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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왕자(Prince of Persia)'의 타이틀 롤을 제이크 질렌할이 맡고, 제작사가 디즈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상태에서부터 어쩌면 결과는 충분히 예상됐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어쨌든 이 영화를 구상하면서 제작을 맡은 월트 디즈니사와 프로듀서 제리 브룩하이머의 머리 속에 무엇이 있었을지는 매우 분명합니다. 바로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였죠.

양측이 힘을 합쳐 이뤄낸 '캐리비안' 시리즈는 3편까지 제작되며 수억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들은 디즈니라는 회사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방향, 즉 어린이부터 어른들까지 모두 즐길 수 있고, 필요 이상의 폭력이나 피, 성인용 화면을 배제하면서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재미를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영화라야 한다는 점을 충분히 충족시켰습니다.

그리고 '캐리비안'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디즈니사와 브룩하이머는 다시 한번 비슷한 프로젝트를 가동시켰습니다. 이번엔 무대가 페르시아로 옮겨졌을 뿐, 두 프로젝트는 역시 여러 모로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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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매우 전형적인 영웅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전성기, 지혜로운 샤라만 왕(로널드 픽업)은 동생 니잠(벤 킹슬리)와 함께 제국을 통치하던 어느날, 거리의 씩씩한 거지 소년 다스탄(제이크 질렌할)을 이미 두고 있던 두 아들의 동생으로 입양합니다. 세월이 흘러 다스탄은 두 형인 터스, 카시브와 함께 성스러운 도시 알라무트로 진군합니다.

샤라만은 알라무트를 함부로 침공해선 안된다고 말하자만 이들은 알라무트가 페르시아의 적들에게 몰래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는 정보를 믿고 성을 공격해 함락시킵니다. 알라무트의 공주 타미나(제마 아터튼)는 침략군으로부터 가장 중요한 보물인 수정 손잡이의 단도를 지켜내려 하지만 이 단도는 다스탄의 손에 들어갑니다. 다음 왕이 될 터스는 알라무트를 안정시키기 위해 타미나를 자신의 아내로 삼으려 하죠. 하지만 사태는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 단도에는 세계의 역사를 바꿔 놓을 수도 있는 힘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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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소년이 왕자가 되는 이야기는 아라비안나이트 풍의 이야기에서는 드물지 않게 등장하곤 합니다. 어쨌든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는 많은 사람들이 286 컴퓨터와 VGA용 모니터를 처음 보고 감동하던 시절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왼쪽에 있는 초기형 '페르시아의 왕자'가 요즘은 오른쪽의 모양으로 바뀌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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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게임이 있건 없건 간에 제이크 질렌할은 로맨틱 가이에서 액션 영웅으로 변신하고 싶다는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이행했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득을 본 것은 질렌할 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쁘장한 범생이 이미지였던 이 배우는 이 영화를 통해 텁수룩한 수염으로 병사들과 땀을 흘리며 씨름하는, 병사들이 좋아하는 왕자 이미지로 훌륭하게 변신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나머지 부분들은 그다지 좋게 얘기하기 쉽지 않습니다. 일단 이 영화에는 가장 중요한 요소, 즉 매력적인 왕자는 있었던 반면 그 하나 빼고는 없는 것 투성이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가장 먼저 결여된 것으로는 '플롯'을 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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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제작진은 이런 얘기에 콧방귀를 뀌었을 겁니다. "플롯? 스토리? 대체 그런게 뭐가 중요해?" 라는 말이 당장 나왔을테죠. 왜냐하면 이 팀은 바로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대 히트작으로 만든 그 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플롯이 없기로는 '캐리비안의 해적'이나 '페르시아의 왕자'나 거의 차이가 없죠.

하지만 '캐리비안의 해적'에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그리고 '페르시아의 왕자'에는 없는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바로 조니 뎁이라는 변수입니다. 이 배우는 잭 스패로우 선장의 옷을 입었을 때, 그야말로 다른 모든 요소를 잊게 하는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심지어 상당수 관객들은 영화의 줄거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상당히 많은 관객들이 지금도 '캐리비안의 해적'의 줄거리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저 잭 스패로우의 동선을 따라 관람했던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행히도 '페르시아의 왕자'에는 조니 뎁도, 그 역할을 할 배우도, 그와 비슷한 캐릭터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왕자와 공주가 전면에 서게 되고, 관객의 눈길을 끌 다른 요소도 없으므로 스토리의 난맥상이 그대로 노출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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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문에 도중에 등장하는 산적 마을이나 타조 경주 같은 에피소드는 별 재미 없는 시간때우기였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리고, 다스탄이 천신만고 끝에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달려가는 부분은 지루하게만 느껴질 뿐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 최고의 볼거리인 모래시계 신은 '아무도 악당이 이길 거라고 예상하지 않는 가운데' 공허하게 지나가 버립니다. 한마디로 12세가 넘은 관객에겐 그냥 허전한 결말일 뿐입니다.

또 '페르시아의 적'들에게 무기를 공급했네, 알라무트에 병기창이 있네 없네 하는 얘기는 정말이지 헉 소리가 납니다. 이런 영화에 무슨 이라크의 생화학 무기와 미국의 2차 걸프전 이야기까지 들어간단 말입니까. 이건 '이누야샤'에서 임진왜란의 역사적 의미를 논하는 거나(물론 다카하시 선생은 그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인 미친 짓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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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가 넘은 관객들에게 또 하나, 엄청나게 불만스러운 요소는 가장 매력적이어야 할,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성스러운 도시보다 더 아름다운'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공주 캐릭터와 등장하는 배우의 불일치입니다.

영미인들에게[는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지만, 대체 이 배우가 왜 이렇게 잇달아 메이저 영화에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는지는 제겐 참 불가사의일 뿐입니다. 물론 그 전이라고 비슷한 전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리 놀랍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이 배우는 진 트리플혼이나 줄리아 오몬드 같은 선배들의 뒤를 따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마도 제작진은 페르시아의 왕자 역시 2편, 3편으로 가는 시리즈를 기대했겠지만 일단 지금 만들어진 1편을 봐선 큰 기대는 가지 않습니다. 결국은 '온 가족용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어른 관객들을 아예 배제해버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만약 다른 제작사였다면, 좀 더 나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이 다음 줄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래도 보실 분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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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영화를 본 뒤 동행인과의 대화.
그: 악역이 누군지 너무 뻔히 보여. 영화 결말이 다 보이잖아.
나: 왜?
그: 매일 악역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으니까 누가 진짜 나쁜놈인지 다 알지.
나: ...그 양반 그래도 왕년엔 '간디' 역으로 나온 사람인데.
그: 그래? 아무튼 너무 악당 얼굴이야.

뭐 다시 보니 그렇긴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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