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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대구 부근의 기지촌에서 컨트리 뮤직을 연주하던 상규(조승우) 패거리는 낯선 흑인음악을 연주하는 기타리스트 만식(차승우) 패거리를 만나 의기투합, 6인조 밴드를 결성합니다. 팀 이름은 데블스. 때맞춰 서울에서 보컬그룹 페스티발이 열린다는 사실을 안 이들은 서울 진출을 노립니다.

하지만 이들의 서울 진출은 결코 쉽지 않죠. 시민회관 화재 이후 막 피어나던 그룹사운드들은 설 자리를 잃고, 은근히 이들의 후원자 역할을 하던 주간지 기자 병욱(이성민)은 통행금지와 밴드의 공연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냅니다. 그건 바로 통금 해제 시간인 4시까지 올나잇으로 영업하는 나이트클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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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 감독의 '고고70'은 한국 최초의 '본격' 록 밴드 영화입니다. 물론 이전에도 음익 영화를 표방한 영화들은 꽤 많이 있었습니다. 80년대의 청춘스타 전영록을 주인공으로 한 수많은 영화들이 있었고(개중엔 여성 밴드를 주인공으로 한 '돌아이' 시리즈도 있었죠), 또 한때는 동방신기급의 인기를 끌었던 송골매 멤버들이 주연한 '모두다 사랑하리' 류의 영화들도 있었습니다. 윤도현의 '정글 스토리'도 빼놓을 수 없겠죠.

하지만 음향과 음악, 연주와 스토리가 제대로 '붙은' 영화로는 아마도 '고고70'을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영화 속의 밴드지만 조승우와 차승우를 주축으로 한 밴드 데블스는 실제로 존재했던 밴드인 동시에, 자신들의 음악을 연주하는 진짜 밴드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조승우와 신민아지만, 진짜 주인공은 '밴드'입니다. 혹은 이 밴드가 펼치는 공연과 노래야말로 진짜 주인공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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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면서 느껴지는 것은 '화려한 휴가'를 볼 때와 비슷한 안타까움입니다. 1970년대, 지금은 기억마저도 희미해진 옛날이지만 우리에게도 저렇게 촌스럽고 미약해 보이지만 다양하고도 에너지 넘치는 문화가 피어나던 시절이 있었다는게 아깝고 분했습니다.

혹자는 이 시기의 대중문화, 특히 대중음악에 대해 '번역 문화'라고 폄하하기도 합니다. 사실 그런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이 시기의 밴드들은 해외의 성공적인 음악을 '따 오는 데' 급급합니다. 저작권에 대한 개념도, 관심도 없을 때라 귀로 들어서 좋은 음악을 그대로 가져다 개사해서 쓰기도 하던 시절이죠. 이 영화에도 나오는 C.C.R의 'Proud Mary'같은 노래는 한글로 개사한 곡만도 10여 종류가 존재할 정돕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조영남의 '물레방아 인생'이죠. '도올고, 도오는, 물래방아 이인생' 하는 노래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올라가요 남산, 놀아봐요 명동'이라는 가사로 등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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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한지 몇해 되지도 않았던 시절, 그렇게 남의 문화를 '이식'하는 과정이 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지가 의문입니다. 처음에는 좋은 것을 모방하고, 베껴 내다 보면 어느 틈엔가 우리만의 독특한 것을 만들어 낼 여지가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70년대는 너무 어두웠습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사람들이 원한 것은 스파르타식의 금욕적인 병영국가였고, 한국전쟁을 겪은 당시의 '어른' 들은 이런 국가 이념에 쉽게 동조했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있어 문화라는 것은 사치였고, 나약과 퇴폐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문화란 군가나 새마을 노래의 수준이었을 뿐입니다.

제가 TV를 처음 이해하기 시작했던 무렵의 한국 대중문화계는 정말 뻥 뚫려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른바 '대마초 파동'으로 이름을 알만한 가수들은 모조리 무대와 방송에서 사라진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한창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던 친척 형들은 송창식의 '고래사냥'이나 이장희의 '그건 너', '한잔의 추억' 같은 금지곡을 부르는 걸 반항의 상징으로 생각하던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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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는 '딴따라'를 경시하는 풍조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합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일까요. 어차피 대중들이 모두 좋아하기엔 한계가 있는 클래식 문화는 숭상하면서도(그것도 사실 숭상이라기보단 해외 유명 콩쿨에서 입상하는 걸 올림픽에서 금메달 딴 걸 보듯하는 분위기에 가깝죠) 대중이 모두 사랑할 수 있는 문화는 비천하고 시간낭비에 가까운 것으로 매도한 대가를 한국 사회는 톡톡히 치르고 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 대가란 이런 겁니다. 40년 전만 해도 한국의 국부는 땅만 보고 묵묵히 일하는 근면한 사람들에 의해 어느 정도 선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죠. 몇명의 천재가 수천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입니다. 이른바 창의력의 시대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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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란 나라는 19세기가 전성기였고, 양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한 구석으로 찌그러져 버리지만, 현대의 영국은 창의력 선진국으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패션과 음악,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의 여러 분야에서 영국은 세계 최첨단의 인재들을 계속 배출하고 있죠(물론 세계적인 금융 선진국이기도 합니다만). 대중 문화의 질과 다양성 부문에서 영국은 세계에서 최고 수준의 성과물을 계속해서 뽑아내고 있습니다.

이런 저력은 어디서 왔을까요.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보수적이고 전통과 권위를 중시하면서도 '딴따라'들에게 기사 작위를 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진취적인 태도가 바로 그 힘이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클래식 오케스트라가 ;딴따라'들과 협연하기를 꺼리지 않는 그런 문화적 관용과 창의력은 종이의 앞뒷면입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튀는 놈'들을 '딴 생각을 품은 놈', 혹은 '국민총화를 저해하는 놈' 들로 때려 잡은 결과, 한국의 대중문화는 21세기까지도 외국 것들을 누가 먼저 베껴오느냐로 승부가 갈리는 수준에 머물게 됐습니다.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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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동기에 이미 '퇴폐문화의 주범'이라는 철퇴와 함께 지하로 사라져버린 한국 록 문화의 위기는 말할 것도 없죠. 몇 차례의 '쥐잡기'로 인해 사라졌다 다시 등장하고, 또 사라졌다 다시 등장하는 사이 '록 문화'에는 심각한 왜곡이 등장합니다. 가장 대중적이고 즐거워야 할 록 문화가 기이하게도 저항의 상징(물론 이런 부분도 의미와 전통을 가진 것이지만) 처럼 되어 버린 겁니다. 가장 대중 가까이 가야 할 록 문화가 오히려 대중과 멀어질수록 정통성을 가진 것처럼 오해되는 분위기를 띠게 된 것이죠. 이것 역시 통탄할 일입니다.

딴 얘기가 너무 길어졌지만, '고고70'은 그런 암울한 시대, 한국 대중문화의 창의력을 군화가 짓밟아 버린 시대의 우화입니다. 소재는 지극히 비극적이지만, 당시의 발랄했던 청춘을 그린 작품인 만큼 분위기는 밝고 싱싱합니다. 최호 감독의 손끝을 통해 이런 분위기는 관객에게도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말하자면 이런 거죠. 70년대와 80년대, 거리에서 화염병을 던지며 구호를 외친 것도 저항이었지만 머리를 기르고 기타를 메고 다니거나, 통금 해제 시간인 새벽 4시 거리로 달려나오면서 경찰관들을 희롱하듯 소리를 지르는 것(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도 소극적인 저항이었다는 얘깁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당시의 록밴드 문화와 데블스 멤버들을 마냥 우상화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이들 또한 그냥 인간들일 뿐이고, 도덕적으로는 우월할 것 하나 없습니다. 인기를 무기로 여자들과 희희낙락하기도 하고, 도박으로 악기를 날리기도 하며, 인기에 취해서 친구며 '초심'을 잃는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영화는 균형을 이루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주인공들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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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70'이 이런 완성도를 갖는 데 있어 조승우라는 탁월한 배우의 존재는 절대적입니다. 특히 무대에서 '엄마, 보고싶다!'를 외치는 조승우는 지금껏 우리가 한국 대중문화사에서 가져 보지 못한 록 히어로의 상상 속 재현이라는 느낌이 아깝지 않은 명연을 펼칩니다. 개인적으로는 조승우라는 배우의 에너지가, 그가 출연한 모든 작품을 통틀어 최대한으로 발휘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에너지라는 단어를 자꾸 사용하게 되는데, 어쩔 수가 없습니다. 영화 전체가 에너지로 꽉 차 있다는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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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아 또한 이제껏 보여주지 못했던 발랄함을 이 영화에서는 한껏 뽐낼 수 있습니다. 이 배우에게도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중 최고라는 표현을 써야 할 것 같군요. 이 작품에서의 신민아를 보면 그동안의 갖고 있던 청순의 이미지가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기타리스트 만식 역의 차승우도 연기자 데뷔(?)를 통해 감춰졌던 끼를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아무튼 배우들의 열연과 영화의 열기가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고고70'는 남달리 생기 넘치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화면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신나게 찍었는지 느껴진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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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걱정되는 부분은 사실 이해의 깊이에 따라 감상의 깊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시대를 경험했거나 어렴풋이라도 짐작할 수 있는 사람들에겐 이 영화의 진정과 유머가 통렬하게 와 닿을수 있는 반면, 1970년대 후반 이후에 태어난 관객들은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시대를 듣도 보도 못한 사람들에게는 좀 불친절한 영화도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역사적인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그리고 뇌가 정확한 반복 박자의 '나이트 댄스' 음악에만 젖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 영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올해 여름 이후 개봉한 영화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영화라면 '고고70'이 아닐까 싶습니다.


추천과 댓글을 생활화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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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막상 화면을 보면서 낄낄대고 웃으면서도 마음 속은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저 시대, 그렇게 무식하게 싹을 죽이지만 않았어도 우리는 좀 더 나은 대중문화 환경을 향유할 수 있을텐데, 라는 생각이 너무도 간절하기 때문이죠. 물론 영화 자체는 그런 생각 따위일랑 걱정 많은 사람들에게 맡기고 그저 신나게 '놀면서' 볼 수 있는 영홥니다.


p.s.2. 이 영화는 한국 대중음악의 '2세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승우는 록 아티스트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가수 조경수의 아들. 만식 역의 차승우는 한때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고 불렸던 미남 가수 차중락의 조카입니다. 아버지 차중광도 가수였죠. 또 록의 대부 신중현의 2세들인 신윤철과 신석철도 등장합니다. 잘 찾아보시길.^


p.s.3. 영화에 나오는 주간서울 이병욱 기자의 모델은 잘 알려진대로 타이거 JK의 아버지인 서병후씨(전 주간중앙 기자)입니다. 하지만 이 분은 이 영화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3자의 눈으로 보기엔 이런게 시빗거리가 될까 싶기도 하고, 특히나 이 분이 대중문화에 정통하신 분이란 점에서 상당히 실망스러운 반응입니다. 이 분의 항의로 결국 와일드캣츠라는 여성 그룹의 이름이 와일드걸스로 바뀌었다는군요.

서병후씨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3&dir_id=301&eid=L0dCFk3/eDOtVynGoSZHNNdPgHP5Lbxu&qb=yLK058fRIL+1yK0goa6w7bDtNzChryC/1rDuu+ewxw==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노래, 'Land of 1000 dances'의 원곡입니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윌슨 피켓의 노래죠. 이런 분위기의 음악에 익숙지 않은 분들도 50초만 들으면, '아, 이 노래?' 하실만큼 유명한 후렴구가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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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마미아'와 메릴 스트립에 대한 글은 이미 쓴 적이 있습니다.



이번 글은 '그렇다면 원래 메릴 스트립의 노래 실력은 어땠나'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서 쓴 겁니다. 사실 메릴 스트립의 팬인 적도 없고, 이 배우에 대해 워낙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맘마미아' 이전에 노래를 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아, 딱 하나, '죽어야 사는 여자'의 오프닝 신에서 노래하는 장면이 있었다는 기억은 있었지만 그게 직접 한 건지 더빙인지도 몰랐습니다.

'맘마미아'에서의 노래 실력에 대해선 일단 '그게 뭐냐'가 대세인 가운데 상대적으로 소수인 충성스러운 팬들이 '왜 난 좋기만 하던데'로 맞서고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메릴 스트립의 원래 노래 실력이 꽝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물론 아무리 메릴 스트립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람이라도 '소피의 선택'이나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디 아워스' 같은 영화들을 피해 가기는 힘듭니다. 작품 수도 꽤 많은 배우기 때문에 어떻게든 보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그 사이에 그녀가 노래하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는 참 잘도 피해갔더군요. 자, 시작입니다.

시간순으로 가장 먼저 불렀던 노래는 1983년작 '실크우드'에 나오는 '어메이징 그레이스'입니다. 거의 마지막 장면에 나온다고 하는군요.



자, 이 정도 노래 실력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무시하지 못할 겁니다. 그 다음은 1990년, '헐리웃 스토리(Postcard from the edge)'입니다. 여기서 부른 'I'm Checkin' Out'입니다.




노래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게 1992년작 '죽어야 사는 여자(Death becomes her)'입니다. 뮤지컬 스타 역할을 맡았으니 뮤지컬을 보여줘야겠죠. 노래 제목은 'Me' 입니다. 설마 직접 불렀을까 했는데, 확인해보니 직접 불렀더군요.



노래며 춤이며 너무나 훌륭한데 왜 사람들이 그냥 나가는지 모르겠군요.^



1996년작인 '마빈스 룸'에서는 'Two Little Sisters'를 불렀군요. 이상하게도 전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구해 온 화면에서는 이 노래의 원 주인인 가수 칼리 사이먼과 함께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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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알트만의 유작인 '프레리 홈 컴패니언'에서도 노래를 여러 곡 불렀습니다. 여기선 주로 릴리 톰린과 듀엣을 이뤄서 불렀군요. 우선 'My Minnesota Home'입니다.



그 다음은 'Goodbye to Mama'.





이런 영화들을 보고서 메릴 스트립이 노래를 못한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오히려 '이야, 정말 못하는게 없는데!'라고 해야 정상이겠죠. 그럼 대체 '맘마미아'에서는 왜 말이 많을까요. 자, 영화를 안 보신분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문제의 'Winner takes it all'입니다.



노래가 끝날 때 등장하는 베니 형(누군지 모르신다면: ABBA의 두 남자 멤버 중 하납니다)이 이 노래를 듣고 "이건 정말 미러클"이라고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한대 때려 주고 싶어집니다. 입장이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기적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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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메릴 스트립은 대단한 노래 실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낮은 음역(알토 파트)에서 컨트리풍의 노래를 부를 때죠('컨트리=미국 트로트'라고 생각하는게 아마 적절할 겁니다). 스트립은 'Winner takes it all'같은 노래를 부를 성대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아, 물론 스트립이 세상에서 이 노래를 처음으로 불렀다면 평가가 어땠을지 모를 일이지만, 사람들에게 있어 이 노래는 아그네사라는 세기의 여성 보컬이 부른 목소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자연히 비교가 되겠죠.

얼마전에도 퍼 왔지만 한번만 더 퍼 오겠습니다.



스트립이 노래를 못해서가 아니라, 웬만한 가수라도 모두 바보 취급을 받는게 당연한 노랩니다. 아무튼 제 결론은 그렇습니다. 도나 역에는 웬만하면 스트립 말고 다른 배우나 가수를 캐스팅하는게 나았을 듯 합니다. 아무리 노래를 잘 해도 파바로티에게 엘비스 프레슬리 역할을 맡길 수는 없겠죠.


스트립은 왕년에 위에 나오는 I'm Chekin out'을 오스카 시상식에서도 불렀다는군요. 아카데미 시상식 장면은 아니지만 공개석상에서 노래하는 모습도 찾아보면 나옵니다. 같이 노래하는 사람들이 베트 미들러, 올리비아 뉴튼 존, 골디 혼, 셰어라니 아무나 끼일 수도 없는 자립니다. 노래는 'What a wonderful world'. 스트립이 두번째로 마이크를 받습니다.




* 문득 이 동영상을 보고 나니 올리비아 뉴튼 존도 도나 역으로 괜찮은 선택이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목소리는 전혀 나이를 먹지 않았군요. (나이는 스트립보다 한살 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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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에 여성 3인조 밴드의 리더였던 도나(메릴 스트립)는 그리스의 한 섬에서 작은 호텔을 경영하며 스무살 난 딸 소피(아만다 세이프리드)의 다소 이른 결혼식을 맞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게 한이 된 소피는 도나의 일기장을 뒤져 '날짜상' 자신의 아버지가 될 가능성이 있는 세 남자를 하객으로 초청해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섬에 나타난 건축가 샘(피어스 브로스넌), 여행가  빌(스텔란 스카스가드), 은행가 해리(콜린 퍼스)의 세 남자. 과연 이들 중 누가 자신의 친아버지인지를 알아내려는 소피의 막무가내 무용담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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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뮤지컬 '맘마미아'(아바가 인기있던 시절만 해도 이 노래의 제목은 그냥 '마마미아'였는데 한번 뮤지컬 제목을 저렇게 지어 놓으니 그냥 저게 표준이 되어 버립니다)는 영화화하기 그리 쉬운 작품은 아닙니다. 뮤지컬이든, 연극이든 무대에 올려졌던 작품들을 놓고 보면 아무래도 이야기가 강한 쪽이 스크린에 옮겨놓기가 훨씬 쉽습니다.

작품별로 설명하자면 '사운드 오브 뮤직'같은 작품이 '에비타'나 '시카고'보다는 훨씬 쉽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오히려 영화화로 득을 보기도 하죠. 무대에 올려진 '사운드 오브 뮤직'도 훌륭하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지만 스크린으로 보면 잘츠부르크의 그림같은 절경이 보너스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뮤지컬은 아니지만 '아마데우스' 같은 작품도 연극보다는 영화로 만들어 놓았을 때 훨씬 더 관객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반면 줄거리보다는 무대 연출의 묘미를 살린 작품일수록 극장에서는 삐거덕거리기 쉽습니다. 영화판 '시카고'가 극찬을 받은 것도 그런 한계를 잘 넘어섰기 때문이죠. 연극 무대에서는 당연히 무시해도 좋을 부분을 영화에서는 '뭔가'로 채워 넣어야 하는데, '시카고' 처럼 미니멀한 무대가 빛났던 작품에서 그 '뭔가'를 잘못 채워 넣으면 군더더기로 보이기가 십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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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본래 무대 연출가 출신인 필리다 로이드 감독은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경이 지원사격을 해 주는 가운데 '맘마미아'의 화려한 무대를 깔끔하게 화면에 옮겨놓는데 성공했습니다. 51세인 로이드 감독은 브로드웨이판 '맘마미아'의 연출가이기도 했으니 작품에 대한 이해는 뭐 더 말할 필요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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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뮤지컬의 외견상 차이는 미세합니다. 노래 몇 곡이 빠진 정도죠. 새로 추가된 곡은 없습니다. 위에서 말한 '무대에선 필요없는 뭔가'에 섬 주민들로 구성된 익살스러운 표정의 코러스와 지중해의 그림같은 풍광이 들어서니 분위기도 확 살아납니다. 특히 'Voulez Vous'나 'Does your mother know' 등에서 펼쳐지는 군무 장면은 영화에서 훨씬 큰 규모를 보여주고, 완성도도 매우 높지만 전체적으로 뮤지컬판의 균형을 깨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치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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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장 다른 건 연출자의 의도가 드러나는 시선이죠. 물론 뮤지컬 '맘마미아'도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훨씬 더 좋아하는 작품이었겠지만, 영화 '맘마미아'는 이미 '여성 영화'라는 걸 여러 군데서 표방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영화를 볼 때 '댄싱 퀸' 시퀀스에서 온 섬의 아줌마들이 함께 행진을 한다거나 굳이 메릴 스트립을 여주인공으로 삼는다거나 하는 건 우연히 빚어진 일이 아니라는 걸 여러 번 느낄 수 있습니다. 페미니즘 영화라고 과장할 필요는 없겠지만, 여성 관객들에게 가능한 한 더 어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게 보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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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자면 가장 두드러진 건 주인공 도나 역으로 메릴 스트립을 기용했다는 모험입니다. 스트립은 1949년생, 올해 59세입니다. 그럼 도나는 몇살일까요. 정확한 나이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대략 45세 전후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고, 많아 봐야 50 아래일 것으로 보입니다. 딸 소피가 만 20세인데 결혼을 한다는 점, 임신 때문에 어머니에게 의절을 당했다는 점(Well, didn't really have much choice, did I? Couldn't really go back home an unmarried Mum in the 70's. My mother disowned me...라는 대사. 이미 30대였다면 혼자 애 낳아 키우는게 의절당할 정도로 심각한 일은 아니었겠죠) 등으로 미뤄 볼 때 임신한 도나는 20대, 그것도 아마 25세 이하였을 겁니다.

만약 도나가 메릴 스트립의 나이였다면, 나이 40에 세 남자와 일주일 간격으로 애정행각을 벌였다는 얘기가 되죠. 물론 메릴 스트립을 옹호하시는 분들은 배우에게 나이가 어디 있느냐고 하시겠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냉정하게, 이 영화의 메릴 스트립이 40대로 보입니까? 제게는 소피 역의 아만다 세이프리드와 함께 서면 사이 좋은 손녀와 할머니로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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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다 좋습니다. 왜 스트립을 골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도나 역에 50대를 쓰건 60대를 쓰건, 혹은 70대를 쓰건 그건 모두 제작진의 권리죠. 그렇다면 스트립의 도나 연기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를 따져 보겠습니다. 일단 대다수 여성 관객들 - 물론 제가 아는 사람들입니다 - 은 스트립이 이 역할을 맡았다는 것 자체에 대해선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노래는 좀 더 잘 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더라"고들 하더군요.

이 대목에서 또 불끈해서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어머니의 주름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들이며, '세월의 풍상과 흠집이 느껴지는 갈라진 스트립의 목소리에서 진정한 나이든 여성의 아름다움과 카리스마를 느꼈다' 운운 하실 분들은 잠시 진정하시기 바랍니다. 역할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맘마 미아'의 도나는 왕년에 잘 나간 것 못잖게 현재 상태에서도 세 남자의 입에서 "도나, 20년 전이나 변한 게 없군"이라는 감탄을 자아내야 하는 여자입니다. 그리고 상대역이 누군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겠죠. 007 피어스 브로스넌이 '21년간 당신만 기억해왔다'며 불타는 사랑을 고백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역할에 메릴 스트립이 어울릴까요? '마지막 시퀀스에서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는 분들이 꽤 됩니다. (물론 한 인터뷰에서 브로스넌은 '무슨 영화인지도 모른 채 메릴 스트립과 공연한다는 얘기만 듣고 사인을 했다. 내게 그녀는 여신이었다'고 흥분하기도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취향은 참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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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스넌의 의견과는 달리 제가 아는 한 선배는(세계 시니시즘협회 한국 지부장은 너끈히 하실 분입니다) 이 영화에 여성 관객들이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누가 봐도 할머니인 메릴 스트립 정도만 되면 피어스 브로스넌 같은 남자와 연애를 할 수 있다는 환상을 여자들에게 심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마디로 휙 내친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을 보고 '음, 내가 저런 글을 쓰면 악플이 한 350개 정도 달리겠군'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 생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나더군요. 오래 전 한 영화평론가는 '할리우드 영화 속에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의 애정행각이 자주 나오는 건 할리우드 스튜디오 오너들의 정신나간 성적 환상이 개입하기 때문'이라고 맹렬하게 비난한 적이 있었긴 합니다만, 어느새 세월이 그걸 역전시킨 걸까요?^

결론은 그렇습니다. 영화 '맘마미아'는 무대에서 봤을 때의 흥과 속도감을 떨어뜨리지 않는, 훌륭한 영화화 작업으로 평가할 만 합니다. 하지만 여주인공은 좀 더 신경써서 고르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가능한 한 그런 생각을 억제하려 했지만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두 장면, 'Winner takes it all' 시퀀스와 마지막에 보너스로 나오는 'Dancing Queen' - 'Waterloo' 시퀀스에서는 너무나 맥이 풀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최소한 납득할 수 있는 도나라면, 마지막 시퀀스의 반짝이 옷을 입었을 때 노망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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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물론 스트립이 일생일대의 적역이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죠. 인정한다니까요.


p.s.2 아무래도 노래가 없으니 너무 아쉬워서 딱 두곡만 붙입니다. 아바가 'Waterloo'를 부르던 유로비전 송 컨테스트를 기억하는 사람들끼리는 아바 노래가 좋네 어쩌네 하는 거야말로 일생의 쓸데 없는 소리죠.

어린 시절 '이혼'이라는 게 어떤 건지를 처음 막연히 느끼게 해 준 곡입니다.




다음은 영화에서 빠진 최고 명곡 중 하나. 물론 끝까지 기다리시면, 크레딧이 올라 갈 때 아만다 세이프리드의 목소리로 이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Thank you for the music, the songs I'm singing

Thanks for all the joy they're bringing

Who can live without it, I ask in all honesty

What would life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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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되고 싶은 깡패 vs 깡패보다 더한 배우'라는 슬로건은 이 영화의 아주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욱하는 성질과 주먹잡이 실력으로 가는 데마다 사고를 치는 배우 장수타(강지환)는 어느날 우연히 룸살롱에서 잘생긴 건달 보스 이강패(소지섭)를 만납니다. 강패는 왕년에 배우가 꿈이었다는 사실을 은근히 털어놓지만 오만으로 똘똘 뭉친 수타에게 무시만 당합니다.

곡절 끝에 강패에게 영화에 같이 출연해달라고 종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수타. 하지만 이런 수타에게 강패는 결정적인 제안을 합니다. '액션 신에서 연기를 하지 않고 실제로 맞고 때리면서 찍겠다면 찍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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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화다'는 김기덕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33세 장훈 감독의 데뷔작입니다(앞서 말한 월간 키노 출신의 장훈 감독과는 동명이인이군요.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사실 대자본을 들인 영화도 아니고, 유명 감독의 영화도 아닌 이런 작품에 소지섭과 강지환 수준의 유명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다는 것은 공력도 공력이지만 일단 시나리오가 대단히 빼어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영화로 만들어진 '영화는 영화다'는 역시 탄탄한 시나리오에서 좋은 영화가 나온다는 불멸의 진리를 다시금 확인시켜줬습니다.

사실 영화를 좋아하는, 혹은 영화계를 동경하는 '거리의 남자' 이야기는 전혀 드물지 않습니다. 일단 할리우드에서만 봐도 '브로드웨이를 쏴라'에 나오는 치치(채즈 팔민테리)나 '겟 쇼티'의 칠리 파머(존 트래볼타)처럼 아예 연예계로 나오고 싶어하는 건달 이야기는 수시로 영화에 등장합니다. 게다가 한국에는 왕년의 서방파 두목 조양은이 직접 출연한 '보스'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죠. 어쩌면 '영화는 영화다'의 출발점이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에서 조인성이 영화감독인 친구의 촬영장에 놀러 가서 빚어지는 에피소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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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로 '영화는 영화다'는 태어나 누구도 해본 적 없을 법한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한 영화는 아니지만, 반대로 생각해 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두고, 그 상황에서 벌어질 법한 일들을 충실하게 발전시켜 키워낸 시나리오가 빛을 발하는 경우로 보입니다. 장면 장면마다 유머감각이 살아있고, 남자 이야기에 흔히 등장하는 은원의 드라마가 좀 너무 많이 보던 이야기가 아니냐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부분 역시 거슬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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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두 주연 배우는 모두 100점짜리 연기를 보여주지는 않더군요. 강지환의 연기는 매 신을 떼놓고 본다면 그리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 전체를 연결해놓고 보면 역시 완급의 조절이라는 면에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막 나가는' 부분을 좀 어색해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원래 성격이 너무 좋은 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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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소지섭은 워낙 설정이 좋았기 때문에 흠이 보이지 않는 경우입니다. 강패는 원래 생각이 표정에 잘 드러나지 않고, 감정 표현에 둔감한 인물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소지섭의 연기 역시 대단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본인에게 어울렸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예'라고 대답할 수 있겠죠. 특이한 캐릭터의 소화가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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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영화 속에 빛을 발하는 인물은 감독 역의 고창석입니다. 지극히 속물이면서 예술가인척 하는, 또 힘의 균형과 상황의 변화를 놀랍도록 빨리 파악하는 감독의 캐릭터를 제대로 살려 낸 고창석이야말로 이 영화의 숨은 주역이라고 부를 만 합니다. 여배우들은 그리 언급할 부분이 없을 것 같습니다. 홍수현이 나오고, 장희진이 우정출연하는데 비중은 거의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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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뻘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혈투는 그야말로 한국 영화 격투사에 남을 정도의 명장면입니다. 제대로 서서 걷기도 힘든 뻘에서 두 사람이 얼마나 고생해서 찍었을지가 마음으로 느껴집니다.

글의 제목을 '소지섭은 영화다'라고 잡은 것은 이 영화에서 '소지섭'이라는 풍경이 차지하는 비중을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흔히 '소간지'라고 불리는 소지섭은 이 영화에서 스스로 미장센이며 스스로 스펙터클입니다. 그 '간지'를 실컷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실 만한 분들도 꽤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 물론 '영화는 영화다'는 그 외의 부분도 훌륭합니다. 아마도 '추격자'와 함께 신인감독이 만든 올해의 수작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합니다.





p.s. 혹시라도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소지섭의 영화 데뷔작이 '***고*'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으시길. 당연히 그 장면은 합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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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을 다룬 영화들을 몇개 찾다 보니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올림픽을 소재로 한 영화가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는 겁니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 봤습니다. 우선 올림픽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겠더군요. 기록 영상이야 넘쳐나지만 그건 모두 저작권이 뚜렷할테니 가져다 쓰려면 꽤 많은 돈이 들 겁니다. 게다가 가상의 올림픽을 실제로 구현하려면 그 엑스트라 동원 비용만 해도...

또 올림픽에서 영화 소재를 뽑아내기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영웅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려 해도, 이미 금메달을 딸 정도면 각 나라의 스포츠 엘리트로 선택된 선수들입니다. 특별히 가슴을 쥐어짜는 휴먼 스토리가 나오기가 쉽지 않죠.

아무튼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영화는 뭐니뭐니해도 '불의 전차 입니다. 1924년 파리 올림픽 육상에 참가한 두 사나이의 이야기죠. 반젤리스의 음악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걸작입니다.





아무튼 올림픽과 영화 얘기를 하려면 레니 리펜슈탈에서 시작할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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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대중 선동 정책의 핵심 인물 중 하나였던 리펜슈탈은 배우 출신의 미모 덕을 봤다는 얘기도 있지만, 영상을 통해 사람들의 가슴을 불타오르게 하는 데 각별한 재능을 과시했습니다.

아래 영상은 오래 전에 한번 써 먹은 적이 있었죠.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궐기대회를 담은 '의지의 승리'의 사열 장면입니다. 본래는 바그너의 작품이 배경음악이었다고 하는데 이 동영상에선 스타 워즈 시리즈의 임페리얼 마치가 깔려 있죠.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잘 어울립니다. 뭐 조지 루카스가 이 장면을 그대로 베껴서 다스 베이더의 사열 장면을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리펜슈탈은 '의지의 승리'에 이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담은 영화 '올림피아'로 제3제국 최고의 영상예술가 대접을 받았습니다. 물론 내용이야 생각할수록 사악하기 짝이 없지만, 리펜슈탈의 재능에는 누구라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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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나치 선전의 장으로 활용하려고 광분했던 히틀러의 야욕에 찬물을 끼얹은 영웅이 있죠. 바로 제시 오웬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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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안 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떨치려던 히틀러는 오웬스가 금메달을 딸 때마다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다는군요. 그게 얄미워서인지 오웬스는 더욱 분발해 4관왕이 돼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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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웬스의 경우도 TV용 영화 외에는 주목할만한 작품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런데 2009년 개봉 예정으로 '제시 오웬스'라는 영화가 제작중이군요. 기대해 보겠습니다.

(언젠가는 1936년 손기정 선수의 이야기도 영화로 나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올림픽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별로 없다 보니 이런 영화도 꼽게 됩니다. 사실 저도 오래 전 흑백 TV 시절에 본 영화인데, 대단히 유쾌한 코미디입니다.

바로 '뛰지말고 걸어라(Walk, Don't Run)'이란 영화죠. 벤처스와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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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도쿄 올림픽 당시, 도쿄 시내는 극도로 심각한 방 구하기 전쟁에 빠집니다. 그래서 초로의 미국인 사업가, 젊은 미모의 여인(여자 직업은 잘 생각이 안 나는군요), 그리고 미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올림픽에 참가하는 한 선수가 아파트 하나를 빌려 우연한 동거생활에 들어갑니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 선수가 "대체 무슨 종목에 출전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을 회피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죠. 결국 이 선수의 출전 종목이 뭔지는 그가 경기장에 선 순간에서야 알게 됩니다. 과연 남자의 종목은 뭐였을까요?

40년 넘은 영화로 스포일러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암전 처리를 하겠습니다. 이 남자의 종목은   경보        였습니다. 사실 제목이 힌트죠.^^  궁금하신 분들은 빈 부분을 마우스로 긁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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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70년대 미국의 육상 스타인 스티브 프리폰테인(Steve Prefontaine)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있습니다. 사실 미국 밖에서는 그리 알려진 인물이 아닙니다. 심지어 올림픽 메달리스트도 아니죠. 하지만 1972년 뮌헨 올림픽에 나간 뒤 24세로 요절했다는 얘기가 심금을 울렸습니다.

그를 소재로 한 영화는 '프리폰테인'과 '위드아웃 리미트(Without Limits)'의 두 편이 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본 사람이 얼마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왜 그를 기억하는 영화가 자꾸 나오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아마도 그의 코치였던 빌 바우어만이 창업한 스포츠 메이커가 잘 나가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아마 들어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Nike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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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뮌헨 올림픽을 생각하면 당연히 이 영화가 빠질 수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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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는 전혀 무관한 영화지만, 영화 '뮌헨'은 올림픽 당시 이스라엘 선수 숙소에 난입한 아랍 테러단체 '검은 9월단'의 학살 사건에서 시작합니다.

이후 반쪽 행사가 된 1980년 모스크바와 1984년 LA 올림픽까지, 이 시기의 올림픽은 대단히 정치적인 행사였다는 본질을 드러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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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 다음은 아주 낯익은 장면들이 등장하는 '펜타트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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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프 룬트그렌 주연의 '펜타트론 (Pentathlon)'은 서울 올림픽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실제 서울 장면은 물론 그리 많지 않죠. 아무튼 낯익은 풍물들이 잠시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나자나 5종경기는 아무래도 '펜타슬론'이라고 써야 할 것 같은데(10종경기를 '데카슬론'이라고 쓰는 이상), '펜타트론'은 아무래도 좀 그렇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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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동계 올림픽을 소재로 한 영화는 꽤 됩니다. 아마도 보신 분이 꽤 많을 '미러클'은 1980년 레이크 플래시드 동계 올림픽 때 무적의 소련 대표팀을 꺾고 우승한 미국 아이스하키 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오래 전 칼 말덴이 코치 역으로 나오는 TV판 영화를 본 것 같은데, 이 극장판 영화에선 커트 러셀이 같은 역입니다. 이때의 승리가 얼마나 감동적이었으면 자꾸 자꾸 영화로도 보고 싶을까요.^^ 아무튼 당시 소련 대표팀은 동계 올림픽 전초전으로 가진 NHL 선발팀과의 친선 경기에서도 이겨 버렸을 정도의 막무가내 팀이었던 만큼 감격이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물론 저 영화 100편으로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영화를 빠뜨릴 수 없습니다. 바로 '쿨 러닝'. 다 아시겠지만 1988년 캘거리 올림픽에 등장한 자메이카 봅슬레이 팀의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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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안 보신 분이 있다면 꼭 보셔야 하는 영화입니다. 특히 엔딩 신의 감동은 그동안 스치고 지나간 가벼운 웃음을 싹 날려버릴 정도로 강력합니다.

그 '문제의 엔딩 신'입니다. 아직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절대 보시면 안 됩니다. 그때의 감동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싶은 분들만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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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호평 일색인 영화를 볼 때면 '흥, 어디 얼마나 잘 만들었나 보자' 같은 심정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영화들은 보고 있으면 이런 투지가 뚝 부러지는 느낌을 주곤 합니다. 한마디로 전의를 빼앗아 버리는 영화들이죠.

사실 픽사(PIXAR)의 애니메이션을 두고 잘 만들었느니, 걸작이라느니 하는 수식어를 쓰기를 포기한 지 이미 오랩니다. 아마도 단일 제작사 이름만으로 영화를 볼지 말지를 정하라고 한다면, 이 회사만큼 신뢰도가 높은 이름이 지구상에 존재할까 싶습니다. 굳이 '토이 스토리'며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며 '인크레더블'을 들먹일 필요도 없을 겁니다.

물론 초창기라면 몰라도, 현재 픽사의 애니메이션이 돈을 쓰지 않고 단지 아이디어나 땀방울만으로 만들어진 건 절대 아닙니다. '니모를 찾아서'의 제작비가 이미 9400만달러, 이번 '월 E'의 제작비는 1억8000만달러나 합니다. 더구나 '월 E'에는 나름 유명 배우들을 성우로 쓰지도 않았으니(사실 쓸 필요가 없었죠. 컴퓨터 목소리를 낸 시고니 위버 정도?), 정말 '그림만 그리는 데' 들어간 돈 치곤 엄청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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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화면에서 돈 냄새가 나는 '다크 나이트'의 제작비가 1억8500만달러(공식적으로 그렇습니다), 역시 돈 깨나 쓴 '미이라 3'가 1억4500만달러입니다. 애니메이션 영화 하나 만드는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10배나 되는 돈이 들어간 겁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월 E'가 준 좌절감은 '다크 나이트'보다 훨씬 컸습니다. 사실 '미이라 3' 정도라면, 저 정도 돈 - 약 1500억원 정도 - 이 들어온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아마 그보단 훨씬 잘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 같은 영화라면, 같은 돈을 준다 해도 한국에서 만들기는 쉽지 않을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여기엔 단시간에 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다크 나이트'를 '죽었다 깨나도 만들 수 없는 영화'라고 표현한다 칠 때 '월 E'는 '두번 죽었다 깨나도 만들 수 없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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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E는 텅빈 지구를 지키고 있는 청소 로보트입니다. 어찌된 일인지 혼자 남아 인간은 커녕 생명체라곤 바퀴벌레 한마리 뿐인 지구를 청소하고 있죠. 그런데 그는 - 원래 그랬는지, 뭔가가 잘못됐는지 - 인간의 감정을 갖게 됩니다. (아마도 원래 그랬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던 어느날, 외계로부터 이브(EVE)라는 성질 사나운 친구(여성형으로 느껴집니다)가 찾아옵니다. 뭔가 사명을 갖고 지구에 온 건 분명한데, 월 E로서는 이해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죠.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것 처럼 이브는 어느날 갑자기 말을 않게 되고, 역시 어느날 갑자기 외계에서 온 거대한 우주선에 의해 떠나갑니다. 여기서 월 E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겠죠. 그렇게 해서 대모험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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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면서 대다수 관객들은 '저렇게 한정된 수단으로 이토록 풍부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니'라는 데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보시다시피 월 E와 이브는 모두 얼굴이 없습니다. 있다면 간신히 표현되는 눈 정도죠. 그런데도 월 E는 별 용기 없는 수줍은 찌질남을, 이브는 똑똑하고 도도하며 세련된 여주인공을 연기하는 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물론 이건 애니메이션의 발전이기도 하지만, 관객의 발전-혹은 적응-이기도 합니다. 정교하게 설명하려면 더 오래 걸리겠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원시 사회에 고립돼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영화를 봐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영화를 쉽게 이해하는 건 그만큼 우리가 영화라는 매체의 문법에 적응해 있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월 E'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애니메이션인 사람은 그만큼 놀라운 경험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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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디자인과 연출에 대한 놀라움은 이들 주인공 뿐만 아니라 더욱 단순하게 디자인 된 조연 캐릭터들에게서도 각각 독자적인 '성격'이 살아 숨쉬는 듯 묘사된다는 데서 배가됩니다. 월 E가 우주선에서 만나는 작은 청소 로봇 모(MO)의 경우가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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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사용 역시 달인의 솜씨가 돋보입니다. 노래하지 못하는 주인공들을 쓴 대신 1969년작인 할리우드의 고전 뮤지컬 영화 '헬로 돌리'가 사용됩니다. 감독 앤드류 스탠튼은 "소심한 남자가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나가는 이야기기 때문에" 이 뮤지컬을 사용했다고 말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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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사용된 노래는 'Put On Your Sunday Clothes'와 'It Only Takes a Moment' 두 곡입니다. 그러고 보면 '월 E'에선 '장밋빛 인생'을 부른 루이 암스트롱도 '헬로 돌리'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연출이나 음악도 그렇지만 픽사 애니메이션 최강의 카드는 바로 최상의 유머 감각이죠.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탄탄한 스토리의 힘은 웃다가도 무서워질 정돕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선장과 오토(AUTO)의 격투 장면에서 갑작스레 흘러나오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였습니다. 당연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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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만 말해선 잘 모르실 분들이 꽤 있겠군요. 일단 '월 E'를 보시고, 그 다음에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대해 조금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월 E'에 나오는 오토의 눈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할(HAL)의 눈이 매우 닮았습니다. 아마도 큐브릭에 대한 오마주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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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다양한 이미지의 차용은 '월 E'가 할리우드의 백년 역사가 만들어 낸 걸작 중 하나로 꼽힐 수 있는 것은 그 전에 존재했던 수많은 걸작들의 가르침을 쉽게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과감하게 말할 수 있게 합니다.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바탕은 어느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탄탄한 플롯에서부터 설계를 시작하는 노하우 말입니다.

지금도 '상업영화'를 우습게 보면서 '돈만 더 있으면 얼마든지 뽀대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분들이 보셔야 할 영화가 바로 '월 E'같은 영화입니다. 그나자나 이런 디지털 캐릭터들의 명연기를 보고 나면 반성해야 할 배우들도 한둘이 아니겠군요. "이봐, 얼굴에 눈밖에 없는 디지털 캐릭터를 써도 너보단 연기 잘 할 것 같은데 어때?" 이런 말이 곧 등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할리우드의 몇분의 1 가격으로 비슷한 수준의 액션을'을 셀링 포인트로 잡고 있는 분들이 부디 하루 빨리 '월 E'같은 영화를 보고, 뛰어난 스토리의 개발이야말로 더욱 투자가 시급한 부분이라는 점을 깨닫기 바랍니다.

이렇게까지 주절주절 떠들었는데 '그래서 재미있다는 얘기냐'고 물을 분은 없겠죠.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어야만 영화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아니라면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돈만 많다면 '재미 없으면 극장 표값 물어주겠다'고 호기있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 영홥니다. (물론 돈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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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브의 디자인에서는 너무도 애플의 냄새가 짙게 풍깁니다. 이 묘한 느낌은, 월 E가 왕년의 뮤지컬 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재현하는 장비가 iPod이란 데서 확신으로 바뀝니다. 아무리 스티브 잡스가 PIXAR와 인연이 두텁다고 해도 이 정도면 돈 한두푼으론 해결이 안 될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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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 그나자나 날로 우주선 속 인류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저로선 참 뼈저린 영화기도 하더군요.^^ 누가 트집 잡을때마다 '미래형 몸매'라고 해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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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크리스천 베일)은 레이첼(메기 질렌할)의 새 연인인 고담 시의 새로운 지방검사 하비 덴트(아론 에커트)가 범죄에 맞설 수 있는 강한 의지와 인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습니다. 배트맨과 덴트, 그리고 고든 반장(게리 올드만)은 조직범죄를 싹쓸이하기 위해 힘을 합칩니다.

한편 고담시에는 유례가 없는 대악당 조커(히스 레저)가 등장, 시민들뿐만 아니라 조직 보스들도 공포에 떨게 합니다. 배트맨과 덴트가 조직들의 자금줄을 죄자 보스들은 마침내 조커에게 배트맨을 제거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배트맨과 조커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벌어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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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팀 버튼의 '배트맨'으로 시작된 네 편의 영화는 그나마 음침함을 유지하고 있던 팀 버튼이 손을 떼면서 완전히 동화의 세계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런은 '배트맨 비긴즈'를 통해 이 시리즈에 새로운 숨을 불어 넣었죠. 보다 그럴듯 하고, 보다 성인용인 배트맨의 세계 말입니다.

아무래도 '다크나이트'를 얘기할 때는 조커를 제일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히스 레저의 조커는 대단히 유니크한 범죄자입니다. 그는 단순한 범죄자의 차원이 아니라 악마 자체죠. '순수악'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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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영화라면 칙칙한 밤 장면이 많이 나오는게 당연하지만, 조커의 존재는 이 영화를 더욱 어둡고 무겁게 만듭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조커는 수세기에 걸친 악의 본질에 대한 연구를 담은 캐릭터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현자들이 정리한 선과 악에 대한 정의들을 종합하면 결국 선은 '타자와의 공존을 지향하는 의지', 악은 '타자의 생존 가치를 부정하는 이기적인 의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세상에 순수선과 순수악만 존재한다면, 결국 세상은 사라져버리고 말 겁니다. 이론적으로 선이란 악에게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때로는 전체의 선을 위해서 소수의 악을 제거할 수 있다는 이른바 '필요악'이 등장합니다. 이것 바로 정의라고 불리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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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들은 '이 정의라는 필요악이 지나치게 거대해져서 그것이 사람들을 억압하는 존재가 되어 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늘 걱정합니다. 특히 정의가 어떤 특정 이념을 신봉하는 세력에 의해 운영될 때 그렇습니다. 실제로 어떤 가치나 신념도 전제하지 않은 정의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악명 높은 인종 청소를 하는 사람들도 나름대로는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믿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 문명일수록 절차와 합의를 중시하고, 정의의 실현에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나 사사로운 정의의 실현(예를 들면 부모의 복수)은 엄격한 경계의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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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와 배트맨의 대결은 이런 전제를 바닥에 깔고 있습니다. 조커는 순수악의 상징, 배트맨과 하비 덴트는 건전한 정의의 상징입니다. 이 상징이란 사람들의 믿음의 대상이기도 하죠.

영화 속의 세계로 들어가 설명하면 배트맨과 덴트가 있어 고담 시민들은 세계가 안전하고 정의롭게 운영될 수 있다는, 또는 실제로 그렇게 운영되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쪽을 지향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조커는 그런 상징을 파괴하려 끊임없이 시도합니다. 결국 어느 정도는 성공하게 되죠.

'다크 나이트'는 바로 악과 싸우는 정의라는 필요악의 존재, 그리고 이 필요악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 냉엄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흔한 블록버스터로 보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죠. 이 과정에서 놀런의 솜씨는 대단합니다.


아울러 월 스트리트 저널이 이 영화의 배트맨을 부시 대통령과 비교한 칼럼을 게재한 것도 전혀 얼토당토 않은 일은 아니었습니다. 영화의 요점을 꿰뚫어 봤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였죠. (그 글의 방향이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무슨 얘긴지 잘 모르시는 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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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과연 일반 관객들이 영화의 뒷면까지 속속들이 이해하고, 놀런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생각할까요. 그걸 기대하기는 힘들 겁니다. 이 영화의 흥행 기록을 날로 갱신하고 있는 미국 관객들 역시 마찬가지일테구요. 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영화의 나머지 절반, 즉 순수 블록버스터로서의 '다크 나이트'입니다. 그리고 이쪽 절반 역시 대단히 훌륭합니다.

사실 '다크 나이트'의 액션에는 두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인공 배트맨의 강력한 의상으로 인해 스턴트맨의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죠. 배트맨의 주연 배우가 그렇게 자주 바뀐 건 우연이 아닙니다. 누가 입어도 구별이 안 되는 의상이 그렇게 만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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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주인공의 특성상 대부분의 액션 신이 밤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죠. 상대적으로 덜 정교해도 됩니다. 사소한 실수가 발견돼도 그냥 CG로 슥슥 검게 지워버리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도시 한복판에서 콘테이너 트럭을 직각으로 뒤집어 버리는 차원의 액션은 입이 떡 벌어지게 합니다. 홍콩과 고담(극중에선 시카고)의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한 시원시원한 액션 역시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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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 얘기로 넘어가면 더더욱 할 말이 없어지죠. 크리스천 베일과 히스 레저는 동급 최강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조커는 매우 연기하기 쉬운 역할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저의 연기력은 발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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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의 배우들, 게리 올드만, 모건 프리맨, 마이클 케인, 아론 에커트의 진용은 '오션스 11'이 부럽지 않죠. 이 영화의 배우 남용은 엄청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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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에선 주역이었던 킬리앙 머피가 스케어크로 역 그대로 카메오 출연합니다. (왼쪽에서 두번째 앉은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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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단 한 신 나오고 마는 은행 경비원 역으로 윌리엄 피트너가 나올 정도라니 말 다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주인공이 메기 질렌할이라는 건 좀... 제작비 절감 차원이라고 봐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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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축복받은 영화라고 부를 만한 '다크나이트'지만 한국에서의 흥행 성적에 대한 예측은 그리 밝지만은 않습니다. 지난 글에서 얘기했다시피, 이 영화의 배트맨은 너무나도 '한국적인 슈퍼 영웅'과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배트맨의 본질적인 성격과 관련이 깊죠. 배트맨은 '다이 하드'의 브루스 윌리스가 아닙니다.

(배트맨의 답답성 본질(^^)에 대한 내용은:)




배트맨은 악당은 물론이고 자기를 깨무는 개조차도 죽이지 못합니다. 이건 그의 원칙에 따른 것인데(물론 '다크나이트'에는 배트맨 외에도, 기회가 왔을 때 조커를 죽이지 못하는 캐릭터가 또 있습니다), 이런 그의 원칙에 따른 행동거지가 과연 한국 관객들의 구미에 맞을지, 그건 확인해 보기 전엔 장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벌써 '속터져서 못 보겠더라'는 관객이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남 얘기가 아닙니다. 보면서 마음속으론 조커를 열두번도 더 죽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실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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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히스 레저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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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영화 리뷰는

http://isblog.joins.com/fivecard/category/영상을%20훑다가/영화를%20보다가

(자동이동이 안되는군요. 긁어다 주소창에 붙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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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이라'가 처음 만들어 질 때만 해도 3편까지 나올 거라고 기대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겁니다. 스티븐 소머즈가 대단한 기대주였던 것도 아니고, 브랜든 프레이저 역시 관객동원력 있는 배우가 아니었죠. 하지만 이 샘은 파도 파도 제법 단 물이 나오는 명천이었습니다.

누구나 아다시피 '미이라' 시리즈는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를 생각하지 않으면 존재하기 힘든 시리즈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내셔널 트레저' 시리즈까지 등장해 박스오피스를 휘젓는 바람에 올해 개봉되는 '미이라' 시리즈가 3편이라는 말에 '어? 3편은 벌써 보지 않았나?'하고 잠시 생각했더랬습니다. 이 영화 저 영화에서 서로 설정을 꿔다 쓰는 바람에 한 4편 정도는 이미 나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미이라 3' 는 앞선 두 편과는 몇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일단 감독이 'XXX'의 롭 코헨으로 바뀌었고, 오코넬 부인 역이 레이첼 바이스(Weisz는 이렇게 읽는답니다)에서 마리아 벨로로 교체됐습니다. 아, 뭣보다 무대가 이집트에서 중국으로 옮겨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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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이렇습니다. 2차대전이 끝난 1946년, 릭 오코너(브랜든 프레이저)와 이블린(마리아 벨로) 부부는 은퇴 생활이 좀이 쑤셔 죽으려는 시점에 상해로 중요한 보물을 갖고 가 달라는 요청을 받고 냉큼 수락합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이들 부부의 아들 알렉스(루크 포드)가 진시황(이연걸)의 병마용갱을 발견해놓고 있었죠.

그래서 진시황을 부활시키려는 군벌 양장군(황추생)과 그를 저지하려는 린(양낙시), 그리고 빠지면 섭섭한 이블린의 오빠 조나단(존 해너)가 뒤얽혀 엎치락 뒤치락 대 활극을 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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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라' 시리즈는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의 수많은 아류작 중에서 가장 밝은 색채를 자랑합니다. 여기서는 주인공 중 누가 죽거나 다칠 일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도 마음 편히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영화죠. 물론 생각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뭐 얘기의 진행이 저 따위야?'라고 화를 내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얼개는 짜 놓은 상태라 그냥 마음 편히 따라가면 됩니다.

갑자기 왜 이렇게 줄거리에 관대해졌느냐고 따질 분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 그다지 마음에 드는 훌륭한 스토리는 아니라 해도 스토리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요소들은 모두 충족하고 있습니다. 쓸데 없는 곁가지로 '대체 왜 얘기가 이런 데서 겉도는 거야?'하는 느낌을 주거나, 쓸데도 없는 설명으로 템포만 뜰어뜨리지는 않고 있으니까요. 아, '가족 이야기'가 좀 지루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건 가족영화로서의 이 영화가 갖춰야 할 최소한이라고 생각하시는게 마음 편할 겁니다.


이 영화에서 부인 역의 배역 교체가 일어난 것은 무엇보다 레이첼 바이스가 '엄마 역할'에 너무 크게 초점을 맞춘 대본에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애엄마 역을 좋아하는 배우는 사실 없다고 봐도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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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들 역으로 루크 포드가 새로 등장한 것은, 이번 작품으로 브랜든 프레이저와 '미이라' 시리즈의 계약이 끝나기 때문에, 차기작부터는 루크 포드를 중심으로 영화를 이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한 포석이라는군요. (하지만 이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루크 포드의 매력이 너무 약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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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라 3'는 기본적으로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이미 만들어 진 다른 영화들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카리스마틱한 과거의 제왕을 되살리려는 현대의 악당들이 반드시 등장해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든다는 건 그냥 이 시리즈의 특징이라고 칩시다. 영생의 샘물과 그걸 마셔야만 하는 이유는 '인디애나 존스 3 - 최후의 십자군'에서도 봤던 얘깁니다(생각해보면 다친 사람이 누군지도 똑같죠). 이밖에도 유사한 영화들로부터 빌려 온 설정이나 클리셰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마지막에 매드 독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는 장면에서는 아주 잠깐, 아예 '인디애나 존스'의 메인 테마가 울려퍼진 것 같기도 한데, 혹시 들으신 분은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배우들은 별로 언급할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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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든 프레이저의 주름살이 좀 안쓰럽고, 마리아 벨로는 레이첼 바이스보다는 케이트 베킨세일을 훨씬 닮았고(롭 코헨이 스티븐 소머즈의 시리즈를 이어 가는 영화라니까 '미이라 3'가 아니라 '반 헬싱 2'인줄 알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루크 포드는 너무 개성이 없고, 이연걸이나 양자경은 사실 이런 영화에 이런 역으로 나오는 것이 좀 망신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굳이 가장 반가운 얼굴을 꼽으라면 존 해너였고, 역시 가장 관심이 가는 건 양낙시(梁洛施, 이사벨라 렁)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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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낙시는 포르투갈계 아버지를 둔 올해 만 20세의 홍콩 여배우입니다. 가수로는 앨범을 다섯장이나 냈지만 아직 배우로는 이렇다할 경력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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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왕년의 장민과 장백지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인데, 앞으로 차세대 홍콩의 주역으로 기대해도 될 것 같습니다. 지난 연말 대만 금마장에서 이준기가 탕유(탕웨이)에게 신인여우상을 시상할 때 동반 시상자였다는 인연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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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채셨겠지만 굳이 이 양낙시의 뒷조사를 하고 있는 건 영화에 대해 그리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미이라' 1편과 2편을 보신 분인데, 두 영화에 대한 기억이 좋았다면 이 영화를 보시는 건 반대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만약 앞의 두 영화를 못 보셨다면 아무래도 가장 먼저 권할 것은 '미이라 3'가 아니라 '미이라' 입니다. 3편은 그 다음에 볼지 말지를 생각해 보시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굳이 한마디만 토를 단다면, 놀이공원의 기구들도 안전할수록 스릴은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대신 매우 마음 편하게 탈 수 있는게 장점이죠. 그 밖의 다른 부분이요? 유머란 써먹으면 써먹을 수록 위력이 약해지는게 당연한 거죠. 그리고 농담에 대한 한 롭 코헨에 비해 스티븐 소머즈가 열 배는 뛰어납니다. 그런 부분은 아무래도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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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롭 코헨은 아무래도 용에 무슨 한이 맺힌 것 같습니다. 제목에 용이 들어가는 영화를 만든 게 벌써 세번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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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두번째 작품 '드래곤 하트'에 나오는 용(숀 코너리가 목소리를 맡았던)과 이 영화의 용을 비교해보시는 것도 흥미로울 듯 합니다.


p.s. 2. 극중에선 아무도 진시황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이건 누가 봐도 진시황일 수밖에 없는 얘깁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중국인들이라면, 아무리 살아 생전에 악행을 많이 저지른 진시황이라도 '양키들'의 손에 의해 무참하게 부활을 저지당하는 걸 보고 싶어 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홍콩에선 지난달 31일에 이미 개봉했는데 중국 본토에선 개봉하기 힘들겠죠?


p.s.3. (영화를 보신 분만 이해하시겠지만) 정말 4편에는 잉카 제국이 등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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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떴습니다. 최근 개봉된 '다크 나이트'와 관련, 이 영화에 나오는 배트맨의 모습이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얘기더군요. 월 스트리트 저널(WSJ)에 실린 한 칼럼에 근거한 기사였습니다.

http://www.kukinews.com/news/article/view.asp?page=1&gCode=int&arcid=0920984551&cp=nv

보다 보니 궁금해서 원문을 찾아 봤습니다. 그런데...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한글 기사를 좀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유를 금방 아실 수 있습니다.


<< ‘배트맨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닮은 꼴. 미국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월스트리트저널(WSJ)는 28일 이 같은 주장을 담은 유명 추리소설가 앤드류 클래번의 칼럼을 실었다. 그는 칼럼에서 “두 사람은 선악 구별만 하는 단순한 도덕 관념, 긴급 사태를 핑계로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철면피라는 점이 똑같다”고 주장한다.

부시 대통령이 2001년 9·11 사건 직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자 환호를 보낸 미국인들은 얼마 전 개봉된 영화 ‘배트맨:다크 나이트’편에 똑같이 열광하고 있다. 클래번에 따르면, 이 같은 미국인의 심리가 바로 보수 진영의 요람이다. 항상 정의의 승리를 위해선 모든 수단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여기는 사고방식이 네오콘(신보수주의)과 부시 정권을 낳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특히 영화계가 보수주의를 더 한심하게 만들고 있다”며 “진보 진영이 부시 정권을 사실적으로 비판하는 반면, 보수 진영은 만화 캐릭터나 동원해 부시를 응원한다”고 지적한다. 배트맨 같은 블록버스터 ‘영웅’은 보수 이미지를 ‘단순·만용·일방주의’로 고착시킬 뿐이란다.

또한 진보 영화계가 얼핏 우월해 보이지만 진실의 한쪽 면만 부각시킨다는 점에선 보수 진영과 마찬가지라고 클래번은 꼬집었다. 테러리스트의 인권 침해 문제는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테러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인권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새로 나온 배트맨 시리즈가 인기를 얻으면 얻을수록 미국 보수주의의 현재는 우울해진다”며 “이제 보수주의도 만화가 아닌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기자

>> (이상 국내 모 일간지 기사.)


이 기사를 봐선 앤드류 클래번이라는 사람은 부시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자, 그럼 원문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냥 보시라는 얘기는 않겠습니다.^^ 제가 엉뚱한 번역을 했는지도 모르니 다들 한번 검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 기사에서 굵게 표시한 부분을 원문에서 찾아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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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배트맨과 부시의 공통점

폭력과 공포에 휩싸운 도시로부터 구원을 요청하는 외침이 흘러나온다. 플래시 불빛이 밤하늘을 비치고, 흘러가는 구름 표면에 박쥐의 심볼이 비쳐진다.

가만. 저건 박쥐가 아니군. 사실, 손가락으로 따라 그려보면... 그건 마치... W처럼 보인다.

현재 모든 박스 오피스 기록을 깨고 있는 '다크 나이트'는, 내가 보기에는 의심할 여지 없이, 거의 찬가의 수준으로 조지 W. 부시가 지금과 같은 테러와 전란의 시대에 보여온 강고한 의지와 도덕적인 용기를 찬양하고 있는 영화다. W(부시)처럼, 배트맨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테러리스트들과 맞서고 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비방당하고 또 혐오를 사고 있다. 또 W처럼, 배트맨은 때때로 긴급 상황을 처리가히 위해 국민들의 권리를 잠시 유보해 두어야만 할 때가 있다. 물론 상황이 해결되는 즉시 그가 훼손된 권리를 원상회복 시킬 것 역시 당연하지만.

그리고 W처럼, 배트맨은 때로 사람들이 그릇된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자유로운 사회 와 파괴에만 열중하는 범죄자 집단 사이에 도덕적인 동등함(moral equivalance)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 전자(자유 사회)는 비록 어리석음에 빠지더라도 고이 간직되어야 할 것이지만, 후자(범죄자 집단)는 반드시 지옥문 안에 갇혀 감시를 받아야 할 것들이다.

따라서 '다크 나이트'는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의 영화다. 그리고 지난해의 '300'같은 영화들처럼, 부시 행정부가 하찮은 것들을 위해 타협할 수 없는 가치와 필요를 묘사함으로써 흥행에서도 성공했다.

반대로,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좌경 색채의 영화들 - '엘라의 계곡 (In The Valley Of Elah)', '렌디션(Rendition)''리댁티드(Redacted)' - 등은 도덕적 균형을 설교하고, 굴복을 옹호하며, 군과 그들의 사명을 비하하고, 미국과 이슬람 파시즘 사이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개봉될때마다 '충격과 공포 작전(역주=Operation Shock and Awe: 2003년 이라크 침공 때의 작전명)' 수준으로 흥행에서 박살이 났다.

그렇다면 좌경 세력이 자신들의 영화를 직설적이고 사실적으로 만들면서 자유를 만끽한데 비해, 왜 할리우드의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을 말하기 위해 마스크를 써야만(역주=배트맨 이야기를 빌려서) 했을까?  도덕심, 신앙, 자기 희생, 정의를 위해 싸우는 고귀함 등등, 우리를 지키는 데 힘을 더하는 보수적인 가치들은 대체 왜 '300',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스파이더맨 3'와 같이 판타지나 만화 원작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일까?

영화 제작자들이 이슬람 테러리즘을 사실주의적인 영화에서 다루게 되는 순간, 이런 가치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좋은 편은 나쁜 편과 구별할 수가 없고, 결국 우리를 보호해주는 영웅들이 모욕받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진다. 대체 왜 이래야만 하나?

내게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바로 '다크 나이트'의 줄거리에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사실을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로 인해 미움을 받았고, 어떤 사람들은 죽음을 당했다. 물론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도 있다(역주=누구일까요?).

좌경세력은 우익의 도덕관을 단순하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도덕이란 상대적이며 미묘하고 복잡한 것이라고 말한다. 당연히, 그들은 그들 자신의 주장 안에서 이미 틀려 있다.

좌익이든 우익이든, 모든 미국인들은 자유가 노예보다 낫다는 것을, 사랑이 증오보다 낫다는 것을, 친절이 잔혹보다 낫다는 것을, 관용이 편견보다 낫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이런 것들을 알게 되었는지, 늘 알지는 못하지만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다.

정말 문제가 복잡해지는 건 우리가 이런 가치들을, 이 가치들이 널리 통하지 않는 세계에서 지켜내야 할 때이다. 우리가 관용을 지키기 위해 관용을 베풀수 없는 상황, 친절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불친절해져야 하는 상황,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증오를 품게 될 때 말이다.

스스로 이런 어려운 일들을 떠맡는 영웅들이 등장할 때면, 나머지 우리들은 그들로부터 등을 돌리려는 듯한 경향을 보인다. 우리의 도덕적인 모습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비방하는 경향도 보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평화적인 가치의 귀감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우리 편의)사나운 병사나 잔혹한 심문자들을 저주하고 심판받게 했다. 정작 우리의 가치들을 지킨 건 그들인데 말이다. 게리 올드먼이 연기하는 고든 경찰국장이 미움받는 배트맨에 대해 "그는 멀리 도망가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그를 뒤쫓을테니까"라고 말하듯이.

이거야말로 진정한 도덕적 혼란이다. 우리의 예술계가 때때로 사람은 생명을 수호하기 위해 타자를 죽여야만 하고, 그들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때로 그 가치를 침해해야 하고, 무비 스타들이 영웅인 적 하기 위해 우리의 아부의 조명 속에서 거들먹거리는 동안 진짜 영웅들은 어둠 속에서 축 처진 어깨로 살금 살금 도망치거나 모욕당해야만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을 때라야, 그리고 그럴 때에만 우리는 부시 대통령에게 마땅히 받아야만 할 정당한 대우를 해줄 수 있고, 그때서야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참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건 할리우드의 보수주의자들이 그들의 가면을 벗고, 낮의 햇살 속에서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때일 것이다. (끝)



원문입니다. 주소는
http://online.wsj.com/article/SB121694247343482821.html?mod=sphere_ts&mod=sphere_w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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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Bush and Batman Have in Common
By ANDREW KLAVAN
July 25, 2008; Page A15

A cry for help goes out from a city beleaguered by violence and fear: A beam of light flashed into the night sky, the dark symbol of a bat projected onto the surface of the racing clouds . . .

Oh, wait a minute. That's not a bat, actually. In fact, when you trace the outline with your finger, it looks kind of like . . . a "W."

There seems to me no question that the Batman film "The Dark Knight," currently breaking every box office record in history, is at some level a paean of praise to the fortitude and moral courage that has been shown by George W. Bush in this time of terror and war. Like W, Batman is vilified and despised for confronting terrorists in the only terms they understand. Like W, Batman sometimes has to push the boundaries of civil rights to deal with an emergency, certain that he will re-establish those boundaries when the emergency is past.

And like W, Batman understands that there is no moral equivalence between a free society -- in which people sometimes make the wrong choices -- and a criminal sect bent on destruction. The former must be cherished even in its moments of folly; the latter must be hounded to the gates of Hell.

"The Dark Knight," then, is a conservative movie about the war on terror. And like another such film, last year's "300," "The Dark Knight" is making a fortune depicting the values and necessities that the Bush administration cannot seem to articulate for beans.

Conversely, time after time, left-wing films about the war on terror -- films like "In The Valley of Elah," "Rendition" and "Redacted" -- which preach moral equivalence and advocate surrender, that disrespect the military and their mission, that seem unable to distinguish the difference between America and Islamo-fascism, have bombed more spectacularly than Operation Shock and Awe.

Why is it then that left-wingers feel free to make their films direct and realistic, whereas Hollywood conservatives have to put on a mask in order to speak what they know to be the truth? Why is it, indeed, that the conservative values that power our defense -- values like morality, faith, self-sacrifice and the nobility of fighting for the right -- only appear in fantasy or comic-inspired films like "300," "Lord of the Rings," "Narnia," "Spiderman 3" and now "The Dark Knight"?

The moment filmmakers take on the problem of Islamic terrorism in realistic films, suddenly those values vanish. The good guys become indistinguishable from the bad guys, and we end up denigrating the very heroes who defend us. Why should this be?

The answers to these questions seem to me to be embedded in the story of "The Dark Knight" itself: Doing what's right is hard, and speaking the truth is dangerous. Many have been abhorred for it, some killed, one crucified.

Leftists frequently complain that right-wing morality is simplistic. Morality is relative, they say; nuanced, complex. They're wrong, of course, even on their own terms.

Left and right, all Americans know that freedom is better than slavery, that love is better than hate, kindness better than cruelty, tolerance better than bigotry. We don't always know how we know these things, and yet mysteriously we know them nonetheless.

The true complexity arises when we must defend these values in a world that does not universally embrace them -- when we reach the place where we must be intolerant in order to defend tolerance, or unkind in order to defend kindness, or hateful in order to defend what we love.

When heroes arise who take those difficult duties on themselves, it is tempting for the rest of us to turn our backs on them, to vilify them in order to protect our own appearance of righteousness. We prosecute and execrate the violent soldier or the cruel interrogator in order to parade ourselves as paragons of the peaceful values they preserve. As Gary Oldman's Commissioner Gordon says of the hated and hunted Batman, "He has to run away -- because we have to chase him."

That's real moral complexity. And when our artistic community is ready to show that sometimes men must kill in order to preserve life; that sometimes they must violate their values in order to maintain those values; and that while movie stars may strut in the bright light of our adulation for pretending to be heroes, true heroes often must slink in the shadows, slump-shouldered and despised -- then and only then will we be able to pay President Bush his due and make good and true films about the war on terror.

Perhaps that's when Hollywood conservatives will be able to take off their masks and speak plainly in the light of day. (끝)

Mr. Klavan has won two Edgar Awards from the Mystery Writers of America. His new novel, "Empire of Lies" (An Otto Penzler Book, Harcourt), is about an ordinary man confronting the war on te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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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눈이 삐었나 이곳 저곳 해외 블로거들의 주장을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확실한 건... 그렇습니다. 클래번이라는 작가가 엄청난 부시 빠에다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였다는 거죠.

대체 어떻게 저런 원문에서 그런 기사가 나왔는지 참 궁금하기만 합니다. 결론은 없습니다. 아무튼 참 믿을 게 별로 없는 세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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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시간이 좀 남아서 저걸 다 번역하긴 했지만, 절대로 내용에 공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참 접해 볼 기회가 없던 주장이라 좀 신선하긴(^^) 하더군요. 실제로 미국인들 중에는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그런데 대체 얼마나 빠심이 깊어야 저 사인이 W로 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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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 이런 기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출처(Foreign Policy)는 제가 예로 든 기사와 다르더군요. 혹시라도 착오 없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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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님은 먼곳에' 때문에 시작한 포스팅입니다. '님은 먼곳에'와 그 노래들에 대한 포스팅은 다른 쪽에 있습니다. 이 글은 거기서 시작돼 본격적으로 다른 영화들과 그 수록곡들을 살펴보는 내용입니다.




월남전을 소재로 한 작품의 음악 중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건 개인적으로는 역시 롤링 스톤스의 Paint It Black입니다. 실제로 당시 월남에 있던 병사들이 즐겨 듣던 음악이기도 하고, TV 시리즈 '머나먼 정글'의 주제곡으로 명성을 떨쳤죠.

(그런데 정작 '머나먼 정글'이 국내 방송될 때 이 노래는 금지곡 - 반전, 퇴폐성이라는 이유로 - 이었습니다. 그걸 모르고 오프닝을 그대로 살려 놓았던 담당자는 뜨악했죠. 하지만 그걸 문제삼은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조용히 넘어갔다는 엄청난 얘기가 있습니다.)

자, 추억의 '머나먼 정글(Tour of Duty)'.



베트남전은 저에게도 먼 역사 속의 일입니다. 1975년, 월남 패망 당시 미국 대사관을 철수하던 헬리콥터에 줄줄이 매달려 있던 피난민들의 모습을 어렴풋이 뉴스 화면으로 본 듯한 기억이 있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리 먼 과거는 아니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 - 삼촌뻘이죠 - 로부터 월남전과 관련된 전설(?)은 꽤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특히 저번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학교 다닐 때 교련 선생님들은 대부분 월남전 참전 장교 출신이었죠. 물론 학생들이 확인할 길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월남은 커녕 제주도도 못 가본 분들이더라도 학생들 앞에선 "이 새퀴들이, 백마부대 깡다구 강중위 그러면 베트콩 새퀴들도 다 죽었다고 엎드렸는데 어디서 개수작이야!"라고 충분히 표정관리를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아무튼 그때로선 비 오는 교련시간에 '월남 무용담' 듣는게 퍽이나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들은 이야기 중 기억나는 것 몇 토막(위문공연 이야기는 저번에 써 먹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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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졸병들도 항상 실탄과 수류탄을 휴대했기 때문에 상급자라도 지나치게 심한 얼차려나 인간적인 모욕을 할 수 없었다. 자살하거나 내무반에서 총질을 하는 사고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못살게 굴던 고참을 쏴 죽이고 밀림으로 달아난 놈이 있었다. 얼마 지나서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서 시체를 찾았는데, 온몸 살가죽이 다 벗겨진 채로 죽어 있었다. 당시 부대원들과 혹시라도 베트콩에게 생포될 것 같으면 서로 쏴 죽여 주자고 약속했다.

2. 더운 지역이라 땅을 파고 화장실을 만들어도 너무 냄새가 심해 고역이었다. 고민 끝에 석유 드럼통을 절반으로 자르고, 석유를 반쯤 부은 다음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 간이변소를 만들었다. 어느 정도 변이 차면 바로 불을 질러 소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편했다.

그런데 한 놈이 그 위에서 양담배를 꼬나물고 꽁초를 휙 버린 거였다. 죽진 않았지만 중요 부분이 모두 불고기가 돼 있었다. 나중에 병원으로 문병을 갔는데, 침대에도 바로 눕지 못하고 허리가 공중에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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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베트콩이 이쪽으로 도주한다는 정보를 받고 1개 소대가 잠복했다. 잠시 후 눈앞으로, 멀쩡히 보고 있는데 한 50미터 앞에서 사람들이 죽을 힘을 다해 뛰어가는게 보였다. 몇 초 사이지만 한 20명 정도가 지나갔을 거다. 당연히 일제사격을 가했다. 경기관총을 포함해서 M-16을 자동으로 놓고 드륵드륵 갈겼다. 그런데. 실제로 총에 맞고 쓰러진 건 단 2명이었다.

총이라는게 그렇게 안 맞는 건지 그때 처음 알았다. 하긴, 사람이 초긴장상태가 되면 총에 맞고도 전혀 이상 없이 달린다고도 하더라. 맞긴 맞았는데 다 도망갔다가 어디 엉뚱한 데서 쓰러졌는지도 모르지.

4. 미국이란 나라가 무서운 걸 처음 알았다. 헬리콥터고 트럭이고 부서졌다고 말만 하면 바로 새걸로 갖다줬다. 국내에서 훈련할 땐 '탄피 100% 회수' 때문에 어지긴히 신경을 썼는데 여기선 다음 보급때까지 전에 받은 탄약 다 쓰는게 귀찮을 정도였다. 사격 훈련도 전부 자동으로 놓고 긁었다. 원 없이 쏴 봤다. 탄피? 아무도 안 찾더라.

처음엔 C-레이션도 나중에 먹으려고 껌이며 통조림을 챙겨 놓는 놈들이 있었는데, 곧 그게 바보짓이란 걸 알게 됐다. 레이션 같은건 산처럼 쌓여 있었고, 오히려 김치랑 밥이 먹고 싶어 혼났다. 나중엔 입맛이 고급이 되어서 왕건이 통조림만 하나 까 먹고 나머지는 죄다 현지인 꼬마들한테 뿌렸다. 미국이란 나라랑 같은 편에서 전쟁한다는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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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얘기가 너무 길었군요. 그럼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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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영화 얘기를 하자면, 아무래도 이 영화를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겠습니다.

일단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 부터.





인상적인 모먼트는 여럿 있지만 도어즈의 'The End'로 시작하는 오프닝만큼 강렬하지는 않습니다. 단, 시퀀스가 너무 길기 때문에 원래 좋아하시는 분들 아니면 클릭을 자제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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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툰'이란 새로운 단어를 가르쳐 준 영홥니다. 이 영화에선 뭐니 뭐니 해도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유명했지만 그 외의 당시 분위기를 살린 팝 명곡들이 많이 들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White Rabbit'. 월남전-마리화나-사이키델릭 록은 빼놓을 수 없는 3박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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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체는 유명한 인종주의자 마이클 치미노의 극단적인 오리엔탈리즘 때문에, 아시아인이 보기엔 어처구니없는 괴작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디어 헌터'의 음악만큼은 매우 훌륭합니다.

백만인의 애청곡, '카바티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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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큐브릭의 '풀 메탈 재킷'은 평범한 미국 청년들이 어떻게 전쟁 기계로 길러졌는지에 초첨을 맞춘 작품입니다. 저번 글에서 어느 분이 말씀하셨지만 마지막의 소녀 저격수 시퀀스가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죠.

본래는 트래쉬맨의 'Surfin Bird'가 삽입된 장면이 유명하지만, 다른 장면을 한번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 이 영화를 보신 분들 중에도 이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궁금했던 분이 있었을 겁니다.



MIC, KEY, MOU, SE. 그렇습니다. 이 노래는 바로 '미키 마우스 송'이었던 겁니다. 전쟁터에서 총 든 군인들이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안 어울리는 노래죠. 큐브릭이 보여주고자 했던 전쟁의 한 단편이 이 노래에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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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빼면 울 것 같은 분이 있어서 넣었습니다. 사실 로빈 윌리엄스는 거의 모든 영화에서 지나치게 작위적인 모습으로 나오기 때문에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이 영화에서의 'What a Wonderful World'는 참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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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심지어 포스터는 뮤지컬)가 뭐냐고 의아해하실 분이 꽤 있겠지만, 록 뮤지컬의 효시라고 불리는 '헤어'는 월남전을 무대로 한 유명한 반전 작품입니다. 비록 전쟁터를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주인공이 파월 장병으로 징집되는 데서 영화가 시작하고, 영화 전편이 전쟁에 대한 거부의 몸짓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결국 주인공 중 하나는 훈련소에서 월남으로 파병됩니다.

뒷날 '아마데우스'를 만드는 밀로스 포먼이 감독한 영화판은 뮤지컬 영화의 흐름을 바꾼 걸작이라고 감히 평가합니다. '헤어'를 유명해지게 한 노래는 'Aquarius'와 'Let the sunshine in'이죠. 본래 흑인 보컬 그룹 5th Dimension이 두 노래를 합쳐 불러 히트시킨 버전이 유명하지만 오늘은 따로 따로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Age of)Aquarius.





다음은 Let the Sunshine in. 일부러 영화 버전과 다른 버전을 골랐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노래 같다가 2분30초쯤부터 나오는 유명한 후렴구를 듣고 나서 '아, 이 노래?' 하실 분들도 꽤 있을 겁니다.





두개를 붙인 휩스 디멘전의 노래.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 음악이라는 게 이렇게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는 거였구나.... 하는 느낌을 받은 노래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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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마지막은 빌리 조엘의 'Goodnight Saigon'입니다. 영화음악도 아니지만 이 노래가 빠진 월남전 노래 이야기는 상상하기 힘들 것 같아서 넣어 봤습니다. 물론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g' 처럼 실제로 당시 히트하던 노래들도 있지만 가사의 내용은 이 쪽이 훨씬 와 닿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끝까지 들었는데 왜 '님은 먼곳에'가 안 나오는지 궁금한 분들은




영화 리뷰를 보실 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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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님은 먼곳에'를 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지목하는 장면이 바로 수애가 헬리콥터를 타고 가다가 조종사의 요청으로 기내 마이크를 들고 무반주로 '님은 먼곳에'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뮤직비디오로 만들어져 있더군요. 앞부분은 무반주지만 뒤로 가면서 천천히 반주가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아무튼 목소리의 매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맨 앞 부분입니다.

청순형의 외모와는 달리 수애의 목소리는 상당히 저음입니다. 게다가 콧소리가 많이 섞여 있고, 이 노래를 할 때에는 떨림음이 잘 살아 있습니다. 평소 음치+몸치라고 말한 걸 생각하면 상당히 혹독한(?) 보컬 트레이닝을 거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듣고 나면 생각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제목을 보시고 이걸 연상하신 분도 저 하나 뿐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바로 이 목소리가 생각났습니다.




일단 목소리를 들어 보시라고 저 화면을 위로 올렸습니다.

이 노래는 1962년 5월 19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45회 생일 축하 파티(참가자가 15000명. 참 별 걸 다 했다 싶습니다)에서 먼로가 부른 것입니다. 낮은 목소리와 함께 비음이 듣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는데가 있는 목소리죠.

그 장면이 모두 담긴 영상은 아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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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수많은 뮤지컬 영화 경력에서도 볼 수 있듯 먼로는 수애보다 훨씬 훌륭한 가수입니다. 또 섹시함에서 먼로를 지구상의 다른 여자와 비교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죠. (잘 알고 있으니 '감히 어따 비교를...' 이라고 찌질하게 외치실 분들은 좀 참으시길)

게다가 목소리가 똑같다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일단 목소리를 놓고 볼 때, 수애에게는 충분한 자질이 보입니다. 어떤 목소리냐구요. 당연한 걸 뭘....

목소리만으로 남자를 쓰러뜨릴 수 있는 그런 분위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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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 딴 얘기지만 위 화면에서 사회자는 먼로를 무대로 불러 내기 위해 두세차례 다시 소개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 먼로가 노래를 하기 직전엔 'The Late Marilyn Monroe'라고 소개하는군요. 참고로 말하자면 이날의 날짜는 5월 19일. 먼로가 변사체로 발견되기 약 3개월 전입니다.  ...그렇습니다. 음모설인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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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내친 김에 김추자의 오리지널 '님은 먼곳에'을 들어 보셔야 합니다.




영화 공식 주제가는 거미의 목소립니다.




뭐 수도 없이 많은 가수들이 부른 노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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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는 수도 없이 많이 불린 노래가 또 있습니다. 바로 CCR의 'Suzie Q' 죠. 고 이주일씨를 통해(?) 한국에도 잘 알려졌지만,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유명한 올드 히트곡입니다.






이 노래가 '님은 먼곳에'에 등장하는 이유는 또 따로 있습니다. 이 장면, 기억하시겠죠.



월남전을 통틀어 수백번, 수천번 되풀이됐을 그런 장면입니다.



아무튼 영화엔 'Danny Boy'도 나오고,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도 나오지만 여기선 그냥 생략하기로 합니다. 후자의 경우엔 마땅한 동영상도 없군요.^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 교련(이게 뭔지 모르는 분들도 있을텐데) 선생님들은 대부분 파월 전투 경험을 가진 장교 출신이었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아니더라도 학생들 앞에선 전부 그렇게 얘기해셨겠죠. 아무튼 그중 한 분은 월남전을 생각하면 항상 이 노래가 생각나더랍니다.

파월 장병들이 타고 떠나는 거대한 수송선 선상에서 축하 악단의 연주를 듣고 있는데 유난히 이 노래가 귀에 감치더라는 거죠. 왠지 다시 못올 길을 떠나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그렇습니다. 인생은 원래 나그네 길인 거죠.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이 노래로 마무리.






자, 월남전을 다룬 다른 영화들의 음악을 리뷰해 보겠습니다.






그나자나 수애는 언제쯤 영화 속 순이처럼 각성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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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는 이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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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올해, 앞으로 개봉하는 한국 영화 중에서 이 영화를 뛰어넘을 만한 영화가 나온다면 그건 한국 영화의 복이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준익 감독이 만든 영화 중 최고다.'


줄거리는 다 아시겠지만, 대강 이렇습니다.

월남전이 한창이던 1971년. 남편(엄태웅)은 군대를 가고,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순이(수애)는 어느날 남편이 월남으로 자원해서 가 버렸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노골적인 시어머니의 박대. 결국 아들을 찾으러 월남을 가겠다고 난리를 치는 시어머니에게 "차라리 내가 가요!"라고 악다구니를 써 버립니다.

어찌어찌하다가 파월 위문공연 예술단까지 찾아간 순이. 거기서 사기꾼에다 영 질이 나쁜 밴드 마스터 정만(정진영)과 엮여 또 어찌어찌 월남으로 가는 배를 타게 됩니다. 하지만 월남에 도착한다고 바로 남편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죠. 엄청난 난관이 순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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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그 난관이, 순이라는 철없고 순진한 한 여자를 성장시켜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한국 영화가 그려내려 한 어떤 주인공보다 강인하고 독립적인, 그러면서도 사랑스러운 여성상을 그려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청연'의 장진영처럼 박제된 캐릭터를 연상하시면 곤란합니다. 순이는 살아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난관이 진짜 고난의 연속으로만 그려지느냐, 물론 그럴 리가 없죠. 순이와 정만이 함께 하는 엉터리 위문공연단의 엎치락 뒤치락 발길은 가는 곳마다 관객의 웃음을 자아냅니다. 사실 마지막까지 숙연해지거나 필요 이상으로 무거워지는 장면은 없습니다. 오히려 따지고 보면 코미디 쪽의 무게가 더 나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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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던져진 질문은 '대체 왜 순이가 그 고생을 하고 거기까지 가서 남편을 만나려고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해서 스스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관객과, 그렇지 않은 관객의 차이가 너무도 큽니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인지도 모르겠지만, 전자의 경우 이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대폭 올라가는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중간에서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대체 뭘 하자는 영화인지를 모르겠다는 악평을 하게 됩니다.

영화상의 텍스트만으로는 정답이 없지만 분명한 건 최소한 동기가 사랑은 아니라는 겁니다. 남편은 순이에게 잘 해준게 없죠. 낑낑대고 면회를 간 순이에게 "너 나 사랑하니?"라고 심각하게 묻기나 하고, 혼자 번민하다가 훌쩍 월남으로 말없이 가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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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에 상당수 매체의 보도 내용들은 관객을 오도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영화가 아닙니다.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일단 한가지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절대 순이가 남편을 사랑해서, 혹은 애타게 보고 싶어서 월남으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물론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귀인(attribution) 이론이라는 것도 있죠. 순이가 자신의 해놓은 행동을 보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나는 남편을 사랑하는게 분명해'라고 스스로를 해석한다는 식의 이론이죠. 아, 물론 여기서 이 얘기는 농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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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대체 뭘까요. 순이는 왜 남편을 찾아서 그 고생을 감내하는 걸까요. 대략 보기에 순이는 거대한 모성입니다. 인류를 부양하는 대지같은 모성 말입니다. 남자들은 얼핏 보기에 깔짝거리면서 대단한 뭔가를 해 낼 듯 설칩니다. 나라를 세우고, 전쟁을 벌이고, 혼자 생각있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허세만 대단한 존재들일 뿐입니다. 그런 남자들을 낳고, 키우고, 보듬고, 용서하고, 가르치는 여성성의 존재를 무시해선 안된다는 얘기죠.

그런 순이 역할을 수애에게 맡긴 것은 참 절묘한 선택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냥 평범한 촌 색시라기에는 지나치게 미인이라는 게 문제긴 하지만, 오히려 순이가 예쁜 얼굴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정만이 돈에 환장했다 하더라도 가수로 써먹으려고 월남으로 데려갈 생각을 하지 는 않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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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순이의 모성이 처음부터 깨어 있는 건 아닙니다, 순이는 전쟁 속에서 각성해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쑥스러워하던 순이는 서서히 군인들 사이에서 동화되어가죠. 처음엔 그저 상대를 군인들로 보던 순이가 서서히 그들을 원치 않는 전쟁터로 끌려온 스무살 안팎의 총각들로 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노래가 그런 불쌍한 청춘들을 잠시나마 위로하는 힘을 가졌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 과정을 담아낸 '님은 먼곳에'의 솜씨는 조용히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눈치채셨겠지만 이 영화는 뼛속까지 판타지입니다.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와 '즐거운 인생'이 그렇듯, 이 영화 역시 인생의 어두운 면을 싹 걷어 치운 판타지죠.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어려움이란 딱 견딜 수 있을 정도에서 끝납니다(이건 '라디오 스타'나 '즐거운 인생'도 마찬가지죠). 순이가 월남에서 겪는 고통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파월 위문공연이나 병사들의 환경이 영화에서처럼 동화같지만은 않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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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떤 분에게 들어 본 월남전 위문공연 얘깁니다.

<< 병사들은 모두 술이 얼큰히 취해 있었다. 오랜만에 전투지역에서 나온 터라 부대 차원에서 술을 돌린 것 같았다. 많은 전사자를 낸 격전지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들의 눈은 야수처럼 이글이글 빛났다. 겁을 먹은 가수들이 무대에 올라가길 꺼릴 정도였다. 이윽고 분위기가 무르익고 무용단이 나서자 병사들은 일어서서 괴성을 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미 이들에겐 이성은 물 건너간 얘기였다. 그중 몇몇이 무대 위의 무용단원들에게 달려들었다. 장교들이 나서서 제지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고, 단원들 모두 공연이고 뭐고 무대 뒤로 달아나기 바빴다.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옷이 찢기고 젖가슴에 멍이 든 몇몇 여성단원들이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 나오는 미군 병사들과 플레이보이 모델들이 나오는 장면을 봐도 아마 이런 일이 없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현미나 남진 등 당시를 경험한 가수들은 "장병들은 모두 동생처럼 느껴졌다. 환영의 몸짓이 부담스럽지 않았다"고 회고하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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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에선 '기본적으로 성장드라마'라고 했지만 이준익 감독은 또 이 영화를 통해 한국 여자 특유의 강인함과 오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과연 순이는 남편을 찾아서 뭘 하려고 했을까요. 아마도 "대체 왜 날 버리고 갔는지, 네 입으로 직접 설명해!"가 가장 적절한 설명이 아닐까요. 물론 실제의 마지막 장면은 이 답이 맞았다고도, 아니라고도 얘기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 대답의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아마도 직접 본 사람이 내리는 답이 정답이겠죠. 개인적으론 대단히 마음에 와 닿는 결말이었습니다.

아무튼 이준익 감독 특유의 캐릭터를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기술은 이 영화에서 만개합니다. 달인의 경지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 중 누구도 '만주에서는 자네 실력이 최고'라든가 '넌 내가 본 놈 중 가장 냉정한 놈이야'라는 식으로 설명에 의해 규정되지 않습니다(그리고 이렇게 설명을 통해 캐릭터를 그려내는 건 정말 가장 저열한 수준의 인물 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걸 관객에 대한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입니다만, 이런 식의 직설적인 설명은 관객을 지루하게 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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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이 연기하는 정만부터 정경호가 연기하는 용득이까지 이 영화의 등장 인물들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언행을 통해 직접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캐릭터들은 영화 속에서 순이와 함께 성장해가죠.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마네킹처럼 유리장안에 얌전히 남아 있는 캐릭터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치사한 놈' 정만을 연기하는 정진영을 칭찬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 될테니 건너 뛰겠습니다. 수애는 이 작품으로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아마 본인도 느낀 점이 꽤 많았을 듯 한데, 이 변화가 다음 작품에서도 살아남을지, 아니면 이 영화와 함께 다시 도로아미타불이 될지(그런 경우도 수없이 봤습니다)는 더 지켜봐야 알 일이겠죠.

아무튼 헬리콥터 안에서 수애가 천천히 '님은 먼 곳에'를 부르는 장면, 물론 헬리콥터를 직접 타 보면 그 정도 높이의 목소리로 절대 대화가 가능할 리 없다는 걸 알 수 있지만 그 장면의 뭉클함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수애의 비음 섞인, 아주 끈적이는 목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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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준익 감독이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 최고'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물론 기사로 쓰는 글이라면 조심해야겠지만 이건 블로그니까 제 생각대로 쓴 겁니다. '황산벌'은 이감독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긴 했지만 좀 더 매끄러웠으면 하는 부분이 있고, '왕의 남자' 역시 시도가 좋았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완성도를 따지자면 '라디오 스타'가 이 영화 전까지의 최고작이었다고 해야겠죠. 물론 앞으로 나올 영화들에 대해선 뭐라 말할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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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이런 장면이 나오긴 합니다만,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오히려 대단히 코믹한 장면입니다. 이 영화는 전쟁 영화가 절대 아니고, 여성 영화도 아닙니다. 밴드 영화는 더구나 아닙니다. 일종의 성장 판타지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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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뒷전, 전 일본의 주먹대장들이 모이는 스즈란 고등학교에 전학생 겐지(오구리 슈운)가 찾아오면서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현직 야쿠자의 아들인 겐지는 스즈란을 제패하면 대를 잇게 해 주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아직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스즈란 전체 짱이 되기 위해 주먹을 날린다. 하지만 스즈란의 3학년에는 이미 스즈란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는 괴물 세리자와(야마다 타카유키)가 있다. 난제에 직면한 겐지에게 한심한 야쿠자 켄(야베 쿄스케)이 나타난다...

아무리 봐도 어디선가 본듯 한 스토리. 한마디로 뻔한 얘기 되겠습니다. 일본 만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학원 폭력물이라는 장르가 아예 따로 있을 정도라는 걸 잘 아실 겁니다. 유명한 '상남 2인조'를 비롯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작품들이 있죠. 이 '크로우즈 제로'도 만화 '크로우즈'가 원작입니다. 한국에도 이런 장르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많이 있죠. 허영만의 '비트'가 원조 격이 될 것이고, 조운학의 '니나잘해'도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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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작품들의 구조 또한 천편일률적인게 보통입니다. 주먹으로 일본 제일이라는 학교에 전학생이 찾아오고(사실 이런 경우 이 전학생은 무시무시한 과거를 갖고 있지만 새 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과거와는 어느 정도 단절을 노리는데도, 워낙 새 학교의 텃세가 심해 어쩔 수 없이 다시 주먹을 든다... 뭐 이런게 전형적인 구조인데, '크로우즈 제로'는 그 부분에서 좀 다르죠), 새 학교에서의 주먹잡이들은 '드래곤 볼'처럼 쑥쑥 여기저기서 등장합니다.

엄밀히 말해 영화 '크로우즈 제로'는 작품으로 평가하기에는 부실한 구석이 꽤 있습니다. 뻔한 구조는 장르의 특징이라고 하더라도, 영상의 대부분이 교복을 입은 꽃미남들의 액션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그 액션 또한 성룡이나 이연걸의 아크로바틱 액션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는 상당히 지루해집니다. 미이케 다카시는 신이 나서 힘을 주고 찍었을 지 모르지만 '용이 간다'에 비해 달라진 게 없는 솜씨입니다.

하지만 이런 영화를 굳이 찾아 볼 사람들에게는 이런 건 사실 무의미하겠죠. 한마디로 '간지'나는 꽃미남들의 '후까시', 웃기지만 잔뜩 멋을 부린 아드레날린 넘치는 대사, 슬로비디오 속에서 움직이는 펄펄 뛰는 젊음, 비가 오지만 대장이 우산을 버리면 다 함께 우산을 버리고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어가는 막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라는 걸 잘 알면서도 볼 사람들이니까요. 그래서 이 장르가 살아남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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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 나잖아!)

이런 장르가 살아남기 위해서 갖춰야 할 키워드는 위에서 다 나왔습니다. '간지', '후까시', 그리고 바로 '꽃미남'이죠. 이 영화에선 오구리 슌이 그 역할의 90%를 떠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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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리의 가장 특징은 아무래도 일본 배우라고는 믿기 어려운 신장에 있습니다. 유지태나 강동원, 조한선, 정우성, 조인성 등이 활보하는 한국이라면 좀 얘기가 다르겠지만 1m75를 넘는 미남 배우들이 극히 드문 일본에서 1m84짜리 아이들 스타의 존재는 한국 농구계에 나타난 서장훈이나 하승진의 충격 못지 않습니다.

1982년생. 고교생 역할을 하기에 얼굴이 늙어보이는 편은 절대 아닌데, 솔직히 말해 과연 꽃미남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적잖이 느끼게 되죠. 물론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기무라 타쿠야나 원빈을 미남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양쪽 나라에서 모두 극소수일겁니다.

야마시타 토모히사나 김현중의 경우(너무 닮긴 했습니다만)도 마찬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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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짜 김현중일까요.^^)



그런데 과연 이런 얼굴은 어떻습니까? 과연 한국에서도 이의 없이 꽃미남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얼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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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요즘 한국에도 마츠모토 준을 좋아하는 팬들이 꽤 있다고도 합니다만, 일단 한국에선 저 다리 길이로 성공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뭐 가메나시 가즈야에 비하면 마츠모토 준은 양반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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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친구들도 미남 소리를 듣는 일본인 만큼 오구리라면 당연히 최고 대접을 받을만 합니다(네. 반면 한국에서 잘생겼다는 얼굴이 일본에 가면 안 먹힐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런 오구리도 만약 무명 시절 한국 유명 기획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면 아마 즉시 이런 얘길 들었을 겁니다. "턱 좀 깎고... 치열교정 하면 턱도 들어가. 조금만 손보면 되겠네."

물론 그랬다면 특유의 매력이 사라진 그냥 편안한 얼굴이 돼 버렸겠죠. 일본 스타들도 수시로 성형을 하지만, 그래도 일본의 대형 기획사 중에는 오구리 같은 얼굴의 스타성을 알아보고 그대로 밀어붙이는 회사도 있다는 게 한국과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여배우라면 요즘의 한국의 연예인들 가운데 아오이 유우 같은 매력을 가진 얼굴을 찾아보기 힘든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스타 본연의 매력, 혹은 독특한 개성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게 일본 쪽인 듯 합니다.


비중은 별로 크지 않았지만 구로키 메이사도 참 특이한 매력을 가진 배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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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많이 본 얼굴인데 의외로 출연작들은 눈에 익지 않더군요. 알고 보니 CF 모델로 너무나 잘 나가던 얼굴이었습니다. 88년생인데 비해 대단히 성숙해 보이는 얼굴. 역시 아버지가 미국인이었습니다.

유명했다는 음료 광고




그리고 최근에 나왔다는 도시바 광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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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자와 역의 야마다 타카유키. 얼굴은 장동건 느낌이 좀 납니다만, 역시 신장에 원한이 많을 것 같은 타입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숙원이 '조선여자를 데려다 (신장 면에서) 품종 개량을 좀 해보자'는 것이었다는데, 참 이 분야에선 그게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크로우즈 제로', 자신이 원하는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를 아는 분들만 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남들이 재미있다던데'라는 말에 부화뇌동해서 보시면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p.s. 학교 이름은 스즈란, 한국말로 하면 '영란(鈴蘭)남자고등학교'더군요. 서울에는 같은 이름의 여고가 유명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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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여름 시즌은 세계적인 영화 시장의 대목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5월부터 8월말까지의 석달간이죠. 물론 남반구는 정 반대가 되겠지만, 북반구의 대다수 문명국가에서는 이 시기에 사람들의 외부 활동이 많아집니다.

특히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은 5월 1일 노동절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블록버스터의 계절이 시작됩니다. 이때부터 여름방학을 관통하는 시기에 각 대형 스튜디오들의 그해 농사가 판가름나죠. 물론 한국영화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만 작년 이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가 국내 영화를 압도했습니다. 물론 블록버스터 중에서도 정말 잘 만든 영화들이 많았던 작년이 특히 강한 해였고 올해는 지난해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올해를 빛낸(?) 블록버스터들을 일단 정리해 보겠습니다.

5월2일 개봉영화들의 미국 흥행 성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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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이언맨이 개봉 첫 주말에만 1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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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9일. '아이언 맨'이 2주 연속 정상을 지배합니다. 비가 출연해 화제였던 '스피드 레이서'는 개봉 첫주부터 3위, 김이 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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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6일. '나니아연대기2-카스피안 왕자'가 1위를 먹었습니다. '아이언맨'은 여전히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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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인디애나 존스 4'가 가볍게 첫주에 1억5000만달러를 거둬들이며 1위에 안착. '나니아 연대기2'는 비록 2위로 밀려났지만 이미 1억달러에 육박하는 성과를 거뒀습1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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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30일. '섹스 앤 더 시티'가 1위에 오르지만 지금까지의 다른 1위들에 비해 훨씬 적은 5000만달러 선의 수입에 그칩니다. 1위에 집중되지 않고 그래프가 넓게 퍼졌다는 걸 보여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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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6일 '쿵푸 팬더'도 '섹스 앤 더 시티'보단 낫지만 그리 압도적인 모습은 아닙니다. '인디애나 존스 4'의 관객이 아직 그리 줄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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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3일. '인크레더블 헐크'가 밀고 올라옵니다. '쿵푸 팬더'는 2주 합계 1억달러 흥행을 돌파해버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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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0일. '겟 스마트'가 1위에 오릅니다. 미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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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7일. 픽사의 'Wall E'가 근소한 차이로 '원티드'를 제치고 1위. 만만찮은 대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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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4일. '핸콕'이 두 영화를 모두 물리쳐 버렸습니다. 그래도 세 작품 모두 1억달러 흥행에는 아무 지장이 없는 상태. 초대박은 아니지만 모두 행복한 결말입니다.

(날짜는 모두 영화들의 개봉 날짜입니다. 통계가 나온 날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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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집계를 볼 때 올해 여름의 최강자는 3억달러 흥행을 넘어선 '아이언 맨'과 '인디애나 존스 4'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할 때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겁니다. 특히 '아이언 맨'은 경쟁이 치열한 여름 블록버스터시즌에 2주 연속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대단한 위용을 뽐냅니다. (표를 보셨다시피 2주 연속 1위를 차지한 건 '아이언 맨'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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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두 영화 모두 400만 고지를 돌파하며 대박을 일궈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 시장에선 이들 외에도 '쿵푸 팬더'가 400만을 넘어섰다는 것. 이대로 가면 한국에서의 최종 승자는 '쿵푸 팬더'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뒤를 이어 지난주까지 '강철중'이 340만 정도로 4위권. '원티드'가 200만 고지를 넘어선 것으로 보이고 '나니아 연대기2', '섹스 앤 더 시티' '인크레더블 헐크' 등이 100만 이상의 관객을 불러모았습니다. 그나마 '강철중'이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살렸다...고 해 버리기엔 대단히 의미 있는 숫자입니다. 한국 정도로 로컬 무비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여름 시즌에 정면 승부를 할 수 있는 나라가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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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이후의 사정도 비슷합니다. 일단 이번 주말은 '적벽대전' 앞에 할리우드 영화들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미국에서 7월11일 개봉작인 '헬보이 2'와 '삼차원 여행(Journey to the Center of the Earth의 번역 치곤 참 해괴합니다)'는 아예 국내에선 상영 일정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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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주, 한국에선 대망의 '놈놈놈'이 17일 개봉하고 할리우드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런의 두번째 배트맨 영화, '다크 나이트'와 '맘마미아' 영화판이 18일 막을 올립니다. 두 영화가 붙는다면 그야말로 대 격돌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이런 대결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다크 나이트'가 일단 한국 시장에서는 '놈놈놈'의 위력을 인정하고 8월 7일로 개봉일을 멀찍이 물려 잡았기 때문입니다. '마마미아'는 아예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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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엑스 파일: 나는믿고싶다'가 7월25일 개봉이지만 한국에서는 7월24일 개봉하는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곳에'를 피해 달아났습니다. 국내에선 8월14일 개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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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대작 두 편을 피해간 할리우드 영화는 그 다음주에야 한국과 미국에서 함께 막을 올립니다. '미이라 3'는 한국에선 7월31일, 미국에선 8월1일 개봉이죠. 차승원 한석규 주연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는 승부해 볼 만 하다고 생각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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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8월 7일, 할리우드는 이제 파장입니다. 별다른 흥행 후보작인 눈에 띄지 않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월 E'와 '다크 나이트'가 8월7일 정면 승부에 들어갑니다. 두 편 모두 이런 저런 사정을 피해 개봉 날짜를 늦춰 격돌하게 된 거죠.

8월14일 이후는 한국도 소강국면으로 접어듭니다.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가 14일 개봉해 '엑스 파일'과 맞붙고, 주성치의 '장강 7호'가 미루고 미룬 끝에 8월21일 개봉될 것 같습니다. 당초 여름 시즌을 노릴 것으로 예상됐던 '신기전', '모던 보이', '고고 70' 등의 기대작들은 모두 9월 이후로 개봉이 연기돼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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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볼 때 현재 한국 영화의 올 여름 시장 '우승 가능 수치'는 약 500만 정도로 잡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아이언 맨', '인디애나 존스 4', '쿵푸 팬더', '강철중' 등 지금까지 나선 도전자들이 모두 500만을 넘지 못하거나, 넘어도 아슬아슬하게 넘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죠.

그럼 이 숫자는 아무래도 '놈놈놈'에 물어봐야겠군요. 과연 '놈놈놈'의 스코어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저도 매우 궁금합니다. '놈놈놈' 리뷰는 다음주에 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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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크로싱'은 여전히 국내 박스오피스 4-5위권에 머물고 있지만 아직 관객 동원은 눈길을 끌 정도는 아니군요. 올 여름이 가기 전에 '크로싱'도 1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대열에 끼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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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렇지만 홍콩 영화 감독들은 다작이 숙명입니다. 간혹 그 운명을 거부한 감독들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돌아간 것은 철저한 마이너로서의 길이었죠. 오우삼은 그렇지 않았고, 지금까지 그가 만든 영화는 할리우드와 홍콩을 합해 50편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오우삼의 영화들을 되새겨 보면, 기억에 남겨 둘 만 하다고 생각했던 영화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일단 '영웅본색' 1편과 2편을 빼놓을 수 없겠고, 밉든 곱든 '첩혈쌍웅'이 있습니다. 이어 그의 홍콩시대를 마무리하는 '첩혈가두'와 '종횡사해'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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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로 넘어가선 '브로큰 애로우'와 '페이스 오프'가 화려한 액션 거장의 탄생을 알렸죠. 하지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미션 임파서블'이 나왔고, '페이첵'에서는 그에게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일어났습니다. '적벽대전'은 이런 시점에서 등장한 영화입니다. 할리우드 영화로도 적다고는 할 수 없는 800억원의 제작비와 홍콩-중국-대만 영화계를 망라한 올스타 캐스팅. 과연 이 영화가 오우삼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영화가 될지가 궁금한 시점입니다.

거론한 영화들을 돌이켜 볼 때 오우삼은 이성보다는 감정을 통제하는 데 능력을 발휘해 왔다는 점과 그의 영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뛰어난 배우에 많은 것을 의지하는 감독이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그의 영화는 정교한 플롯이나 영화 전체를 쥐고 흔드는 빼어난 통찰을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영상미의 완성도에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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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은 지금까지 주로 두 명의 배우들을 통해 드러났죠. 바로 주윤발존 트래볼타입니다. 주윤발과 오우삼의 관계에 대해 굳이 얘기하는 건 지면 낭비가 되겠죠. 동아시아인, 특히 수컷들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우정과 신뢰, 배신과 복수의 이야기를 주윤발은 깊은 눈빛으로 구현해냈습니다. 솔직히 그 아닌 다른 어떤 배우로도 홍콩에서의 오우삼의 성공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는 '첩혈쌍웅' 처럼 엉망진창의 플롯을 가진 영화도 사람들의 추억 속에 남게 하는 기이한 매력을 발휘했습니다.

(물론 여자들에게는 아닙니다. '영웅본색' 조차도 여자 관객들에겐 장국영의 영화죠. 장국영이 출연하지 않았다면 '영웅본색'은 남자들만의 컬트가 되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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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오우삼이 발견한 것은 존 트래볼타입니다. 주윤발이 그의 영웅이었다면 존 트래볼타는 그가 창조해 낸 가장 완벽한 악당이었죠. '브로큰 애로우'와 '페이스 오프'에서 트래볼타는 중국 삼십육계 중의 소리장도(笑裏藏刀-웃음 뒤에 칼을 감추다)를 완벽하게 구현해냅니다. 이 두 편의 영화에서 정의의 편인 크리스찬 슬레이터나 니콜라스 케이지 보다는 트래볼타가 훨씬 빛나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오우삼이 어느 쪽에 더 공을 들이고 있는지가 너무도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 두 배우 없이 오우삼이 남긴 업적을 꼽기는 매우 곤란해집니다. '미션 임파서블 2'는 너무도 노골적으로 '자, 너희가 원하는 게 고작 이런 거지?'라고 말하는 영화였죠. 비평은 형편없었지만 미국 시장에서는 엄청난 수익을 거뒀고, 오우삼은 자신감을 얻어 '윈드토커'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가 2차대전을 무대로 그리려 했던 '남자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합니다. 이 영화에는 존 트래볼타도, 주윤발도 없었죠.

너무 길어졌지만, '적벽대전'은 원작을 보는 오우삼의 시각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냅니다. 소설 삼국지연의(이하 삼국지)는 괜히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은 수백년 동안 수천만의 독자들에게 읽혀 왔고, 그 주인공들 사이의 관계며 대사 하나 하나가 명언록에 올랐습니다. 일단 그 소설 전편에서 '적벽대전'을 영화화하기로 결정한 것은 훌륭한 선택입니다. 수천페이지짜리 소설에서 가장 극적이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을 뽑아낸 부분이기 때문이죠. 한국에서는 그 부분만으로 판소리 한편(적벽가)을 만들 정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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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행히도 오우삼은 이 너무도 잘 알려진 이야기를 '재해석'하겠다는 야심을 품습니다. 대개의 경우 재해석이라는 것은 '기존의 해석'에 사람들이 질려 있을 때 하는 거죠. 불행히도 소설 삼국지의 독자들은 '기존의 해석'에 질릴 기회를 별로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책으로 읽었던 감동적인 작품의 명장면이 어떻게 영상으로 구현되는가'였는데, 오우삼은 뭔가 자신의 색깔을 입혀야 한다는 공명심이 앞섰습니다. (이건 얼마전 개봉됐던 영화 '용의 부활'과 똑같은 실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 오우삼 아니라 어떤 감독이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영화를 만들 권리가 있죠.  하지만 '반지의 제왕'이 거대한 호평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원작을 '제대로' 화면에 옮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우삼의 선택도 어느 정도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삼국지'라는 소설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거나 남자들의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는 여성 관객들에게는 상당한 호응이 나오더군요.

하지만 원작 마니아의 시각에서 볼 때 오우삼의 '적벽대전'은 남자들과 남자들의 관계를 다루는 데서도 실패했고, 원작에 나오는 대규모 전투의 시각적 변환에서도 신통치 않았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제갈양과 주유는 서로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 마음 속의 칼을 견줘 보는 일대 영웅들입니다. 거기서 풍겨나오는 긴장감이 매력적이죠. 하지만 '적벽대전'의 주유와 제갈양은 서로 전학 와서 주먹 대보기 하는 중학생들 같습니다. 은근하고 깊은 맛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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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삼이 마지막까지 이 영화에 주윤발을 출연시키기 위해 노력한 것도 이해가 갑니다만, 출연했더라도 주유 역이라는 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주랑(周郞)'이라 불렸던 꽃미남 스타 주유 역에 주윤발이라는 건 납득하기 힘들죠.

전투 신에서도 대규모 기병 액션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남은 건 실망뿐입니다. 맨 땅에서 두 다리로 달리며 싸우는 보병 관우-장비란 게임 '진삼국무쌍'에나 나오는 겁니다. 적토마 갈기를 나부끼며 82근 청룡도를 휘두르는 관운장의 위용을 볼 수 없는 삼국지라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팔괘진을 응용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팔괘진으로 포위해 놓고도 적병을 어쩌지 못한다는 해괴한 진행 역시 관객을 짜증스럽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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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놈놈놈'을 보면서 몇몇 사람과 함께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러니까 '적벽대전'을 김지운 감독이 만들었어야 해." '놈놈놈'의 거의 마지막 부분, 일본군을 뚫고 말을 달리며 '장총 돌려쏘기' 묘기를 과시하던 정우성의 모습이 '적벽대전'에 나오는 어느 장수보다 멋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정우성은 '적벽대전'의 조자룡 역으로 제일 먼저 물망에 오른 적이 있죠.)

아무튼 원작 팬들의 한숨은 자꾸 깊어만 갑니다. '용의 부활'과 '적벽대전'이 이렇게 흘러가 버리면, 과연 진정한 '영상으로 보는 삼국지'는 언제나 관객들 앞에 나타날까요. 사실 이대로라면 송혜교가 캐스팅된 오우삼의 차기작 '1949'도 크게 기대가 가지 않습니다. 오우삼은 과연 부활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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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마음에 한스 짐머의 걸작 '브로큰 애로우'를 다시 들어 봅니다.

 



아울러 늘 장국영이 부르던 주제가만 나오는데 질린 분들을 위해,





처음 썼던 '적벽대전' 리뷰입니다.




그리고 관련이 꽤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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