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이 낳은 걸출한 배우. 한때 한국 영화 그 자체였던 안성기(1952-2025)에 대한 송사.
0. 1988년. 태어나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갈 수 있었다. 도쿄에서 환승한 귀국편은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한국인 승무원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미인이 있었다.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인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무튼 이런 저런 사연으로 TV에 몇번 출연했을 때라, 그걸 알아본 이분이 몇가지 기념품도 챙겨 주시며 친절하게 대해 주신 기억이 있다. "우리 남편이랑 얼마나 응원을 했는데요. 남편은 외국인이라 한국어도 못 하는데 재미있다고 보더라구요." 당시 나보다 몇살 위였던 나의 동행인은 '우리 남편'이라는 말에 큰 실망을 하는게 눈에 보였다.


그분이 누구였는지는 공항 입국장을 나서 커피 향기를 맡는 순간 기억할 수 있었다.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꽤 긴 세월 동안 안성기의 맥심 커피 광고 파트너였던 바로 그분이었다. 많은 분들이 배우 안성기의 아내로 착각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 뒤로이 분은 여기저기서 인터뷰를 하기도 해서 '외교관과 결혼한 외국 항공사 승무원 이현미씨'라는 신상을 밝혔다. 안성기의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오래 오래 기억되던 분.
국민배우 안성기의 부음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실제 안성기와 나눈 대화나 그의 말들보다 '최장수 커피 모델'이었던 안성기의 웃음, 그리고 이 기억이었다. 이 당시에도 안성기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스타였다.
항상 공기처럼, 커피 향기처럼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당연한 요소였던 그가 떠났다.
1.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내 세대에게 안성기를 대표하는 영화는 <고래사냥(1984)>과 <겨울나그네(1986)>였다. 물론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도 어떤 사람들에겐 그게 <꼬방동네 사람들(1983)>일 수도, <어우동(1985)>일 수도, <깊고 푸른 밤(1985)>, <외인구단(1986)>, <칠수와 만수(1988)>일 수도 있겠다. 아니, 90년대로 넘어와 <남부군(1990)>, <하얀전쟁(1992)>, <투캅스(1993)>, <영원한 제국(1994)>일 수도 있겠고, 어떤 이에겐 <라디오 스타>(2006)일 수도 있겠다.

2. 안성기의 생애 출연작은 대략 65년간 200편 정도인 듯 하다(170편 정도라고 보도되고 있는데 아마 그게 맞을 듯 합니다). 그중 아역 출연작이 70편 정도 된다지만 성연 역으로도 100편은 훨씬 넘는다. 특히나 위에서 말한 시기, 1980년대와 90년대의 안성기는 한 개인이 아니라 한국 영화 그 자체였다. 그 시절, 안성기가 나오지 않는 영화는 그냥 '아예 영화가 아니었던' 시절이 존재했다.

3. 1957년, 5세의 안성기를 데뷔시킨 사람은 아버지의 친구였던 김기영 감독이라고 전해진다. 이해 <황혼열차>로 데뷔한 안성기는 아마도 한국 영화의 전문 아역배우 1호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대략 한해 10편 안팎을 소화하던 안성기는 좀 무리한 스케줄이라고 느꼈는지, 경동중학교에 진학하던 1965년부터 한해 3~4편으로 '관리'를 시작했다. 대략 대학생이 될 무렵인 1969년부터는 10년간 출연작이 없다. 아무래도 연기 말고 다른 길을 가기로 결심했던 듯.
(흔히 경동중학교의 3대 인물로 야구의 백인천, 가수 조용필, 배우 안성기를 꼽는다고 한다. 특히 조용필과 안성기는 동기동창. 그러나 서로 알기는 했으되 그리 친하지는 않았다고 전해진다.)
라고 썼는데 아래 댓글로 어떤 분이 "굉장히 추억이 많은 사이였다"고 정정해 주셨습니다. 근거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eBn7ZeNBjic

'연기 못하는 아역은 없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안성기는 아역 시절부터 발군의 솜씨를 자랑했다. 김기영 감독의 유명한 <하녀>는 말할 것도 없고, 안성기의 열연이 궁금한 사람은 유튜브에서 이봉래 감독의 <월급쟁이>(1962)를 참고하기 바란다. 이 영화는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데 큰누나 엄앵란, 작은누나 방성자와 함께 되바라진 국민학생을 연기하는 안성기의 열연이 일품이다. (뒷날 충격적인 총기 관련 스캔들과 함께 스크린에서 사라진 방성자의 미모도 놀랍다.)

4. 항간에 알려진 것과는 좀 다르게,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안성기의 필모그래피는 끊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얄개'라는 캐릭터로 1977년작 <고교얄개>의 이승현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은 1965년에 이미 <얄개전>이라는 영화가 있었고 만 13세의 안성기가 주인공 나두수 역을 맡았다.
조흔파 원작 <얄개전>에서 나두수가 중학생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실은 이쪽이 더 원작에 충실했던 셈이다. 물론 이 영화는 기록으로만 존재할 뿐, 수많은 한국의 옛날 영화들처럼 어디서도 볼 수는 없다.

안성기의 청소년기를 지금도 볼 수 있는 드문 작품으로 1968년작인 신성일 문희 주연 <젊은 느티나무>가 있다. 최고 스타 신성일이 최고의 신예 문희와 호흡을 맞춘 작품. '그에게선 늘 비누냄새가 난다'로 잘 알려진 강신재 원작 소설대로, 영화는 어머니의 재혼으로 갑자기 잘생긴 오빠가 생긴 한 여대생의 시선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여기서 문희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는 부잣집 아들 역으로 윤양하가 나오고, 안성기는 그의 동생으로 몇번 등장한다. 많은 관객들에게 눈에 익은 '코 찡끗' 표정은 이때부터 안성기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에는 스키, 테니스, 스포츠카, 고고 파티 등 당시의 웬만한 대학생들은 즐기기 힘들었을 자유분방하고 여유넘치는 정경을 보여줘 당시에도 상당히 흥행에 성공했다. 같은 원작을 영상화한 작품 중 꽤 유명한 것이 1986년의 KBS <TV문학관>. 당시 만 16세의 김혜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했었다. 오빠 역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
5. 그리고 나서 앞서 말한대로 대학 진학과 함께 10년간의 공백기가 있고, 안성기는 이 영화로 돌아온다. (사실 이 영화 전에도 몇편의 출연작이 있었지만, 크게 의미를 가질만한 작품은 아니다.)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1980). 이 영화를 시작으로, 안성기는 쉴 수 없는 배우가 되고, 이 영화 이후로 "대학생들도 한국영화를 보는 시대"가 찾아온다. 한국 영화의 대표적인 히트작들이 <미워도 다시 한번>이나 <춘향전> 같은 작품들이었던 시대를 끝낸 것이 바로 이 남자, 안성기의 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8세. 안성기도 풋풋했다.
이 작품에서부터 안성기의 연기에는 어느 정도의 과장이 섞여 보이기 시작한다.
6. 아역시절부터의 습관일까, <바람불어 좋은 날>이나 <고래사냥>의 캐릭터 소화를 보면 절로 떠오르는 다소 과장된 몸짓과 말투. 그런데 그것조차도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겨울나그네>에서 안성기가 강석우를 부를 때 쓰던 "피리부는 소년"이라는 호칭을 만약 다른 배우가 썼다면, 그게 그렇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까. 아무튼 이 '과장'의 뒤에는 솔직한 감정을 숨기려는 소심함이 묻어났다. 감정이든 사상이든,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허락되지 않던 폭압의 시대. 이 '감춤'과 '과장'이 보는 이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기에 안성기는 시대의 배우, 국민의 배우가 될 수 있었다.

여기에 하나 더. 안성기를 '국민배우'라고 자연스럽게 부를 수 있는 건 글자 그대로 그가 연기해온 캐릭터들만 봐도 그냥 '국민의 배우'였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안성기는 왕이나 대통령 역은 몇 차례 했지만(<영원한 제국>의 정조 역이 대표적이다), 재벌 회장 역은 한 적이 없다. 아니, 누구도 안성기에게 회장님 연기를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7. 내게 가장 익숙한 그의 모습은 <고래사냥>의 왕초다. 일단 스크린에서 안성기가 안성기다우려면 면도 같은 것은 하지 않아야 하고, 머리도 감지 않아야 하며, 갑자기 벌떡 일어나 연극적인 대사를 읊어도 어색하지 않아야 한다. 그게 빨치산이든(<지리산>), 그냥 고뇌하는 지식인이(<태백산맥>)든, 삼류 개그맨(<개그맨>)이든, 고공 크레인 타는 노동자(<칠수와 만수>)든, 월남전에 뛰어든 병사(<하얀 전쟁>)든 마찬가지다. 누군가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면 당할지언정, 절대 권력을 갖고 남을 핍박하지 않았다.
드문 예외가 <깊고 푸른 밤>의 냉혈한 그레고리 백이나 <인정사정 볼것없다>의 살인마 역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그래도 <깊고 푸른 밤>은 정서적으로 납득이 가는 부분이 있었지만, <인정사정 볼것 없다>에는 도통 몰입이 되지 않았다. 그 '빗속의 명장면'도 개인적으로는 딱히.

8. 나이들어가며 안성기는 인자한 눈빛으로 상대를 위로하며, 어떻게 해서든 인생의 지혜를 나눠주려 하는, 꼰대 아닌 '드문 어른'의 연기에 특화된 배우가 되어 갔다.
그게 자살특공대 교관이든(<실미도>), 천민들로 이뤄진 주진군의 지휘관이든(<무사>), 도술을 감추고 체육관을 운영하는 관장이든(<아라한 장풍대작전>), 20년 넘게 자신이 가수왕인줄 알고 사는 가수를 보살피는 매니저든(<라디오 스타>), 심지어 대통령이든(<피아노 치는 대통령>) 안성기는 그냥 안성기였다. 변신 같은 것은 필요도 없었고, 할 이유도 없었다.
아마 현실에서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 영화계에서 안성기는 그저 그냥 누구에게나 '선배님'이라고 부르고 싶은 대상이었고, 특히 대한민국의 '영화배우'들을 하나의 독립된 동아리처럼 하나로 엮는 형님이었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안성기이라는 영원한 상왕을 업고 실제로 그 동아리를 관리한 것은 박중훈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둘은 영화 속에서만 콤비가 아니었다. (요즘은 대체 누가 안성기-박중훈의 뒤를 이어 한국 영화계의 형님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9. 한류스타 안성기는 없었을까. 안성기는 두 편의 외국 영화에 출연했다. 한 편은 중국 영화(합작) <묵공>. 한 성을 수호하기 위해 묵가의 제자 혁리(유덕화)가 등장하고, 그 성을 함락하기 위해 명장 항엄중(안성기)이 나선다. 비장미 넘지는 호연. 영화도 좋았다. 가끔씩 케이블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갑자기 한번씩 나오곤 한다.
나머지 한 편은 일본 영화 <잠자는 남자>. '일본의 안성기'로 불리는 야쿠쇼 코지와의 공연이 화제를 모았는데... 본 사람들은 다 쓰러졌다. 안성기는 '잠자는 남자' 역이었는데, 정말로 누워있는 연기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저 위의 사진이 유일하게 서 있는 장면이다. 과연 출연료는 얼마였을까. 사실 이게 가장 궁금했다.

10. 2022년, 안성기는 세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중 두번째인 <한산>, 신연식 감독의 <카시오페아>, 그리고 박흥식 감독의 <탄생>이다. 이 세 편이 마지막 작품들이 될 줄은 본인도 몰랐을 듯. 이렇듯 한국 영화계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울 때, 그의 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이 더욱 안타깝다.
안성기님, 덕분에 오래도록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내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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