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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인간은 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를 추구할수밖에 없다는 낙관, 식량과 자원의 부족은 기술의 발달이 모두 해결해 줄 거란 낙관, 인터넷을 통한 자유롭고 통제 불가능한 정보의 확산은 진정한 인류애와 평화를 가져올 것이란 낙관...
마블의 혼란과 DC의 제자리걸음을 보면서, 과연 이 세가지 낙관이 모두 무너진 세계에서 슈퍼히어로 영화가 살아남을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오갤3>와 <플래시>를 본 뒤 이 느낌은 더욱 굳어졌다.
누가 이런 망가진 세상에서 한가하게 슈퍼히어로 집단 따위가(한 꺼풀만 벗기고 보면 '정의로운 초강대국 미국이') 우리를 보호하고 구원해 줄 거라는 이야기를 즐길 수 있을 것인가. 낙관의 시대는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
2. 그런 시대에,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정말 끔찍한 제목. 이하 MI7)>의 현실 파악은 진정 탁월했다. 기후위기와 식량 및 자원의 부족으로 인류 전체의 생존이 회의적인 분위기, 전 지구적인 이기주의의 확산으로 전쟁 발발의 위협은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전 세계 정보의 흐름을 지배할 수 있는 '엔티티'라는 고도로 진화된 AI가 등장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대체 어떤 정부가, 어떤 기관이 이 엔티티를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지 않을까.
예전 같으면 '세계의 경찰'이며 '가장 정의로운 국가'인 미국이 그 엔티티를 떠맡으려 했을 것이지만 이미 그런 시대는 지나가 버렸다. 누구도 70억 인구 전체가 다 같이 손잡고 밝은 미래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시대. 과연 우리의 영웅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에서.
3. 배경은 소름끼치게 현실적이지만, 물론, 본질적으로, MI7은 불로불사 톰 크루즈 아저씨의 동화다. 믿을 수 없는 선의로 가득찬 기사들과, 가면 하나로 다른 인간이 되는 마법이 공존하는 판타지 세계다. 그래도 어쨌든 '그냥 인간들'이 이끌어가는 이야기다.
비록 그 주역들은 총알 한방이면 죽을 수 있는 약한 존재들이지만 불굴의 투지와 선을 향한 의지로 어떻게든 우리가 알던 세상이 유지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해서, 이 암울한 미래를 앞둔 인류가, 이제 구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준다.
4. 크리스토퍼 맥쿼리는 이런 세계를 설계하는데 최고의 장인임을 보여준다. 파트 원인데도 긴장감을 떨어뜨리지 않는 장악력. 탁월한 캐스팅과 적절한 교체. 고전과 미래를 넘나드는 미적 감각 모두 최고다.
개인적으로 MI 시리즈 중 최고이면서 코로나 이후 본 모든 영화 중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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