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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20일 방송된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현경과 보석이 하루 종일 티격태격하다가 눈밭에서 결전(?)을 벌이는 그 장면입니다. 정작 내용은 친구들 앞에서 남자로서의 체면이 깎인 보석이 분을 참지 못하고 하루 종일 복수를 꿈꾸다가 마침내 현경을 향해 분풀이를 하는 내용이죠.
그런데 이 장면은 멀리서 보면 연인들이 눈밭에서 사랑을 발산하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생사를 건 대결을 멀리서 잡는 화면에는 너무도 유명한 곡, 영화 '러브 스토리'의 테마 중 하나인 'Snow Frolic'이 흘러나옵니다. 물론 절대 의도적인 곡 삽입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에릭 시걸의 사망일에 방송에서 이 곡을 듣는 기분은 참 묘하더군요.
뭐 잘 아시겠지만 Snow Frolic은 바로 이 곡입니다. '러브 스토리'에서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가 눈밭에서 유치하게^ 뛰노는 장면의 배경으로 깔린 곡이죠. 이 장면과 이 음악은 너무나 유명해서 지금까지 1000번 이상은 패러디와 리메이크로 이용됐을 겁니다. 특히 눈을 씹어먹는 알리 맥그로의 야수적인^^ 장면이 인상적이죠.
이 광경을 바라보던 어떤 노부부도 부러운 듯 웃으면서 "거 참, 한창 때구만"이라고 중얼거립니다. 뭐 정말 멀리서 보기에는 두 사람이 알콩달콩 사랑을 속삭이는 광경으로 보일 뿐입니다. 그리곤 너무나 적절하게, '인생은 가까이서 보기엔 비극, 멀리서 보기엔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깔립니다.
영화와 소설 '러브 스토리'는 지금은 50대를 넘어 60대를 바라보는 분들의 청소년기를 달뜨게 했던 작품입니다. 제 경우에는 이런 역할을 한 작품이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작품이겠습니다만, 저보다 한 10년 정도 연상인 분들은 이 작품 때문에 잠을 설치고, 얼른 어른이 되어서(?) 저런 사랑을 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고 전해집니다. 요즘의 청소년들에겐 어떤 작품이 이런 역할을 할까요. '뉴 문'?
어쨌든 에릭 시걸의 기일이 된 20일, '하이킥'에서 '러브 스토리'의 주제음악을 듣게 된 것은 참 뜻하지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의도적으로 맞출 수 있는 일은 아니죠. '하이킥'의 방송 내용이 그날 그날 정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니 말입니다. 우연의 일치 치고는 참 대단한 우연의 일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왕년에 영화 '러브 스토리'에 대해서도 썼던 글이 있군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이후, 그리고 '꽃보다 남자'와 함께 한껏 떠올랐던 프레피 룩과 관련된 이야기(?) 입니다.
20일 방송된 '하이킥'은 'Snow Floric' 외에도 추억을 자극하는 음악 한 곡을 소개했습니다. 바로 Velvet Underground의 'Pale Blue Eyes'죠. 90년대의 화제작 영화 '접속'에 삽입돼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곡입니다. 문득 걸작으로 꼽히는 '접속'의 사운드트랙 앨범이 생각나는군요.
Pale Blue Eyes의 내용은 대략 짝사랑하는 남자의 넋두리 같은 것으로 여겨집니다만(하긴 부르는 목소리가 남자일 뿐, 꼭 주인공이 남자라는 법은 없겠군요), 이날 '하이킥'에서는 지훈을 그리는 세경의 심경을 대변하는 노래로 쓰였습니다.
지훈이 90년대 중반 의대를 다녔다고 생각하면 LP 전문 레코드점이나 벽에 가득 낙서가 쓰인 카페 같은 소품들은 지훈의 나이에 비해 너무 과장되게 옛날 것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아무튼 지훈이 세경에게 추억을 보여주고 '지나고 나면 지금 이 순간도 추억이 될 것'이라고 말해주는 장면은 어떤 멜로드라마에서도 보지 못했던 아련함을 안겨주더군요.
아무튼 영화 '접속'에 쓰인 노래 가운데서도 'Pale Blue Eyes'가 사용된 것은 왠지 지훈과 세경은 현실에선 이뤄질 수 없는 사이라는 느낌을 자아내 더욱 처연하게 들리기도 했습니다. 벌써부터 제작진은 체력과 지구력의 고갈을 호소하고 있던데, 과연 이 시트콤이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Pale Blue Eyes, 가사와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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