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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목표였던 '8일에 공연 8개 보기' 미션을 마쳤습니다. 가장 비싼 공연은 런던에서 본 '빌리 엘리어트(60파운드)'였는데 가장 싼 공연은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발에서 본 '어새신(7파운드)'이었습니다. 거의 1/10 가격이죠.

물론 공연의 수준, 공연장의 수준, 배우의 수준 등 모든 조건을 무시하고 가격 차이만 강조한다면 말이 안 됩니다. 비싼 공연은 비싼 공연대로 제 값을 하죠. 또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쉽게 접하기 힘든 작품들을 실연 무대로 볼 수 있다는 건 에딘버러 프린지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쉽게 찾아오지 않는 기회입니다.

이번 프린지에서는 '어새신'과 '리틀 샵 오브 호러' 두 편을 봤습니다. 나름대로 지명도는 꽤 있는 작품들입니다. '어새신' 은 최근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스티브 손드하임의 작품으로 미국 대통령을 암살했거나 암살을 기도했던 저격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찾아보니 '암살자들' 이란 제목으로 2005년에 국내에서도 공연된 적이 있었습니다. 오만석이 주연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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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중에서 총 맞아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긴 하지만, 이렇게 암살범이나 암살 시도범이 많은지는 저도 몰랐습니다. 꼽아 보면 이렇게 많더군요.

리온 촐고스(Leon Czolgosz) - 윌리엄 매킨리 암살범
존 힝클리(John Hinckley) - 로널드 레이건 암살 미수범
찰스 기토(Charles Guiteau) - 제임스 가필드 암살범
주제페 상가라(Giuseppe Zangara) - 프랭클린 루스벨트 암살 미수범
사무엘 빅(Samuel Byck) - 리처드 닉슨 암살 미수범
리넷 프롬(Lynette "Squeaky" Fromme) - 제럴드 포드 암살 미수범
사라 제인 무어(Sara Jane Moore) - 제럴드 포드 암살 미수범
존 윌크스 부스(John Wilkes Booth) - 에이브 링컨 암살범
리 하비 오스월드(Lee Harvey Oswald) - 존 F 케네디 암살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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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암살당한 사람이 4명이나 되는군요. 물론 암살 미수범은 이 뮤지컬에 나오는 것보다 훨씬 많겠죠. 아무튼 막이 오르면 독점 무기상(proprietor)이 암살자들에게 총을 나눠줍니다. 모든 암살자가 소개되면서 이 뮤지컬의 테마 송이라고 할 수 있는 '누구든 권리가 있어(Everybody's got the right)'이 흘러나옵니다.

 
(동영상을 다시 보니 사무엘 빅-산타 복장-역으로 마리오 칸토니가 나오는군요. 누구냐면... 그 왜 '섹스 앤 더 시티'에서 게이 안소니 역으로 나오는 배우 말입니다.)


무슨 권리일까요. 당연히 '대통령을 죽일 권리'입니다. 이 뮤지컬이 블랙 코미디라는 걸 잊으시면 안됩니다. 암살자들 중 존 윌크스 부스는 '우리의 위대한 개척자'로 소개됩니다. '당신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든, 그 문제는 대통령을 총으로 쏨으로써 해결될 것'이라는 게 첫 장면의 내용입니다.

이런 식으로 뮤지컬 '어새신'은 암살자들의 사연과 말도 안되는 행태를 보여줍니다. 당연히 하이라이트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던 리 하비 오스월드에게 맞춰집니다. 사회부적응자인 오스월드에게 등장인물들은 "왜 자살따위를 해? 그러지 말고 대통령을 쏴! 어리석게 무명으로 죽지 말고 존 윌크스 부스처럼 역사에 남아!"라고 설득합니다. 결과는...

'어새신'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나 클로드 미셸 숀버그, 알란 멘켄의 뮤지컬처럼 아름다운 멜로디로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작품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 대한 촌철살인의 풍자는 다른 어떤 뮤지컬에서도 보기 힘들죠. 브로드웨이에서 장수한 작품은 아니지만 수많은 학생 극단이나 소규모 단체들이 끊임없이 이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는 이유는 충분해 보였습니다.

레이건을 저격한 뒤 "조디 포스터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랬다"고 증언한 존 힝클리와 연쇄 살인마 찰리 맨슨을 사랑하는 리넷 프롬의 듀엣곡 'Unworthy of your love'입니다.




이번에 에딘버러 프린지에서 본 '어새신'은 Rather Like a Shark/DULOG라는 단체의 무대였습니다.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만 공연하는 뮤지컬의 한계는 이미 지난 2002년 프린지에서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 공연은 그런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그냥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봐야 할 것 같더군요. 전체 출연진 중에서 프로페셔널한 가창력이나 무대 적응력을 가진 배우는 3-4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열의는 높이 평가할 만 했다'고 해야겠죠.

밤 10시 공연이라 공연장인 베들렘 극장은 깜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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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연장 주변은 와글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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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입구의 카페에서 술이며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에 한창인 관객들이 한바닥이었습니다. 축제 기간인 탓도 있었겠지만,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그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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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할 때의 무대. 왼쪽의 연주석이 그대로 노출돼 있습니다.





두번째 뮤지컬은 '리틀 샵 오브 호러(The little shop of horrors)' 입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국내에서도 여러번 공연된 적이 있는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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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딘버러에는 C라는 이름을 가진 공연장이 여럿 있습니다. 프린지에서는 모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소극장들인데, 이번 '리틀 샵 오브 호러'를 본 곳은 C계열인 C too(C2라는 뜻)였습니다. 에딘버러 성 바로 입구의 수백년 된 돌 저택을 지하층을 개조한 극장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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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 전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안뜰도 있습니다.

'리틀 샵 오브 호러'는 로저 코먼의 1960년작 영화를 알란 멘킨이 1982년 오프 브로드웨이용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입니다. 1986년에는 다시 뮤지컬로 영화화됐고(스티브 마틴이 출연합니다), 2003년에는 마침내 브로드웨이에서도 공연됩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미녀와 야수', '인어공주', '알라딘', '포카혼타스'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신화에 한몫을 담당한 달러박스 작곡가 알란 멘킨이 최초로 만든 뮤지컬이라는 점에 주목해야겠죠.

줄거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부모도 없이 꽃집 점원으로 일하는 시무어 크렐번은 지극히 소심하고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청년입니다. 그리 약지도 못해서 꽃집 주인인 무쉬닉에게 늘 이용만 당하죠. 같은 꽃집에서 일하는 오드리를 짝사랑하지만 오드리는 애인인 치과의사 오린에게 늘 구타를 당하고 삽니다.

그런 시무어가 어느날 이상한 식물의 싹을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문제는 이 식물이 말도 할 줄 알고, 심지어 사람을 잡아먹는 외계에서 온 괴물이었던 거죠. 하지만 시무어는 이 식물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오드리의 이름을 붙여 '오드리 2' 라고 부르며 지극 정성으로 보살핍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왠지 엄청난 비극이 될 것 같지만 이 뮤지컬은 이런 사연을 아주 경쾌한 코미디로 풀어갑니다. 물론 블랙코미디죠.)

소극장 공연을 위해 이 뮤지컬의 장점이라면 아주 제한된 캐릭터로 공연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위 내용에 나오는 다섯명의 배우 외에 각각 쉬폰, 크리스탈, 로넷이라는 이름이 붙은 세 명의 여성 코러스만 있으면 공연이 가능합니다.

출연진이 적은 반면 음악적으로는 대단히 탄탄합니다(당연하죠. 알란 멘킨의 명성이 짤짤이에서 딴 건 아닙니다). 가장 잘 알려진 노래는 식인식물 오드리2의 곡인 'Feed Me' 입니다. 영화판에서 오드리2 역은 왕년의 R&B 그룹 포탑스의 리드 보컬 리바이 스텁스(Levi Stubbs)가 맡았습니다.



한곡 더 하자면 악당 치과의사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는 노래. 'Dentist Song'입니다. 스티브 마틴의 젊은 모습이 낯설지도.^^ (아래 동영상엔 없지만 영화에서 환자 역으로 빌 머레이가 나오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이 환자 역은 1960년작 영화에선 젊은 잭 니콜슨의 배역이더군요.^^)



제가 본 '리틀 샵 오브 호러'는 FirstMinute Productions in Association With Ben Monks & Will Young(http://www.dontfeedtheplants.com/home.html)이란 연기단체의 무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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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뮤지컬을 소극장에서 공연할 때 아마도 가장 돈이 드는 부분은 식인식물의 시각적인 구현일 겁니다. 뭘로 만들든 간에 상당히 돈이 드는 구석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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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이 사진 정도는 써 줘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이번 프린지 무대에서의 식인식물은 아주 단순하게 만들어졌습니다. 화분 대용의 큰 들통과 녹색 타이즈를 입은 사람만으로요. 괴물을 만드는 소도구비용은 단 한푼도 들지 않았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꽤 예산 절약이 되지 않았나 싶은데, 의외로 대단히 효과적이었습니다. 아무런 추가 장비 없이 괴물이 희생자를 잡아먹는 모습까지 깔끔한 연출로 커버해버리더군요. 일단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할 만 했습니다.

게다가 주연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가 대극장에서도 충분히 통할만한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코러스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하길 바라는 건 무리였지만, 다섯 주역은 입장료가 2만원이란 게 미안할 정도의 실력을 과시했습니다. 사진 찍는데 상당히 과민한 듯 해서 무대 사진은 찍을 수 없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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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샵 오브 호러'는 대형 무대나 찬란한 효과를 쓰지 않고도 뮤지컬의 묘미를 맛볼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소품'의 대표적인 예로 불릴 수 있을 듯 합니다. 무엇보다 큰 무대를 앞두고 있는 미래의 스타들이 단련하기 위해서는 이런 작품들이 좀 더 자주 무대에 올려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지난 2002년에 본 작품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마빈 햄리쉬(뮤지컬 '코러스 라인'의 작곡자이며 영화 '스팅'과 '더 웨이 위 워'로 오스카상을 받은 인물입니다)의 소품 '그들이 우리의 노래를 하고 있어(They're playing our song)' 도 6-8명이면 충분히 공연이 가능한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작품은 작아도 음악이나 드라마가 주는 감동은 절대 작지 않았다는 점을 전제로 해야겠죠. 2만원짜리 뮤지컬의 감동이 20만원짜리보다 훨씬 더 클 수 있으니까요.

서울의 작은 극장에서도 이런 작은 뮤지컬들이 자주 올려지고, 늘 자리가 꽉 차지는 않더라도 무대와 객석에서 열의에 가득 찬 눈동자들이 서로 부딪히는 광경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뮤지컬 붐이라고는 하지만 20만원짜리 뮤지컬은 꽉꽉 차고 5만원짜리는 손해를 보는 상황, 특정 스타가 출연하는 회차만 매진되고 나머지 회차는 자리가 비는 상황은 결코 건강하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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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의 역사가 그리 오래진 않지만,  이 장르는 현대 문명 사회에서 전통적인 고급 문화와 대중 문화의 간극을 연결하는 고리 문화의 역할로 충실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긴 두 문화의 세계 사이에 끼어 있다 보니 한 쪽으로부터는 너무 가볍다는 비판을 받는 반면, 다른 쪽으로부터는 오히려 어렵고 생경하게 느껴진다는 평을 듣기도 합니다.

이번 여름 여행의 모토 중 하나는 '원없이 공연을 보자'는 거였습니다. 에딘버러와 런던에서 여덟 밤을 지새는 동안 뮤지컬 4편(에딘버러에서 '어새신'과 '리틀 샵 오브 호러', 런던에서 '빌리 엘리어트'와 '레미제라블'), 클래식 공연 2회(에딘버러에서 부다페스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와 런던에서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퍼포먼스 1회('패밀리'), 무용 공연 1회('도리언 그레이')를 달렸습니다. 본래 창작 뮤지컬 한 편을 더 볼 계획이었지만 체력관리상 휴식이 필요하더군요.

그중에서도 압권이라면 아무래도 런던 퀸스 시어터의 '레미제라블'을 꼽아야 할 듯 합니다. 무려 22년째 공연되고 있는 대작 중의 대작. 이상하게도 국내에서는 별 이유 없이 저평가되고 있는 듯(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작품이 아니라서?) 합니다만 세계 최고의 뮤지컬이라는 평이 아깝지 않은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인류가 만들어 낸 단 두편의 뮤지컬을 꼽으라면 웨버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와 이 작품을 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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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의 원작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테지만 동화(?)로 이 작품을 접하신 분들에게는 오히려 뮤지컬의 뒷부분이 대단히 낯설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이 작품의 뒷부분이 1832년, 민중왕 루이 필립 치하의 파리에서 일어나는 6월5일과 6일의 민중 항쟁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항쟁에서 마리우스는 공작가의 자손이지만 민중의 지도자 앙졸라에게 감화돼 시민군의 바리케이트에서 선봉에 섭니다. 장발장은 친딸처럼 키워 온 코제트의 연인인 마리우스가 바리케이트에서 죽지 않게 하기 위해 전장에 몸을 던지고, 마리우스를 짝사랑한 에포닌도 그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죠(뮤지컬에서의 처리는 좀 다릅니다).

본래 소설에 다 나와 있는 진행이긴 하지만, 우리가 잘 아다시피 왕년의 한국 사회는 어린이들에게 이런 민중봉기에 몸을 던진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해 줄만큼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죠.^^

그래서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있어 '레미제라블', 혹은 '장발장 이야기'는 은식기를 훔친 장발장에게 "왜 촛대는 가져가지 않았나, 친구?"라고 말해 19년의 옥살이 기간 동안 사회에 대한 원한으로 가득 찼던 장발장을 선인으로 회개하게 하는 미리엘 주교의 감동 스토리만 기억되게 된 것입니다. 뒷부분의 민중 항쟁은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는 구성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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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혁명'에 초점을 맞춘 뮤지컬이기 때문에 'One Day More'나 'Do you hear the people sing'같은 불온한(?) 노래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뮤지컬이 빛나는 것은 이런 아름다운 선동의 노래들 때문만이 아니죠. 팡틴이 부르는 'I Dreamed a dream', 에포닌이 부르는 'On my own', 심지어 피도 눈물도 없는 철혈형사 자베르에게도 'Stars'와 같은 명곡을 줍니다.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에게 다양한 히트 넘버를 주는 뮤지컬로는 비교할 만한 작품이 없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이 아름다운 스코어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는 요령부득의 스토리 때문에 감동이 반감되는 부분이 있다면, '레미제라블'은 탄탄한 원작의 힘과 재치있는 각색 덕분에 스토리와 음악의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클로드 미셸 숀버그의 역량은 이 작품에서 최절정의 힘을 보여주죠.

아무튼 포스팅의 특성상 노래를 안 들어보면 얘기가 안 되겠죠. 자, 이 뮤지컬의 하이라이트를 가장 잘 정리한 화면을 고르라면 아무래도 신화적인 뮤지컬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에게 헌정된 공연 '헤이! 미스터 프로듀서' 중의 한 장면이 제일 나을 것 같습니다.

이 화면에는 코러스의 At the End of the Day, 자베르의 Stars, 에포닌의 On my own, 장발장의 Bring him home, 그리고 전원이 부르는 One Day More가 담겨 있습니다. 출연진은 전에 소개한 적 있는 레미제라블 10주년 기념 공연 때의 멤버와 거의 동일합니다.




물론 이 방대한 뮤지컬에 담긴 전곡을 수없이 많은 가수들의 노래로 다 들어 볼 수는 없고, 일단 두 곡만 추려 보렵니다.

먼저 'I Dreamed a dream'입니다. 이 곡은 코제트의 어머니 팡틴이 사생아를 몰래 키우고 있다는 이유로 공장에서 쫓겨나 이제 어떻게 살아갈까를 고민하는 장면의 노래죠. 거친 운명 때문에 마음에 품을 꿈 하나 없어진 여인의 비참한 심정을 담은 노래입니다.

10주년 기념 음반에는 루디 헨셜의 노래로 실려 있습니다. 다시 한번 들어 보시죠.



다음은 웨스트엔드 초연 때의 팡틴이었던 패티 루폰의 노래입니다. 앞의 사설이 좀 깁니다.





다음은 브로드웨이 초연 때의 팡틴이었던 랜디 그라프.




90년대 브로드웨이의 에포닌이었던 레아 살롱가는 21세기 재공연 때에는 팡틴 역으로 변신했습니다. 2007년, '브로드웨이 온 브로드웨이' 행사의 일환으로 설치된 거리 무대에서 'I Dreamed a dream'을 부르는 장면을 누가 찍어 뒀군요.

이런 종류의 영상 치고는 화면과 소리가 들을 만 합니다. 그리고 이 가수가 얼마나 가공할 실력을 갖췄는지도 함께 보실 수 있죠.





다음은 'One day more'와 함께 이 뮤지컬의 주제가라고 할 수 있는 'Do you hear the people sing'입니다. '민중이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분노한 사람들의 노래 소리가/ 이것은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을/ 사람들의 음악이다'로 시작되는 가사처럼 혁명을 품은 사람들의 노래입니다.

아무래도 10주년 기념 DVD의 힘을 빌어야 되겠군요. 앙졸라 역의 마이클 매과이어가 빛나는 장면입니다.




이 노래는 온갖 합창단에 의해서도 합창으로 불려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주목할만한 버전은 1996년 런던 웸블리 구장에서 열린 유로 96 축구대회 개막식에서 불려진 버전입니다. 웅장하기로는 압권이죠.




10주년 기념 음반의 피날레입니다. 아무래도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의 결정판이라면 이 장면을 빼놓을 수가 없겠죠. 1987년부터 96년까지 전 세계 17개국에서 장발장 역을 맡았던 배우 17명이 등장해 이 노래를 함께 부릅니다.





자, 지금부터 제가 본 공연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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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명연들을 일찌기 듣고 있었지만, 웨스트엔드 퀸스 시어터의 '레미제라블'은 여전히 훌륭한 공연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약간 할인 판매를 하고 있긴 하지만 평일인데도 저녁 공연은 여전히 만원.

22년간 조금씩 보완됐겠지만, 회전 무대를 기본으로 한 무대의 배치와 운영도 완벽합니다. 아쉬운 건 팡틴 역의 배우가 저 위의 스타들에게는 비교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는 점 정도. 장발장 역의 드루 자리치가 너무 젊다는 점도 살짝 걸렸지만, 보는 공연 마다 코엄 윌킨슨을 기대할 수는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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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과 장발장을 거론할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코엄 윌킨슨은 '라만차의 사나이'에서의 돈키호테로도 절창을 보여준 가수입니다. 중년의 바리톤 역으로 그를 뛰어 넘을 수 있는 뮤지컬 배우는 현재로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아, 물론 한때는 팬텀 역으로도 등장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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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본 공연의 엔딩 인사입니다. 맨 왼쪽의 여자 빼고 그 다음부터 앙졸라, 테나르디에 부인, 테나르디에, 에포닌, 장발장, 자베르, 팡틴, 마리우스, 코제트입니다.

그동안 몇 차례 기회가 있었는데 이상하게 인연이 닿지 않았다가 이번에야 직접 보게 된 공연이라 더욱 가슴에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날 귀국을 앞두고 몸은 피곤하고 부상(?)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이 공연을 그냥 넘어갔으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더군요.

마지막 화면은 지난 2006년, 바로 이 퀸스 시어터 무대에서 있었던 런던 초연 때 멤버들의 재결합 무대입니다. 윌킨슨을 비롯해 마리우스 역의 마이클 볼, 팡틴 역의 패티 루폰, 에포닌 역의 프란시스 루펠, 코제트 역의 레베카 케인 등이 무대에 서서 One More Day를 불렀습니다.





이 공연이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아마도 초연 때 가브로슈 역을 맡았던 소년이 자라 장발장 역을 맡을 때까지는 충분히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 됐기 때문이죠.

현재 이 뮤지컬을 자국 버전으로 공연한 나라는 21개국에 이른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하루 빨리 한국 배우들로 이뤄진 '레미제라블'을 볼 수 있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많은 분들이 김진태, 남경주 주연 버전을 얘기하시는군요. 그렇게 무대에 올려진 적이 있는줄 몰랐습니다. 이제 저변도 더 넓어졌으니 다시 한번 '제대로' 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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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겠지만 매년 8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열리는 에딘버러 페스티발에는 공식 행사인 인터내셔널 페스티발과, 그 주변에서 열리는 프린지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공식 페스티발은 브로드웨이, 프린지는 오프 브로드웨이 식의 성격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겠죠. 세계적인 공연단체와 아티스트들이 으리으리한 공연장에서 뽀대 있게 공연하는 공식 페스티발이 열리는 동시에 온 시내의 수백개 공연장에서 수천개의 곁다리 공연이 열립니다. 연극, 음악, 뮤지컬 등 장르에도 아무 제한이 없죠.

당연히 한국 공연도 꽤 있습니다. 올해도 10여개 단체가 공연했다더군요. 물론 올해 열린 2000여개의 전체 공연 중에선 결코 눈에 띌 정도가 아닙니다만, 꽤 늘어난 숫자입니다. 지난 2002년에 갔을 때 한국 공연을 하나도 안 보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려서(^^) 이번엔 챙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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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는 태권도 가족과 B-BOY 가족이 최고의 가족을 뽑는 콘테스트 결승에서 맞붙어 각자 기량을 뽐내 대결한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서 태권도 가족의 최고 연장자인 할머니와 B-BOY 가족의 할아버지가 눈이 맞아 므흣한 관계를 연출하기도 합니다.

당연히 태권도 패밀리는 태권도 선수 출신, B-BOY 팀은 B-BOY 출신들이 공연에 나섭니다. 전혀 연기 경력이 없는 선수들을 연습시켜서 만든 공연이더군요.

공연장 입구는 이렇습니다. 이 공연장에선 '패밀리'외에도 인도의 민속 공연이 3개, 그리고 다른 한국 공연팀의 '아리랑 파티'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헤비메탈 드러머 출신인 최소리씨의 퍼포먼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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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오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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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패밀리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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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석 조금 넘는 작은 공연장이었지만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이 좋아하더군요. 두 아이를 데려온 현지인 관객 맥클라런드씨에게 물어보니 "공연을 본 친구에게 추천 받아 아이들을 데려왔다. 너무 재미있었다. 나도 다른 가족에게 추천하겠다"고 하더군요.

왠지 뿌듯했습니다.




매일 하루 2회씩 공연을 한 팀이라 지칠만도 하지만, 이른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곧바로 다시 가두 홍보에 나섰습니다.

이건 몸풀기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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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에딘버러 페스티발 기간중엔 온 거리가 공연장이 되고, 가두 홍보도 허가받은 장소와 시간에만 하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패밀리' 팀은 불행히도 그런 기회를 잡지 못했고, 결국 한국식의 게릴라 홍보로 승부를 걸었다는군요.

그냥 몸으로 밀어붙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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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중 B-BOY 팀의 박성배군(정말 박지성과 똑같이 생겼습니다. 맨유 유니폼이라도 있었다면.^^)의 묘기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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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붕붕 나는 건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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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군의 후배. 다른 단원들은 이 주변에서 열심히 목소리를 높이며 공연 전단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좀 더 집단 퍼포먼스를 보여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러면 금세 공연 단속팀이 출동해서 처벌 대상에 오른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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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여기가 로열 마일. 에딘버러 구시가의 중심입니다. 페스티발 기간중에는 인파로 넘쳐나는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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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단속을 피해(?) 두 사람 정도의 팀 퍼포먼스만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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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렵하기 이를데없습니다. 이러고 있으면 수십명이 "무슨 공연이냐? 어디서 하냐?"고 물어보고 전단을 받아 갑니다.


태권도 팀도 가만 있을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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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역의 김미란양이 품세를 시작했습니다. 구경하는 관객들이 늘기 시작합니다.

사실 무허가 홍보라 너무 관객이 몰려도 안됩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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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시범단 출신답게 동작에서 절도가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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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 발차기. 구경꾼들의 박수가 터집니다.

공연 막바지라 다들 파스로 도배가 된^^ 몸들이었지만, 에딘버러 하늘을 지르는 발차기에서 한국 젊은이들의 기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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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멋진 공연장이 어딘지 아십니까?

바로 런던 한복판에 있는 로열 알버트 홀입니다. 2008년 8월 25일, 드디어 이곳에 들어오는데 성공했습니다. 감격의 눈물이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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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로열 알버트 홀은 하이드 파크 남쪽에 붙어 있는 유서깊은 공연장입니다. 굳이 이름을 댈 필요도 없는 세계 유수의 아티스트들이 섰던 꿈의 무대죠.

20년 전, 홍안소년의 모습으로 이곳에 와서 기념사진을 찍을 때 '언젠가 이 안에서 공연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현실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감개무량합니다. 세상 참 좋아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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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본 공연은 BBC가 주최하는 프롬(PROMS)이라는 여름 특별 공연 시즌 중의 하나였습니다. 로열 알버트 홀과 BBC가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셈 치고 저렴한 가격에 여름 내내 유수의 공연자들을 불러 모아 하루에도 3-4회씩 공연을 합니다.

저희가 본 건 그중 53번 공연, PROM 53였습니다. 다니엘 가티가 지휘하는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프로코피에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하는 순서였습니다. 3층의 2만원 정도 하는 티켓을 예매했습니다. (그래도 한국까지 배송을 해 줍니다. 더 싼 표를 샀다면 운송료가 더 들지도 모릅니다.^ )

28일, 이번 프롬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뉴욕 필하모닉 공연도 가장 비싼 2층의 박스석 표는 54파운드(약 11만원?)까지 있지만 저희가 본 3층의 서클석은 5파운드(1만원)짜리 표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자리도 충분히 공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학생증(아무 학생증이나)만 있으면 절반 가격입니다. 대개 이 정도의 충격적인 가격이죠. 안타깝게도 저희는 이 공연까지 볼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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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안에 들어와서 바라본 로열 알버트 기념탑입니다. 네. 저 위의 홀 사진에 보이는 세로 휘장 뒤에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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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내부는 명목상 4층까지가 객석입니다. 물론 4층은 좌석 없는 갤러리 입석. 3층에는 저렇게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매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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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상 매점이라고 했지만 간단한 음료수와 샌드위치를 파는 공간. 관객들이 와인이며 맥주를 마시면서 온갖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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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으로는 눈 높이로 로열 알버트 기념탑이 보입니다. 소박하고 고풍스럽지만 정감 있는 공간입니다. (사실 실제 색은 위 사진보다 좀 더 우중충합니다. 캐논 카메라의 고질적인 왜곡^^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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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돈만 많다면 이렇게 분위기 있게 식사할 수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바로 엘가(Elgar) 레스토랑. 영국인이 사랑하는 작곡가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안 물어봤지만 가격은 상당히 비쌀 걸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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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드디어 3층 입장. 빨간 재킷의 안내원이 일일히 자리를 가르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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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수용인원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큰 홀인데, 공연 시작 30분 전에 거의 차 있습니다.

1층 가운데 자리는 입석인 어레나(Arena)석. 4층의 갤러리와 함께 입석은 당일 현장에서만 팝니다. 가격은 확인해보지 못했는데 좌석 최하가 5파운드였으니 그보다는 싸야겠죠(록 공연이라면 스탠딩이 더 비싸니 혹이 이것도...?).

3층 서클석에서 바라본 공연장의 전체 모습입니다.



대단하죠?

오케스트라 자리는 아직 비어 있습니다. 조명이 근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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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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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 제가 아는 사람도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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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머리 위로 보이는 자리가 바로 갤러리석입니다. 입석. 난간에 기대서 봅니다.

한번 올라가 볼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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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드디어 오케스트라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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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들려 드릴 수는 없고...

프로코피에프는 이런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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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 5번은 이런 느낌.

가티의 지휘는 무척 가볍고 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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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어레나 석은 분방하기 짝이 없습니다. 배낭 베고 누워서 듣는 사람도 몇명 있을 정도.

위 사진은 중간 휴식시간이지만, 휴식이 끝나도 저 주저앉은 사람들은 그대로 있습니다. 물론 오케스트라 바로 앞 사람들은 일어서죠.

연주가 끝나고 사람들은 열광적인 커튼콜에 들어갑니다.

얼마나 열광적인지 한번 보시죠.



연출기법상의 과장(^^)이 좀 있긴 했지만 분위기가 이랬습니다. 수천명의 관객들이 일제히 발을 구르니 공연장이 흔들흔들 하더군요. 물론 가티는 끝까지 앵콜을 아꼈습니다.

자, 이렇게 해서 공연이 모두 끝났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복도에서도 관객들은 차이코프스키 5번의 테마(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민해경의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와 매우 흡사합니다)를 흥얼거리며 계단을 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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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밖의 포스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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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레녹스, 존 레전드, 브라이언 아담스, 게스트 스타 주드 로... 줄리언 로이드 웨버, 전설의 무디 블루스라니. 정말 런던에 살고 싶어졌습니다.

프롬 콘서트, 올해는 좀 늦었지만 여름 런던에 가실 분들은 꼭 한번 시도해 볼 만 할겁니다. 특히 배낭여행 간 지갑 얇은 학생들도 저 정도 가격이 비싸서 못 갈리는 없겠죠. 런던에는 60파운드짜리 뮤지컬만 있는 건 아닙니다.

p.s. 글이 잘 올라가야 할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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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올해 에딘버러 페스티발에서 지난 22일 초연된 매튜 본의 신작 '도리언 그레이'를 봤다는 얘깁니다. 아시다시피 매튜 본은 '백조의 호수'를 남자 무용수들로 채운 걸로 유명한 안무가죠.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1890년 당시에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공포소설의 하나로 받아들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남자간의 금지된 사랑을 은근히 비치고 있는 줄거리(오스카 와일드는 동성애 파문으로 유명한 작가입니다)에 경악한 사람도 있었겠죠.

이 시절에 비하면 매튜 본은 대단한 표현의 자유를 타고 난 셈입니다. 네. 마돈나의 남편인 가이 리치의 친구이며 클라우디아 쉬퍼의 남편인 영화감독 매튜 본이 아니라 무용계의 스필버그 취급을 받고 있는 바로 그 매튜 본입니다. 지난 23일, 매튜 본의 신작 '도리언 그레이'를 봤습니다. 22일 밤 공연이 월드 프리미어였으니 세계에서 두번째로 무대에 올려진 공연을 본 셈이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내용을 잠깐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런던 사교계의 중심 인물인 귀족 청년 헨리 경은 친구인 화가 바질이 그리고 있는 초상화를 통해 그림의 모델인 미남 도리언 그레이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바질은 그레이에게 끌리는 자신에 대해 두려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레이를 만난 헨리는 자신의 분방한 도덕관으로 그레이를 '오염'시키죠. 헨리의 영향으로 그레이는 자신의 미모가 갖는 위력을 마음대로 휘두릅니다.

그는 잠시 여배우 시빌에게 끌리지만, 자신이 무대 밖의 그녀에게 아무련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싸늘하게 변해 버리죠. 결국 시빌은 자살하고, 그는 자신이 악행을 저지를 때마다 바질이 그린 초상이 점점 늙은 모습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영원한 젊음과 미모를 유지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야기는 18년 뒤의 시점으로 넘어갑니다. (혹시 스포일러라고 하실 분도 있을테니 이 정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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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도리언 그레이'는 이 이야기를 21세기의 패션과 광고 산업으로 끌고 옵니다. 그레이는 무명의 웨이터에서 일약 톱모델로 올라서는 꽃미남 스타로, 바질은 '당연히' 사진작가가 됩니다. 이렇게만 바뀌면 너무 평이하겠지만 여기서 헨리 경은 연예계의 권력자(에이전시 사장? 광고주? 미디어의 실력자?)인 레이디 H로, 여배우 시빌은 남성 무용수 시릴로 성별이 바뀝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초상화는 그저 사진으로 대입되는 것이 아니라, 그레이의 내면을 상징하는 분신(도플갱어)로 묘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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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리언 그레이와 레이디 H.)


스타가 된 그레이의 타락을 그려내는 소재로 마약과 술, 바이섹슈얼과 오만방자함 등의 부덕이 무대를 수놓습니다. 매튜 본의 타고난 흥행감각 덕분에 '도리언 그레이'는 훌륭한 대중용 상품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무용극이라지만 조금도 지루하거나, 전문적이라거나, 난해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기발한 회전무대는 수시로 광고 스튜디오에서 사진작가의 침실로, 화려한 파티장에서 은밀한 사랑의 공간으로, 플래시를 받는 현장에서 그레이의 방 사이를 수시로 오갈 수 있게 합니다. 이 이중 회전 무대와 도플갱어의 존재는 너무도 간단하게, '자아의 분열'이라는 주제가 오스카 와일드와 매튜 본을 관통해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죠. 아무튼 이 작품은 19세기 고전의 현대화라기보단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에 더욱 가까이 있습니다. 도리언 그레이가 광고하는 향수의 이름이 불멸(Immortal)이란데선 무릎을 탁 치게 하기도 합니다.
 
매튜 본의 작품을 처음 본 저같은 사람에게 있어 '도리언 그레이'는 매우 흥미롭고 강추하고 싶은 수작입니다만, 이미 '백조의 호수'에서 '에드워드 가위손'까지 그의 작품을 여럿 경험한 평론가들에게 있어선 그리 매력적인 작품이 아닌 듯 합니다. '가디언'과 '더 타임즈'는 모두 인상적인 혹평이더군요. '가디언'은 새로운 것이 없다는 쪽, '타임즈'는 심지어 '게이 포르노가 너무 자주 나온다'는 식입니다. 사실 중요한 러브 신이 모두 남자 무용수들 사이의 것이긴 합니다. 하긴 아주 없는 얘기는 아닙니다. 사실 어찌 보면 매튜 본의 주요 고객들인 '배운 여성 관객'들의 취향에 맞춘 고급 야오이 무용극(?)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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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리뷰 모두 그레이 역을 맡은 리처드 윈저(Richard Winsor)에겐 호감을 갖고 있더군요 윈저나 레이디 H역의 미카엘라 메짜(Michaela Meazza) 모두 본과는 '에드워드 가위손' 등에서 손발을 맞춘 사이입니다.

자, 지금부터는 염장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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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연 장소인 킹스 시어터는 에딘버러 성 남서쪽에 있습니다. 매튜 본 정도의 지명도를 가진 인물이 초연을 하기엔 좀 초라해 보일 정도로 낡은 극장이란 느낌. 1906년에 지어진 극장답게 외양은 꽤 쇠락했고(왕년의 단성사나 스카라 극장 느낌입니다), 아주 규모가 큰 홀도 아닙니다. 하긴 이런 걸 보면, 한국 공연문화는 지나치게 외양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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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세히 보니 아는 사람도 있군요. (네. 휴가중이란 뜻입니다.)


아무튼 극장 안은 '에딘버러 페스티발의 60년 역사상 무용 작품으로는 최고 히트작'이라는 설명답게 입추의 여지가 없이 들어찼습니다. 올해 날씨와 올림픽 때문에 에딘버러 페스티발이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는 데서 더욱 이례적인 히트로 여겨지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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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갈채와 함께 공연이 끝났습니다. 무대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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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난 마지막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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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는 9월2일부터 런던으로 자리를 옮겨 공연된다고 합니다만, 매튜 본의 인기를 생각하면 언제든 국내 무대에도 올려지겠죠. 매튜 본 빠순이(?)를 자처하시는 분들은 곧 비행기 티켓을 사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입가심으로 두 사람의 도리언 그레이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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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 하트필드는 1945년작 영화의 타이틀 롤인 도리언 그레이입니다. 왠지 신성일씨를 연상시키는 데가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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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그레이는 영화 '젠틀맨 리그'의 스튜어트 타운젠드입니다. 하긴 뭐 리처드 윈저 정도라면 그레이 역으로는 손색이 없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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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번 실패하고 오기로 올리니 올라가는군요. 이놈의 유럽 인터넷. 오랜만에 훈훈한 포스팅이라고 좋아하실 분들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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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동안 찍은 사진들입니다.

망 사정이 형편없어서 계속 좌절했는데 오늘 망이 정신차린 김에 올려 봅니다.

사진에 나오는 곳은 어느 도시 주변일까요?

가장 먼저 맞추시는 분께는 돌아오는 오프라인 이벤트에 선물을 드립니다.

(그런데 직접 나와서 수령하셔야 한다는^^)

아무튼 인터넷 사정이 너무 안 좋아서 이걸로 인사를 대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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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티아이 스레이를 나서서 씨엠립으로 돌아오는 동안 니르낫은 우리 부부의 침묵이 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즉 30분이면 다 보고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든(주요 조각들은 손상을 우려해 멀리서나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반티아이 스레이를 보려고 추가 요금까지 받으면서 비포장도로를 한시간이나 달려왔느냐는 비난으로 침묵을 해석한 듯 니르낫은 당초 예정에 없었던 프레 룹을 들렀다.

프레 룹은 앙코르 와트를 연상시키는 5탑형 사원으로, 대지 위로 우뚝 솟아오른 규모가 어쩐지 피라미드를 연상키는 거대 유적이다. 물론 앙코르 와트와 마찬가지로 역시 정면에서는 세개의 탑만 보인다.특히 위 사진에서도 보듯 층층이 쌓아올린 돌은 붉은 색을 띤 라테라이트(뭔지는 모른다)라서 매우 선명한 느낌을 준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을 읽어 보면 이 사원 역시 해질녘에 들르면 사원의 붉은 빛이 석양을 맞아 타오르는 듯한 붉은색으로 보인다고 한다.(앙코르 유적지는 왜 죄다 해질녘 아니면 해뜰때가 가장 멋지다는 것인지.... 투덜투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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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보단 좀 더 붉은 빛이 강조된 사진. 앙코르 와트의 3층을 오르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살짝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주위 경관이 매우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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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뽀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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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내기층에서 입구 쪽을 내려다 본 모습. 중앙 문 쪽에 있는 흰 사람의 모습이 유적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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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반대쪽은 폐허에 가깝다. 다행히 주위에 큰 나무는 없었는지 타 프롬처럼 되진 않았다. 타 프롬이 뭐냐고? 잠시 후면 아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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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고만고만한 밀림 한 가운데서 우뚝 솟아오른 프레 룹에서 돌아보는 조망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날씨가 좋으면 앙코르 와트도 보인다고 하나 이날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점심 식사 후에 들른 곳은 앙코르 와트와 함께 앙코르 지역 관광의 핵심을 이루는 타 프롬(사실은 따 쁘롬이라고 읽어야 제 맛이다). 안젤리나 졸리의 <툼 레이더>에 나와서 새삼 눈길을 끌었던 타 프롬은 거대한 유적지가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 하나에서 자란 나무들에 의해 제멋대로 훼손된 현장을 그대로 보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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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대로라면 타 프롬은 지금도 계속 성장하는 나무들 때문에 변형되고 있어야 하지만 자세히 보면 대부분의 나무 뿌리들을 제거해서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무튼 타 프롬은 인간의 야망과 비전에 의해 설계된 거대한 문명이 자연의 힘 앞에서는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져내리는지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매우 독특하고 매력적인 관광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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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사진을 본 사람들이 많을 게다. 이런 식으로, 돌담 위에 씨앗 하나가 떨어져서 나무로 자라나는 것 까지는 좋은데 어떻게 저렇게 머나먼 돌담 아래까지 저 굵은 뿌리를 내려 보낼 수 있었을까. 참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눈으로 보고 있으니 믿을 수밖에.물론 이 다음 사진에 비하면 이 장면은 사실 약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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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힘+세월의 힘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식물은 하나의 생명체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기업과도 같다. 사방으로 물을 구하기 위해 뻗어나간 뿌리들 가운데서도 몇개는 경쟁에서 지고 뿌리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뒤 흔적만 남아 있다. 수익성을 보장받지 못해 폐쇄된 사업 부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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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 위에서 나무가 자라고, 점점 나무가 커 지면서 나무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어진 돌담은 다시 무너져 내린다. 이제 사원은 인간이나 인간이 거기에 담았던 의미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만다. 천년도 안 되는 시간 속에서 나무는 자신의 자리를 찾았고, 좀 더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나무들은 이깟 유적 따위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원시림 속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녹색으로 채색된 사원은 묘한 매력을 풍겨낸다. 사실 나무그늘이 많고 감춰진 듯 보물찾기 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서 앙코르 지역의 사원들 중에서 가장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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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새벽 다섯시. 전날 '앙코르에서 일출을 볼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계속 갸웃거리던 니르낫 군, "일단 해 보자"며 새벽에 약속을 했다. 워낙 캄캄하던 시간에 출발했지만 앙코르 와트 앞에 도착하자 어느 정도 사물의 윤곽은 보일 정도로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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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두터운 구름. 이건 도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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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혹시 붉은 기운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노심초사 기다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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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깨워 데려나온 마누라는 어느새 병아리처럼 꼬박꼬박.결국 해가 중천에 떠 버렸다(물론 구름 속으로). 어쩔수 없이 일단 호텔로 후퇴.오전 10시부터 다시 스케줄 시작. 이번엔 앙코르 최고의 정교한 부조를 자랑한다는 반티아이 스레이로 향했다. 반티아이=사원, 스레이=여자라는 설명. 즉 '여인의 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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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훨씬 작은 규모. 솔직히 약간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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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을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이 정교한 부조. 붉은 사암을 재료로 목각을 하듯 꼼꼼하게 파낸 솜씨가 정말 장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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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티아이 스레이의 탑들은 이처럼 가짜 아치+가짜 문+가짜 창문으로 되어 있다. 진짜는 문 주위를 장식한 부조들 뿐. 부조는 부조이되 입체감이 놀라울 뿐이다. 물론 요즘 기술로 저렇게 못할 리가 없지만, 그 긴 세월을 이겨낸 고인들의 솜씨 앞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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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눈길을 끄는 힌두 신화의 한 장면. <라마야나>의 악역인 라바나가 수미산을 뽑아 흔들고 있다. 수미산 정상에서는 시바가 파르바티와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데 말이다. 제아무리 불사신 라바나라 한들 시바에게 감히 대들 수는 없는 일. 잠시 후 라바나는 아주 비굴한 자세로 노래를 불러 간신히 시바의 노여움을 달래고 빠져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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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라마야나>에 나오는 원숭이 형제의 싸움. 앞의 글에서 보듯 활을 들고 이 싸움에 개입한 오른쪽의 사나이는 활의 명수 라마 왕자다. 손상은 좀 있지만 원숭이들의 몸짓에서 생동감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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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얼굴이 마모됐지만 이 납치 장면은 바로 <라마야나>의 핵심 갈등인 라마와 라바나의 대결을 촉발하는 '라바나의 시타 납치' 장면이다. 라바나는 라마의 꽃보다 아름다운 아내 시타를 몰래 연모해 어느날 몰래 시타를 납치한다.

쥐도새도 모를 범행이었지만 원숭이 장군 하누만은 이 장면을 목격하고 라마에게 알려줘 라바나를 물리치기 위한 라마의 대장정을 시작하게 한다.사실 라바나는 얼굴이 10개, 팔이 20개인 괴물에다 악신들의 제왕이지만 무려 1년 동안이나 시타를 보호하면서도 그녀의 마음이 돌아서기를 바랄 뿐, 무력을 행사해서 그녀를 차지하려 하지 않은 순정남의 면모를 보인다. (뭐 얘기가 되게 하려니까 그런 거지만...)

하지만 라마는 요즘 기준으로 하면 완벽주의자인 쫌팽이다. 결전 끝에 라바나를 물리치고 시타를 되찾은 라마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알까. 이제 당신을 악신으로부터 구했으니 의무는 다 한 셈이오. 당신은 당신의 갈 데로 가시오."라고 냉정하게 말해 버린다.(원 별... 그럴거면 뭐하러 그렇게 죽을둥 살둥 싸웠누?)결국 라바나와 싸워 이긴 건 시타를 되찾으려는 목적보다는 아내를 빼앗긴 데 대한 모욕감을 씻으려는 동기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얘기다. 21세기라면 시타가 먼저 이런 남편의 자세에 질려서 돌아서련만 불행히도 시타의 시대에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게 여자의 도리였다.

아무튼 시타의 정절은 입증되고, <라마야나>는 해피엔딩을 향해 간다.(21세기는 커녕 17세기만 돼도 이런 클라이막스에서 대단원이 내려져야 하겠지만 <라마야나>는 이 뒤에도 라마와 시타의 귀향 과정을 지나치게 세심하게 서술해 독자의 인내력에 도전한다고 한다.)비록 라바나의 얼굴이 뭉개졌지만 이 장면은 앙코르 일대에서 여러가지 모습으로 표현되어 남아 있다. 이 반티아이 스레이에도 얼굴이 온전한 버전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지나치게 가까이 가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직접 찾아 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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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티아이 스레이의 상징 중 하나안 가루다 마크(?).]


반티아이 스레이를 나서는데 이제야 좀 훤한 해가 비치려고 한다.망할 놈의 해.반티아이 스레이를 가려면 기사 하루 일당(25불)에다 시외 수당(10불)을 더 얹어야 한다. 사실 1시간씩 시골 길을 달려 가서 30분만에 보고 나오면 좀 허탈하기도 하다. 부조가 멋지다는 건 결코 부정할 수 없지만 '반드시 가 봐야 할 곳'이라고 침을 튀기며 권하기엔 조금 망설여진다.
하지만 반티아이 스레이에서 약 15분 거리에 있는 프레 룹과 짝을 지워 놓으면 이동거리는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계속)





앙코르 와트 지난 여행기 모아보기:

http://isblog.joins.com/fivecard/category/여행을%20하다가/앙코르와트/

(이상하게 클릭하면 문제가 생기는군요. 긁어다 주소창에 붙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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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와트는 생각보다 겁나게 크다. 그리고 의미가 만만찮다.
관광은 맨 아래, '해자테라스'라고 표시된 부분에서 시작된다. 흔히 이런 대형건물의 입구는 정남쪽에 있을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앙코르 와트의 입구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서쪽은 당연히 망자의 방향. 거대한 앙코르와트는 산사람을 위한 건물이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한 건물임이 뚜렷이 드러나는 부분이다.저 해자테라스에서 앙코르와트 쪽을 바라보면 이렇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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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문이 너무 커서 사원 중앙의 다섯 탑은 이 위치에선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저 중앙 탑문까지 약 300m를 걸어가고, 중앙 탑문에서 다시 한 300m를 걸어가야 마침내 사원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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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가는 길에서 발견한 기이한 생물. 분명히 고양이의 얼굴인데 사이즈는 쥐 정도다. '고양이쥐'라고 불러야 하려냐? 아무튼 새끼 고양이인 듯 한데 어미도 없이 혼자 돌아다니고 있다. 약간 징그러웠지만 앙코르 와트 주민을 처음 발견한 기념으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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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의 1층은 한쪽 변이 200m에 이르는 거대한 회랑으로 되어 있다. 이 회랑은 윗 그림에서 1번-11번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부조들의 행렬이다. 천천히 걸어서 한바퀴 도는 데에만 30분에서 한시간은 걸린다. 거리만 해도 약 1km. 그 벽을 모두 부조로 채운 수리야바르만 왕의 정성이 대단할 뿐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1번 회랑, 즉 서쪽의 오른쪽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이 옮겨진다. 그리고 순서상 이게 맞다고 한다. 아무튼 1번 회랑은 마하바라타에 나오는 유명한 쿠루 평원의 전투가 펼쳐진다.잠깐, 뭐가 유명한 무슨 전투?이 대목에서 흥분하실 분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니가 언제부터 인도 문학에 심취했다고 마하바라타를 운운하면서 유명한 전투 어쩌구 하는 거냐. 구라 치지 마라, 라고 하실 분들을 위해서 한마디 준비했다. 앙코르와트를 구경 가실 분들은 일단 마하바라타 와 라마야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가시는게 신상에 좋다. 안 그러면 대체 뭘 봤는지 헷갈리기 십상이다.

그 긴걸 언제 보냐?라고 하실 분들을 위해 준비된 책이 있다. 서규석 저, <신화가 만든 문명 앙코르 와트>가 바로 그 책이다. 이 책 한권이면 앙코르와트에서 절대 주눅들지 않고 수많은 유적들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요즘은 영 평판이 나쁘지만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남긴 명언,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를 실감하게 된다.아무튼 이 책을 통해, 그리고 이런 저런 문헌들을 통해 접해 보면 마하바라타는 사촌 형제들간의 치졸하다 못해 한심한 질투와 권력투쟁의 과정에 힌두 신화 최강의 영웅이자 비쉬누의 아바타인 크리쉬나가 뛰어들어 벌어지는, 수십년간에 걸친 살육의 대제전을 극도로 미화한 문학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찮고 어리석은 동기에서 시작해 서로 무릎이 피에 잠기는 맹목적인 살육을 하면서도, 이 신화 속의 주인공들은 엄청나게 예의를 차린다. 일단 전쟁에서도 기마부대는 기마대까리, 전차대는 전차대끼리만 교전할 수 있고 해가 진 뒤에 전투를 시도하는 것은 반칙이다. 매복 따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치졸한 행위로 치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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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도 유럽 침략자들과 맞서 싸우던 인도인들을 지휘해 본 서구인들이 남긴 기록에따르면 당시 인도의 무사들은 매복 공격을 권유하자 얼굴 가득 수치의 빛을 띄며 강력하게 거부했다고 한다. 이 시절이 이 정도라면 수천년 전에는 '명예로운 전투'에 대한 집착은 저 당시에는 훨씬 강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이 서사시는, 위대한 왕가의 후손들이 사촌끼리의 반목으로 저지른 이 대혈투 이후로 인간은 급속히 타락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저런 엉망진창의 전투 부조를 보고 대체 이게 무슨 전투를 묘사한 건지 알게 뭐야, 라고 하실 분들은 미술사에 대한 기본이 부족한 분들이다. 이를테면 서양미술사에서 온몸에 화살이 꽂힌 반나의 청년을 그린 그림이 있다면 설명이 없어도 이건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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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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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원숭이 왕(오른쪽에 길게 누운 캐릭터) 옆에 가족들이 둘러 서 있고, 왼쪽에 활을 든 키 큰 남자가 서 있다면 이건 <라마야나>의 한 장면이고, 서 있는 사람은 역시 비쉬누의 아바타이며 활의 명수인 라마 왕자라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앙코르와트를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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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물소 등에(사진에는 물소가 잘 안 보이지만 오른쪽 아래의 뿔을 보면 물소임이 분명하다) 타고 있는 인상 나쁘고 근엄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이건 힌두교의 죽음의 제왕인 야마 신, 즉 불교에서 말하는 염라대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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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왕, 조신 가루다의 양 어깨를 밟고 서 있는 존재는 비쉬누 신 자신이 아니라면 그의 아바타인 영웅 크리쉬나다. 가루다를 탈 수 있다는 것은 비쉬누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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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층층이 쌓인 머리에 수없이 많은 팔로 특징지어진다. 이 인물은 힌두 신화의 중요한 악역인 락샤사의 우두머리 라바나다. <라마야나>에서 라마의 아내 시타를 납치했다가 결국 라마에게 불사의 목숨을 빼앗기고 마는 비운의 주인공이다.

아무튼 앙코르와트 1층을 돌면서 이런 친근한 표상들을 마주치는 사람들에게는 한시간도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무식하게 길고 으리으리하기만 한 돌덩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 바로 앙코르와트다.이렇게 1층 관람을 마치고 2층을 지나 3층으로 올라가려면 갑자기 눈앞에 엄청난 급경사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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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공포의 75도 계단. 사진상으로도 거의 직벽으로 보이지만, 저 앞에 선 사람들의 눈에도 딱 저 경사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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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밑으로 다가가도 이 정도. 네 발을 다 쓰지 않으면 도저히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본래 12개가 있는데, 그중 유일하게 50도 정도의 '인간적인' 경사를 갖고 있는 서쪽 중앙 계단은 수리중 푯말이 붙어 있다. 그나마 철제 손잡이가 붙여진 남동쪽 계단은 약간 수월하게 오를 수 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런 쪽이 있는 줄 전혀 몰랐다. 후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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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올라온만큼 전망은 매우 훌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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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올라온 만큼 사진은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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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렇게 해서 앙코르와트 관람을 무사히 마쳤다. 내려올 때? 당연히 남동쪽 계단으로 힘겹게 힘겹게 한발짝씩 내려왔다. 매우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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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다시 봐도 너무나 아찔한.이렇게 해서 첫날 관광은 이걸로 정리. 애고애고.

3편을 보시려면-

2편을 보시려면-

1편을 보시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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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비가 내린다. 그리 심하게 쏟아지는 비는 아니지만 먹구름 가득한 하늘과 함께 지금이 캄보디아의 우기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게 하는 그런 비다.
씨엠립 시내에서 앙코르 와트까지는 차로 약 15~20분 거리. 시내를 벗어나 앙코르 와트로 가는 대로변(그래봐야 4차선 정도 된다)에 소피텔과 메르디앙 호텔이 있다.

앙코르 와트가 저 멀리 보이고, 차는 좌회전해 다시 달린다.이내 앙코르 종합 매표소에 도착. 대부분의 사람들이 40불짜리 3일권을 산다. 이 표를 사면 3일간 표를 보여주기만 하는 것으로 모든 주요 관광지의 출입이 자유롭다. 단 3일권부터는 사진을 부착해야 하므로 미리 사진을 가져가는 것이 현명하다. 현장에서 사진을 찍을 수도 있지만 줄의 길이가 장난 아니다.모든 걸 제쳐두고 앙코르 와트부터 보자고 했으나 우리의 드라이버 니르낫 군은 "오전에 앙코르 와트를 보는 법은 없다"고 한다. 건물이 서향이라 오전에 사진을 찍으면 거의 다 역광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오늘같이 흐리고 비 뿌리는 날은 상관없지만, 앙코르 와트를 보고 나면 다른 사원들은 좀 뭔가 부실해 보이기 때문에 오전에는 다른 곳을 먼저 보는게 보통이라는 얘기다.

앙코르 유적군은 씨엠립에서의 거리에 따라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앙코르 와트와 바로 인접해 있는 앙코르 톰, 그리고 폐허의 사원으로 유명한 따 프롬까지 시내에서 3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유적들과 그렇지 않은 유적들이 있다. 후자의 대표자로는 가장 아름다운 부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반티아이 스레이가 꼽힌다. 이런 식으로 해서 앙코르 지역을 보는 관광객의 90%는 앙코르 톰의 남문에서 관광을 시작한다.바로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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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문 밖에는 힌두 신화의 유명한 장면인 유해교반, 즉 '젖의 바다 젓기'가 다리 위의 양 난간으로 묘사되어 있다. 오른쪽 난간의 신들은 왠지 귀여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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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리로 들어가서 앙코르 톰을 다 보고 나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문을 통과해 보니 기사 니르낫 군이 다시 차에 타란다. 여기서 차로 3분 정도를 더 달리고 나니 유명한 바욘이 나타난다. 앙코르 톰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장면이면서, '차 대절 안 하고 그냥 대강 왔으면 큰일 날뻔 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하는 대목이었다.

대부분의 관광객이 앙코르 톰 안에서 가장 먼저 보게 되는 바욘은 도성 앙코르 톰 안에 있던 가장 큰 사원이며, 사면 벽을 메운 부조와 함께 2층으로 올라가면 인면상을 사면에 새긴 다섯개의 탑 구조가 특히 유명한 곳이다. '앙코르의 미소'라고 불리는 그 미소들은 바로 바욘의 인면상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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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가 좀 끼긴 했지만 지금도 선명한 바욘의 부조들. 귀가 큰 앙코르 전사들은 당당한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이 나라에서도 귀 큰게 좋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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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서 가장 귀여운 부조. 원숭이 신 하누만을 연상시킨다고 옆의 영어 쓰는 가이드가 그랬다. 가이드가 딸린 팀을 슬쩍 따라다니면 설명을 훔쳐 들을 수 있는데, 한국 가이드의 솜씨는 그리 신통치 않은 것 같았다. 아무튼 바욘은 대강 이런 분위기. 그리고 이것이 바로 유명한 바욘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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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바욘 하나를 보고 내려온 것만으로 후덥지근한 날씨는 사람 진을 다 빼 놓는다.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유적들을 패스하고 내려와 보니 코코넛 주스를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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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은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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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 팔러 다니는 소녀 하나로부터 피리를 1불에 샀다. 아무래도 지나가는 애들 중에서 제일 예쁜 애 것을 사게 된다. ...뭘 해도 예뻐야 먹고 사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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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유명한 코끼리 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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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이 왕의 테라스 밑으로는 역시 부조가 수백개 감춰져 있다.

그중에서 단 둘만이 선탠이 안 됐는지 붉은 얼굴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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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선탠할때 니들은 뭐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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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치타임. 현지식의 볶음 국수다. 계란과 야채를 넣고 볶은 국수로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니, 매우 훌륭했다는게 맞는 표현일 것 같다. 물론 볶은 것이므로 음식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었지만 물을 그냥 마실 용기는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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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렇게 해서 오전 탐방 끝.






2편을 보시려면-



1편을 보시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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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짓을 포함해 7시간(시계상으로는 5시간. 한국보다 2시간 늦다)을 날아 씨엠립에 도착해 보니 오후 5시. 경주 시외버스 터미널 정도 규모의 공항이 막 풀어놓은 한국인 관광객들로 복작복작한다. '자리만 비즈니스석'에 앉은 덕분에 일찍 나왔는데도 앞 비행기가 풀어놓은 손님들이 많은지 입국장은 빽빽하다.

 

입국장이 혼잡한 가장 큰 이유는 캄보디아가가 입국 비자 형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여행자들은 도착후 미화 20달러와 사진을 제출하고 비자를 받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미 비행기 안에서 비자 서류를 작성하게 되어 있는데, 이 처리가 시간을 잡아먹는다.하지만 이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팁!일단 배운대로 실행을 했다. 시장통같은 입국장에서 일단 제복 입은 사람을 발견, "V.I.P"라고 말했다. 무슨 말이냐는 듯 한번 쳐다본다. 다시 한번, 또박 또박, "V.I.P"라고 말하자 그의 얼굴에 약간 난처하다는 듯도 하고, 어떻게 알았느냐는 듯도 한 미소가 떠오른다.몇명이냐고 묻고, 사진과 여권을 받아 가는 그에게 얼마냐고 물으니 "1인당 1불"이란다. 그렇다. 이게 바로 캄보디아판 급행료다. 이 급행료의 가격은 공항 직원 개개인의 성벽에 따라 1불부터 5불까지 다양한데 아직 5불을 넘는 거액(?)을 요구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비자 처리 테이블을 보니 고소를 금할 수가 없다. 20불씩 내고 비자를 만드는 사람들이 선 줄은 수백미터가 될 지경인데 이 줄을 처리하는 직원이 단 두명이다. 나머지 직원들은 V.I.P들(!)을 처리하거나 뭔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아무튼 1불씩을 더 낸 덕에 공항의 인파를 멀리 하고 얼른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공항 밖으로 나가자 가는 빗발이 뿌리는 가운데 택시 스탠드가 보인다. 시내 5불, 하루 임대는 25불. 뭔가 공인 가격인듯한 냄새가 풍기기에 주저하지 않고 호텔까지 5불을 내고 가기로 했다.  이 친구의 이름은 소르(Sor) 시르니르낫(Sirnirnath). 소르는 성에 해당하고, 아는 사람들은 그저 니르낫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밝은 성격에, 흔히 볼 수 있는 동남아식의 '어쨌든 통하긴 통하는 영어'를 구사한다. 피차 짧은데 잘 됐다. 오히려 이런 쪽이 더 잘 통한다.  아무튼 우리의 니르낫 군은 자기가 내일부터 태우고 다닐테니 임대를 하란다. 대부분의 관광 책자에 20불이라고 돼 있긴 하지만 사실 하루 종일에 25불이라는 것은 한국적인 정서로는 대단히 싼 가격이다. 그리고 인상도 멀쩡해서 이 정도 기사 구하기도 힘들 것 같아 그러마고 했다. 저녁식사 시간이 다 됐길래 명성이 자자한 평양랭면에 들렀다 가자고 했더니 OK.

 

식사를 마치고 보니 호텔은 바로 평양랭면 길 건너 골목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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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업원들의 미모는 상당한 수준. 노래와 춤도 수준급.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간드러진 평양말씨의 애교 넘치는 서비스 솜씨는 그야말로 최강의 경쟁력을 자랑합니다. 손님들이 식사를 끝낼 때쯤 가까이 와서는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옆에 서서 말벗이 되어 줍니다. 물론 음식 맛도 훌륭합니다만, 누가 교육을 시켰는지 몰라도 사근사근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평양이 일찌기 조선 500년을 관통한 색향으로 군림했던 까닭을 알 것 같습니다.

군무(?)입니다.


 

하지만 정말 대단한 건 혼자 춤추던 북한 처자의 모습. 화면 시작하고 10초만 있으면 환상적인 대회전 묘기를 볼 수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저렇게 춤을 추고 바로 홀로 나가서 서빙을 시작한다는 것이죠.



아무튼 좀 안된 것은 철저하게 폐쇄 생활을 한다는 겁니다. "사원 가 봤습니까?"하니 "저희는 쉬는날이 별로 없어서 못가봤습니다" 하는 겁니다. 아니, 씨엠립에서 앙코르 와트를 못 가보다니.

이들의 말에 따르면 휴일은 한달에 꼭 하루. 그날은 아예 가게 문을 닫고 미니버스 같은 차량으로 같이 가게를 나서 쇼핑을 하건 돌아다니건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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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냉면 맛은 기본.^^



첫날 밤을 그냥 보내기도 그렇고 해서 현지 레스토랑 쿨렌2(KULEN 2)에서의 압사라 공연을 예약했다. 뷔페를 포함하면 1인당 11불, 공연만은 6불이었다. 호텔에서 나갔다 들어오는 차편이 왕복 10불. 물론 돈을 더 절약하고 싶으면 오토바이 택시인 툭툭으로 왕복 6불 이내에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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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분위기가 동남아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극장식당 분위기라 약간 실망도 했지만 공연의 수준은 상당했다. 한국도 오래 전에는 국악의 맥을 잇는 사람들이 관광객을 위한 식당에서 부채춤을 추는 것으로 연명해야 했었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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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계속 오는 가운데 씨엠립의 나이트 라이프 중심지라는 올드 마켓 에리어의 펍 스트리트(Pub Street)를 가 봤지만 진창 속에 인적이 드물다. 파타야나 푸껫의 유흥가는 여기에 비하면 타임즈 스퀘어로 보일 지경이다. 지나가는 툭툭을 타고 그냥 호텔로 귀환해 새 날의 일정에 대비하기로 했다. 자, 드디어 본격적인 사원 관광 시작이다.



1편을 보시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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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앙코르 와트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뛰십니까? 아니면 씨엠립이라는 도시 이름을 들어 보신 적 있나요? 아니면 캄보디아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 갑자기 생각이 안 나시는 편입니까?

 

블로그를 옮기면서 옛날 글들을 조금씩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글은 옛날 블로그에 올려놓은 사진이 전부 깨졌더군요. 옛날 블로그에서 손을 볼까 하다가 아예 옮기는 김에 새로 만지기로 했습니다.

요즘 부쩍 씨엠립과 앙코르 와트에 대해 관심을 갖는 분들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적극 권장입니다. 특히 건기에 가실 수 있는 분들은 대단한 행운아라고 해야겠죠. 이 글들은 제가 무작정 다녀온 씨엠립 여행에 대한 얘기들입니다. 벌써 2년전 얘기지만, 그래도 아직은 정보로 쓸만할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 <소년중앙>류의 책에서 '밀림 속의 신비, 앙코르 와트' 류의 글을 읽은 뒤부터 앙코르 와트에 한번 가 보는 것은 저의 변함없는 꿈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크메르라는 나라는 캄보디아로 이름을 바꿨고, 어느새 '절대 갈 수 없는 나라'에서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나라'로 바뀌었습니다. 제대로라면 건기인 10월에서 12월 사이에 갔어야 했지만 그래도 갈 짬이 났다는 게 너무나 기뻤습니다.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게 아쉬웠지만 아직도 다녀왔다는 게 꿈만 같을 정도로 앙코르 와트는 멋진 곳이었습니다. 혹시나 가실 분이 있을까봐 지난 6월말부터 7월초까지 다녀온 경험을 기준으로 준비 과정을 상세히 적어 봅니다.

다른 곳에 써 있는 글을 퍼온 탓에 갑자기 반말을 하더라도 양해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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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막연히 '직항기인 아시아나를 타고 씨엠립(앙코르 와트를 구경하기 위해 가야 할 도시)적당한 호텔에서 자면 되겠지' 정도로만 구상하고 있었다. S씨의 친척이 현지에 있다니 적당히 도움을 받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생각도 했다.

하지만 여러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일단 항공료. 씨엠립 직항 아시아나는 1년중 가장 싼 가격이 64만원이었다. 유류부담금(그런게 있다)을 합하면 73만원 정도 되고 두 사람이면 약 150만원이 항공료로 소요된다.

뭐 싸다면 싸다(아시아나의 7월 가격은 유류부담금을 합해 80만원쯤 된다). 하지만 이거보다는 더 싼게 없을까 생각하게 된다. 베트남 항공은 가격에서 큰 차이가 없고, 오히려 훨씬 불편하다. 그러나 원동항공이라는 대안이 있다.

 

원동항공은 6월말 가격이 30만원(+유류 39만원)이었다. 거의 절반 가격이다. 물론 직항이 5~6시간 정도 걸리는 반면 원동은 갈아타는데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해 7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기내식은 나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경험해본 결과 이 악평은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그러나 기내식 한번에 30만원을 걸 사람이 아니라면, 아시아나를 타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원동항공을 개별적으로 탑승하면 흔히 로열 이코노미라고 불리는 '좌석만 비즈니스석'에 배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같이 타는 승객의 90%가 패키지 여행객이다 보니, 이들 중에서는 누구 하나를 빼서 좌석 승급을 시켜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행사가 장사를 잘 해서 객석이 만석이 되면 개별 여행객들이 그 과실을 따먹게 된다.

불행히도 원동항공은 2008년 현재 서울-씨엠립 구간을 운행하지 않습니다(회사가 부도 났다는 설도 있더군요). 아무튼 그래서 현재로서는 이만치 싸게 날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떠나는 아시아나 직항의 여름 요금은 여전히 60만원대(유류할증료 포함). 방콕-씨엠립 구간의 항공편은 16만원 정도지만(http://www.bangkokair.com/en/index.php) 서울-방콕 요금을 생각하면 이쪽이 쌀 리는 없습니다. 방콕 구경을 겸할 거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가격만 생각한다면 개별적으로 가는 것이 역시 훨씬 비싸다. 우리 부부의 경우 항공권이 원동항공으로 2인 합계 78만원, 호텔비가 9만*4박 해서 36만원 들었다. 반면 적당한 패키지를 이용했다면 1인당 39만원+유류 9만원 해서 48만원, 곱하기 2하면 96만원 정도가 든다. 여기에 교통비, 식대, 가이드비(만약 쓴다면) 등을 감안하면 패키지는 개별 여행의 60% 가격 수준이 된다.

그러니까 이건 순전히 취향에 따른 선택이다. 만약 당신이 (1) 일단 관광지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싶고 (2) 호텔의 레벨이 좀 낮은 것은 전혀 상관이 없고(사실 패키지로 여행을 가 보면 호텔 방에서 보내는 시간이란 거의 자는 시간 뿐이다. 따라서 호텔 시설은 어쨌거나 상관이 없다) (3) 가이드가 가자는 대로 악어농장에서 사파이어 가게까지 온갖 쇼핑센터를 가도 참을 수 있고 (4) 피곤해도 절대 먼저 호텔에 갈 수 없는 그런 상황을 모두 웃어 넘길 수 있다면, 패키지 여행은 대단히 좋은 선택이다.

내가 패키지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1) 앙코르 지역의 사원들을 데리고 다니는대로 다 돌기에는 체력에 자신이 없었고 (2) 날도 더운데 좀 좋은 호텔에서 좋은 수영장의 혜택을 누리며 탱자탱자하고 싶었고 (3) 새벽에 나가서 저녁식사 후에 호텔로 기어들어와 기진맥진 잠이 드는 여행은 이젠 하고 싶지 않았고 (4)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곳만 골라 다니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건 부수적인 거지만, 아무래도 개별 여행을 하게 되면 여행지에 대한 공부를 좀 더 하게 되고, 여행을 다녀온 뒤에도 뭐라도 더 남게 된다. 게다가 '이런 건 나만의 여행에서만 할 수 있다'는 경험도 몇가지 가질 수 있다. 지난 2004년 베이징에 갔을 때, 나는 북경짜장면도 먹어 보고 싶었고, 북한 식당의 평양냉면도 먹어 보고 싶었고, 명십삼릉 중에서 영락제의 장릉도 보고 싶었고, 북경 동물원의 팬더도 보고 싶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대신 나는 실크 이불이며 싸구려 진주 공장을 돌아봐야 했다.

Angkor Palace Resort & Spa는 분류에 따라 4성 또는 5성으로 의견이 갈리지만 아무튼 최고급의 호텔이었다. S씨의 추천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호텔이 있었는지도 알 길이 없었겠지만, 특히 그녀의 오라버니가 경영한다는 S사는 인터넷 가격 120~150불인 이 호텔을 90불에 예약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과정은 이렇다.

인터넷으로 이 호텔의 가격을 알아보다가 최저가로 85불을 발견했다. 이걸로 예약을 하려고 전화를 해 봤다. 전화를 안 받는다. 다시 걸어봤다.

현지인이 전화를 받아 쏼라쏼라한다.

S사에 전화했다.

S사: 식비는 끼니당 5불 정도, 호텔비는 40불 정도면 좋은 데서 주무실수 있습니다.
나: 저어, 호텔은 APR&S로 하려고 하는데...
S: 네? 거긴 좀 비싼데요.
나: 비싸다면 어느 정도...?
S: 우리가 예약해도 150불 정도 됩니다. 할인을 잘 안 해줘서 패키지가 잘 못 들어가죠.
나: 좀전에 인터넷에서 85불짜리를 봤는데요?
S: 그럴리가요. 그럼 확인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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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에 다시 전화가 왔다.

 

S: 확인해봤는데 우리가 해도 90불 정도까지밖에 안 된답니다.
나: 그래요? 생각보다 좀 비싸네요.
S: 네. 이제 저희가 90불보다 더 받을 수는 없고... 그 가격에 하려면 하세요.

전화를 끊고 생각해봤다. 어딘지도 모르는 호텔 예약 사이트에다 카드를 오픈하는 위험을 감수하느니 5불 정도 더 내고 믿을만한 국내 회사에 하는게 훨씬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아무튼 이런 절차는 호텔 예약을 할 때 초보자들이 참고해야 할 부분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호텔비와 항공권에는 정가라는 것이 없다. 따라서 '호텔비 50% 할인'같은 문구야말로 사기 중의 사기다. 세상에 정가도 없는데 어디서 뭘 어떻게 할인을 한단 말인가? 국내 호텔들도 어떤 때에는 10만원, 어떤 때에는 30만원씩 하는게 보통이다. 따라서 적당한 가격을 골라 내는 데에는 제법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제법'이라고 해 봐야 구글을 이용해 약 1시간 정도만 웹서핑을 하면 충분하다.

이렇게 해서 항공권과 호텔을 잡았다. 이제 가기만 하면 된다. (계속)

p.s. 현지 여행사와 잘 얘기하면 7월초까지는 70불 정도에 잘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역시 저는 웹서핑 시간이 좀 짧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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