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들른 곳은 나름 공룡 뼈 마니아(공룡 마니아 아니다)인 마나님의 요청에 따른 베를린 자연사 박물관.
멋지긴 한데 이 브라키오사우르스의 뼈는 어째 좀 진실성이 결여되어 보인다.
저 표본의 몇%가 진짜 뼈일지... 음...
아무튼 세계 어디를 가나 어린이들은 역시 공룡의 편.
그런데 자연사 박물관에서 다음 목표인 함부르크 역 미술관까지 가는데 동선이 좀 꼬였다.
가이드북 상으로는 두 포인트가 지척이라고 했으나,
도보로 약 30분 거리...
어쨌든 나타나기는 나타났다. 함부르크 역 Hamburg Bahnhof 미술관.
이름은 함부르크역이지만 현재의 베를린 메인 역이 나오기 전까지는 베를린의 메인 역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미술관이다.
오르세와 같은 팔자. 건물로서는 참 괜찮은 팔자라고 할 수 있겠다.
건물 밖은 한산한데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은,
그렇다. 누가 봐도 로버트 인디애나. 약간 뒤집었을 뿐이다.
안셀름 키퍼(Anselm Kiefer)의 'Folk Thing Zero'라는 작품이 문 앞을 지키고 있다.
인디애나만큼 유명한 작가는 아닌 듯 하지만 아무튼 인상적이다.
문을 들어서면 이런 비현실적인 사이즈가 기다리고 있다. 역시 기차역이었던 건물다운 포스.
그런데 여기서 정지 신호등이 켜졌다.
.
동행인의 에너지 소모가 심해 충전이 필요한 상황.
사라 뷔너(Sarah Wiener)라는, 아마도 사장님의 성함이 내걸린 미술관 내 레스토랑.
바나나가 들어간 얇은 팬케이크. 비싸지만 맛있다.
여기서 식사하면 60~70유로 정도 예상. 미술관 옆 레스토랑이 대부분 그렇듯 미니멀하고 천장 높은 분위기도 일품이다.
자, 본격적으로 관람 시작.
일단 1층 동쪽에 현대 미술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거장들의 작품을 한데 모아 놓았다.
'우리 이런 미술관야'라는 느낌의 화력시범이다.
로이 리히텐스타인의 '해변 마을 Coastal Village'를 시작으로,
전시 스타일도 시원시원.
로버트 로셴버그의 '마인 Mine'.
...광산 관련은 아니겠지.
로셴버그의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이 '뮬 사슴 Mule Deer'.
뮬 사슴은 그냥 사슴의 종류다. 거꾸로 매달린 의자가 사슴 머리 박제를 연상시키고, 그 아래는 거울이다.
보는 사람 자신을 볼 수 있게 한 설계.
그리고 싸이 톰블리를 넘어 저 멀리 보이는 저 작품은...
조셉 보이스의 'Das Kapital Raum'.
(다스 카피탈은 그 자본론 맞다.)
역시 조셉 보이스답게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 없다.
궁금하신 분들은 해설을 보시기 바람.
아무튼 누가 봐도 앤디 워홀의 누가 봐도 마오 형님을 다시 보고 돌아나오면,
사이즈가 사람을 압도하는 메인 전시장.
그런데 이게 하나의 작품이라는거다.
이런 광활한 공간에 세 개의 데스크가 설치되어 있다.
관람각은 이 세 데스크를 거치며 데스크 직원의 응대를 받는다.
(데스크 직원의 머리 뒤에는 약간 공허할 수도 있는 목표 구호 따위가 쓰여 있다.)
데스크에서 설명을 들은 뒤에는 관람객도 무슨 서류에 서명을 하게 되어 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 잘 모르겠다.)
이 작품의 제목이다. 에이드라언 파이퍼, '개연성있는 신용 등록: 게임의 법칙 #1~3'
Adrian Piper, The Probable Trust Registry: The Rules of the Game #1~3
...음;; 2015 베니스 비엔날레 대상 수상작이라고.
뭔가 현대 사회의 지나친 합리성/공식성 추구에 대한 비판이라고 합니다만.
그 다음은 대규모 작가진이 참여하는 기획 전시.
댄 플래빈의 '무제'.
궁금한 것은 왼쪽의 조명이 작품에 포함된 요소일까, 이 건물에 포함된 요소일까 하는 것.
이 조명 얘기다.
흥미로운 요소. 이 전시를 보는 동안, 근세 노동자 복장을 한 인물이 전시장 안을 왔다갔다 한다.
처음에는 전시장 관리인인가 했는데 행동거지를 보면 전시의 일부다.
조셉 보이스의 Unschlitt/Tallow.
그밖의 상설 전시에는 George & Gilbert를 비롯해 상당히 흥미로운 전시품이 많있다.
물론 가장 큰 볼거리는 미술관 그 자체.
온 카와라 On Kawara의 I got up.
그리고 이 미술관이 미는 아티스트인 듯한 한네 다르보벤 Hanne Darboven의 Menschen Und Landschaften.
직역하면 '인간들과 풍경' 이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룬 대작(?).
허위허위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긴 베를린의 햇살도 저물어 가고 있다.
살짝 어두워지니 건물의 조명이 더 빛을 발한다.
나오다 보니 예사롭지 않은 나무 장식이 눈길을 끈다.
고된 하루를 보낸 뒤끝으로 호텔로 돌아와 기절.
그리고 비상용으로 아껴 뒀던 호텔 바로 옆 그리스 식당에서 수블라키를 먹었다.
수블라키는 언제나 옳다. 감탄할 만한 맛.
베를린에서 5박인데 5박이 하루 같다.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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