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볼만한 배우들과 탄탄한 라인업으로 무장한 드라마 세 편이 동시에 시작했습니다. 올 연초에도 '공부의 신'과 '제중원', '파스타'가 동시에 출격하면서 상당히 관심을 모았지만 이번 대결과는 중량감이 다릅니다. 손예진의 '개인의 취향', 문근영의 '신데렐라 언니', 김소연의 '검사 프린세스'로 대표되는 세 작품이 과연 어떤 대결을 펼칠까요.
첫날 시청률에서는 일단 '신데렐라 언니'가 앞섰습니다. 나이 먹은 시청자들이 끼어들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시청률 면에서는 '신데렐라 언니'의 강세가 당분간 이어질 듯 합니다. 세 드라마 중 '신데렐라 언니'와 '개인의 취향'의 비교 포인트를 찾아봤습니다.
1. 손예진 vs 이미숙
왜 손예진 vs 문근영이 아닐까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본 대로 얘기하자면 확실히 이랬습니다. '농익은 연기력'이라는 측면에서 특히 그랬습니다.
이미숙은 당연히 - 딸 문근영에게 의붓아버지를 백만명씩 가져다 붙여 주는, 없느니만도 못한 엄마 역으로 너무나 적절한 연기를 보여주더군요. 도망가면서도 옷 구겨질 걸 걱정하는 여자, 장농에 감춰둔 반지 빼내 온 걸로 그 남자와의 인연을 정리했다고 생각하는 여자, 새로운 표적 앞에선 연기대상감의 솜씨를 보여주는 여자. 특히 김갑수와의 자전거 신은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반면 손예진은 첫회에서 너무 망가지는게 아닌가 걱정할 정도로 코믹 멜로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보여줄 수 있는 요소는 다 보여줬다고 해야 할 듯 합니다. 어쩌면 이 배우가 자신의 미모를 이제 신뢰하지 못하고 연기파 배우로 완전히 지향점을 바꿔버린게 아닌가 할 정도로... 봉태규가 덮치는 장면에서의 박력(?)은 좀 아쉬웠지만 버스 안에서 청승맞게 우는 장면은 이제 이 배우가 어느 선을 넘어섰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2. 이민호 vs 문근영
이 두 배우가 한데 묶이는 것은, '나는 이 사람이 나오기 때문에 이 드라마를 본다'는 동기를 제공하는 배우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동년배 중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역시 어제 두 드라마의 첫회에서 보여준 모습은 아직은 조금 더 발전의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더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일단 문근영은 80점 정도. 앙칼지게 소리치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더라는 점에선 좋았지만, 그 결과 발음이 뭉개져 대사 전달이 힘들었다는 점도 지적할만 했습니다(하긴 서우와 비교하면 발음 얘기는 할 수가 없겠죠). 너무 신경질적인 아이로 방향을 잡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아무튼 늘 얘기 나오던 '성인 역할'과는 거리가 있지만 변신의 시도 자체는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이민호는 이보다는 좀 더 역할 적응력이 돋보였습니다. 두가지 톤으로만(감정이 실리지 않은 평상어와 화난 말투) 연기하면 충분했던 '꽃보다 남자'에서 실제 살아있는 남자를 연기할 때 어떤 모습을 보일까 궁금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훌륭했습니다. 하긴 '꽃남' 전에도 꽤 탄탄한 솜씨를 뽐낸 이민호니까... 그런데 '완전히 나쁜 남자'일 때에 비해서는 매력이 덜하다는 지적(저의 동거인의 주장입니다)도 있더군요.
어쨌든 두 배우 모두 자기 몫의 시청자를 끌어들일만한 솜씨는 충분히 보여준 듯 합니다.
3. 조은지 vs 강성진
사실 제 생각에 '개인의 취향'의 최대 강점은 손예진도 이민호도 아닌 조은지입니다. 정말 채널을 돌리다 '개인의 취향'을 보게 된 사람들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건 조은지의 한방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달콜살벌한 연인'에서 정평이 난 조은지의 코믹 조연 연기는 일단 믿을만 합니다.
여기에 대응하는 '신데렐라 언니' 쪽의 카드로는 누가 있을까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강성진을 첫손에 꼽을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소년 정우는 코믹 카드로 훌륭하지만 이 소년이 곧 자라서 옥택연이 될테니...(어제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 똥땡이 소년이 짐승남 택연으로 성장하다니... 뭐 이건, 진짜 신데렐라는 소년 정우더군요). 일단 주인공들을 소개하는데 바빠 첫회에는 강성진에게까지 눈길이 가지 않았지만 결국 이 드라마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게 하는 건 그의 역할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4. 한희 vs 김규완
일단 드라마의 전체적인 분위기에선 '피아노'의 김규완 작가가 단연 앞섭니다. 지나치게 어둡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수시로 등장하는 문근영의 독백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듭니다. 인물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김갑수와 이미숙의 자전거 신 같은 부분은 다른 작가들이 흉내낼 수 없는 이 작가만의 독특한 잔혹 동화같은 느낌을 잘 살려 줍니다.
'개인의 취향'은 원작자인 이새인 작가가 직접 각색을 맡았는데 물론 원작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몇몇 부분에서 좀 구태의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요즘 시청자들은 이민호가 건축 모형을 들고 버스에 탈 때부터 그 모형이 온전하지 않을 거란 점도 잘 알고, 사실대로 털어놓지 못하는 남자가 시간을 끌 때 같은 장면에도 너무나 익숙해져 있죠. 물론 장르의 클리셰라는 것도 있어야겠지만 이 시간대에는 언제든지 채널을 돌리게 할 경쟁자가 있다는 사실이 큰 부담입니다.
반면 전체적인 배우들의 조화를 이끌어내는 솜씨는 '개인의 취향'의 압승입니다. 물론 전반적으로 능숙한 배우들이 캐스팅됐다는 이점도 있겠지만, '신데렐라 언니' 쪽은 어떻게든 서우와 천정명을 나머지 배우들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할 필요가 느껴집니다. 천정명의 대사 솜씨가 하루 아침에 나아 질 리는 없겠지만, '파주'와 '탐나는도다'의 서우가 여기서 무너진다면 아마 그건 서우의 책임으로 비쳐지진 않을 듯 합니다.
4. 2AM vs 2PM
뭐 당연한 얘기지만 '개인의 취향'으로 데뷔하는 임슬옹과 '신데렐라 언니'의 옥택연은 모두 연기 데뷔입니다. 개인적인 인기로는 옥택연이 단연 앞서지만 연기력은 임슬옹에게 훨씬 기대가 갑니다. 이유는 '패떳2'를 보신 분이라면 당연히 짐작하실....
하지만 뭔가 벗은 상태에서의 박력은 택연에게 대적할 사람이 대한민국에 많지 않을 듯.
이상 두 드라마 첫회를 보고 느낀 점을 비교해 봤습니다. 두 쪽에 더 신경을 쓰느라 '검사 프린세스'는 별로 보지 못했다는 점이 좀 아쉽습니다. 나름 재미있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김소연의 새 머리 모양이 별로 어울리지 않아 실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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