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밝히고 싶은 것은 축복받은 연인들의 날인 발렌타인데이가 아닌, 저주받은 암흑의 발렌타인데이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매우 충격적인 날입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이 발렌타인데이는 Ballantine's Day라고 씁니다.
스펠링은 어차피 잘 모르셨죠? 참고로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발렌타인 데이, 언론이 밸런타인데이라고 쓰는 Valentine's Day와는 다른 날이란 말입니다.
이 두개의 차이는 뭘까요? 기왕 얘기를 꺼낸 김에 발렌타인데이의 유래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자코포 바사노, 성 루칠라를 세례하는 성 발렌타인, 1575 -
이 날은 3세기 후반, 로마 황제 클라디우스 2세 시절 사형당한 순교자 발렌타인, 혹은 발렌티누스의 이름을 따 온 날입니다. 하지만 그의 생몰연대며 신상은 모두 불확실하고, 이 인물과 관련된 전설은 상당 부분이 13세기 영국의 제프리 초서(<켄터베리 이야기>의 저자인 바로 그 사람입니다. 영화 <기사 윌리엄>에도 등장했죠)에 의해 창작된 것이라는 설이 지배적입니다.
그리고 초기 교회의 축일이던 성 발렌타인의 날(2월14일)이 낭만적인 연인의 날로 변신한 것도 이 무렵이라는군요.
아무튼 중세 전설에 따르면 성 발렌타인은 로마 병사들의 결혼이 금지돼 있던 시절, 몰래 병사들과 아내들의 결합을 도와줬다고 합니다.
물론 연인의 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 날의 유래는 더욱 깊어집니다. 고대 아테네에서 2월 중순 언저리의 기간은 Gamelion이라는 이름으로 헤라와 제우스의 결혼을 축하하는 기간이었다고 합니다.
또 기독교 이전 로마에서 2월15일은 루퍼칼리아(Lupercalia)라는 축일이었습니다. 건국의 아버지인 로물루스 형제에게 바쳐진 날이었죠. Luper는 바로 늑대, 즉 로물루스 형제에게 젖을 먹인 그 동물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일각에서 말하는 '늑대의 습격을 피하기 위한 축제' 운운은 아무런 근거 없는 이야기입니다.
496년 교황 겔라시우스가 루퍼칼리아 축전을 금지하고 기독교의 성일인 발렌타인 데이를 2월14일로 공표합니다. 아무튼 고대 로마인들의 동지 축제 가 크리스마스의 기원이 됐듯, 오늘날의 발렌타인 데이는 이 루퍼칼리아 축전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사실 좋은 일만 있던 날도 아닙니다. 1349년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는 기독교인 폭도들에 의해 2000명의 유태인들이 몰살당합니다. 이것이 유명한 '발렌타인데이의 학살'이라는 것이죠.
(위 그림) 뉴질랜드를 발견한 제임스 쿡 선장은 1779년 발렌타인데이에 하와이에서 원주민들과 사소한 시비 끝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도 1910년 이날 사형선고를 받았군요.
아무튼 이 날을 상업적으로 처음 이용한 것은 미국의 카드 회사인 홀마크 사였고 그 다음에는 미국의 보석업계, 그리고 일본의 제과업계입니다. 물론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아무리 연인들의 날이라도 서구 기독교권에서 발렌타인데이는 주로 남자가 여자에게 꽃이며 과자를 선물하는 날입니다. 반대라도 무방하긴 하지만, 일방적으로 여자가 남자에게 전해 주는 날로 못박힌 것은 한국과 일본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찬란한 발렌타인데이의 역사 속에서, 어두운 빛을 뿜는 발렌타인 데이가 있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두 개의 발렌타인은 슬쩍 다릅니다. 연인들의 날 발렌타인 데이는 Valentine's Day, 그리고 위스키 발렌타인에서 나온 암흑의 발렌타인 데이는 Ballantine's Day입니다. 두 개의 발렌타인을 혼동하셨던 분들은 이 기회에 구별하시기 바랍니다.
Ballantine's Day도 날짜는 Valentine's Day와 같은 2월14일입니다. 하지만 여러명이 모인다는 사실, 그리고 모인 사람들은 모두 싱글이어야 한다는 사실이 다릅니다. 몇명이 모이건, 사람 수대로 발렌타인 위스키를 병나발을 불고,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며 헤어지는 날입니다.
(구라 아닙니다. http://www.nationmaster.com/encyclopedia/Ballantine's-Day
위키피디아의 이 항목은 삭제된 듯 합니다.)
Ballantine's Day는 한국의 블랙데이(4월14일, 애인 없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짜장면을 먹으며 비탄에 빠지는 날)와 아주 비슷한 날이라고 할 수 있지요. Valentine's Day와 같은 날이라 더욱 효율적일 수도 있는 날입니다.
V데이를 즐길 수 있는 분보다는 B데이를 즐겨야만(?) 하는 분들이 더 많은게 역사의 진실이고 보면 발렌타인 위스키 컴퍼니는 하루 빨리 마케팅의 힘으로 이 날을 더욱 넓게 전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Ballantine' Day를 맞는 분들이 얼른 이런 카드를 받을 날을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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