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신데렐라 언니'를 보다 보면 역시 TV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구나 하는 것과, 작가가 만들어 낸 좋은 캐릭터는 좋은 캐스팅을 통해 빛을 발하는구나 하는 기본적인 내용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특히 아버지 대성(김갑수)의 죽음을 맞은 가족의 위기를 다룬 9회를 보면서 새삼 좋은 대본과 좋은 배우의 시너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9회에서는 그동안 앙금으로 남아 있던 기훈(천정명)의 편지가 은조(문근영)에게 전해졌나의 문제가 밝혀집니다. 기훈이 은조에게 편지를 받았느냐고 묻고, 은조는 그제야 효선(서우)이 그 편지를 중간에서 가로챈 사실을 알아내지만 그래 봐야 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은조는 "편지를 받았지만 찢어버렸는지 어쨌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해버립니다. 이 장면과 몇 신 뒤 효선과의 대립 신에서 문근영이 보여주는 싸늘한 연기는 날로 발전하고 있는 이 배우의 성장을 피부로 느끼게 해 줍니다.
사실 이번 '신데렐라 언니'에서 굳이 '악역'이라는 타이틀을 씌워서 그렇지 문근영에게 '어두운 연기'를 기대했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벌써 4년 전 작품인 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에서 그야말로 어둠이 뭉클뭉클 피어나는 눈먼 상속녀 역할을 했죠. 4년 전 이 시절의 문근영과 지금의 문근영을 비교하면 일취월장이란 말을 아끼지 않게 됩니다.
그때와는 배역을 대하는 자세와 이해가 판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악을 쓰고, 소리를 질러서 시청자에게 어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내면의 어두움을 싸늘하게 내비치는 연기에서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드라마가 시작할 무렵만 해도 문근영에 대해 '아직까지는...'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지금은 그 말을 번복해야 될 상황인 듯 합니다.^)
이 드라마를 계속 지켜본 분들이라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 드라마의 주제는 결국 '어떻게 해서 신데렐라의 계모와 언니는 괴물이 되었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구대성이라는 가장의 존재 속에서 계모, 언니, 신데렐라(즉 강숙, 은조, 효선)는 비록 긴장감이 있긴 했지만 평화로운 공존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강숙은 대성을 통해 평생을 찾아 해메던 안정을 찾을 수 있었고, 비록 마음 속의 한 구석은 계속해서 대성을 배신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있는 앞에서는 현모양처로서 모든 구색을 갖췄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안정을 희구하는 진심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보여졌죠.
마찬가지로 은조는 '대성에 대한 의리'로, 효선은 '아빠에 대한 사랑'으로 세 여자는 모두 대성을 상대로 도는 세 개의 위성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서로의 궤도가 충돌하지 않도록 어느 정도 양보를 해 가면서(강숙이 은조 때문에 불륜 상대를 정리하듯) 말입니다.
하지만 결국 대성이 사라지면서 세 위성은 서로 충돌할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게 됐습니다. 대성과 대성도가가 공급하던 풍족한 생활은 사라지고, 강숙은 이제 더 이상 잘 보여야 할 상대가 사라진 이상 자신의 피붙이인 남매와 그렇지 않은 효선을 구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물론 대성이 사라진다 해서 의리까지 사라지지 않는 은조는 강숙과 충돌할 수밖에 없고, 상황 변화에 가장 취약할 효선은 자신이 공주에서 시녀만도 못한 처지로 떨어진 이유를 강숙-은조 모녀에게서 찾아야 할 상황입니다.
물론 제목이 '신데렐라 언니', 즉 신데렐라 이야기라는 점을 생각하면 결국은 왕자님에 의해 구출되는 것은 효선일 것입니다. 그 왕자님이 기훈일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일지는 드라마가 한참 더 진행되어야 알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사실 주인공이 '신데렐라 언니'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드라마의 초점이 강숙-은조 모녀에게 맞춰져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대본이 그리 편파적이지는 않습니다. 효선에게도 충분한 '자기 몫'이 있기 때문입니다. 효선의 특기,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극한의 귀여움+애교+순수함이 바로 그것이죠. 즉 은조가 '어둠'이라면 효선은 극한의 '밝음'입니다. 하지만 과연 서우가 이 특기를 제대로 발휘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은... '글쎄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현재 극한의 어둠(다른 말로 하자면 다크 포스?^)을 뿜어내고 있는 문근영이 이 드라마가 끝날 때 쯤에서 어둠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여부가 일곱편 남은 '신데렐라 언니'를 끝까지 지켜보게 될 가장 큰 이유일 듯 합니다.
P.S. 택연의 연기는 정말 기대 이상입니다. 김현중, 정윤호, 정용화, 임슬옹 등 지난해 이후 등장했던 수많은 아이들 그룹 출신 남자 연기자 중에서는 단연 발군이라고 할 수 있을 듯. 물론 무리하게 주인공을 노리지 않은 선택도 적절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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