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영화 '러브 액추얼리'를 떠올립니다. '러브 액추얼리'는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편의 영화 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사랑 이야기,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벅차고, 때로는 가슴아픈 정경들을 모아 담아 지금껏 성탄 영화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사랑의 요체들을 꼭꼭 찝어 모은 제작진의 능력에 감탄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죠.

그런데 24일 방송된 MBC TV '지붕뚫고 하이킥'을 보면서, 두어 시간의 영화 상영시간도 긴 편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이킥'의 방송 시간은 25분 남짓. 하지만 그 안에 온 출연진을 사랑과 화해라는 주제 안에 하나로 묶은 솜씨는 가히 천의무봉이더군요. 모처럼의 성탄 전야, 인파 속으로 외출하길 포기하고 닥본사한 보람이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동안 매회마다 '하이킥'은 등장인물 가운데 두 명 정도가 주인공을 맡아 매회를 이끌어갔지만 이날은 누가 주인공이랄 것도 없이 온 출연진이 고른 활약을 펼쳤습니다.

예를 들어 순재와 자옥은 모처럼의 와인바 데이트를 하는데 자옥이 고향을 떠나온 줄리엔을 데리고 나오자 순재는 불같이 화를 냅니다. 하지만 자신을 '코리아 대디'로 여기고 있다는 줄리엔의 카드를 보고 금세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 순재가 달려가 줄리엔을 다시 데려오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보석-현경 부부는 호텔 스위트에서 한밤을 보낼 꿈에 젖어 있다가 차가 밀려 길에서 김밥으로 허기를 때우지만 지나면 이게 다 추억이 될 거라며 웃습니다. 광수-인나 커플도 친구들과 파티를 하면서 즐거운 성탄을 보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문제의 회전목마 그룹은 정음이 지훈에게 마음을 열면서 균형을 깨뜨립니다. 하루종일 지훈의 전화를 기다리던 정음은 결국 꼼장어에 소주를 마시고 병원으로 지훈을 찾아가 내내 병원 일에 시달린 지훈과 늦게나마 성탄 데이트에 성공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반면 아무도 선물을 주는 사람 없는 성탄을 맞은 세경-신애 자매는 작은 화분에 폐품을 재활용한 장식을 달며 둘만의 트리를 만듭니다. 하지만 반짝이 전구에 불이 들어오지 않자 신애가 실망하죠. 이때 이들 자매의 일이라면 뭐든 참지 못하는 준혁이 집념으로 결국 트리에 불이 들어오게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트리를 보고 마음이 풀린 해리도 전혀 예상할 수 없던 행동을 합니다. 매일 구박하고 무시하던 신애에게 자기 방으로 가서 함께 인형을 갖고 놀자고 한 것이죠. 신애가 "너 웬일이야?"하고 느닷없는 선심의 이유를 묻자 "크리스마스잖아, 이 빵꾸똥꾸야!"하고 대답한 건 너무나 평소의 해리 모습이지만 말입니다.

특히 부모와 떨어져 온 가족이 따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집 안에서 신애가 있다는 걸 내심 기뻐하는 해리의 모습을 끌어 낸 것은 이번 크리스마스의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해리를 '빵꾸똥꾸 마녀'로 만든 것이 바로 어른들의 방치였다는 당초의 교훈이 점점 접근해가고 있는 거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된 생활에 지친 세경은 "트리를 보면 모든 전구가 일제히 불이 켜지는 순간이 있다. 과연 내 삶에도 그런 순간이 찾아올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눈물짓다가 준혁의 어깨에 기대 그대로 잠이 듭니다. 바라고 바라던 순간을 맞은 준혁은 당황하지만 행여나 세경이 깨어날까봐 조용히 숨을 죽입니다. 이 순간이 조금이라도 오래 이어지길 바라는 듯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장면에서 많은 분들이 알퐁스 도데의 단편 '별'을 떠올리셨을 겁니다. 목동과 주인 집 스테파네트 아가씨의 순수한 사랑을 그린 어느 밤의 이야기죠. 이 이야기에서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 아가씨는 목동의 보살핌 속에서 함께 별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목동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잠이 듭니다.

이때 목동은 혼자 생각하죠. "밤하늘의 저 숱한 별들 가운데 가장 가냘프고 가장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곱게 잠들어 있노라"고. 어떤 사심도 없이 말입니다. 아마 세경을 어깨에 기대게 한 준혁의 심정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이런 장면을 포함해 온 출연진을 성탄이라는 소재 안에 녹여 넣은 '하이킥' 팀의 솜씨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 지훈-정음 커플의 알콩달콩 모습도 보면 볼수록 즐겁지만 아저씨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불쌍한 세경이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준혁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P.S.2. 이날의 명대사는 뭐니뭐니해도 "크리스마스잖아, 이 빵꾸똥꾸야"와 병원 어린이들이 지훈에게 몰려와서 말한 "아저씨, 저 루돌프한테서 술냄새 나요." (이 대목에서 그냥 쓰러졌습니다.)

 

공감하셨으면 추천 쾅! (왼쪽 손가락을 누르시면 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