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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눈물을 흘리고 사진 한장 찍어 핸드폰에 남기는 걸로 과연 세경의 짝사랑은 끝났을까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정리될 수 있을까요? 얼핏 보기에는 지훈을 짝사랑하는 세경이나 세경을 짝사랑하는 준혁이나 엇비슷한 심정일 것 같지만, 사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준혁에겐 있고 세경에겐 없는 것을 생각해 보면, 세경의 마음 속 병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세경이 마음을 정리하게 된 계기는 우연히 보게 된 지훈과 정음의 포옹 장면입니다. 준혁에게 이끌려 미술관을 나서던 세경은 미술관 정문 로비에서 지훈과 정음이 껴안고 있는 장면을 보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죠. 그리고는 막연히 준혁과 함께 걸어나오다 갑자기 잊어버린 게 있다며 사라집니다.
밤늦게까지 세경을 걱정하며 기다리던 준혁에게 세경은 아까와는 전혀 달라진 모습으로 웃음을 지으며 나타납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온 식구들에게 큰 소리로 신나게 아침 인사를 하고, 갑자기 힘이 넘치는 듯 온 집안의 먼지를 털어 내고 대청소를 합니다.
실연을 경험한 사람에게 이런 류의 행동은 매우 흔합니다. 애써 강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처를 숨기고, 일거리를 찾아 몰두하면서 아픔을 잊으려 합니다. 이러다 보면 실연의 상처는 빨리 잊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가 있습니다. 세경은 거의 매일 지훈과 정음을 봐야 하는 처지입니다. 아예 성북동 집을 떠난다면 모르겠지만, 그 집에 발붙이고 사는 한은 매일 두 사람을 지켜봐야 합니다. 세월이 흐르면 세경의 독백대로 '이 시간도 다 추억이 되겠지만', 그것도 사람이 안 보일때 얘기죠. 바로 뻔히 보이는 '그 사람'이 내 마음은 전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환장할 겁니다.
게다가 마음을 정리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을 빼고 사귀는 두 사람을 혐오하는 거지만 세경은 두 사람을 미워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 지훈의 죄라야 세경을 불쌍히 여기고 옷이며 목도리며 사주고 공부하라고 격려해준 것 뿐입니다. 정음 역시 세경이 서울에서 거의 처음으로 정을 준 사람이죠. 네.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차라리 미워할 수라도 있으면' 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세경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상대가 아무도 없다는 점입니다. 최소한 준혁에게는 '베프' 세호가 있죠. 제대로 이해를 해 줄 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자기의 고민을 얘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소문나지 않게 할 수는 있는 상대입니다.
하지만 세경에겐 세상에 단 둘뿐, 어린 신애와 자신 뿐입니다. 아무리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도 혼자 이겨내야 합니다. 이건 스무살 남짓한 사람에겐 어쩌면 실연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죠. 술잔을 기울이며 하소연할 상대도 없다는 건.
결국 세경은 지훈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기로 결심하고, 온 집안을 대청소하는 걸로 자신의 뜻을 다졌습니다. 하지만 밖으로 배출하지 못하고 응어리진 마음은 언젠가 다시 터지고 말 겁니다. 그리고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충격이 클 것이라는 점도 자명합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살아 보면 여러분도 알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남은 '하이킥'의 애정전선은 준혁이 어떻게 세경의 응어리를 풀어 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질 듯 합니다. 지금 세경이 웃을 때 마음 속으로는 울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도, 일시적이나마 그런 세경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역시 세상에서 준혁 하나 뿐이기 때문이죠. 과연 준혁이 그 짐을 질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지가 궁금합니다.
P.S. 물론 3월말 종방이면 아직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지훈과 정음 사이에 문제가 생기고 지훈이 세경 쪽을 돌아보게 될 여지도 충분합니다. 진짜 심각한 갈등은 그때 발생할 수 있겠죠. 세경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은 굴뚝같지만 어쨌든 남은 30여회 동안 세경의 앞날은 그리 편치 않을 듯 합니다. (할일이 태산인데 시트콤 러브라인에 빠져 있는 이런 중년 아저씨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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