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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은 가끔씩 호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다 들리는 한국어를 굳이 자막으로 넣는 과잉친절도 친절이지만, 수시로 맞춤법이 틀리는가 하면 엉뚱한 비속어나 필요 없는 외국어로 도배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19일, KBS 2TV '남자의 자격'을 보다가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바로 실버합창단이 나왔을 때였죠. 언뜻 봐도 70대가 주류인 듯한 노인합창단이 무대에 서서 'Eres tu'를 부르는데, 정말 왠지, 아무 이유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겁니다. 그 분들 가운데 아는 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노래에 무슨 특별한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움직이는 겁니다. 자막에 나오는 대로, 정말 '대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남자의 자격' 하모니 미션 7주째. 같은 미션으로 주간 프로그램이 7주를 간다는 건 좀 비정상적이기도 하고, 이날 방송 초반까지 뻥을 슬쩍 보태자면 시청자들까지도 다 외울 지경이 된 '넬라 판타지아'가 두번이나 완창으로 나올 때에는, 이제 '남자의 자격' 제작진이 인기가 있으니 슬슬 연장방송에 들어가는 일일연속극을 본받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잠시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날 밤 연습을 마치고 대회장에 들어가면서 신기하게도 다시 방송에 집중하게 되더군요. 사실 지난번 '남자의 자격 밴드', 줄여서 '남격밴드' 미션 때만 해도 굳이 대회에서 다른 참가자들이 부르는 노래까지 다 소개할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합창 미션에서는 다른 찹창단의 노래가 소개됐습니다. 그리고 제작진이, 굳이 다른 합창단의 노래를 들려준 이유를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남자의 자격' 멤버 대다수에게 있어 이번 거제 합창제 참가는 절대 인생의 목표가 아닙니다. 아무리 '남자의 자격'의 부제가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라고 해도, 이건 크게 봐야 그 101가지 중 하나일 뿐입니다.
하지만 다른 합창단에겐 다르죠. 그들에겐 이 대회가 일상으로부터 자신을 벗어나게 해 줄 엄청난 의미가 있는 무대입니다. 몇달 동안 애써 노력하고,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정을 나누고, 의상을 맞추고,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밤을 지새고, 곱게 화장을 하고 조명을 받으며 무대에 서고, 천명이 넘는 관객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또 박수를 받는다는게 '보통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의미인 겁니다. 물론 참가한 합창단의 수준은 아마추어를 갓 면한 레벨에서 해외 공연을 수시로 다니는 사실상 프로까지 다양하지만, 아무튼 이 분들에게 '합창'은 '남자의 자격 합창단'보다 훨씬 큰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자의 자격' 합창단의 도전 도중에 '다른 사람들'의 노래를 들어 보는건 꽤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특히나 실버 합창단의 노래 장면에선 제작진의 세심함이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합창단이 서는 계단식 무대의 30cm 남짓한 턱도 한번에 넘지 못하는 멤버가 있는 합창단. 할어니들 사이에 약간 쑥스러운 듯 서 있는 유일한 할아버지 멤버, 가끔씩 박자를 놓치는 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합창단의 힘은 객석을 순식간에 장악해버립니다.
그 노래의 원곡입니다. 아마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는 노래일 겁니다. 80년대 웬만한 합창단이나 중창단이면 이 노래를 편곡해서 불러보지 않은 분들이 없을 정도로.
'에레스 투(Eres Tu)'는 본래 1973년 스페인 출신의 모세다데스(Mocedades)라는 7인조 혼성 중창단이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불러 세계적으로 히트한 노래입니다. 국내에서는 1978년 대학가요제에 참가한 상투스라는 팀이 '그대 있는 곳까지'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불러 히트한 적이 있었죠. 이날 실버 합창단이 부른 가사도 '영원히 사랑한다던 그 맹세'로 시작하는 당시 상투스 버전을 그대로 쓴 듯 합니다.
수잔 보일이 스타가 되는 데 'I Dreamed a dream'이라는 노래 자체가 갖고 있는 폭발력이 큰 힘을 발휘하기도 했듯 실버 합창단의 노래가 감동을 자아내는 데에는 이 'Eres Tu'라는 노래의 소박하면서도 깊이 있는 멜로디가 큰 힘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힘은 진정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웬만한 달고 쓴 맛을 모두 보셨을 나이, 자손을 다 키우고 만년을 보내고 있을 분들이 한 음절 한 음절, 음표 하나 하나 마다 제대로 힘을 주어 열심히 노래하는 모습, 아마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 볼 수는 없었지만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열심히 노래하는 모습은 절로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노래 한 곡이 사람의 삶을 바꿔 놓을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무대에서 그렇게 열심히 노래하고 내려오면 누구라도 이제 무슨 목표를 향해야 하나 하는 허탈감이 앞설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순간이라도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세상의 다른 일들을 잊게 하는 힘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것이 바로 음악의 힘이고 음악의 사명이 아닐까요. '실버 합창단'을 자르지 않은 긴 편집은 아마도 그런 사실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P.S. 이번 주면 끝날 줄 알았던 하모니 미션이 다음주까지 이어지겠군요. 그런데 과연 이런 하모니 미션의 여파에서 정작 '남자의 자격' 팀은 어떻게 벗어날지가 정말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그동안 겉저리^ 내지는 조연, 아니면 '합창의 걸림돌'로 전락한 기존 멤버들은 어떻게 다시 자기 자리를 회복할까요?
19일, KBS 2TV '남자의 자격'을 보다가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바로 실버합창단이 나왔을 때였죠. 언뜻 봐도 70대가 주류인 듯한 노인합창단이 무대에 서서 'Eres tu'를 부르는데, 정말 왠지, 아무 이유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겁니다. 그 분들 가운데 아는 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노래에 무슨 특별한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움직이는 겁니다. 자막에 나오는 대로, 정말 '대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남자의 자격' 하모니 미션 7주째. 같은 미션으로 주간 프로그램이 7주를 간다는 건 좀 비정상적이기도 하고, 이날 방송 초반까지 뻥을 슬쩍 보태자면 시청자들까지도 다 외울 지경이 된 '넬라 판타지아'가 두번이나 완창으로 나올 때에는, 이제 '남자의 자격' 제작진이 인기가 있으니 슬슬 연장방송에 들어가는 일일연속극을 본받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잠시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날 밤 연습을 마치고 대회장에 들어가면서 신기하게도 다시 방송에 집중하게 되더군요. 사실 지난번 '남자의 자격 밴드', 줄여서 '남격밴드' 미션 때만 해도 굳이 대회에서 다른 참가자들이 부르는 노래까지 다 소개할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합창 미션에서는 다른 찹창단의 노래가 소개됐습니다. 그리고 제작진이, 굳이 다른 합창단의 노래를 들려준 이유를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남자의 자격' 멤버 대다수에게 있어 이번 거제 합창제 참가는 절대 인생의 목표가 아닙니다. 아무리 '남자의 자격'의 부제가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라고 해도, 이건 크게 봐야 그 101가지 중 하나일 뿐입니다.
하지만 다른 합창단에겐 다르죠. 그들에겐 이 대회가 일상으로부터 자신을 벗어나게 해 줄 엄청난 의미가 있는 무대입니다. 몇달 동안 애써 노력하고,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정을 나누고, 의상을 맞추고,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밤을 지새고, 곱게 화장을 하고 조명을 받으며 무대에 서고, 천명이 넘는 관객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또 박수를 받는다는게 '보통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의미인 겁니다. 물론 참가한 합창단의 수준은 아마추어를 갓 면한 레벨에서 해외 공연을 수시로 다니는 사실상 프로까지 다양하지만, 아무튼 이 분들에게 '합창'은 '남자의 자격 합창단'보다 훨씬 큰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자의 자격' 합창단의 도전 도중에 '다른 사람들'의 노래를 들어 보는건 꽤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특히나 실버 합창단의 노래 장면에선 제작진의 세심함이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합창단이 서는 계단식 무대의 30cm 남짓한 턱도 한번에 넘지 못하는 멤버가 있는 합창단. 할어니들 사이에 약간 쑥스러운 듯 서 있는 유일한 할아버지 멤버, 가끔씩 박자를 놓치는 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합창단의 힘은 객석을 순식간에 장악해버립니다.
그 노래의 원곡입니다. 아마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는 노래일 겁니다. 80년대 웬만한 합창단이나 중창단이면 이 노래를 편곡해서 불러보지 않은 분들이 없을 정도로.
'에레스 투(Eres Tu)'는 본래 1973년 스페인 출신의 모세다데스(Mocedades)라는 7인조 혼성 중창단이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불러 세계적으로 히트한 노래입니다. 국내에서는 1978년 대학가요제에 참가한 상투스라는 팀이 '그대 있는 곳까지'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불러 히트한 적이 있었죠. 이날 실버 합창단이 부른 가사도 '영원히 사랑한다던 그 맹세'로 시작하는 당시 상투스 버전을 그대로 쓴 듯 합니다.
영원히 사랑한다던 그 맹세/ 잠깨어 보니 사라졌네
지난 밤 나를 부르던/ 그대 목소리 /아 모두 꿈이었나봐
그대가 멀리 떠나버린 후/ 이 마음 슬픔에 젖었네
언제나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 바람아 너는 알겠지
바람아 이 마음을 전해다오/ 불어라 내 님이 계신 곳까지
그댈 잊지 못하는 이 마음 전해다오
바람아 불어라 / 내님이 계신 곳까지
수잔 보일이 스타가 되는 데 'I Dreamed a dream'이라는 노래 자체가 갖고 있는 폭발력이 큰 힘을 발휘하기도 했듯 실버 합창단의 노래가 감동을 자아내는 데에는 이 'Eres Tu'라는 노래의 소박하면서도 깊이 있는 멜로디가 큰 힘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힘은 진정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웬만한 달고 쓴 맛을 모두 보셨을 나이, 자손을 다 키우고 만년을 보내고 있을 분들이 한 음절 한 음절, 음표 하나 하나 마다 제대로 힘을 주어 열심히 노래하는 모습, 아마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 볼 수는 없었지만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열심히 노래하는 모습은 절로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노래 한 곡이 사람의 삶을 바꿔 놓을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무대에서 그렇게 열심히 노래하고 내려오면 누구라도 이제 무슨 목표를 향해야 하나 하는 허탈감이 앞설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순간이라도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세상의 다른 일들을 잊게 하는 힘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것이 바로 음악의 힘이고 음악의 사명이 아닐까요. '실버 합창단'을 자르지 않은 긴 편집은 아마도 그런 사실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P.S. 이번 주면 끝날 줄 알았던 하모니 미션이 다음주까지 이어지겠군요. 그런데 과연 이런 하모니 미션의 여파에서 정작 '남자의 자격' 팀은 어떻게 벗어날지가 정말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그동안 겉저리^ 내지는 조연, 아니면 '합창의 걸림돌'로 전락한 기존 멤버들은 어떻게 다시 자기 자리를 회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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