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브라운의 원작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일 겁니다. 만들 때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뒀다는 말처럼 장면 전환이나 사건의 연결은 상당히 영화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무슨 사건이든 댄 브라운의 작품은 일단 수수께끼를 풀 때 필요한 역사적인 근거나 당위성을 독자/관객에게 말로 설명해 줘야 한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장 1분 1초가 아까운 일촉즉발의 위기에서도 랭던 교수는 누구에게든 옆에 있는 사람에게 현재 상황의 의미를 전문다답게 해설해줘야 하는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영화상으로는 자연히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딛고 만든 '천사와 악마'는 '다빈치 코드'에 비해 훨씬 개선된 오락 대작입니다. 일단 그런 말로 하는 설명이 꽤 줄어들었고, 액션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여기에 바티칸의 찬란한 유적이 볼거리를 제공해주니 금상첨화더군요.
론 하워드는 이번에도 톰 행크스와 음악의 한스 짐머,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나리오 작가로 꼽히는 아키바 골즈만의 도움을 받아 아주 무난한 블록버스터를 만들어 언제까지 버틸지는 모르지만 전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리뷰를 그냥 쓰자니 좀 심심해서 스타일을 바꿔 봤습니다.
오늘의 요리입니다.
재료: 댄 브라운 소스 한 병, 톰 행크스 통으로 한개, 이완 맥그리거 2/3개, 스텔란 스카스가드 300g, 아민 뮬러 스탈 100g, 아키바 골즈만 적당량(조미료. 너무 많이 넣으면 느끼함), 아예렛 주어 약간(없을 때에는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크리스티나로 대체 가능)
준비물: 바티칸 관광 기념품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큰 접시. 각각 물, 불, 공기, 흙이라고 써 있는 인두 네 개, 비상용 램프(영화 '쉬리'에서 썼던 폭탄 소품도 가능),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프린트. 보드카, 라이터.
사회자: 안녕하세요! 오늘의 요리 시간입니다. 네. 오늘은 '천사와 악마'를 함께 만들어 보겠습니다. 요리연구가 론 하워드씨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시죠?
론 하워드: 아 예, 그럼요.
사: 시청자 여러분을 위해 잠시 설명 드리자면, 하워드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요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또 요리마다 독특한 이름을 붙이시죠. 그중에서도 인어 요리의 참맛 '스플래시', 불맛이 살아있는 '백드래프트', 무중력공간요리 '아폴로 13' 같은 걸로 특히 유명하십니다. 뭐 이런 요리들에 비하면 정작 요리 아카데미에서 수상하신 '뷰티풀 마인드'요리는 창의성이 좀 떨어진단 평도 들었습니다.
론: (헛기침)
사: 아, 죄송합니다. 그 요리에서도 제니퍼 코넬리 양념은 정말 최고였죠. 네. 최근에도 닉슨을 냉동시켜서 재료로 쓴 '프로스트/닉슨'의 맛은 기가 막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만든 '천사와 악마'는 몇년 전에 선보이신 '다빈치 코드' 요리와 참 비슷하군요?
론: 요리에 대해 모르면 말을 말라고.
사: 아니, 톰 행크스를 뭉텅 넣고 댄 브라운 소스로 지글지글 조린 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때도 한스 짐머를 틀어놓고 먹어야 한다고 했잖아요?
론: 그때 그건 프랑스 요리잖아요. 이건 이탈리아 요리고. 꼭 파스타가 들어가야 이탈리아 음식이란 편견을 버려요.
사: 아 그렇군요. 그럼 요리를 시작합시다. 제일 먼저 해야 할 건 뭡니까?
론: 톰 행크스를 통으로 쓰는게 중요해요. 이렇게 껍질을 벗기고, 이제부터 이걸 프로페서 랭돈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사: 랭돈...이 뭡니까?
론: 냉동 돈까스. 이 사람 정말 아는게 하나도 없군. 아무튼 '다빈치 코드' 때보다 재료를 심하게 다뤄야 합니다. 혼이 나갈 정도로 막 굴려요. 불에도 살짝 그을리고, 물에도 몇번 담갔다 빼요. 피도 좀 뽑아야 합니다. 무산소 상태에서도 처리가 필요하고.
사: 아, 네. 확실히 그렇게 재료를 막 다루니까 맛이 좀 좋아진 것 같기도 해요.
론: 그렇지? 그리고 요리할 때 계속 옆에서 신부들이 기도 소리를 내는게 중요해요. 이 댄 브라운 소스는...
사: 그 댄 브라운 소스 말인데, 일각에서는 이게 움베르토 에코 소스의 싸구려 대체품이라고도 하더군요.
론: (목소리를 낮춰서) 사실 우리도 알지. 움베르토 에코 소스에 비하면 이건 소스도 아니야. 하지만 그 에코 소스는 맛이 너무 독해요. 특히 애기입맛들은 먹어도 맛을 몰라. 잘못 먹으면 굉장히 힘들어 하더라구요. 그런 걸 생각하면 댄 브라운 소스가 우리같은 싸구려 입맛엔 제일이야.
사: 여기에 아키바 골즈만이라니, 참 MSG 조미료 덩어리를 만드시는군요?
론: MSG가 꼭 몸에 해로운 건 아니에요. 아무튼 이 소스랑 이 조미료를 합치면, 안성맞춤이야.
사: 뭐에 안성맞춤입니까?
론: 뭐긴 뭐야. 당연히 플래닛 할리우드에 안성맞춤이지. 그나자나 톰 행크스가 물에 푹 불었으면 이번엔 이완 맥그리거에 보드카를 뿌리고 불을 붙여요.
사: 이야, 정말 '백 드래프트'를 다시 보는 기분인데요. 그나자나 맥그리거 같은 재료는 이렇게 조미료에 뒤섞지 않아도 맛이 날텐데...
론: 이 음식에서 혼자 MSG를 거부하면 맛이 튀어서 안돼. 뭐 그럭저럭 잘 어울릴거야. 아이고, 좀 많이 탔네. 뭐, 그래도 괜찮아.
사: 제가 보기엔 이 부분의 처리에 당위성이 좀 부족하군요. 그런데 다른 재료들은 어떻게 처리합니까?
론: 스텔란이나 아민은 모두 맛이 강한 재료들이니까 잘 씻어서 톰 행크스 위에 얹읍시다. 이렇게.
사: 어느 요리와도 잘 어울리는 재료들이군요. 그럼 아에렛 주어는 어디에 쓰는 겁니까?
론: 아 그거? 그건 없어도 돼요. 습관적으로 향이 나는 재료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써 놨군. 지난번에 오드리 토투 향료를 썼다가 행크스 햄이랑 화학반응이 영 없어서 고생했지.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향료에 신경쓰지 않기로 했어요. 뭐 이 향초를 쓰나, '미수다'에 나오는 크리스티나를 갖다 놓으나 그게 그거야. 그냥 이탈리아 풍 향초가 들어갔다는 느낌만 주면 돼.
사: 근데 정작 그 아에렛 향초는 이스라엘제던데... 참, 댄 브라운 소스도 지난번 요리 때와는 맛이 좀 다른데요?
론: 당연하지. 그때 그 소스를 마트에서 파는 걸 그냥 썼다가 얼마나 욕을 먹었다고. 다들 입맛은 귀신이야.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아무튼 그래서 이번엔 소스에 나만의 비결을 첨가했지.
사: 그래봐야 아키바 골즈만을 솔솔 뿌린 거겠지. 아무튼 이제 다 된 겁니까?
론: 다 됐소. 자 한입... 어때요?
사: 음.
론: 음 뭐?
사: 이야. 이 바티칸 성 피에트로 대성당 앞에 앉아서 먹으니까 맛이 기가 막합니다. 그런데 이 맛이 경치 맛인지, 음식 맛인지를 잘 모르겠군요?
론: 구별할 필요 없어요. 이 음식은 바티칸 경내에서만 팔 거니까. 밖으로 나가면 아무 의미가 없어. 이렇게 한손에 쥐고 바티칸을 천천히 구경하면서, 한스 짐머의 합창곡이 흘러나올 때 먹어야 제 맛이지.
사: 그렇군요. 그런데 이 톰 행크스 배에 찍힌 이 불도장같은 건 뭡니까? 일루...미...나티? 일루미나티가 뭐죠? 무슨 조명 회사 이름인가요?
론: (얼굴이 굳는다) 너무 궁금한게 많으면 명이 짧아져요.
사: 아 네. 오늘의 요리,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p.s. 교황 선출 투표가 벌어지는 시스티나 예배당은 바로 그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는 그 방입니다.
설마 진짜 저기서 촬영을 했을까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세트더군요.^^
진짜 시스티나 예배당과 차이가 없습니다. 문득 20년 전 두고온 저곳이 참 그립습니다.^
p.s.2. X-33은 안 나옵니다. 아마도 제작비 탓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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