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TV의 블록버스터 토크쇼 '강심장'이 방송 4주째를 맞았습니다. 대개 새로 시작된 예능 프로그램의 4주째는 적응기 내지는 숙성기에 해당하는 시기입니다. 퀸의 'Seven Seas of Rhye'로 시작해서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JCST'에서 'Superstar'로 이어지는 오프닝 뮤직도 이제야 귀에 익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강심장'은 이제 딱 네번 방송을 한 프로그램치고는 이례적으로 '이제 보여줄 건 다 보여준게 아닌가'하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시작은 정말 장대했습니다. 다른 토크쇼에서 한두명씩 나올 출연진이 무려 20여명이나 쏟아져 나왔고, 이들이 각자 감춰놓은 사연들을 털어놓는 광경은 그럴싸한 볼거리였습니다. 그리고 그게 불과 4회만에, 슬슬 끝을 보인다는 얘깁니다.
'강심장'은 왜 조기에 정착할 수 있었을까요. 당연히 이유 1번은 '강호동+이승기'라는 슈퍼 MC 조합입니다. 2번은 이런 MC진의 힘에 걸맞는 화려한 게스트 섭외력이었고(물론 1번의 힘이 작용합니다), 3번은 새로운 포맷에 대한 이해가 필요 없는, 아주 단순하고 익숙한 포맷이라는 점입니다. 이미 3번은 왕년의 인기 프로그램 '서세원쇼'에서 '토크 1위'를 바꾸던 방식과 같습니다.
아, 물론 그걸 모르시는 분은 없을 거고, 분명히 말하지만, 이미 사용된 포맷이라고 해서 나쁘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오래됐다는 것 자체가 나쁠 수는 없습니다. 미국 얘기지만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나 '오프라 윈프리 쇼'가 무슨 대단히 새로운 포맷을 갖고 있어서 오래 가고 있는 건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개그 콘서트'가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대단히 독특한 포맷이 있어서 장수하고 있는 건 결코 아니죠.
문제는 이 프로그램의 '토크'가 너무 얄팍하고 소모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강심장'이 초반에 보여준 '20여명 게스트'의 본질은 이미 드러났습니다. 말하자면 '뒷줄'의 고정(혹은 반 고정) 게스트들은 '앞줄'에 앉은 진짜 게스트들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가질 뿐, 토크쇼의 게스트로서 결코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케이크의 포장 상자일 뿐이죠. 그 고정(반 고정) 게스트 가운데서도 '붐 아카데미'라는 식으로 자력 구제에 나선 팀도 있지만 어쨌든 그 역할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진짜 '얘기'를 할 사람은 '앞줄'의 6-8명 정도에 국한됩니다. 물론 이 숫자도 '해피투게더'나 '놀러와', '상상더하기'에 비하면 많은 편이죠. 어쨌든 이 숫자가 많고, '뒷줄 멤버' 들에게도 얼마간의 시간이 할애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들 출연자들은 모두 '편집과의 전쟁'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휘발성 토크' 경쟁을 벌여야 하는데, 지금은 '서세원 쇼'가 독주하던 시대가 아닙니다. 온 채널에 비슷한 류의 폭로성 토크 프로그램들이 널려 있죠.
물론 초기처럼 빅뱅이나 2NE1같이 예능 출연이 적어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빅 게스트들이 계속 나와 준다면 뒷줄 멤버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의 생명력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국내의 뻔한 토크쇼 게스트 풀에 비쳐 볼 때 이걸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결국은 몇달 안에 '너 또 나왔니' 성 게스트들이 뒷줄 멤버들과, 이제는 너무도 익숙한 자학성 치고 받기로 생명을 유지하게 될 거라는 예상을 하게 됩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제작진이 설정한 몇가지 장치가 보입니다. 이를테면 '붐 아카데미'라든가 '솔비-낸시 랭'의 경쟁구도, 그리고 김태훈의 분석 코너 등이 있지만 사실 이런 장치들은 메인인 토크가 살아 줄 때 빛을 발하는 것이지, 그 자체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는 없는 요소들입니다.
하지만 '강심장' 특유의 어수선한 포맷은 이른바 빅 게스트들의 기피 요인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무엇보다 강호동이 길 건너편에서 진행하고 있는 '무릎팍 도사'급의 게스트들은 이런 식의 마트 형 토크쇼에 나올 의미를 느끼지 못할 겁니다.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포맷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아래 선에서 좀 더 밀도 있는 얘기를 원하는 게스트들은 '라디오 스타' 정도에서 타협이 이뤄질 겁니다.
얘깃거리가 상대적으로 풍성한 중년 게스트들은 '세바퀴'가 훨씬 편안하게 느껴지겠죠. 반면 '강심장'이 선호하는 아이들 그룹 멤버들은 어쨌든 인생 경험 자체가 얇은 만큼 얘기할 만한 에피소드 역시 곧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박규리처럼 아역때 강호동과 키스를 해 본 건 아니겠죠.
이런 저런 요인들을 둘러보고 나면 '강심장'에 남는 것은 이승기와 윤아의 러브라인 뿐입니다. 매우 강력합니다. 하지만 과연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의문입니다. 두 사람이 실제로 사귀어 준다면 꽤 폭발력이 있겠지만, 설마 그런 자살행위를 하도록 양쪽 회사가 내버려두고 있지는 않겠죠(혹시 모르겠습니다. 엄청난 프로모션을 위해 아예 작정하고 '둘이 사귀어야 해!'라고 나설지도...).
어쨌든 27일 방송된 '강심장'은 불과 네번 방송된 프로그램답지 않은 익숙함-지루함을 줬습니다. 물론 당장 시청률이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을 듯 합니다. 또 모든 예능프로그램들은 시간이 가면 질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패밀리가 떴다'와 '1박2일'이 한창 최고 경쟁을 벌이고 있을 때, 관계자들은 누구나 1년 늦게 시작한 '패밀리가 떴다'가 먼저 힘이 빠질 거라고 예상했고, 지금 그 예상이 맞아 떨어지고 있습니다. 뭐 '6개월(혹은 1년)이면 충분해. 뽑아 먹을 것 다 뽑아먹었는데 뭘'이라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면 할 말은 없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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