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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기가 찰 노릇입니다. 인터넷에 4억 명품녀라는 검색어가 뜬 걸 보고 이 존재를 알았습니다. 케이블TV M.net의 '텐트 인 더 시티'에 '지금 몸에 걸친 것만 4억원어치'라고 자랑하는 24세 여성이 등장한 이후에 얻은 별명입니다.

자기가 쇼핑몰을 해서 4억원을 벌었다는데도 악플을 다는 세상인데 '직업은 백수'라고 자신을 소개한 24세 여성이 부모가 준 용돈으로 온 집안을 명품으로 도배를 하고 살고 있다니 세상이 조용할 리가 없겠죠. 저주에 가까운 악플이 쏟아진 이후, 일부는 국세청 홈페이지에까지 여기에 대한 분풀이를 했고, 국회에서까지 이 문제가 거론되며 국세청장이 “방송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한 뒤 조사가 필요하면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진짜 코미디는 그 다음부터 이어졌습니다. 이 '4억 명품녀'가 진짜냐 가짜냐는 논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국세청에서는 이 '4억 명품녀'에 대해 진위 조사에 나선 모양입니다. 그런데 국세청에서는 그 조사 결과를 토대로, '방송 내용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을 제기합니다.

국세청 등 관계 당국에 따르면 김씨의 부모는 수십억원의 용돈을 줄 정도로 부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미혼이 아니라 기혼자이며 남편 역시 봉급생활자로 부유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방송에서 밝힌 대로 논현동에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나 남편 이름으로 등기된 집도 연립주택으로 호화스럽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가 방송에서 자랑한 ‘3억원짜리 고급 승용차’도 김씨 명의로 소유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김씨는 방송 이후 주변 인사에게 “방송사가 마련한 대본대로 읽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일보 기사)

하지만 이런 국세청의 주장과는 달리 방송사 M.net 측은 방송 내용이 전부 사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자 엠넷은 보도자료를 내고 “과장방송, 조작방송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현재 일본에 체류중인 김씨와 어렵게 통화를 한 결과 김씨는 ’대본대로 읽었을 뿐’이라는 발언을 한적이 없으며 결혼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반박했다.
엠넷은 “나름의 검증과 출연자 의사 및 인터뷰를 통해 방송을 결정했다. 방송 내용 역시 본인이 직접 발언한 것이며 방송에 대해서도 동의했다”며 “일말의 조작이나 대본 강요는 전혀 없었다. 대본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씨가 직접 촬영해 온 집 내부의 영상 및 촬영 직전 인터뷰, 방송 원본 테이프 등을 통해 조작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기사)

이에 대해 제작진은 "과장방송, 조작방송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현재 일본에 체류중인 김씨와 어렵게 통화를 한 결과 김씨는 '대본대로 읽었을 뿐'이라는 발언을 한적이 없으며 결혼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반박했다.
또한 "나름의 검증과 출연자 의사 및 인터뷰를 통해 방송을 결정했다. 방송 내용 역시 본인이 직접 발언한 것이며 방송에 대해서도 동의했다. 일말의 조작이나 대본 강요는 전혀 없었다. 대본 자체가 없었다. 김씨가 직접 촬영해 온 집 내부의 영상 및 촬영 직전 인터뷰, 방송 원본 테이프 등을 통해 조작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OSEN 기사)



여기에 대해 KBS 뉴스도 이 김씨를 잘 안다는 지인까지 방송에 소개하며 김씨가 평소에도 명품을 주로 걸치고 다녔다는 증언을 방송, '텐트 인 더 시티'의 방송 내용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을 방송했습니다.

여기까지 보고 나면 참 씁쓸해집니다. 일단 분명한 것은, '국세청이나 관계 당국이 파악한 내용'과 'M..net의 방송 내용'은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둘 중 하나는 사실이 아니란 얘기가 됩니다.

만약 M.net의 방송 내용이 사실이라면, 국세청은 대체 어디서 누구에게 '사실 확인'을 했는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완전히 농락을 당한 셈입니다. 그렇게 분명치도 않은 사실을 언론에 흘린 데 대해서는 엄정한 책임 추궁이 따라야 하겠죠.

반면 국세청이 파악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M.net은 그때부터 대체 어떻게 해서 그렇게 근거 없는 내용이 전파를 탈 수 있었는지, 역시 책임 소재를 밝혀 엄격한 제재 조치가 있어야 할 겁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하지도 않은 내용으로 국민을 우롱한 쪽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4억 명품녀 포스팅이라니까 "정신없는 미친 * 욕이나 실컷 하려고 했는데 뭔 엉뚱한 소리만 자꾸 나와?"라고 생각하고 계신 분들, 여러분이 죽이고 싶어 하는 된장녀보다 이런 게 진짜 큰 문제인 겁니다.)




그런데 그 다음, 과연 M.net의 방송 내용이 대략 사실로 밝혀지면 '텐트 인 더 시티' 제작진은 책임이 없는 걸까요? 그렇게 가볍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사건이 진행되면서 '텐트 인 더 시티' 제작진 중 어느 누구도 김씨가 진짜 '4억 명품녀'인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이어 “김씨가 직접 촬영해 온 집 내부의 영상 및 촬영 직전 인터뷰, 방송 원본 테이프 등을 통해 조작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제작진은 "과장방송, 조작방송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현재 일본에 체류중인 김씨와 어렵게 통화를 한 결과 김씨는 '대본대로 읽었을 뿐'이라는 발언을 한적이 없으며 결혼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반박했다.

그러니까 방송 내용에 대한 검증은 모두 김씨 자신의 입을 통해서 이뤄졌고, 방송된 영상 자료 역시 모두 김씨가 직접 가져온 것이라는 겁니다. 단적으로 말해 그 집이 김씨의 집인지, 그 명품 백들이 모두 김씨의 것인지, 김씨가 주장한 내용이 얼마나 사실에 입각한 것인지를 사전에 조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방송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해 제작진이 충분히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건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거의 10년 전 일입니다만, TV의 짝짓기 프로그램에 한 여성 출연자가 학력과 경력을 조작한 뒤 출연해 꽤 큰 문제가 된 일이 있었습니다. 제작진은 '너무나 당연히' 그 출연자의 선의를 믿었고 별다른 검증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겁니다.

이런 수많은 사고를 거친 뒤, 각 지상파 방송사들은 일반인 출연자들의 신상 정보나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엄격하게 확인하는 시스템이 정착됐고, 그 뒤로는 이런 사건이 거의 일어난 기억이 없습니다. 하지만 케이블TV에서는 여전히 이런 일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번에 밝혀진 것이죠.

이번 '4억 명품녀' 사건에서는 제작진이 '조작방송'이라는 주장에 대단히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번 일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방송 이전에 출연자의 발언 내용이 모두 사실임을 확인했다"고 말하지 못한다면, 그건 일종의 직무유기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동안 수많은 케이블TV 프로그램에 역시 수없이 많이 등장한 일반인 출연자들의 가지각색 사연이 과연 얼마나 사실 여부가 검증된 뒤에 방송된 것인지 점검해 보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할 듯 합니다.



P.S. 일단 누가 사실과 다른 이야기로 국민의 귀를 어지럽혔는지에 대해서는 확인이 있어야겠지만, 거기에 앞서 또 한번 '네티즌 수사대'라는 이름으로 아무 자격 없는 사람들이 함부로 남의 신상정보를 파헤치는 일 역시 없어져야 할 듯 합니다. 당사자들은 그게 무슨 정의를 구현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이런 식의 폭로나 수사라는 것이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사람들의 보안 불감증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일인 만큼(예를 들어 쇼핑몰 관리자나 이동통신사 관련 담당자가 고객의 구매 정보나 신상 내용을 유출하는 경우), 이런 종류의 무책임한 행동도 근절되어야 합니다.



P.S.2. 물론 대체 어떤 손님을 '고귀한 손님'이라고 불러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이 수준인 제작진이라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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