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길들이기'는 '슈렉'과 '쿵푸팬더'를 만든 드림웍스의 2010년 야심작입니다. 솔직히 최근 몇년 사이 국내에서 개봉된 드림웍스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가운데 가장 실망스러웠던게 약간 아이디어가 고갈된 듯 보였던 '슈렉3' 정도라면 이들은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입니다. 그 약했다는 '슈렉'도 3D로 재정비한 '슈렉 포에버'가 이미 1억 달러 흥행을 넘어섰으니 이들의 화양연화는 꺼질 날이 보이질 않습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유일한 라이벌로 꼽히는 픽사/디즈니도 올 여름 3D로 '토이 스토리3'를 내놓고 현재 개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미국은 6월, 한국은 8월). '슈렉 포에버'와 '드래곤 길들이기', '토이 스토리 3' 등 이들 세 작품은 올해 최고의 애니메이션 흥행작은 뭐냐를 놓고 겨룰 후보들이면서, 세 편 모두 3D로 제작돼 세월의 대세가 3D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 빅3 중의 첫 작품, '드래곤 길들이기'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활주 장면의 박진감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더군요. 스토리 탄탄, 주인공 매력 만점, 특히 나이트 퓨리 투스리스 귀여움 만점. 더 바랄게 없는 홈 엔터테인먼트 상품입니다.
줄거리. 스칸디나비아 북쪽 어느 섬에 사는 소년 히컵(제이 버루첼)은 머리는 좋지만 쓸데없는 공상에 매달리고 체력이 형편없는, 흔히 미국 고등학교를 다룬 영화에서 힘센 깡패나 풋볼 선수들에게 치여 사는 캐릭터의 면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기계 제작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현실로 바꿔놓는 데에는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지만 마을 전체와 족장인 아버지 스토크(제러드 버틀러)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마을을 용의 습격으로부터 지켜낼 용감하고 날쌘 전사입니다.
또 한번 용들의 습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은 날 밤, 히컵은 자체개발한 장거리용 요격 무기로 다양한 종류의 용들 가운데서도 아무도 잡아 보지 못한 나이트 퓨리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 합니다. 결국 나이트 퓨리를 맞혔지만 증인이 아무도 없어 증명하지 못했던 히컵은 마침내 산넘고 바다건너 자신의 무기에 의해 격추(?)된 나이트 퓨리를 발견합니다. 그리곤 우여곡절 끝에 그에게 투스리스(Toothless)라는 이름까지 붙여주고 친구가 되죠.
추천은 충분히 했으니 이제부턴 그냥 얘기들입니다. 뭐 스포일러라고 할만한 부분도 꽤 있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그런 걸 따지는 것도 촌스러운 일일 듯 합니다. 대략 읽어 보시고 보러 가셔도 큰 탈은 없을 듯 합니다.
영화 중간 정도까지만 보면 이 애니메이션이 담고 있는 정치적 함의랄까 하는 것을 알아보는 것은 장님만 아니면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똑똑한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라면 충분히 알만한 얘기죠.
도입부에서 인간과 용은 공존할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입니다. 용에 의해 수많은 바이킹들이 목숨을 잃고, 용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바이킹들의 가치는 용과 싸울 수 있는 전사냐 아니냐에 의해 정해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투스리스를 직접 대해 본 히컵의 생각은 점점 바뀌기 시작합니다. 서로 맞닥뜨렸을 때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것은 인간이나 용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 버린 것이죠. 공포가 상대에 대한 잔혹한 학살을 이끌어내고, 그 학살이 계속 악순환을 일으킨다는 것을.
물론 용들이 그렇게 악착같이 인간들의 삶의 터전을 건드리는 '진짜 이유'에 대해서는 다소 동화적인 설명으로 끝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한계이고, 현실에 대해선 아무런 해결책도 내놓을 수 없는 나이브한 시도인 것도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영화를 보는 사람들(물론 여기선 미국 관객들을 말합니다)에게 최소한의 메시지라도 전해 보자는 시도가 그렇게 밉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뭐 이런 정도의 시도까지도 '미국 외 시장에서 좀 더 잘 팔아먹자는 장삿속'이라고 욕하실 분도 있겠습니다만...)
아무튼 앞글에서도 얘기했듯, 영화 '페르시아의 왕자'에도 약간 비슷한 시도가 등장합니다만, 그 시도라는게 영 생뚱맞고 어처구니없었던 반면 '드래곤 길들이기'에서 이런 시도는 영화에 전혀 껄끄럽지 않게 맞아 떨어집니다. 무엇보다 공포의 상징이었던 투스리스가 너무나도 귀엽고 천진난만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는 게 주효했을 겁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여러 해 전, 갑자기 '유민'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일본 여배우 후에키 유코가 언제든지 현해탄을 건너 돌진할 듯 하던 대한 청년 남아들의 반일감정을 봄눈 녹이듯 사라지게 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탄탄하고 앙증맞은 줄거리와 캐릭터 외에 가장 칭찬하고 싶은 것은 3D의 박진감을 최대한으로 살려낸 투스리스의 비행 신입니다. 제대로 4D를 가동한다면 멀미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감나는 멋진 시각 경험이었습니다. 20여년 전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영화 '파이어폭스'를 보면서 느꼈던 시원함은 다시 보면 별 감흥이 없겠지만... 아무튼 그 무렵의 감흥이 되살아나는 느낌입니다.
저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결론은 매우 강추.
P.S.1. 문득 히컵의 캐릭터를 보면서 왕년에 국내에서도 방송됐던 '슬기돌이 비키'라는 만화영화가 생각났습니다. 바이킹 족장의 아들이지만 힘과 용기보다는 지혜로 자기 몫을 하는 바이킹 소년 이야기... 뭐 그리 동떨어진 건 아닌 듯 합니다.
최근엔 이 만화영화의 실사판도 만들어졌더군요.
P.S.2. 히컵의 로망인 아스트리드의 모델은 어쩐지 '윔블던'의 커스틴 던스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 물론 목소리는 던스트가 아니었습니다만... 어쩐지 일치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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