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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언니'는 왜 계속 동시간대 1위를 달리면서도 시청률 20%를 넘지 못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아직 진짜 주역이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0회에서야 그 주역이 나타났습니다.

간단한 질문입니다. '신데렐라 이야기', '콩쥐팥쥐 이야기', '심청이 이야기', '장화홍련 이야기', '백설공주 이야기', 이 이야기들은 대체 왜 재미있는 이야기로 수백년, 수천년을 살아남은 것일까요. 이 이야기들을 모두 이끌어 온 인물/캐릭터는 대체 무엇일까요. 대답하지 못할 분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바로 '계모'입니다.

그런데 제목이 '신데렐라 언니'인데도 불구하고, 그 드라마에는 아직 '계모'가 없었습니다. 물론 이미숙이라는 탁월한 배우가 그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그 역할은 지금까지 진짜 계모가 아니었죠. 구대성이라는 아버지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었던 한 여자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이제 남편이 죽고 없어짐에 따라 진짜 '계모'로 변신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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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도 한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계모와 구박받는 전실 소생 딸이 필수적입니다. 이 계모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겠지만, 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신데렐라가 학대받는 동안 신데렐라의 아버지는 살아 있었을까요, 아니면 죽은 뒤였을까요?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신데렐라는...어려서...부모님을 여의고...'라는 노래대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사라진 다음에 계모와 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샤를 페로가 정리한 신데렐라 이야기에는 분명히 아버지는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지만 계모에 의해 휘둘리기 때문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걸로 돼 있을 뿐입니다. 백설공주의 아버지도, 심봉사도 모두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캐릭터들이 존재가 희미해질만큼 '계모' 캐릭터의 위력은 엄청납니다.

그리고 '신데렐라 언니'에서도 드디어 10회에서 그런 구도가 나타났습니다. 효선(서우)은 계속 엄마, 엄마 하고 부르며 전같은 친근감을 이어 가려 하지만 강숙(이미숙)은 "너 치대는거 지겨워!"라며 매달리는 효선을 단칼에 잘라 버립니다. "질질 짤거면 나가!"가 2연타.

이 '악녀 본색'을 살짝 보여준 결과가 자체 최고 시청률로 나타났습니다. 문근영의 빛나는 호연 덕분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악녀의 등장이 시청률 상승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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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현대적인 이야기'에서는 상황이 사뭇 달라집니다. 앞으로 강숙이 보여줄 계모의 역할은 모질고 독하기가 뺑덕어미 못지 않겠지만, 거기에 대한 변명거리도 준비돼 있습니다. 어쨌든 강숙은 이성보다는 야성이 앞서는 여자고, 그 야성은 '내 새끼'에 대한 보호본능으로 뭉쳐져 있습니다. 그럼 '내 새끼'가 아닌 효선은 그 보호망 안에 있을 수 없죠. 오히려 구대성 때문에 참고 있던, 그동안 제거하지 못했던 거추장스러운 요소에 불과합니다.

'현대적인' 시청자들은 오히려 그걸 재빨리 인식하지 못하고 '엄마가 나한테 왜이래?'라고 어리둥절해 하는 효선을 더욱 답답하게 여깁니다. 이게 바로 옛날 이야기를 듣던 조선시대 사람들과 요즘 사람들의 차이일까요? 아니죠. 한번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게 된 사람'과, 그냥 '예전부터 있던 이야기를 그대로 들은 사람'의 차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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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건, 백설공주건, 심청전이건, 지금까지 수백년 동안 사람들은 전해지는 이야기를 그냥 그대로 씹어 삼켰습니다. 작자가 원하는 대로 '친엄마가 죽은 불쌍한 딸'의 시선에서 그냥 계모를 '천하에 독하고 나쁜 년'이라고 보았을 뿐입니다. 계모에게도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나, 그 친딸이 세상 속터지게 하는 공주병 환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아무도 해 보지 않았거나, 했더라도 그런 사람들은 괴짜 취급을 받았을 겁니다.

이번에 '신데렐라 언니'를 죽 보아 온 시청자들은 '우리가 그동안 옛날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 한쪽 편만 들었는지도 모르겠다'는 반성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어찌 보면 그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일 수도 있고, 어찌 보면 천편일률적인 대본들이 넘쳐 나는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이 드라마의 시각이 눈에 띄는 가장 큰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강숙이 악녀의 본색을 드러냄에 따라 그동안 '너무 무거웠다'는 '신데렐라 언니'는 조금 더 선명해지고 편해질 수 있을 듯 합니다. 그 '해금'이 좀 더 많은 시청자를 이 드라마에 끌어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물론 아무리 학대가 심해져도 시청자들이 서우를 전혀 불쌍해하지 않는다면 그건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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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일꾼들에게 소리치는 은조(문근영)의 어깨에 놓인 대성의 유령의 손에서는 다시 한번 김규완 작가가 아사다 지로의 팬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아마 몇회 이내에 은조는 다시 대성과 대화를 하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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