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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앞 건물 지붕 너머로 보이는 일출

공항에서 시내로, 숙소 시타딘 레알 호텔

2023년 12월1일. 예전엔 11시간이면 가던 거리가 전쟁 때문에 14시간 걸렸다. 샤를 드골 공항에서 루브르와 마레 지역 사이, 레알(Les Halles)의 숙소까지 전철로 약 60분 정도. 갈아 타지 않고도 갈수 있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고생일 듯 해서 택시를 알아봤다. 다행히 택시 가격은 55유로 정찰제.

 

그런데 택시로 90분이나 걸렸다. 만약 정찰제 없이 미터기대로 냈다면 거지될 뻔. 토요일 밤에 파리 외곽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은 정체 아닌 곳이 없었다. 일요일 저녁도 아니고 토요일 저녁인데 시내 들어오는 길이 이렇게 막히다니. 

 

이란 출신(워낙 차가 막히다 보니 지루해서 대화를 아니 할 수가 없었다)인 기사님은 어떻게 해서든 안 막히는 길로 가 보겠다는 의지로 이쪽 저쪽 골목길을 팠지만 결과는 큰 차이가 없었던 듯 하다. 그 덕에 라 빌레트 쪽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파리 변두리를 차 안에서 좀 구경할 수 있었다.

 

전에 비해 중국 음식점이 참 많이 늘었다는 느낌? 지나오는 동네마다 중국 음식점 간판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시타딘 레알 로비. 호화롭지는 않지만 잘 단장되어 있다.

곡절 끝에 호텔 앞 도착. 시타딘 레알 (Citadines Les Halle). 시타딘은 프랑스에서는 꽤 유명한 레지던스 형 호텔 체인이다. 절대 럭셔리한 느낌은 아니고 그냥 생활감있는 한국의 콘도 같은 느낌. 2구짜리 인덕션 레인지가 있고, 냄비 후라이팬 칼 접시 등 주방 살림 일습이 있다.

 

파리를 몇번 가 본 경험에 따르면 파리 음식은 크게 기대할 게 없었다. 좀 짜고 딱히 맛있지 않았던 느낌. 게다가 8박을 하자면 좀 피곤하기도 하고, 약식으로라도 한국 음식(?)을 좀 먹는게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레지던스형 호텔을 선택했다. 거기다 공연장을 여러 번 가려고 하는데, 파리의 좀 한다 하는 식당들은 대부분 7시는 되어야 저녁 오픈을 한다.

 

매번 밖에서 식사를 하면 공연 시간에 맞추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저녁 공연이 있는 날은 낮에 구경을 나갔다가 일찍 들어와서 간단히 숙소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가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별 대단한 준비를 한 건 아니고, 그냥 햇반 몇 개, 밑반찬 몇 개, 사발면 몇 개를 싸 간 정도가 전부다. 시판 볶음김치를 가져간 게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파리에는 좋은 식재료가 많을 테니 웬만한건 사서 해결하자는 자세.

호텔 주변에 대형마트와 아침에 문을 여는 유명한 빵집, 라 파리지엥(La Parisienne)이 있다는 건 미리 알고 있었다. 아침마다 7시에 문을 여는 빵집에 달려가 갓 구운 바게트와 크루아쌍 등을 사왔고, 호텔 1층에서 역시 오전에만 주는 핫 초콜렛을 컵에 받아다 아침을 먹었다. 봉마르셰에서 사 온 버터와 소시숑을 곁들였고, 근처 마트에서 과일과 요구르트를 사왔다.

 

저녁에는 밥을 먹을 일이 있을 때 두 번 고기를 구워 먹었다. 꽃등심(faux filet, 립아이에 해당하는 프랑스 명칭이다) 기준으로 봉마르셰에서는 250g13유로, 마트에서는 280g11.29 유로에 샀다. 국내와 차이가 있다면 곡물 사료 대신 풀을 먹여 기른 소라 마블링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고 해서 고소한 맛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기름이 녹아 날아가지 않기 때문에, 같은 250g을 구워도 한우보다 실질적인 고기 양은 훨씬 많다. 소금만 찍어 먹어도 술술 넘어간다.

식탁이 따로 있는 좀 큰 방을 빌린 덕분에 호텔 안 식사도 수월했고, 가져간 노트북을 HDMI로 삼성 TV와 연결하면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방값이 비슷한 크기의 호텔에 비해 훨씬 싼 대신 매일 청소를 해주지 않았지만(6일 머무는 동안 한번 청소를 요청했다) 수건이나 기타 물품은 창고에서 무제한으로 직접 가져다 쓸 수 있었다.

 

단 슬리퍼는 없으니 가져가거나 사거나전에는 슬리퍼를 주었다는 잘못된 정보 때문에 마트에서 슬리퍼를 사야 했다. 30유로. 비싸다.

시타딘 레알의 최대 강점은 위치다. 지근거리에 두 개의 역, Chatlet 역과 Chatlet Les Halle 역이 있고 이 두 역으로 파리 시내의 주요 포스트로 가는 전철은 거의 다 이용할 수 있었다. 퐁피두 센터와 루브르, 노틀담, 마레 지구는 도보로 20분 이내 거리, 오페라도 전철로 10분 거리. 아침에 나가 뭔가 구경을 하다가 방에 돌아와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저녁 구경을 나갈 수 있는 것도 괜찮았고, 한밤중에도 카페나 술집마다 손님들이 우글우글한 홍대 앞 같은 곳이라 밤에 나다녀도 전혀 걱정할 필요 없는 안전지역이라는 점도 괜찮았다.

 

이렇게 다 좋은 시타딘 레알이지만 심각한 약점도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난방실내 온도의 상한을 24도로 임의지정해 놓았는데, 밤에는 난방을 열심히 하지 않아 실내 기온이 21도 언저리, 썰렁한 기운이 실내를 감돌았다.

 

물론 21도면 괜찮은 실내기온 아닌가 싶을 분들이 있겠지만 은근한 우풍(!)이 있다 보면 실제 기온은 그보다 훨씬 낮게 느껴진다. 

 

잘 때는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이쪽 분들의 상식인지, 오히려 아침에 눈을 뜨면 난방이 가동되고 실내 기온이 올라가는게 느껴졌다. 아무리 추운 날에도 일단 구들장이 타들어가도록 불을 때고, 집안에 들어오면 동저고리만 입고 살 수 있게 했던 한민족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책

보일러 최대 조정 가능 온도 24도...

결국 혹시나 해서 가져온 50cm x 50cm 정도 사이즈의 전기 모포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다만 아쉬운 건 모포는 1개뿐. 난국 돌파를 위해 생수병에 끓인 물을 부어 탕파(湯婆)로 활용해 볼 생각을 했다. 끓는 물이 닿자 PET 병이 쭈그러드는 걸 보면서 아 이거 틀렀구나 했는데 일정 크기 이하로 줄어들지는 않았고, 물이 새지도, 금방 식지도 않았다.

 

오히려 피부에 직접 닿으면 델 정도로 뜨거워 수건으로 감싸고 사용하는데 보온 효과는 매우 훌륭해서 매일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잠결에 깔아 뭉개서 터뜨릴 정도로 잠버릇이 고약한 사람이 아니라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정도.

 

...뭐든 닥치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없다.

힐튼 오페라 로비

시타딘 레알에서 6, 그래도 여행의 마무리는 꽤 좋은 호텔에서 하자는 생각으로 귀국 전 힐튼 오페라에서 2일을 머물렀다. 건물이며 위치며 흠잡을 데 없는 A급 서비스. 일찌감치 예약을 했는데, 방문 2개월 전 쯤에 가격이 내려가는 바람에 더 큰 방으로 업그레이드를 해 버렸다.

침대도 넓고 욕실도 넓고, 역시 위치도 이상적이고. 미국계 호텔답게 뭔가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하기 보다는 기계의 도움을 많이 받게 하는 호텔이었지만, 아침 부페는 파리답게 빵 가짓수만 15개 정도 되더라고.

 

숙소 얘기는 여기까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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