 당연한 한계. 그러고 보면 무엇이 무리였는지는 자명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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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에 썼던 글입니다.

제목: 멧돼지

세종 13년(1431년) 8월. 강원도 회양부에서 강무장(講武場)의 사냥 금지령을 해제해 달라는 상소가 올라왔다. 강무장은 임금과 신하들이 사냥을 하며 무예를 단련하던 곳이라 사사로운 사냥을 금하던 터. 그 결과 멧돼지가 늘어나 주변 농가에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금렵령을 해제하고 피해를 막으라는 조치가 내려졌다. 문종 1년(1451년)에도 같은 보고가 올라오자 이번엔 아예 사복시(司僕寺)의 공권력을 투입해 멧돼지를 퇴치하라는 명이 내려진다.

중종 13년(1518년) 1월에는 경기도 파주에서 멧돼지가 예종의 비 장순왕후 한씨의 능인 공릉(恭陵)을 파헤치는 괴변이 발생했다. 중종은 “멧돼지의 소행이라 하나 예사롭지 않은 재앙(災異)이니 마땅히 대신을 보내 제를 지내게 해야 한다”고 대응, '자연의 경고'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경부고속도로에서 200㎏짜리 대형 멧돼지가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가 터졌다. 멧돼지의 크기가 놀라울 뿐, 이미 새로운 사고는 아니다. 멧돼지 떼의 습격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심각한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심지어 최근 3~4년 사이 서울 시내를 질주하다 포획되는 멧돼지들도 줄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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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의 과잉 번식과 대형화는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난여름 개봉된 영화 '차우'에서 인간을 공격하던 거대 멧돼지의 규모는 아니지만 2004년 6월 미국 조지아주 알라파하에서는 무게 450㎏의 괴물이 잡힌 기록이 있다. 일본 지자체들도 전기 울타리 설치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피해 방지 대책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멧돼지 파동이 금렵 조치로 인한 개체수 조절 실패의 결과라면 21세기의 멧돼지 창궐은 인간이 포식자들을 대신 청소해준 탓이다. 다양한 개발로 서식 공간이 줄어드는데도 호랑이나 늑대 같은 천적들이 없으니 수가 줄지 않는 것이다. 멧돼지와 집돼지 사이의 잡종들이 산으로 돌아가 더욱 왕성한 번식력을 보인다는 보고도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에서 멧돼지는 본래 산신의 상징이지만 인간들로 인해 설 자리를 빼앗기면서 재앙신으로 변해 횡액을 끼친다. 결국 포획만이 현실적인 대안인 상황, 멧돼지들이 진짜 재앙으로 변하기 전에 인간이 건강한 포식자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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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스'에서는 환경단체나 동물보호단체의 반발을 의식해 "우리가 동물을 싫어하는게 아니라 피해가 싫을 뿐"이라는 농민들의 말을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사실 국민적인 합의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당장 고충을 겪고 있는 농민들은 누군가 멧돼지를 없애 주기를 기대하고 있고, 거기에는 이해 당사자인 농민들과 당국의 합의만 있으면 됩니다.

'일밤' 제작진은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온 국민이 멧돼지 문제를 알 수 있도록 계도(홍보)하는 것이 '헌터스'의 목적이라고 말합니다만... 사실 이런 문제는 온 국민이 알아서 나쁠 것은 없지만, 전체 국민의 주의를 환기해서 새삼스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온 국민이 몽둥이나 죽창을 들고 멧돼지 사냥 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해안 기름 파동 때의 바위 닦기 운동과는 사안이 다르다는 얘깁니다.

오히려 '헌터스'의 영향으로 자꾸만 '야생동물을 함부로 죽이면 안된다'는 보호 논리가 개입되어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할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이건 멧돼지 문제 해결에 상당히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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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스' 첫회에서 제작진은 초대형 멧돼지 포획틀(덫)을 마련했습니다. 자, 이 덫에 멧돼지가 걸린다고 칩시다.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죽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어디론가 깊은 산속에 놓아 준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말한대로 멧돼지의 양이 전국 산야가 수용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서면 멧돼지는 사람들 주변으로 넘쳐 내려올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선가 떠도는 글을 보면 사람들이 도토리를 너무 많이 긁어 가서 멧돼지가 먹을 게 없어 농가에 피해를 준다고도 하는데, 이미 그런 수준은 지나간지 오래입니다. 게다가 한번 농산물의 맛을 본 멧돼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먹이의 양과 질에 비해 밭에 일렬로 서 있는 맛있는 먹이들은 대단히 강렬한 유혹이기 때문입니다.

야생동물이 살아갈 권리를 얘기하기 전에 인간은 현재 상황에서, 멧돼지에 대해 최상위 포식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적절한 수로 멧돼지를 줄여 줘야 멧돼지 때문에 축소되는 다른 종에게도 살 공간을 줄 수 있습니다. '멧돼지가 마음놓고 살 권리'를 주장하시는 분들은 멧돼지가 과잉 번식한 탓에 먹이를 빼앗기는 다른 작은 동물들의 권리에는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연은 본래 '인간적'이지 않습니다. 동물과 인간에게 똑같은 '인간애'를 적용시킬 수는 없습니다. 물론 채식주의를 실천하시는 분들은 여기에 반박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본래 인간은 다른 동물의 살을 먹고, 그 껍질과 뼈를 이용하며 살아가게 돼 있습니다. 아울러 생태계의 균형을 파괴한 것이 인간이라면 그 흐트러진 균형을 바로 잡는 역할도 수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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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헌터스'가 몰고 올 문제를 예견하지 못했다면 그건 '헌터스'나 '일밤' 제작진이 너무 안이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과 멧돼지의 문제는 '웃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누군가는 피, 누군가는 눈물을 흘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개체수를 줄여야 한다'는 것은 결국 적정 수 이상의 멧돼지를 죽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걸 '멧돼지와 인간의 공존을 도모한다'는 식으로 아름답게 포장해 예능 프로그램으로 승화시키겠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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