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8일. 숙소 옮기는 날.
그 말인즉 파리에서 머물 날이 2박3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 ㅠㅠ.
모든 숙소는 집이라서 떠날 때는 아련해진다.
그 기분을 떨치기 위해 짐을 싸서 프론트에 맡겨 놓고, 근처 멋진 데 가서 비싼 점심을 먹기로.
집(?)에서 세느강 쪽으로 가면 사마리텐 백화점이 나오고, 그 옆 건물의 꼭대기 층, 저 돔 같은 지붕에 콩 Kong 이라는 유명 레스토랑이 있다. 왕년의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와 유명해진 곳.
(처음엔 잘못된 정보로 저 장면 촬영지가 퐁피두 옥상의 조르주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여기였다.)
뭐 어찌됐건 이번엔 최근 더 핫한 곳으로.
사마리텐 백화점을 지나 강을 따라 서쪽으로 몇발짝 가면,
슈발 블랑 호텔이 나타난다.
신상 호텔. 밤에 보면 조명발이 더 예쁜데, 아무튼 이날 따라 날이 화창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퐁 뇌프를 아니 걸을 수가 없지.
<퐁뇌프의 연인들 Les amants du Pont Neuf>... 이거 아시는 분들 최소 연식이.
저땐 줄리엣 비노쉬도 젊었고, 나도 젊었고...
(한때 누군가 소개팅 하라고 할 때마다 '줄리엣 비노쉬같이 생겼대'라는 말이 유행하곤 했었다. 당연히 곧이 들으면 안되는 말들... 요즘 기준으로는 김고은 닮았다는 말에는 절대 넘어가면 안된다던데.)
암튼 그 퐁 뇌프. 영화에 나오는 칙칙한 분위기 아님. 관광객 넘실넘실.
다리 위에서 다시 슈발 블랑을 보고, 예약 시간에 맞춰 입장.
저 건물 7층의 테라스가 튀어 나온 곳, 거기에 목적지인 르 뚜 파리 Le Tout Paris 가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모퉁이를 돌아 통창을 통해 레스토랑 안을 보는 순간, 아, 예쁘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알록달록 화사.
처음엔 욕심껏 창가쪽 자리를 잡았다가, 강렬한 직사광선 때문에 안쪽 자리로 다시 요청했다.
이렇게 앉아서 세느강을 바라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어차피 전망은 테라스로 나가서 보는 게 더 낫다.
사실 날씨가 따뜻했다면 테라스를 예약했겠지.
(좋은 날씨에도 테라스에서는 식사는 안 되고, 술이나 음료만 된다고 함. 참고들 하시길.)
설계가 잘 되어 있어 안쪽 테이블에서도 전망이 잘 보인다.
테라스에서 안쪽을 보면 이런 느낌.
굳이 창가 자리를 고집할 필요가 없을 듯.
메뉴, 듣던대로 가격은 상당히 사악함. ㅎ
그래도 파리를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도 아니고... (아 모르겠다 막 시켜)
전채 요리.
음료 잔 안의 얼음에 박힌 백마 로고가 앙증맞다.
백마는 바로 호텔의 이름인 슈발 블랑 Cheval Blanc 을 상징하는 것. 로비에 이런 것도 있다.
문득 한비자에 나오는 아열의 백마비마( 白馬非馬: 백마는 말이 아니다) 고사가 생각나려다... 말았다.
식전에 왜 과자를 주나 싶긴 한데, 아무튼 주니 고맙다. 맛도 좋고, 모양도 예쁘고.
비싸다는 느낌을 완화하려고 뭘 자꾸 주는거냐.
심지어 식전빵도 예쁘다. 맛은 당연히... 여기 빠리라고요. 빵의 도시.
식전빵이 나오고 나니 여유가 좀 생겨서
화장실
화장실 앞 대기공간
그리고 바 테이블을 슬쩍 둘러봤다. 참 공들인 가꿈.
아무튼 주문한 음식들이 하나 하나 나오는데,
농어. 서더리 부분을 잘라내고 고갱이만 구움. 당연히 맛있는데... 양이 적고 비싸다.
자... 크기 보고 놀라지 마세요.
그리고 블루 랍스터. 뭐 크기는 상상하시는 그 크기. 물론 맛은 있다.
그리고 아티초크 지짐.
모듬 구운 채소. 뭐 이것도 조금.
빵과 디저트는 제공, 여기서 탄산수와 버진 칵테일 한잔 해서 180유로 정도 나왔다.
사실 정상적으로 말도 안 되는 엄청 비싼 가격이긴 한데, 파리라는 이공간, 그 중에서도 핵심 공간 체험료라고 생각하니 또 낼만 하다는 생각도 들고. (아 몰라. 어차피 파산)
본전을 뽑기 위해 테라스 구경. 볕이 드니 참 좋네.
시테 섬 왼쪽으로 공사중인 노틀담이 보인다.
당연히 반대쪽으로는 에펠탑이. 물론 이 전망을 밤에 보면 반짝반짝해서 더 좋다는 얘기가 있더라.
이건 이 호텔 옥상에 있는 셀레스테라는 바의 야경인데, 각도로 보아 르 뚜 파리의 테라스에서 보이는 야경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음. 아무튼 좋네.
딱 정면은 이런 풍경.
막 이런 것도 해보고.
특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좋은 위치에 있다. 날씨 좋은 날 밤, 이 테라스에 앉아 와인 한잔.... 그런 그림이네.
그러고보니 12월.
1층에는 예쁜 트리가 있다.
참 예쁘고 비싼... 기억을 담고.
이제는 슬슬 익숙해진 동네 길을 지나 호텔로 짐 가지러.
워낙 날이 흐리다보니 파란 하늘이 매우 정겹다.
샤틀레 안녕~
그렇게 해서 시타딘레알에서 볼트를 불러 타고,
힐튼 오페라로 이동.
뭐... 파리 호텔 같다.
1층 카페 겸 레스토랑 겸 바.
'파리의 호텔'이라고 하면 생각날 듯한 그런 풍경이다.
방도 크고, 화장실도 크고, 옛날 호텔이라 좀 이상한 것도 있는데 아무튼 널찍널찍 좋다.
역시 비싼게 최고...
코너 방이라 큰 창도 두개나. (아 네. 하나는 반사)
욕실 바닥도 따뜻.
네네. 결혼 20주년, 돈 쓴 보람이 있군요.
서울에선 없어진 브리오슈 도레가 여기에.
아무튼 점심식사로 시간을 너무 소요한 관계로, 서둘러 다시 길을 나섰다.
아무튼 이번엔 호텔이든 뭐든 위치 중심으로.
전철로 두 정거장 내려가 코너를 돌면,
응 피라미드, 오랜만이야.
루브르는 1988, 1998에 이어 세번째 방문. 물론 세번째라고 해도 사실 늘 똑같다.
아무튼 이번엔 야간개장 하는 날 오후 4시 정도가 가장 덜 붐빈다는 어떤 분의 말을 믿고, 그 시간으로 예약했다.
줄이 진짜 별로 없네
씐나셨군요.
정말 좀 한산한가 했는데
응 그렇지 않아
아무튼 식순에 따라 니케 여신에게 루브르 왔다고 신고를.
어휴 25년... 만에 보니 많이 낡았네.
그리고 눈썹 없는 그분께도 역시 인사를 드려야.
항상 느끼지만, 루브르에 온 사람의 한 1/5 정도는 니케 여신상과 모나리자 사이에 있는 것 같다.
어디 안 가고 잘 계신거 확인했으니 됐네.
길 잃지 말고 잘 보세요.
사실 루브르에 맨 처음 와서 놀란 것은 "와, 교과서에 나오는 그림들이 그냥 이방 저방에 다 걸려 있어!" 라는 것인데, 나이 먹어 생각해보니 우리가 어려서 본 미술 교과서들인 너무나 19~20세기 프랑스 주요 미술관 위주로 작성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뭐 그렇다고 해서 루브르라는 이 공간의 위력이 사라져야 한다거나, 여기 걸린 작품들의 가치가 별로라든가 그런 건 절대 아니고.
아무튼 루브르에 와 보면 이 공간의 주인공은 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중 하나가 이 오이디푸스 그림과 아래쪽 잔다르크를 그린 장 오거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줄여서 그냥 앵그르).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은,
이 초상을 그린 자끄 루이 다비드와 그림 속의 주인공인 나폴레옹.
잘 아시겠지만 다비드는 말하자면 나폴레옹의 어용화가(또는 어진화사) 역할을 충실하게 해 내 지금까지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다. 아울러 나폴레옹은 다비드의 응원에 힘입어 온 유럽과 이집트를 누비며 각국의 수많은 문화유산을 파리로 실어 날라 이 루브르의 드넓은 공간을 가득 가득 채운 주모자.
당연히 이 유명한 그림도 다비드의 작품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나폴레옹 1세의 생김새는 거의 모두 다비드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다비드의 최고 걸작은 역시 이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ㅎ
이른바 옛날 미술 교과서 최고의 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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