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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를 본 사람의 입장에선 왜색 논란이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왜색 논란'이 더 크게 일어나서 영화의 작품성에 대한 논의가 거기에 가린다면 정말 다행일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 영화가 재난에 가까운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인 골격은 애니메이션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애니메이션이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인 것으로 착각하고 계시는데, 오시이는 이 애니메이션의 연출자가 아니라 이 애니에 모티브를 제공한 소설 '야수들의 밤'을 쓴 원작자입니다. 사실 소설 '야수들의 밤'에 나오는 사야는 그냥 스쳐 가는 인물일 수도 있지만 이미지는 강렬합니다. 세라복에 일본도를 휘두르는 뱀파이어 킬러... (소설은 절대 비추입니다. 궁금증에 읽어봤지만 그 다음엔 집어 던지게 됩니다.)
일본 관동 지방의 미군 기지. 이유 없이 살인사건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령관의 딸 앨리스가 다니는 기지 내 미국인 고등학교에 일본 여학생 사야가 전학생으로 등장합니다. 이어 앨리스의 주변은 피로 물들고, 앨리스는 자신의 주변이 인간의 피를 먹고 사는 요괴들로 가득 차 있으며, 이 요괴들을 상대하는 집단인 '협회'와 요괴들의 대혈전이 막 벌어지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줄거리를 두 문단 정도는 써 보려고 했는데, 더 이상 쓰면 결말까지 다 나올 것 같아 더 쓸 수가 없군요. 영화는 대단히 간결합니다. 우연히 앨리스와 사야가 만나면 결말까지 한 호흡입니다. 제작진은 뱀파이어 요괴들의 대장인 오니겐과 사야의 관계가 반전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절대 반전 아닙니다. 한마디로 줄거리에서 어떤 매력을 느끼기는 매우 힘듭니다.
게다가 이미 수없이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CG의 수준입니다. 한마디로 우울합니다. 격투 장면에서 나오는 피를 진짜 피처럼 보이지 않게 한 것이 연출상의 의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CG 처리가 된 피는 생사를 건 싸움의 심각성을 완벽하게 제거해 버립니다. 둥근 핏방울이 뭉클뭉클 떠 다니는 걸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요괴들이 날아다니는 장면의 처리 역시 1933년작 '킹콩'의 한 장면을 보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날 정도입니다.
전지현은 이 영화에 출연해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영어 대사로 연기할 수 있다는 믿음? 영어 발음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생각되지만, 어차피 사야가 영어를 잘 해야 하는 캐릭터는 아니기 때문에 거기서 점수를 딸 건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사야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표정하거나 증오 어린 표정만 지으면 되는 캐릭터입니다. 연기력을 보여 줄 기회는 더더욱 없습니다.
영화 속의 전지현은 앳되고 예쁘게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가장 큰 미덕이 100분 미만이라는 겁니다. 조금 더 길었다면 꽤 괴로울 뻔 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속편 얘기도 나오던데, 과연 속편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분들이 이 영화를 보시면 좋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린 분이라면 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예쁜 여자가 칼 들고 나오면 됐다는 분들, 차라리! '엘렉트라'를 보시기 바랍니다.
p.s. 왜색 논란 운운 하시는 분들, 그럼 우동을 우동이라고 불러도 왜색입니까?
(요괴의 우두머리인 오니겐 역의 고유키입니다. 미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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