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5일. 본격적인 베를린 투어의 시작이다.
일단 첫날은 마이리얼트립(Myrealtrip)의 1일 가이드 신청을 했다.
어떤 여행지를 갈 때 아무리 정확한 정보와 좋은 가이드북을 써도 사실 현지인의 말 한마디 만큼 정확한 경우는 없었다. 어떤 이들에겐 여행인 것이 그들에게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생활인의 정보만큼 충실하고 도움이 되는 정보를 다른 무엇을 통해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베를린에서 며칠 정도는 민박을 해 볼까 생각도 해 봤는데 베를린의 한인민박들은 생각보다 시설이나 위치가 바람직하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꽤 큰 비용을 지불하고 1일 정도는 마이리얼트립의 가이드 서비스를 받기로 했다.
만나기로 한 장소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교회 앞. 2차대전 때 폭격으로 망가진 교회를 복원하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인데, 그 모습이 의외로 멋지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교회가 새로 지어져 있다.
사실 교회 외벽은 뭔가 계란 판을 붙인 듯 조금 어색한 느낌이 있는데
(교회 옆엔 요즘 유럽에 빈발하고 있는 테러 희생자를 위한 조문 촛불이 잔뜩 놓여 있다)
그런데 저 계란 판들이 안에서 보면,
이렇게 바뀐다.
안쪽에서 보면 이 파란 유리의 힘이 고전적인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능가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바다 속에 들어온 기분이 된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매우 아름답다.
그리고는 바로 교통의 핵심은 초 역으로 가서 베를린의 젖줄인 100번 버스를 타고 브란덴부르크 문 앞으로 이동.
사실 이렇게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장소를 별로 가고 싶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들를 곳은 들러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뭐... 굳이 설명은 생략. 아무튼 이 문이 바로 프로이센 제국 시절부터 베를린의 상징이며, 분단 시대에는 동/서 베를린의 경계였다는 건 알아둬야 할 듯. 지금 사진을 찍는 위치가 구 동독 지역이다.
그리고 현재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시작되는 운터 덴 린덴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베를린을 구경하게 되어 있다. 과거 동/서 분단 시절에는 동독이었던 지역이 집중적으로 개발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번 여행 기간 중에도 구 서베를린 지역은 그리 많이 머물지 않았다.)
사실 브란덴부르크 문보다 좀 더 인상적인 게 사진으로 볼 때 오른쪽, 베이지색 높은 건물 밖에 있는 건물 안쪽에 있었다.
슈테판 발켄홀 Stephan Walkenhol 의 'Big man with little man' 이다.
꽤 크다. 4미터 정도.
이 흰 셔츠 입은 아저씨가 바로 발켄홀의 상징 같은 캐릭터인데, 뒤에 이렇게 작은 사람이 숨어있다.
누가 봐도 성인 남성의 허세를 상징하는 작품. 매우 인상적이다.
사실 이 양반의 작품들은 악셀 슈프링거 그룹 본사 앞에도 있고, 베를린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데 이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무래도 베를린에 가시는 분들은 브란덴부르크 문 앞은 빼놓지 않고 가실테니, 가실 때 꼭 여기도 들러서 보고 가시기 바란다.
그리곤 남쪽으로 약 200m 걸어 내려오면 유태인 희생 기념비(?)가 있다.
겉에서 보면 그냥 시멘트 구조물인데,
안으로 깊숙히 들어가면 이런 느낌.
하나 하나의 사각 기둥이 높이와 크기가 조금씩 다 다르고, 굉장한 암울함이 느껴진다.
절망에 대한 표현이랄까.
그리고는 베를린의 유서깊은 아들론 호텔 뒤를 지나
(마이클 잭슨이 아이를 안고 흔들어서 어린이에 대한 안전의식이 없다고 엄청 욕 먹은 그 호텔이다.)
시내를 걷기 시작한다.
곳곳에 이런 공연 전시물도 반갑다. 베를린이구나, 하는 느낌.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사진으로 볼 때 무척 신기했던 포츠다머 플라츠의 소니 센터.
지금 봐도 그럴 듯 하다.
아시다시피 건물주가 대한민국 국민연금이라 한글로 안내가 쓰여 있다.
포츠다머플라츠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조용한 화랑 한 군데를 들렀는데 마침 정기 휴일.
그리고는 토포그래피 오브 피어 Torphography of Fear 앞의 장벽 잔해 앞으로.
지금 보면 두꺼운 벽도 아니고,
그다지 높은 벽도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있는 벽의 일부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예전에는 여기 오면 눈물이 난다는 분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보단 훨씬 낫지.
그리고 명소라고 꼽히는 체크포인트 찰리까지 도보로 바로 이동.
사실 지금 봐서 감흥이 있을 리 없다. 저 앞의 검문소도 하도 관광객들이 찾아서 지었다고.
그냥 사람 많은 관광 포인트 정도의 느낌.
노파심에서 얘기하는 거지만 절대 관광 명소 아니다. 가 볼 필요 없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지도로 볼 때는 멀어 보이는데 걸어가면 15~20분 사이에 다 닿는다.
시내로 들어오면 왠지 건물 하나 하나가 그럴듯하고 예쁘다.
프라하 같은 돌집만 보다가 봐서 그런가. 아무튼 모던함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지반 약화를 방지하기 위해 지하수를 뽑아 강으로 연결하는 파이프인데 도시 미관을 살린 듯 핑크색이다. 어느 지역은 녹색, 어느 지역은 또 하늘색이라고 한다.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북쪽으로 죽 걸어가면 젠더마크트 광장이 나오고, 거기에 오늘의 점심 포인트가 있다.
확대하면 이름이 보인다. Butter & Wegner.
처음부터 이렇게 고급 식당에 갈 생각은 아니었으나...^^
그런데 막상 주문하려 보니 프라하와 왜 메뉴가 똑같은지. 슈니첼과 굴라쉬(그런데 여기도 굴라쉬는 영... 아무래도 굴라쉬는 러시아에서 먹은 맛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너무 신 맛이 강하다) 등등. 그래도 베를린의 명물 하나가 추가됐다.
저 대파같이 보이는 슈파겔 Spagel. 굉장히 굵은 아스파라가스의 변종이다. 매년 5월에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맛은...아스파라가스 맛인데 약간 더 단맛이 난다고 할까.
(물론 먹으러 기를 쓰고 찾아갈 만한 맛까지는 아니다. 아무튼 3인 점심 한 끼에 음료까지 7,80유로 정도)
어쨌든 식사를 마치고 돌아본 젠더마크트 광장.
프랑스 돔과 독일 돔이 쌍둥이처럼 마주보고 있는데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사실은 화장실 쓰러 들어감. 공짜라서.)
운터 데 린덴은 이렇게 곳곳이 공사중이다. 사람 셋이 옹기종기 서 있는 곳은 나치에 의해 독일판 분서갱유가 이뤄진 역사의 현장. 훔볼트 대학과 도서관이 있는 문화의 중심지에서 지식인 박해와 함께 나치가 원하지 않는 서적의 소각이 이뤄졌다. 그 기념물이 있으나 크게 눈길이 가지는 않았다.
어쨌든 뭘 지어도 이렇게 널찍널찍하게 지었다는데서 독일 특유의 스케일이 느껴진다. 훔볼트 대 도서관.
그렇게 해서 운터 덴 린덴을 다 지나 오면 묘한 집 한채가 보인다. 절반은 모던, 절반은 고전적인 구조다.
화랑으로 사용된다는 설명.
그리고 걸어서 박물관 섬을 통과하면 베를린 돔이 보인다.
물론 박물관 섬은 내일부터 박물관 패스를 이용해 본격적으로 구경할테니 일단 패스.
유람선을 탄 사람들이 한가로워 보인다. 한번 타 봐야겠다는 생각이 물씬물씬.
(결국 못 탔다. 5일이나 있으면서 뭘 한거야...)
박물관 섬과 하케셔마크트의 중간 쯤에 있는 설치 미술.
이런 작품들이 너무너무너무 많다.
드디어 하케셔마크트 도착. 뭐 오래 걸린 것 같지만 젠더마크트 광장에서 쉬엄쉬엄 걸어서 30분 이내에 도착한다.
그래도 관광객 모드는 힘들다. 역시...;;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면, 하케셔마크트는 언제 가시든 꼭 들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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