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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의 무지개!

12월5일

일일 루틴대로 빵집에서 사온 따뜻한 바게트와 쇼시숑, 쇼콜라로 아침 식사. 

 

어쨌든 이번 여행 전후로 확실히 바뀐 것은 바게트에 대한 고정관념의 변화. 늘 딱딱하고 입천장 까지는 빵이라고만 생각했다가, 갓 구운 따뜻한 바게트의 부드러움과 향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따뜻한 바게트는 찾아서 먹어볼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호텔 앞의 유명 빵집, LA PARISIENNE

정해진 식순에 따라 베르사이유 행 열차에 올랐다. 베르사이유로 가는 방법은... 물론 렌트를 했다면 당연히 운전을 하고 가면 되겠지만, 그 외의 수십가지 방법 중에 RER C를 이용하는 방법보다 나은 것은 없는 듯 하다. 

 

호텔의 강점 중 하나인 샤틀레 레알 역에서 RER B나 다른 선을 타고 세느강을 건너 한 정거장만 가면 생 미셸 노틀담 역이다. 거기서 RER C로 갈아타고 종점까지 달려가면 끝. 너무 간단하고 편하다. 나비고 카드가 있다면 추가 비용 0. 

이것이 나비고 카드

RER C 를 탈 때에는 2층 좌석을 이용할 것을 추천한다. 물론 시내에서 베르사유나 에펠탑 방향으로 갈 때에는 당연히 오른쪽 자리. 그러면 약 한시간 동안 달려가면서 세느강 연안의 파리를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올 때는 왼쪽. 

 

어쨌든 베르사유-샤토 역에 내려서 궁전까지는 약 10~15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그 시절에도 넓었을, 아주 넓은 길을 걸어가는 느낌도 좋은데... 비가 뿌린다. 역시 우산을 챙겨야 한다. 물론 가는 길에 우산을 파는 행상 아저씨들도 꽤 많다. 우산에는 루이 14세 얼굴이 아주 크게 그려져 있다. 

바로 앞까지 가면 이 궁의 주인공인 루이 14세 동상이 방문객들을 반긴다. 

산 같은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아주 그럴듯한 위치에서 온 프랑스를 호령하는 자세가 나온다.

여기 처음 와 본 것이 1988년. 무려 35년 전이다. 정말로 감회가 새롭다. 물론 그때는 정확한 베르사유의 위치 같은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아침에 일어나 여행사 버스를 타고 이 광장에 도착했지만,  어쨌든 그때는 아,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로 가슴이 뿌듯했다. 

들어가는 곳도 얼추 기억과 비슷한 모습. 물론 엄청난 관광객이 몰려 있다. 겨울이라 적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산. 

18세기, 세계에서 가장 화려했던 곳. 

솔직히 1988년의 느낌은 없다. 그동안 워낙 좋은 곳을 많이 가 보기도 했고, 한국에도 정말 좋은 곳들, 호화롭게 치장한 곳들이 워낙 많다 보니 살짝 바랜 느낌이 있는 이 궁에서 감동을 느끼긴 쉽지 않았다. 

설사 1990년대에 태어난 한국인이 이곳을 처음 방문했더라도 별 감흥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 

물론 베르사유를 그냥 잘 꾸며진 호텔 보듯 하는 사람과 달리, 저 골동품들의 가치를 다 알아보는 사람이라면 남다른 감동이 있을 수도. 

가구며 침대며 참 정교하고 예쁘긴 하다. 

일단 처음 들어간 건물에서 안쪽으로 나오면, 중정 같은 느낌의 공간이 있다. 

어쨌든 베르사유에 왔으면 베르사유의 상징, 거울 방을 가야 한다.

어디가 어딘지 헷갈려서 물어 물어 찾아가는 중.

거울방으로 가는 길에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 1세 대관식 그림의 모사품이 있다. 진짜는 루브르에.

사실 루브르의 18세기 그림 전시실과 거의 똑같은 느낌. 

여기까지 오니 아, 예전에 이런게 있었지, 하는 느낌과 함께 아련한 추억이 되살아난다. 

그땐 젊고 우린... 에이 아니다.

여기가 아마 루이14세의 침실이었던 듯. 다른 방에 비해 천장의 그림이 유난히 많다. 

아무튼 그 침실을 지나고 나서 좀 더 가면 드디어 거울 방의 입구가 나온다. 

18세기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나이트클럽? 유럽에서 가장 세련된 나라 프랑스의 국왕이 무도회를 여는 곳이니 그 시절에는 온 유럽의 왕족이며 귀족들이 '나도 언젠가 저길 한번 가 봐야 할텐데'라고 생각하고, 막상 방문해서는 '나도 언젠가는 이런 공간을 마련하고 말겠다'고 생각했다는 바로 거기다.

이것이 바로 거울방. 

물론 실제보다 사진이 잘 나오는 공간이라는 건 감안해야 할 듯. 막상 가 보면 좀 뭔가 뿌옇고 많이 닳고 그런 느낌이다. 누차 말하지만 이 방의 전성기는 약 250년 전이라는 걸 잊으면 안됨.

그래도 저기 처음 갔을 때는 엄청나게 감동했었지. 지난 세기의 어느날.

 

수십년만의 베르사유 에피소드 하나는 화장실에 전화기를 두고 나온 것. 한 100발짝 가서 알아차렸고, 돌아가 보니 화장실에 누군가 들어가 있다. 남미계로 보이는 아저씨가 화장실 문 앞에 있다. 안에 누가 있나? 이 사람도 줄을 선 건가? 음... 뭐라고 말해야 내가 먼저 안에 좀 들어가야 한다고 가장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하고 있는데, 뭔가 당황한 눈빛을 본 아저씨가 먼저 말을 한다. "폰?" 

 

네. 폰. 폰 찾으러 온거 맞아요. 

 

"오피스!"

아유 감사합니다

아, 분실물로 오피스에 맡기셨다구요? 활짝 웃으며 그렇다고 말하는 아저씨. 그런데 그 순간 화장실 안에서 뭔가 스페인 말인듯한 말로 따발총처럼 다른 아저씨가 뭐라고 하고, 밖에 있던 아저씨는 야 야 넌 그냥 싸기나 해. 내가 다 알아서 해결했어 라는 식의 말로 다스리고 있다. 뭐지. 두 친구가 용변을 보러 온 건가. 안에 있던 아저씨도 라틴계 특유의 수다 본능으로 참견이 하고 싶었던 건가. 어 그거 내가 먼저 들어와서 보고 갖다 맡겼으니까 니 폰은 거기 가서 찾아 뭐 그런 거. 

 

꽤 코믹한 상황이었는데, 20m  쯤 떨어진 오피스에 가서 혹시 전화기 맡겨진게 있냐고 물으니 신중한 아저씨, 어느 회사 폰이냐고 묻는다. "쌤쏭, 갤럭시". 오. 전화기가 맡겨져 있다. 여기서 이 전화기가 니꺼인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고 묻는 아저씨. 뭐 그거야 패턴을 그려서 오픈해 드리면 되죠. "빠르뻭토!" 

 

그렇게 해서, 수만명이 드나드는 베르사유에서 잃어버린 전화기를 바로 찾았다는 이야기. 이것 때문에 동행인에게 꽤 강력한 빈축을 샀지만, 아무튼 이런 여행운은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춥고 비 뿌리는 날의 베르사유 구경을 마치고 다시 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KFC에서 점심. 베르사유를 가는 사람들은 아마도 90% 정도가 KFC나 맥도날드에서 한끼 정도는 때우는 걸 보면서 이유를 궁금해 했는데, 가 보고 알았다. 궁전과 역 사이에 신기할 정도로 식당이 거의 없다.

수요는 많을텐데... 이상한 일이다. 

어쨌든 RER C를 타고 파리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는 자연스럽게 에펠탑 역에서 내리게 된다. 

파리가 그렇게 크지 않다 보니 여기저기서 가는 곳마다 에펠탑이 보이지만, 그래도 한번은 코앞에서 에펠탑을 느껴야 하는 법. 생각해보니 매번 올 때마다 그랬다. 인사라도 드려야 하는 느낌?

역에서 내려 몇발 걷지 않아 잘 보인다. 에펠탑의 미덕 중 하나는 확실히 '잘 보인다'는 것. 

그 거대한 탑 밑으로 왔는데... 매번 올때마다 느끼지만 참 대단하다. 

처음 보는 광경, 무지개 같은 하단부 옆에 무지개가 그려졌다. 

오홍.

자, 그리고 에펠탑을 제대로 보려면 다리를 건너 샤이요 궁 Palais de Chaillot 으로 가야 한다는 건 상식 아입니까. 

살짝 기울어가긴 하지만 어쨌든 해가 뜨고 파란 하늘이 나온 건 길조다. 

오, 이런 느낌 좋아 좋아. 점점 개고 있어. 관광사진이 되어 가고 있다고. 

비에 젖은 바닥에 오후 햇살이 비쳐 금빛으로 빛난다. 

네번째 와 보는 에펠탑이지만 이런 광경은 또 처음일세. 

여전히 바람도 많이 불고, 춥고, 빗발도 간간이 날리고, 그저 구름 사이로 하늘이 보이는 정도지만, 이렇게 서쪽으로 넘어가는 햇살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는 바닥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어서 인증샷. 그 찰나의 아름다움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어쨌든 매번 가도 감동.

저게 처음 만들어졌을 때 구스타프 에펠이 "이제 프랑스는 300미터 높이의 국기게양대를 가진 나라가 되었습니다"라고 했다는 멘트가 생각난다.

 

잠만 기다려. 밤에 불 켜진 거 보러 또 올게. 

 

그렇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장면을 뒤로 하고 숙소로. 꽤 걸었으므로 잠시 쉬었다가 역시 근처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식당 이름은 짧게 레옹 Leon. 아내가 검색해서 예약한 홍합 요리집이다.


벨기에식이라고도 하는데 어쨌든 전 세계를 돌아봐도 홍합처럼 싸고 맛있는 해산물은 없을 듯. 일단 별다른 재료를 첨가하지 않은 전통식 홍합을 주문했다. 

홍합이 홍합 맛이지. 근데 너무 맛있다. 짭조름하고... 다만 국물이 한국식 홍합에 비해 좀 더 짜고 살짝 비리다. 굳이 떠 먹는 것을 권장하지는 않는 맛이다. 

대구 종류(eglefin)로 만든 그라탕. 물론 맛있다. 단 보기보다 그릇이 작다. 

홍합이 짠 점을 감안했는지 빵과 밥이 나오고... 근데 밥이 좀 말라비틀어진 밥. 

그리고 역시 벨기에인이 발명했다는 설이 있는 프렌치 프라이(이게 뭐야)가 나온다.

뭔가 좀 아쉬워서 로슈포르 치즈가 들어간 홍합찜을 추가로 주문. 이것도 맛있는데... 좀 더 짜다. 굳이 치즈의 풍미 같은 것은 없었어도 됐을 것 같다. 아무튼 맛있게 잘 먹었다. 

그렇게 잘 먹고 53.2유로. 서울에서 저 정도 먹고 7만6천원 정도면 제대로 눈 주위를 맞았다고 할 수 있겠는데, 사실 이게 그 다음부터 먹은 저녁식사 중 가장 소박한 식사였다. 팁 문화가 없는게 다행이지 여기다 팁까지 냈다면.... 끄억. 

아무튼 파리 비싸다. 가실 분들은 유념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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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월요일

 

월요일의 가장 중요한 할 일은 나비고(Navigo) 카드 개통이었다. 파리 여행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나비고 카드로는 1주일 동안 파리의 버스와 전철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그때 그때 필요할 때마다 현금으로 전철/버스 표를 사서(버스는 타서 버스표를 끊을 수 있다) 다니는 것도 가능한데, 전날 하루만에 그건 만용이라는 걸 깨달았다.

 

일단 웬만한 전철 역은 표 끊는 줄이 꽤 길고, 대부분 전철 표를 사려는 사람들은 관광객들이기 때문에 속도가 매우 느리다. 그리고한국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는데, 전철역의 티켓 판매기에 티켓이 떨어져 긴 줄을 서고 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그렇다면 도착하자마자 나비고 카드를 개통했어야 할 일이겠으나불행히도 나비고 카드는 월요일-일요일 구간만을 일주일로 인식한다. 즉 나비고 카드를 금요일에 개통하면, , , 3일만 쓸 수 있다.

 

역시 이것도 한국이라면 말이 되냐고 난리가 났을 일이나, 어쨌든 파리에 가면 파리 법을 따라야 하는 법. 택시나 우버/볼트로 모든 교통을 해결할 사람들이라면 상관 없겠지만 그래도 시내에서 전철이나 버스를 타지 않고 다닐 수는 없다. 특히 베르사유를 다녀 올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비고는 필수.

(그리고 나비고 이용하실 분은 셀카 찍어 컬러 프린터로 프린트를 해 가든, 증명사진을 빼 가든, 사진 가져가시는 걸 잊지 마시길. 이력서에 붙이는 것보다 좀 작은 사이즈로 사진을 붙여야 사용할 수 있다. 그 외에는 한국의 교통카드와 거의 똑같이 사용 가능.)

드넓은 샤틀레 레알 Chatelet Les Halles 역 구내를 살짝 헤맨 끝에, 물어 물어 창구를 찾아 나비고 카드를 개통하고 이날의 첫 목적지인 오스만 가로 향했다. 오늘날의 파리를 만든 도시계획가의 조상, 조르주 외젠 오스만의 이름을 딴 오스만 가에는 파리를 대표하는 프렝탕과 라파예트 백화점이 있다. 동행인이 파리에서 가장 잘 아는 곳. 그리고 궁극적으로 가장 가고 싶었던 곳

 

어쨌든 뮤지엄 패스가 화-금 일정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쇼핑은 뮤지엄 패스와 겹치지 않는 날 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에 토를 달지 않고, 얌전히 백화점 구경. 도심 숙소의 장점을 살려 쇼핑한 짐을 호텔에 가져다 놓은 다음 근처 쌀국수 집(꽤 유명한 가게였던 Pho14의 분점이 호텔 근처라 방문했다)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메인 목표라고 할 수 있는 루이 뷔통 재단 Louis Vuitton Foundation 으로 다시 향했다. 루이 뷔통 재단은 유명 미술관이긴 하나 뮤지엄패스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곳이므로, 이날 방문해야 했다.

(보기엔 그럴싸 했지만국물이 너무 달았다. 실망.)

루이 뷔통 재단으로 가려면 에투왈 개선문 바로 옆에 가서 재단에서 운행하는 셔틀 버스를 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재단 홈페이지에 나와 있었다. 과연 그랬다. 개선문(Blue bus for Louis Vuitton Foundation이라는 정차장이 구글 지도에도 나온다)에서 재단까지는 거리상 지척이었지만 비오는 파리의 정체는 매우 심각했다. 셔틀버스 안에 앉아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달까.

안내상으로는 10분 거리였지만 족히 30분 정도 걸렸다.

어쨌든 사진으로 많이 보던 루이 뷔통 재단 도착. 비가 계속 부슬부슬 내리고 있어 건물 전경을 찍을 수 있는 먼 거리까지 떨어지는 건 무리였다. 그냥 이런 게 드넓은 공원 한 복판에 있다. 

이날의 목적은 마크 로스코 전시. 재단 앞에 내려 보니 줄이 꽤 길었지만 예약을 해 놨기 때문에 걱정없이 신속 통과. 다만 어디서나 짐 검사를 한다는게 귀찮았다. 물론 이때만 해도 누가 루이 뷔통 재단에 테러를 할까 생각을 했으나, 모나리자에 수프를 뿌리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는 판이라 검색의 생활화가 나쁠 것은 없을 것도 같았다. 그런데 검문 검색을 한다고 수프 뿌리는 애들을 막을 수 있으려나.

로스코 전은 듣던 대로 대단했다. 전시실만 11개인데 그 전시실이 모두 주제별, 시대별로 꽉 차 있었다. 총 작품 수가 거의 150~200개는 될듯 한 느낌.  세계 각지의 미술관은 물론, 개인 소장 작품들도 이 전시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 듯 했다. 듣기로 리움의 홍관장님도 로스코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던데, 혹시 리움에서 온 작품도 있나 궁금했지만 눈에 띄지는 않았다.

이날 전시의 최대 수확은 로스코의 자화상을 본 거였다

이 사람이 네모가 아닌 그림도 그렸다니. (물론 자화상의 얼굴도 약간 네모꼴...이긴 했다.)

뭐 당연한 얘기겠지만, 로스코도 젊은 시절에는 초상화도 그리고, 자화상도 그리고, 다양한 인물 그림을 그렸다.  1930년대까지는 특별한 점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 작품들도 꽤 인상적이었지만 그걸로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어 내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던 듯.

결국 언젠가부터 누가 봐도 로스코인 사각형 그림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마침내 대가가 되었다. 대략 이런 전환은 1946년에서 1949년 사이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정말 다양한 로스코의 시도들을 볼 수 있었다. 

때론 어둡고, 때론 밝은 그림들.

"나는 색에는 큰 관심이 없다. 내가 추종한 것은 빛이다." 

뇌과학과 미학을 연결시킨 대표적인 연구자 에릭 캔델은 마크 로스코와 데 쿠닝, 잭슨 폴록 등을 환원주의 Reductionism 를 이용해 미술의 새로운 돌파구를 연 작가들이라고 평가한다. 

소위 환원주의의 시대. 화가들은 '그림의 원형, 미술의 원형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점점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 그림이라는 것의 출발점을 어떤 형상을 구성하는 아주 원초적인 요소들의 단계에서 다시 규정해 보자고 시도했다.  거기서 어떤 사람은 면을, 어떤 사람은 선을, 어떤 사람은 색을 선택해 각각의 그 요소들을 파고 들었다.

그렇게 해서 몬드리안이 선택한 것이 구획으로 나뉜 면, 폴록이 선택한 것이 복잡한 곡선이었다면 로스코가 선택한 것은 색이라고들 하는데, 로스코 본인은 '나는 색 아님. 내 관심사는 빛'이라고 저렇게 공언했다. 본인의 말이니 인정하자.

죽기 1년 전, 로스코는 갈색과 검은색으로만 그리는 시리즈에 들어갔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건가, 아니면 설명에 쓰여 있는대로 1969년 아폴로의 달 착륙을 지켜본 영향일까.

이 마지막 블랙 시리즈의 그림들은 윤형근 화백의 그림과 매우 닮아 있다.

로스코가 1970년에 죽었고 윤 화백은 1928년 생이니 생전에 만날 기회가 있을 것 같지는 않으나.... 아무튼 무채색의 선 속에선 뭔가 세상의 강요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의지 같은 것이 읽힌다.

아무튼 이렇게 로스코 안녕. 

훌륭한 전시였다. 루이 뷔통 재단 미술관은 뮤지엄 패스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곳이었는데, 상설 전시와 마크 로스코 전시는 따로 따로 표를 끊어야 했다. 간 김에 둘 다 봐야 하나 생각하다가 그냥 마크 로스코 전만 표를 샀는데, 다행이었다. 마크 로스코 전만으로도 체력소모가 꽤 심했다.

프랭크 게리의 작품인 루이 뷔통 재단 건물 1층은 커피숍과 매점, 관광객들과 뭔가 나들이를 나온 듯한 파리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는데 위로 올라가니 인적 없는 공간이 많아 좋았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렇게 실용적인 건물은 아니라는 생각. 건물 곳곳에 앉아서 파리 시내를 바라볼 수 있는(특히 해질녘이라 더 좋았던 것 같다) 공간은 많았지만, 그 공간들은 그냥 그런 공간들일 뿐, 효율적으로 뭔가를 위해 쓸 수 있는 공간들은 아니었다. 물론 그런 커다란 낭비 자체가 예술이라면 당연히 인정.

비가 와서 막히는 파리를 가로질러 호텔로 귀환.  

샤틀레 레알 역 부근의 반미 집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캐주얼한 가게였는데 엄지손가락만한 회색 쥐가 나왔다. 그런데 너무 작고 귀여웠던(?) 탓인지 주인도,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도, 심지어 쥐나 벌레를 절대 좋아하지 않던 동행인조차도 ‘해치지 말아요’의 태도였다. 

 

주인은 슬리퍼 짝으로 쥐를 쫓아 가게 밖으로 내보내며 파리에선 어디나 이래요”라고 변명했다. 동행인은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쥐가 나온 식당의 위생상태를 걱정하기는커녕 비도 오는데 쟤 어디 가서 비나 피할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다. 역시 뭘로 태어나든.... 귀여워야 한다.  

음식은 먹을 만 했지만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았고, 꽤 많은 도보로 피로했으므로 바로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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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마르셰 백화점의 뻥 뚫린 내부

눈을 뜨자마자 옷을 챙겨 입고 바로 2차선 길건너 빵집으로 달려가 갓 구운 바게트와 빵 한두가지를 사온 뒤, 호텔 1층에서 핫 초콜렛(커피머신이 있는데 쇼콜라테는 오전에만 제공한다)을 받아 올라오는게 루틴이 됐다. 갓 구운 따끈따끈한 바게트 봉투를 손에 쥐는 느낌도 좋고, 맛은 또 얼마나.

 

마늘을 북북 갈 수 있는 마른 바게트의 단면과는 전혀 다른, 순결한 속살의 느낌이 기막히다. 물론 서울이라고 아침에 갓 구운 바게트를 파는 집이 없을까마는, 여기는 파리 아니냐, 파리.

 

어쨌든 아침을 간단히 챙기고, 잠시 다시 누워 아침잠을 청하고(...이상하게 아침이 되니 난방이 나와 방안이 따뜻해졌다), 깨 보니 점심때. 전날 밤부터 내심 가볼 생각이었던 파이브가이즈를 털었다.

오오. 이 리마커블한 맛이란. 귀국해도 꼭 다시 먹으리라 결심.

 

햄버거로 기운을 북돋운 뒤 버스를 타고 봉마르셰 탐방. 동행인에게 파리는 곧 봉마르셰 와 그 주변, 라파이에트와 그 주변이다. 고향 가서 모교를 돌아보듯(그분의 입장에서) 일단 봉마르셰를 방문했다. 흐리고 쌀쌀한 날씨.

 

영상 1~5도 정도에 습기가 섞인 날씨는 음울 그 자체다. 흔히 뼈가 시리다고 말하는 그런 날씨를 뚫고, 퐁네프 앞에서 버스를 타고 몽마르셰로 향했다.

지나가다 본 생제르맹 지역의 작은 공원

봉마르셰는 1852년 개관한 파리 최초(당연히 세계 최초겠지?)의 백화점. 따지고 보면 170년이나 된, 역사책에 나와야 할 건물인데 구스타프 에펠이 지은 건물이라 그런지 지금까지도 쌩쌩하기만 하다. 

물론 실내는 역시 세월을 이기기 힘든 느낌이 있다. 몽마르셰 위층은 개성있고 예쁘게 꾸며진 것은 분명했으나, 170년 전에는 정말 별세계였을지언정 지금은 아닌 느낌일단 층고가 너무 낮다그나마 중정이 뻥 뚫려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게 다행이었는데이 설계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백화점의 본보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는 건 쇼핑에 관심이 별로 없기 때문이고, 별도 옆 건물인 식품관 1층으로 내려가자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곳은 진정 별세계. 세상의 온갖 치즈 온갖 버터 온갖 절임 온갖 소스 온갖 초콜렛 온갖 과자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내가 만약 파리 시민인데 좀비가 창궐하거나 전쟁이 나거나 하면 제일 먼저 털어야 할 곳은 이곳이었다. 여기저기 건넬 자그만 선물 등속을 요것조것 샀는데, 그것만 해도 꽤 돈이 깨졌다. 쇼핑 안 좋아 한다더니라는 동행인의 비웃음을 등지고.

생제르맹의 H사 매장. 공식명칭은 에르메스 세브르 점.

아무튼 그렇게 몇 걸음을 걷다 보니 해가 반짝. 8일 정도 파리에 머무는 동안 파란 하늘을 본게 몇번 안 되는데, 그중의 하루가 이 날이었다. 중간에 몇 군데를 더 들러 돌아보고(덕분에 에르메스 세브르 점의 위용을 봄), 어찌 어찌 하다가 예정되어 있던 카페 레 뒤 마고 Les Deux Magots에 일찍 입장.

오후 4시 경인데 그 명성 때문인지 카페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얘기를 할까 말까 하다가 사실은 우리 다섯시 반에 예약했는데로 우겨서 바로 입장에 성공했다.

 

그런데내부는 바깥보다 더 끔찍했다. 개인적으로 붐비는 곳을 매우 싫어한다. 식당도 옆 사람의 팔꿈치가 닿을 듯한 곳은 삼겹살집 외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

 

여기는 서울의 노포 삼겹살집이 우스울 정도로, 내부가 도때기 시장이었다. 안내해주는 자리에 앉기는 했는데, 프랑스어를 못하기에 망정이지, 만약 했더라면 옆 자리 아저씨들의 집안 사정을 다 알뻔 했다. 어찌나 격렬하게 떠드는지.

마드리드였다면 츄러스를 찍어 먹어도 좋을 듯한 쇼콜라(맛은 있었다)를 마시고 나니 한 순간도 더 거기 앉아있고 싶지 않았다. 본래는 거기 앉아서 저녁식사를 할 생각이었는데, 옆자리 아줌마가 튀기는 침이 내 밥에 다 들어갈 듯한 공간에서 밥을 먹지 않게 된 게 천행이라는 생각만.

 

유명 문호들이 드나들던 파리 카페의 낭만적인 분위기?

 

아 녜 녜. 그런거 눈 씻고 찾아도 없습니다.

참고로 많은 사람들이 레 뒤 마고를 헤밍웨이가 파리 살 때 자주 가던 곳이라며 가봐야 한다고들 하는데, 헤밍웨이의 회고록인 <파리는 날마다 축제 A movable feast>를 읽어보면 그의 단골 카페는 다른 곳이다. 뤽상부르 공원 남쪽에 있는 라 클로세리 데 릴라 La Closerie des Lilas 가 바로 그 곳이다.

 

헤밍웨이는 책에서 이 카페를 파리에서 가장 좋은 곳들 중 하나라고 부르고, 심지어 뒤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이 카페에 다른 작가가 왔다는 이유로, 그 작가에게 왜 '내 카페'에 온 거냐, 너 때문에 신경 쓰여서 글을 쓸 수가 없다고 욕을 하며 내쫓으려 하기까지 한다.

 

저 책 내내 헤밍웨이는 스콧 피츠제럴드 부부를 정신병자 취급 하지만, 이런 에피소드를 보면 헤밍웨이 또한 확실히 정상은 아니다.

한때 절친이었던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

그래서 거기는 갔냐고? 아니.

레 뒤 마고를 가본 뒤 파리의 카페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런 곳은 절대 가고 싶지 않아졌다. 가 봐야 헤밍웨이 사진이나 몇장 붙어 있겠지.

참고로 파리 여행을 앞두고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읽어 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책의 1/3 정도는 스콧-젤다 피츠제럴드 부부에 대한 뒷다마인데, 헤밍웨이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면 스콧 피츠제럴드는 젤다 못지 않은 환자다. 이런 이야기에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보실만 하겠으나, 헤밍웨이가 가 본 파리의 명소들에 대한 감상 같은 것이 궁금하다면, 매우 실망할 것을 확신한다.

 

그래도 기억나는 장면 하나: <파리는 날마다 축제>는 1920년대 초,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를 비롯한 수많은 미국 문인들이 1차대전이 끝난 파리를 찾아가 '어떻게 하면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싸구려 와인을 퍼 마시고 몰려다니던 시절을 회고한 글이다.  단 <파리는 날마다 축제>가 실제 쓰여진 것은 1950년대. 만년의 헤밍웨이가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쓴 내용들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시절의 파리에는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T.S. 엘리엇, 루이 부뉴엘, 만 레이 등 당대의 유명 예술가들이 들끓던 시절이라 온 동네마다 셀럽들이 넘쳐 흘렀던 것 같다 - 물론 오늘날의 시각이지만. )

 

그중 한 대목. 그런 시절을 한참 지나고 파리를 방문한 헤밍웨이는 왕년의 단골 술집을 들러, 아직도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바텐더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당연히 헤밍웨이는 그 시절 같이 술집을 전전하던 친구들의 안부를 묻는데, 바텐더는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묘한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사실 이 내용과 거의 똑같은 장면이 피츠제럴드의 단편 <다시 찾아간 바빌론 Babylon Revisted>에도 나온다는 점이 처연한 느낌을 더한다(이 단편은 1954년, <내가 마지막 본 파리 The last time I saw Paris>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다. 젊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미모가 빛나는 추억의 영화). 여기서 남자 주인공은 아내와의 추억이 담긴 파리를 오랜만에 찾아 단골 바를 방문하고, 나이 든 바텐더에게 옛 친구들의 안부를 묻는다.

그런데 그 바텐더는 나는 기억하지만 함께 오던 그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묘하게 일치한다.

어쩌면 나를 포함해 그들 모두가 웨이터에게는 잊혀진 인물들일 것이다. 단지 나는 눈앞에 와 있으니 기억해주는 척 하지만, 어차피 그에겐 그의 무대인 바를 스쳐간 수없이 많은 손님들 중 하나일 뿐.

헤밍웨이나 피츠제럴드, 혹은 그 패거리들이 휩쓸고 지나간 파리의 흔적을 그 다음 세대의 젊은 손님들이 밤마다 메웠을 것이고, 그들 역시 자신들이 파리의 밤을 지배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뿐,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그 자신이 세상의 주인처럼 느껴지는 시절이 있지만, 그들의 빈자리는 너무나 빨리 메워진다. 그 다음의 물결에 의해.

 

이런 생각과 함께 늦은 밤 파리의 카페에서 한잔 하는 스케줄을 떠올리기도 했었으나, 막상 파리의 카페를 가보고 나선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파리 카페, 안녕. 문득 서울의 술집들이 그리워졌다.

생제르맹의 명물 중 하나인 돈 키호테 동상

어쨌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힐 것 같던 레 뒤 마고를 떠나 숙소로 돌아왔다. 마땅히 레스토랑을 예약해 두지 않았으므로 그날 산 소고기를 바로 구워 먹자는데 둘 다 이견이 없었다. 프랑스의 꽃등심(faux filet)은 맛이 좋았다.

식사 후 에펠탑 야경을 위해 길을 나섰으나, 기온이 급강하하고 비바람이 치는 바람에 바로 후퇴. 이렇게 해서 사실상의 첫날 마무리.

그 버스 정류장 앞에 있던 상 자크 탑 Tour Saint-Jacques. 그냥 크다는 느낌 말고는 사실 별 것 없었다.

파리에 이런게 어디 한두개라야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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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앞 건물 지붕 너머로 보이는 일출

공항에서 시내로, 숙소 시타딘 레알 호텔

2023년 12월1일. 예전엔 11시간이면 가던 거리가 전쟁 때문에 14시간 걸렸다. 샤를 드골 공항에서 루브르와 마레 지역 사이, 레알(Les Halles)의 숙소까지 전철로 약 60분 정도. 갈아 타지 않고도 갈수 있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고생일 듯 해서 택시를 알아봤다. 다행히 택시 가격은 55유로 정찰제.

 

그런데 택시로 90분이나 걸렸다. 만약 정찰제 없이 미터기대로 냈다면 거지될 뻔. 토요일 밤에 파리 외곽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은 정체 아닌 곳이 없었다. 일요일 저녁도 아니고 토요일 저녁인데 시내 들어오는 길이 이렇게 막히다니. 

 

이란 출신(워낙 차가 막히다 보니 지루해서 대화를 아니 할 수가 없었다)인 기사님은 어떻게 해서든 안 막히는 길로 가 보겠다는 의지로 이쪽 저쪽 골목길을 팠지만 결과는 큰 차이가 없었던 듯 하다. 그 덕에 라 빌레트 쪽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파리 변두리를 차 안에서 좀 구경할 수 있었다.

 

전에 비해 중국 음식점이 참 많이 늘었다는 느낌? 지나오는 동네마다 중국 음식점 간판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시타딘 레알 로비. 호화롭지는 않지만 잘 단장되어 있다.

곡절 끝에 호텔 앞 도착. 시타딘 레알 (Citadines Les Halle). 시타딘은 프랑스에서는 꽤 유명한 레지던스 형 호텔 체인이다. 절대 럭셔리한 느낌은 아니고 그냥 생활감있는 한국의 콘도 같은 느낌. 2구짜리 인덕션 레인지가 있고, 냄비 후라이팬 칼 접시 등 주방 살림 일습이 있다.

 

파리를 몇번 가 본 경험에 따르면 파리 음식은 크게 기대할 게 없었다. 좀 짜고 딱히 맛있지 않았던 느낌. 게다가 8박을 하자면 좀 피곤하기도 하고, 약식으로라도 한국 음식(?)을 좀 먹는게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레지던스형 호텔을 선택했다. 거기다 공연장을 여러 번 가려고 하는데, 파리의 좀 한다 하는 식당들은 대부분 7시는 되어야 저녁 오픈을 한다.

 

매번 밖에서 식사를 하면 공연 시간에 맞추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저녁 공연이 있는 날은 낮에 구경을 나갔다가 일찍 들어와서 간단히 숙소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가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별 대단한 준비를 한 건 아니고, 그냥 햇반 몇 개, 밑반찬 몇 개, 사발면 몇 개를 싸 간 정도가 전부다. 시판 볶음김치를 가져간 게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파리에는 좋은 식재료가 많을 테니 웬만한건 사서 해결하자는 자세.

호텔 주변에 대형마트와 아침에 문을 여는 유명한 빵집, 라 파리지엥(La Parisienne)이 있다는 건 미리 알고 있었다. 아침마다 7시에 문을 여는 빵집에 달려가 갓 구운 바게트와 크루아쌍 등을 사왔고, 호텔 1층에서 역시 오전에만 주는 핫 초콜렛을 컵에 받아다 아침을 먹었다. 봉마르셰에서 사 온 버터와 소시숑을 곁들였고, 근처 마트에서 과일과 요구르트를 사왔다.

 

저녁에는 밥을 먹을 일이 있을 때 두 번 고기를 구워 먹었다. 꽃등심(faux filet, 립아이에 해당하는 프랑스 명칭이다) 기준으로 봉마르셰에서는 250g13유로, 마트에서는 280g11.29 유로에 샀다. 국내와 차이가 있다면 곡물 사료 대신 풀을 먹여 기른 소라 마블링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고 해서 고소한 맛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기름이 녹아 날아가지 않기 때문에, 같은 250g을 구워도 한우보다 실질적인 고기 양은 훨씬 많다. 소금만 찍어 먹어도 술술 넘어간다.

식탁이 따로 있는 좀 큰 방을 빌린 덕분에 호텔 안 식사도 수월했고, 가져간 노트북을 HDMI로 삼성 TV와 연결하면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방값이 비슷한 크기의 호텔에 비해 훨씬 싼 대신 매일 청소를 해주지 않았지만(6일 머무는 동안 한번 청소를 요청했다) 수건이나 기타 물품은 창고에서 무제한으로 직접 가져다 쓸 수 있었다.

 

단 슬리퍼는 없으니 가져가거나 사거나전에는 슬리퍼를 주었다는 잘못된 정보 때문에 마트에서 슬리퍼를 사야 했다. 30유로. 비싸다.

시타딘 레알의 최대 강점은 위치다. 지근거리에 두 개의 역, Chatlet 역과 Chatlet Les Halle 역이 있고 이 두 역으로 파리 시내의 주요 포스트로 가는 전철은 거의 다 이용할 수 있었다. 퐁피두 센터와 루브르, 노틀담, 마레 지구는 도보로 20분 이내 거리, 오페라도 전철로 10분 거리. 아침에 나가 뭔가 구경을 하다가 방에 돌아와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저녁 구경을 나갈 수 있는 것도 괜찮았고, 한밤중에도 카페나 술집마다 손님들이 우글우글한 홍대 앞 같은 곳이라 밤에 나다녀도 전혀 걱정할 필요 없는 안전지역이라는 점도 괜찮았다.

 

이렇게 다 좋은 시타딘 레알이지만 심각한 약점도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난방실내 온도의 상한을 24도로 임의지정해 놓았는데, 밤에는 난방을 열심히 하지 않아 실내 기온이 21도 언저리, 썰렁한 기운이 실내를 감돌았다.

 

물론 21도면 괜찮은 실내기온 아닌가 싶을 분들이 있겠지만 은근한 우풍(!)이 있다 보면 실제 기온은 그보다 훨씬 낮게 느껴진다. 

 

잘 때는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이쪽 분들의 상식인지, 오히려 아침에 눈을 뜨면 난방이 가동되고 실내 기온이 올라가는게 느껴졌다. 아무리 추운 날에도 일단 구들장이 타들어가도록 불을 때고, 집안에 들어오면 동저고리만 입고 살 수 있게 했던 한민족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책

보일러 최대 조정 가능 온도 24도...

결국 혹시나 해서 가져온 50cm x 50cm 정도 사이즈의 전기 모포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다만 아쉬운 건 모포는 1개뿐. 난국 돌파를 위해 생수병에 끓인 물을 부어 탕파(湯婆)로 활용해 볼 생각을 했다. 끓는 물이 닿자 PET 병이 쭈그러드는 걸 보면서 아 이거 틀렀구나 했는데 일정 크기 이하로 줄어들지는 않았고, 물이 새지도, 금방 식지도 않았다.

 

오히려 피부에 직접 닿으면 델 정도로 뜨거워 수건으로 감싸고 사용하는데 보온 효과는 매우 훌륭해서 매일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잠결에 깔아 뭉개서 터뜨릴 정도로 잠버릇이 고약한 사람이 아니라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정도.

 

...뭐든 닥치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없다.

힐튼 오페라 로비

시타딘 레알에서 6, 그래도 여행의 마무리는 꽤 좋은 호텔에서 하자는 생각으로 귀국 전 힐튼 오페라에서 2일을 머물렀다. 건물이며 위치며 흠잡을 데 없는 A급 서비스. 일찌감치 예약을 했는데, 방문 2개월 전 쯤에 가격이 내려가는 바람에 더 큰 방으로 업그레이드를 해 버렸다.

침대도 넓고 욕실도 넓고, 역시 위치도 이상적이고. 미국계 호텔답게 뭔가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하기 보다는 기계의 도움을 많이 받게 하는 호텔이었지만, 아침 부페는 파리답게 빵 가짓수만 15개 정도 되더라고.

 

숙소 얘기는 여기까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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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

결혼 20주년을 맞아 파리를 가자.

 

별로 이의를 달기 힘든 좋은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직장 일 때문에 파리를 10여 차례 갔다 왔지만 자기를 위해 시간을 보내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본인이 실장이 되어서야 후배들을 데리고 얘들아, 우리가 파리까지 왔는데 루브르는 한번 가봐야 하지 않겠니?”하고 두어 시간 동안 박물관 산책을 했다고 한다. 에펠탑이고 개선문이고 지나가는 버스에서 본게 전부였다. ‘파리에 가서 내 시간을 갖고, 쇼핑도 하고 싶어!’

 

그동안 좋은 곳을 안 가본 것도 아니지만 파리가 그렇게 로망이라는데. 결혼기념일은 1130. 그 시기를 맞춰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고, 넘쳐나는 마일리지로 비즈니스 티켓을 끊어 파리로!

2. 발권

그런데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코로나 이후 마일리지로 항공사 티켓 끊는게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일로 바뀌어 있었다. 모든 항공사가 바다같이 넓은 비즈니스석을 갖고 있던 A380은 어두컴컴한 격납고 어딘가에 기계마인들이 사라진 뒤의 마징가Z처럼 잠재워놓은 모양이었다.

 

국내 항공사들의 마일리지용 비즈니스석은 행선지가 어디건 단 2석 아니면 3. 세계 거의 모든 항공사의 마일리지 항공권은 출발 361일 전 오전 9시에 오픈되는데, 알고 보니 그 시간마다 소리없는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9시 땡 치고 눌러 보면 이미 환상의 좌석은 사라지고 없었다. 요즘은 비즈니스석 뿐만 아니라 이코노미석도 땡 치고 나면 사라지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몇번의 시행착오 끝에,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물리적 수단을 동원해(물론 매크로 같은 것은 짤 줄 모른다), 좌석을 확보했다. 물론 가는 표와 오는 표는 따로 따로 구해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공했다. 그것도 비즈니스 왕복을 다! 만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항공사는 고객이 마일리지로 사는 표를 공짜로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 마일리지는 고객이 다른 포인트로 받을 수 있는 가치를 바꾼 것이므로, 고객의 입장에선 절대 공짜가 아니다.

 

게다가 각 항공사는 역시 각 카드회사에 마일리지를 유상으로 팔아 수익을 챙겼으므로, 이미 그들 입장에서도 마일리지는 공짜가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그 마일리지를 사용할 때가 되자 항공사들은 고아가 된 조카 월사금 내 주듯 인색하기 짝이 없는 맨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시국에 참 힘들었겠지만, 그건 그거고,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3. 계획 수립

어쨌든 비행기표를 구한 것만으로 든든해졌지만 그건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은하수의 별처럼 많은 파리의 호텔 중에 적당한 숙소를 고르고, 가볼 곳들을 생각하고, 뮤지엄 패스, 나비고 카드, 볼트, 루아시 버스 같은 새로운 명사들과 친숙해지고(그렇다고 불어를 속성으로 배워 볼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친한 변호사 중에는 2주 정도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면 3개월 정도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친구가 있다. 물론 도움이 되겠지만, 개인적으로 참 경이로운 습관이 아닐 수 없다).

 

여름이 지나자 파리 오페라와 콘서트홀들이 겨울 스케줄을 내놓기 시작했고, 그중 훅 당기는 몇가지를 골랐다. 사실 가장 큰 적은 체력이었다. 예전처럼 새벽에 나가 한밤중까지 돌아다니다는 어찌 어찌 귀국때까지는 버틴다 해도 돌아온 뒤에 드러눕기 십상이었다. 숙소를 중심부에 잡아 도중에 잠시 잠시 쉬어 가는 방편은 상당히 유효했다.

시간이 무한정 있다는 것은 결국 뭐든 다 뒤로 미룬다는 뜻이고, 그렇게 해서 출발 일자가 순식간에 코앞에 다가왔지만 딱히 준비된 것은 없었다. 결정된 건,

 

쇼핑: 한다(어디서 해야 뭘 해야 하는지 가장 확실한 부분)

 

호텔: 두군데 정도로 나눈다. 하나는 레지던스 호텔, 또 하나는 진짜 호텔. 레지던스 호텔은 시내 복판으로 잡아 각종 일정을 소화하고 중간 중간 들어와서 쉴 수 있게 한다. 

 

미술관: 고르고 골라 루이비통 재단, 루브르, 오르세, 오랑주리, 파리 시립미술관, 퐁피두 센터를 방문한다. 피카소 미술관 탈락. 로댕 미술관 탈락. 기타 군소 미술관…. 멀미난다. 파리에만 미술관이 1700나머지는 탈락.

명승고적: 베르사유 궁전과 에펠탑은 한번도 안 가보셨다니 가야겠지? 노트르담, 생샤펠, 클뤼니, 개선문 등등 모두 탈락.

 

식당: 뭐 대강… (사실 그리 큰 기대가 없다)

 

공연: 클라우스 메켈레의 파리 필하모닉(파리 필하모닉 홀), 한국 지휘자 김은선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바스티유 오페라), 이지 킬리앙 안무의 창작 발레 블랙 앤 화이트’(오페라 가르니에) 3개로 끝. 파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3개 공연장을 돈다는 의미.

개인적으로는 1988, 1998, 2019년에 파리를 왔었다. 물론 각각 3, 4, 5일 있었으니 몇번 와 봤다고 뭘 잘 아는 건 전혀 아니었다. 기껏 아는 것은 세느강이 대략 서울의 한강이라고 치면 루브르는 동부이촌동 쯤에, 오르세는 반포 쯤에, 생제르맹은 압구정동 쯤에, 개선문은 서대문 쯤에, 오페라가 광화문 쯤에 있다는 정도.

 

또 한국식 기준으로 보면 세느강은 파리를 남북으로 가르는 것으로 보이는데, 파리 사람들은 강북과 강남을 나누지 않고 강 좌안과 우안을 따진다는 것(괴이하다), 화장실이 적고 냄새가 나며 심지어 상당수는 돈을 내야 갈 수 있다는 것, 음식은 짜고 생각보다 별 맛이 없다는 것, 지하철은 냄새가 좀 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파리에선 최고의 교통수단이라는 것 정도.

1988년에는 가이드가 딸린 한국인 관광단의 일원이었고(2주 유럽 투어의 마지막인 파리에 23일이 배정되어 있었다), 1998년에는 대략 양재동 정도 되는 위치의 한인 민박에 있었다. 특히 2019년에는 21실에 60유로짜리 호텔에서 잤고(욕실 문은 잠금쇠가 떨어져 나갔고, 밤에 마약중독자들이 복도를 쿵쿵거리며 문을 두드렸다), 촬영팀과 함께 버스로 이동한 덕분에 파리 시내가 얼마나 더럽게 막히는지를 몸으로 겪어 봤다. 제일 맛있었던 것은 13구에서 먹은 베트남 쌀국수였다.

 

그렇게 파리를 네번째 간다고 하면 , 파리는 잘 아시겠네요라는 말을 들었지만 생각해보니 아는 게 없었다.

뭐 어떻게 되겠지. 어쨌든 그렇게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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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스타의 나무'를 클로즈업해서 찍어봤다.

 

사실 이 나무가 뭐 대단하다고 눈길을 운전해서 찾아가 사진을 찍는지 이해 못 하실 분도 많을 거다.

 

 

그런데 이 정적 속에 하얀 눈밭을 배경으로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보다 보면 왠지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그드라실을 연상하기엔 아주 작은 나무 한그루지만 존경하는 마음이 솟아나는 거다.

 

그런데 이런 나무들을 허허벌판에서 무슨 수로 찾아 사진을 찍는지 궁금하신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지난번에 올린 '켄과 메리의 나무', 그리고 오늘올린 '세븐스타의 나무' 모두 구글맵에 실린 고급 관광지다.^^

 

그리고 네비게이션에서 그걸 어떻게 찾나 걱정하시는 분들, 일본 네비게이션은 세 가지 방법을 이용한다. 전화번호, 주소, 그리고 네비게이션 용 코드(숫자)다. 비에이의 모든 숙박업소나 안내소에서는 이 관광지(나무)들의 네비게이션 코드가 적혀 있는 지도를 뿌리고 있다. 그러니 저 나무들을 어떻게 찾나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

 

물론 반대로, "비에이 어차피 넓어 봐야 손바닥 만한데 돌아다니다 보면 다 나오겠지" 하고 별 준비없이 다니는 분도 있다고 하는데, 그걸로는 큰일난다. 그 지형이 그 지형이고 더구나 눈까지 쌓이면 방금 지나온 길도 그 길 맞나 싶다. 그러니 반드시 지도와 네비게이션을 활용해야 한다. (물론 버스나 택시 투어를 하시는 분들은 이런 걱정 뚝. 기사님들이 알아서 한다.)

 

아무튼 료칸을 나서 5군데의 스팟을 도는데 거리는 약 43km에 불과하지만 구글맵의 예상 소요시간은 1시간. 그만치 속도 내기가 힘든 길들이다. 그러니... 오만은 금물.

 

 

컬러지만 흑백 사진의 느낌.

 

구글로 'seven star tree'를 검색해 보면 저 나무 하나를 찍은 오만장의 사진이 나온다. 똑같은 나무를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다른 각도에서 제각기 찍어 올린다. 세븐 스타의 나무라고 이름이 붙은 이유는 담배 '세븐 스타'의 광고 모델이 됐던 나무이기 때문인데, 그 많은 사진들 중 어떤 것이 실제로 광고에 쓰였던 오리지널 사진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잘 생긴 나무다.

 

 

 

그리고 이것이 오야코나무.

 

세 그루의 나무가 지평산에 보이는데 두 개의 큰 나무 사이로 하나의 여리여리한 나무가 서 있다. 다른 사진들을 보면 가운데 나무는 거의 묘목 분위기인데, 직접 찍어 보니 가운데 나무도 꽤 자랐다.^^ (세월의 흐름!)

 

언젠가는 가운데 나무가 더 키 큰 나무가 되어 있을지도.

 

 

그러는 사이 다시 함박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눈길을 헤치고 도착한 마일드세븐의 언덕. 이것도 역시 담배 마일드 세븐 광고에 출연해 유명해진 나무들이다.

 

파란 하늘을 기대했지만 흐린 하늘이 오히려 더 환상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세 그루의 나무도 멋지지만 사실 여기선 조연이다.

 

엄청난 악천후인데도 꽤 손님이 보인다.

 

 

유명한 나무임을 증명하는 비석(?)

 

 

저 나무들을 어떻게 담아 볼까 고민이 시작된다.

 

 

이렇게 한 절반 정도만...?

 

 

하늘과 눈밭을 절반 비율로...?

 

 

왠지 이 정도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래. 꽉 채운 것 보다는 절반이 좋다.

 

 

이런 사진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데, 찍고 보니 내 사진도 마음에 든다.

 

뭐 언젠가는 이런 모습도 볼 수 있겠지.^^

 

 

사실 저렇게 생긴 방풍림은 이 비에이 근처에 매우 흔하다.

 

단지 주변 언덕과 하늘과 그 조화를 이모저모로 따져서 그 일군이 선택된 것 뿐.

 

 

아무튼 행인을 만난 기념으로 사진을 부탁해본다.

 

자, 시즌이 시즌이니만큼 크리스마스 트리 나무가 있는 곳으로.

 

 

다들 나무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렇게 정확하게 화살표 모양으로 생긴 나무는 참 보기 힘들다. 그런데 저기 그런 나무가 있다.

 

잘 다듬어서 저렇게 된 거 아니냐고? 솔직히 모른다. 아무튼 아는 건 잘 생겼다는 것 뿐.

 

고쳐서 저렇게 됐건, 기적처럼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저렇게 됐건,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마침 근처에 있던 잘 생긴 피사체끼리 한 화면에 모아 봤다.

 

 

사실 이렇게만 보면 정말 크기기 짐작되지 않는다. 그냥 모형같기도 하고...

 

 

뭐 이렇게 봐도 마찬가지긴 한데, 아무튼 꽤 큰 나무다. 그리고 비현실적이었다.

 

물론 현장에 가 보신 분은 알겠지만 주변에 전깃줄도 있고, 건너편에 무슨 창고 같은 것도 있고 그렇다. 그래서 저렇게 곱게만 찍는 데에는 꽤 수고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아름다움은 그냥 그대로 지켜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크리스마스 나무의 교훈대로 앞으로도 잘 가꾸려 한다. (응?)

 

그리고 다시 차를 달려 시키사이 언덕으로 가본다.

 

 

2012년 여름에 왔던 시키사이 언덕은 이렇게 원색의 꽃들이 만발한 아름다운 언덕이었는데,

 

 

사실 겨울에 와 보니 아무것도 없다. 지금까지 본 겨울 풍경만 못하다.

 

 

그래도 왔으니 사진 한 장.

 

이렇게 해서 비에이 주변의 꽤 유명하다는 스팟들을 돌아봤다. 소요시간은 약 2시간 정도. 내려서 사진 찍고 다시 출발하고 하는 식으로 했는데도 이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날씨 때문에라도 내려서 그리 오랜 시간을 한군데 머물 수 없었다. 아무튼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으므로 만족도는 매우 높다. 한번 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차를 달려 일단 후라노로.

 

 

후라노 가는 길로 접어드니 어느새 파란 하늘이 고개를 내민다. 야속하기도 하다.

 

 

후라노 뒷산은 스키 리조트.

 

본래 후라노에 들어서면 唯我独尊(유이가도쿠손) 이라는 유명한 오믈렛카레집을 가려 했는데

 

 

...휴일이다. (사진은 유이가도쿠손 옆의 도나리노도쿠손이라는 계열 빵집)

 

 

그래서 온통 거리가 눈빛으로 반짝이는 후라노 시내를 달려,

 

 

그 집 못지않게 유명하다는 마사야를 갔다.

 

오무카레(오믈렛 커리)를 시켰는데,

 

 

배가 너무 고팠다. 아, 먹기 전에 찍을 걸...

 

그리고 다시 차를 달려 삿포로 시내로 진입해 렌트카를 반납하니...

 

 

해가 저물었다.

 

 

그럼 삿포로의 겨울 밤을 장식하는 화이또 이루미네이숑 (최대한 현지 발음을 살림)을 봐야지

 

 

오랜만에 사람 많은 데 오니 좀 이상하다 ㅎ

 

 

그런데 한 20년 전에도 느꼈지만, 이 화이또 이루미네이숑은 사진이 제일 예쁘다.

 

실제로 보면 절대 이렇게 예쁘지 않다.

 

그리고 얼음이 조명 때문에 녹았다가 다시 얼기 때문에 엄청나게 미끄럽다. 조심해야 한다.

 

 

저 멀리 삿포로 TV타워가 보이고,

 

 

TV 타워 바로 앞에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들어가 본다.

 

 

먹을 건 꽤 많은데 살 물건은 사실 없다.

 

 

제일 맛나게 보였던 통닭.

 

응? 근데 좌상단에... 수거구(收据口)라고 쓰고 RECEIPT MOUTH...?

 

한글로는 수취 입?

 

여러분 한국만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뭔가 조명이 지나쳤는지 그림처럼 찍힌 광경.

 

 

그래도 높은 곳에 오면 일단 올라가라고 배웠다.

 

사진에 밝게 보이는 곳에 라운지가 있다. 심지어 커피값도 한국돈 5000원 정도.

 

한국같으면 만원은 받았을 것 같다.

 

라운지에 자리 잡고 앉아 방금 지나온 오오토리 공원 방향을 찍었다.

 

비행접시 아니다. 미안하다.

 

 

이렇게 해서 4박5일간의 혹한기 일본 운전 훈련을 마쳤다(다녀와서 2주간 몸살).

 

 

 

4박5일 동안 달린 코스가 대략 이런 그림으로 나온다. 810km 정도의 거리로, 구글맵 예상 주행 시간은 12시간30분 정도 된다. 물론 동쪽에서 서쪽으로 돌아갈 때 길 잘못 들어 헤멘 거리, 비에이에서 돌아다닌 거리, 기타 등등의 자질구레한 주행을 합하면 900km 정도 될 것 같다. 이렇게 보면 하루 200km도 안 달린 셈이지만, 눈길인데다 낯선 객지라는 이유만으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운전자 피로는 상당히 심하다. (특히 조금이라도 빨리 달려 보려고 애쓸수록 피로는 가중된다. 게다가 그런다고 예상소요시간보다 빨리 도착하지도 않는다. 홋카이도의 신비?)  

 

핵심적인 교훈을 정리하면

 

1. 같이 가는 사람과 마음이 잘 맞아야 한다. 차내에서 꽤 긴 시간을 보내는데 거기서 투닥거리면 여행은 악몽.

 

2. 일정에 욕심을 내지 말자. 충분히 숙달된 운전자로 수시 교체가 가능하다면 더 달려도 되겠지만, 혼자 운전하는 경우 하루 주행거리는 200km 미만으로 하는 것이 여러 모로 좋을 것 같다.  (물론 각자의 체력에 따라. 혼자 운전해 본 사람으로선 하루 200km도 길었다.)

 

3. 운전 시간을 줄이려 조바심을 내 봐야 아무 소용 없다. 결국은 네비게이션이 예언한 시간만큼 걸린다.

 

4. 사진 욕심은 내면 낼수록 좋다. 특히 사진에 담지 못한 웅대한 자연 풍경이 너무 많아 아쉽다.

 

5. 료칸은 당연히 좋지만 매일 료칸 숙박을 하는 것도 지친다. 가이세키도 매일 먹으면 지겹다.

 

6. 어쨌든 홋카이도의 진짜 매력은 도시 밖에 있다. 과감하게 도시로 나가라. YOU CAN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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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온 다음날, 료칸 모리노료테이 비에이 森の旅亭びえい 의 아침.

 

 

독채 방에서 나와 아침 먹으러 가는 길이 찬탄을 자아낸다. 아름답다.

 

 

 

가져다 대면 전부 그림.

 

 

창문 하나 하나도 모두 사진 액자처럼 보이게 신경을 기울인 태가 역력하다.

 

 

그 많이 보시던 그 일본식 조식.

 

 

안 예쁜 각도가 없다.

 

 

라비스타 아칸가와도 그랬지만, 모리노료테이도 지형 때문에 전경을 찍기가 힘들다.

 

 

그리고 못다 푼 온천의 한을 다시 한번 풀어보리라

 

 

담가도 담가도 풀리지 않는 온천욕망.

 

전생에 온천 못하고 쓰러져 죽은 귀신이었나보다.

 

파란 하늘과 고드름. 겨울 온천을 그리는 자들의 로망 그 자체.

 

그런데,

 

 

홋카이도 날씨는 귀신도 모른다더니, 막상 길을 나서는데 어느새 해가 숨바꼭질을 한다.

 

 

온통 사방에 눈. 일단 료칸을 나서자마자 인근에 있는 '흰수염폭포'를 찾아간다.

 

시라히게 폭포(しらひげの滝) 말이다. 

 

 

모리노료테이를 나와 한 100미터쯤 내리막을 걸어 내려오면 이런 철교를 만난다.

 

 

철교 왼쪽을 바라보면 이런 한겨울의 예쁜 경치가,

 

 

그리고 오른 쪽 아래에는 요런 자그마한 폭포가 있다.

 

 

사진으로만 봐서는 규모를 알 수 없고 얼핏 웅대한 폭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높이가 5m 정도인 미니 폭포. 규모는 '애개' 할 정도지만, 아래를 흐르는 물 색깔과 함께 조형미는 기가 막히다. 덩치가 컸더라면 세계적인 경승이 될 뻔 했다. 

 

 

그 시간에도 해 쪽은 이런데

 

 

반대쪽은 아직 파란 하늘.

 

파란 하늘 아래 하얀 눈의 로망이 뭉클뭉클.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비에이의 잘생긴, 눈밭에서 더욱 잘생겨 보이는 나무들을 찍으러 간다.

 

후라노와 비에이를 가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여름의 비이에는 패치워크(patchwork)라고 불릴 정도로 알록달록 다양한 꽃들이 피어나는 벌판이 매력을 뽐내는 곳이다. 하지만 여름 못지 않게, 겨울에도 이 벌판은 매혹적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예를 들면 이런 나무. '켄과 메리의 나무'라고 불리는 나무다.

 

별 것 아닌 그냥 나무 한 그루지만 회색빛 하늘을 배경으로 눈밭 한 가운데 이 나무 혼자 서 있는 걸 보면 어쩐지 가슴이 싸해진다.

 

비에이 역을 중심으로 대략 10km 사방에는 이런 경치를 볼 수 있는 포인트들이 흩어져 있다.

 

특히나 주변에 인가나 행인이 거의 보이지 않는, 어쩐지 쓸쓸한 풍경이 비에이의 마력이다.

 

 

그런데 이런 풍경들을 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렌터카가 필수. 물론 비에이에 내려서 12시간 기준으로 단기 렌트를 하는 방법도 있고, 택시를 대절해서 다니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앞에서도 얘기했다시피, 홋카이도라는 곳 자체가 '나만의 발'을 갖지 않고서는 제대로 보기 힘든 곳이다.

 

그러니 홋카이도 여행 레벨 1으로 삿포로-오타루-노보리베츠-팜 도미타를 돌고 말 게 아니라면, 아무리 봐도 렌트는 필수다.

 

(여름에는 비에이를 중심으로 자전거 투어를 하는 분들도 있다고 하는데 글쎄, 그 자체도 엄청난 체력을 필요로 하겠지만 특히나 겨울에는 무리라고 본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미끄러워서 위험하기 짝이 없다.)

 

 

 

하늘이 파랬다면 더 좋았을 것 같기도 하지만, 흐린 하늘은 흐린 하늘대로 또 매력이 있다.

 

그런 파란 하늘을 보기 위해 며칠씩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그렇게 작심한대로 차를 몰고 료칸을 출발.

 

오늘(4일째)의 목표는 료칸을 떠나 비에이의 포토제닉한 명소들을 몇군데 돌아 본 뒤 후라노를 거쳐 삿포로까지 가는 거다.

 

일단 이 구간에는 산길이나 험지가 없어 느긋한 마음으로 출발한다.

 

 

이미 오전의 파란 하늘은 사라지고 눈발이 날렸다 사라졌다 하는 날씨.

 

그런데 저 구름 너머로 햇살이 비치는 날씨가 어찌 보면 눈밭을 더 신비롭게 보이게 한다.

 

 

 

그리고 한 30분을 이렇게 달려도 다른 차를 만날 수가 없다. 이게 바로 비에이의 가장 큰 매력.

 

 

켄과 메리의 나무를 지나 한참을 달리면 '세븐 스타 나무'가 나온다.

 

비에이의 명소들을 골라 다니는 관광버스가 저 멀리 서 있다. 

 

 

이렇게 해서 본격적인 비에이 나무 투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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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 출발은 참 창대했다.

 

사실 저런 하늘 아래서 아무도 없는 길을 달린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 아님?

 

 

셋째날의 코스는 지도 오른쪽 라비스타 아칸가와 호텔에서 오른쪽 빨간 표시, 즉 모리노료테이 비에이 료칸까지다.

 

대략 240~260km, 4시간에서 4시간 30분 정도의 거리라고 보여진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좀 코웃음을 쳤다. 240km에 4시간이면 누가 봐도 시삭 60km 아닌가.

 

누가 60을 지켜, 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좀 오산이었다.

 

아무튼 달리는 길엔 처음엔 햇살도 좋고,

 

 

그런데 길이 슬슬 이렇게 되더니,

 

 

잠시후 결국은 이렇게 됐다.

 

가는 동안에도 눈이 펑펑. 그런데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제설차가 신속하게 현장으로 출동한다.

 

 

그리고 이날의 끝은 결국 이런 것.... ㅜㅜ

 

뭐 조난의 느낌이었다.

 

아무튼 이건 한참 나중, 해진 뒤의 일이고...

 

아침부터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던 우리는 뒤늦게 새로운 사실을 확인했다.

 

홋카이도 고속도로엔 간혹 휴게소가 있다 해도 한국 같은 식당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

 

허기도 허기인데다 차도 배를 채워야 했다.

 

그래서 토카치시미즈(十勝淸水)에서 잠시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지나가다가 '소바'라는 큰 간판을 보고 들어간 집.

 

이름은 메분료(目分料, めぶんりょう), 주소는 다음과 같다.

 

〒089-0113 北海道上川郡清水町南5条3丁目1

 

 

 

이 집의 대표는 오리탕에 간장을 섞은 오리 장국에 찍어먹는 소바였다. 맛있었다.

 

위쪽의 쯔유도 그리 진한 맛은 아닌데 아무튼 소바인들이 찾아가도 후회는 없을 거라고 생각.

 

어쨌든 나중에 알고 보니 미슐랭가이드2017의 미슐랭플레이트에 선정된 집이라고! (으쓱)

 

 

그러나 그 뒤로 다시는 저런 여유를 부리지 못하고, 심지어 고속도로 분기점을 지나치는(!) 참사...

(2차선인 홋카이도 고속도로는 한번 지나치면 한시간은 더 달려야 돌리는 길이 나옴)

 

그리고 그걸 좀 만회해 보겠다고 중간 산길로 빠져나왔다가 정말 한 2시간 동안 다른 차를 하나도 만나지 않는 산길을 실컷 달렸다. 나중엔 정말 무서울 정도.

 

그 덕분에 진정한 설산의 비경을 여러번 봤지만 내려서 사진을 찍을 만한 여유도 부리지 못하고 ㅠㅠ

 

그렇게 해서 후라노를 지나 비에이 지역으로 접어들었으니, 꼭 보고 가야 할 것이 있었다.

 

 

바로 비에이 지역의 경승 중 하나로 유명한 아오이이케(青い池).

 

〒071-0235 北海道上川郡美瑛町白金

 

천연호수는 아니고 인공호수지만, 저 푸른 물빛으로 유명한 곳이다.

 

당연히 겨울에는 저 물도 어는데, 그 얼어붙은 수면을 이용한 조명 쇼가 겨울용 특선 상품.

 

아칸호에서 출발한지 약 7시간만에 아오이이케에 도착, 거의 조명 쇼 시간에 딱 맞출 수 있었다.

 

(이게 어쩌면 행운이랄까? 한 30분 먼저 도착했으면 료칸에서 눈길을 뚫고 다시 나오기 귀찮아서 못 봤을 수도 있다.)

 

 

 

 

사진상으로는 꽤 밝게 나오지만 실제로는 이렇지 않다.

(RX 100 시리즈의 왜곡. 사진은 나오지만 흔들리기 쉽다.)

 

 

왼쪽에서 이렇게 조명을 때리고 있고, 그 조명 아래에 제법 많은 사람이 조명 색이 바뀔 때마다 탄성을.

 

 

눈은 끝없이 쏟아진다.

 

 

 

뒤쪽에서 보면 이렇다.

 

서울에서 1년치 맞을 눈을 하루에 다 맞은 듯.

 

볼만큼 봤으니 철수.

 

 

BLUE FOND라고 써 있는 아오이이케에서 모리노료테이는 3.4KM, 정상적으로 5분 이내 거리다.

 

하지만 폭설 속에서 이 3.4KM는 정말 30KM같은 위력을 발휘했다.

 

심지어 간판이 하나도 안 보여서 지나칠 뻔했다.

 

 

아무튼 천신만고끝에 도착한 모리노료테이.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이미 꽤 알려진 곳이다.

 

 

 

이곳의 특징은 거의 모든 객실이 별채처럼 되어 있고, 개별 노천탕이 딸려 있다는 점.

 

 

 

 

이것이 바로 개별노천탕이다.

 

즉 객실마다 탕이 딸려 있다는 것인데... 방마다 독탕이 딸려 있는 것과 모든 손님이 함께 사용하는 대욕장만 있는 것의 차이는,

 

뭐랄까 화장실이 딸린 방과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방의 차이 정도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큰 차이다.

 

 

그리고 이렇게 욕탕에서 눈이 쌓인 바깥 숲을 바로 바라볼 수 있다는 건 이만저만한 메리트가 아니다.

 

대부분의 노천탕들이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사실상 하늘만 겨우 볼 수 있게 해놓은 데 비하면 엄청난 개방감이다.

 

 

젠사이

 

 

스이모노

 

 

오쓰구리

 

 

음...니모노? 전복찜.

 

 

야키모노? ;;

 

 

요우자라? ^^ 로스트비프가 나왔다.

 

아게모노!

 

갑자기 왜...? ;;

 

 

도메자카나

 

미즈가시. 샤베트를 얹은 푸딩.

 

플레이팅이며 격식은 모리노료테이의 승리. 그릇 하나에도 꽤 신경 쓴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데 재료나 맛은 아무래도 라비스타 아칸가와의 편을 들게 된다.

 

물론 저녁 세끼 연속으로 가이세키 요리를 먹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아무튼 진종일 눈길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전을 한 뒤 밥까지 잔뜩 먹었으니 더 버틸 재간이 없다.

 

시체가 된다.

 

 

 

 

그리고 다음날은 이런 설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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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게 원래 먹자고 가는 건데 먹는 얘기를 너무 부실하게 취급한 것 같아서.

 

그럼 지금부터 카무이노유 라비스타 아칸가와 호텔(이름 참 길다)에서 이틀동안 먹은 식사를 석-조-석-조의 순으로 소개한다.

 

 

대개 온천 호텔이나 료칸에서는 조식/석식을 제공하는데 저녁식사는 보통 가이세키(會席) 요리가 제공된다.

일본식의 코스 정식을 말하는데, 가끔 발음이 같은 가이세키(懷石)와 혼동하는 사람도 있고, 한국인들은 대개 이해가 높지 않다.

 

거기에 대해서는 전에 한번 포스팅한 적이 있다.

 

일본 료칸의 가이세키요리란? http://fivecard.joins.com/1305

 

이처럼 코스의 이름과 순서가 제공하는 업소에 따라 꽤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기본적인 틀 안에서 운영된다.

 

그래서 이 호텔, 카무이 에서는 다음 순서로 저녁밥을 줬다.

 

 

前菜 젠사이 - 전채. 모듬 전식 요리.

先椀 센완 - 밥공기 같은 그릇에 담긴 찜 요리

造里 쓰쿠리 - 생선회

台の物  타이노모노 - 상 위에 놓인 요리. 즉 직접 조리해가며 먹는 요리

洋皿 요우자라  - 서양 요리

止肴 도메자카나 - 마지막 안주(?). 다른 곳에선 이 이름으로 밥이 나왔는데 여기는 아래 보시다시피 식사가 따로 있다.

食事 - 카레라이스와 죽 중 선택하게 되어 있다. 죽 선택..

水菓子 - 디저트 1

甘味 - 디저트 2

 

대략의 틀은 따라가고 있지만 뭐랄까, 격식 없이 자유롭게 차려진 가이세키라는 느낌이 들었다.

 

 

 

 

 

前菜 젠사이와 先椀 센완이 함께 나와 있는 모습. 완(椀)은 밥공기같은 둥근 그릇을 말한다.

(뚜껑을 열고 내용을 찍은 사진 없음. 패스)

 

 

밥을 먹기 위해 창가 자리에 앉았는데, 창밖으로 개울(아칸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아칸가와)이 흐르고,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개울가에 이 호텔에서 키우는 사슴이 왔다갔다 한다.

 

자연 속으로 푹 들어온 느낌이 난다.

 

 

 

이것이 造里 쓰쿠리,

 

날씨에 맞춰서인지 방어(鰤, 일본 발음으로 부리)가 나왔다.

 

 

이것이 台の物  타이노모노,

 

연한 육수에 게살, 고기, 야채를 담가 먹는 샤부샤부가 나왔다. 맛이 없을 수 없는 종목. 

 

 

 

洋皿 요우자라. 소고기와 돼지고기 로스트가 나왔다. 소고기는 그럴듯 했는데 돼지고기를 미디엄으로 구운 느낌은 좀 낯설었다.

 

이렇게 첫날 저녁 식사 완료. 당연히 다 먹으면 배가 상당히 부르다.

 

 

그러는 사이 스키야키 냄비에서 우동이 익고,

 

 

남은 국물에 쌀을 투척해 죽으로 재탄생.

 

이 죽을 조우스이 雜炊 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도 많이 보던 스타일이다. 맑은 탕이나 스키야키를 먹은 뒤 밥과 파, 계란을 훌훌 풀어 끓이는 그런 죽. 단지 한국식 죽은 좀 퍼질 때까지 끓이는 반면, 이 조우스이는 밥알이 아직 단단함을 잃지 않은 상태까지만 살짝 끓인다.

 

어쨌거나 이렇게 남은 국물을 이용해 죽을 만드는 방법은 아무래도 일본인 원조인 것 같다.

 

(양국에서 자연발생했을 수 있겠으나 식당가에서 흔히 하는, 계랸과 파, 잘게 썬 야채를 가져와 같이 끓이는 스타일이 정형화된걸 보면)

 

 

 

그리고는 수수 무스(무로코시 무스라고 되어 있는데 찾아 보니 무로코시는 수수다. 옥수수도 무로코시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토카시 산 팥무리떡으로 마무리.

 

 

아울러 식사 때마다 제공되는 아이스바. 홋카이도는 유제품이 좋아서 이런 종류는 웬만하면 다 맛있다.

 

아무튼 이렇게 잔뜩 먹고 온천을 텀벙텀벙 뛰어다닌 뒤에 푹 퍼져 잤다.

 

다음날 아침.

 

 

 

 

 

식당으로 내려오니 온천이 김을 뿜으며 개울로 흘러들어가는 광경이 보인다.

 

 

이렇게 조반. 다 아시는 그 일본식 조반.

 

본래 화/양식 중에서 선택하게 되어 있는데 별 고민 없이 그냥 '일본이니까 화식!'이라고 해 버렸다. 양식은 내일 먹지, 라는 생각.

(하지만 다음날 이것 때문에 약간의 후회...)

 

밥이 유난히 맛있다. 쌀이 좋아서인지... 반찬은 뭐 그냥 그런 반찬.

 

 

이렇게 좋은 햇살과 전망 앞에서 먹으면 뭐 맛없을 밥이 있을지.

 

 

개인용 반노천탕도 한번 들어가 봤다. 그런데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물도 미지근하고 좀 그렇다. 비추.

 

어쨌든 이렇게 해서 둘쨋날은 지난번 포스팅에서 다뤘듯 부근 호숫가 노천온천을 누비며 씬나게...

 

달리고 돌아온 뒤 다시 가이세키로 저녁.

 

 

뭐 늘 보시는 거니까 설명은 생략.

 

일본에서도 곶감을 먹는지 몰랐다.^^ 생선은 참치 중심.

 

 

솥밥이 식사고, 1병 제공되는 맥주.

 

 

철판구이 고기가 나왔다.

 

 

같이 나온 빠다를 녹여서 이렇게 ~

 

 

생선 이름이 뭐더라... 긴메타이(金目鯛, 우리말로는 금눈돔?). 돔 종류 치고는 작은데 크기에 비해 알차다.

 

 

그리고 이렇게 연어를 넣은 솥밥으로 푸짐하게.

 

사실 이 호텔은 본래 밤 10시에 야식으로 라멘을 준다.

 

처음엔 라멘 맛이라도 좀 볼까 생각을 했지만 저녁식사만으로도 충분히 헤비해서 그런 만용은 버리는 것으로.

 

그리고 다음날 아침.

 

 

 

셋째날 아침.

 

보시다시피 구성이 약간 모호,

 

사실 화식에 약간 질려 가던 터라 두번째 날 조식은 '양식'이라고 자신있게 외쳤는데,

 

직원이 "오늘은 화식 양식 구분 없고 화양식(?)으로 통일"이라는 거다.

 

화양식은 또 뭔가 했더니 바로 저 차림, 좋게 말해 퓨전이고 먹어 본 솔직한 결과로는 양식도 아니고 일식도 아닌, 그 어딘가에서 방황하는...

 

 

그리고 아침부터 삼겹살 샤부샤부라니.

 

아 느끼해... 는 아니고 실제로는 뭐 맛은 괜찮았음.

 

 

다만 당초 기대했던 대로 빵 맛은 베리 굿.

 

같이 먹는 우유도 좋아서 석잔이나 드링킹.

 

 

그리고 저녁에 아이스바를 가져다 놓은 데 이어 오전에는 소프트 가츠켄이라는 음료가 제공된다.

 

맛은 바로 드링킹 요구르트.

 

 

아무튼 날씨 얘기가 뒤로 왔는데, 둘쨋날 아침까지만 해도 신록이 우거졌던 숲이 셋째날 아침엔 완전히 눈 속 나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 이런거. 이런 걸 보러 온 거야

 

그렇다면 한국인의 로망을 실천할 때가 온 것 같다.

 

 

자, 노천탕으로 달려가서,

.

 

몸을 푹 담그고 설경을 바라본다.

 

크허허허 정말 세상에 부러울게 없다.

 

 

이럴땐 이렇게 발을 내놓고 싶더라고.

 

여기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길을 떠나야 하는 날.

 

 

차가 이렇게 돼 있다. 과연 이날 이 차는 무사히 목적지까지 갔을까?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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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5일(2017년임) 아침, 파란 하늘을 안고 흡족한 마음으로 오전 9시30분 정도에 길을 떠났다.

사실 이번 홋카이도 여행을 앞두고 별다른 연구가 없었음을 알려주는 것이, 이 둘쨋날 코스도 본래 만만치 않았던 것인데 아무 생각 없이 '지도상으로 보니까 다 근처야' 하는 마음에 아주 가볍게 출발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귀환 후 몸살로 나타나지만... 아무튼 이때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좋기만 했다. 

일단 첫번째 목표. 호텔을 나와 동쪽으로 10여분 정도 차를 달리면 소우코다이(双湖台)라는 첫번째 목표가 등장한다. 한자 세대라면 쌍호대, 즉 두개의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라는 뜻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전망대 이름이 호수 두개가 보여서 쌍호대라는 것인데, 하나는 어디로 간 것인지...

아무튼 아칸 호수는 잘 보인다. 예쁘다.

파란 하늘, 하얀 눈이 쌓인 길, 뭐 여기서 더 바라면 도둑이다.

근데 얘기를 하다 보니 아쉬운 점: 일본 렌터카 중엔 와이파이로 음악 들을 수 있는 차종이 별로 없다고 한다. 처음엔 경차라 그런 줄 알았는데 대부분 그런 옵션이 없다고... 그렇다고 홋카이도 FM이 빵빵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운전할 때 BGM이 필요하면 작은 거라도 블루투스 스피커를 챙겨 가시도록.

물론 저 쌍호대는 이날 여정의 아주 아주 이른 시작. 북쪽으로 차를 돌려 일단 목적지인 비호로(美幌) 전망대를 향해 달려 본다.

비호로 전망대는 굿샤로 호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로 유명한 곳. 대략 대관령을 연상키시는 비호로 고개 위에서 내려다보는 굿샤로 호수는 일찍이 절경이라고 알려졌다.

비호로 주차장에 차를 댈 때까지만 해도 푸른 하늘이 보였는데,

바로 옆, 전망대 쪽으로 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니 해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오묘한 홋카이도의 날씨.

구름 속의 태양 방향으로 5분쯤 걸어 올라가니,

오옷.

조금 와이드하게 찍으면 이런 느낌.

희한하게도 바로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파란 하늘이 보이는데,

호수 상공은 안개와 짙은 구름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보인다. 그런데 기막히게 멋지다.

그래도 이 정도면 운이 좋은 편. 어떤 분들은 짙은 안개 때문에 아무 것도 못 봤다고도 한다.

호수 가운데 보이는 섬은 나카지마 中島 라고 부른다는데, 호수 중간에 있는 섬은 모두 나카지마인듯.

파란 하늘과 구름낀 태양 아래 굿샤로 호수.

경치는 너무나 기가막히게 좋은데 추워서 살 수가 없다. 고지대라 쌩쌩 부는 바람이 제법 사납다.

아무튼 비호로 인증샷.

내려와서 전망대 휴게소를 들어가니 굿샤로 호수에도 괴수가 산다고 한다.

귀엽다.

바람에 맞서 호수 구경을 하고 오니 다른 생각 1도 없이 뜨거운 국물이 땡긴다.

뭐 관광지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주 사악한 가격은 아니다.

성수기도 아니고 휴일도 아니라서인지 휴게소는 한산.

카니라멘, 1500엔. 비주얼은 어째 게다리가 모형 같은데 실제론 맛이 그만이었다. 강추.

뎀푸라 우동. 980엔. 물론 이것도 당연히 맛있다.

휴게소 음식 치고는 기대 이상의 맛. 뜨거운 국물에 언 몸이 스스르 녹는다.

그리고 차를 돌려 내려온 곳이 와코토 和琴 노천온천.

 

호수의 아주 작은 반도(?)로 잡어들어 그냥 길가에 차를 세우고 2분 정도 걸으면 나타나는 노천 온천이다. 사진 위쪽은 굿샤로 호수, 그리고 아래쪽 김 나는 곳이 온천이다. 한 구석에 탈의장 비슷하게 동네에서 지어 놓은 목조 건물이 있고, 사방에 아무 것도 없다. 그야말로 지나가는 길손이 들어가서 온천욕을 하라는 그런 탕이다.

그래서

 

 

쑥 들어갔다.

수영복 입으면 안 된다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어떻게...

바닥은 생각보다 매끈한데 잔돌과 나뭇잎 등이 바닥에 깔려 있다. 자연탕이란 느낌이 확실히 강하게 든다.

영하의 날씨지만 물이 엄청나게 뜨겁다. 금세 땀이 나고 열이 식지 않는다. 기분도 아주 좋아진다.

갈 길이 멀어 얼른 나왔다. 안 그랬으면 죙일 뽕을 뽑았을 듯.

그리고 두번째, 코탄コタン 노천온천인데 여기가 더 대박.

여기는 큰길에서 3분 정도 동네 길로 들어간 다음 시키는대로 차를 세우고 몇발짝 걸어가는데,

우왕.

와코토 온천과는 달리 코탄 온천은 그렇게 호쾌하게 호수 뷰가 펼쳐지는 바로 그 앞에 있다.

백조가 노니는 호수 바로 앞에.

짜잔.

아무 터치도 안 했는데(포토샵 할줄 모른다) 이런 거짓말같은 뷰가 나온다. 너무 아름답다.

온천이 나올 정도로 지열이 있으니 당연히 호수가 거의 얼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또 들어갔다. ;;

보나마나 눈 버렸다 어쩌고 하시겠지만 댁들이 가 보세요. 들어가시고 싶어질 거에요.

이러고 있는데 동네 아저씨가 들어온다. 좋으시겠어요. 동네에 이런 게 있다니.

 

온천을 했더니 너무 더워서(는 뻥이고) 맛있다고 소문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다.

아이스크림집은 마슈호 가는 길에 있다.

이런 소박한 외경. 이름도 멋지게 짓겠다는 야심 없이 그냥 '마슈호의 아이스(摩周湖の あいす)'다. 저 위 지도에 위치 표시가 있다.

그리고 원래 목표는 이렇게 해서 마슈호까지 세 호수를 모두 보고 오는 거였는데 개인착용 장비에 사소한 문제가 생겨서 그냥 호텔로 귀환하기로. 사실 전날의 피로가 다 풀리기 전에 나온 거라 이 정도 운전으로도 좀 피곤했다.

빨리 가서 저녁밥을... (아 첫날도 저녁먹은 얘기를 안 했구나.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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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말~12월초의 여행기입니다. 지금 가 있는 게 아닙니다. 네. 그렇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갈 팔자가 못 됩니다.^^

더 늦기 전에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충동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안 가보신 분들께 도움이 되길.

 

여행은 충동이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다. 11월. '사위가 조용하고, 눈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그런 설경이 보고 싶어'. 물론 그런 곳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 멀지도 않다. 비행기를 타고 두시간만 날아가면 홋카이도가 있다.

 

홋카이도는 두 번 간 적이 있다. 한번은 일전에 얘기한 것 처럼 2001년, 김민종의 뮤직비디오를 찍는 팀에 끼어서 처음 구경한 적이 있다. 이때 삿포로의 화이트 일루미네이션과 오타루, 조잔케이 등을 구경한 적이 있다.

 

그리고 2012년, 이번엔 여름의 홋카이도를 택했다. 다들 홋카이도 하면 설원과 온천을 떠올리지만 여름이 더 좋더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엔 놋포로 숲, 아사히카와 동물원, 그리고 후라노와 비에이 등지를 돌아봤다. 아주 좋았다. 그리고 언젠가는 직접 운전을 하고 이 동네를 돌아다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결심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래서 목표를 세웠다.

 

1. 목표는 설경이다.

 

11월 말. 날씨가 애매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눈이 올 수도, 안 올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만약 눈이 오지 않는다면 홋카이도의 11월은 대단히 을씨년스럽기만 한 계절이 될 수도 있다는 거였다. 9월초까지는 여름이고 10월과 11월 초는 화려한 단풍의 계절. 그리고 11월 말이면 단풍은 확실히 진다. 그런데 과연 거기에 눈이 없다면? 상상만 해도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12월 중순에 갈 수는 없었고, 막상 12월로 넘어가면 비행기 표, 호텔, 갑자기 모든 가격이 급등했다. 다들 알고 있었다. 그래서(?) 11월 말 계획을 강행했다. 대략 수년간의 이런 저런 수치들을 본 결과 눈은 와 줄 거라고 확신했다.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목표는 달성됐다.)

  

 

 

2. 교통수단은 렌터카.

 

이 부분에서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과연 대중교통수단과 렌터카를 어느 정도 비율로 조합할 것인가? 본인은 절대 운전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고속도로를 몇시간 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녹초가 되는 체질이다. 그렇다면 일정 비율로 기차와 렌터카를 조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리 현명한 생각은 아니었다. 홋카이도는 일본 내에서도 교통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지역이었고, 렌터카 요금은 하루 일정 지분을 대중교통이 담당해준다는 점을 전혀 고려해주지 않았다. 아예 렌터카를 타는 날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날이 구분되지 않는 한 비용은 전혀 절감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 여정을 대중교통에만 의존한다는 것 역시 당초의 취지와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전 구간을 렌터카로 이용할 경우 유류대 포함 30만원 이내로 전체 교통비를 커버할 수 있었지만 전 구간을 대중교통으로 이용할 경우 이미 40만원 이상(그리고 사소한 볼거리는 모두 포기해야 한다)이 들었고, 둘을 조합할 경우 교통비만 70만원대(예: 료칸에서 택시를 대절해 주변을 관광한다든가 하는. 버스? 없다고 보면 됨)가 필요했다. 그래서 사실상 전 구간을 렌터카를 운영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3. 좀 더 구석진 곳으로.

 

렌터카를 이용하는 이상, 홋카이도라는 큰 섬 깊숙히 진출한다는 목표가 자동으로 설정됐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홋카이도 여행에는 대략 3~4단계 정도가 있다. 1단계에서는 삿포로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맥주공장도 가보고, 노보리베츠나 조잔케이에 가서 온천을 하고, 오타루에서 가서 다시는 열어 보지 않을 오르골을 사 온다. 용기를 내서 저 남쪽의 하코다테 야경을 보고 오기도 한다.

 

2단계가 되면 도야 호수를 보러 가고, 팜 도미타에 가서 라벤더 밭을 보고 황홀경에 빠진다. 비에이의 패치워크를 보면서 이곳의 설경을 보리라 다짐한다. 아사히카와의 동물원을 보거나 멜론을 먹으러 유바리에 가는 사람도 있다. 이른바 '삿포로가 중심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을 깨닫는 시기다.

 

3단계가 되면 내륙으로 길을 떠난다. '쿠시로 습원'이라거나 토카치카와, 다이세츠산, 아칸 호수 등의 지명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한시간을 달려도 차 한대 마주치지 않는 '사람 없는 대자연'의 매력에 빠져드는 시기다.

 

4단계는 이제 홋카이도의 동 서 남 북 끝을 정복하고 싶은 야망(?)에 눈을 뜨는 시기다. 아바시리, 네모토, 와카나이 유빙 등의 화제가 등장한다. 이건 거리상으로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간혹 홋카이도를 제주도 수준으로 생각하는 정신나간 사람들도 있는데 상당히 위험하다. 홋카이도는 약 8만 제곱킬로미터, 남한이 약 10만제곱 킬로미터다. 남한 전체에서 강원도 정도를 뺀 넓이다.)  상당한 시일과 체력을 요한다. 특히 운전을 교대해 줄 사람이 없이 이런 코스에 도전하면 상당히 난감해 질 수도 있다. 물론 동쪽 끝, 북쪽 끝 등을 나눠 가는 요령있는 사람도 있다.

 

위 구분에 따르면 홋카이도를 세번째 가는 나는 대략 2.5단계 정도에 있는 것 같았다. 적당한 선에서 치토세(공항) - 쿠시로 - 비에이를 잇는 큰 삼각형을 설계했다.

 

 

예쁜 그림이 나왔다. 좌하단의 신치토세 공항을 출발, 동쪽으로 달려서 라 비스타 아칸가와 호텔이라고 써 있는 곳까지 가서 다시 위쪽으로 올라갔다가 서쪽으로 쭉 가서 비에이를 거쳐 삿포로에 이르는, 그러니까 저 순환형 코스를 공항에서 시작해 시계 반대방향으로 한바퀴 도는 코스를 구상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11월말~12월초의 기후. 가끔은 이때까지도 홋카이도에눈이 안 내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물론 약 90% 확률로 이미 눈 천지가 되어 있다), 눈을 보러 가는 것인 만큼 눈이 안 내려도 낭패지만, 눈이 너무 오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특히 위 지도에서 북쪽, 그러니까 기타미에서 아사히카와 구간은 산속 도로이기 때문에 얼어붙으면 꽤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실제 경로는,

 

 

이렇게 약간 덜 예쁜 그림이 됐는데 겨울의 북쪽 산악도로를 피하려다 보니 이렇게 됐다. (그런데 결과적으론 길을 잘못 들기도 해서 산길을 실컷 달리게 됐다. 그냥 북쪽으로 갔어도 큰 차이 없었을 것 같다.^^)

 

그리고 시기적으로는 11월 말 출발을 권장한다. 가장 큰 이유는 항공 요금을 체크해보시면 바로 알 수 있다. 11월말 출발과 12월 출발, 대략 1주일 사이에 항공료가 40% 이상 오른다(그만치 '12월 홋카이도'에 대한 로망이 꽤 있는 것 같다). 만약 휴가를 내는 게 양쪽 다 가능하다면 충분히 고려할 만한 요인이다.

 

 

 

첫날은 신 치토세 공항에 내려 곧바로 렌터카를 이용해 쿠시로 방향으로 간 뒤, 내륙으로 들어가는 목표를 세웠다. 거기 뭐가 있냐 하면,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이라는 아칸 호, 굿샤로 호, 마슈 호라는 세 개의 호수가 있었다. 그리고 아칸 호수 부근에 있는 라비스타 아칸가와 호텔 (풀네임은 카무이노유: 라비스타 아칸가와 カムイの湯 ラビスタ阿寒川) 은 한번 가 보고 싶은 숙소였다.

 

(창밖으로 이런 뷰가 펼쳐진다)

 

カムイの湯 ラビスタ阿寒川, 일본 〒085-0000 Hokkaido, Kushiro, Akancho Okurushube, 3−1

 

공항에서 호텔까지 260km. 구글 지도상으로는 약 3시간 40분 정도가 소요된다는 정보가 나왔다. 하지만 겨울 홋카이도 고속도로(?)의 제한속도는 시속 60km. 4시간 이상 걸릴 거라고 생각해야 했다. 가 본 적이 없으므로 어느 정도 걸릴 거라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5시간 넘게 걸렸다)

 

 

그리고 두번째 숙소는 한국 관광객들 사이에 이미 정평이 난 비에이의 모리노테이 료칸. 사진을 보고 반신반의 했는데 정말 드라마틱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森の旅亭びえい, 일본 〒071-0235 Hokkaido, Kamikawa District, 美瑛町Shirogane, 10522−1

 

 

그래서 기본 일정은 세워졌다.

 

첫날        인천 - 신 치토세공항 - 아칸가와 라비스타 이동

둘쨋날     아칸 호수 주변 관광, 아칸가와 라비스타 숙박(2박)

셋째날     아칸 호수 - 비에이 모리노테이 료칸 이동

넷째날     비에이 주변 관광, 삿포로로 이동 (렌터카 반납)

다섯째날  기상, 빈둥거리다 리무진버스로 공항 이동, 인천으로 귀국

 

따라서 숙박은 아칸가와 라비스타(2박), 모리노테이(1박), 삿포로 시내 호텔(1박)으로 정리됐다. 당초 구상 중에는 라비스타 2박, 모리노테이 2박을 한 뒤 바로 공항으로 렌터카를 이용해 이동하는 것도 있었으나 도로 사정을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무리한 일정을 세우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해서 당일. 신 치토세 공항 1층으로 내려가면 렌터카 종합 라운지가 있고, 거기서 예약자를 확인해 필요한 곳으로 안내해 준다.

 

물론 성격 느긋한 분들은 공항에 내려서 렌터카 알아보시고 하겠지만 역시 뭐든 예약하는 게 좋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닛산 렌터카 직원이 등장, 미니버스로 공항 외곽에 있는 닛산 렌터카 사무소로 실어다 준다.

 

 

닛산 마치(マーチ). 경차급이지만 4륜구동이고, 겨울 홋카이도의 렌터카는 스노 타이어가 기본이다.

(단, 4륜 모드에서는 연비가 상당히 안 좋아진다. 물론 겨울이니 감수해야 한다.)

 

굳이 닛산을 선택한 건 일본 최대 렌터카 업체인 토요타가 경쟁업체 대비 20% 정도 가격이 비쌌기 때문. 대신 대리점도 가장 많고 아무래도 공신력있다는 등의 장점이 있다지만, 역시 대기업이면서 토요타보다 싼 닛산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물론 닛산보다 싼 회사도 얼마든지 있다. 다만 그런 회사들은 차가 좀 낡았다든가 하는 몇가지 겁주는 이야기들이 있다.

 

신 치토세 공항 근처의 닛산 렌터카 공항점에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없었다. 하지만 워낙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터라 그쪽에서도 여유있게 응대한다. 아주 독특한 요구사항만 없다면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약간 발음이 이상하긴 해도 대강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데에는 별 무리 없는 수준의 영어로 차량 제공과 안내가 이뤄진다.

 

물론 빼놓으면 안되는 것들이 몇가지 있다. 일단 고속도로를 달려야 하니 ETC카드(한국의 하이패스카드)도 기본이고, 외국인에게는 고속도로 통행료가 대폭 할인되는 정액제 HEP라는 것이 있다. 반드시 신청해야 한다. 홋카이도는 대중교통 요금이 비싼 만큼 고속도로 통행료도 깜짝 놀랄 정도로 비싸다. 그러니 하루 2,3만원 정도로 고속도로 요금은 모두 해결되는 HEP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선수들은 HEP도 아깝다고 국도로 다닌다고 하는데, 솔직히 네비게이션도 감지덕지인 초보 처지에 어느게 국도고 어느게 고속도로인지 구별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냥 시키는 대로 HEP 해달라고 해라. <- 이상 ETC나 HEP 등에 대해서는 전문적으로 잘 설명해 놓은 블로그들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람.)

 

그리고 주의사항: 이 마치는 그냥 경차급인데, 한국 경차보다 트렁크는 확실히 작다. 그래서 문제인 것이, 좌석은 네개지만 그냥 2인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한 차다. 절대 네 사람과 네 사람분의 짐을 실을 수 없는 차라고 생각하면 된다. 만약 정상적인 성인 4인이 이 차를 빌리면, 뒷좌석 사람들은 짐을 안고 타야 하는 상황이 충분히 생길 수 있다. 그러니 성인 4인이라면 너무 돈 아낄 생각 말고, 그냥 일반 승용차를 빌려길 권한다(사실 짐 없이 4인이 타도 상당히 불편할 것 같다).

 

어쨌든 의례적인 교육을 받고,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공항을 빠져나와 처음 달리기 사작할 때 길은 을씨년스러운 늦가을이었는데(아 이거 눈 보러 왔는데 망했구나 잠시 생각),

 

외곽으로 나가자 마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만세).

 

 

(이때까지만 해도 기분은 '아싸 눈이다' )

 

사실 왼쪽 오른쪽 운전석의 차이에 대해 대단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별것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존해 말하면, 일단 운전을 좀 하는 사람이라면 아무 걱정 안 해도 된다.

 

30분 이내에 딱 한가지만 빼고 다 적응된다.

 

(다른 건 문제 아닌데 깜빡이를 넣으려고 하면 와이퍼가 움직인다. 이것 하나만큼은 돌아올 때까지 적응하지 못했다.)

 

 

일단 일본 고속도로에 나가 보고 놀란 것

 

1. (홋카이도라 그런 거겠지만) 양쪽 합해 2차선이다. 고속도로인데... 그래서인지 심지어 제한속도는 60.

 

2.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10분 쯤 있으면 제설차가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다. 고속도로 요금이 왜 비싼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3은,

 

 

3. 고속도로 휴게소에 한국 같으면 상식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식당, 편의점 등이 거의 없다.

 

위 사진이 신치토세 공항에서 오비히로로 가는 길 위에서 만난 휴게소인데, 이런 식의 간이 판매소가 두 개 있었다.

 

그런데 이날 이후로, 고속도로상에서 음식물을 파는 곳은 다시 보지 못했다.

(그냥 대부분의 휴게소에는 화장실과 음료수 자판기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뭐 여기도 파는 음식은 오뎅, 고로케, 핫도그 정도인데,

 

 

 

심지어 산 음식을 먹을 공간도 없다. 차로 가져가서 먹어야 한다.

 

 

눈은 그쳤지만 강풍이 부는 쓸쓸한 노점.

 

 

그래도 이 휴게소가 이번 여행에서 가본 휴게소 중에서는 압도적으로 시설이 좋았다. 정말이다. ;;

 

분명히 다시 한번 얘기해 둬야 할 것: 홋카이도의 고속도로 제한속도는 60km다. 물론 지키는 건 제설차밖에 없다고 봐도 좋다. 다들 쌩쌩 달린다. 겨울이고 뭐고 없다. 하지만 어찌 어찌 하다 보면 결국 한시간에 60km 이상 이동은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중간에 경치 구경 때문에 세울 수도 있고, 화장실에 들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느 구간에선가 진행을 방해하는 느린 차가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컴컴해진 뒤에야 아칸가와 라비스타 호텔에 떨어졌다.

 

(그래서 호텔 사진은 없다. 그리고 호텔 전경을 찍기가 굉장히 애매한 구조다.)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사진. 일단 호텔 전경이 저렇게 생겼는데, 저런 각도에서 이 건물을 보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 강, 그러니까 아칸가와 쪽에서 호텔을 보려면 상당히 험난한 지형을 뚫고 일부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진에서 알 수 있듯 방마다 꽤 큰 통유리 창이 강 방향으로 있는데,

 

 

 

 

방에서 밖을 보면 이런 느낌이다.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홈페이지 사진이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창문을 보다가 몸을 180도 돌리면,

 

 

침대가 보인다.

 

 

단지 아쉬움이 있다면 히노키 욕조가 좀 작고, 밖을 보는 창이 조금밖에 열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설명에는 반노천탕이라고 되어 있는데 사실 노천탕 느낌은 전혀 아니고, 방에서 온천욕을 하면서 바깥 찬 공기를 쐴 수 있다 정도?

 

아무튼 이 욕조는 두 사람이 동시에 들어가기엔 좀 무리다. (어린이들은 가능.)

 

이 호텔을 이용할 분들은 아무래도 온천욕은 대욕장을 사용하시는 것이 좋겠다.

 

그러니까 침대 쪽에서 창문 쪽을 바라보면 이런 모습. 긴 직사각형 모습이다.

 

 

 

저 호텔 홈페이지 사진은 여름 사진인데, 우리가 도착한 날 밤에 눈이 펑펑 내려서 다음날 이렇게 됐다.

 

방에서 이런 풍경이 보인다. 그것만으로도 이 호텔을 선택한 것이 후회되지 않았다.

 

 

욕조에서 창을 열고 밖을 보면 이런 느낌.

 

 

그래도 그럴듯하다.

 

 

북해도의 겨울엔 5시면 해가 똑 떨어진다.

 

해진 뒤 도착후 저녁시간이 8시라는 안내를 받았다.

 

뭘 하겠어, 일단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야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노천탕에서 바라보는 광경. 이때까지만 해도 아칸가와 지역에는 눈이 안 왔다. 그런데 이날 밤...

 

 

 

도착하지마자 탕욕을 마치고 느긋하게 휴식. 그리고 8시에 저녁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메뉴 안내 종이를 준다. 뭐 늘 먹는 그런 가이세키 요리지, 별 거 있겠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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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베를린 동물원 Zoologischer Garten Berlin 정문이 동아시아식(뭔가 한국/중국/일본/베트남/태국식을 조금씩 합한 듯한 느낌?) 기와지붕으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동물원으로 유명한 도시는 그리 많지 않다. 샌디에에고? 아사히카와? 사실 내가 동물원을 꽤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베를린 동물원은 무려 1844년에 개장한데다 현재도 전 세계 동물원 가운데 사육 종수 1위라는 기록을 갖고 있는 곳이다.

 

 

위 지도에서 '베를린'이라는 글자 위치가 대략 박물관 섬 정도 되는 지역인데, 통일이 된 지금 사람들은 베를린의 중심이 대략 저 정도 위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 쳐도 동물원은 그 중심에서 차로 20분 이내 정도의 위치(저 지도 왼쪽의 붉게 표시된 지역이다).

 

그리고 통일 전에는 이 동물원이야말로 서베를린의 중심이었다. 지금도 베를린에서 가장 부티나는 동네가 바로 이 베를린 동물원 부근인 거다. 지금도 오래된 베를린 토박이 상류층들은 '동물원 동쪽으로는 안 가'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어쨌든 그런 건 동물원에 뭐가 있냐는 것과는 상관이 없고, 동물원은 우리가 묵었던 호텔 바로 앞에 있었다. 정문까지 걸어서 10분 이내. 그리고 베를린 웰컴 카드로 무료입장할 수 있는 시설이기도 했다.

 

게다가 마지막날의 비행 스케줄이 오후인데다 베를린은 공항과 시내가 매우 가까워서(정확하게 말하면 초 역에서 가까워서), 오전 시간을 쓸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베를린 웰컴 패스로 무료 입장할 수 있는 시설 중 하나. 이런데 안 갈 이유가 없잖아!

 

 

 

...해서 호텔 체크아웃 때까지 시체놀이를 하고 싶었던 동행인을 설득,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고 동물원 구경에 나섰다.

 

그런데 입장 직후부터 뭔가 살짝 꼬이는 느낌을 받았다. 맹수관이 수리중이라는 거다.

 

아니 뭐니 뭐니 해도 동물원은 사자 호랑이 아닌가. 이래도 되는 건가 이거?

 

그래서 안내판이 인도하는대로, 아쉽지만 사자/호랑이를 볼 수 있는 실내 축사로 향했는데...

 

 

 

이 친구는 아마도 삵쾡이 종류인가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새끼 사자였던 것 같다.

 

매우 수줍음을 타서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가 없었다.

 

아무튼 야행성인 고양이과 동물인데 오전에 밖에 나와 있다는게 신기하다 싶더니...?

 

 

바로 옆 칸에 이 암사자 언니가 있었다.

 

 

거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꽤 가깝다.

 

 

사실 동물원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맹수 축사는 대개 관람 라인으로부터 동물이 꽤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고 그 동물들은 대개 - 특히 고양이과의 큰 맹수들은 - 축 늘어져 있는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 누나는 뭔가 아침부터 심사가 뒤틀린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엔 아마도 조반 시간인데 사육사가 늦잠을 자서 타이밍을 못 맟춘게 아닐까 싶다.

 

갑자기 으르렁 으르렁 어흥 사자후를 토해내기 시작한다.

 

 

이렇게 철창에 바로 코를 박고 어흥 하는데... 오줌 쌀뻔 했다.

 

이게 실내라 소리가 좀 울려 주는 효과도 있긴 했을텐데, 바로 저 약 2m 거리에서 라이브로 사자후를 들으니 그냥 오금이 저리고 도망가고 싶어지는 거였다. 금세라도 저 철창을 뜯어내고 내 내장을 파먹으러 뚸쳐나오실 것 같은 박력이 느껴지더란 얘기다. 사자후라는 말은 괜히 만들어 낸 게 아니었다.

 

아무튼 그만치 무시무시했다.

 

아 무서. 생각해 보면 지금도 오금이 저리다.

 

 

그리고 밖에 나오니 표범과 저 이름 모를 새의 조화가.

 

 

37만 제곱미터라고 하는데, 이렇게 도심 한 복판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아름다울 뿐이다.

 

물론 37만 제곱미터도 절대 작은 규모는 아니지만 사실 규모는 과천대공원이 훨씬 더 크다.

 

 

그리고 동물과 가까이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하려고 애쓴 흔적이 크다.

 

이를테면 기린 같은 경우엔 아예 맘 먹으면 슥 나올 수도 있을 정도.

 

 

그리고 가장 인상깊었던 하마관.

 

 

이런 식으로 물 반, 땅 반의 구조다. 물론 땅 쪽에선 봐도 별 게 없다.

 

 

다들 물 쪽에서 하마를 보고 있다.

 

 

사실 누가 봐도 그렇게 환영받을 생김새는 아닌데,

 

 

이 상황에선 다들 너무 반가워한다.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는 위풍당당

 

 

그리 날렵하진 않지만

 

 

 

어쨌든 물속 모습을 보여주니 다들 너무나 좋아한다.

 

 

 

하마인가 바다코끼리인가

 

 

아무튼 하마 안녕

 

 

그리고 개인적으로 대단히 애착을 갖고 있는 백곰을 보러 갔다.

 

 

애착의 이유를 묻지 말라고

 

 

아 씨원해

 

 

야 콜라 마셔

 

 

응 콜라 어디?

 

 

에잇 젠장

 

아무튼 매우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북극에서 이 정도 거리였다면... 그냥 점심이 되었겠지만.

 

 

그리고 또 매우 감명깊었던 늑대 축사

 

 

이렇게 먹이를 준다.

 

대략 봐도 소고기인 듯 한데 덩어리가 2kg 정도는 될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좋은 고기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쟤 먹이려면 비용이 장난 아닐 듯.

 

 

아무튼 적나라하게 먹어준다.

 

 

가깝긴 한데 얘도 가끔씩 고기 먹다가 고개 들어 쳐다보면 눈빛이 일반 개 종류는 아니다.

 

 

조금 떨어져서 사진.

 

 

그리고 바다사자관.

 

 

먹이 주고 할건 다 하는데 다른 동물원처럼 특별히 교육받은 애교나 쇼는 없다.

 

뭐 동물 스트레스 주지 않으려는 의도라면 그런가 보다 하고.

 

그런 거 보시려면 한국이나 일본 가세요.

 

 

아무튼 5일간 웰컴카드, 뮤지엄 패스 사서 잘 쓰고 다녔다.

 

베를린에선 꼭 필요합니다. 사 두세요.

 

아, 내가 태어나서 택시 이하론 타 본 적이 없어 하는 분들은 없어도 됩니다. 죄송.

 

 

베를린 공항 라운지. 규모는 프랑크푸르트가 훨씬 크지만 이쪽이 더 알차다.

 

음식도 맛나고.

 

 

유럽 대륙 내에서의 항공사 비즈니스석은 사실 좌석 편의성 면에선 아무 의미가 없다. 요즘 유행하는 풀 플랫, 그러니까 180도로 펴지는 좌석 절대 아니고, 다소 무시하듯 부르는 '우등고속형 좌석' 도 물론 아니다. 그냥 똑같은 이코노미 좌석이 3석 나란히 있으면 그 중 가운데 좌석을 비워 주는 것 정도가 비즈니스석의 현실이다.

(안 타본 사람은 잘 모름)

 

 

그래서 비즈니스석의 유일한 장점이라봐야 '라운지에서 술과 밥을 준다' 정도.  

 

 

독일답게 상당히 양질의 화이트 와인을 준다.

 

 

그렇게 해서 근 열흘간의 프라하/베를린 여행이 끝났다.

 

 

폴커 안녕. 다음에는 좀 더 자연과 도시가 만나는 지역으로 가 봐야겠다.

 

베를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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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의 5박이

 

첫날: 프라하에서 열차로 이동. 쉴러 극장에서 '파우스트의 겁벌' 관람.

2일: 베를린 가이드 투어 + 베를린오페라에서 발레 '백조의 호수' 관람.

3일: 베르그루엔+샤프 게르스텐베르크 미술관, 사진 박물관, 포츠다머플라츠

4일: 베를린 박물관 섬 + 자연사박물관 + 함부르크 역 미술관

5일: 쇼핑, 휴식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6일: 오전 베를린 동물원 + 오후 출국

 

박물관+미술관+공연장이 너무 비중이 큰 것 같긴 한데, 아무튼 게으르게 보낸 것 같지도 않은데 4일이 후루룩 가 버렸다.

 

전 같으면 베를린 중앙 공원이나 베를린 시민들의 휴식처라는 반제(Wannsee, See가 독일어로 호수)도 가보고 했겠지만 시내에서 가보고 싶은 곳들이 많아 거기까지 발을 뻗지 못했다. 좀 아쉽다.

 

 

그리고 뭣보다 이런 문화행사의 수준과 규모가 남다른 도시라 기왕 간 김에 공연을 보지 않기도 어려웠다.

 

한여름이었으면 어떻게 해서든 발트뷔네 콘서트를 가 봤겠지만 지금은 6월초.

 

 

느즈막히 일이나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최고의 쇼핑 스팟이라는 카데베에 입성했다.

 

 

카데베의 텍스 리펀드 시스템. 그리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시스템은 잘 되어 있다.

 

아무튼 요약하면 백화점에서 먼저 돈으로 다 받고, 공항에서는 등록만 하는 것이 제일 낫다.

 

아무튼 백화점 전문가인 마나님의 말씀으론 '한국 백화점이 훨씬 화려한 것 같다'고.

 

 

그런데 카데베의 놀라운 점은 꼭대기 층과 그 아래층의 식당가에 있었다.

 

카데베 탑 플로어 레스토랑의 위용.

 

맨 윗 사진을 보면 건물 꼭대기층의 오른쪽에 이런 아치가 보인다.

 

그걸 안에서 보면 이런 장관이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 거대한 카페테리아 + 부페식 레스토랑이 있다.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이 깔려 있고, 중간 중간에 즉석 요리 코너가 있다. 스테이크부터 바베큐까지 다양하다.

 

집은 요리 만큼 마지막 계산대에서 지불하게 되어 있어 합리적이다.

 

똑같이 돈 내는 부페보다 훨씬 합리적이다.

 

 

등심 스테이크, 구운 야채와 파스타, 프레시 샐러드, 견과류 수프까지 10만원 안짝.

 

(Schwein이란 깃발이 왜 꽂혀 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소고기다^^)

 

 

전망도 그만, 음식의 맛도 그만.

 

꼭 가보시기를 강추한다.

 

 

꼭대기층에 저런 대형 레스토랑이 있고, 바로 아래층에는 소규모 식당가가 있는데 가격은 이 한 층 아래가 더 비싸다.

 

저 작은 한 집 한 집이 꽤 유명한 레스토랑의 분점이라는 얘기.

 

어쨌든 쇼핑을 마치고(...많이 샀다), 배불리 먹고 베를린 필하모닉 홀로 향했다.

 

 

호텔에서 주요 관광지로 가는 200번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중간에 베를린 필하모닉 홀 정류장이 있다.

 

그래서 이 노란 건물을 자주 보긴 했지만 드디어 오늘, 들어가는 날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하는 공연을 본다는 건 어떤 사람에겐 대단한 일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다.

 

캄프 누 에서 축구 경기를 본다든가, 부도칸 에 가서 라이브 공연을 본다든가 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터.

 

아무튼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몇 차례 공을 들였다.

 

일정을 한번 바꾸는 바람에 처음에 예매했던 리카르도 무티의 공연은 공으로 날릴 뻔 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티켓 환불 따위 해 주지 않는다. 결국 그 공연은 절반 이하의 가격에 누군가 횡재를 했다.ㅜㅜ)

 

처음부터 꼭 사이먼 래틀의 공연을 보려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일정에 맞추다 보니 구스타보 두다멜과 인연이 닿았다.

(2018.6.8, 6.9)

 

https://www.digitalconcerthall.com/ko/concert/23517

 

 

이때가 2017년 2월. 결국 3월초쯤 이 공연도 매진됐다.

 

베를린 여행을 계획하신 분들이라면 일정을 잡자 마자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 예매를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국내에서 40~60만원씩 하는 티켓을 10만원 내외로 살 수 있다. 물론 매진되기 전에 손이 닿아야 가능하다.

 

아, 베를린에 온 김에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이나 한번 보고 가면 어떨까, 했을 때 늘 좌석이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 두시길.

 

(만약 그랬다면 당신은 매우 운이 좋았던 셈이다. 하긴, 에베레스트도 날씨만 좋으면 운동화 신고 정상 등반에 성공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정문 후문의 공식적인 구분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버스 정류장 반대편인 이 출입구가 약간 후문의 느낌이 난다.

 

멀리서 봐도 그렇고, 가까이서 봐도 그렇고, 이 건물은 이제 오랜 세월 베를린의 상징처럼 여겨져서 자연스럽게 느껴질 뿐이지 처음 건설될 때에는 꽤 말이 많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딘가 가건물 내지는 창고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건물을 설계한 베른하르트 한스 헨리 샤로운 Bernhard Hans Henry Scharoun 님의 구상이었던 것 같은데, 이 양반의 작품들은 대개 다 그냥 상자곽같은 느낌을 준다. 그나마 이 건물은 뭔가 임팩트를 준 덕분(?)인지 서커스 텐트같은 느낌이 들어서 '카라얀의 서커스 Zirkus Karajani' 라고 불린다고 한다.

 

 

해가 긴 베를린. 후문쪽으로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고 있다.

 

 

 

여기까지 왔는데 당연히 인증샷.

 

 

정류장 이름은 그냥 단순하게 'Philhamonie'다. 베를린 필하모닉이니 뭐니 설명이 필요없다는 뜻.

 

1887년, 베를린 필하모닉은 통일 독일의 융성한 기운을 배경으로 태어났다. 17세기, 30년 전쟁의 여파로 신성로마제국이 사실상 해체된 이후 독일은 50여개의 자잘한 나라들로 해체됐다. 표면적으로는 제후국이었지만 사실상 각각의 나라들은 모두 독립국이었고, 19세기까지도 느슨한 상태의 '독일 연방'이 있었을 뿐 하나의 독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1871년,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는 프랑스와의 전쟁('정치적 후광의 대명사' 나폴레옹 3세가 상대였다)에서 승리한 뒤 독일의 통일을 선언했다.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함에 따라 신성로마제국 이후 중부 유럽의 정치적 중심지는 빈에서 베를린으로 이동한다.

 

역사적으로 크게 주목받은 적이 없는 북부 독일의 도시, 일개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에서 전 통일 독일의 수도로 거듭난 '신 수도' 베를린은 새로운 문물의 도움으로 당시 세계 최첨단의 도시로 탈바꿈한다. 당시 세계 문명의 최첨단 기술은 바로 전기였다. 베를린은 전기 활용에서 전 세계를 리드했다.

 

 

1879년, 독일 지멘스 사(지금도 건재한)가 최초로 상용 전철을 개통시킨 도시가 바로 베를린이었다. 이런 세련되고 멋진 신도시에는 거기 걸맞는 문화의 향기도 필요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베를린 필하모닉이 탄생했고, 초대 지휘자로 당대 최고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가 취임했다.

 

(한스 폰 뷜로는 브람스와 바그너의 대다수 작품을 초연한 '전문 지휘자의 시조'로도 유명하지만 바그너에게 아내를 빼앗긴 남자로도 유명하다. 문제의 여자는 리스트의 딸 코지마. 아마도 코지마가 바그너에게 가겠다고 한 뒤 뷜로는 스승인 리스트에게 찾아가 징징댔을 것 같고, 리스트는 뷜로에게 이런 식으로 얘기했을 것 같다.

"울지 말게. 원래 내 딸은 자네가 감당할 여자가 아니었어.")

 

 

20세기 들어 베를린 필하모닉은 2대 지휘자 아르투르 니키슈, 3대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에 의해 세계 최강의 자리를 점점 더 굳혀 간다. 물론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겪으면서 나치 부역 혐의의 망령이 이 오케스트라의 원죄처럼 드리우게도 되지만, 중론은 '음악이 뭔 죄냐' 쪽인 것 같다.

 

예술가에게도 정치적인 공정성, 혹은 도덕적/이성적 엄밀성을 요구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예술가는 그가 구현하는 미적 결과물의 가치에 와 개인의 도덕성을 구분해서 평가받아야 하는 존재인가. 이 질문은 아마도 먼 훗날까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지휘자로서 위대했던 푸르트벵글러 앞에서 인증샷.

 

이 바로 옆에 카라얀의 사진도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을 얘기하면서 카라얀을 건너 뛸 수는 없다. 단지 클래식 음악을 얘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20세기 인류 문명을 이야기 하면서 카라얀과 동급으로 거론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해 보면 그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끼게 된다. 피카소? 엘비스? MJ? 아인슈타인? 마틴 루터 킹? ...마하트마 간디?

 

워낙 유명한 양반이다 보니 그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그치지 않는다. 이미 정평이 난 인성 문제는 차치하고(답이 나와 있다), 정말로 정말로 그가 최고의 지휘자인가...하는 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많은 사람들의 소일거리가 되어 온 것 같다.

 

물론 감히 그런 논의에 끼어들 수준은 안 되는 것을 인정하고 얘기하면, 어쨌든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취향상 그보다 다른 지휘자를 더 좋아할 수는 있어도, 그를 무시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특히 그 말도 안 되는 레퍼토리의 폭을 보면 정말 그는 난 사람이다.

 

아울러 그분이 남겼다는 말씀들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말은 이거다. 

 

"당신은 오페라를 눈을 감고 보나?"  

 

 

어쨌든 베이브 루스가 뉴욕 시민들에게 양키 스타디움을 선사했듯 카라얀이 없었다면 이 콘서트홀은 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각별한 건물인데,

 

건물 안에서 받은 인상은 '참 이모저모로 각졌다'...는 것.

 

 

드디어 들어왔다.

 

대공연장은 2440석.

 

 

공연장 안으로 들어와도 문제의 각진 느낌, 혹은 2015년 이후 렉서스의 그릴 디자인 같은 느낌은 이어진다.

 

하긴 렉서스 디자인을 여기서 따온 것일 수도 있을 듯.

 

 

네. 이거 얘기였어요.

 

 

정면의 괜찮은 자리.

 

베를린에서 공연장에 3번 갔는데 세번 모두 관람객의 평균 연령이 60세는 되는 것 같았다.

 

(농담이 아니라 베를린 오페라의 경우엔 인터미션이 15분이라도 짧을 것 같았다. 관객들의 평균 이동 속도가...)

 

그나마 베를린 필하모닉은 꽤 젊은 편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1라운드 끝.

 

존 아담스의 '시티 누아르 City Noir' 라는 재즈 냄새가 짙은 곡을 연주했다.

 

곡이 끝났는데 아무도 박수를 칠 수가 없었다, 는 말로 감상을 대신하고자 한다.

 

(아마도 관계자 누군가가 박수를 치기 시작한 듯 하다.)

 

 

 

 

 

인터미션이 거의 30분쯤 되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들 뭔가 먹고, 마시고, 떠든다.

건물 1층 뿐만 아니라 꽤 넓은 이 안마당이 관객들로 가득 찬다.

 

이 시간이 매우 의미있게 느껴진다.

 

공연이 곧 시작이라는 직원들의 안내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두다멜의 성명절기인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다. 이번 여행의 앞부분인 프라하에서 드보르작의 묘소를 방문하고 오는 길이었다는 점에 의미를 더욱 더 부여하고 싶다.

 

아무튼 두다멜의 이 곡 연주는... 말해 뭘 할까, 박력 그 자체.

 

 

예술의 전당 같으면 어림없겠지만 두다멜의 앵콜 무대 때 거의 모든 관객이 일어서서 박수를 치며 사진을 찍는다.

 

이래도 되나 싶지만 베를린에 오면 베를린 법을 따라야 하는 법.

 

 

두다멜은 자신이 받은 꽃다발을 단원들에게 한송이씩 나눠주며 활짝 웃었다.

 

 

 

공연이 끝나도 하나도 급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

 

해가 지고 밤이 되니 제법 쌀쌀한데 다들 공연장 밖에 서서 웃고 떠들고... 버스가 와도 곧바로 타고들 갈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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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들른 곳은 나름 공룡 뼈 마니아(공룡 마니아 아니다)인 마나님의 요청에 따른 베를린 자연사 박물관.

 

 

 

멋지긴 한데 이 브라키오사우르스의 뼈는 어째 좀 진실성이 결여되어 보인다.

 

저 표본의 몇%가 진짜 뼈일지... 음...

 

 

아무튼 세계 어디를 가나 어린이들은 역시 공룡의 편.

 

그런데 자연사 박물관에서 다음 목표인 함부르크 역 미술관까지 가는데 동선이 좀 꼬였다.

 

가이드북 상으로는 두 포인트가 지척이라고 했으나,

 

도보로 약 30분 거리...

 

 

어쨌든 나타나기는 나타났다. 함부르크 역 Hamburg Bahnhof 미술관.

 

이름은 함부르크역이지만 현재의 베를린 메인 역이 나오기 전까지는 베를린의 메인 역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미술관이다.

 

오르세와 같은 팔자. 건물로서는 참 괜찮은 팔자라고 할 수 있겠다.

 

 

건물 밖은 한산한데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은,

 

 

그렇다. 누가 봐도 로버트 인디애나. 약간 뒤집었을 뿐이다.

 

 

안셀름 키퍼(Anselm Kiefer)의 'Folk Thing Zero'라는 작품이 문 앞을 지키고 있다.

 

인디애나만큼 유명한 작가는 아닌 듯 하지만 아무튼 인상적이다.

 

 

 

문을 들어서면 이런 비현실적인 사이즈가 기다리고 있다. 역시 기차역이었던 건물다운 포스.

 

그런데 여기서 정지 신호등이 켜졌다.

 

.

 

동행인의 에너지 소모가 심해 충전이 필요한 상황.

 

사라 뷔너(Sarah Wiener)라는, 아마도 사장님의 성함이 내걸린 미술관 내 레스토랑.

 

 

 

 

바나나가 들어간 얇은 팬케이크. 비싸지만 맛있다.

 

여기서 식사하면 60~70유로 정도 예상. 미술관 옆 레스토랑이 대부분 그렇듯 미니멀하고 천장 높은 분위기도 일품이다.

 

 

 

자, 본격적으로 관람 시작.

 

 

일단 1층 동쪽에 현대 미술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거장들의 작품을 한데 모아 놓았다.

 

'우리 이런 미술관야'라는 느낌의 화력시범이다.

 

 

로이 리히텐스타인의 '해변 마을 Coastal Village'를 시작으로,

 

 

 

 

전시 스타일도 시원시원.

 

 

로버트 로셴버그의 '마인 Mine'.

 

...광산 관련은 아니겠지.

 

 

 

로셴버그의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이 '뮬 사슴 Mule Deer'.

 

뮬 사슴은 그냥 사슴의 종류다. 거꾸로 매달린 의자가 사슴 머리 박제를 연상시키고, 그 아래는 거울이다.

 

보는 사람 자신을 볼 수 있게 한 설계.

 

 

 

그리고 싸이 톰블리를 넘어 저 멀리 보이는 저 작품은...

 

 

조셉 보이스의 'Das Kapital Raum'.

 

(다스 카피탈은 그 자본론 맞다.)

 

역시 조셉 보이스답게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 없다.  

 

궁금하신 분들은 해설을 보시기 바람.

 

 

 

아무튼 누가 봐도 앤디 워홀의 누가 봐도 마오 형님을 다시 보고 돌아나오면,

 

 

사이즈가 사람을 압도하는 메인 전시장.

 

그런데 이게 하나의 작품이라는거다.

 

 

이런 광활한 공간에 세 개의 데스크가 설치되어 있다.

 

관람각은 이 세 데스크를 거치며 데스크 직원의 응대를 받는다.

 

(데스크 직원의 머리 뒤에는 약간 공허할 수도 있는 목표 구호 따위가 쓰여 있다.)

 

 

데스크에서 설명을 들은 뒤에는 관람객도 무슨 서류에 서명을 하게 되어 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 잘 모르겠다.)

 

 

이 작품의 제목이다. 에이드라언 파이퍼, '개연성있는 신용 등록: 게임의 법칙 #1~3'

Adrian Piper, The Probable Trust Registry: The Rules of the Game #1~3

 

...음;; 2015 베니스 비엔날레 대상 수상작이라고.

 

뭔가 현대 사회의 지나친 합리성/공식성 추구에 대한 비판이라고 합니다만.

 

 

그 다음은 대규모 작가진이 참여하는 기획 전시.

 

 

 

댄 플래빈의 '무제'.

 

궁금한 것은 왼쪽의 조명이 작품에 포함된 요소일까, 이 건물에 포함된 요소일까 하는 것.

 

 

이 조명 얘기다.

 

 

흥미로운 요소. 이 전시를 보는 동안, 근세 노동자 복장을 한 인물이 전시장 안을 왔다갔다 한다.

 

처음에는 전시장 관리인인가 했는데 행동거지를 보면 전시의 일부다.

 

조셉 보이스의 Unschlitt/Tallow.

 

 

그밖의 상설 전시에는 George & Gilbert를 비롯해 상당히 흥미로운 전시품이 많있다.

 

 

 

물론 가장 큰 볼거리는 미술관 그 자체.

 

 

 

온 카와라 On Kawara의 I got up.

 

 

그리고 이 미술관이 미는 아티스트인 듯한 한네 다르보벤 Hanne Darboven의 Menschen Und Landschaften.

 

 

직역하면 '인간들과 풍경' 이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룬 대작(?).

 

 

허위허위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긴 베를린의 햇살도 저물어 가고 있다.

 

살짝 어두워지니 건물의 조명이 더 빛을 발한다.

 

 

나오다 보니 예사롭지 않은 나무 장식이 눈길을 끈다.

 

 

 

고된 하루를 보낸 뒤끝으로 호텔로 돌아와 기절.

 

 

그리고 비상용으로 아껴 뒀던 호텔 바로 옆 그리스 식당에서 수블라키를 먹었다.

 

수블라키는 언제나 옳다. 감탄할 만한 맛.

 

 

베를린에서 5박인데 5박이 하루 같다.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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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섬의 박물관들 가운데 가장 사진발이 잘 받는 곳을 꼽자면 아무래도 구 국립미술관 Alte Nationalgalerie 일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파란 하늘 아래 있으면 자못 멋지다.

 

 

 

독일어 한 마디도 못하지만 Alte는 old, Neue는 new다. 따라서 Alte가 있으면 Neue가 있다.

 

(예를 들어 뮌헨에도 Alte Pinakothek 과 Neue Pinakothek이 나란히 있다.)

 

물론 어디까지가 Alte고 어디부터 Neue 일까는 그때 그때 다를 수밖에 없지만 대략 20세기 이전이냐, 이후냐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 베를린의 구 국립미술관도 19세기 후반, 살짝 넘쳐 봐야 20세기 초반까지의 독일 화가들이 남긴 작품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베를린의 신 국립미술관, 즉 Neue Nationalgalerie 은 언젠가부터 수리에 들어가 아직 폐쇄되어 있었다. 언제 다시 개장할지는 모르겠다. 물론 파울 클레나 막스 에른스트 등 20세기 전반 베를린을 빛나게 했던 작가들의 작품은 좀 더 작은 국립미술관 - 앞에 방문기를 썼던 두 미술관도 규모가 크지 않아 그렇지 당당한 Nationalgalerie다 - 에서 꽤 많이 보았으므로 크게 아쉽지는 않다.)

 

어쨌든 지금 온 곳은 Alte 니까 19세기 이전 독일 화가들의 작품을 주로 소장하고 있다.

 

 

 

내부도 뭔가 부티가 풀풀.

 

 

언젠가부터 유럽 미술관에 들어가 보면 이런 어린이들을 찍게 된다.

 

테이트 모던, 프라도, 알테 피나코텍, 어디나 이렇게 엎어져 그림을 그리는 어린이들이 있었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오크가 있는 수도원'. .

 

프리드리히라면 누구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생각하겠지만 그 그림은 함부르크에 있다.

 

 

이 박물관의 스타는 아르놀트 뵈클린 Arnold Boecklin. 그의 45세 때 자화상이다.

 

(독일 상징주의의 대표 화가 중 한명이지만 사실은 스위스 출신이다)

 

자신의 어깨 뒤에서 사신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광경을 그리다니. 악취미긴 한데,

 

 

세기말의 냄새가 물씬 나는 이런 '십자가 아래에서의 눈물' 같은 그림이 그의 작품이다.

 

 

그리고 수없이 패러디된 그의 대표작. '죽음의 섬'.

 

딱 봐도 음산하고 무섭다. 2차원의 그림인데 3D 효과도 너무나 선명하다.

 

 

자세히 보니 절벽에 AB 라는 그의 이니셜이 써 있다.

 

 

그리 큰 그림이 아닌데도 을씨년스러움이 온 전시실을 휘감는다.

 

 

역시 인기다.

 

 

'Ocean Breaker (The Sound)' 라는 제목인데, 오딧세우스 신화의 키르케를 묘사한 것일까?

 

 

 

그런데 미술관의 전시 상태에 좀 불만이 있다.

 

그림에 바로 자연광이 떨어지는 환경이라 반사가 심하다. 그 탓에 그림의 세부를 보기가 쉽지 않아 아쉬웠다.

 

아니 세계적인 미술관이 왜 이래.

 

 

그리고 지나는 길에 이건 누가 봐도 오노레 도미에의 누가 봐도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

 

 

 

갑자기 이 형님은 여기 왜 계신지.

 

 

그리고 독일에도 인상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막스 리베르만 Max Liebermann의 '정원의 벤치'

 

 

중간의 테라스에서 베를린 돔이 보인다.

 

3층과 2층에서는 사실 뵈클린과 프리드리히 외에 큰 관심 가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았다(개취).

 

내 생각에는 1층에 있는 20세기 초 독일 화가들의 컬렉션이 아무래도 이 미술관의 진수가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프란츠 폰 슈투크 Franz von Stuck의 '죄악'.

 

 

 

여인의 얼굴과 뱀의 표정에서 사악함이 뭉클뭉클.

 

 

'키르케를 연기하는 Tilla Durieux' 라는 제목. 역시 비슷한 느낌이다.

 

틸라 두리유(?)는 당대의 유명한 여배우라고.

 

 

 

이런 사악한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슈투크는 이렇게 생겼다.

 

어째 그럴 것 같은 얼굴이다.

 

 

역시 슈투크의 작품인 '폰(Faun)과 인어'. 그런데 인어가 왜 하체가 갈라지는거야. ;;

 

혹시 인어 스타킹?

 

 

그러고 보니 이 전시실의 이름은 분리파(Secessionen)/ 세기말(Jahrhundertwende).

 

프랑스에서 기성 화단에 반항해 일어난 것이 인상파라면 좀 늦은 독일에선 분리파가 기성 화단을 부정하고 일어섰다.

 

슈투크 등의 화가들이 뮌헨에서 일어난데 이어 빈에서는 클림트가 그 깃발을 이어받은 셈이다. 

 

물론 분리파는 사조의 이름은 아니다. 다만 슈투크와 클림트는 상징주의의 화풍에서 공통점이 있는 셈이다.

 

 

토마스 데오도르 하이네의 '악마'.

 

 

이 전시실의 분위기와 딱 맞는다.

 

 

막스 클링거의 '조개껍질을 탄 비너스'

 

 

프레디 머큐리를 연상시켜서 담았다. 아르투르 캄프 Arthur Kampf의 '연기자' (광대?)

 

물론 전통적으로 베를린을 대표하는 화가는 이들보다는 아돌프 멘젤 Adolph Menzel 이다.

 

프로이센 왕국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이런 우아한 궁정 그림이 멘젤의 대표적인 화풍인데,

 

여기 전시된 다른 그림들을 보면 꼭 그렇게 우아한 것만을 고집한 사람은 아니다.

 

 

 

뭔가 격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 그림은,

 

 

제목이 '프라하의 유태인 묘지 Judenfriedhof in Prag.

 

움베르토 에코의 '프라하의 묘지'가 생각나는 그림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기심.

 

 

이렇게 해서 박물관 섬의 다섯개 박물관 가운데 세 개를 기를 쓰고 돌아봤다. 꽤나 힘들다.

(3개를 가든 5개를 가든 입장료는 모두 베를린 뮤지엄 패스로 해결된다. 꼭 사라.)

 

베를린 구 박물관과 보데 박물관까지는 여력이 미치지 않아 그대로 패스. 구 박물관은 그리스/로마 시대 조각이 많다고 하고, 보데 박물관은 중세 기독교 관련 유물이 많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무리일 것 같아 나름 순위를 매겨 상위 3개를 돌아봤다.

 

미안해요. 건물 외관 예쁜 보데 박물관. 그리고 정면 멋진 구 박물관.

(하지만 다음에 와도 들르겠다는 말은 못하겠어요. ;;)

 

아직 가 볼 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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