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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스파이들의 세계를 그린 영화를 '첩보물'이라고 뭉뚱그려 얘기하지만 그 안에서도 '누가 배신자인가' 혹은 '누가 진짜 스파이인가'를 찾는 이야기는 그 안에서도 별도의 장르로 분류될 정도로 인기 높은 소재입니다. 조직 내에 잠입해 우리편을 가장하고 있는 첩자를 영어로 두더지(mole)라고 부르기 때문에 이 장르를 두더지사냥(molehunt)라고 흔히 부르죠. 영화의 제목이 <헌트>인 것 역시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인 듯 합니다. (이 대목에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영화가 케빈 코스트너의 <노 웨이 아웃>같은 거라면 당신은 옛날 사람... 네? <무간도>요? ;;)

<헌트>는 이 장르 전통의 충실한 계승자이면서 탁월한 독자성을 갖춘 작품이고, 감히 말하자면, 한국 영화계가 이 장르에서 지금껏 만들어 낸 영화들 중 최고작으로 꼽을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주제를 다룬 한국 영화에서 평균적으로 등장해 온, 너무나 밋밋하고 평면적인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불만이었던 관객이라면 <헌트>를 통해 그 갈증을 씻어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캐릭터가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으로 보입니다. 

겉으로는 수트를 차려 입었지만 속은 일상처럼 서로 죽고 죽이던 칼잡이들 그대로인, 무사들의 시대를 <헌트>는 실감나고 설득력있게 그려냅니다. 

영화는 전두환 정권의 집권 3년차인 1983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웅평 귀순, 소련 전투기에 의한 대한항공 여객기 격추 사건, 그리고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 등 어마어마한 사건이 터져나온 파란만장한 그 해입니다. 박정희 정권 당시 권력 수호의 핵심이던 중앙정보부를 전두환 정권이 국가안전기획부로 개칭했지만 여전히 대외 첩보와 민간 사찰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던 시절이죠. 정권은 바뀌었지만 "당신들 누구야?" "남산에서 나왔다 이 새끼야!"는 그대로이던 그 때.

하지만 <헌트>는 어디까지나 픽션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전두환, 노신영, 이웅평 같은 인물들의 실명은 다른 이름으로 바꾸거나 아예 거론하지 않고 있습니다. 테러의 무대도 미얀마에서 태국으로 바꿔 버리고 사건의 내용도 '국가 원수 시해 음모'라는 핵심을 제외하면 실제 사건과 사실상 일치하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창작의 세계로 멀리 가 있죠.

아무튼 잠시 줄거리.

독재 정권 3년차의 안기부. 국내팀 담당 차장 정도(정우성)와 해외팀 담당 차장 평호(이정재)는 워싱턴에서 대통령 살해 음모 사건이 발생한 뒤 그 처리 과정에서 심하게 대립합니다. 서열상으로는 평호가 윗사람이지만, 과거를 생각하면 결코 편치 않은 사이.

특히 안기부 내부의 최고 기밀 정보들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조직 상부는 내부 첩자를 파악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이들 두 사람이 상대방을 견제하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조사에 착수한 두 사람은 모두 상대방에게서 석연찮은 증거들을 발견해 냅니다. 

그렇게 해서 두 라이벌의 대결 속에서 '과연 누가 첩자일까'를 풀어가는 고전적인 구조. 셰익스피어가 <줄리어스 시저> 후반부에서 그 전형을 만들어 놓은, 두 라이벌 사이의 치열한 치고 받고를 중심으로 한 플롯의 핵심은 결국 두 사람 사이의 기울지 않는 균형인데, 이미 영화를 본 사람들의 증언대로 이정재 감독의 솜씨는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 영화에서의 연출은 사실 배우로서의 연기와 따로 떼 놓고 생각하기가 힘들죠. 두 배우의 대결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화면 가득한 풀샷을 이겨내는, 잘 늙은(?) 두 남자의 투샷은 매우 아름답고 만족스럽습니다. 정우성 역시 농익은 연기가 그만입니다. 



이정재 감독은 시나리오 수정에도 깊이 관여했다고 들었는데, 그 완성도가 놀랍습니다. 특히 이 영화의 두 남자는 그저 '좋은 놈'과 '나쁜 놈'으로 선을 그을 수 없는 입체적인 캐릭터들이란 면에서 감탄을 자아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즘도 한국의 1980년대를 선과 악의 대립으로 파악하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그 흑과 백, 양 극단 사이에 두터운 회색 층이 있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북한이나 미국이라는 변수들까지 감안하면 계산은 매우 복잡해집니다.

그리고 그 뒤, 30여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대한민국 사회의 관찰자들은 처음엔 흰색이나 희뿌연 회색으로 보였던 수많은 점들이 당시에는 선명한 검은 색이었던 점들보다 더 검게 보이게 되곤 하는, 기묘한 변화를 목격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가 커버하고 있는 시대는 그런 시대였고, 오히려 주인공인 두 남자는 그런 시대에 나름의 신념을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과연 누가 누구를 배신한 것인지, 혹은 그 '배신'과 '충성' 사이의 어느 쪽이 더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지. 영화는 분명 흥미진진한 오락 영화지만,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아무튼 누군가 <헌트>에 대해 '먹물들이 더 좋아할 영화'라는 평을 내리기도 했는데, 제가 어쩔 수 없는 먹물 취향이라면 그것도 할 말은 없습니다만, 당시의 정치 상황이나 복잡한 생각 없이도 충분히 재미있게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적이면서 또 동지이기도 한 두 남자의 경쟁과 협력(?) 이야기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감히 커티스 핸슨의 <LA 컨피덴셜>에 비견할 만한 멋진 영화가 드디어 한국 영화사에도 등장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놓치지 말고 보시길. 

 

P.S.1. 올 여름,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영화들이 잇달아 개봉했는데, 정작 최고의 캐스팅을 감춰둔 건 이 작품이었습니다. 유재명 주지훈 황정민 정경순 조우진 박성웅 등 어지간한 영화의 주연급 배우들이 거의 제대로 된 대사 한마디 없는 역으로 스쳐가듯 등장합니다. 감독님의 캐스팅 실력 실로 대단하더군요. 

개인적으로 베스트는 진짜 귀순용사같았던 그 분. 

P.S. 2. 저분의 귀순을 환영하기 위해 그해 4월 여의도에서 열린 환영대회에 130만명이 몰렸다고 하는데, 그 130만명 중 한명이었다는 옛 기억이 문득.... (비가 부슬부슬 오던 그날, 10KM는 걸은 듯. 절대 자진해서 가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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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철 감독의 영화 '대립군'을 봤습니다. 130분 동안 화면 속의 인간들은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계속합니다. 토우(이정재)와 곡수(김무열)을 비롯한 대립군들은 그들대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세자 광해(여진구) 또한 왕이 되는게 문제가 아니라 당장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이름 없는 백성들 또한 마찬가지고, 가토 기요마사의 명을 받아 세자 일행을 뒤쫓는 왜군 장수 역시 빈 손으로 돌아가면 가토의 질책으로 할복을 피할 길이 없으니 피차 물러설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몸부림의 아수라장 속에서 영화는 선명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어쩌면 너무 선명해서 다소 시대에 뒤진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메시지입니다. 바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것이죠. 같은 말이지만 만약 아무개가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면, 대체 어떤 덕목이, 어떤 기준과 시선이 그 아무개를 제대로 된 지도자로 설 수 있게 할 것이냐는 이야기입니다.

 

약 10개월 간의 진통 끝에 새 대통령이 나와 구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워가고 있는 지금, 2017년의 한국에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지금.

 

 

 

순서대로 하자면 일단 영화의 배경을 소개해야 합니다. 조선 선조 때, 1592년.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숫자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군이 부산을 통해 조선 내륙으로 치고 올라오고, 선조와 대신들은 평양을 거쳐 북으로 북으로 피난을 거듭합니다. 중간 피난지 영변에서 선조는 "나는 천자의 나라에서 죽을지언정 왜적의 손에 죽을 수 없다"며 요동으로 건너가 직접 구원병을 청할 뜻을 밝힙니다(1592년 6월13일).

 

그리고는 대신들이 일제히 요동행에 반대하자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선언해버립니다. 이 또한 대신들이 일제히 반대했지만 선조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다음날인 6월14일 자신은 요동으로 떠날테니 세자는 평안도 땅에 남아 의병을 모으고 결사 항전하라고 지시합니다. 이른바 분조(分朝), 즉 조정을 둘로 나눠 국난에 대처하겠다는 것입니다.

 

조선 건국 200년, 말하자면 안일했던 나라에 국권이 흔들리는 대전쟁이 일어나고, 선조로서도 당황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겠지만... 기록에 남아 있는 내용만으로도 지나치게 허둥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국난을 극복할 만한 슬기로운 군주가 당시 조선에는 없었던 것이죠.

 

 

 

 

이때 광해군의 나이 만 17세. 사실 당시 기준으로는 다 큰 장정의 나이지만 그래봐야 스무살도 안 되는 앳된 청년일 뿐입니다. 왜군의 침략으로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일 때 국정 최고 지도자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기엔 어림도 없는 나이입니다. 게다가 아버지 선조는 장남인 임해군 보다는 뭘 봐도 낫다는 점에서 광해군을 세자로 세웠지만, 이들 사이에 부자간의 살가운 정을 엿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쨌든 이후의 역사를 살펴보면, 광해는 임진왜란 중의 활약으로 백성들과 대신들의 신망을 샀고, 그 이후 선조는 오히려 광해를 자신의 라이벌로 여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 '대립군'은 이런 역사의 기록을 충실히 따라가면서, '과연 무엇이 궁중의 금지옥엽이었던 17세의 광해군을 국난 극복의 선두에 선 강인한 왕자로 바꿔 놓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대체 이 왕자는 전쟁중에 어떤 일을 겪었기에 미리 경험해보지도 못한 위기를 기회로 바꿔놓았을까요.

 

 

 

 

영화의 시작. 임진왜란 발발 직전 토우(이정재)를 비롯한 대립군들은 여진족과 맞서고 있는 북쪽 변방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입니다. 누구보다 뛰어난 전공을 세우지만, 후방에 살고 있는 누군가를 대신해 병역을 살고 있는 대립군들이라 누구도 그 공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저 보수를 받고 약조한 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또 누군가가 그를 대신해 병역을 살게 된다는 현실만이 무거울 뿐입니다.

 

그런 토우와 곡수(김무열)을 비롯한 대립군들은 남쪽에서 왜란이 발발했으니 국왕을 호종하러 평양까지 남하하라는 명을 받고 이동하다가 피란차 북상하는 왕의 행렬을 만납니다. 그리고 조정이 둘로 나뉘었으니 세자 광해(여진구)를 호위하고 강계까지 이동하라는 명을 받습니다. 한달만 있으면 역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대립군들이지만 세자 호위의 임무를 무사히 마치면 전쟁중의 특별 무과 시험을 통해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바람으로 여럿은 선뜻 세자를 인도합니다.

 

하지만 철도 없고 숫기도 없는 소년 세자,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왜군의 추격, 왜군보다 더 무섭게 압박해오는 정체 모를 자객들, 턱없이 부족한 식량이며 무장, 추격을 피햐려 들어선 가파른 산길 등 이들 앞의 난관은 첩첩 산중. 그러는 가운데 토우는 자신이 호위하고 있는 왕세자의 민낯을 찬찬히 훑어볼 기회가 생깁니다.

 

과연 그를 살려 내면 무엇이 달라질까. 그가 왕이 되면 이 나라와 백성들의 운명이 바뀔 수 있을까?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 자신도 대립군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로서 토우의 고민은 시작됩니다.

 

그를 살려내기 위해 나와 우리 무리의 목숨을 거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가?

 

 

 

 

영화 '대립군'은 다들 아다시피 지도자의 자질에 대한 영화입니다. 본래 역사에 쓰여 있는대로 선조는 암군이요, 광해는 현명한 군주라고 딸딸 외우는 것은 이 영화를 보고 느끼는 데 별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한 소년이 민초들과의 만남과 전쟁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통해 민초의 눈높이에서 삶과 죽음을 느끼게 되고, 그를 통해 희생과 헌신이라는 영웅적 행위의 가치를 깨달아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한테 이 영화의 카피를 뽑아 보라고 한다면 저는 '그날, 소년은 남자가 되었다' 정도로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핵심에 선 두 배우, 여진구와 이정재는 아낌없는 호연으로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 넣습니다. 여진구의 연기도 대단히 칭찬받을만 했지만, 특히 이정재는 2017년 이후 배우로서 그의 이름은 아마도 이 영화, '대립군'을 통해 가장 먼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정재라는 배우는 긴 활동기간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변함 없는 모습을 보여줘 왔습니다.

 

 

 

 

 

네. 20년 가량의 시간 차이를 둔 모습이지만 거의 차이를 느끼기 힘듭니다. 그만치 이정재는 어찌 보면 불멸의 젊음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지금껏 자리매김해 왔죠.

 

 

 

 

아무튼 그의 젊은 모습은 영화 '태양은 없다'에서 동년배인 정우성과 함께 찬란한 빛을 뿜었습니다.

 

 

물론 배우로서 본격적으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그 젊음에 연륜이 깃든 뒤부터의 일인 듯.

 

 

전같으면 상상할 수 없었던 이런 열연이 새삼 그의 에너지를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대립군'이라는 작품,

 

 

문득 이 배우, 미후네 도시로와 불멸의 걸작 '7인의 사무라이'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사무라이라는 특권 신분의 남자들이 자신들이 특별한 대접을 받으며 무훈을 칭찬받는 것은 불의로부터 백성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살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본래의 소명을 깨닫고, 한 촌락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이야기입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인 기쿠치요(미후네 도시로가 연기하는 캐릭터입니다)는 본래 백성의 아들이면서 전쟁통에 사무라이를 가장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사무라이들과 동네 사람들 사이의 믿음이 깨질 위기가 등장했을 때, 그는 백성의 눈으로 본 전쟁의 의미를 사무라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습니다.

 

 

 

백성의 한 사람이기에 백성의 고통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인물.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 사람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 자신의 운명을 걸 수 있었던 남자.

 

이 영화, '대립군'에서 그 남자의 얼굴은 비로소 이정재를 통해 생명력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얼굴 때문에라도 이 영화는 극장에서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만한 연기를 보여줄 배우란 본래 흔치 않다는 점에서, 그리고 앞으로 이정재가 보여줄 또 다른 가능성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영화 '대립군'은 매우 반가운 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P.S. 영화의 후반부에는 [배 한척]과 [배 한척에 목숨을 건 민초들], 그리고 [그 배에 함께 오른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물론 의도적인 설정은 아니겠지만, 그 [배 한척]이 주는 느낌은 매우 산산하더군요. 백성이 탄 배의 중요성이 이미 몇몇 지도자들의 운명을 바꿔 놓은 나라라서 말입니다.

 

P.S.2. 제작진으로부터 'NO CG, NO SET'라는 말을 듣고 보긴 했습니다만, 실제로 영화를 보니 제작진과 배우들이 겪었을 고생의 강도가 피부로 느껴지는 듯 합니다. 진정 '수고하셨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일반 관객들도 아마 이런 점을 감안하고 보시면 감동 두배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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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상'이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미 시사회를 거치면서 예견됐던 일이기도 합니다. 송강호 이정재 김혜수 백윤식 조정석 이종석으로 시작하는 초 호화 캐스팅과 계유정난이라는 잘 알려진 역사적 사건, 그리고 과연 '관상이란 과연 운명을 지배하는 것인가'라는 흡인력 있는 주제가 관객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결과입니다.

 

좋은 배우들의 열연은 '관상'의 가창 큰 힘입니다. 영화 초반은 송강호와 조정석의 착착 감기는 유머에 김혜수의 존재감이 영화를 풀어 갑니다. 후반은 잔혹무도한 수양대군(이 영화에서는 확실히 그렇습니다) 역을 맡은 이정재의 오만방자함이 힘을 발휘하죠. 이 배우들 보는 맛 만으로도 충분히 영화를 끌고 갈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무엇을 이야기하려 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조금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네. '관상'이란 영화는 대체 '관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가 매우 궁금해집니다.

 

 

 

 

 

줄거리.

 

보는 즉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아차린다는 관상의 대가 내경(송강호)은 처남 팽헌(조정석), 아들 진형(이종석)과 함께 어느 바닷가 시골에 묻혀 살다 도성의 유명한 기생 행수 연홍(김혜수)의 방문을 받습니다. 관상의 사업적 가치를 알고 있던 연홍이 내경의 소문을 듣고 한양으로 불러 올리려 한 것입니다.

 

비록 관상쟁이가 됐지만 내경과 진형은 모두 역모죄로 처단된 양반의 자손. 아버지가 관상 보는 것을 싫어하는 진형은 어쨌든 선비답게 글공부를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주장하고, 역적의 자손이 출세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임을 잘 아는 내경은 이런 진형을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곡절 끝에 내경과 팽헌은 도성으로 향하고 진형은 절로 들어가 공부를 계속합니다.

 

도성에서 내경과 팽헌이 마주한 것은 세종이 승하하고 문종이 등극한 직후의 천하. 호시탐탐 왕위를 노리는 수양대군(이정재)과, 이에 맞서 문종-단종 부자를 보호하려는 김종서(백윤식)의 편으로 세상이 나뉘고 있는 사이 내경은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집안을 다시 일으켜 보려 합니다. (여기까지)

 

 

'관상'의 초반은 매우 활기차게 시작합니다. 15세기판 납뜩이 팽헌으로 변신한 조정석은 끊임없이 촉새 짓을 하고, 가끔씩 이를 눌러 주면서 오히려 웃음을 증폭시키는 송강호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는 관객들을 쉽게 빨아들입니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 특히 내경이 김종서를 만난 뒤부터 이야기는 조금씩 무거워지기 시작하고, 그 다음부터는 미리 놓인 철길을 따라 흘러가는 느낌을 줍니다. 역사의 갈 길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은 모든 관객이 알고 있지만, 영화 후반만 놓고 보면 내경은 존재감이 너무 미약해져 버립니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내경이 하는 생각이나 행동이 관객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더 자세히 얘기하면 줄거리를 건드리기 때문에 이 정도만. 궁금하신 분들은 저 아래쪽을 읽어 보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살려내는 것은 단연 배우들의 힘입니다. 이름만 대도 대한민국이 다 아는 명배우들은 장면 장면마다 매력적인 커트를 내놓더군요. 특히 후반부, 한명회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신은 배우 김의성의 소름끼치는 표정과 함께 관객의 기억에 남을 만한 명장면을 만들어 냅니다. (문득 왕년 조니 뎁 주연 영화 '프롬 헬'에서 이안 홈의 눈동자 색이 바뀌던 장면이 떠오르더군요.)

 

그밖에도 관객을 사로잡는 요소들은 충분합니다. 치밀한 고증보다는 상상력의 소산이겠지만 조선시대 기방의 화려하고 방자한 모습이나, 황토빛이 도는 유려한 영상, 수양대군과 수하들의 공격적인 모습이 잘 드러난 야외 신 등에서의 미술은 보는 눈을 즐겁게 합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이 정도면 추석 연휴를 앞둔 관객들에게 훌륭한 볼거리가 될 듯 합니다. 특히나 조정석, 이종석 팬들에겐 좋은 선물이 될 듯 합니다.

 

P.S. 개인적으로 영화 첫 부분에서 '아마데우스'가 떠올랐습니다.^^

 

P.S.2. 충분히 의도된 것이겠지만 이 영화 속 송강호의 얼굴은 참 윤두서 자화상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자, 기본적으로 여기까지.

 

더 아래로 내려가시는 분들은 줄거리에 노출되실 수도 있습니다.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여기서 멈춰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2부 시작.

 

 

 

 

 

 

영화 '관상'은 누구나 결말을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전제는 '관상이라는 것이 있고, 그를 통해 사람의 운명을 꿰뚫어 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 '관상'은 흘러가던 도중 갑자기 변화구를 시도합니다. 김종서를 만나고 죽음의 위협을 경험하기 전까지 내경은 백발백중의 귀신같은 실력을 발휘합니다. 처음 만난 연홍의 속내를 한눈에 꿰뚫고, 관상만 보고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내고, 탐관오리를 적발해 내는 실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도, 한명회의 경우엔 죽은 다음의 일까지 예측해 냅니다.)

 

하지만 이런 놀라운 능력이 어느 순간 갑자기 뚝 떨어져 버립니다. 이를테면 김종서가 호랑이의 길상을 가진 인물이란 것을 알아내지만, 그가 비명횡사하고 멸문을 당할 팔자라는 것은 읽어내지 못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수양대군이 잔혹하고 탐욕스러운 성품이라는 것은 읽어 내지만 그가 왕위에 오를 팔자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정말 관상이라는 것을 제대로 읽는 것이 가능하다면 내경은 문종이 곧 죽을 것이라는 점, 단종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란 점, 또 김종서의 측근들은 모두 일찍 죽고 집안이 몰락할 것이라는 점, 반면 수양대군의 측근들은 모두 부귀영화를 누릴 상이라는 점 등을 맞춰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영화 속에서 죽은 여자의 경우처럼 '무병장수할 관상이라도 상대를 잘못 만나면 비명횡사 할 수 있다'는 단서가 있지만, 그럼 양쪽 진영의 사람들이 함께 있어 길한 관상인지 흉한 관상인지 정도는 짚어 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내경은 "나는 파도만 바라보고 있었지, 바람을 보지 못했다.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라고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누구나 파도를 보고 바람을 읽습니다. 파도가 동쪽에서 치면 동풍이 불고 있다는 뜻이죠. 수양대군의 측근 신숙주가 부귀영화를 누릴 관상이고, 김종서의 측근 황보인이 비명횡사할 팔자라면(물론 영화 속 내경은 이 자체를 읽어내지 못하지만) 어느 쪽이 승자가 될 운명인지는 너무 당연하게 읽혀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죠.

 

내경이 생명의 위협을 겪은 뒤에도 계속 관상쟁이 노릇을 하는 것은 첫째, 김종서의 부름이 있은 뒤 역적의 후손으로 망해버린 집안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점, 둘째는 이름을 바꾸고 벼슬길에 들어선 아들 진형의 앞날에 대한 걱정 때문입니다. 비록 내경이 문종과 단종에게 충신 역할을 하지만 이건 당대의 세도가인 김종서 곁에서 보호를 받기 위한 것일 뿐, 그가 자진해서 문종이나 단종의 안위를 걱정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설정상 선량한 사람이긴 하지만 '자신과 아들 진형의 앞날을 위해' 편을 선택한 것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마지막까지 '김종서가 죽으면 우리 다 죽는다'며 수양대군의 김종서 살해 현장에서도 끝까지 김종서를 보호하려 합니다. 만약 그가 '누가 역사의 승자가 될 지'를 관상을 통해 읽어냈더라면 당연히 수양대군 쪽으로 편을 바꿨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그에게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경이 무능한 관상쟁이로 바뀌면서 영화는 점점 무거워지고 갈 길이 뻔해집니다. 내경이 더 이상 사람들의 얼굴에서 아무 것도 읽어내지 못하게 된 이상, 앞으로 보여질 내용들은 내경이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한 저주가 실현되는 과정 뿐입니다. (영화 초반, 내경은 진형에게 "벼슬길에 나가면 화를 당할 관상"이라고 했고, 처남 팽헌에게는 "성질을 못 이기면 신세 망칠 관상"라고 했죠.)

 

이런 주장에 대해 혹시 어떤 분들은 애당초 처음부터, 영화 '관상'이 생각한 관상의 힘은 한 사람의 '능력치와 성격'을 읽어 내는 것이지 '운명이나 미래'를 읽어 내는 것은 아니었다고 항변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볼만한 여지도 충분히 있습니다. 그렇게 처음부터 '관상의 힘'을 제한된 것으로 설정해 놓고 들어갔다고 하면 내경의 능력이 갑자기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이야기의 매력이 반감되는 것을 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그 정도의 능력이라면 애당초 내경에게 역사를 바꿀 어떤 기회를 기대하는 것 조차 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물 됨됨이를 파악하는 정도의 능력이라면 아무리 김종서가 신임한다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된 일들일 뿐입니다. 아울러 문종 앞에 선 내경이 "그 인물과 행동거지를 함께 보면 과거의 일 뿐만 아니라 미래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고 한 이야기가 매우 공허해지는 것이죠.

 

내경에게 진정 미래를 꿰뚫는 능력을 인정하되, '그럼에도 바꿀 수 없는 운명의 힘'을 보여주는 극적 장치를 좀 더 정교하게 보여주었더라면, 혹은 운명의 힘을 직감하면서도 그를 바꾸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할만한 동기를 내경에게 부여했더라면, '관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P.S.3. 이 영화에서 가장 와 닿는 말은 수양대군의 대사  "하지만 나는 이미 왕인데, 이제 와서 내가 왕이 될 관상이라고 하면 그걸 맞춘다고 할 수 있나?" 입니다.  이 세상의 가짜 예언자들과 아부꾼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라고 할까요. 결과적으로 "관상이란게 무슨 쓸모가 있어?"라는 뜻으로 읽힐 수 있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수양대군은 왜 내경에게 계속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고 물어 본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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