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TV '지붕뚫고 하이킥' 91회는 정음과 인나가 각각 남자친구들에게 상대를 바꿔 유혹을 시도하는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뭐 보나 마나 될 게 없는 승부지만, 그리고 누가 봐도 정음과 인나의 수준에서 진행되는 일인 만큼 성공할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지만 아무튼 쏠쏠한 재미가 있는 에피소드였습니다.
특히 절친한 두 친구가 서로의 남자친구를 유혹하기 위해 대시하는 장면은 어디서 많이 본 듯 한 장면이더군요. 바로 지난해 케이블TV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연애불변의 법칙'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 프로그램은 서로 사귀고 있는 커플 가운데 한 쪽(왜 그런데 항상 여자 쪽인지도 의문입니다)이 방송 제작진에게 남자친구의 정조를 시험해달라고 부탁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많은 분들이 '하이킥' 91회를 보셨겠지만, 이날 방송의 의도에 대해서는 살짝 오해하신 듯한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한줄 적어 봤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설정부터 참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특히나 제작진이 의뢰인의 남자친구를 유혹하기 위해 투입하는 '유혹녀' 캐릭터부터가 상식을 벗어납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유혹녀는 상대방 남성을 유혹하기 위해 선정적인 옷차림을 하고, 그 남자에게 끌린 척 연기를 합니다. 그리고 밤이 깊어 술자리가 진행될수록, 유혹은 수위가 높아갚니다. 유혹녀가 상대 남성과 키스를 하는 것 정도는 보통이고, 그 이상의 신체 접촉도 진행되곤 합니다.
이쯤 되면 대체 이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인지 의문스러워집니다. 배우가 멜로드라마에 출연한 거라면 연기라고 이해를 하겠지만 직업이 연기자도 아닌 사람들이, 다른 여자의 남자친구를 유혹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생판 처음 보는 사람과 키스까지 한다는 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얘기였기 때문입니다. 많은 시청자들이 '술집 여자냐' 고 궁금해 하기도 했지만 예전에 취재를 시켜 본 결과 멀쩡한 일반인들인 걸로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혹시 '연애불변의 법칙'의 현장에 대해 궁금하신 분이 있으면 참고하실만한 기사입니다.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170783
아무튼 '하이킥' 91회에서 펼쳐진 정경은 전형적인 '연애불변의 법칙'과 똑같이 진행됩니다. 노래방에서 노래로 마음(?)을 표현하고, 바싹 붙어 앉아 속닥이는 것도 같죠. 물론 정음과 인나가 친구라는 것을 지훈이 안다는 점이 좀 다를 뿐('연애불변의 법칙'에서는 전혀 모르는 매력적인 여자가 우연히 친구의 친구, 혹은 후배의 친구라며 갑작스럽게 호감을 표현합니다), 비슷하게 진행됩니다.
'하이킥' 91회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들이 저런 식으로 간단하게 유혹에 넘어가 망신을 당하느냐는 거죠.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음모설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두 연인이 공모를 한 상태로 '연애불변의 법칙'에 유혹을 의뢰한다는 것입니다. 프로그램의 성공을 위해 남자친구는 대략 유혹에 넘어간 척 해 주고, 여자친구도 격분한 척 하다가 '그래도 만나온 세월이 있는데'라며 용서해주는 걸로 끝을 낸다는 음모설입니다. 물론 사실로 밝혀진 적도 없고, 밝혀질 수도 없는 얘기지만 아무튼 이런 음모설이 나온 배경에는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하나같이 다들 금세 유혹에 넘어가고, 거의 대부분이 그냥 슬쩍 용서해버리는거냐'는 세태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솔직히 '연애불변의 법칙'이라는 프로그램이 그 정도로 유명해진 마당에, 어떤 남자친구든 갑자기 인생에서 별로 볼 일이 없었던 매력적인 여자들이 나타나 유혹을 펼친다면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겁니다. 그 남자친구들이 모두 절세의 훈남들이거나 왕자병 환자들이라면 모를까, 누구라도 마음 속으로는 '이거 몰래카메라 아니야?'라는 의문이 들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하이킥' 91회는 그런 상황에 대한 패러디를 통해 이렇게 얼토당토 않은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 대해 조소를 날리고 있습니다. 그냥 제 의견이지만, 김병욱 감독의 연출 의도도 바로 이쪽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
(유혹하는 장면이 평소 '하이킥'의 톤과는 달리 좀 끈끈하긴 했지만, 비현실적이어서 오히려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노가리 먹어도 돼요?" 같은 코믹한 멘트는 유인나의 캐릭터를 살리는 효과를 낳았죠.^^)
물론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듯 결과는 해피엔딩. 지훈은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P.S. 이날 '하이킥'은 '연애불변의 법칙' 패러디에 이어 두 가지를 살짝 인용했습니다. 광수가 정음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를 읽다가 질린 정음이 하품하는 장면은 시트콤의 클래식인 '프렌즈'에서, 레이첼이 자신에게 돌아오겠다는 로스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를 읽다가 로스가 잠들어 버리는 장면을 연상시키더군요.
또 보석이 진저리처던 뱀이 혹시 알을 낳은 게 아닌가 의심하는 장면은 스릴러의 대가 프레드릭 포사이스의 명작 단편인 '아일랜드에는 뱀이 없다'의 결말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 책을 안 보신 분이 있을까봐 더 자세히 말씀드리긴 그렇고, 아무튼 '아일랜드에는 뱀이 없다'나 '제왕' 등이 실린 포사이스의 단편집은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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