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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방송된 KBS 2TV '1박2일'의 주제는 아마도 지리산의 둘레를 걷는 아름다운 시골길과 함께 KBS의 화력시범이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지미집과 스테디캠 같은 고가의 장비들(물론 요즘은 사용이 일반화된 것들이긴 하지만)은 물론이고, 헬리콥터까지 동원돼 고공에서 주인공을을 카메라로 잡아내는 건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것들이죠. KBS에서도 사용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헬리콥터를 동원할 수 있었다는 건 '1박2일'이 갖고 있는 위력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비록 계단식으로 층층이 산을 깎아 만든 다랭이논(산을 계단식으로 깎아 지형의 불이익을 극복한 논)의 절경을 찍은 고공 촬영 화면이 더없이 아름답긴 했지만 - 이날 방송을 살린 것은 헬리콥터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수근과 청개구리 한 마리였죠.


(방송에 나온 청개구리 장면을 구하지 못해 청개구리의 적절한 이미지를 빌려 왔습니다. 출처는 http://blog.daum.net/ssas39/17970488 입니다.)

여섯 멤버가 다섯개의 노선으로 흩어져 진행한 이날 방송에서 이수근은 시골길을 걷다가 스스로 이날의 방송 컨셉트를 '탐구생활'이라고 잡았습니다. 시골 길을 걸으며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일상의 사물들을 다시 보는 기회로 삼겠다는 거였죠.

그리고 나서 이수근의 눈에 띈 것은 작고 예쁜 청개구리 한마리였습니다. 사실 청색이라기보다는 녹색이지만, 손가락 끝에 겨우 올라갈 정도인 청개구리는 아직도 자연과 함께 살아 숨쉬는 '시골'의 풍경을 압축해서 보여준 주인공이었습니다.


(사실 청색이라기보단 녹색 또는 연두색이라고 봐야겠지만 우리 말에서 녹색과 청색이 혼동되어 온 건 대단히 오래된 일인 듯 합니다. 어려서 배운 바로는 본래 우리 말에서 녹색은 '푸르다', 청색은 '파랗다'로 표기되었다고 합니다. 즉 '푸른 산'과 '파란 하늘'이 제대로 된 표현이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 '푸른 색'과 '파란 색'이 구분 없이 쓰여 오늘날에는 둘 다 그냥 청색을 가리키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얼마나 근거 있는 설명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도시 출신들은 대부분 청개구리라고 하면 그냥 개구리 중에서 푸른 빛을 띤 것으로 생각하거나, 어머니 말을 듣지 않고 장마철에 어머니 묘를 잃어 버린 전래 동화 속의 동물로 여기는 게 보통이지만 청개구리라는 종류는 따로 있습니다. 물론 개구리의 일종이지만, 다 자라도  4cm가 되지 않는 작은 동물이죠.

'본래 시골 출신이라 이런 시골 풍경이 하나도 신기하지 않다'던 이수근은 길가의 도랑에서 밝은 연두색의 청개구리 한 마리를 골라내 카메라 앞으로 데려왔습니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가의 배수구에 맑은 물이 흐르고, 그 곁에 청개구리가 앉아 있는 동네. 비록 시골에 살아 보거나 살고 있지 않아도, 그 정경은 그대로 시청자들의 마음 속에 더없는 청량감을 전해줬습니다.

이 방송을 보고 시골에 간 도시 어린이들은 '이수근 아저씨가 보여준 청개구리'를 발견하고 좋아라 할 것이고, 용감한 어린이들은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손 위에 청개구리를 올려 놓고 본 다음, 이수근이 했듯 다시 자연 속으로 돌려보내 줄 겁니다.


(위 사진과 마찬가지로 http://blog.daum.net/ssas39/17970488 에서 빌려온 청개구리 사진입니다. 앙증맞지 않습니까? )

'1박2일'을 싫어하는 시청자들은 천편일률적이라거나 세련되지 못했다는 점을 꼬집곤 합니다. 하지만 방송은 세련된 사람만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나 가족 시간대인 주말 저녁 방송은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29일 '1박2일'에서 가장 얘깃거리가 될만한 것은 아마도 고가 장비 가운데서도 초고가 장비, 그것도 연료 문제로 한번에 2시간 밖에 기동할 수 없다는 헬리콥터를 예능 프로그램에 끌어들여 촬영한 화면이었을 겁니다. 아마도 올 연말 '1박2일'의 1년을 결산하는 프로그램이 나간다면 그때에도 반드시 이 화면은 빠지지 않고 등장할 듯 합니다.

하지만 이날 방송을 지켜본 사람들의 마음에 남은 70분의 주인공은 이수근과 청개구리 한마리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몸 개그와 온갖 책략, 속고 속이는 기술로 재미를 주다가도 한껏 자연스럽게 시골 풍경 속으로 젖어들 수 있다는 게 바로 이 프로그램의 경쟁력이고, 더 나아가 흔히 말하는 '공영 방송'의 가치를 보여주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P.S. '어린이들이 모방할 우려가 있다'는 바로 이 장면으로 경고조치를 받게 한 이수근은 이로써 면피(?)를 한 셈이라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차가 움직인다면 정말 끔찍한 사고가 나겠죠.

P.S. 2. 혹시 어제 방송에 나온 청개구리 장면의 캡처 샷을 갖고 있는 분은 fivecard@naver.com 으로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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