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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쿵푸'의 스타 데이비드 캐러딘이 73세로 운명했습니다. 1936년생. 4일 방콕의 한 호텔에서 목을 매 사망한 채 발견됐다는군요. 70대에 자살이라니...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로 왕년의 인기를 되찾았던 캐러딘은 올해에만도 두 편의 영화를 완성해가는 등 한창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죽음이 참 어이없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일단 제게는 '킬 빌'의 캐러딘보다는 '쿵푸'의 캐러딘이라는 것이 훨씬 더 와 닿습니다. 아마도 캐러딘을 기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그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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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쿵푸(Kung Fu)'는 1972년부터 3시즌에 걸쳐 방송된 인기 드라마였습니다.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국내에서도 TBC TV에 의해 '쿵후'라는 제목으로 방송됐습니다.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미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 케인(데이비드 캐러딘)은 어찌 어찌 하다가 소림사 스님들에 의해 절에서 길러집니다. 당연히 고수가 됐겠죠.

그를 기르는 두 사부, 장님인 포 사부(케이 루크)와 칸 사부(필립 안)는 케인에게 무술 뿐만이 아니라 강한 자가 가져야 할 인격에 대해서도 빠짐 없이 가르칩니다. 그러던 어느날, 포 사부가 오만방자한 황제의 조카에 의해 살해당하고 분노를 참지 못한 케인은 황제의 조카를 죽여 복수합니다.

그리고 나서 케인은 미국 서부로 도피하죠. 당시는 쿨리(苦力)라는 이름으로 중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미국 서부의 금광-철도 건설 지대로 이동하던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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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건너간 케인은 미국인인지 중국인인지 구별하기 힘든 묘한 외모(미국인들의 시각에 따르면 그렇다고 합니다)로 박박머리에 모자를 눌러 쓰고, 쿵후 실력 하나로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를 누빕니다.

이것이 드라마 '쿵푸'의 줄거리입니다.

첫번째 영상은 어린 케인에게 무술을 지도하는 포 사부와 칸 사부의 모습입니다.

 

한국인들에게 더욱 잊을 수 없는 것은, 이 드라마에서 칸 사부 역을 맡은 배우 필립 안이 바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이죠. 아래 사진의 오른쪽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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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안 선생은 한국인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의 아시아계 배우로서 대표적인 인물이었지만 불행히도 맡은 배역의 90%는 중국인이었습니다. 당연히 당시의 할리우드 영화에 한국인 캐릭터가 나올 일이 없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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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두번째 동영상은 특히 개인적으로 감회가 깊습니다. 이 당시 '쿵푸'를 보고 난 소년들이 가장 인상적으로 꼽는 장면은 바로 소림사에서의 무술 단련이 끝났음을 알리는 통과 의식이었습니다.

숯불이 이글이글 피어나는 거대한 청동 화로를 양 팔뚝 사이에 끼어 옮겨놓는 것이었죠. 이 과정에서 양쪽 팔에 용과 호랑이의 부조가 화상으로 남는 겁니다(그때는 화상이라는 생각을 못 하고 문신이라고 해 버렸죠^^). 이 화상은 뒷날에도 케인이 소림사의 무승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다시 보니 그 옛날의 박진감은 온데간데 없군요. 아무튼 한번-.

 

 

캐러딘이 주인공 케인 역을 맡을 때, 당시의 경쟁자 중 우리가 기억할만한 인물은 이소룡입니다. 누가 봐도 이쪽이 더 적격이었지만 당시 제작진은 "아직 중국인이 미국의 메인 TV 시리즈 주인공으로 나서는 건 빠르다"며 캐러딘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이소룡도 서양 혈통이 꽤 섞여 있지만 어쨌든 그랬다는군요. 아무튼 캐러딘이 어디서 무술을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액션 실력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요즘의 기준으로 보면 거의 슬로비디오 화면을 보는 것 같죠.

이 드라마가 3시즌 만에 끝난 것은 단지 캐러딘이 "그만 하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시즌에도 드라마는 인기 일로를 달리고 있었지만 캐러딘은 너무 잦은 부상에다 이미지가 지나치게 고정되는 것을 우려해 이 시리즈를 끝내고 싶어 했다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이미지는 이미 굳어질대로 굳어져 있었고, 다른 무슨 역할을 하건 사람들은 캐러딘이 그 자리에서 '호오!'하는 기합과 함께 적을 쓰러뜨리기를 기대했죠. 기억나는 건 미니시리즈 '남과 북'에서의 모습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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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쿵푸' 시리즈의 인기는 캐러딘을 몇 번이고 되살려냅니다. 영화판도 있었고, 1993년에는 '쿵푸: 전설은 계속된다(Kung Fu: The Legend Continues)'라는 제목으로 속편이 제작돼 4시즌 동안 인기리에 방송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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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는 2003년과 2004년 '킬 빌'의 1편과 2편에 나오면서 젊은 층에게도 강렬한 이미지를 남깁니다. 영화의 제목에 들어가는 '빌'역이니 어찌됐건 타이틀 롤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당연히 캐러딘의 출연은 어린 시절 '쿵푸'에 열광했던 타란티노의 취향입니다. 죽이 잘 맞지 않을 수가 없었겠죠. 그러던 그분이 그새 고인이 되셨다니 참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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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에 대한 추모곡은 좀 경쾌합니다. 많은 분들이 TV 시리즈 '쿵푸'의 주제곡이었다고 오해하고 계신 칼 더글러스의 '쿵푸 파이팅'입니다. '오호호 호-'하는 전주와 함께 불멸의 댄스 히트곡으로 유명하죠. 단 이 곡은 드라마 '쿵푸'나 데이비드 캐러딘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그 영향을 받은 것만은 분명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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