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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 '강심장'의 4일 방송에는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특집이라는 부제가 붙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MC인 이승기가 주인공을 맡고, SBS의 하반기 기대작인 드라마였으니 '강심장'을 통해 한번 대대적으로 홍보를 해 보자는 작전이었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자사 프로그램을 내놓고 홍보하는 것이 약간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할 수만 있다면 정규 뉴스를 통해서도 직접 홍보를 하는 등 그동안 방송사들이 보여준 모습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크게 문제될 건 아닙니다.

하지만 내용을 보다 보니 이건 드라마 홍보를 넘어 서서 너무 낯뜨거운 장면의 연속이었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과연 드라마 한 편을 넘어서서 주인공 한 사람에게 저렇게까지 올인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TV를 보다 보다 이렇게 '나머지 출연자들'이 불쌍해 보이는 방송은 처음이었습니다.


작년 10월말에 방송 한달째인 '강심장'에 대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강심장'이 초반에 보여준 '20여명 게스트'의 본질은 이미 드러났습니다. 말하자면 '뒷줄'의 고정(혹은 반 고정) 게스트들은 '앞줄'에 앉은 진짜 게스트들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가질 뿐, 토크쇼의 게스트로서 결코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케이크의 포장 상자일 뿐이죠. 그 고정(반 고정) 게스트 가운데서도 '붐 아카데미'라는 식으로 자력 구제에 나선 팀도 있지만 어쨌든 그 역할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4일 방송된 '강심장'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편은 이런 '뒷줄의 병풍화'의 극단적인 형태였습니다. MC인 이승기를 비롯해 신민아, 노민우, 박수진 등 이 드라마 출연진들을 중심으로 한 토크쇼라고 포장되긴 했지만 사실상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신민아 하나 정도였죠.



강호동의 최대 장기인 '우격다짐식 관계 만들기'가 빛을 발했다고나 할까요. 처음에는 이승기-신민아의 관계 엮기, 그리고 중간에는 신민아를 10년간 팬으로 사랑했다는 임슬옹의 고백, 그리고 나서 마지막엔 다시 이승기와 신민아를 엮어 띄워주기가 이날의 주제였습니다. 다시 말해 두 MC와 나머지 게스트들이 이승기와 신민아를, 더 좁혀 보면 신민아 한 사람을 띄워 주기 위해 쇼 한편을 들어다 바친 형국이 됐습니다.



과연 신민아가 그런 여신 대접을 받을만한 스타인지, 혹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영화제 수상작이나 히트작을 만들어낸 배우인지 하는 것은 2차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신민아가 출연한 '강심장'은 20%를 넘는 시청률 대박을 터뜨렸습니다(물론 이건 같은 시간대에 방송된 KBS 2TV '승승장구'가 사실상 경쟁을 포기한 게스트를 출연시켰다는 데에서도 이유를 찾아 볼 수 있을 듯 합니다만). 이 시청률로 볼 때 SBS로서는 '시청자가 원하는 방송이었는데 뭐가 문제냐'고 항변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날 방송은 예능으로서의 오락성 이전에 뭔가 인간에 대한 예의를 벗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과연 맨 앞줄 한 가운데의 신민아를 제외한 나머지 출연진 - 심지어 이승기 신민아와 함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 나오는 연기자들을 포함해서 - 은 이날 방송에 어떤 이유로 출연한 것일까요. 강호동이 신민아에게 던지는 칭찬에 탄성을 터뜨리기 위해 나온 것이었을까요?

'특별 게스트'를 위해 '예능 스타'들을 경시하는 풍조는 다양한 부작용과 잡음을 낳고 있습니다. '강심장' 출연 거부 때문에 '인기가요' 출연이 무산됐다는 이하늘의 주장은 좀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최근에는 김C가 '김정은의 초콜렛'에 나온 김연아를 보고 한마디 불평을 했더군요. 이런 내용입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김연아가 1년 내내 음악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번 나오는 김연아에게 노래 3곡 정도 부르게 해 준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김정은의 초콜릿'이 고품격 라이브 프로그램을 지향한다면, 진짜 가수들을 뒤로 제끼고 아마추어인 김연아를 너무 내세운 것도 그리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오랜만의 예능 나들이'를 한 신민아에게 열띤 지지를 보낸 시청자들, 그리고 그 게스트를 위해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올인한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을 보면, 한국 연예계의 오랜 수수께끼가 풀릴 것 같은 느낌도 갖게 됩니다. '어떻게 별다른 히트작도 없이 CF만으로 톱스타의 자리에 군림할 수 있는 배우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인가' 같은 수수께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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