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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의 대작 '아테나'가 3회만에 10%대, 혹은 20%대 초반으로 내려앉았다는 보도가 요란합니다. 10%대 후반이든, 20% 초반이든, 가장 중요한 건 MBC TV '역전의 여왕'과 3~4% 정도 차이로 근접했다는 것이죠. '동이' 종영 뒤 '자이언트'가 패권을 가져갔고, '자이언트'가 끝나자 그동안 눌려 있던 '역전의 여왕'이 기를 펴는 형국입니다.

사실 '아테나'는 지금부터 어린이 드라마로 돌아서도 별 손해가 없을 전망입니다(물론 과장). 제작사는 제작사대로 사상 초유의 조건으로 지상파와 케이블TV에 방영권을 팔았고, 방송사는 방송사대로 '아테나' 끝날 때까지 법적으로 허용된 광고를 완판(매진) 시켰습니다. 물론 아직 해외 판매가 완료되지 않은 지역이 있기 때문에 끝까지 성의를 다해야겠지만, 그것도 실질적으로는 마무리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만에 하나라도 '역전의 여왕'에 이름대로 역전이라도 된다든가 하는 건 자존심의 문제겠죠(여신이 여왕에게 역전..?). 게다가 '아이리스'-'아테나'가 연속 히트하지 못한다면 내년에 예정된 '아이리스 2'의 캐스팅이나 협찬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럼 외양으로 봐선 완벽한 이 드라마가 시청률이 떨어진 이유는 뭘까요.


물론 더 떨어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얘기한다면 10%대 후반은 매우 훌륭한 성적입니다. 4개 지상파 채널에다 수십개의 케이블 채널이 경쟁하는 환경에서, 솔직히 20%대 시청률만 해도 놀라운 기록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제빵왕 김탁구' 처럼 40% 넘는 시청률의 드라마가 나오는게 훨씬 더 불가사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시청률 저하의 이유는 사실 너무나 명료하게 눈에 보입니다. '동이' - '자이언트' - '역전의 여왕'으로 이동한 시청률의 정체는 뭐였을까요. 바로 '아줌마'라고 요약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아테나'는 몇가지 부분에서 전통적으로 '아줌마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던 요소들이 부족합니다. 첫째는 '간단한 플롯'입니다. '아테나'의 앞부분은 '도망자'의 1,2회처럼 극악의 혼란스러운 플롯까지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일반 시청자들이 '화장실도 왔다 갔다 하고, 전화도 받아 가면서' 볼 만큼 편안한 드라마는 아니었습니다. 이 드라마의 열혈 시청자 평 가운데는 이런 것도 있더군요. "정말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재미있었다. 그런데 잠시라도 눈을 떼면 이해가 안 간다." 물론 대단한 복선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튼 한국의 '주류' 시청자들은 특히 드라마 초반의 사건이 '이곳 저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걸 상당히 경계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욱 중요한 두번째. 바로 '멜로 라인의 실종'입니다. 이 부분은 '아이리스'와 비교해도 너무나 극명하게 드러나죠. 드라마 첫회에는 40여분이 지나 주인공 정우성이 처음 출연하고, 3회에는 수애가 채 10분도 출연하지 않습니다. 국제적인 음모와 폭력 속에 강제로 헤어진 연인, 서로 그리워하다 정신병이 걸릴 것 같은 안타까운 그리움, 그 과정에서 매달리는 다른 미녀에게도 차가운 정절남, 뭐 이런 '드라마틱' 한 요소들이 없다는 데에 많은 시청자들이 실망하고 있는 듯 합니다.

(정우성-수애의 키스신이 꿈이었다는 데에도 많은 시청자들이 분개하고 있지만 사실 이건 언젠가 드라마가 끝나기 전에 재현된다고 봐야겠죠. ㅋ 일종의 복선?)


혹자는 이걸 싸잡아 '스토리가 없고 액션만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분명 '아테나'는 스토리가 없는 드라마가 아닙니다. '멜로' 스토리가 없는 드라마였죠. 정우성과 이지아의 과거, 차승원을 짝사랑하는 듯한 수애의 일방적인 모습 같은 것이 암시되고 있지만 분명 '주류 시청자'가 원하는 '가슴저미는 사랑'과는 자못 큰 거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요소 때문에 '아테나'는 더욱 가치 있는 드라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리스'를 만들고 '아테나'를 만든 제작진을 돌아보면, 위에서 지적된 두 가지 약점을 모를 리가 없는 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팀은 '아테나'를 만들었고 시청자들에게 공개했습니다. 이유는 자명합니다. '늘 똑같은 드라마만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테나'는 '아이리스'보다 훨씬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드라마입니다. 굳은 얼굴로 비정한 첩보 세계를 누비는 사나이와 미녀들의 이야기보다는, 뭔가 007을 꿈꾸는, 잘생겼지만 그만큼 빈틈도 많아 보이는 주인공이 다소 경쾌한 스텝으로 위기를 넘어 영웅이 되는 이야기죠. 아마도 '아이리스' 첫회를 본 시청자 중 절반 이상이 "이병헌은 드라마가 끝날 때 살아 있지 못하겠구나"라고 짐작했다면, '아테나'를 보고 정우성이 죽을 거라고 예상하는 시청자는 거의 없을 겁니다(만약 이런 식으로 진행되다가 정우성이 죽어버리면 정말 어이없는 결말이겠죠^^). 같은 첩보물이라고는 하지만, 전혀 색깔이 다른 드라마입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성공한 '블록버스터형' 드라마들의 색채를 되새겨 보시면 훨씬 더 이해가 쉬울 겁니다. 뭔가 그늘이 있는 남자 주인공이, 그늘이 있는 여자 주인공을 사랑하다가, 서로 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주고 받고, 오해와 주변 환경 때문에 덕지덕지 만신창이가 되어 마지막에 피를 토하고 죽기 직전에서야 사랑을 확인하는 뭐 그런, 공식처럼 되어 버린 드라마들 말입니다. 사실 돈을 많이 들인 드라마들일수록 실패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크기 때문에, 그런 필승 공식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이런 드라마들 속에서 '아테나'는 매우 신선한 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김민종과 이한위 같은 캐릭터의 활성화 역시 이런 색깔을 맞추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김민종은 오랜만에 그럴듯한 역할을 맡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단 3편만 보고 드라마의 앞날을 모두 내다보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개인적으로 현재까지 방송된 '아테나'는 실망보다는 기대를 주는 드라마입니다. 비슷한 시도였던 '도망자'는 한번에 너무 먼 걸음을 뛰려 한 탓에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지만, '아테나'는 거기에 비해 훨씬 덜 야심적인 드라마입니다. 평소 안방극장에서 '반드시 통하는' 흥행 공식에서 한 발 정도 비껴갔다고나 할까요.

결론은 지금까지 얘기한 바와 같습니다. '이런 드라마'가 한국 안방에서 통할 때, 그리고 이런 다양성을 충족하는 드라마가 한국에서 공급될 때 진정한 '글로벌 콘텐츠'를 한국에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당장 안방에서 30%, 40%가 나오는 드라마보다 훨씬 말입니다. 그래서 더욱 '아테나'의 선전을 기대하게 됩니다.

만,



P.S. 대통령의 딸이, 그것도 이보영 같은 미모의 소유자라면 대한민국 국민은 초등학생까지 다 알 것이고 심지어 아시아권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게다가 경호원 하나 없이 해외에서 혼자 공부를 하고 있다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죠.

그럼 대체 왜 그런 상황인지를 대사 한두마디로라도 설명을 해야 할텐데(예를 들면 대통령의 감춰진 딸이라든가) 그런 설명 하나 없이 넘어간 건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너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제작진이 제정신이라면 뭔가 이유를 만들었을텐데 그 이유가 3회에 공개되지 않은 건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여러분의 추천 한방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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