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 밝은지 좀 됐군요.
어쨌든 더 늦기 전에 얼른 올립니다. 다행히 로스 로메로스 공연은 9일이군요.^
10만원으로 즐기는 10월의 문화가이드
매년 하반기의 낙이라 할 수 있는 추석 연휴가 칠천량 해전에 나간 원균의 함대처럼 속절없이 무너져내렸겠지? 남은 건 송편이랑 갈비찜 때문에 찐 살과 가족들 선물 산 카드값 밖에 없다는 건 잘 알겠어. 그래도 아직 포기하지 마. 10월엔 아직 개천절과 한글날이 충무공의 열 두 척처럼 남아 있으니까. 사즉필생!
10월의 공연 전시 리스트를 보다가 ‘이건 봐야 해’ 하는 느낌이 딱 오는 이벤트가 있었어. 바로 10월9일 예술의 전당 IBK 챔버 홀에서 열리는 로스 로메로스 내한 공연 이야. 세계적인 스패니시 기타리스트 셀레도니오 로메로가 창설한 로스 로메로스(눈치챘겠지만 ‘로메로 가족’이란 뜻이야)는 스패니스 기타의 쿼텟 스타일을 처음으로 만든 팀이지.
세월이 흘러 셀레도니오의 둘째 아들이며 아버지를 능가하는 명성의 페페 로메로가 리더 역할을 이어받았고 두 손자가 멤버로 들어와 팀이 3대째로 접어들었어. 가을 밤의 스패니시 기타 소리. 네 명의 기타 명인이 연주하는 알베니스의 ‘전설(Leyenda, 혹은 Austurias)’. 어때,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지?
물론 다 좋지만 문제는 가격. 11만원 짜리 R석과 7만원 짜리 S석밖에 없어. 고민되지만 이럴 때 한번 질러 보는 거지 뭐. IBK홀은 그리 크지 않아서 굳이 11만원짜리까지 욕심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자. 7만원 투척.
다음은 지난달 ‘카르미나 부라나’에 이은, ‘들으면 다 아는데 쉽게 연주되지 않는 곡’ 시리즈 2탄이야. 10월31일 예술의전당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 연주돼. 네이버 지식인에 ‘둥당둥당 둥당둥당 밤~ 빰~ 빰~ 빠밤으로 시작하는 클래식 곡 제목이 뭐죠?’ 라고만 물어봐도 누군가가 답을 알려 줄 만큼 유명한 곡이지. 하지만 실제 연주를 들어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아.
이번 연주는 스타 지휘자 임헌정이 올 연초 코리아심포니 음악감독으로 부임한 뒤 내놓은 기획이야. R석이 5만원인데다, 1층 사이드와 2층 대부분 좌석이 2만원 짜리 A석이라는 건 감동적인 보너스지. 단 곡의 심도있는 이해를 위해 니체의 ‘짜라투스투라…’를 꼭 읽고 오라고 부담 주고 싶지는 않아. 이 곡을 유명하게 만든 영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도 끝까지 보려면 힘들 수도 있어. 무리하지 말고 그냥 음악만 들으러 와.
자, 다음은 리움 미술관 10주년 기념 전시 ‘교감’ 이야. 이미 8월21일부터 열리고 있는 전시인데다 워낙 유명하지만 그래도 1만원에 이만한 효용의 전시를 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거야. 제목이 ‘교감 - Beyond and Between’ 이듯 우리 고전 미술 작품과 국내외 현대 미술 작품 간의 대화를 상징하는 전시야. 혹시 가 봤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8월의 추천 전시였던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의 ‘백자예찬’과 비슷한 컨셉트의 전시라고 볼 수 있겠네. 물론 리움의 소장품이 등장한다면 더 말 할 게 없겠지. 12월21일까지니까 여유있게 들러 봐.
이달의 책. 전 세계적으로 ‘사 놓고 안 읽는 책 1위’라는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추천해서 여러분도 그 대열에 동참하게 하거나(책값만 3만원…), 저 책을 읽은 척 할 수 있는 최선의 가이드로 알려진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바로 읽기’를 추천할 생각은 없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도 너무 뻔한 선택이라 탈락. 뭐 이미 보신 분도 많을테고.
그래서 고른 이달의 책은 조시 베이젤의 ‘비트 더 리퍼’. 뭐 이 코너를 지켜보신 분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어쨌든 모토는 ‘재미있는 책’이야. 그리고 대략 취향도 파악됐을 거야. 깜찍발랄한 소설 참 좋아해.
‘비트 더 리퍼’는 병원 인턴 피터의 일상에서 시작해. 그런데 사실 이 피터는 평범한 의대생이 아니고 전직 마피아의 킬러였어. 그것도 천재적인 킬러. 그런데 과거를 씻고 FBI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따라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의대에 진학한 거야. 킬러 출신 인턴, 멋지지 않아?
하지만 그러던 어느날, 예전에 알던 마피아 멤버 하나가 환자로 병원에 나타난 거야. 그리고 요구하지. “내가 죽으면 (너의 비밀을 폭로할 테니) 너도 죽는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도 나를 살려라.” 어때? 재미있을 것 같지? 2011년 출간된 책이라 가격도 싸. 7000원대면 살 수 있어. 그러니 늘 당부하지만, 신작에 목 매지 말라고.
그럼 이달은 여기까지. 11월에 만나.
로스 로메로스 내한공연 S석 7만원
코리아 심포니,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A석 2만원
리움 미술관 10주년 기념 전시 ‘교감’ 1만원
조시 베이젤, ‘비트 더 리퍼’ 약 7000원
합계 약 10만7000원
자, 영상 학습 시간.
영화에 좀 관심있는 분이라면 직접 보지는 않았어도 어디선가 들어 보셨을 유명한 장면입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오프닝 장면이죠.
그냥 별 할일 없이 자빠져 뒹굴고 있던 원생 인류(외견상 침팬지와 별 차이가 없죠^^)들이 어느날 외계에서 날아온 모노리스(검은 색의 비석)로 부터 영감을 얻어 동물과 선을 긋고 진화의 방향을 선택하는 그 장면이죠. 모노리스로부터 영감을 얻은 한 유인원이 동물의 다리뼈를 도구로 이용하는 법을 깨닫습니다. 자신의 팔과 다리 이외의 도구를 확장된 몸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 인류 문명이 시작되는 그 순간을 큐브릭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너무 길어서 다 못 보시겠다는 분들은 5분25초 쯤부터 보시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어떻게 사용됐는지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번의 '까르미나 부라나' 때도 그랬지만, 이렇게 한번 영화를 통해 음악의 위용이 드러난 다음에는 엄청난 남용의 시기가 찾아오고, 그러다 보면 음악이 실제 갖고 있는 의미는 저 뒷전으로 사라집니다.
패션쇼 오프닝이나 지하철 상가 개장 광고에서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들어 오신 분들이 한번 이 기회에 진짜 음악을 들어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그리고 페페 로메로 옹의 연주. '스패니시 기타 연주곡' 이라면 누구라도 딱 머리에 떠올릴 알베니스의 '전설'.
한곡 더?
Los Romero: 50th Anniversary Concert at 92Y - GIMÉNEZ: El baile de Luis Alonso (1896)
영상에도 표시되듯 2009년 3월21일 연주입니다.
날씨 참 기가 막히게 좋군요. 좋은 10월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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