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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폐막식을 중계로 지켜보던 시청자들에게는 아마도 비슷한 의문이 떠올랐을 듯 합니다. 도대체 한국 선수단은 폐막식에 참석하긴 한 겁니까? 이번 대회에서 메달을 14개나 딴 한국 선수단은 언제 입장해서 어디서 폐막식을 본 걸까요. 혹시 김연아가 피곤해서 폐막식은 건너 뛴 거였을까요?
그게 아니었다는 건 수없이 올라온 폐막식 사진을 보고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네. 물론 폐막식 중계 화면은 세계 어디서나 똑같습니다. SBS가 중계하건, NHK가 중계하건 세계 어디서나 개최국의 주관방송사가 만든 화면을 받아서 중계할 뿐입니다.
그런데 세시간 가까이 진행된 중계 화면에 한국은 물론이고 동양인 선수가 비친 것은 아마 모두 합해 1분이 안될 듯 합니다(제가 못 보고 지나갔을 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잠깐 스쳐 지나가는 화면으로 일본 선수단 한번, 중국 선수단 한번밖에 못 봤습니다. 둘 다 합쳐 봐야 10초 남짓 할 겁니다. 다른 분들은 얼마나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글 제목은 '한국은 들러리?'지만 실제론 '아시아는 들러리?'였던 셈입니다.
우리가 중계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화면입니다.
사실 동계올림픽은 전통적으로 북반구의 백인 잔치인 게 분명합니다. 동계 스포츠 자체가 북미 지역과 북유럽 각국의 잔치로 치러져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아시아계 선수들을 무시할 수 없었던 건 한-중-일 선수들의 활약 때문입니다. 한국은 금6, 은6, 동2로 종합 5위권, 중국도 금5 은2 동4로 7위권, 일본도 은3 동2로 20위권의 성적을 냈습니다.
메달 숫자만 놓고 볼 때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국 시청자들도, 일본 시청자들도 역시 이런 광경은 폐막식 중계에서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이 점에선 한/중/일이 같은 입장입니다.
하지만 중계 카메라는 종합 1위를 한 자국 캐나다의 성적에 도취됐는지 쉬지않고 캐나다 대표팀의 사슴 그림이 수놓인 상의를 뒤쫓느라 정신이 없더군요. 최대의 스폰서인 미국 선수단의 랄프 로렌 상의도 쉴새없이 화면에 등장했고 기타 유럽 국가들의 선수단은 어쨌든 거의 빠지지 않고 카메라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결국 아시아 선수단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이런 중계가 계속되고 있는데 존 퍼롱 조직위원장은 폐막 연설에서 "누구도 소외당하지 않는 세계를 만들자는 것이 이번 동계 올림픽의 이상"이라고 역설하더군요. 참 공허하게 들리더군요. 중계 카메라가 당장의 잔치를 '백인들만의 축제'로 만들고 있는데 이런 식의 폐막 연설이라니. 좀 씁쓸했습니다.
당장 전 세계에 나가는 그 중계방송 화면이 아시아를 소외시키고 있는 걸 퍼롱 위원장은 아마도 짐작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알았다면 참 낯이 뜨거웠겠죠.
캐나다는 흔히 미국에 비해 인종차별이 없는 나라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개막식 때만 해도 소수민족인 인디언과 에스키모 부족들을 동원해 그들도 캐나다 국민이라는 의미를 굳이 강조하더군요.
하지만 폐막식에서 캐서린 오하라의 썰렁하기 짝이 없는 농담을 비롯해,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캐나다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듯한 분위기는 지금까지 알려져 있던 캐나다라는 나라의 좋은 이미지를 자칫 망치려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차라리 폐막식에서 '사우스 파크' 캐릭터들이나 나왔다면 이런 불쾌한 느낌은 들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연출 책임자가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시아 선수단에게도 어느 정도 예우를 베풀었더라면 이런 반응은 낳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 매우 아쉽습니다. 어쨌든 최근 지켜본 수많은 올림픽 개/폐막식 가운데서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 폐막식은 유난히 무신경하고 이기적인 행사였다는 기억이 남게 될 듯 합니다. 유난히 '중국 만세'를 지향했던 지난 베이징 올림픽 개막 행사의 악영향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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