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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의 5박이

 

첫날: 프라하에서 열차로 이동. 쉴러 극장에서 '파우스트의 겁벌' 관람.

2일: 베를린 가이드 투어 + 베를린오페라에서 발레 '백조의 호수' 관람.

3일: 베르그루엔+샤프 게르스텐베르크 미술관, 사진 박물관, 포츠다머플라츠

4일: 베를린 박물관 섬 + 자연사박물관 + 함부르크 역 미술관

5일: 쇼핑, 휴식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6일: 오전 베를린 동물원 + 오후 출국

 

박물관+미술관+공연장이 너무 비중이 큰 것 같긴 한데, 아무튼 게으르게 보낸 것 같지도 않은데 4일이 후루룩 가 버렸다.

 

전 같으면 베를린 중앙 공원이나 베를린 시민들의 휴식처라는 반제(Wannsee, See가 독일어로 호수)도 가보고 했겠지만 시내에서 가보고 싶은 곳들이 많아 거기까지 발을 뻗지 못했다. 좀 아쉽다.

 

 

그리고 뭣보다 이런 문화행사의 수준과 규모가 남다른 도시라 기왕 간 김에 공연을 보지 않기도 어려웠다.

 

한여름이었으면 어떻게 해서든 발트뷔네 콘서트를 가 봤겠지만 지금은 6월초.

 

 

느즈막히 일이나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최고의 쇼핑 스팟이라는 카데베에 입성했다.

 

 

카데베의 텍스 리펀드 시스템. 그리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시스템은 잘 되어 있다.

 

아무튼 요약하면 백화점에서 먼저 돈으로 다 받고, 공항에서는 등록만 하는 것이 제일 낫다.

 

아무튼 백화점 전문가인 마나님의 말씀으론 '한국 백화점이 훨씬 화려한 것 같다'고.

 

 

그런데 카데베의 놀라운 점은 꼭대기 층과 그 아래층의 식당가에 있었다.

 

카데베 탑 플로어 레스토랑의 위용.

 

맨 윗 사진을 보면 건물 꼭대기층의 오른쪽에 이런 아치가 보인다.

 

그걸 안에서 보면 이런 장관이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 거대한 카페테리아 + 부페식 레스토랑이 있다.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이 깔려 있고, 중간 중간에 즉석 요리 코너가 있다. 스테이크부터 바베큐까지 다양하다.

 

집은 요리 만큼 마지막 계산대에서 지불하게 되어 있어 합리적이다.

 

똑같이 돈 내는 부페보다 훨씬 합리적이다.

 

 

등심 스테이크, 구운 야채와 파스타, 프레시 샐러드, 견과류 수프까지 10만원 안짝.

 

(Schwein이란 깃발이 왜 꽂혀 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소고기다^^)

 

 

전망도 그만, 음식의 맛도 그만.

 

꼭 가보시기를 강추한다.

 

 

꼭대기층에 저런 대형 레스토랑이 있고, 바로 아래층에는 소규모 식당가가 있는데 가격은 이 한 층 아래가 더 비싸다.

 

저 작은 한 집 한 집이 꽤 유명한 레스토랑의 분점이라는 얘기.

 

어쨌든 쇼핑을 마치고(...많이 샀다), 배불리 먹고 베를린 필하모닉 홀로 향했다.

 

 

호텔에서 주요 관광지로 가는 200번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중간에 베를린 필하모닉 홀 정류장이 있다.

 

그래서 이 노란 건물을 자주 보긴 했지만 드디어 오늘, 들어가는 날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하는 공연을 본다는 건 어떤 사람에겐 대단한 일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다.

 

캄프 누 에서 축구 경기를 본다든가, 부도칸 에 가서 라이브 공연을 본다든가 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터.

 

아무튼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몇 차례 공을 들였다.

 

일정을 한번 바꾸는 바람에 처음에 예매했던 리카르도 무티의 공연은 공으로 날릴 뻔 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티켓 환불 따위 해 주지 않는다. 결국 그 공연은 절반 이하의 가격에 누군가 횡재를 했다.ㅜㅜ)

 

처음부터 꼭 사이먼 래틀의 공연을 보려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일정에 맞추다 보니 구스타보 두다멜과 인연이 닿았다.

(2018.6.8, 6.9)

 

https://www.digitalconcerthall.com/ko/concert/23517

 

 

이때가 2017년 2월. 결국 3월초쯤 이 공연도 매진됐다.

 

베를린 여행을 계획하신 분들이라면 일정을 잡자 마자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 예매를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국내에서 40~60만원씩 하는 티켓을 10만원 내외로 살 수 있다. 물론 매진되기 전에 손이 닿아야 가능하다.

 

아, 베를린에 온 김에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이나 한번 보고 가면 어떨까, 했을 때 늘 좌석이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 두시길.

 

(만약 그랬다면 당신은 매우 운이 좋았던 셈이다. 하긴, 에베레스트도 날씨만 좋으면 운동화 신고 정상 등반에 성공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정문 후문의 공식적인 구분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버스 정류장 반대편인 이 출입구가 약간 후문의 느낌이 난다.

 

멀리서 봐도 그렇고, 가까이서 봐도 그렇고, 이 건물은 이제 오랜 세월 베를린의 상징처럼 여겨져서 자연스럽게 느껴질 뿐이지 처음 건설될 때에는 꽤 말이 많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딘가 가건물 내지는 창고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건물을 설계한 베른하르트 한스 헨리 샤로운 Bernhard Hans Henry Scharoun 님의 구상이었던 것 같은데, 이 양반의 작품들은 대개 다 그냥 상자곽같은 느낌을 준다. 그나마 이 건물은 뭔가 임팩트를 준 덕분(?)인지 서커스 텐트같은 느낌이 들어서 '카라얀의 서커스 Zirkus Karajani' 라고 불린다고 한다.

 

 

해가 긴 베를린. 후문쪽으로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고 있다.

 

 

 

여기까지 왔는데 당연히 인증샷.

 

 

정류장 이름은 그냥 단순하게 'Philhamonie'다. 베를린 필하모닉이니 뭐니 설명이 필요없다는 뜻.

 

1887년, 베를린 필하모닉은 통일 독일의 융성한 기운을 배경으로 태어났다. 17세기, 30년 전쟁의 여파로 신성로마제국이 사실상 해체된 이후 독일은 50여개의 자잘한 나라들로 해체됐다. 표면적으로는 제후국이었지만 사실상 각각의 나라들은 모두 독립국이었고, 19세기까지도 느슨한 상태의 '독일 연방'이 있었을 뿐 하나의 독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1871년,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는 프랑스와의 전쟁('정치적 후광의 대명사' 나폴레옹 3세가 상대였다)에서 승리한 뒤 독일의 통일을 선언했다.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함에 따라 신성로마제국 이후 중부 유럽의 정치적 중심지는 빈에서 베를린으로 이동한다.

 

역사적으로 크게 주목받은 적이 없는 북부 독일의 도시, 일개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에서 전 통일 독일의 수도로 거듭난 '신 수도' 베를린은 새로운 문물의 도움으로 당시 세계 최첨단의 도시로 탈바꿈한다. 당시 세계 문명의 최첨단 기술은 바로 전기였다. 베를린은 전기 활용에서 전 세계를 리드했다.

 

 

1879년, 독일 지멘스 사(지금도 건재한)가 최초로 상용 전철을 개통시킨 도시가 바로 베를린이었다. 이런 세련되고 멋진 신도시에는 거기 걸맞는 문화의 향기도 필요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베를린 필하모닉이 탄생했고, 초대 지휘자로 당대 최고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가 취임했다.

 

(한스 폰 뷜로는 브람스와 바그너의 대다수 작품을 초연한 '전문 지휘자의 시조'로도 유명하지만 바그너에게 아내를 빼앗긴 남자로도 유명하다. 문제의 여자는 리스트의 딸 코지마. 아마도 코지마가 바그너에게 가겠다고 한 뒤 뷜로는 스승인 리스트에게 찾아가 징징댔을 것 같고, 리스트는 뷜로에게 이런 식으로 얘기했을 것 같다.

"울지 말게. 원래 내 딸은 자네가 감당할 여자가 아니었어.")

 

 

20세기 들어 베를린 필하모닉은 2대 지휘자 아르투르 니키슈, 3대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에 의해 세계 최강의 자리를 점점 더 굳혀 간다. 물론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겪으면서 나치 부역 혐의의 망령이 이 오케스트라의 원죄처럼 드리우게도 되지만, 중론은 '음악이 뭔 죄냐' 쪽인 것 같다.

 

예술가에게도 정치적인 공정성, 혹은 도덕적/이성적 엄밀성을 요구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예술가는 그가 구현하는 미적 결과물의 가치에 와 개인의 도덕성을 구분해서 평가받아야 하는 존재인가. 이 질문은 아마도 먼 훗날까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지휘자로서 위대했던 푸르트벵글러 앞에서 인증샷.

 

이 바로 옆에 카라얀의 사진도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을 얘기하면서 카라얀을 건너 뛸 수는 없다. 단지 클래식 음악을 얘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20세기 인류 문명을 이야기 하면서 카라얀과 동급으로 거론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해 보면 그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끼게 된다. 피카소? 엘비스? MJ? 아인슈타인? 마틴 루터 킹? ...마하트마 간디?

 

워낙 유명한 양반이다 보니 그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그치지 않는다. 이미 정평이 난 인성 문제는 차치하고(답이 나와 있다), 정말로 정말로 그가 최고의 지휘자인가...하는 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많은 사람들의 소일거리가 되어 온 것 같다.

 

물론 감히 그런 논의에 끼어들 수준은 안 되는 것을 인정하고 얘기하면, 어쨌든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취향상 그보다 다른 지휘자를 더 좋아할 수는 있어도, 그를 무시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특히 그 말도 안 되는 레퍼토리의 폭을 보면 정말 그는 난 사람이다.

 

아울러 그분이 남겼다는 말씀들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말은 이거다. 

 

"당신은 오페라를 눈을 감고 보나?"  

 

 

어쨌든 베이브 루스가 뉴욕 시민들에게 양키 스타디움을 선사했듯 카라얀이 없었다면 이 콘서트홀은 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각별한 건물인데,

 

건물 안에서 받은 인상은 '참 이모저모로 각졌다'...는 것.

 

 

드디어 들어왔다.

 

대공연장은 2440석.

 

 

공연장 안으로 들어와도 문제의 각진 느낌, 혹은 2015년 이후 렉서스의 그릴 디자인 같은 느낌은 이어진다.

 

하긴 렉서스 디자인을 여기서 따온 것일 수도 있을 듯.

 

 

네. 이거 얘기였어요.

 

 

정면의 괜찮은 자리.

 

베를린에서 공연장에 3번 갔는데 세번 모두 관람객의 평균 연령이 60세는 되는 것 같았다.

 

(농담이 아니라 베를린 오페라의 경우엔 인터미션이 15분이라도 짧을 것 같았다. 관객들의 평균 이동 속도가...)

 

그나마 베를린 필하모닉은 꽤 젊은 편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1라운드 끝.

 

존 아담스의 '시티 누아르 City Noir' 라는 재즈 냄새가 짙은 곡을 연주했다.

 

곡이 끝났는데 아무도 박수를 칠 수가 없었다, 는 말로 감상을 대신하고자 한다.

 

(아마도 관계자 누군가가 박수를 치기 시작한 듯 하다.)

 

 

 

 

 

인터미션이 거의 30분쯤 되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들 뭔가 먹고, 마시고, 떠든다.

건물 1층 뿐만 아니라 꽤 넓은 이 안마당이 관객들로 가득 찬다.

 

이 시간이 매우 의미있게 느껴진다.

 

공연이 곧 시작이라는 직원들의 안내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두다멜의 성명절기인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다. 이번 여행의 앞부분인 프라하에서 드보르작의 묘소를 방문하고 오는 길이었다는 점에 의미를 더욱 더 부여하고 싶다.

 

아무튼 두다멜의 이 곡 연주는... 말해 뭘 할까, 박력 그 자체.

 

 

예술의 전당 같으면 어림없겠지만 두다멜의 앵콜 무대 때 거의 모든 관객이 일어서서 박수를 치며 사진을 찍는다.

 

이래도 되나 싶지만 베를린에 오면 베를린 법을 따라야 하는 법.

 

 

두다멜은 자신이 받은 꽃다발을 단원들에게 한송이씩 나눠주며 활짝 웃었다.

 

 

 

공연이 끝나도 하나도 급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

 

해가 지고 밤이 되니 제법 쌀쌀한데 다들 공연장 밖에 서서 웃고 떠들고... 버스가 와도 곧바로 타고들 갈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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