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지난 12월17일은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 형님들의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리뷰는 슬쩍 미루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분들의 공연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의무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형님들의 공연을 직접 봐야 한다는 의무감에 연말의 약속 홍수 속에서도 "12월17일만은 안돼!"를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코엑스 대서양홀. 전문 공연장 - 뭐 그렇게 따지만 우리나라에 전문 공연장이 대체 어디냐는 반박이 당연히 등장하겠지만 - 이 아니라는 점에서 약간 떨떠름 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이번 공연의 화두는 '그래도 그게 어디냐'와 '니가 인제 배가 불렀구나'의 정서입니다. ...직접 보게 된게 어디냐.
엄청난 교통 체증으로 오후 8시 개막 예정이던 공연 시간은 8시30분 정도로 자동 시프트. 뭐 며칠 전의 GNR 공연이 2시간 30분 늦게 시작했다는 데 비하면 대단히 훌륭한 공연 시간이었습니다. 좌석은 콘솔/조명 타워 살짝 오른쪽 뒤. 기울어진 공연장이라면 최적의 조건이겠으나 아쉽게도 코엑스 대서양홀은 전혀 경사가 없는 평지 바닥입니다. 이 평지라는 조건이 나중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공연이 시작하고 몇분 뒤,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전태관 옹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미처 좌석 확보(?)는 되어 있지 않았는지, 아니면 잡힌 좌석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두 양반은 콘솔 타워 기둥을 붙잡고 마지막까지 신나게 춤을 추며 공연을 즐겼습니다. - 물론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
일단 셋리스트... 빌리 조엘 때만 해도 직접 만든 리스트에 확신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엔 자신이 없습니다. 메모도 별로 하지 못했고. 아무튼 'Boogie Wonder Land'로 시작해서 마지막에 'Fantasy' 'September' 'Let's Groove'로 달릴 때는 '아니 대체 앵콜로 무슨 노래를 하려는 거야!'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결국 앵콜은 Getaway...
Boogie wonderland
Jupiter
Serpentine Fire
Sing a Song
Shining Star
Kalimba
Brazillian Rhyme
That's the way of the world
After the love has gone
Reasons
In the stone
Got to Get You into My Life
(잘 모르는 곡이 2곡 정도...?)
Fantasy
September
Let's Groove
encore:
Getaway
그러니까 두 시간 동안 16-17곡의 노래가 나왔는데 전 공연이 풀 스탠딩으로 진행돼 버렸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 첫째는 우선 첫곡이 너무나 신나는 'Boogie Wonderland'였다는 겁니다. 그래서 맨 앞줄의 열성 팬들이 일제히 기립해 버린 겁니다.
그런데 앞서도 얘기했지만 대서양홀은 경사진 공연장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무대가 보이지 않게 된 뒷줄의 다소 덜 열성적인 팬들까지 일제히 일어서야 했습니다. 게다가 그루브의 제왕인 이 형님들은 도대체 노래가 끊기지를 않는 논스톱 퍼포먼스로(전 노래와 다음 노래 사이에 음악이 쉬는 시간이 없었다는 얘기죠) 관객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현장음이 사실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이분들의 음악의 특징인 '둥글게 감싸주는 소리'는 기대하기 힘들었고, 각각의 악기들은 좀 심하게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그리 잘 섞이지 않더군요. 브라스 섹션은 기대대로 훌륭했지만, 랄프 존슨 대신 자리에 앉은 드러머는 이들과 그리 긴 시간 훈련을 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슬쩍... (물론 그게 어딥니까^^) 또 이렇게 대강 대강 하는 듯 하면서도 다 맞춰 주는 것이 흑인 음악의 매력이기도 하죠. 정말 흑인 세션들의 천재적인 음감이란.
우리 한민족도 흥 하면 한 흥 한다고들 하지만 요즘 방송중인 '일밤'의 '단비'를 보면서도 대체 저 아프리카 사람들의 리듬감과 춤/노래 유전자는 강하구나...하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네. 남들이 한지민의 눈물에 감동할 때 저는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흑인음악이 세계 대중음악을 지배하고 있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인 듯 합니다. 가끔은 아프리카의 DNA가 섞이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걸 흉내내는 것조차도 좀 무모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날 무대에 선 사람은 총 11명. 포지션도 맘대로 왔다갔다 하시는 분들이라 큰 의미는 없을 겁니다. 중간에 '오리지널 멤버'라며 이제는 완전히 그룹의 간판이 된 필립 베일리와 모리스 화이트의 동생인 버딘 화이트, 그리고 랄프 존슨이 인사를 했습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진짜 창단때부터의 '오리지널 멤버'는 버딘 화이트뿐이지만..^^)
(어느 분이 참 질기게 동영상을 찍어 놓으셨더군요. 유튜브에 줄줄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냥 분위기만 느껴 보시라고 하나 올려 봅니다. 곧 사라질테니 궁금하신 분들은 얼른 검색.)
막판에 '코리아... 좋아요?'하나 물어보신 것 말고는 한국 팬들에 대해 특별한 서비스를 생각한 것도 없는 듯 하고, 립서비스도 "앞엣분들이 우리 가사를 다 아는 걸 보니 우리 이번이 처음이지만 다음에 또 오게 될 것 같네요" 정도로 그쳤지만, 그래도 직접 뵈니 참 좋습니다.
그래서 할말은 "얼른 또 오세요" 정도.
P.S. 생각보다 젊은 관객들이 많더군요. 이유를 물으니 "요즘도 클럽에서 'Boogie Wonderland'나 'September'를 자주 틀어주기 때문"이랍니다. 형님들 참 훌륭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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