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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포털을 뒤덮었던 기사 가운데 '연예인 해외봉사의 실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내용인즉 해외로 봉사활동을 가는 것으로 포장됐던 연예인 가운데 상당수가 봉사라는 개념에 전혀 걸맞지 않는 행동을 해 빈축을 샀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죠. 봉사활동을 떠났다는 사람들이 주렁주렁 스태프를 달고 오고, 비즈니스석을 요구하고, 당연히 특급호텔을 원하고, 사진이나 영상에 찍힐 때를 제외하면 호텔 안에 꼭꼭 숨고, 심지어 마실 물도 부족한 지역에서 고급 생수로 샤워를 했다... 등등의 내용들입니다.

네. 분명히 기사 내용은 사실일 것이고, 그건 욕 먹을 일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볼 일이 있습니다.



기사를 아직 못 보신 분은 이 링크로 가 보시기 바랍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03/2010090301482.html?Dep1=news&Dep2=headline1&Dep3=h1_08

저런 행동을 한 사람이 욕을 먹어야 한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철없는 사람의 행동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기사를 보다 보면 조금 더 들여다 볼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문제의 기사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올 초 국내의 한 잡지사는 여배우 A씨에게 국제구호단체와 함께 중앙아시아에 있는 한 작은 마을에 4박6일 일정으로 봉사활동을 다녀오자고 제안했다. 유명 사진작가 B씨가 이 모습을 화보로 담을 예정이었다."

솔직히 말해 (1) 4박6일의 봉사 (2) 잡지사의 화보 (3) 유명 사진작가의 동행, 이 세가지 면에서 이미 답은 나와 있었던 셈입니다. 과연 4박6일 동안 봉사를 한다면 얼마나 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다음 호 잡지에 공간은 잡혀 있었고, 사진작가는 그 지면을 메우기 위해 쉴새없이 셔터를 눌렀어야 할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 여행은 애당초 처음부터 '그 여배우'의 봉사와는 별 상관이 없었던 것이죠. 말이 나온 잡지사의 화보용 기획이었을 뿐입니다. 이 여행이 결국 순수하지 못하게 된 것은 배우만의 책임도, 사진작가만의 책임도 아닌 잡지사와 구호단체, 그리고 참가한 배우까지 모든 사람의 공동 책임인 셈입니다.




사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 물론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이지만 - 이런 기사로 인해 연예인들의 봉사 활동 자체가 위축되거나 선행을 하더라도 숨어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사 말미에 보면 긍정적인 봉사의 경우가 나오곤 합니다. 직접 사비를 털어 봉사 물품을 마련해가는 사람도 있고, 행사를 준비한 주최측에 "어떻게 이렇게 일정이 짧으냐"며 서운해 하는 연예인도 있습니다. 김장훈이나 차인표, 정준호처럼 아예 선행 자체가 브랜드가 된 스타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아닌 경우에는 '모양만 봉사'인 연예인들도 적지 않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바로 그런 구호단체들이죠.

그럼 대체 이렇게 '부실한 봉사'가 될 수 있다는 걸 분명히 알면서도 구호기관들은 왜 연예인을 굳이 봉사활동에 끼워 넣으려고 할까요. 거기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한 장면이라도 연예인들이 개입될 경우, 일반인들에게 미치는 파급력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구호기관에서 일하는 한 간사님과 대화를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때는 연예인들의 형식적인 봉사'에 꽤 강한 반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 이렇게 봉사활동 하시다 보면 얄미운 사람도 있지 않으세요?
간사: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듣고) 그런 분들도 있죠.
나: 얼굴만 비치고 가거나, 와서 빈둥거리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 어떠세요?
간사: 물론 그런 분들이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저희 입장에서 보면 또 달라요. 일단 와 주시는 분들은 모두 고마운 분들이거든요.
나: 그렇게 와서 자기 홍보에만 이용하는 건 더 나쁘지 않을까요?
간사: 아니에요. 그렇게 30분만 있다 가더라도, 그런 분들이 오시는 것과 안 오시는 건 엄청나게 차이가 커요. 그런 분들이 봉사하는 모습을 보면 많은 분들이 따라 하시거든요. 그게 저희한테는 고마운 거에요. 다른 분들한테 이런 데가 있다는 걸 알린다는게.

아,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일단 봉사활동을 하려고 마음먹었으면 제대로 하는게 당연하고, 그게 옳은 겁니다. 하지만 유명인이든 일반인이든, 그 한 사람의 봉사가 도움이 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은 세상에 그런 도움의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명인의 구호 활동은 일반인 한 사람의 몇백배, 몇천배 의미를 갖습니다. 그래서 저는 줄곧, 유명인의 봉사는 '절대 숨어서 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주위에 얘기해 왔습니다. 많은 연예인들이 '여기 저기 알리고 선행을 하는 것은 선행을 하는 당초 취지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일반인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반대입니다. 유명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선행을 하고 있거라 선행을 하려는 의지가 있으면 그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들의 선행이 진정한 의미를 갖게 하는 일인 것입니다.

맨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그 구호단체가 어디건, 아마 문제의 여배우를 데려갈 때 이런 부정적인 요소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여행은 그 여배우 한 사람의 봉사가 목적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그 구호 활동에 유치하기 위한 홍보'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물론 여기서 그 구호단체가 -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과연 얼마나 투명한가 하는 것 등은 여기서는 언급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최소한 없는 것 보다는 나은 단체라고 생각하기로 하죠.)




결과적으로,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그 문제의 여배우가 욕먹을 일을 하지 않았다는 건 결코 아닙니다. 다만 이런 이상한 폭로(?)로 인해 유명인들의 해외 봉사활동이 위축된다면, 그거야말로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는 전혀 득 될 것이 없는 일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도움의 손길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논란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 해외 봉사 일정을 포기하거나, 도움을 주더라도 널리 알리지 않고 조심스럽게 숨어서 선행을 하는 사람보다는 자기 과시를 위해서라도 널리 알리면서 생색을 내고 봉사하는 유명인이 훨씬 더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셨으면 하는 의도에서 쓴 글입니다. 일면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신 것은 분명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따라하게 할 일은 분명 다릅니다.


P.S. 그리고 '여배우' '올 연초' '중앙아시아' '카레' 등으로 문제의 여배우 A씨가 누군가 찾는데 열을 올리시는 분들, 그럴 시간에 과연 나는 누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살아왔나 한번쯤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래도 그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요.

P.S. 한 분의 지적에 따라 덧붙입니다. 이 글에 사진으로 등장하는 분들은 '당연히' 포장만 요란한 얼치기 봉사 활동으로 미꾸라지 역할을 한 사람들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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