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리뷰를 쓰는 것보다 '요리로 푸는' 시리즈가 더 몸에 맞는 것 같습니다. 뭐 이런게 스타일이라는 거겠죠. 이미 리뷰를 썼지만,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도 도마에 올려놓고 채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터미네이터4'에 대한 기본 입장은 이미 지난번 리뷰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그냥 웃자고 써 본게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별 대단한 내용은 없습니다. 의외로 미국 박스 오피스에서는 개봉 첫주에 '박물관이 살아있다 2'에 이어 2위를 했더군요. 아무래도 어린이 관객들에겐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그리 약발이 없는 듯도 합니다.
재료: CG 콘테이너로 1대분. 세번 우려낸 터미네이터 사골 300개, 크리스천 베일 75kg, 샘 워딩톤 80kg, 문 블러드굿 50kg, 기타재료(안톤 옐친, 헬레나 본햄 카터, 마이클 아이언사이드) 취향대로.
준비물: 작은 저수지 하나. 대형 토치 램프. 발전용 증기 터빈.
사회자: 네.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요리입니다. 오늘은 맥지(McG) 선생님을 모시고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제목이 좀 길군요. 그냥 'T4'라고 하는게 좋겠습니다.
맥: 저를 좀 소개해 주시는게...
사회자: 아유, 성질도 급하시간. 당연히 소개해 드립니다. 맥지 선생님이 그동안 만들어 오신 요리 중에서 그리 심각하게 소개드릴만한 건 사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패스트푸드업계에서 오래 종사하시다가 어느날 갑자기 희귀어 세 마리를 한데 넣고 푹 고은 요리에 '미녀 삼합'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맥: (헛기침) 미녀 삼총사.
사: 아, 네. 미녀 삼총사. 하하. 맞습니다. 가끔 그렇게 헷갈리기도 하죠. 그런데 정작 그 미녀 삼총사 요리에 진짜 미녀라고 할만한 재료는 하나밖에 없더라는 주장도 있더군요.
맥: 셋 다 미녀 맞습니다. 그러니까 두번이나 우렸는데도 국물이 나오죠.
사: 네. 그러고 보니 푹 고는데 재능을 보여주신 맥지 감독님입니다. 흥미롭게도 이번 재료 역시 재탕도 아니고, 삼탕도 아니고, 무려 사탕입니다.
맥: 뭘 4탄 갖고 그래요. 저 사거리 007탕집은 지금 몇탕째 우려먹고 있는줄 알아요?
사: 거기는 그래도 이름만 똑같지 재료는 늘 바꾸던데요?
맥: 우리도 재료는 바꿔요. 이번엔 최초로 아놀드 햄이 안 들어간 터미네이터 요리를 선보일 생각이라구요.
사: 오오. 아놀드 햄이라면 쫀득한 육질 때문에 터미네이터 요리에는 필수 조건이라고 꼽히던 것인데 얼마전에 생산중단됐다더군요. 아쉽기 짝이 없습니다. 어? 그런데 저 재료 더미에 보니까 아놀드 햄이 있네요?
맥: 아. 그건 사실 포장만 똑같은 모조품입니다. 뭐 대략 맛은 나요. 사실 진짜 아놀드 햄을 넣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 햄이 벌써 유효기간이 다 지났더라구요. 만들던 회사 사장이 뭐 정치를 한다고 공장을 접었다든가... 아무튼 그래서 이번 탕에는 그냥 모조품만 살짝 들어갑니다.
사: 그런데 요리의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그릇에 넣고 끓이고 고는 수준이 아니라 저수지를 요리 도구로 쓰신다구요?
맥: 하하하. 이거야말로 진정한 요리의 블록버스터지요.
사: 감동적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끓이죠? 바닥에 땅굴을 파고 불을 지펴서...
맥: 만화같은 얘기 하지 말아요. 그게 말이나 됩니까? 일단 터미네이터 금속 사골을 대형 토치에 가열합니다.
사: 그래서요?
맥: 자 이렇게 빨갛게 달아오르죠? 그럼 물에 던집니다.
사: 아이고, 칙 소리가 나는군요.
맥: 네. 이렇게 계속 달궈서 물에 던지는 겁니다. 이렇게 던지다 보면 물이 끓게 돼 있죠.
사: 얼마나요?
맥: 팔팔 끓을 때까지요. 블록버스터 정신을 모르시는군. 닥치는대로 쏟아 붓는거야! 물이 안 끓어? 그럼 끓을 때까지 붓는 거지! 자, 보라구. 끓잖아.
사: 아, 네. 정말 장관입니다. 시청자여러분, 보이시죠? 네. 끓고 있습니다. 거의 국물이 쇳물로 보일 정도입니다. 이야, 보고만 있어도 흥분되는데요. 그런데 저 대형 토치는 뭘로 가동되는겁니까? 동력이 만만찮게 필요할텐데.
맥: 동력 하나도 필요없어요. 저 물이 끓잔아? 그럼 증기 터빈을 돌려서 토치가 가동되게 되는거죠.
사: 이상한데? 토치로 터미네이터를 달궈야 물이 끓는거 아닌가요?
맥: 그렇지. 그 토치는 물이 끓는 동력으로 움직이는거고.
사: 그럼 말이 안되잖아요. 토치에 동력이 없는데 어떻게 물이 끓...
맥: 다 돼요. 이게 바로 그 유명한 타임 패러독스 조리법이야. 원래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거지. 선배들도 다 이렇게 했어. 새삼스럽게 그런걸로 시비걸면 촌스러워요. 자, 중간에 이렇게 살짝 국자로 떠서 맛을 봐요. 어떻습니까.
사: 네... 그런데 이거 맛이 어디서 많이 보던... CG맛인데요? 한때 크게 유행했던 트랜스포머탕이랑 아주 비슷한 맛입니다그려. 감독 이름에 벌써 CG가 들어가 있어서 그런가.
맥: 에이 이 양반이 맛을 몰라도, 그게 어디가 비슷해요. 이게 전통의 터미네이터 탕 맛이지. 어디 가서 무슨 사라코너탕 이런거 먹고 와서 딴 얘기 하는거겠지.
사: 그게 그렇습니다. 이 T탕이 두번 우릴때까지는 진국이었거든요? 그런데 몇년 전에 어떤 듣보잡 조리장이 '세번 우려도 맛이 난다'면서 완전히 똥국을 만든 적이 있잖습니까. 그걸 보시고도 무려 네번째 재탕에 들어가신 용기가 가상합니다.
맥: 그래도 사람들은 좋아했다구.
사: 뭐 맛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좋아했을 수도 있죠. 아무튼 4탕은 어느 정도 욕먹을 각오를 하신 거 아닙니까.
맥: (입안엣소리로) 이런 사람한테 6탕까지 할 생각이라고 하면 뭐라구 할까?
사: 네? 뭐라구요?
맥: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튼 이번 4탕은 T탕 맛의 신기원이고, 이걸 통해서 그동안 T탕을 사랑해주셨던 분들이 서운하지 않게 계속 T탕 맛을 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 이걸로 마무리...
사: 그런데 조금 아쉬운 부분이 또 있습니다.
맥: 또 뭐?
사: 원래 T탕의 초탕에서는 터미네이터 사골 국물 맛 말고 다른 맛도 많았거든요. 이를테면 그 콩 재료가 뭐였죠?
맥: 마이클 빈.
사: 네. 그 아무튼 그런 부재료들의 맛이 감칠맛이 돌았는데, 이건 순전히 터미네이터 사골과 CG 맛이네요. 특히 박쥐 종류인 크리스찬 베일은 그 맛이 진하기로 정평이 난 재료인데, 아무리 맛이 진해도 저수지 물에 박쥐 한마리 넣고 맛이 나길 기대하면 안될 것 아닙니까.
맥: 정확하게 봤어요. 나는 부재료에 연연하는 요리사가 아니에요. 굵고 강하게! 이 음식의 주 재료는 어디까지나 희게 빛나는 터미네이터 사골과 CG란 말이에요!
사: 뭐 그렇게 우기시면 그럴싸하긴 한데, 그렇게 되고 나니 뭐가 특유의 맛인지 잘 모르겠다는 게 문젭니다.
맥: 그럼 저기 떠 있는 샘 워딩톤이랑 문 블러드굿을 건져서 맛을 보세요. 얼마나 감동적인 맛인지. 이 기계문명과 인간미의 조화!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해!
사: 그런데 이것도 다 예전에 벌써 카메론 주방장이 다 우려먹은 맛입니다 그려. 오히려 왕년의 히트 요리 V탕에 들어갔던 마이클 아이언사이드 맛이 더 인상적이네요.
맥: 그럼 카메론 그 양반보고 다시 와서 끓이라고 하든가.
사: 글쎄 그럴 수만 있다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명색이 T탕인데 식당가 손님 동원 기록에서 첫주 1위를 못했다는 것도 살짝 망신이군요.
맥: ...한국 분점에선 1등했다던데.
사: 첫주는 그렇더군요. 어디 둘쨋주에는 마더탕이랑 어떻게 되나 봅시다. 자, 오늘의 요리,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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