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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만 보고도 이렇게 흥미가 가는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물론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팬들과는 달리 저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고, '불량공주 모모코'는 단 한번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불끈 일어나게 한 것은 이 영화의 초기 설정입니다. 한 중학교의 종업식날(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종업식-짧은 봄방학-새 학년 시작의 순서입니다), 여느 날처럼 아이들은 급식으로 나온 팩 우유를 마시고, 여교사가 학생들에게 평온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선생님이 이야기를 하거나 말거나 자기 페이스에 열중해 있는 아이들. 하지만 교사의 말이 "여러분 가운데 내 아이를 죽인 사람이 있다"는 데 이르자 일시에 교실 안은 쥐죽은 듯 조용해집니다.


미혼모인 교사는 처음 자기의 아이 아버지가 존경받아온 교사이며, HIV 보균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결혼할 수 없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교사는 혼자 딸을 키워왔고, 아이 봐 주는 사람의 사정 때문에 일주일에 하루씩은 아이를 학교에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는 교정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경찰의 수사 결과는 사고사. 하지만 몇몇 단서는 사고가 아니라는 단서를 던지고, 결국 교사는 두 명의 자기 반 학생이 이 사건에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네. 의심이 아니라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하지만 상대는 처벌할 수 없는 미성년자. 그래서 교사는 더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그 두 학생의 우유에 뭔가를 주사기로 넣었다"고 하는 거죠.


사실 저는 이 내용이 영화 전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전혀 아니었더군요. 이 내용은 말하자면 2시간짜리 영화에서 앞부분 35분 정도, 즉 도입부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진짜 '이야기'는 이런 설명이 끝난 뒤, 즉 여교사는 학교를 떠나고 남아 있는 반 아이들과 가해자인 두 아이가 어떻게 학교 생활을 이끌어가는가를 중심으로 이어집니다.

일본 여배우 중에 가장 관심이 가는 배우를 꼽으라면 소(아, 이게 아니구나) 아무래도 마츠 다카코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뭔가 살짝 심심한 듯 다소곳하면서도 엉뚱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강점을 보여 온 배우죠. 그런 배우가 '아이를 잃고, 아이를 죽인 자기 반 학생들에게 보복하는 미혼모 여교사' 역할을 한다는 건 상당히 흥미로운 변신입니다.


이 대목에서 나카시마 감독의 솜씨를 일단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소에도 그렇듯 집중 같은 것은 전혀 할 수 없는 아이들, 미소까지 머금은 여교사의 표정, 온갖 장르를 오가는 화려한 음악과 유려한 영상 속에서 뼈속까지 시린 대사들이 부조화 속의 조화를 연출해 냅니다.

아마 전혀 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이 이 영화를 본다면 아름다운 학원드라마 같은 앞부분이 점점 소름끼치는 가면의 공간처럼 변해가는 데 전율을 느낄 듯 합니다. 훌륭합니다. 특히 아래 사진 같은 장면은 배신과 음모의 반전을 다루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영화에서 현실의 고발이나 진지한 문제제기를 보는 듯 합니다만, 저는 제목에도 썼듯 온 사회에 만연한 '중2병' 환자들에 대한 어른들의 반격이야말로 이 영화의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중2병에 대한 수많은 접근이 이뤄졌지만, 대부분 어른의 시각에서 아이들을 선도한다는 시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느낌입니다. 아무리 아이들이 제정신이 아닌 짓을 해도, 어른이 좀 참고 양보해서 선도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식의 시선이 조금은 깔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이 영화는 다릅니다. '너희들이 중2병 수준으로 도발해 오면, 우리 어른들도 중2병의 시선에 맞춰 너를 박살내 주겠다'는, 말하자면 '더 이상 애라고 봐주지 않겠다'는 엄포가 느껴집니다. 이 자체가 유머일 수도 있겠지만, 이 내용을 풀어가는 방식은 사뭇 진지합니다.



자기보다 젊은 세대를 대할 때 어른의 제대로 된 태도라는 것은, '10대는 20대나 30대를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알 리가 없다. 10대를 살아 본 사람이 10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나카시마는 이미 그런 접근으로 세대간 화해를 하기엔 너무 늦었다며 조종을 울립니다. 거기에 희망 같은 것은 없습니다.

'더 이상 대들면 밟아서라도 교정해 주겠다'는 나카시마의 시선이 10대나 20대 관객들에겐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참 궁금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관객들이 더 봐야 할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 물론 이 영화의 재미는 '어른들'이 더 느낄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편에 서 있는 영화기 때문이죠.





(여기까지. 나머지는 스포일러)

'고백'의 구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갈수록 태산'인 반전의 반전입니다. 나름 좋은 교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던 여교사가 아무리 살인범이지만 자기 제자들이 먹는 우유에 에이즈 환자의 피를 넣을 수 있었을까. 이런 순진한 믿음은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영화상으로는 피를 넣으려 했지만 남자의 만류로 넣지 못했다고 되어 있는데 어쨌든 방해가 없었다면 넣고도 남았을 겁니다.

마지막 대사, 여교사가 슈야의 의도를 뒤집어 전화 버튼을 누르는 순간 교정이 폭파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를 날려 버렸다는 것을 알려주는 순간 슈야는 발작을 일으키고, 여교사는 이런 요지의 말을 합니다.

"이렇게 절망에 빠지는 것이 너에겐 기회일거야. 그렇게 절망하는 순간에 갱생의 계기가 찾아오는 법이니까..... 물론 농담이지롱."

원작과 영화의 차이는 마지막 대사라고 합니다. 즉 마지막 대사를 넣은 것이 나카시마 테츠야의 의도라는 얘기죠. 이 '농담이지롱'은 한국식으로 하자면 '~~ 막 이래' 라는 식으로 지금 한 말은 나의 진심이 전혀 아니라는 뜻입니다.

대체 저 말의 의도가 뭐냐고 고민하시는 분도 있는 듯 한데, 제가 보기엔 그 말을 하기 직전, 마치 자기가 이렇게 슈야를 절망에 빠뜨린 것이 그가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 절망이란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교육적인 의도에 의한 것인 양 포장한 것이 농담이라는 뜻입니다. 즉 이 '농담이지롱'은 '내가 너같은 쓰레기의 갱생 따위를 신경쓸 것 같아?'라는 비웃음이라고 봐야 할 듯 합니다.

영화 속 아이들은 말합니다. '어른이니까 참아야죠' '이해해 줘요' '그런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교사가 자기 학생을 외면할 수가 있지? 그건 교사의 의무 아닌가?' '우리에게도 권리가 있어요' 어른이 기대하는 아이다운 순진함은 어디론가 사라진지 오래. 이 영화에 나오는 아이들은 이미 '어른이라는 이유로 참아야 하는' 어른들의 약점을 다 파악하고 그걸 한껏 사용하자는 영악한 악마들이거나, 욕구와 본능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하등동물뿐입니다.

어느 쪽이든 더 이상 관용은 없다, 는 시선은 참 신선하긴 합니다. 그런데 정말 영화처럼 할 수 있는 어른이 있을까요? 과연 '모든 어른들이' 그렇게 하면 정말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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