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박물관 섬의 다섯 박물관은 정말 뭉쳐 지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관람객들은 멀리 왔다갔다 하지 않아서 좋지만 외곽에 위치한 구 박물관, 신 국립미술관, 그리고 보데 박물관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건물 전경을 찍기가 쉽지 않다.
아무튼 그래서 페르가몬 박물관에 이어, 신 박물관 Neues Museum 도 전경은 없다.
일단 박물관/미술관은 제일 높은 층부터 간다는 원칙에 따라 3층(그러니까 4층)으로 직행.
가 보니 인류 발달사를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는 대형 모니터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석기시대부터 인류가 발달해 온 과정을 간략하게 보여주는데, 마음 바쁜 관광객도 자리를 지키고 보게 할 만큼 그래픽과 내용이 흥미로웠다.
3층 한 구석에는 이 박물관의, 어쩌면 베를린 전체를 대표하는 간판 유물인 '황금 모자 Berliner Goldhut'가 있다.
그렇다. 저 가운데 번쩍번쩍 빛나는 뾰죽한 물건이 바로 모자다.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생겼다.
유물의 비중이 비중인 만큼 설명 페이지를 붙여 둔다. 청동기시대의 왕 또는 제사장 같은 신분의 사람이 썼던 것으로 추정될 뿐, 이 황금모자와 관련된 다른 사료나 증거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그냥 생각만 해 봐도 그 옛날에 저 정도의 황금 모자를 만들었을 정도라면 상당히 강력한 지도자였음은 분명할 것 같다.
그런데 그 옛날에도 금 좋은 건 다들 알았었다니.
황금 모자를 넋놓고 바라보다 박물관의 다른 한 편으로 넘어간다. 박물관 중간의 계단실이 이 정도의 규모다.
창밖으론 잠시 후 갈 신 국립미술관이 보인다.
기원전 5천년 전 정도의 그릇받침.
신 박물관의 3층은 어찌 보면 '문명 이전의 베를린 지역'에 대한 향토 박물관 같은 느낌을 준다.
그 당시 석기/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사냥했을 엘크의 뼈가 전시돼 있기도 하다.
엘크, 진짜 크다.
약 1만3천년 전의 것 정도로 추정되는 말 모양의 토기 하며,
베를린 인근 지역을 거쳐간 수많은 문명의 흔적들이 전시돼 있다.
하기야 대륙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와는 달리, 대륙 복판의 베를린 지역은 수많은 민족들이 밀고 들어왔다 밀고 나기기를 반복했을테니 흘리고 간 유물도 다양할 수밖에.
라고 생각하면서 2층으로 내려오면 동네 잔치는 이제 그만.
이집트 어딘가에서 온 유물들이 줄줄이 줄줄이 쏟아진다. 시종 목상이다.
그런데 시종 Chamberlain, 혹은 Hepetni 라고 이름 붙은 좌상들은 전부 저렇게 오른손은 뭔가를 쥐고, 왼손은 편 상태다.
뭘까?
아이들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축소해서 표현하는 스타일도 흥미롭다.
이런 식으로 이집트 유물들이 죽 전시되어 있는데,
다른 유럽 지역 미술관/박물관에 비해 사진 촬영에 대단히 관대한 베를린 사람들이 유독 찍지 못하게 하는 유물이 있다.
이집트 출신으로 클레오파트라 다음으로 유명한 여자.
물론 나도 엄중한 관리를 뚫고 찍을 생각까지는 없었다. ABC뉴스에 활용된 보도 사진.
아마도 고대의 여인상 가운데 가장 유명한 조각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진으로만 봤을 때에는 목상인가, 아니면 토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은 석회암(limestone) 조각이다. 그 밖에 장식용의 접착재료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봐도 미인이지만 당시에도 미인으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BC 14세기 이집트의 미적 감각이 현대인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건 이상하게 안도감을 준다.
남편 아케나톤 Ahkenaton 은 전통적인 다신교 신앙을 가졌던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신 아톤 Aton 을 유일신으로 하는 종교개혁을 시도했을 정도로 강력한 왕이었다(이상하게도 옛날 교과서에서는 이크나톤이라고 배웠다. 이집트어에서 모음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아마르나 유적지에서 당시의 대 조각가인 투트모세 Thutmose의 작업장을 발굴하다가 출토된 덕분에, BC 1345년이라는 제작 연도도 추정 가능했다.
이 완벽한 조각상의 한가지 흠결은 수정으로 조각된 오른쪽 눈과 달리 왼쪽 눈이 없다는 것. 이 때문에 네페르티티가 본래 왼쪽 눈이 없는 인물인지, 아니면 단순히 조각상이 파손된 것인지도 얘기가 분분했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아케나톤과 네페르티티는 그 유명한 투탄카멘의 부모라고도 한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이설들이 있다. 다른건 다 떠나서 BC 14세기 인물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상세한 기록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는 데 이집트 문명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솟는다.)
아무튼 실물로 본 네페르티티, 역시 미인이더라.
네페르티티의 방을 지나가면 그 못잖게 유명한 젊은이가 있다.
크산텐의 젊은이. Xantener Knabe.
라인강까지 진출한 로마인들의 유물이다.
BC 1세기 경의 것으로 1858년 라인강의 어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
아마도 오른팔은 이런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 검투사들의 모습을 조각한 것들이 많은데,
(당연히 저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로마인들이 흘린 물건들)
그런데 너무 귀엽잖아.
응? 저게 에... 에로스라고?
거기 비하면 이건 누가 봐도 머큐리(헤르메스) 이긴 하네.
그리고 이렇게 그럴듯한 로마 시대 조각품이 있는가 하면
갑자기 이런 토템 조각 같은 것이 등장한다.
이 박물관... 뭔가 약간 어지러워.
그리고 다시 이집트 조각과 묘지 벽화의 습격.
그리고 이 박물관의 마지막 스타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베를린의 녹색머리 Berlin Green Head.
녹색편암을 이용한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조의 작품. BC 1세기 언저리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가 살던 시대의 작품이라는 얘기.
그런데 놀랍도록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돌의 가공 상태는 물론이고 좌우 균형에서 뒤통수의 주름까지, 완벽하다.
마지막으로 이집트 무덤 속으로 들어간다.
0층이 바로 각종 관을 전시한 곳이다. 주로 이집트에서 출토된 것들이다.
1층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뜨악 놀란다.
우르크, 혹은 와르카라 불리는 고대 도시의 거대한 꽃병....
꽃병이라기엔 좀 너무 크고, 예식용의 꽃꽂이용 청동 항아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3천년 넘은 물건이라고.
이런 물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긴 처음인데 멋지다.
이건 로마시대의 석관(Sarcophagus).
사르코파구스의 어원은 '사람을 먹어치우는 돌'이라고 한다.
이집트 석관은 내부에도 이렇게 조각이 되어 있다.
뭘 많이 보다 보니 화장실 표시도 굉장히 있어 보인다.
어느새 대낮.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이럴땐 매점행이다.
그리고 이렇게 날씨가 좋아져 있을 줄이야. 박물관 앞 잔디밭에 앉기 딱 좋은 날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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