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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 시민'의 기본 골격대로 평범한 사람이 복수의 열정으로 슈퍼맨이 되어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는 너무나 흔합니다. (한국에선 이런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주로 성형수술을 하지만)할리우드 영화 중에도 수백편은 쉽게 꼽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지난해, 할리우드제가 아닌 액션 영화 하나가 한국에서 대박을 터뜨린 후, 할리우드에서도 큰 성공을 거둡니다.

그 영화의 제목은 바로 '테이큰'. 영어로 된 영화지만 프랑스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성공한 이유는 뭘까요. 아무래도 이것 저것 따지고 가리는, 그리고 사람을 죽이거나 과감하게 행동을 해야 할 때 갑자기 햄릿으로 돌변하는 할리우드식 소심형 주인공에 대한 반발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모범시민'은 '할리우드에서도 아무 것도 가리지 않는 무대포 주인공을 등장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언더 시즈'의 스티븐 시걸 류와는 다른 의미입니다). 그만치 제라드 버틀러가 연기하는 클라이드 쉘튼은 특이한 캐릭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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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가장 클라이드(제라드 버틀러)는 어느날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아내와 딸이 죽음을 당하는 참변을 경험합니다. 범인들은 곧 모두 체포되지만 경찰의 현장 훼손으로 증거들의 법정 채택이 어려워지고, 유죄판결률(즉 검사의 승률) 96%를 자랑하는 출세지향형 검사 닉(제이미 폭스)은 클라이드에게 '이 상태에선 둘 다 무죄로 판결받을 가능성이 있으니 두 범인(다비와 에임스) 중 한쪽으로부터 증언 협조를 받아 다른 한쪽을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증언하겠다는 쪽이 주범인 다비라는 것. 클라이드는 다비가 증언의 대가로 5년 이내의 형을 받을 거라는 데 경악하지만 닉은 어쩔수 없다며 클라이드를 외면합니다. 10년 뒤, 에임스의 사형이 집행되는데... 이때부터 클라이드의 진짜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네. 클라이드는 그냥 평범한 가장은 아니었던 거죠.

이 영화의 홍보 문구에는 닉이 '부패한 검사'라는 표현으로 등장하지만, 닉은 통상적인 의미에서 부패한 검사는 아닙니다. 오히려 범죄자를 더 많이 잡아 넣는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검사라는 쪽이 맞습니다. 그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검사로서의 실적, 즉 재판에서 자신이 기소한 범인이 더 많이 유죄판결을 받는 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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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드가 분노하는 것은 그가 부분적인 승리를 위해 진짜 처벌되어야 할 사람과 거래를 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사소한 이유(이 영화에선 그런 부분을 자세히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로 결정적인 증거를 무시하고 명백한 흉악범에게 중형을 선고하지 않는 법정, 그리고 '누구나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이유로 그런 법 제도의 활용에 도움을 주고 있는 법률가들에 대한 분노가 등장합니다.

최근 조두순 사건을 통해 한국 법정에 만연한 온정주의와,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인권이 우선해서 고려되는 듯한 분위기,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이끌어내고 있는 일부 인권옹호론자들의 위선적인 면모에 대한 분노가 한국 사회를 쓸고 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의 법과 질서는 썩었고,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 주지 못한다. 내가 직접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상당히 큰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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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영화의 시선은 참 특이한 데가 있습니다. 이런 논리를 주장하고 있다면 당장 검사인 닉, 그리고 다비가 가벼운 징역만 살고 풀려날 수 있게 해 준 변호사, 기타 법정 주변 인물들이 좀 더 악랄한 사람들로 그려지는게 인지상정일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혀 그런 시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그저 평소대로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이며, 영화가 어느 정도 진척될 때까지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습니다.

게다가 클라이드가 폭주하면서 죽어 나가는 사람 중에는 정말 무고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즉 클라이드의 동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는 것은 좋지만, 막상 클라이드가 행동을 시작하고 나면 그의 행동에 일방적으로 사람들이 동조하게 하지는 않겠다는 것이 F. 개리 그레이 감독의 입장입니다. 아마도 '테이큰'의 제작자가 이 영화를 만들었자면, 클라이드는 좀 더 박수받는 존재가 됐을 지도 모릅니다. (클라이드의 희생자들을 더 나쁜 놈들로 그려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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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큰'과 '모범시민'의 이런 차이는 그 사회와 영화의 관계에 기초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뭐니 뭐니 해도 법치국가에서 사적인 정의의 실현이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가치임이 분명합니다. 아무래도 주류 할리우드 영화에서 '가족의 가치'와 '사적인 정의 실현의 실현 금지'라는 대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은 꽤 부담스러운 일이었을법 합니다.

과연 한국 관객들이라면 클라이드의 '단독 행동'에 어디까지 박수를 보낼까 하는 궁금증이 떠오릅니다. 현재의 법률제도와 정의 실현에 대한 불만에서 클라이드에게 동조할 수도 있고, 이미 잊혀져 가는 '김회장님의 아들 구출작전' 사건 때 쏟아진 공분처럼 누구나 법에 의한 해결을 무시하고 개인적인 능력에 따라 정의 실현(?)에 나설 때의 부작용에 대한 거부감을 다시 느낄 수도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당시 이 김회장님 사건 때에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내 아이가 밖에 나가 그런 일을 당하고, 내가 그 사건에 대해 보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와 다르게 행동할 거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의견을 드러내는 '아버지'들이 꽤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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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퀼리브리엄'과 '리쿠르트' 같은 영화를 쓴 커트 위머의 대본에 대해서도 찬반 양론이 다양합니다. 물론 영화를 107분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아귀가 딱딱 맞게 하는' 치밀한 구성은 어느 정도 희생되어야 했을 겁니다.

흑인인 F. 개리 그레이 감독은 '이탈리안 잡'의 감독으로 홍보되고 있지만 일찌기 사무엘 잭슨과 케빈 스페이시의 격돌을 그린 '니고시에이터'에서 흑/백 두 남자의 대립을 그리는 데 재능을 발휘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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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정리:  '모범시민'은 '테이큰'과 '친절한 금자씨'의 딱 중간 정도에 머무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사적인 정의 실현'이란 주제에 대해 보여주는 시선도 그렇고, 전자의 호쾌함과 후자의 우울함 사이에서도 딱 중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소 심각한 척 하지만, 절대로 고민을 위해 엔터테인먼트를 희생시키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이 영화는 '상당히 재미있고 특이한 액션 영화'입니다. 관객을 고민하게 하는 결말이었다면 이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제작비의 두 배나 벌어들이진 못했을 겁니다. 특히 클라이드의 '시원시원한(?)' 행동은 미국 관객들보다 한국 관객들의 취향에 훨씬 잘 맞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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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원제 'Law Abiding Citizen'은 '법을 준수하는 시민'이란 뜻으로, 영화 속에선 법정에 서게 된 클라이드가 로라 버치 판사에게 직접 보석을 요구하는 대사의 첫 머리로 사용됩니다. 특별히 '타의 모범이 되는 시민'이라기보단 '잘못한게 없는 사람'이란 뜻에 가까워서 '모범시민'과는 약간의 의미 차이가 있지만 그만하면 괜찮은 제목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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