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쎈여자 도봉순'이 시작하기 전에, 만약 누군가 "야, 이 드라마 잘 될 것 같아. 한 4회 쯤에 8% 정도 나오지 않을까 싶어"라고 했다면, 아마 칭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봤을 때 감히 기대하기엔 너무 높은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4회만에 '힘쎈여자 도봉순'은 전국 8.3%, 수도권 8.7%라는, 저희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는 성적을 냈습니다. 막연히 '잘 될 거'라는 기대는 했지만 이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 밀려올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감사드릴 곳이 너무 많습니다.
아울러 우리의 무적 삼각편대, 박보영-박형식-지수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는 것도 참 반가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지난번에 이어서 -
솔직히 말하면 박형식을 남자 주인공으로 하려고 했던 JTBC 드라마는 '힘쎈여자 도봉순'이 처음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상류사회'의 박형식을 본 뒤로 푹 빠져들었습니다.
'상류사회'의 유창수는 참 독특했습니다. 신분(?) 격차가 하늘과 땅 차이인 알바 지이(임지연)를 사랑하게 됐지만 그녀와 결혼 같은 건 꿈에도 생각할 수 없고, 오히려 자신과 결혼을 해야 하는 상대는 비슷한 재벌 집 딸인 윤하(유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머리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창수는 알아차립니다. 자신은 그 '마음'을 무시하고 머리가 가리키는 대로 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물론 하명희 작가님의 캐릭터부터 독특했죠. 한국 TV 드라마에 등장했던 그 수없이 많은 남자 재벌 2세들 가운데 가장 싱싱한 재벌 2세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태어나서 한번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은 게 없던 젊은 남자. 그런데 처음으로 마음과 생각이 따로 노는 상황을 맞닥뜨린 남자.
만약 박형식이 아닌 다른 배우가 이 역할을 연기했더라면 절대 '왜 내 마음이 내 머리를 배신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라는 느낌이 제대로 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리한 배우가 아니라면 절대 그렇게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뒤로 수차에 걸쳐 - 남자 주인공이 필요할 때마다 - 제1후보로 박형식의 현재 상황을 체크했지만 그럴 때마다 스케줄이 맞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힘쎈여자 도봉순' 때에도 일단 박형식을 떠올렸지만 - 매우 길고 두터운 장벽이 가로놓여 있었습니다. 바로 사전제작드라마 '화랑' 의 촬영이 진행중이었던 겁니다. 제작기간도 길고, 방송기간도 매우 긴.... (물론 박형식을 캐스팅하고 싶은 저희 심정에서 그랬다는 겁니다. 뭐 지금도 '도봉순 촬영 왜 이렇게 안 끝나냐'고 애태우고 있을 다른 제작진들도 있겠죠.^^)
어쨌든 정말 아슬아슬하게, 박형식의 출연이 결정됐습니다. 정말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죠. 그리고 결과를 보면 박형식에게나 '힘쎈여자 도봉순'에게나 모두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안민혁은 엉뚱함과 따스함이 교차하는 쉽지 않은 남자입니다. 게다가 뭐든 다 해줄 수 있는 재력까지 갖추고 있는, 그야말로 꿈의 남자친구죠. 태연하면서도 의뭉스럽게 "뭘 그러고 서 있어? 짝사랑하는 남자 여자친구라도 본 사람처럼?", 이런 대사를 하는 박형식을 볼 때 우리는 그 안민혁의 현신을 보고 있습니다. 멍뭉커플 화이팅.
삼총사 중에서 마지막 빈 자리, 국두 역도 간단치는 않았습니다. 이 캐릭터에 대한 백미경 작가님의 애정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국두는 원리원칙에 죽고 사는 엘리트 경찰이라는 기본 캐릭터 외에, 결국 봉순이와의 멜러에서 한 축을 담당해야 하는 추억 속 첫사랑의 느낌을 살려야 하는 역할입니다.
이 대목에서 후보로 급부상한 배우가 바로 지수. 군인이나 경찰관의 느낌으로 잘 어울릴 배우이기도 했지만 사실 지수군은 JTBC에 약간의 빚(?)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지난해 가을 방송된 '판타스틱'이라는 드라마에 출연했을 때의 일이죠.
당시 지수는 극중 박시연의 탈출구가 되는 연하남 검사 역으로 발탁됐습니다. 연기 경력으로 볼 때 다소 무리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막상 연기를 해 보니 순진하면서도 저돌적인 연하남의 이미지가 잘 어울렸고 박시연과의 케미스트리도 아주 좋았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 두 사람 사이에 본격적인 멜로드라마가 펼쳐질 대목에서 지수군이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입니다. 급성 골수염 진단으로,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작년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이런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판타스틱'은 다급한 대본 수정이 이뤄졌고, 김현주-주상욱 커플 못지 않게 주목받던 지수-박시연 커플은 갑자기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겉도는 비운을 맞았습니다. 한창 시청률이 오르고 있던 '판타스틱'에 제동이 걸린 것과 지수의 부상이 결코 무관하지 않았던 상황이었죠. 당시 '판타스틱' CP를 맡고 있던 터라,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자기 다리로 서지도 못하는 환자를 어찌 할 수도 없고... 병원에 찾아갔을 때,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아쉬워하고 있는데 거기다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랬던 상황이라 '의리'를 앞세워 국두 역할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판타스틱'의 아쉬움을 씻어 보자. 다시 한번 JTBC와 함께 해 보는게 어떠냐?" 물론 대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이런 정도의 설득이 먹혀들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의리의 사나이 지수는 다시 한번 한 배를 타는데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그 자신에게도 '판타스틱' 때 못다 이룬 아쉬움이 못내 컸던 거죠.
초반 국두를 대표하는 대사들은 "아저씨,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하는데?" 에서 "남자는 다 개야!"에 이르는 순도 100%의 순정 마초 대사들이지만 뒤로 갈수록 국두도 마음 속 로맨스가 살아나는 역할을 연기하게 됩니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국두의 변신, 기대하실만 합니다.
이렇게 해서, '힘쎈여자 도봉순'이 자랑하는 무적의 삼각편대가 완성됐습니다.
박형식이 91년생, 지수가 93년생으로 두 살 차이면 사회에 나가서는 사실 친구도 될 수 있는 나이지만 지수군은 어찌나 형을 좋아하는지(평소에도 뭐하냐고 물으면 '형들과 뭐 한다'는 대답) 바로 '형식이형'이 '우리 형'이 돼 버렸습니다. 보기에도 훈훈한 두 남자가 서로 너무나 좋아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촬영장 분위기가 나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죠.
아무튼 현재 두 배우 모두 자신들의 기대치를 100% 이상 달성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뭐든지 다 해주는 남자' 박형식에게 좀 더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지만, 지수 또한 언젠가 국두의 과거 - '국두는 왜 하늘하늘한 여자가 좋다고 했을까' - 가 소개되면 풋풋한 첫사랑의 추억과 함께 캐릭터가 한 단계 올라서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둘 사이의 뭔가 달달한 브로맨스도... 아쉽지 않게 준비돼 있으니 기대하시길.^^
P.S. 노파심에서 한마디 -
제가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어설프나마 제가 이 드라마의 초기 세팅 과정을 잘 알고 있고, 나름 이 드라마 제작진을 대표하는 입장에서입니다. 글 내용에 나오는 것들을 모두 저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했다거나, 내가 없었으면 이 드라마가 없었을 거라고 주장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드라마 한 편을 만들기 위해서는 100명 넘는 스태프와 연기자, 그리고 작가와 연출가가 피와 땀을 쏟습니다. 그 분들의 공로를 대변해서, 제작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 중 흥미로울 부분들을 정리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연기자들이 등장하는 화려한 드라마 이면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숨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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