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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선덕여왕'이 오랜 시간 끝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물론 많은 시청자들에게는 이미 한두달 전에 끝난 드라마였지만, 그래도 아직 이 드라마의 엔딩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비담의 피눈물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깨어 보니 제 노트북에 이상한 글이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 전원을 끄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분명 제 손이 친 것 같기는 한데, 마지막에 '聖祖皇姑'라는 서명이 있는 것을 포함해 글의 내용은 참 생소하기 짝이 없더군요. 물론 글의 내용은 평소 '선덕여왕'을 보면서 하던 것과 비슷하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이 글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어젯밤 꿈에 웬 할머니가 뭐라고 구구절절 길게 얘기를 하신 것 같은 기억이 났습니다. 뭔가 좀 화가 나신 것 같기도 하고, 서글퍼 보이기도 하더군요. 아무튼 그분이 마지막에 '올려 놔, 올려' 라고 하신 것 같기도 해서, 블로그에 올려 보겠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구절 구절 그분이 불러주신대로 제가 넋놓고 타이핑을 한 것 같기도 한데, 워낙 졸려서 잘못 받아 친 부분도 있을 겁니다.

그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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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덕만. 사람들은 내가 왕위에 오른 뒤 성조황고라고 불렀다. 신국이라고 불려 온 내 나라, 신라의 성스러운 핏줄을 이은 동시에 나라 최고의 여자 어른이란 뜻이다.

아버지 진평제께서는 아들이 없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셨지만 내가 신중하고 영명하다 하셨고, 당신의 뒤를 이을 사람은 나뿐이라고 일찌감치 점찍어 놓으셨다. 아무리 왕이 아들이 없다 한들, 왕이 될 남자 친척이 없었겠는가. 용춘/용수공은 아버지의 숙부인 진지제의 아들이므로 아버지의 사촌 동생이 된다. 비록 진지제가 폐위를 당했다 하지만 둘 중 한 사람이나 용수공의 아들이며 아버지의 외손자인 춘추 모두 왕위에 올라도 손색이 없는 혈통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왜 여자라 하여 왕위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주위에 많은 인재를 모았다. 유신과 호림, 알천, 임종, 술종, 염장과 보종이 나를 따랐다. 인재들을 서로 엮어 주는 것도 나의 할 일이었다.

화랑들의 절대적인 신망을 얻고 있던 유신은 일찌기 진흥제를 도와 신라의 국경을 확장한 명장 무력의 손자긴 했지만 가야의 후손이라 서라벌의 중앙 귀족들과는 차이가 있었고, 춘추는 총명하고 담대했지만 폐위된 왕의 후손이라는 약점이 있었다. 이들이 협력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준다면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갈 두 기둥이 될만 했다. 유신의 여동생 문희와 춘추를 결혼하게 해 두 사람을 인척으로 맺어준 것도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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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때의 일연국사는 내가 앞날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다며 이를 지기삼사라고 칭찬하기도 했지만 나라고 앞날을 내다볼 수 있었겠는가. 당 황제가 보낸 그림을 보고 모란꽃에 향기가 없다고 한 것은 그때까지 내가 본 모란꽃이 향기가 없었기 때문인데, 어쨌든 그림과 함께 온 씨앗을 심자 향기 없는 꽃이 피었다. 본래 모란에도 향기가 있다고는 하나, 내 생각엔 일부러 나를 비웃기 위해 보낸 것이 분명한 듯 하다.

물론 지기삼사중의 하나인 '여근곡에 매복한 백제 군사의 위치를 파악한 일'을 두고 내가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군사적으로 신라가 크게 후퇴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대외 정복을 계속 추진하지 않은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건 시기가 무르익지 않아서 있었던 일일 뿐이다.

신라는 본래 세 나라 가운데 가장 약소국이었다. 그러던 나라가 지증-법흥-진흥제에 이르는 강력한 군주들의 노력으로 급격한 팽창을 이룩했다. 특히 진흥제때 관산성에서 백제 성왕을 포함해 백제군 3만을 참살한 것은 결정적으로 양국의 균형을 흔들었다. 신국은 그 이전 세대에 비해 두 배 가까운 확장을 이뤘다.

하지만 땅만 넓어지면 그 땅이 모두 우리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시대에나 정복 다음에는 치세가 와야 한다. 그건 아버지 진평왕과 나의 몫이었다. 내지의 백성들을 이주시켜 새로 정복한 땅에 살게 해야 했고, 이미 그 땅에 살고 있는 고구려, 백제, 가야의 백성들을 신라 조정에 귀순하게 해야 했다. 이들의 마음을 잡지 못하면 백제와 고구려가 역습해 왔을 때 성을 지킬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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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은 생각보다 힘들고 짜증스러웠다. 진흥제가 확보한 국경은 너무나 넓었고, 10년 20년에 우리 땅으로 다져질 것 같지는 않았다. 특히 고구려와 백제는 굳은 동맹을 맺고 땅을 다시 회복하려 했고,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중국의 수나라를 동원해 이 둘을 견제해야 했다. 자주? 난 그런 건 모른다. 내가 아는 건 신국의 도요, 선대왕들의 유지를 이어 신라가 삼한일통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 뿐이었다. 중국이 우리 땅을 삼키려 한다면 그건 통일 뒤에 맞서 싸울 일이다. 또는 힘을 모아 중원으로 치고 나가려 해도, 왕이 셋인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해서 아버지와 나는 수시로 농민들을 격려하고, 이 신라를 부처님의 땅으로 만들려 노력했다. 아시다시피 내 아버지의 이름 백정은 석가모니의 아버지, 어머니 마야의 이름은 석가모니의 어머니에게서 따 온 것이다. 나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이 땅에서 석가 세존이 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많은 절을 짓고 불교를 장려한 것 역시 국민 총화를 위한 노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별별 난리를 피우며 대항했다. 정복 전쟁의 성공은 무장들을 교만하게 했고 신라는 전통적으로 귀족들의 권력을 상당 부분 인정하고 있었다. 여자 군주는 국가의 기강을 약하게 할 것이란 게 그들의 명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난을 일으킨 칠숙이나 석품이 대표적인 경우였고, 비담과 염종은 내 뒤의 천하가 춘추에게 돌아가는 것을 좌시하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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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얻은 땅을 굳히려 안간힘을 쓰는 사이 백제는 서서히 국력을 회복했다. 특히 의자왕은 대단한 무장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대야성을 지키던 춘추의 사위 품석 부부가 죽은 것도 이 때이고, 화랑을 단합시킨 유신이 간신히 막지 않았더라면 삼한일통은 백제의 몫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는 탁월한 전술가였던 반면 국가의 미래에 대한 전략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이어진 승전에 교만해졌고, 중도에 정복을 포기하고 인생을 즐기기로 마음먹은 듯 하다.

이제 옛날 말고 요즘 얘기를 좀 해야겠다.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어린 시절의 내 이야기는 좀 황당무계하긴 했지만, 어쨌든 내 역할을 맡은 어린 배우는 귀여웠고, 상상력으로 채워진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었다. 내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는 것은 사관들의 탓이겠지만 아무튼 나도 어린 시절에 그렇게 중원을 유랑했다면, 좀 더 풍부한 식견을 가진 군주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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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 궁주같은 나라의 어른과 내가 대립하는 것으로 그려진 것은 조금 불만이었지만, 후세의 우매한 사람들이 머리를 짜 내어 했다는 일에 크게 마음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미실 역을 맡은 고현정이라는 배우는 참 훌륭했다. 사실 드라마가 뭐라 한들 어차피 알 사람은 다 알 일이라고도 생각했다(그런데 이건 내 생각이 틀렸다. 소화 말로 요즘 사람들은 스승에게 배우는 것보다 드라마의 영향을 더 받는다고 한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아버지의 치세에 조정이 화합하지 못하고 정권 다툼을 벌였다면 서라벌은 진작에 백제 왕의 말발굽 아래 있었을 것이다.

사실 나보다는 거의 바보에 가깝게 그려진 용춘공이나 싸움은 꽤 잘 하지만 단순하기 짝이 없게 그려진 유신, 그보다 더 하는 일이 없었던 알천 등이 훨씬 불만이 많을 듯 했다. 아, 그리고 600년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처음으로 여자를 왕위에 올려 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지도자였던 아버지를 우유부단하고 나약한 인물로 그런 것은 참 우스운 일이었다. 뭐 미실궁주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었을테니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쪽 편으로 그려진 인물들 역시 불만이긴 마찬가지일 듯 하다. 설원공 하나를 빼고는 모두 팔푼이들로 그려졌으니 말이다.

뒤로 가면서 드라마는 점점 더 이상해졌다. 천년의 대업을 이룩하려고 왕위 계승을 노리는 내가 나라의 목표가 삼한일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다는 걸 대체 누가 납득하겠는가. 나 뿐만 아니라 신라의 그 많은 화랑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무공을 연마하고 심신을 다졌을까.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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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숙의 난의 정체가 미실의 난이었다는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드라마에서 그려진 미실궁주를 그대로 두고 내가 왕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난의 진행 과정은 도대체 역사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인지 의아해질 정도로 무성의했다. 심지어 나는 그 과정에서,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운 십대 여자아이처럼 보였다. 부끄럽고 화가 났다.

게다가 미실의 난 때 주역이었던 미생과 하종, 보종 등이 그대로 뒷날 비담의 난 때에도 주역이라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갖가지 미사여구로 사실을 덮으려 했지만 드라마 내용대로라면 그들은 나와 아버지에게 칼을 겨눈 자들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미실이 멋진 여걸이라는 건 나도 인정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반을 감행한 자들을 다시 중용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똑같은 자들에게 두번이나 당할 정도로 바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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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담 생각을 하니 머리가 더 아프다. 내가 비담을 좋아했었던가? 뭐 까짓거 이미 천년도 넘은 일이니 비담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물론 그 드라마에 나오는 김남길이란 배우만큼 잘생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랬다고 치자. 내가 비담을 그렇게 좋아했다면 그냥 서슴지않고 남편으로 삼았을 것이다. 그 시절에 그게 무슨 흉이 되겠는가. 물론 비담에게 왕위를 넘겨줄 수는 없었다. 내가 보기에나, 유신이 보기에나, 결국 대업을 달성할 인물은 춘추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비담을 압박하고, 비담이 못 견뎌 난을 일으키고, 우리가 비담의 무리를 쓸어 버린 것은 춘추의 치세를 위해 '가시를 뽑은 천하를 물려준' 것이다. 아, 미안하다. 이 표현은 나중에 중국에서 명나라라는 나라를 세운 주원장이라는 사람이 쓴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그도 나처럼 자신의 뒤에 올 왕에게 정치적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해한다. 손에 피를 묻히는 건 늙은이들이 끝낼 일이다. 아무튼 비담 역시 일국의 왕을 노린 자신이 자제력 0에다 염종이 한마디만 하면 무조건 속아넘어가는 IQ 14짜리 캐릭터로 그려진 걸 결코 즐거워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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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끝까지 비담을 놓고 결단을 내리지도 못하고, 비담이 죽자 혼절까지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꽤 분이 끓어올랐다. 도대체 그 작자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드라마를 만들었는지 궁금해졌다. 춘추가 홈페이지라는 곳에 들어가면 기획의도라는 것이 있다고 가르쳐 줬다(역시 춘추는 똑똑하다).

'남성들만이 전유하던 왕의 자리를 공주의 신분으로 도전하여 최초로 차지하게 된...' 까진 좋다. '수많은 영역에서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 시청자들에게 자긍심과 용기를 주고자 한다'. 음. 뿌듯하다.

그런데 '왕이 되는 과정을 권력투쟁의 승리과정으로 그리기보다는 사람을, 인재를 얻어가는 과정으로서 그리고자 한다. 자신과 뜻이 같고 훌륭한 사람 뿐만 아니라 자신과 뜻이 다른 사람, 속세를 버린 사람은 물론 명백한 적들까지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결과적으로 삼국 중 가장 약소국이었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도록 했던 그 지도자의 힘! 그 힘을 보여주려 한다' 는 내용에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과연 이 드라마가 나를 이렇게 그렸나? 내가 본 드라마가 이 드라마가 맞나 싶었다. 내가 본 드라마에서 나는 오로지 권력투쟁만 벌였고, 사람이 중요하다고 입으로 쉴새없이 말했지만 결국 내가 내 사람으로 만든 것은 따지고 보면 월야 한 사람 뿐이었고, 오히려 우유부단하게 적들을 방치하다가 나라를 내란으로 몰고 가는 무기력하고 무능한 왕일 뿐이었다.
 
내가 휘하로 흡수했어야 할 화랑들도 중년이 되어 수염을 붙인 뒤로는 모두 나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는 인물들로 변신했다. 평소에 강한 척 하던 나는 오히려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마다 왕에서 가녀린 여자로 변신했다. 여자들에게 자긍심을 주긴 커녕, '저래서 여자는 큰 일을 못 해'라는 얘기가 안 나오면 다행일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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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천은 당장 그 드라마를 만든 이들의 꿈에라도 나타나 크게 호통을 치고 꾸짖자고 한 반면, 계략의 달인인 유신공은 이미 끝난 드라마, 죽은 자식 **만지기나 마찬가지니 차라리 다른 수단을 써서 내 생각을 널리 알리는 게 나을 거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가끔 꿈에 나타난 얘기를 반대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지혜로운 인물의 조언이라 따르기로 했다. 사실 화랑의 꽃인 그도 이 제작진이 '시청자들에게 우정과 사랑, 의리로 뭉쳤던 그들(화랑)의 삶을 보여줌으로서 감동과 함께 그들이 어떻게 신라 정신의 핵심으로, 삼국 통일의 핵심세력으로 떠올랐는지 보여줄 것'이라고 해 놓고 그의 동료 화랑들을 권력에 빌붙어 자기 잇속이나 챙기려는 장교집단 정도로 그려 놓은 데 꽤 화가 나 있는 듯 했다.

그래서 한 블로거(난 이런게 있는지도 몰랐다. 이건 죽방이 가르쳐 줬다)에게 빙의해 글을 남기게 됐다. 가능한 한 후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새로운 말들을 섞어 쓰려고 노력했다. 이 글이 널리 알려져 후세 사람들이 내가 그렇게 무능하고 정신나간 여왕이 아니었다는 걸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길 바랄 뿐이다. 마지막으로 요즘 배운 빵꾸똥꾸라는 말을 한번 써볼까 했는데 주위에서 말린다. 이걸로 그만 하련다. 聖祖皇姑.


빙의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2편은 김유신이 본 '선덕여왕'.
여왕님 말씀에 동의하시면 과감하게 추천을(왼쪽 손가락을 누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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