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TV 수목드라마 '개인의 취향'은 '게이 남자친구'의 좋은 점에 눈을 떠가고 있는 개인(손예진)과 우연찮게 게이로 오해받은 (일부에 알려진대로 '집을 얻기 위해 게이를 사칭한'이 아닙니다) 완벽남 진호(이민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원작을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소설 원작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이 드라마는 '게이 남자친구가 하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의 판타지를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그리 드문 것이 아니죠. 수많은 여자들이, 심지어 게이 남자와 대화 한번 해본 적 없는 여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대체 왜 이런 생각이 유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듯 합니다. 당연히 가장 큰 요인은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입니다.
'섹스 앤 더 시티'가 처음이 아닙니다. 그 전부터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작품들에는 미녀 여주인공 옆에 향단이처럼 남성 게이 친구가 따라다니곤 했습니다. 이들에겐 대부분 공통적인 분위기가 있죠. 패션에 아주(진짜 여자보다 더) 민감하고, 당연히 쇼핑도 좋아하고, 남의 말을 들어 주는 것을 좋아하고, 여주인공의 실수에는 갑자기 '남자'가 되어 관대해지고, 수다스러우면서도 가끔씩 정곡을 꿰뚫는 지혜도 갖고 있습니다.
영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에 나온 루퍼트 에버릿이 그랬고, 미국의 인기 시트콤 '윌 앤 그레이스'는 아예 게이 남자주인공과 일반인 여주인공 사이의 관계를 뼈대로 6년 이상 시청률 상위권에 위치했습니다.
이 픽션상의 게이들은 자연히 옷도 잘 입고, 몸매도 잘 가꾸고(물론 스태포드같은 예외도 있죠), 진짜 남자들에 비해 편한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를 들어 진짜 남자 중에는 '친구로는 꽤 장점이 있지만 애인으로 삼기엔 영 부족한' 사람들이 제법 있기 마련이죠. 하지만 이런 남자들을 가까이 두고 있으면 어느새 한밤중에 심각한 표정으로 '난 너 좋아한다. 그럼 너한테 난 뭐냐. 난 무슨 껌이냐. 니 애인이 아니라면 난 간다'는 식으로 징징대곤 합니다. 자칫하면 '너도 나 좋아하잖아' 하면서 우격다짐으로 남자친구 행세를 하려 들기도 합니다. 이런 골치아픈 일을 겪고 나서야 많은 여자들이 '남녀간에도 우정이 가능하다'는 말을 일기장에서 박박 지워내곤 합니다. 그리고는 오래 사귀어도 남녀 감정이 생기는 기능이 애당초 차단되어 있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 속으로 빠져들곤 하죠.
(사실 각종 픽션에서 여주인공 옆에 거의 '이상적인 친구'로 게이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은 스토리텔링의 아주 오랜 신화 중 하나인 '매력적인 이방인' 캐릭터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의 스승이 켄타우르스인 케이론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나, '스타 트렉'에서도 인간 이상의 조언자로 미스터 스포크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 그리고 수시로 미국 영화에 등장하는 '지혜로운 동양인 노인' 캐릭터와 별반 다를 게 없죠. '우리와 다르지만 현명하고 친근한 존재'는 게이 남자친구가 아니더라도 많았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여성 시청자들에겐 이들이 매우 특별했습니다.)
아무튼 다년간 이런 종류의 영상물에 노출된 결과, 실제로 주변에 남성 게이 친구가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문 데도 불구하고 많은 여자들이 "나도 속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게이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 깔끔하고, 쇼핑도 같이 하고, 좋은 남자도 구별해 주고... 얼마나 좋아?"라는 환상을 갖게 된 것이죠.
문제는 이런 내용들이 대부분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그 상상에 등장하는 게이들은 대부분 '이상적인 게이'들입니다. 작가들의 상상(실제로 그 작가들은 얼마나 게이 친구들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에서 비롯된 존재들이니 어찌 보면 현실성이 부족한게 정상이죠.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 스트레이트 여성이 게이 남자를 친구로 두려다가 벌어지는 웃지 못할 일들도 꽤 있다고들 합니다.
미국 ASKMEN.COM에서 "당신이 게이 남자친구를 갖고 싶어한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들"이라는 제목의 아티클을 발견했습니다. 주요 체크 포인트를 봐 두시는 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
첫째, 친구가 될만한 게이를 발견하는 일이 사실 그리 쉽지 않다. 미국 통계로도 게이는 전체 남성의 1/10 미만이다(한국에선 당연히 더 적겠군요).
둘째, 그가 당신의 연애사를 차분히 듣고 상담해주길 바란다면, 당신도 그가 남자 쫓아다닌 이야기를 들어 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세째, 게이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 드라마에 나오는 걸 기초로 '게이들은 원래 그렇잖아'라고 선입견을 갖고 접근하면 곤란하다. 천만가지 남자가 있고, 천만가지 여자가 있듯, 게이도 개인차가 심하다.
네째, 게이라고 해서 전부 '여성적인 것'에 경도되어 있다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게이들이 전부 예쁜 머리띠를 보면 "너무 이뻐, 너무 이뻐, 어떡해!"라며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은 아니다. 게이도 기본적으로는 남자다. (중요 포인트인 듯 합니다. 심지어 트랜스섹슈얼과 게이를 구별 못하는 사람도 있으니...)
다섯째, 게이 바에 가서의 행동 강령 - 이건 별 의미가 없군요.
여섯째, 게이 친구를 상상하는 많은 여자들은 그들이 자신들의 남자 연인들 때문에 여성 친구에게 소흘하게 된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역시 드라마의 악영향...). 이건 당신이 애인이 생기면 동성 친구에게 소흘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이 친구는 그냥 친구일 뿐, 당신의 남친이 아니다.
일곱째, 마찬가지로 남자 애인을 구했다고 해서 게이 친구와 연락을 끊는다든가 하는 건 인간성 보이는 짓이다. 게이 친구를 사귄다면, 언젠가 생길 남자친구가 그 게이 친구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특히 한국에서라면.
그러니까 결론은, 남자든 여자든 게이든 사람은 원래 제각각이고, '내 맘에 쏙 드는 친구'란 원래 찾기 그리 쉽지 않다는 겁니다. 그리고 뭐든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도 큰 법이죠.
아, 물론 여자라고 해서 모두 다 게이 남자친구를 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도 당연히 인정합니다. 제목은 그냥 '요즘 그런 여자들이 많다던데 왜 그럴까' 정도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P.S. 이미 답은 충분히 예상되지만, '스트레이트 남자와 레즈비언 여자 친구'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남자들도 혹시 있나요? ^^
'기양 살다가 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능 프로그램 결방, 대체 기준이 뭐냐? (83) | 2010.04.26 |
---|---|
김창렬, 한밤중 트위터로 대형 사고를 치다 (50) | 2010.04.21 |
1박2일, 대한민국 최북단이 강원도에? (99) | 2010.04.12 |
엘리자베스 테일러, 9번째 남편은 흑인? (47) | 2010.04.10 |
대만의 폴 포츠 or 대만의 수잔 보일? (20) | 2010.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