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인(아랍인)들로부터 국토를 되찾기 위한 스페인 카톨릭의 노력 결과, 세비야는 비교적 일찍, 13세기에 이미 기독교인의 땅이 되었다. 그 뒤로 세비야는 내륙의 교역 도시로 발달했고, 1401년에는 이슬람 예배당이 있던 자리에 카톨릭의 위엄을 세계에 떨칠 수 있는 거대한 성당을 세울 계획이 세워졌다.
착공 100년이 되기 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뭐 틀린 말인 건 다 알지만 그냥 이렇게 쓰자)했고, 세비야는 이 새로운 대륙 개척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실제로 배가 드나드는 항구로는 세비야 서쪽의 우엘바와 남쪽의 카디스가 발달했지만, 신대륙 항해를 위한 법적 절차나 인허가는 모두 세비야에서 이뤄졌다. 신대륙에서 들어온 막대한 부 역시 세비야에 집결됐다. 거대한 문서보관소와 황금의 탑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 역시 세비야가 바로 신대륙 개척의 상징 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스페인식으로 크리스토발 콜론의 묘가 세비야에 있는 것도 당연한 일.
스페인은 세계에서 52번째, 유럽에서 다섯번째, 그것도 유럽이라고만 하기엔 좀 껄끄러운 러시아와 터키를 빼면 세번째로 큰 나라(프랑스, 우크라이나 다음)다. 남북한을 합친 크기의 두배 이상 크다. 제국 스페인의 남쪽 해안선은 지브롤터를 경계로 동쪽은 지중해로, 서쪽은 대서양으로 열려 있다.
스페인의 대항해시대는 곧 대서양으로 열린 항구의 발전을 뜻하며, 우엘바와 카디스, 두 개의 항구를 끼고 있는 세비야는 제국 남부의 중심지로 줄곧 발달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유난히 큰 성당, 유난히 금박을 많이 씌운 성상을 구축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 부와 권위의 상징인 세비야 대성당을 보러 갔는데, 입구의 박물관을 들어서자마자 에그머니.
식도와 척추의 단면이 너무도 선명하게 묘사된 사람의 목부터 보게 됐다.
산 후안 바우티스타(San Juan Bautista)가 대체 누군가...했더니 Saint John Baptist. 그러니까 우리 말로 세례 요한이었다.
살로메의 복수 때문에 목이 잘렸다는 그 양반. 그런데 그 머리를 이렇게 정교하게 묘사해 놓은 조각품은 대체....;;
두 성스러운 존재가 세비야 대성당의 상징인 히랄다 탑을 가호하는 그림이다. 한쪽은 아마도 성모 마리아일 듯 한데 다른 한 쪽은 대체 누구... 아무튼 손에 종려나무를 든 이런 수호신의 묘사는 세비야에 대단히 흔하다. 종려나무 가지가 바로 세비야의 상징이라서.
아무튼 성당 내부로 들어갔다.
뜨왓.
정말 거대하고...길다.
지난번에 본 세비야 대성당의 모습. 그림 앞쪽이 북쪽이고, 그림에서 보이지 않는 남쪽에 관광객 용 입구가 있다.
그리고 북쪽이 위로 가게 그려진 지도. 남쪽 입구가 관광객의 출입구라고 했지만 사실은 입구 왼쪽으로 돌아서 정작 성당 내부로 들어서게 되는 건 위 지도의 숫자 10번이 그러진 지점 부근이다.
지도의 11, 12, 16, 17, 23, 24, 27 등으로 되어 있는 작은 방들은 스페인어로 카필라(Capilla), 즉 영어의 chapel에 해당하는 예배당이다. 지도의 왼쪽 상단에 있는 성소 교회에서도 보았듯 큰 대성당 안에, 세비야 유력 가문들이 각각의 예배당을 운영해 온 셈이다.
그 각각의 예배당들은 이런 식으로 자기네만의 제단을 화려하게 장식해 가문의 영광을 뽐냈다. 무리요나 엘 그레코 같은 유명 화가들의 그림, 동방에서 가져온 희귀한 성상 등 갖은 보물들이 이 안을 장식했다.
세비야 대성당은 길이가 긴 쪽이 135m, 짧은 쪽이 100m인 직사각형의 모습이다. 천장의 가장 높은 곳이 42미터, 물론 첨탑인 히랄다 탑을 뺀 천장 얘기다. 히랄다 탑 꼭대기는 105m에 달한다. 그 기둥과 내부의 공간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위압한다.
각각의 카필라들은 이런 스테인드 글라스 하나와,
이렇게 요란하게 장식된 제단으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제단의 양쪽 벽면은 이런 식으로 온갖 고전 회화들로 가득하다.
한마디로 카필라의 규모가 각 가문의 세 대결인 셈이다.
이런 카필라들을 구경하며 동쪽으로(동쪽에 주 제단이 있으므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거대한 볼거리가 눈길을 장악한다.
합창대석의 양쪽에 장착된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정말 크고 위압적이다. 다른 표현이 필요 없다.
이런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합창대석의 좌우에 하나씩 배치돼 있다.
나무로 조각된 디테일 하나 하나가 섬세하기 이를데 없다.
합창대석을 지나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네 사람이 떠받든 관이 나타난다.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묘지다.
지도의 파란 별 모양이 있는 곳이 바로 콜럼버스의 묘지. 별 왼쪽 위의 Coro는 코러스, 즉 합창석을 말하며 그 바로 옆의 Capilla Mayor는 흔히 말하는 High Altar, 즉 이 성당의 주 제단을 말한다. 물론 그보다 더 동쪽 끝에는 Capilla Real, 즉 왕실 예배당이 있다.
콜럼버스의 묘를 상징하는 이 거대한 석상은 네 사람의 왕이 콜럼버스의 관을 들고 대성당의 남쪽 문을 통해 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형상이다. 네 왕은 각각 카스티야, 아라곤, 레온, 나바라, 즉 스페인이 통일되기 전에 있던 네 왕국의 왕들이다.
그러니까 이 네 왕이 운구를 할 정도로 대단한 위업을 남겼다는 얘기다.
비록 죽은 뒤이지만 대단한 예우다.
문득 관 바닥이 궁금해졌다.
이렇게 생겼다.
그의 업적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지금껏 여러모로 말이 많지만,
대장부로 태어나 죽어서 이런 예우를 받는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콜럼버스의 묘를 지나면 오른편(그러니까 남쪽)으로 성구실과 보물창고에 이른다.
같은 실내고 별다른 조명이 없는데도 성구실은 무척 밝다.
천장을 보면 바로 이유를 알 수 있다.
다중 쿠폴라를 통해 빛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밖에서 보면 이런 식으로 돔의 상부에 채광창을 두어 빛을 성당 안으로 스며들게 한 배치다.
물론 사진에서 보듯 필요한 곳에는 각각 조명이 배치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쪽 보물창고는 훨씬 밝다.
언뜻 보기에도 어지간한 공력으로는 만들기 어려웠을 보물들이 즐비하다.
그, 어린아이(아무리 아기 천사라고는 하지만)들의 머리통을 밟고 선, 인자하기보단 잔혹해 보이는 성모상.
몇 안되는 출처를 알 수 있는 작품 중 하나.
조각가 페드로 롤단(Pedro Roldan)이 만든 카스티야 왕 페르난도 3세의 조각이다.
뒷날 '산 페르난도(성 페르난도)'로 추앙받은 페르난도 3세는 13세기 중엽, 세비야를 탈환해 기독교도의 품으로 되돌린 왕이다. 이때문에 산 페르난도라는 지명은 라틴 아메리카 문화권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이런 성구실 안에도 작은 파티오가 있고, 파티오 안에 분수가 있는 것은... 누가 봐도 이슬람 양식의 반영임을 알 수 있다.
뭐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싶다. 아무튼 보물의 산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날따라 주 제단 Altar Mayor와 왕실 예배당 Capilla Real 이 보수중.
보수막이라도 찍어 올 걸 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주 제단은 목각에 신대륙에서 가져온 1.5톤의 황금을 들이 부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생겼다.
세비야 관광 진흥 사이트에서 퍼옴.
뭐 대신 이 성당을 대표하는 사이트 중 하나인 은의 제단 Altar de Plata.
흔히 보는 기독교적인 상징과는 거리가 먼 모양이다. 사실 이런 건 처음 봤다.
오히려 태양신 숭배의 상징이라면 모를까.
아무튼 이렇게 해서 일단 세비야 대성당의 내부 관람을 마쳤다.
흔히 서양의 대성당을 들어가면, 건물 전체가 왠지 드래곤을 형상화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성당 내부를 들어서면 거대한 용의 몸속에 들어온 것 같다는 느낌.
특히나 이 거대한 세비야 대성당의 천장은 용의 등뼈를 보는 듯한 상상을 자아냈다.
사실, 밖에서 보기에도 좀 그렇게 보이는 구석이 있다.
어느 카필라엔가 있었던, 아무리 봐도 엘 그레코의 작품인 것 같은 그림 한 점.
(뭐 영향을 받은 화가일 가능성도 당연히.)
어떤 카필라는 이렇게 문을 열어 놓고 청소중이기도 했다.
위쪽의 초상화들은 아마도 자랑스러운 역대 귀족 가문의 조상들인 듯.
자. 이제 히랄다 탑을 오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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