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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스타의 나무'를 클로즈업해서 찍어봤다.

 

사실 이 나무가 뭐 대단하다고 눈길을 운전해서 찾아가 사진을 찍는지 이해 못 하실 분도 많을 거다.

 

 

그런데 이 정적 속에 하얀 눈밭을 배경으로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보다 보면 왠지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그드라실을 연상하기엔 아주 작은 나무 한그루지만 존경하는 마음이 솟아나는 거다.

 

그런데 이런 나무들을 허허벌판에서 무슨 수로 찾아 사진을 찍는지 궁금하신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지난번에 올린 '켄과 메리의 나무', 그리고 오늘올린 '세븐스타의 나무' 모두 구글맵에 실린 고급 관광지다.^^

 

그리고 네비게이션에서 그걸 어떻게 찾나 걱정하시는 분들, 일본 네비게이션은 세 가지 방법을 이용한다. 전화번호, 주소, 그리고 네비게이션 용 코드(숫자)다. 비에이의 모든 숙박업소나 안내소에서는 이 관광지(나무)들의 네비게이션 코드가 적혀 있는 지도를 뿌리고 있다. 그러니 저 나무들을 어떻게 찾나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

 

물론 반대로, "비에이 어차피 넓어 봐야 손바닥 만한데 돌아다니다 보면 다 나오겠지" 하고 별 준비없이 다니는 분도 있다고 하는데, 그걸로는 큰일난다. 그 지형이 그 지형이고 더구나 눈까지 쌓이면 방금 지나온 길도 그 길 맞나 싶다. 그러니 반드시 지도와 네비게이션을 활용해야 한다. (물론 버스나 택시 투어를 하시는 분들은 이런 걱정 뚝. 기사님들이 알아서 한다.)

 

아무튼 료칸을 나서 5군데의 스팟을 도는데 거리는 약 43km에 불과하지만 구글맵의 예상 소요시간은 1시간. 그만치 속도 내기가 힘든 길들이다. 그러니... 오만은 금물.

 

 

컬러지만 흑백 사진의 느낌.

 

구글로 'seven star tree'를 검색해 보면 저 나무 하나를 찍은 오만장의 사진이 나온다. 똑같은 나무를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다른 각도에서 제각기 찍어 올린다. 세븐 스타의 나무라고 이름이 붙은 이유는 담배 '세븐 스타'의 광고 모델이 됐던 나무이기 때문인데, 그 많은 사진들 중 어떤 것이 실제로 광고에 쓰였던 오리지널 사진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잘 생긴 나무다.

 

 

 

그리고 이것이 오야코나무.

 

세 그루의 나무가 지평산에 보이는데 두 개의 큰 나무 사이로 하나의 여리여리한 나무가 서 있다. 다른 사진들을 보면 가운데 나무는 거의 묘목 분위기인데, 직접 찍어 보니 가운데 나무도 꽤 자랐다.^^ (세월의 흐름!)

 

언젠가는 가운데 나무가 더 키 큰 나무가 되어 있을지도.

 

 

그러는 사이 다시 함박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눈길을 헤치고 도착한 마일드세븐의 언덕. 이것도 역시 담배 마일드 세븐 광고에 출연해 유명해진 나무들이다.

 

파란 하늘을 기대했지만 흐린 하늘이 오히려 더 환상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세 그루의 나무도 멋지지만 사실 여기선 조연이다.

 

엄청난 악천후인데도 꽤 손님이 보인다.

 

 

유명한 나무임을 증명하는 비석(?)

 

 

저 나무들을 어떻게 담아 볼까 고민이 시작된다.

 

 

이렇게 한 절반 정도만...?

 

 

하늘과 눈밭을 절반 비율로...?

 

 

왠지 이 정도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래. 꽉 채운 것 보다는 절반이 좋다.

 

 

이런 사진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데, 찍고 보니 내 사진도 마음에 든다.

 

뭐 언젠가는 이런 모습도 볼 수 있겠지.^^

 

 

사실 저렇게 생긴 방풍림은 이 비에이 근처에 매우 흔하다.

 

단지 주변 언덕과 하늘과 그 조화를 이모저모로 따져서 그 일군이 선택된 것 뿐.

 

 

아무튼 행인을 만난 기념으로 사진을 부탁해본다.

 

자, 시즌이 시즌이니만큼 크리스마스 트리 나무가 있는 곳으로.

 

 

다들 나무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렇게 정확하게 화살표 모양으로 생긴 나무는 참 보기 힘들다. 그런데 저기 그런 나무가 있다.

 

잘 다듬어서 저렇게 된 거 아니냐고? 솔직히 모른다. 아무튼 아는 건 잘 생겼다는 것 뿐.

 

고쳐서 저렇게 됐건, 기적처럼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저렇게 됐건,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마침 근처에 있던 잘 생긴 피사체끼리 한 화면에 모아 봤다.

 

 

사실 이렇게만 보면 정말 크기기 짐작되지 않는다. 그냥 모형같기도 하고...

 

 

뭐 이렇게 봐도 마찬가지긴 한데, 아무튼 꽤 큰 나무다. 그리고 비현실적이었다.

 

물론 현장에 가 보신 분은 알겠지만 주변에 전깃줄도 있고, 건너편에 무슨 창고 같은 것도 있고 그렇다. 그래서 저렇게 곱게만 찍는 데에는 꽤 수고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아름다움은 그냥 그대로 지켜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크리스마스 나무의 교훈대로 앞으로도 잘 가꾸려 한다. (응?)

 

그리고 다시 차를 달려 시키사이 언덕으로 가본다.

 

 

2012년 여름에 왔던 시키사이 언덕은 이렇게 원색의 꽃들이 만발한 아름다운 언덕이었는데,

 

 

사실 겨울에 와 보니 아무것도 없다. 지금까지 본 겨울 풍경만 못하다.

 

 

그래도 왔으니 사진 한 장.

 

이렇게 해서 비에이 주변의 꽤 유명하다는 스팟들을 돌아봤다. 소요시간은 약 2시간 정도. 내려서 사진 찍고 다시 출발하고 하는 식으로 했는데도 이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날씨 때문에라도 내려서 그리 오랜 시간을 한군데 머물 수 없었다. 아무튼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으므로 만족도는 매우 높다. 한번 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차를 달려 일단 후라노로.

 

 

후라노 가는 길로 접어드니 어느새 파란 하늘이 고개를 내민다. 야속하기도 하다.

 

 

후라노 뒷산은 스키 리조트.

 

본래 후라노에 들어서면 唯我独尊(유이가도쿠손) 이라는 유명한 오믈렛카레집을 가려 했는데

 

 

...휴일이다. (사진은 유이가도쿠손 옆의 도나리노도쿠손이라는 계열 빵집)

 

 

그래서 온통 거리가 눈빛으로 반짝이는 후라노 시내를 달려,

 

 

그 집 못지않게 유명하다는 마사야를 갔다.

 

오무카레(오믈렛 커리)를 시켰는데,

 

 

배가 너무 고팠다. 아, 먹기 전에 찍을 걸...

 

그리고 다시 차를 달려 삿포로 시내로 진입해 렌트카를 반납하니...

 

 

해가 저물었다.

 

 

그럼 삿포로의 겨울 밤을 장식하는 화이또 이루미네이숑 (최대한 현지 발음을 살림)을 봐야지

 

 

오랜만에 사람 많은 데 오니 좀 이상하다 ㅎ

 

 

그런데 한 20년 전에도 느꼈지만, 이 화이또 이루미네이숑은 사진이 제일 예쁘다.

 

실제로 보면 절대 이렇게 예쁘지 않다.

 

그리고 얼음이 조명 때문에 녹았다가 다시 얼기 때문에 엄청나게 미끄럽다. 조심해야 한다.

 

 

저 멀리 삿포로 TV타워가 보이고,

 

 

TV 타워 바로 앞에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들어가 본다.

 

 

먹을 건 꽤 많은데 살 물건은 사실 없다.

 

 

제일 맛나게 보였던 통닭.

 

응? 근데 좌상단에... 수거구(收据口)라고 쓰고 RECEIPT MOUTH...?

 

한글로는 수취 입?

 

여러분 한국만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뭔가 조명이 지나쳤는지 그림처럼 찍힌 광경.

 

 

그래도 높은 곳에 오면 일단 올라가라고 배웠다.

 

사진에 밝게 보이는 곳에 라운지가 있다. 심지어 커피값도 한국돈 5000원 정도.

 

한국같으면 만원은 받았을 것 같다.

 

라운지에 자리 잡고 앉아 방금 지나온 오오토리 공원 방향을 찍었다.

 

비행접시 아니다. 미안하다.

 

 

이렇게 해서 4박5일간의 혹한기 일본 운전 훈련을 마쳤다(다녀와서 2주간 몸살).

 

 

 

4박5일 동안 달린 코스가 대략 이런 그림으로 나온다. 810km 정도의 거리로, 구글맵 예상 주행 시간은 12시간30분 정도 된다. 물론 동쪽에서 서쪽으로 돌아갈 때 길 잘못 들어 헤멘 거리, 비에이에서 돌아다닌 거리, 기타 등등의 자질구레한 주행을 합하면 900km 정도 될 것 같다. 이렇게 보면 하루 200km도 안 달린 셈이지만, 눈길인데다 낯선 객지라는 이유만으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운전자 피로는 상당히 심하다. (특히 조금이라도 빨리 달려 보려고 애쓸수록 피로는 가중된다. 게다가 그런다고 예상소요시간보다 빨리 도착하지도 않는다. 홋카이도의 신비?)  

 

핵심적인 교훈을 정리하면

 

1. 같이 가는 사람과 마음이 잘 맞아야 한다. 차내에서 꽤 긴 시간을 보내는데 거기서 투닥거리면 여행은 악몽.

 

2. 일정에 욕심을 내지 말자. 충분히 숙달된 운전자로 수시 교체가 가능하다면 더 달려도 되겠지만, 혼자 운전하는 경우 하루 주행거리는 200km 미만으로 하는 것이 여러 모로 좋을 것 같다.  (물론 각자의 체력에 따라. 혼자 운전해 본 사람으로선 하루 200km도 길었다.)

 

3. 운전 시간을 줄이려 조바심을 내 봐야 아무 소용 없다. 결국은 네비게이션이 예언한 시간만큼 걸린다.

 

4. 사진 욕심은 내면 낼수록 좋다. 특히 사진에 담지 못한 웅대한 자연 풍경이 너무 많아 아쉽다.

 

5. 료칸은 당연히 좋지만 매일 료칸 숙박을 하는 것도 지친다. 가이세키도 매일 먹으면 지겹다.

 

6. 어쨌든 홋카이도의 진짜 매력은 도시 밖에 있다. 과감하게 도시로 나가라. YOU CAN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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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온 다음날, 료칸 모리노료테이 비에이 森の旅亭びえい 의 아침.

 

 

독채 방에서 나와 아침 먹으러 가는 길이 찬탄을 자아낸다. 아름답다.

 

 

 

가져다 대면 전부 그림.

 

 

창문 하나 하나도 모두 사진 액자처럼 보이게 신경을 기울인 태가 역력하다.

 

 

그 많이 보시던 그 일본식 조식.

 

 

안 예쁜 각도가 없다.

 

 

라비스타 아칸가와도 그랬지만, 모리노료테이도 지형 때문에 전경을 찍기가 힘들다.

 

 

그리고 못다 푼 온천의 한을 다시 한번 풀어보리라

 

 

담가도 담가도 풀리지 않는 온천욕망.

 

전생에 온천 못하고 쓰러져 죽은 귀신이었나보다.

 

파란 하늘과 고드름. 겨울 온천을 그리는 자들의 로망 그 자체.

 

그런데,

 

 

홋카이도 날씨는 귀신도 모른다더니, 막상 길을 나서는데 어느새 해가 숨바꼭질을 한다.

 

 

온통 사방에 눈. 일단 료칸을 나서자마자 인근에 있는 '흰수염폭포'를 찾아간다.

 

시라히게 폭포(しらひげの滝) 말이다. 

 

 

모리노료테이를 나와 한 100미터쯤 내리막을 걸어 내려오면 이런 철교를 만난다.

 

 

철교 왼쪽을 바라보면 이런 한겨울의 예쁜 경치가,

 

 

그리고 오른 쪽 아래에는 요런 자그마한 폭포가 있다.

 

 

사진으로만 봐서는 규모를 알 수 없고 얼핏 웅대한 폭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높이가 5m 정도인 미니 폭포. 규모는 '애개' 할 정도지만, 아래를 흐르는 물 색깔과 함께 조형미는 기가 막히다. 덩치가 컸더라면 세계적인 경승이 될 뻔 했다. 

 

 

그 시간에도 해 쪽은 이런데

 

 

반대쪽은 아직 파란 하늘.

 

파란 하늘 아래 하얀 눈의 로망이 뭉클뭉클.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비에이의 잘생긴, 눈밭에서 더욱 잘생겨 보이는 나무들을 찍으러 간다.

 

후라노와 비에이를 가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여름의 비이에는 패치워크(patchwork)라고 불릴 정도로 알록달록 다양한 꽃들이 피어나는 벌판이 매력을 뽐내는 곳이다. 하지만 여름 못지 않게, 겨울에도 이 벌판은 매혹적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예를 들면 이런 나무. '켄과 메리의 나무'라고 불리는 나무다.

 

별 것 아닌 그냥 나무 한 그루지만 회색빛 하늘을 배경으로 눈밭 한 가운데 이 나무 혼자 서 있는 걸 보면 어쩐지 가슴이 싸해진다.

 

비에이 역을 중심으로 대략 10km 사방에는 이런 경치를 볼 수 있는 포인트들이 흩어져 있다.

 

특히나 주변에 인가나 행인이 거의 보이지 않는, 어쩐지 쓸쓸한 풍경이 비에이의 마력이다.

 

 

그런데 이런 풍경들을 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렌터카가 필수. 물론 비에이에 내려서 12시간 기준으로 단기 렌트를 하는 방법도 있고, 택시를 대절해서 다니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앞에서도 얘기했다시피, 홋카이도라는 곳 자체가 '나만의 발'을 갖지 않고서는 제대로 보기 힘든 곳이다.

 

그러니 홋카이도 여행 레벨 1으로 삿포로-오타루-노보리베츠-팜 도미타를 돌고 말 게 아니라면, 아무리 봐도 렌트는 필수다.

 

(여름에는 비에이를 중심으로 자전거 투어를 하는 분들도 있다고 하는데 글쎄, 그 자체도 엄청난 체력을 필요로 하겠지만 특히나 겨울에는 무리라고 본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미끄러워서 위험하기 짝이 없다.)

 

 

 

하늘이 파랬다면 더 좋았을 것 같기도 하지만, 흐린 하늘은 흐린 하늘대로 또 매력이 있다.

 

그런 파란 하늘을 보기 위해 며칠씩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그렇게 작심한대로 차를 몰고 료칸을 출발.

 

오늘(4일째)의 목표는 료칸을 떠나 비에이의 포토제닉한 명소들을 몇군데 돌아 본 뒤 후라노를 거쳐 삿포로까지 가는 거다.

 

일단 이 구간에는 산길이나 험지가 없어 느긋한 마음으로 출발한다.

 

 

이미 오전의 파란 하늘은 사라지고 눈발이 날렸다 사라졌다 하는 날씨.

 

그런데 저 구름 너머로 햇살이 비치는 날씨가 어찌 보면 눈밭을 더 신비롭게 보이게 한다.

 

 

 

그리고 한 30분을 이렇게 달려도 다른 차를 만날 수가 없다. 이게 바로 비에이의 가장 큰 매력.

 

 

켄과 메리의 나무를 지나 한참을 달리면 '세븐 스타 나무'가 나온다.

 

비에이의 명소들을 골라 다니는 관광버스가 저 멀리 서 있다. 

 

 

이렇게 해서 본격적인 비에이 나무 투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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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 출발은 참 창대했다.

 

사실 저런 하늘 아래서 아무도 없는 길을 달린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 아님?

 

 

셋째날의 코스는 지도 오른쪽 라비스타 아칸가와 호텔에서 오른쪽 빨간 표시, 즉 모리노료테이 비에이 료칸까지다.

 

대략 240~260km, 4시간에서 4시간 30분 정도의 거리라고 보여진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좀 코웃음을 쳤다. 240km에 4시간이면 누가 봐도 시삭 60km 아닌가.

 

누가 60을 지켜, 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좀 오산이었다.

 

아무튼 달리는 길엔 처음엔 햇살도 좋고,

 

 

그런데 길이 슬슬 이렇게 되더니,

 

 

잠시후 결국은 이렇게 됐다.

 

가는 동안에도 눈이 펑펑. 그런데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제설차가 신속하게 현장으로 출동한다.

 

 

그리고 이날의 끝은 결국 이런 것.... ㅜㅜ

 

뭐 조난의 느낌이었다.

 

아무튼 이건 한참 나중, 해진 뒤의 일이고...

 

아침부터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던 우리는 뒤늦게 새로운 사실을 확인했다.

 

홋카이도 고속도로엔 간혹 휴게소가 있다 해도 한국 같은 식당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

 

허기도 허기인데다 차도 배를 채워야 했다.

 

그래서 토카치시미즈(十勝淸水)에서 잠시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지나가다가 '소바'라는 큰 간판을 보고 들어간 집.

 

이름은 메분료(目分料, めぶんりょう), 주소는 다음과 같다.

 

〒089-0113 北海道上川郡清水町南5条3丁目1

 

 

 

이 집의 대표는 오리탕에 간장을 섞은 오리 장국에 찍어먹는 소바였다. 맛있었다.

 

위쪽의 쯔유도 그리 진한 맛은 아닌데 아무튼 소바인들이 찾아가도 후회는 없을 거라고 생각.

 

어쨌든 나중에 알고 보니 미슐랭가이드2017의 미슐랭플레이트에 선정된 집이라고! (으쓱)

 

 

그러나 그 뒤로 다시는 저런 여유를 부리지 못하고, 심지어 고속도로 분기점을 지나치는(!) 참사...

(2차선인 홋카이도 고속도로는 한번 지나치면 한시간은 더 달려야 돌리는 길이 나옴)

 

그리고 그걸 좀 만회해 보겠다고 중간 산길로 빠져나왔다가 정말 한 2시간 동안 다른 차를 하나도 만나지 않는 산길을 실컷 달렸다. 나중엔 정말 무서울 정도.

 

그 덕분에 진정한 설산의 비경을 여러번 봤지만 내려서 사진을 찍을 만한 여유도 부리지 못하고 ㅠㅠ

 

그렇게 해서 후라노를 지나 비에이 지역으로 접어들었으니, 꼭 보고 가야 할 것이 있었다.

 

 

바로 비에이 지역의 경승 중 하나로 유명한 아오이이케(青い池).

 

〒071-0235 北海道上川郡美瑛町白金

 

천연호수는 아니고 인공호수지만, 저 푸른 물빛으로 유명한 곳이다.

 

당연히 겨울에는 저 물도 어는데, 그 얼어붙은 수면을 이용한 조명 쇼가 겨울용 특선 상품.

 

아칸호에서 출발한지 약 7시간만에 아오이이케에 도착, 거의 조명 쇼 시간에 딱 맞출 수 있었다.

 

(이게 어쩌면 행운이랄까? 한 30분 먼저 도착했으면 료칸에서 눈길을 뚫고 다시 나오기 귀찮아서 못 봤을 수도 있다.)

 

 

 

 

사진상으로는 꽤 밝게 나오지만 실제로는 이렇지 않다.

(RX 100 시리즈의 왜곡. 사진은 나오지만 흔들리기 쉽다.)

 

 

왼쪽에서 이렇게 조명을 때리고 있고, 그 조명 아래에 제법 많은 사람이 조명 색이 바뀔 때마다 탄성을.

 

 

눈은 끝없이 쏟아진다.

 

 

 

뒤쪽에서 보면 이렇다.

 

서울에서 1년치 맞을 눈을 하루에 다 맞은 듯.

 

볼만큼 봤으니 철수.

 

 

BLUE FOND라고 써 있는 아오이이케에서 모리노료테이는 3.4KM, 정상적으로 5분 이내 거리다.

 

하지만 폭설 속에서 이 3.4KM는 정말 30KM같은 위력을 발휘했다.

 

심지어 간판이 하나도 안 보여서 지나칠 뻔했다.

 

 

아무튼 천신만고끝에 도착한 모리노료테이.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이미 꽤 알려진 곳이다.

 

 

 

이곳의 특징은 거의 모든 객실이 별채처럼 되어 있고, 개별 노천탕이 딸려 있다는 점.

 

 

 

 

이것이 바로 개별노천탕이다.

 

즉 객실마다 탕이 딸려 있다는 것인데... 방마다 독탕이 딸려 있는 것과 모든 손님이 함께 사용하는 대욕장만 있는 것의 차이는,

 

뭐랄까 화장실이 딸린 방과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방의 차이 정도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큰 차이다.

 

 

그리고 이렇게 욕탕에서 눈이 쌓인 바깥 숲을 바로 바라볼 수 있다는 건 이만저만한 메리트가 아니다.

 

대부분의 노천탕들이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사실상 하늘만 겨우 볼 수 있게 해놓은 데 비하면 엄청난 개방감이다.

 

 

젠사이

 

 

스이모노

 

 

오쓰구리

 

 

음...니모노? 전복찜.

 

 

야키모노? ;;

 

 

요우자라? ^^ 로스트비프가 나왔다.

 

아게모노!

 

갑자기 왜...? ;;

 

 

도메자카나

 

미즈가시. 샤베트를 얹은 푸딩.

 

플레이팅이며 격식은 모리노료테이의 승리. 그릇 하나에도 꽤 신경 쓴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데 재료나 맛은 아무래도 라비스타 아칸가와의 편을 들게 된다.

 

물론 저녁 세끼 연속으로 가이세키 요리를 먹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아무튼 진종일 눈길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전을 한 뒤 밥까지 잔뜩 먹었으니 더 버틸 재간이 없다.

 

시체가 된다.

 

 

 

 

그리고 다음날은 이런 설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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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게 원래 먹자고 가는 건데 먹는 얘기를 너무 부실하게 취급한 것 같아서.

 

그럼 지금부터 카무이노유 라비스타 아칸가와 호텔(이름 참 길다)에서 이틀동안 먹은 식사를 석-조-석-조의 순으로 소개한다.

 

 

대개 온천 호텔이나 료칸에서는 조식/석식을 제공하는데 저녁식사는 보통 가이세키(會席) 요리가 제공된다.

일본식의 코스 정식을 말하는데, 가끔 발음이 같은 가이세키(懷石)와 혼동하는 사람도 있고, 한국인들은 대개 이해가 높지 않다.

 

거기에 대해서는 전에 한번 포스팅한 적이 있다.

 

일본 료칸의 가이세키요리란? http://fivecard.joins.com/1305

 

이처럼 코스의 이름과 순서가 제공하는 업소에 따라 꽤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기본적인 틀 안에서 운영된다.

 

그래서 이 호텔, 카무이 에서는 다음 순서로 저녁밥을 줬다.

 

 

前菜 젠사이 - 전채. 모듬 전식 요리.

先椀 센완 - 밥공기 같은 그릇에 담긴 찜 요리

造里 쓰쿠리 - 생선회

台の物  타이노모노 - 상 위에 놓인 요리. 즉 직접 조리해가며 먹는 요리

洋皿 요우자라  - 서양 요리

止肴 도메자카나 - 마지막 안주(?). 다른 곳에선 이 이름으로 밥이 나왔는데 여기는 아래 보시다시피 식사가 따로 있다.

食事 - 카레라이스와 죽 중 선택하게 되어 있다. 죽 선택..

水菓子 - 디저트 1

甘味 - 디저트 2

 

대략의 틀은 따라가고 있지만 뭐랄까, 격식 없이 자유롭게 차려진 가이세키라는 느낌이 들었다.

 

 

 

 

 

前菜 젠사이와 先椀 센완이 함께 나와 있는 모습. 완(椀)은 밥공기같은 둥근 그릇을 말한다.

(뚜껑을 열고 내용을 찍은 사진 없음. 패스)

 

 

밥을 먹기 위해 창가 자리에 앉았는데, 창밖으로 개울(아칸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아칸가와)이 흐르고,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개울가에 이 호텔에서 키우는 사슴이 왔다갔다 한다.

 

자연 속으로 푹 들어온 느낌이 난다.

 

 

 

이것이 造里 쓰쿠리,

 

날씨에 맞춰서인지 방어(鰤, 일본 발음으로 부리)가 나왔다.

 

 

이것이 台の物  타이노모노,

 

연한 육수에 게살, 고기, 야채를 담가 먹는 샤부샤부가 나왔다. 맛이 없을 수 없는 종목. 

 

 

 

洋皿 요우자라. 소고기와 돼지고기 로스트가 나왔다. 소고기는 그럴듯 했는데 돼지고기를 미디엄으로 구운 느낌은 좀 낯설었다.

 

이렇게 첫날 저녁 식사 완료. 당연히 다 먹으면 배가 상당히 부르다.

 

 

그러는 사이 스키야키 냄비에서 우동이 익고,

 

 

남은 국물에 쌀을 투척해 죽으로 재탄생.

 

이 죽을 조우스이 雜炊 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도 많이 보던 스타일이다. 맑은 탕이나 스키야키를 먹은 뒤 밥과 파, 계란을 훌훌 풀어 끓이는 그런 죽. 단지 한국식 죽은 좀 퍼질 때까지 끓이는 반면, 이 조우스이는 밥알이 아직 단단함을 잃지 않은 상태까지만 살짝 끓인다.

 

어쨌거나 이렇게 남은 국물을 이용해 죽을 만드는 방법은 아무래도 일본인 원조인 것 같다.

 

(양국에서 자연발생했을 수 있겠으나 식당가에서 흔히 하는, 계랸과 파, 잘게 썬 야채를 가져와 같이 끓이는 스타일이 정형화된걸 보면)

 

 

 

그리고는 수수 무스(무로코시 무스라고 되어 있는데 찾아 보니 무로코시는 수수다. 옥수수도 무로코시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토카시 산 팥무리떡으로 마무리.

 

 

아울러 식사 때마다 제공되는 아이스바. 홋카이도는 유제품이 좋아서 이런 종류는 웬만하면 다 맛있다.

 

아무튼 이렇게 잔뜩 먹고 온천을 텀벙텀벙 뛰어다닌 뒤에 푹 퍼져 잤다.

 

다음날 아침.

 

 

 

 

 

식당으로 내려오니 온천이 김을 뿜으며 개울로 흘러들어가는 광경이 보인다.

 

 

이렇게 조반. 다 아시는 그 일본식 조반.

 

본래 화/양식 중에서 선택하게 되어 있는데 별 고민 없이 그냥 '일본이니까 화식!'이라고 해 버렸다. 양식은 내일 먹지, 라는 생각.

(하지만 다음날 이것 때문에 약간의 후회...)

 

밥이 유난히 맛있다. 쌀이 좋아서인지... 반찬은 뭐 그냥 그런 반찬.

 

 

이렇게 좋은 햇살과 전망 앞에서 먹으면 뭐 맛없을 밥이 있을지.

 

 

개인용 반노천탕도 한번 들어가 봤다. 그런데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물도 미지근하고 좀 그렇다. 비추.

 

어쨌든 이렇게 해서 둘쨋날은 지난번 포스팅에서 다뤘듯 부근 호숫가 노천온천을 누비며 씬나게...

 

달리고 돌아온 뒤 다시 가이세키로 저녁.

 

 

뭐 늘 보시는 거니까 설명은 생략.

 

일본에서도 곶감을 먹는지 몰랐다.^^ 생선은 참치 중심.

 

 

솥밥이 식사고, 1병 제공되는 맥주.

 

 

철판구이 고기가 나왔다.

 

 

같이 나온 빠다를 녹여서 이렇게 ~

 

 

생선 이름이 뭐더라... 긴메타이(金目鯛, 우리말로는 금눈돔?). 돔 종류 치고는 작은데 크기에 비해 알차다.

 

 

그리고 이렇게 연어를 넣은 솥밥으로 푸짐하게.

 

사실 이 호텔은 본래 밤 10시에 야식으로 라멘을 준다.

 

처음엔 라멘 맛이라도 좀 볼까 생각을 했지만 저녁식사만으로도 충분히 헤비해서 그런 만용은 버리는 것으로.

 

그리고 다음날 아침.

 

 

 

셋째날 아침.

 

보시다시피 구성이 약간 모호,

 

사실 화식에 약간 질려 가던 터라 두번째 날 조식은 '양식'이라고 자신있게 외쳤는데,

 

직원이 "오늘은 화식 양식 구분 없고 화양식(?)으로 통일"이라는 거다.

 

화양식은 또 뭔가 했더니 바로 저 차림, 좋게 말해 퓨전이고 먹어 본 솔직한 결과로는 양식도 아니고 일식도 아닌, 그 어딘가에서 방황하는...

 

 

그리고 아침부터 삼겹살 샤부샤부라니.

 

아 느끼해... 는 아니고 실제로는 뭐 맛은 괜찮았음.

 

 

다만 당초 기대했던 대로 빵 맛은 베리 굿.

 

같이 먹는 우유도 좋아서 석잔이나 드링킹.

 

 

그리고 저녁에 아이스바를 가져다 놓은 데 이어 오전에는 소프트 가츠켄이라는 음료가 제공된다.

 

맛은 바로 드링킹 요구르트.

 

 

아무튼 날씨 얘기가 뒤로 왔는데, 둘쨋날 아침까지만 해도 신록이 우거졌던 숲이 셋째날 아침엔 완전히 눈 속 나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 이런거. 이런 걸 보러 온 거야

 

그렇다면 한국인의 로망을 실천할 때가 온 것 같다.

 

 

자, 노천탕으로 달려가서,

.

 

몸을 푹 담그고 설경을 바라본다.

 

크허허허 정말 세상에 부러울게 없다.

 

 

이럴땐 이렇게 발을 내놓고 싶더라고.

 

여기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길을 떠나야 하는 날.

 

 

차가 이렇게 돼 있다. 과연 이날 이 차는 무사히 목적지까지 갔을까?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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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5일(2017년임) 아침, 파란 하늘을 안고 흡족한 마음으로 오전 9시30분 정도에 길을 떠났다.

사실 이번 홋카이도 여행을 앞두고 별다른 연구가 없었음을 알려주는 것이, 이 둘쨋날 코스도 본래 만만치 않았던 것인데 아무 생각 없이 '지도상으로 보니까 다 근처야' 하는 마음에 아주 가볍게 출발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귀환 후 몸살로 나타나지만... 아무튼 이때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좋기만 했다. 

일단 첫번째 목표. 호텔을 나와 동쪽으로 10여분 정도 차를 달리면 소우코다이(双湖台)라는 첫번째 목표가 등장한다. 한자 세대라면 쌍호대, 즉 두개의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라는 뜻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전망대 이름이 호수 두개가 보여서 쌍호대라는 것인데, 하나는 어디로 간 것인지...

아무튼 아칸 호수는 잘 보인다. 예쁘다.

파란 하늘, 하얀 눈이 쌓인 길, 뭐 여기서 더 바라면 도둑이다.

근데 얘기를 하다 보니 아쉬운 점: 일본 렌터카 중엔 와이파이로 음악 들을 수 있는 차종이 별로 없다고 한다. 처음엔 경차라 그런 줄 알았는데 대부분 그런 옵션이 없다고... 그렇다고 홋카이도 FM이 빵빵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운전할 때 BGM이 필요하면 작은 거라도 블루투스 스피커를 챙겨 가시도록.

물론 저 쌍호대는 이날 여정의 아주 아주 이른 시작. 북쪽으로 차를 돌려 일단 목적지인 비호로(美幌) 전망대를 향해 달려 본다.

비호로 전망대는 굿샤로 호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로 유명한 곳. 대략 대관령을 연상키시는 비호로 고개 위에서 내려다보는 굿샤로 호수는 일찍이 절경이라고 알려졌다.

비호로 주차장에 차를 댈 때까지만 해도 푸른 하늘이 보였는데,

바로 옆, 전망대 쪽으로 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니 해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오묘한 홋카이도의 날씨.

구름 속의 태양 방향으로 5분쯤 걸어 올라가니,

오옷.

조금 와이드하게 찍으면 이런 느낌.

희한하게도 바로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파란 하늘이 보이는데,

호수 상공은 안개와 짙은 구름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보인다. 그런데 기막히게 멋지다.

그래도 이 정도면 운이 좋은 편. 어떤 분들은 짙은 안개 때문에 아무 것도 못 봤다고도 한다.

호수 가운데 보이는 섬은 나카지마 中島 라고 부른다는데, 호수 중간에 있는 섬은 모두 나카지마인듯.

파란 하늘과 구름낀 태양 아래 굿샤로 호수.

경치는 너무나 기가막히게 좋은데 추워서 살 수가 없다. 고지대라 쌩쌩 부는 바람이 제법 사납다.

아무튼 비호로 인증샷.

내려와서 전망대 휴게소를 들어가니 굿샤로 호수에도 괴수가 산다고 한다.

귀엽다.

바람에 맞서 호수 구경을 하고 오니 다른 생각 1도 없이 뜨거운 국물이 땡긴다.

뭐 관광지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주 사악한 가격은 아니다.

성수기도 아니고 휴일도 아니라서인지 휴게소는 한산.

카니라멘, 1500엔. 비주얼은 어째 게다리가 모형 같은데 실제론 맛이 그만이었다. 강추.

뎀푸라 우동. 980엔. 물론 이것도 당연히 맛있다.

휴게소 음식 치고는 기대 이상의 맛. 뜨거운 국물에 언 몸이 스스르 녹는다.

그리고 차를 돌려 내려온 곳이 와코토 和琴 노천온천.

 

호수의 아주 작은 반도(?)로 잡어들어 그냥 길가에 차를 세우고 2분 정도 걸으면 나타나는 노천 온천이다. 사진 위쪽은 굿샤로 호수, 그리고 아래쪽 김 나는 곳이 온천이다. 한 구석에 탈의장 비슷하게 동네에서 지어 놓은 목조 건물이 있고, 사방에 아무 것도 없다. 그야말로 지나가는 길손이 들어가서 온천욕을 하라는 그런 탕이다.

그래서

 

 

쑥 들어갔다.

수영복 입으면 안 된다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어떻게...

바닥은 생각보다 매끈한데 잔돌과 나뭇잎 등이 바닥에 깔려 있다. 자연탕이란 느낌이 확실히 강하게 든다.

영하의 날씨지만 물이 엄청나게 뜨겁다. 금세 땀이 나고 열이 식지 않는다. 기분도 아주 좋아진다.

갈 길이 멀어 얼른 나왔다. 안 그랬으면 죙일 뽕을 뽑았을 듯.

그리고 두번째, 코탄コタン 노천온천인데 여기가 더 대박.

여기는 큰길에서 3분 정도 동네 길로 들어간 다음 시키는대로 차를 세우고 몇발짝 걸어가는데,

우왕.

와코토 온천과는 달리 코탄 온천은 그렇게 호쾌하게 호수 뷰가 펼쳐지는 바로 그 앞에 있다.

백조가 노니는 호수 바로 앞에.

짜잔.

아무 터치도 안 했는데(포토샵 할줄 모른다) 이런 거짓말같은 뷰가 나온다. 너무 아름답다.

온천이 나올 정도로 지열이 있으니 당연히 호수가 거의 얼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또 들어갔다. ;;

보나마나 눈 버렸다 어쩌고 하시겠지만 댁들이 가 보세요. 들어가시고 싶어질 거에요.

이러고 있는데 동네 아저씨가 들어온다. 좋으시겠어요. 동네에 이런 게 있다니.

 

온천을 했더니 너무 더워서(는 뻥이고) 맛있다고 소문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다.

아이스크림집은 마슈호 가는 길에 있다.

이런 소박한 외경. 이름도 멋지게 짓겠다는 야심 없이 그냥 '마슈호의 아이스(摩周湖の あいす)'다. 저 위 지도에 위치 표시가 있다.

그리고 원래 목표는 이렇게 해서 마슈호까지 세 호수를 모두 보고 오는 거였는데 개인착용 장비에 사소한 문제가 생겨서 그냥 호텔로 귀환하기로. 사실 전날의 피로가 다 풀리기 전에 나온 거라 이 정도 운전으로도 좀 피곤했다.

빨리 가서 저녁밥을... (아 첫날도 저녁먹은 얘기를 안 했구나.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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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말~12월초의 여행기입니다. 지금 가 있는 게 아닙니다. 네. 그렇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갈 팔자가 못 됩니다.^^

더 늦기 전에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충동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안 가보신 분들께 도움이 되길.

 

여행은 충동이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다. 11월. '사위가 조용하고, 눈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그런 설경이 보고 싶어'. 물론 그런 곳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 멀지도 않다. 비행기를 타고 두시간만 날아가면 홋카이도가 있다.

 

홋카이도는 두 번 간 적이 있다. 한번은 일전에 얘기한 것 처럼 2001년, 김민종의 뮤직비디오를 찍는 팀에 끼어서 처음 구경한 적이 있다. 이때 삿포로의 화이트 일루미네이션과 오타루, 조잔케이 등을 구경한 적이 있다.

 

그리고 2012년, 이번엔 여름의 홋카이도를 택했다. 다들 홋카이도 하면 설원과 온천을 떠올리지만 여름이 더 좋더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엔 놋포로 숲, 아사히카와 동물원, 그리고 후라노와 비에이 등지를 돌아봤다. 아주 좋았다. 그리고 언젠가는 직접 운전을 하고 이 동네를 돌아다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결심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래서 목표를 세웠다.

 

1. 목표는 설경이다.

 

11월 말. 날씨가 애매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눈이 올 수도, 안 올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만약 눈이 오지 않는다면 홋카이도의 11월은 대단히 을씨년스럽기만 한 계절이 될 수도 있다는 거였다. 9월초까지는 여름이고 10월과 11월 초는 화려한 단풍의 계절. 그리고 11월 말이면 단풍은 확실히 진다. 그런데 과연 거기에 눈이 없다면? 상상만 해도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12월 중순에 갈 수는 없었고, 막상 12월로 넘어가면 비행기 표, 호텔, 갑자기 모든 가격이 급등했다. 다들 알고 있었다. 그래서(?) 11월 말 계획을 강행했다. 대략 수년간의 이런 저런 수치들을 본 결과 눈은 와 줄 거라고 확신했다.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목표는 달성됐다.)

  

 

 

2. 교통수단은 렌터카.

 

이 부분에서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과연 대중교통수단과 렌터카를 어느 정도 비율로 조합할 것인가? 본인은 절대 운전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고속도로를 몇시간 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녹초가 되는 체질이다. 그렇다면 일정 비율로 기차와 렌터카를 조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리 현명한 생각은 아니었다. 홋카이도는 일본 내에서도 교통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지역이었고, 렌터카 요금은 하루 일정 지분을 대중교통이 담당해준다는 점을 전혀 고려해주지 않았다. 아예 렌터카를 타는 날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날이 구분되지 않는 한 비용은 전혀 절감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 여정을 대중교통에만 의존한다는 것 역시 당초의 취지와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전 구간을 렌터카로 이용할 경우 유류대 포함 30만원 이내로 전체 교통비를 커버할 수 있었지만 전 구간을 대중교통으로 이용할 경우 이미 40만원 이상(그리고 사소한 볼거리는 모두 포기해야 한다)이 들었고, 둘을 조합할 경우 교통비만 70만원대(예: 료칸에서 택시를 대절해 주변을 관광한다든가 하는. 버스? 없다고 보면 됨)가 필요했다. 그래서 사실상 전 구간을 렌터카를 운영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3. 좀 더 구석진 곳으로.

 

렌터카를 이용하는 이상, 홋카이도라는 큰 섬 깊숙히 진출한다는 목표가 자동으로 설정됐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홋카이도 여행에는 대략 3~4단계 정도가 있다. 1단계에서는 삿포로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맥주공장도 가보고, 노보리베츠나 조잔케이에 가서 온천을 하고, 오타루에서 가서 다시는 열어 보지 않을 오르골을 사 온다. 용기를 내서 저 남쪽의 하코다테 야경을 보고 오기도 한다.

 

2단계가 되면 도야 호수를 보러 가고, 팜 도미타에 가서 라벤더 밭을 보고 황홀경에 빠진다. 비에이의 패치워크를 보면서 이곳의 설경을 보리라 다짐한다. 아사히카와의 동물원을 보거나 멜론을 먹으러 유바리에 가는 사람도 있다. 이른바 '삿포로가 중심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을 깨닫는 시기다.

 

3단계가 되면 내륙으로 길을 떠난다. '쿠시로 습원'이라거나 토카치카와, 다이세츠산, 아칸 호수 등의 지명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한시간을 달려도 차 한대 마주치지 않는 '사람 없는 대자연'의 매력에 빠져드는 시기다.

 

4단계는 이제 홋카이도의 동 서 남 북 끝을 정복하고 싶은 야망(?)에 눈을 뜨는 시기다. 아바시리, 네모토, 와카나이 유빙 등의 화제가 등장한다. 이건 거리상으로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간혹 홋카이도를 제주도 수준으로 생각하는 정신나간 사람들도 있는데 상당히 위험하다. 홋카이도는 약 8만 제곱킬로미터, 남한이 약 10만제곱 킬로미터다. 남한 전체에서 강원도 정도를 뺀 넓이다.)  상당한 시일과 체력을 요한다. 특히 운전을 교대해 줄 사람이 없이 이런 코스에 도전하면 상당히 난감해 질 수도 있다. 물론 동쪽 끝, 북쪽 끝 등을 나눠 가는 요령있는 사람도 있다.

 

위 구분에 따르면 홋카이도를 세번째 가는 나는 대략 2.5단계 정도에 있는 것 같았다. 적당한 선에서 치토세(공항) - 쿠시로 - 비에이를 잇는 큰 삼각형을 설계했다.

 

 

예쁜 그림이 나왔다. 좌하단의 신치토세 공항을 출발, 동쪽으로 달려서 라 비스타 아칸가와 호텔이라고 써 있는 곳까지 가서 다시 위쪽으로 올라갔다가 서쪽으로 쭉 가서 비에이를 거쳐 삿포로에 이르는, 그러니까 저 순환형 코스를 공항에서 시작해 시계 반대방향으로 한바퀴 도는 코스를 구상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11월말~12월초의 기후. 가끔은 이때까지도 홋카이도에눈이 안 내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물론 약 90% 확률로 이미 눈 천지가 되어 있다), 눈을 보러 가는 것인 만큼 눈이 안 내려도 낭패지만, 눈이 너무 오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특히 위 지도에서 북쪽, 그러니까 기타미에서 아사히카와 구간은 산속 도로이기 때문에 얼어붙으면 꽤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실제 경로는,

 

 

이렇게 약간 덜 예쁜 그림이 됐는데 겨울의 북쪽 산악도로를 피하려다 보니 이렇게 됐다. (그런데 결과적으론 길을 잘못 들기도 해서 산길을 실컷 달리게 됐다. 그냥 북쪽으로 갔어도 큰 차이 없었을 것 같다.^^)

 

그리고 시기적으로는 11월 말 출발을 권장한다. 가장 큰 이유는 항공 요금을 체크해보시면 바로 알 수 있다. 11월말 출발과 12월 출발, 대략 1주일 사이에 항공료가 40% 이상 오른다(그만치 '12월 홋카이도'에 대한 로망이 꽤 있는 것 같다). 만약 휴가를 내는 게 양쪽 다 가능하다면 충분히 고려할 만한 요인이다.

 

 

 

첫날은 신 치토세 공항에 내려 곧바로 렌터카를 이용해 쿠시로 방향으로 간 뒤, 내륙으로 들어가는 목표를 세웠다. 거기 뭐가 있냐 하면,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이라는 아칸 호, 굿샤로 호, 마슈 호라는 세 개의 호수가 있었다. 그리고 아칸 호수 부근에 있는 라비스타 아칸가와 호텔 (풀네임은 카무이노유: 라비스타 아칸가와 カムイの湯 ラビスタ阿寒川) 은 한번 가 보고 싶은 숙소였다.

 

(창밖으로 이런 뷰가 펼쳐진다)

 

カムイの湯 ラビスタ阿寒川, 일본 〒085-0000 Hokkaido, Kushiro, Akancho Okurushube, 3−1

 

공항에서 호텔까지 260km. 구글 지도상으로는 약 3시간 40분 정도가 소요된다는 정보가 나왔다. 하지만 겨울 홋카이도 고속도로(?)의 제한속도는 시속 60km. 4시간 이상 걸릴 거라고 생각해야 했다. 가 본 적이 없으므로 어느 정도 걸릴 거라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5시간 넘게 걸렸다)

 

 

그리고 두번째 숙소는 한국 관광객들 사이에 이미 정평이 난 비에이의 모리노테이 료칸. 사진을 보고 반신반의 했는데 정말 드라마틱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森の旅亭びえい, 일본 〒071-0235 Hokkaido, Kamikawa District, 美瑛町Shirogane, 10522−1

 

 

그래서 기본 일정은 세워졌다.

 

첫날        인천 - 신 치토세공항 - 아칸가와 라비스타 이동

둘쨋날     아칸 호수 주변 관광, 아칸가와 라비스타 숙박(2박)

셋째날     아칸 호수 - 비에이 모리노테이 료칸 이동

넷째날     비에이 주변 관광, 삿포로로 이동 (렌터카 반납)

다섯째날  기상, 빈둥거리다 리무진버스로 공항 이동, 인천으로 귀국

 

따라서 숙박은 아칸가와 라비스타(2박), 모리노테이(1박), 삿포로 시내 호텔(1박)으로 정리됐다. 당초 구상 중에는 라비스타 2박, 모리노테이 2박을 한 뒤 바로 공항으로 렌터카를 이용해 이동하는 것도 있었으나 도로 사정을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무리한 일정을 세우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해서 당일. 신 치토세 공항 1층으로 내려가면 렌터카 종합 라운지가 있고, 거기서 예약자를 확인해 필요한 곳으로 안내해 준다.

 

물론 성격 느긋한 분들은 공항에 내려서 렌터카 알아보시고 하겠지만 역시 뭐든 예약하는 게 좋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닛산 렌터카 직원이 등장, 미니버스로 공항 외곽에 있는 닛산 렌터카 사무소로 실어다 준다.

 

 

닛산 마치(マーチ). 경차급이지만 4륜구동이고, 겨울 홋카이도의 렌터카는 스노 타이어가 기본이다.

(단, 4륜 모드에서는 연비가 상당히 안 좋아진다. 물론 겨울이니 감수해야 한다.)

 

굳이 닛산을 선택한 건 일본 최대 렌터카 업체인 토요타가 경쟁업체 대비 20% 정도 가격이 비쌌기 때문. 대신 대리점도 가장 많고 아무래도 공신력있다는 등의 장점이 있다지만, 역시 대기업이면서 토요타보다 싼 닛산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물론 닛산보다 싼 회사도 얼마든지 있다. 다만 그런 회사들은 차가 좀 낡았다든가 하는 몇가지 겁주는 이야기들이 있다.

 

신 치토세 공항 근처의 닛산 렌터카 공항점에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없었다. 하지만 워낙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터라 그쪽에서도 여유있게 응대한다. 아주 독특한 요구사항만 없다면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약간 발음이 이상하긴 해도 대강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데에는 별 무리 없는 수준의 영어로 차량 제공과 안내가 이뤄진다.

 

물론 빼놓으면 안되는 것들이 몇가지 있다. 일단 고속도로를 달려야 하니 ETC카드(한국의 하이패스카드)도 기본이고, 외국인에게는 고속도로 통행료가 대폭 할인되는 정액제 HEP라는 것이 있다. 반드시 신청해야 한다. 홋카이도는 대중교통 요금이 비싼 만큼 고속도로 통행료도 깜짝 놀랄 정도로 비싸다. 그러니 하루 2,3만원 정도로 고속도로 요금은 모두 해결되는 HEP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선수들은 HEP도 아깝다고 국도로 다닌다고 하는데, 솔직히 네비게이션도 감지덕지인 초보 처지에 어느게 국도고 어느게 고속도로인지 구별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냥 시키는 대로 HEP 해달라고 해라. <- 이상 ETC나 HEP 등에 대해서는 전문적으로 잘 설명해 놓은 블로그들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람.)

 

그리고 주의사항: 이 마치는 그냥 경차급인데, 한국 경차보다 트렁크는 확실히 작다. 그래서 문제인 것이, 좌석은 네개지만 그냥 2인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한 차다. 절대 네 사람과 네 사람분의 짐을 실을 수 없는 차라고 생각하면 된다. 만약 정상적인 성인 4인이 이 차를 빌리면, 뒷좌석 사람들은 짐을 안고 타야 하는 상황이 충분히 생길 수 있다. 그러니 성인 4인이라면 너무 돈 아낄 생각 말고, 그냥 일반 승용차를 빌려길 권한다(사실 짐 없이 4인이 타도 상당히 불편할 것 같다).

 

어쨌든 의례적인 교육을 받고,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공항을 빠져나와 처음 달리기 사작할 때 길은 을씨년스러운 늦가을이었는데(아 이거 눈 보러 왔는데 망했구나 잠시 생각),

 

외곽으로 나가자 마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만세).

 

 

(이때까지만 해도 기분은 '아싸 눈이다' )

 

사실 왼쪽 오른쪽 운전석의 차이에 대해 대단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별것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존해 말하면, 일단 운전을 좀 하는 사람이라면 아무 걱정 안 해도 된다.

 

30분 이내에 딱 한가지만 빼고 다 적응된다.

 

(다른 건 문제 아닌데 깜빡이를 넣으려고 하면 와이퍼가 움직인다. 이것 하나만큼은 돌아올 때까지 적응하지 못했다.)

 

 

일단 일본 고속도로에 나가 보고 놀란 것

 

1. (홋카이도라 그런 거겠지만) 양쪽 합해 2차선이다. 고속도로인데... 그래서인지 심지어 제한속도는 60.

 

2.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10분 쯤 있으면 제설차가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다. 고속도로 요금이 왜 비싼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3은,

 

 

3. 고속도로 휴게소에 한국 같으면 상식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식당, 편의점 등이 거의 없다.

 

위 사진이 신치토세 공항에서 오비히로로 가는 길 위에서 만난 휴게소인데, 이런 식의 간이 판매소가 두 개 있었다.

 

그런데 이날 이후로, 고속도로상에서 음식물을 파는 곳은 다시 보지 못했다.

(그냥 대부분의 휴게소에는 화장실과 음료수 자판기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뭐 여기도 파는 음식은 오뎅, 고로케, 핫도그 정도인데,

 

 

 

심지어 산 음식을 먹을 공간도 없다. 차로 가져가서 먹어야 한다.

 

 

눈은 그쳤지만 강풍이 부는 쓸쓸한 노점.

 

 

그래도 이 휴게소가 이번 여행에서 가본 휴게소 중에서는 압도적으로 시설이 좋았다. 정말이다. ;;

 

분명히 다시 한번 얘기해 둬야 할 것: 홋카이도의 고속도로 제한속도는 60km다. 물론 지키는 건 제설차밖에 없다고 봐도 좋다. 다들 쌩쌩 달린다. 겨울이고 뭐고 없다. 하지만 어찌 어찌 하다 보면 결국 한시간에 60km 이상 이동은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중간에 경치 구경 때문에 세울 수도 있고, 화장실에 들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느 구간에선가 진행을 방해하는 느린 차가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컴컴해진 뒤에야 아칸가와 라비스타 호텔에 떨어졌다.

 

(그래서 호텔 사진은 없다. 그리고 호텔 전경을 찍기가 굉장히 애매한 구조다.)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사진. 일단 호텔 전경이 저렇게 생겼는데, 저런 각도에서 이 건물을 보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 강, 그러니까 아칸가와 쪽에서 호텔을 보려면 상당히 험난한 지형을 뚫고 일부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진에서 알 수 있듯 방마다 꽤 큰 통유리 창이 강 방향으로 있는데,

 

 

 

 

방에서 밖을 보면 이런 느낌이다.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홈페이지 사진이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창문을 보다가 몸을 180도 돌리면,

 

 

침대가 보인다.

 

 

단지 아쉬움이 있다면 히노키 욕조가 좀 작고, 밖을 보는 창이 조금밖에 열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설명에는 반노천탕이라고 되어 있는데 사실 노천탕 느낌은 전혀 아니고, 방에서 온천욕을 하면서 바깥 찬 공기를 쐴 수 있다 정도?

 

아무튼 이 욕조는 두 사람이 동시에 들어가기엔 좀 무리다. (어린이들은 가능.)

 

이 호텔을 이용할 분들은 아무래도 온천욕은 대욕장을 사용하시는 것이 좋겠다.

 

그러니까 침대 쪽에서 창문 쪽을 바라보면 이런 모습. 긴 직사각형 모습이다.

 

 

 

저 호텔 홈페이지 사진은 여름 사진인데, 우리가 도착한 날 밤에 눈이 펑펑 내려서 다음날 이렇게 됐다.

 

방에서 이런 풍경이 보인다. 그것만으로도 이 호텔을 선택한 것이 후회되지 않았다.

 

 

욕조에서 창을 열고 밖을 보면 이런 느낌.

 

 

그래도 그럴듯하다.

 

 

북해도의 겨울엔 5시면 해가 똑 떨어진다.

 

해진 뒤 도착후 저녁시간이 8시라는 안내를 받았다.

 

뭘 하겠어, 일단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야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노천탕에서 바라보는 광경. 이때까지만 해도 아칸가와 지역에는 눈이 안 왔다. 그런데 이날 밤...

 

 

 

도착하지마자 탕욕을 마치고 느긋하게 휴식. 그리고 8시에 저녁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메뉴 안내 종이를 준다. 뭐 늘 먹는 그런 가이세키 요리지, 별 거 있겠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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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베를린 동물원 Zoologischer Garten Berlin 정문이 동아시아식(뭔가 한국/중국/일본/베트남/태국식을 조금씩 합한 듯한 느낌?) 기와지붕으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동물원으로 유명한 도시는 그리 많지 않다. 샌디에에고? 아사히카와? 사실 내가 동물원을 꽤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베를린 동물원은 무려 1844년에 개장한데다 현재도 전 세계 동물원 가운데 사육 종수 1위라는 기록을 갖고 있는 곳이다.

 

 

위 지도에서 '베를린'이라는 글자 위치가 대략 박물관 섬 정도 되는 지역인데, 통일이 된 지금 사람들은 베를린의 중심이 대략 저 정도 위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 쳐도 동물원은 그 중심에서 차로 20분 이내 정도의 위치(저 지도 왼쪽의 붉게 표시된 지역이다).

 

그리고 통일 전에는 이 동물원이야말로 서베를린의 중심이었다. 지금도 베를린에서 가장 부티나는 동네가 바로 이 베를린 동물원 부근인 거다. 지금도 오래된 베를린 토박이 상류층들은 '동물원 동쪽으로는 안 가'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어쨌든 그런 건 동물원에 뭐가 있냐는 것과는 상관이 없고, 동물원은 우리가 묵었던 호텔 바로 앞에 있었다. 정문까지 걸어서 10분 이내. 그리고 베를린 웰컴 카드로 무료입장할 수 있는 시설이기도 했다.

 

게다가 마지막날의 비행 스케줄이 오후인데다 베를린은 공항과 시내가 매우 가까워서(정확하게 말하면 초 역에서 가까워서), 오전 시간을 쓸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베를린 웰컴 패스로 무료 입장할 수 있는 시설 중 하나. 이런데 안 갈 이유가 없잖아!

 

 

 

...해서 호텔 체크아웃 때까지 시체놀이를 하고 싶었던 동행인을 설득,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고 동물원 구경에 나섰다.

 

그런데 입장 직후부터 뭔가 살짝 꼬이는 느낌을 받았다. 맹수관이 수리중이라는 거다.

 

아니 뭐니 뭐니 해도 동물원은 사자 호랑이 아닌가. 이래도 되는 건가 이거?

 

그래서 안내판이 인도하는대로, 아쉽지만 사자/호랑이를 볼 수 있는 실내 축사로 향했는데...

 

 

 

이 친구는 아마도 삵쾡이 종류인가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새끼 사자였던 것 같다.

 

매우 수줍음을 타서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가 없었다.

 

아무튼 야행성인 고양이과 동물인데 오전에 밖에 나와 있다는게 신기하다 싶더니...?

 

 

바로 옆 칸에 이 암사자 언니가 있었다.

 

 

거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꽤 가깝다.

 

 

사실 동물원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맹수 축사는 대개 관람 라인으로부터 동물이 꽤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고 그 동물들은 대개 - 특히 고양이과의 큰 맹수들은 - 축 늘어져 있는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 누나는 뭔가 아침부터 심사가 뒤틀린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엔 아마도 조반 시간인데 사육사가 늦잠을 자서 타이밍을 못 맟춘게 아닐까 싶다.

 

갑자기 으르렁 으르렁 어흥 사자후를 토해내기 시작한다.

 

 

이렇게 철창에 바로 코를 박고 어흥 하는데... 오줌 쌀뻔 했다.

 

이게 실내라 소리가 좀 울려 주는 효과도 있긴 했을텐데, 바로 저 약 2m 거리에서 라이브로 사자후를 들으니 그냥 오금이 저리고 도망가고 싶어지는 거였다. 금세라도 저 철창을 뜯어내고 내 내장을 파먹으러 뚸쳐나오실 것 같은 박력이 느껴지더란 얘기다. 사자후라는 말은 괜히 만들어 낸 게 아니었다.

 

아무튼 그만치 무시무시했다.

 

아 무서. 생각해 보면 지금도 오금이 저리다.

 

 

그리고 밖에 나오니 표범과 저 이름 모를 새의 조화가.

 

 

37만 제곱미터라고 하는데, 이렇게 도심 한 복판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아름다울 뿐이다.

 

물론 37만 제곱미터도 절대 작은 규모는 아니지만 사실 규모는 과천대공원이 훨씬 더 크다.

 

 

그리고 동물과 가까이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하려고 애쓴 흔적이 크다.

 

이를테면 기린 같은 경우엔 아예 맘 먹으면 슥 나올 수도 있을 정도.

 

 

그리고 가장 인상깊었던 하마관.

 

 

이런 식으로 물 반, 땅 반의 구조다. 물론 땅 쪽에선 봐도 별 게 없다.

 

 

다들 물 쪽에서 하마를 보고 있다.

 

 

사실 누가 봐도 그렇게 환영받을 생김새는 아닌데,

 

 

이 상황에선 다들 너무 반가워한다.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는 위풍당당

 

 

그리 날렵하진 않지만

 

 

 

어쨌든 물속 모습을 보여주니 다들 너무나 좋아한다.

 

 

 

하마인가 바다코끼리인가

 

 

아무튼 하마 안녕

 

 

그리고 개인적으로 대단히 애착을 갖고 있는 백곰을 보러 갔다.

 

 

애착의 이유를 묻지 말라고

 

 

아 씨원해

 

 

야 콜라 마셔

 

 

응 콜라 어디?

 

 

에잇 젠장

 

아무튼 매우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북극에서 이 정도 거리였다면... 그냥 점심이 되었겠지만.

 

 

그리고 또 매우 감명깊었던 늑대 축사

 

 

이렇게 먹이를 준다.

 

대략 봐도 소고기인 듯 한데 덩어리가 2kg 정도는 될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좋은 고기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쟤 먹이려면 비용이 장난 아닐 듯.

 

 

아무튼 적나라하게 먹어준다.

 

 

가깝긴 한데 얘도 가끔씩 고기 먹다가 고개 들어 쳐다보면 눈빛이 일반 개 종류는 아니다.

 

 

조금 떨어져서 사진.

 

 

그리고 바다사자관.

 

 

먹이 주고 할건 다 하는데 다른 동물원처럼 특별히 교육받은 애교나 쇼는 없다.

 

뭐 동물 스트레스 주지 않으려는 의도라면 그런가 보다 하고.

 

그런 거 보시려면 한국이나 일본 가세요.

 

 

아무튼 5일간 웰컴카드, 뮤지엄 패스 사서 잘 쓰고 다녔다.

 

베를린에선 꼭 필요합니다. 사 두세요.

 

아, 내가 태어나서 택시 이하론 타 본 적이 없어 하는 분들은 없어도 됩니다. 죄송.

 

 

베를린 공항 라운지. 규모는 프랑크푸르트가 훨씬 크지만 이쪽이 더 알차다.

 

음식도 맛나고.

 

 

유럽 대륙 내에서의 항공사 비즈니스석은 사실 좌석 편의성 면에선 아무 의미가 없다. 요즘 유행하는 풀 플랫, 그러니까 180도로 펴지는 좌석 절대 아니고, 다소 무시하듯 부르는 '우등고속형 좌석' 도 물론 아니다. 그냥 똑같은 이코노미 좌석이 3석 나란히 있으면 그 중 가운데 좌석을 비워 주는 것 정도가 비즈니스석의 현실이다.

(안 타본 사람은 잘 모름)

 

 

그래서 비즈니스석의 유일한 장점이라봐야 '라운지에서 술과 밥을 준다' 정도.  

 

 

독일답게 상당히 양질의 화이트 와인을 준다.

 

 

그렇게 해서 근 열흘간의 프라하/베를린 여행이 끝났다.

 

 

폴커 안녕. 다음에는 좀 더 자연과 도시가 만나는 지역으로 가 봐야겠다.

 

베를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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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의 5박이

 

첫날: 프라하에서 열차로 이동. 쉴러 극장에서 '파우스트의 겁벌' 관람.

2일: 베를린 가이드 투어 + 베를린오페라에서 발레 '백조의 호수' 관람.

3일: 베르그루엔+샤프 게르스텐베르크 미술관, 사진 박물관, 포츠다머플라츠

4일: 베를린 박물관 섬 + 자연사박물관 + 함부르크 역 미술관

5일: 쇼핑, 휴식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6일: 오전 베를린 동물원 + 오후 출국

 

박물관+미술관+공연장이 너무 비중이 큰 것 같긴 한데, 아무튼 게으르게 보낸 것 같지도 않은데 4일이 후루룩 가 버렸다.

 

전 같으면 베를린 중앙 공원이나 베를린 시민들의 휴식처라는 반제(Wannsee, See가 독일어로 호수)도 가보고 했겠지만 시내에서 가보고 싶은 곳들이 많아 거기까지 발을 뻗지 못했다. 좀 아쉽다.

 

 

그리고 뭣보다 이런 문화행사의 수준과 규모가 남다른 도시라 기왕 간 김에 공연을 보지 않기도 어려웠다.

 

한여름이었으면 어떻게 해서든 발트뷔네 콘서트를 가 봤겠지만 지금은 6월초.

 

 

느즈막히 일이나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최고의 쇼핑 스팟이라는 카데베에 입성했다.

 

 

카데베의 텍스 리펀드 시스템. 그리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시스템은 잘 되어 있다.

 

아무튼 요약하면 백화점에서 먼저 돈으로 다 받고, 공항에서는 등록만 하는 것이 제일 낫다.

 

아무튼 백화점 전문가인 마나님의 말씀으론 '한국 백화점이 훨씬 화려한 것 같다'고.

 

 

그런데 카데베의 놀라운 점은 꼭대기 층과 그 아래층의 식당가에 있었다.

 

카데베 탑 플로어 레스토랑의 위용.

 

맨 윗 사진을 보면 건물 꼭대기층의 오른쪽에 이런 아치가 보인다.

 

그걸 안에서 보면 이런 장관이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 거대한 카페테리아 + 부페식 레스토랑이 있다.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이 깔려 있고, 중간 중간에 즉석 요리 코너가 있다. 스테이크부터 바베큐까지 다양하다.

 

집은 요리 만큼 마지막 계산대에서 지불하게 되어 있어 합리적이다.

 

똑같이 돈 내는 부페보다 훨씬 합리적이다.

 

 

등심 스테이크, 구운 야채와 파스타, 프레시 샐러드, 견과류 수프까지 10만원 안짝.

 

(Schwein이란 깃발이 왜 꽂혀 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소고기다^^)

 

 

전망도 그만, 음식의 맛도 그만.

 

꼭 가보시기를 강추한다.

 

 

꼭대기층에 저런 대형 레스토랑이 있고, 바로 아래층에는 소규모 식당가가 있는데 가격은 이 한 층 아래가 더 비싸다.

 

저 작은 한 집 한 집이 꽤 유명한 레스토랑의 분점이라는 얘기.

 

어쨌든 쇼핑을 마치고(...많이 샀다), 배불리 먹고 베를린 필하모닉 홀로 향했다.

 

 

호텔에서 주요 관광지로 가는 200번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중간에 베를린 필하모닉 홀 정류장이 있다.

 

그래서 이 노란 건물을 자주 보긴 했지만 드디어 오늘, 들어가는 날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하는 공연을 본다는 건 어떤 사람에겐 대단한 일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다.

 

캄프 누 에서 축구 경기를 본다든가, 부도칸 에 가서 라이브 공연을 본다든가 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터.

 

아무튼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몇 차례 공을 들였다.

 

일정을 한번 바꾸는 바람에 처음에 예매했던 리카르도 무티의 공연은 공으로 날릴 뻔 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티켓 환불 따위 해 주지 않는다. 결국 그 공연은 절반 이하의 가격에 누군가 횡재를 했다.ㅜㅜ)

 

처음부터 꼭 사이먼 래틀의 공연을 보려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일정에 맞추다 보니 구스타보 두다멜과 인연이 닿았다.

(2018.6.8, 6.9)

 

https://www.digitalconcerthall.com/ko/concert/23517

 

 

이때가 2017년 2월. 결국 3월초쯤 이 공연도 매진됐다.

 

베를린 여행을 계획하신 분들이라면 일정을 잡자 마자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 예매를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국내에서 40~60만원씩 하는 티켓을 10만원 내외로 살 수 있다. 물론 매진되기 전에 손이 닿아야 가능하다.

 

아, 베를린에 온 김에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이나 한번 보고 가면 어떨까, 했을 때 늘 좌석이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 두시길.

 

(만약 그랬다면 당신은 매우 운이 좋았던 셈이다. 하긴, 에베레스트도 날씨만 좋으면 운동화 신고 정상 등반에 성공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정문 후문의 공식적인 구분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버스 정류장 반대편인 이 출입구가 약간 후문의 느낌이 난다.

 

멀리서 봐도 그렇고, 가까이서 봐도 그렇고, 이 건물은 이제 오랜 세월 베를린의 상징처럼 여겨져서 자연스럽게 느껴질 뿐이지 처음 건설될 때에는 꽤 말이 많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딘가 가건물 내지는 창고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건물을 설계한 베른하르트 한스 헨리 샤로운 Bernhard Hans Henry Scharoun 님의 구상이었던 것 같은데, 이 양반의 작품들은 대개 다 그냥 상자곽같은 느낌을 준다. 그나마 이 건물은 뭔가 임팩트를 준 덕분(?)인지 서커스 텐트같은 느낌이 들어서 '카라얀의 서커스 Zirkus Karajani' 라고 불린다고 한다.

 

 

해가 긴 베를린. 후문쪽으로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고 있다.

 

 

 

여기까지 왔는데 당연히 인증샷.

 

 

정류장 이름은 그냥 단순하게 'Philhamonie'다. 베를린 필하모닉이니 뭐니 설명이 필요없다는 뜻.

 

1887년, 베를린 필하모닉은 통일 독일의 융성한 기운을 배경으로 태어났다. 17세기, 30년 전쟁의 여파로 신성로마제국이 사실상 해체된 이후 독일은 50여개의 자잘한 나라들로 해체됐다. 표면적으로는 제후국이었지만 사실상 각각의 나라들은 모두 독립국이었고, 19세기까지도 느슨한 상태의 '독일 연방'이 있었을 뿐 하나의 독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1871년,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는 프랑스와의 전쟁('정치적 후광의 대명사' 나폴레옹 3세가 상대였다)에서 승리한 뒤 독일의 통일을 선언했다.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함에 따라 신성로마제국 이후 중부 유럽의 정치적 중심지는 빈에서 베를린으로 이동한다.

 

역사적으로 크게 주목받은 적이 없는 북부 독일의 도시, 일개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에서 전 통일 독일의 수도로 거듭난 '신 수도' 베를린은 새로운 문물의 도움으로 당시 세계 최첨단의 도시로 탈바꿈한다. 당시 세계 문명의 최첨단 기술은 바로 전기였다. 베를린은 전기 활용에서 전 세계를 리드했다.

 

 

1879년, 독일 지멘스 사(지금도 건재한)가 최초로 상용 전철을 개통시킨 도시가 바로 베를린이었다. 이런 세련되고 멋진 신도시에는 거기 걸맞는 문화의 향기도 필요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베를린 필하모닉이 탄생했고, 초대 지휘자로 당대 최고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가 취임했다.

 

(한스 폰 뷜로는 브람스와 바그너의 대다수 작품을 초연한 '전문 지휘자의 시조'로도 유명하지만 바그너에게 아내를 빼앗긴 남자로도 유명하다. 문제의 여자는 리스트의 딸 코지마. 아마도 코지마가 바그너에게 가겠다고 한 뒤 뷜로는 스승인 리스트에게 찾아가 징징댔을 것 같고, 리스트는 뷜로에게 이런 식으로 얘기했을 것 같다.

"울지 말게. 원래 내 딸은 자네가 감당할 여자가 아니었어.")

 

 

20세기 들어 베를린 필하모닉은 2대 지휘자 아르투르 니키슈, 3대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에 의해 세계 최강의 자리를 점점 더 굳혀 간다. 물론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겪으면서 나치 부역 혐의의 망령이 이 오케스트라의 원죄처럼 드리우게도 되지만, 중론은 '음악이 뭔 죄냐' 쪽인 것 같다.

 

예술가에게도 정치적인 공정성, 혹은 도덕적/이성적 엄밀성을 요구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예술가는 그가 구현하는 미적 결과물의 가치에 와 개인의 도덕성을 구분해서 평가받아야 하는 존재인가. 이 질문은 아마도 먼 훗날까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지휘자로서 위대했던 푸르트벵글러 앞에서 인증샷.

 

이 바로 옆에 카라얀의 사진도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을 얘기하면서 카라얀을 건너 뛸 수는 없다. 단지 클래식 음악을 얘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20세기 인류 문명을 이야기 하면서 카라얀과 동급으로 거론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해 보면 그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끼게 된다. 피카소? 엘비스? MJ? 아인슈타인? 마틴 루터 킹? ...마하트마 간디?

 

워낙 유명한 양반이다 보니 그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그치지 않는다. 이미 정평이 난 인성 문제는 차치하고(답이 나와 있다), 정말로 정말로 그가 최고의 지휘자인가...하는 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많은 사람들의 소일거리가 되어 온 것 같다.

 

물론 감히 그런 논의에 끼어들 수준은 안 되는 것을 인정하고 얘기하면, 어쨌든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취향상 그보다 다른 지휘자를 더 좋아할 수는 있어도, 그를 무시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특히 그 말도 안 되는 레퍼토리의 폭을 보면 정말 그는 난 사람이다.

 

아울러 그분이 남겼다는 말씀들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말은 이거다. 

 

"당신은 오페라를 눈을 감고 보나?"  

 

 

어쨌든 베이브 루스가 뉴욕 시민들에게 양키 스타디움을 선사했듯 카라얀이 없었다면 이 콘서트홀은 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각별한 건물인데,

 

건물 안에서 받은 인상은 '참 이모저모로 각졌다'...는 것.

 

 

드디어 들어왔다.

 

대공연장은 2440석.

 

 

공연장 안으로 들어와도 문제의 각진 느낌, 혹은 2015년 이후 렉서스의 그릴 디자인 같은 느낌은 이어진다.

 

하긴 렉서스 디자인을 여기서 따온 것일 수도 있을 듯.

 

 

네. 이거 얘기였어요.

 

 

정면의 괜찮은 자리.

 

베를린에서 공연장에 3번 갔는데 세번 모두 관람객의 평균 연령이 60세는 되는 것 같았다.

 

(농담이 아니라 베를린 오페라의 경우엔 인터미션이 15분이라도 짧을 것 같았다. 관객들의 평균 이동 속도가...)

 

그나마 베를린 필하모닉은 꽤 젊은 편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1라운드 끝.

 

존 아담스의 '시티 누아르 City Noir' 라는 재즈 냄새가 짙은 곡을 연주했다.

 

곡이 끝났는데 아무도 박수를 칠 수가 없었다, 는 말로 감상을 대신하고자 한다.

 

(아마도 관계자 누군가가 박수를 치기 시작한 듯 하다.)

 

 

 

 

 

인터미션이 거의 30분쯤 되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들 뭔가 먹고, 마시고, 떠든다.

건물 1층 뿐만 아니라 꽤 넓은 이 안마당이 관객들로 가득 찬다.

 

이 시간이 매우 의미있게 느껴진다.

 

공연이 곧 시작이라는 직원들의 안내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두다멜의 성명절기인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다. 이번 여행의 앞부분인 프라하에서 드보르작의 묘소를 방문하고 오는 길이었다는 점에 의미를 더욱 더 부여하고 싶다.

 

아무튼 두다멜의 이 곡 연주는... 말해 뭘 할까, 박력 그 자체.

 

 

예술의 전당 같으면 어림없겠지만 두다멜의 앵콜 무대 때 거의 모든 관객이 일어서서 박수를 치며 사진을 찍는다.

 

이래도 되나 싶지만 베를린에 오면 베를린 법을 따라야 하는 법.

 

 

두다멜은 자신이 받은 꽃다발을 단원들에게 한송이씩 나눠주며 활짝 웃었다.

 

 

 

공연이 끝나도 하나도 급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

 

해가 지고 밤이 되니 제법 쌀쌀한데 다들 공연장 밖에 서서 웃고 떠들고... 버스가 와도 곧바로 타고들 갈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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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들른 곳은 나름 공룡 뼈 마니아(공룡 마니아 아니다)인 마나님의 요청에 따른 베를린 자연사 박물관.

 

 

 

멋지긴 한데 이 브라키오사우르스의 뼈는 어째 좀 진실성이 결여되어 보인다.

 

저 표본의 몇%가 진짜 뼈일지... 음...

 

 

아무튼 세계 어디를 가나 어린이들은 역시 공룡의 편.

 

그런데 자연사 박물관에서 다음 목표인 함부르크 역 미술관까지 가는데 동선이 좀 꼬였다.

 

가이드북 상으로는 두 포인트가 지척이라고 했으나,

 

도보로 약 30분 거리...

 

 

어쨌든 나타나기는 나타났다. 함부르크 역 Hamburg Bahnhof 미술관.

 

이름은 함부르크역이지만 현재의 베를린 메인 역이 나오기 전까지는 베를린의 메인 역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미술관이다.

 

오르세와 같은 팔자. 건물로서는 참 괜찮은 팔자라고 할 수 있겠다.

 

 

건물 밖은 한산한데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은,

 

 

그렇다. 누가 봐도 로버트 인디애나. 약간 뒤집었을 뿐이다.

 

 

안셀름 키퍼(Anselm Kiefer)의 'Folk Thing Zero'라는 작품이 문 앞을 지키고 있다.

 

인디애나만큼 유명한 작가는 아닌 듯 하지만 아무튼 인상적이다.

 

 

 

문을 들어서면 이런 비현실적인 사이즈가 기다리고 있다. 역시 기차역이었던 건물다운 포스.

 

그런데 여기서 정지 신호등이 켜졌다.

 

.

 

동행인의 에너지 소모가 심해 충전이 필요한 상황.

 

사라 뷔너(Sarah Wiener)라는, 아마도 사장님의 성함이 내걸린 미술관 내 레스토랑.

 

 

 

 

바나나가 들어간 얇은 팬케이크. 비싸지만 맛있다.

 

여기서 식사하면 60~70유로 정도 예상. 미술관 옆 레스토랑이 대부분 그렇듯 미니멀하고 천장 높은 분위기도 일품이다.

 

 

 

자, 본격적으로 관람 시작.

 

 

일단 1층 동쪽에 현대 미술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거장들의 작품을 한데 모아 놓았다.

 

'우리 이런 미술관야'라는 느낌의 화력시범이다.

 

 

로이 리히텐스타인의 '해변 마을 Coastal Village'를 시작으로,

 

 

 

 

전시 스타일도 시원시원.

 

 

로버트 로셴버그의 '마인 Mine'.

 

...광산 관련은 아니겠지.

 

 

 

로셴버그의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이 '뮬 사슴 Mule Deer'.

 

뮬 사슴은 그냥 사슴의 종류다. 거꾸로 매달린 의자가 사슴 머리 박제를 연상시키고, 그 아래는 거울이다.

 

보는 사람 자신을 볼 수 있게 한 설계.

 

 

 

그리고 싸이 톰블리를 넘어 저 멀리 보이는 저 작품은...

 

 

조셉 보이스의 'Das Kapital Raum'.

 

(다스 카피탈은 그 자본론 맞다.)

 

역시 조셉 보이스답게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 없다.  

 

궁금하신 분들은 해설을 보시기 바람.

 

 

 

아무튼 누가 봐도 앤디 워홀의 누가 봐도 마오 형님을 다시 보고 돌아나오면,

 

 

사이즈가 사람을 압도하는 메인 전시장.

 

그런데 이게 하나의 작품이라는거다.

 

 

이런 광활한 공간에 세 개의 데스크가 설치되어 있다.

 

관람각은 이 세 데스크를 거치며 데스크 직원의 응대를 받는다.

 

(데스크 직원의 머리 뒤에는 약간 공허할 수도 있는 목표 구호 따위가 쓰여 있다.)

 

 

데스크에서 설명을 들은 뒤에는 관람객도 무슨 서류에 서명을 하게 되어 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 잘 모르겠다.)

 

 

이 작품의 제목이다. 에이드라언 파이퍼, '개연성있는 신용 등록: 게임의 법칙 #1~3'

Adrian Piper, The Probable Trust Registry: The Rules of the Game #1~3

 

...음;; 2015 베니스 비엔날레 대상 수상작이라고.

 

뭔가 현대 사회의 지나친 합리성/공식성 추구에 대한 비판이라고 합니다만.

 

 

그 다음은 대규모 작가진이 참여하는 기획 전시.

 

 

 

댄 플래빈의 '무제'.

 

궁금한 것은 왼쪽의 조명이 작품에 포함된 요소일까, 이 건물에 포함된 요소일까 하는 것.

 

 

이 조명 얘기다.

 

 

흥미로운 요소. 이 전시를 보는 동안, 근세 노동자 복장을 한 인물이 전시장 안을 왔다갔다 한다.

 

처음에는 전시장 관리인인가 했는데 행동거지를 보면 전시의 일부다.

 

조셉 보이스의 Unschlitt/Tallow.

 

 

그밖의 상설 전시에는 George & Gilbert를 비롯해 상당히 흥미로운 전시품이 많있다.

 

 

 

물론 가장 큰 볼거리는 미술관 그 자체.

 

 

 

온 카와라 On Kawara의 I got up.

 

 

그리고 이 미술관이 미는 아티스트인 듯한 한네 다르보벤 Hanne Darboven의 Menschen Und Landschaften.

 

 

직역하면 '인간들과 풍경' 이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룬 대작(?).

 

 

허위허위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긴 베를린의 햇살도 저물어 가고 있다.

 

살짝 어두워지니 건물의 조명이 더 빛을 발한다.

 

 

나오다 보니 예사롭지 않은 나무 장식이 눈길을 끈다.

 

 

 

고된 하루를 보낸 뒤끝으로 호텔로 돌아와 기절.

 

 

그리고 비상용으로 아껴 뒀던 호텔 바로 옆 그리스 식당에서 수블라키를 먹었다.

 

수블라키는 언제나 옳다. 감탄할 만한 맛.

 

 

베를린에서 5박인데 5박이 하루 같다.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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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섬의 박물관들 가운데 가장 사진발이 잘 받는 곳을 꼽자면 아무래도 구 국립미술관 Alte Nationalgalerie 일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파란 하늘 아래 있으면 자못 멋지다.

 

 

 

독일어 한 마디도 못하지만 Alte는 old, Neue는 new다. 따라서 Alte가 있으면 Neue가 있다.

 

(예를 들어 뮌헨에도 Alte Pinakothek 과 Neue Pinakothek이 나란히 있다.)

 

물론 어디까지가 Alte고 어디부터 Neue 일까는 그때 그때 다를 수밖에 없지만 대략 20세기 이전이냐, 이후냐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 베를린의 구 국립미술관도 19세기 후반, 살짝 넘쳐 봐야 20세기 초반까지의 독일 화가들이 남긴 작품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베를린의 신 국립미술관, 즉 Neue Nationalgalerie 은 언젠가부터 수리에 들어가 아직 폐쇄되어 있었다. 언제 다시 개장할지는 모르겠다. 물론 파울 클레나 막스 에른스트 등 20세기 전반 베를린을 빛나게 했던 작가들의 작품은 좀 더 작은 국립미술관 - 앞에 방문기를 썼던 두 미술관도 규모가 크지 않아 그렇지 당당한 Nationalgalerie다 - 에서 꽤 많이 보았으므로 크게 아쉽지는 않다.)

 

어쨌든 지금 온 곳은 Alte 니까 19세기 이전 독일 화가들의 작품을 주로 소장하고 있다.

 

 

 

내부도 뭔가 부티가 풀풀.

 

 

언젠가부터 유럽 미술관에 들어가 보면 이런 어린이들을 찍게 된다.

 

테이트 모던, 프라도, 알테 피나코텍, 어디나 이렇게 엎어져 그림을 그리는 어린이들이 있었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오크가 있는 수도원'. .

 

프리드리히라면 누구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생각하겠지만 그 그림은 함부르크에 있다.

 

 

이 박물관의 스타는 아르놀트 뵈클린 Arnold Boecklin. 그의 45세 때 자화상이다.

 

(독일 상징주의의 대표 화가 중 한명이지만 사실은 스위스 출신이다)

 

자신의 어깨 뒤에서 사신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광경을 그리다니. 악취미긴 한데,

 

 

세기말의 냄새가 물씬 나는 이런 '십자가 아래에서의 눈물' 같은 그림이 그의 작품이다.

 

 

그리고 수없이 패러디된 그의 대표작. '죽음의 섬'.

 

딱 봐도 음산하고 무섭다. 2차원의 그림인데 3D 효과도 너무나 선명하다.

 

 

자세히 보니 절벽에 AB 라는 그의 이니셜이 써 있다.

 

 

그리 큰 그림이 아닌데도 을씨년스러움이 온 전시실을 휘감는다.

 

 

역시 인기다.

 

 

'Ocean Breaker (The Sound)' 라는 제목인데, 오딧세우스 신화의 키르케를 묘사한 것일까?

 

 

 

그런데 미술관의 전시 상태에 좀 불만이 있다.

 

그림에 바로 자연광이 떨어지는 환경이라 반사가 심하다. 그 탓에 그림의 세부를 보기가 쉽지 않아 아쉬웠다.

 

아니 세계적인 미술관이 왜 이래.

 

 

그리고 지나는 길에 이건 누가 봐도 오노레 도미에의 누가 봐도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

 

 

 

갑자기 이 형님은 여기 왜 계신지.

 

 

그리고 독일에도 인상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막스 리베르만 Max Liebermann의 '정원의 벤치'

 

 

중간의 테라스에서 베를린 돔이 보인다.

 

3층과 2층에서는 사실 뵈클린과 프리드리히 외에 큰 관심 가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았다(개취).

 

내 생각에는 1층에 있는 20세기 초 독일 화가들의 컬렉션이 아무래도 이 미술관의 진수가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프란츠 폰 슈투크 Franz von Stuck의 '죄악'.

 

 

 

여인의 얼굴과 뱀의 표정에서 사악함이 뭉클뭉클.

 

 

'키르케를 연기하는 Tilla Durieux' 라는 제목. 역시 비슷한 느낌이다.

 

틸라 두리유(?)는 당대의 유명한 여배우라고.

 

 

 

이런 사악한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슈투크는 이렇게 생겼다.

 

어째 그럴 것 같은 얼굴이다.

 

 

역시 슈투크의 작품인 '폰(Faun)과 인어'. 그런데 인어가 왜 하체가 갈라지는거야. ;;

 

혹시 인어 스타킹?

 

 

그러고 보니 이 전시실의 이름은 분리파(Secessionen)/ 세기말(Jahrhundertwende).

 

프랑스에서 기성 화단에 반항해 일어난 것이 인상파라면 좀 늦은 독일에선 분리파가 기성 화단을 부정하고 일어섰다.

 

슈투크 등의 화가들이 뮌헨에서 일어난데 이어 빈에서는 클림트가 그 깃발을 이어받은 셈이다. 

 

물론 분리파는 사조의 이름은 아니다. 다만 슈투크와 클림트는 상징주의의 화풍에서 공통점이 있는 셈이다.

 

 

토마스 데오도르 하이네의 '악마'.

 

 

이 전시실의 분위기와 딱 맞는다.

 

 

막스 클링거의 '조개껍질을 탄 비너스'

 

 

프레디 머큐리를 연상시켜서 담았다. 아르투르 캄프 Arthur Kampf의 '연기자' (광대?)

 

물론 전통적으로 베를린을 대표하는 화가는 이들보다는 아돌프 멘젤 Adolph Menzel 이다.

 

프로이센 왕국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이런 우아한 궁정 그림이 멘젤의 대표적인 화풍인데,

 

여기 전시된 다른 그림들을 보면 꼭 그렇게 우아한 것만을 고집한 사람은 아니다.

 

 

 

뭔가 격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 그림은,

 

 

제목이 '프라하의 유태인 묘지 Judenfriedhof in Prag.

 

움베르토 에코의 '프라하의 묘지'가 생각나는 그림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기심.

 

 

이렇게 해서 박물관 섬의 다섯개 박물관 가운데 세 개를 기를 쓰고 돌아봤다. 꽤나 힘들다.

(3개를 가든 5개를 가든 입장료는 모두 베를린 뮤지엄 패스로 해결된다. 꼭 사라.)

 

베를린 구 박물관과 보데 박물관까지는 여력이 미치지 않아 그대로 패스. 구 박물관은 그리스/로마 시대 조각이 많다고 하고, 보데 박물관은 중세 기독교 관련 유물이 많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무리일 것 같아 나름 순위를 매겨 상위 3개를 돌아봤다.

 

미안해요. 건물 외관 예쁜 보데 박물관. 그리고 정면 멋진 구 박물관.

(하지만 다음에 와도 들르겠다는 말은 못하겠어요. ;;)

 

아직 가 볼 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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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박물관 섬의 다섯 박물관은 정말 뭉쳐 지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관람객들은 멀리 왔다갔다 하지 않아서 좋지만 외곽에 위치한 구 박물관, 신 국립미술관, 그리고 보데 박물관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건물 전경을 찍기가 쉽지 않다.

 

아무튼 그래서 페르가몬 박물관에 이어, 신 박물관 Neues Museum 도 전경은 없다.

 

 

 

일단 박물관/미술관은 제일 높은 층부터 간다는 원칙에 따라 3층(그러니까 4층)으로 직행.

 

가 보니 인류 발달사를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는 대형 모니터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석기시대부터 인류가 발달해 온 과정을 간략하게 보여주는데, 마음 바쁜 관광객도 자리를 지키고 보게 할 만큼 그래픽과 내용이 흥미로웠다.

 

 

 

3층 한 구석에는 이 박물관의, 어쩌면 베를린 전체를 대표하는 간판 유물인 '황금 모자 Berliner Goldhut'가 있다.

 

그렇다. 저 가운데 번쩍번쩍 빛나는 뾰죽한 물건이 바로 모자다.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생겼다.

 

 

유물의 비중이 비중인 만큼 설명 페이지를 붙여 둔다. 청동기시대의 왕 또는 제사장 같은 신분의 사람이 썼던 것으로 추정될 뿐, 이 황금모자와 관련된 다른 사료나 증거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그냥 생각만 해 봐도 그 옛날에 저 정도의 황금 모자를 만들었을 정도라면 상당히 강력한 지도자였음은 분명할 것 같다.

 

그런데 그 옛날에도 금 좋은 건 다들 알았었다니.

 

 

 

황금 모자를 넋놓고 바라보다 박물관의 다른 한 편으로 넘어간다. 박물관 중간의 계단실이 이 정도의 규모다.

 

 

창밖으론 잠시 후 갈 신 국립미술관이 보인다.

 

 

기원전 5천년 전 정도의 그릇받침.

 

 

신 박물관의 3층은 어찌 보면 '문명 이전의 베를린 지역'에 대한 향토 박물관 같은 느낌을 준다.

 

그 당시 석기/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사냥했을 엘크의 뼈가 전시돼 있기도 하다.

 

엘크, 진짜 크다.

 

 

약 1만3천년 전의 것 정도로 추정되는 말 모양의 토기 하며,

 

 

 

베를린 인근 지역을 거쳐간 수많은 문명의 흔적들이 전시돼 있다.

 

하기야 대륙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와는 달리, 대륙 복판의 베를린 지역은 수많은 민족들이 밀고 들어왔다 밀고 나기기를 반복했을테니 흘리고 간 유물도 다양할 수밖에.

 

 

 

라고 생각하면서 2층으로 내려오면 동네 잔치는 이제 그만.

 

이집트 어딘가에서 온 유물들이 줄줄이 줄줄이 쏟아진다. 시종 목상이다.

 

 

 

 

그런데 시종 Chamberlain, 혹은 Hepetni 라고 이름 붙은 좌상들은 전부 저렇게 오른손은 뭔가를 쥐고, 왼손은 편 상태다.

 

뭘까?

 

 

 

아이들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축소해서 표현하는 스타일도 흥미롭다.

 

 

 

이런 식으로 이집트 유물들이 죽 전시되어 있는데,

 

다른 유럽 지역 미술관/박물관에 비해 사진 촬영에 대단히 관대한 베를린 사람들이 유독 찍지 못하게 하는 유물이 있다.

 

이집트 출신으로 클레오파트라 다음으로 유명한 여자.

 

물론 나도 엄중한 관리를 뚫고 찍을 생각까지는 없었다. ABC뉴스에 활용된 보도 사진.

 

아마도 고대의 여인상 가운데 가장 유명한 조각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진으로만 봤을 때에는 목상인가, 아니면 토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은 석회암(limestone) 조각이다. 그 밖에 장식용의 접착재료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봐도 미인이지만 당시에도 미인으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BC 14세기 이집트의 미적 감각이 현대인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건 이상하게 안도감을 준다.

 

남편 아케나톤 Ahkenaton 은 전통적인 다신교 신앙을 가졌던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신 아톤 Aton 을 유일신으로 하는 종교개혁을 시도했을 정도로 강력한 왕이었다(이상하게도 옛날 교과서에서는 이크나톤이라고 배웠다. 이집트어에서 모음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아마르나 유적지에서 당시의 대 조각가인 투트모세 Thutmose의 작업장을 발굴하다가 출토된 덕분에, BC 1345년이라는 제작 연도도 추정 가능했다.

 

이 완벽한 조각상의 한가지 흠결은 수정으로 조각된 오른쪽 눈과 달리 왼쪽 눈이 없다는 것. 이 때문에 네페르티티가 본래 왼쪽 눈이 없는 인물인지, 아니면 단순히 조각상이 파손된 것인지도 얘기가 분분했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아케나톤과 네페르티티는 그 유명한 투탄카멘의 부모라고도 한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이설들이 있다. 다른건 다 떠나서 BC 14세기 인물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상세한 기록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는 데 이집트 문명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솟는다.)

 

아무튼 실물로 본 네페르티티, 역시 미인이더라.

 

 

 

네페르티티의 방을 지나가면 그 못잖게 유명한 젊은이가 있다.

 

크산텐의 젊은이. Xantener Knabe.

 

 

 

라인강까지 진출한 로마인들의 유물이다.

 

BC 1세기 경의 것으로 1858년 라인강의 어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

 

 

아마도 오른팔은 이런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 검투사들의 모습을 조각한 것들이 많은데,

 

(당연히 저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로마인들이 흘린 물건들)

 

 

 

그런데 너무 귀엽잖아.

 

 

응? 저게 에... 에로스라고?

 

 

거기 비하면 이건 누가 봐도 머큐리(헤르메스) 이긴 하네.

 

 

 

그리고 이렇게 그럴듯한 로마 시대 조각품이 있는가 하면

 

 

갑자기 이런 토템 조각 같은 것이 등장한다.

 

이 박물관... 뭔가 약간 어지러워.

 

그리고 다시 이집트 조각과 묘지 벽화의 습격.

 

 

그리고 이 박물관의 마지막 스타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베를린의 녹색머리 Berlin Green Head.

 

 

녹색편암을 이용한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조의 작품. BC 1세기 언저리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가 살던 시대의 작품이라는 얘기.

 

그런데 놀랍도록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돌의 가공 상태는 물론이고 좌우 균형에서 뒤통수의 주름까지, 완벽하다.

 

 

마지막으로 이집트 무덤 속으로 들어간다.

 

 

0층이 바로 각종 관을 전시한 곳이다. 주로 이집트에서 출토된 것들이다.

 

1층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뜨악 놀란다.

 

 

우르크, 혹은 와르카라 불리는 고대 도시의 거대한 꽃병....

 

꽃병이라기엔 좀 너무 크고, 예식용의 꽃꽂이용 청동 항아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3천년 넘은 물건이라고.

 

 

 

이런 물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긴 처음인데 멋지다.

 

 

이건 로마시대의 석관(Sarcophagus).

 

사르코파구스의 어원은 '사람을 먹어치우는 돌'이라고 한다.

 

 

 

이집트 석관은 내부에도 이렇게 조각이 되어 있다.

 

 

뭘 많이 보다 보니 화장실 표시도 굉장히 있어 보인다.

 

 

어느새 대낮.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이럴땐 매점행이다.

 

 

 

그리고 이렇게 날씨가 좋아져 있을 줄이야. 박물관 앞 잔디밭에 앉기 딱 좋은 날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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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가몬 박물관 2층으로 올라가면 뜬금없이 방 하나가 나타난다.

(혼동을 막기 위해 다시 한번 강조하면, 한국식으로는 3층에 해당한다)

 

알레포의 방 Aleppo Room 이라는 전시물이다.

 

 

 

이 대목에서 알레포가 누구야, 라고 하시면 안됨.

 

왜냐하면 알레포는 지명이라서.

 

 

 

지도 보시다시피 알레포는 레반트 지역의 북쪽, 시리아 북부의 도시다.

 

십자군 전쟁 관련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오래 된 도시.

 

 

 

이 방은 17세기 초, 알레포의 기독교인 거주구역에 있던 한 부유한 상인의 집에서 방 하나를 통째 뜯어내 재현한 것이다.

 

(독일 분들은 뭔가 통째 뜯어와 재현하는 걸 참 좋아하지 싶다.)

 

 

옆방은 여전히 복원 공사가 진행중이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방 안의 치장이 정교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는 엄청난 양탄자의 습격이다.

 

 

 

뭔가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이런 작품도 있고,

 

(왠지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보이는 형상들이 날고 있다)

 

 

 

이 박물관 전시품들 중 가장 큰 카펫. 7.68 x 2.98 m 크기로 무게만 50kg에 달한다.

 

무굴 제국의 샤 자한이 자신의 왕궁 또는 아내의 무덤(타지 마할)에 깔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그렇다고 인도에서 만든 것은 아니고, 만들어진 곳은 바그다드 근처로 추정된다고.)

 

 

 

 

본래 카펫에는 동물 그림은 넣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 이 카펫은 용과 불사조가 그려져 있다.

 

뭐 실물이 있는데, 해도 되는 거겠지.^^

 

아무튼 양탄자 사진만 한 20장 찍어왔는데 양탄자에 토하실 수도 있으니 이 정도로 한다.

 

 

 

안쪽으로 죽 들어가 보면 역시 꽤 큰 형상에 눈길을 끈다.

 

므샤타 Mshatta 의 궁전 성벽을 홀랑 뜯어 와서 전시중이다.

 

Mshatta를 대체 어떻게 읽어야 하나... 음샤타? 므샤타? 어디를 봐도 별 지침이 없어 곤란했는데 유네스코 페이지는 친절하게 Mushatta 라고 표기해 놓고 있다. 고마워요 유네스코.

 

(바르셀로나 화이팅)

 

 

 

 

 

우마이야 조 Umayyad 는 이슬람교의 성립 이후 최초로 등장한 통일 아랍 왕조다.

(아랍어를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으므로 중역 과정에서 옴미아드 혹은 옴미야드 조라고 배운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사실 그런걸 누가 다 기억해. ) 

 

지배자는 칼리프 caliph 혹은 칼리파 Khalifah. 기독교 문화권에 비교하면 칼리프는 교황, 술탄은 황제라고 보면 된다...고 예전에 배운 것 같다.

 

 

이 므샤타 유적이 건설된 시기는 8세기, 그러니까 우마이야 조의 말기라고 보는 것 같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안 가봤지만 공항 가는 길이라고)

 

 

 

이런 유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뭐 여기서 뜯어가고 저기서 뜯어가고... 했겠지.

 

그래도 아직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이라니 대단하다.

 

사람이 사는 게 유적 보호에 좋은지, 안 사는게 유적 보호에 좋은지, 늘 궁금하다. 

 

 

 

아무튼 페르가몬 박물관에 와서 30여년만에 들어보는 고유명사들을 다시 영접하려니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이 일 한국(Il-Khanate)만 해도 그렇다.

 

몽골 제국은 징기스칸 사후 서서히 대원제국과 네 개의 한국으로 정리되어 간다. 중국과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원(元)제국은 익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 원나라고, 네 개의 한국은 각각 일 한국, 킵차크 한국, 차가타이 한국, 오고타이 한국이다.

 

차가타이(징기스칸의 2남)와 오고타이(징기스칸의 3남, 공식 후계자) 한국은 중앙아시아 지역을 남북으로 나눴고, 징기스칸의 손자들이며 위대한 정복자 바투(친자 여부가 의심스러운 징기스칸의 장남 주치의 아들)와 훌라구(4남 툴루이의 아들, 쿠빌라이의 동생)는 그보다 더 서쪽으로 진출했다. 그래서 훌라구는 아랍 지역을 차지해 일 한국을, 바투는 러시아를 거쳐 폴란드와 헝가리까지 진출해 킵차크 한국을 세웠다. 만약 바투가 몽골 제국의 황위 계승 분쟁 때문에 귀환조치를 받지 않았다면 서유럽도 몽골 제국의 일부가 되었을 지 모른다.

 

[징기스칸 전기와 그 부록 - 징기스칸의 후예들이 세운 나라들 - 을 열심히 읽은 것이 근 40년 뒤에 이런 데 도움이 될 줄이야.]

 

어쨌든 독일 제국의 관심사는 중근동 지방이었으므로 페르가몬 박물관은 일 한국의 유물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물론 그런 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알 뿐이지, 그 나라의 문화가 어땠는지, 심지어 어디 말을 썼는지, 그런 거야 알 바 아니다. 일 한국의 영토가 이란, 이라크, 동부 터키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었으니 당연히 그 지역 문화에 흡수됐겠지... 하는 정도.

 

생각해보면 학교 다닐 때 몽골 제국의 후예들이 4개의 한국을 세웠다는 말에 오오 우리가 몽골 제국의 후손인가 하는 바보들도 좀 있었는데, 이 한국은 韓國이 아니라 汗國, 즉 '칸(汗, Khan)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Khanate.

 

(요즘은 이렇게 한국이란 이름이 혼동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한국에서도 '칸국'이란 말을 더 많이 쓴다고 한다.)

 

뭐 그렇다고.

 

 

그렇다고 생각하고 보니 어쩐지 짙은 몽골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알함브라에서 본 듯한 이런 것도.

 

알함브라 얘기를 하고 있자니 진짜 알함브라에서 뜯어 온 것도 있다.

 

 

알함브라 돔 Alhambra Dome 이라고 불리는 목조 천장

 

알함브라의 나스르 궁을 가 보신 분들은 이것과 거의 비슷한 천장을 많이 보셨을 거다.

 

차이가 있다면 이 천장은 목조고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다.

 

아르투르 폰 귀너 Arthur von Gwinner라는 독일 은행가가 알함브라 지역의 부동산을 샀다가 스페인 정부에 다시 기증한 댓가로 이 목조 천장을 뜯어 올 권리를 얻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유물 하나.

 

상아로 만든 뿔피리(Oliphant)다. 서사시 '롤랑의 노래'에 나오는, 롤랑이 불고 죽은 바로 그 피리...는 아니지만, 아무튼 그 피리와 같은 종류의 올리펀트다. 길이 50cm 정도. 꽤 크다.

 

 

중세 내내 아랍령이었던 시실리 지역에서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모양의 올리펀트는 유럽 전역과 북아프리카에 걸쳐 발견된다. 심지어 조각된 문양에도 비잔틴, 아랍, 기독교 양식의 특징이 골고루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 뿔피리 하나에 유럽과 중근동의 역사가 다 담겨 있는 셈이다.

 

 

 

아무튼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사이에 페르가몬 박물관을 훑고 나오는 동안 우마이야 조, 사마라, 압바스 조, 파티마 조, 티무르 제국, 호라즘, 셀주크 투르크, 사파비 조, 앗시리아, 사산 조, 수메르 등등 언젠가 뇌 한 구석에 들어왔다 나갔던 수많은 고유명사들이 다시 한번 머리 속을 명멸하는 것을 느꼈다.

 

아마 죽을 때까지 내가 저런 고유명사들의 의미를 다시 알게 될 일은 없을 지도 모른다. 그만치 인생은 짧고, 인류가 구축해 놓은 유산들은 너무나 많다.

 

50이 되면 이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건 그만 둘 때가 된 거라고 며칠 전에 한 선배가 말씀하셨지만, 아직은 그 이야기를 부정하고 싶다. 세상은 넒고 알고 싶은 건 아직 너무나 많은데.

 

 

사실 페르가몬을 보고 왔지만, 정작 페르가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거대한 '페르가몬의 제단'은 보지 못했다.

 

기적적으로 2차대전 때 살아남은 이 유물은 현재 대대적인 보수에 들어가 있고, 2020년에야 다시 공개될 전망이다.

 

밀레투스의 시장 문도 어마어마했지만 이 제단에 비하면 소규모 유물인 셈인데.

 

 

과연 언제 또 베를린에 들러서 저 제단의 계단을 직접 밟아 볼 일이 있을까, 솔직히 장담할 수가 없다.^^ 

 

아무튼 저 제단 때문에 페르가몬박물관에 가 볼 날을 꿈꿨지만, 저 제단 없이도 페르가몬은 충분히 위대했다.

 

 

 

밖으로 나오니 하늘엔 한껏 구름이 끼어 있다.

 

박물관 하나 보고 나왔는데 벌써 다리가 아파 온다. 자, 박물관 섬에서 두번째 박물관으로 황금 모자를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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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걷는 날이 될 거란 확신 때문에 아침을 든든히 먹기로 했다.

 

(물론 다른 날이라고 부실하게 먹은 건 아니겠지.)

 

베를린 풀먼 호텔의 조식은 지금까지 가 본 수많은 호텔들 가운데서도 손끕을만 한 퀄리티다. 너무 맛있고 재료도 풍성하다.

 

 

 

 

 

베를린을 가로(세로?) 지르는 슈프레강 한 복판에 양말같이 생긴 약간 길쭉한 섬이 있다.

 

이 섬의 이름이 바로 박물관 섬이다. 독일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다섯개의 박물관이 이 섬에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섬의 왼쪽, 그러니까 북서방향에 다섯개가 오밀조밀 몰려 있다.

 

 

 

이렇게 다섯개가 사이좋게 붙어 있다.

 

루스트가르텐 Lustgarten 이라고 불리는 정원 쪽에서부터 A. 구 박물관, B. 신 박물관, C. 구 국립 미술관, D. 페르가몬 박물관, E. 보데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사이좋게 차곡차곡 붙어 있다.

 

사실 이렇게 보면 맨 앞(?)에 나와 있는 구 박물관이 뭔가 약간 왜소해 보이는데,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다.

 

 

 

베를린 관광의 필수 노선인 시내버스 200을 타고 루스트가르텐 Lustgarten 역에 내리면 제일 먼저 보이는 건물은 바로 이 어마어마하게 큰 베를린 돔이다. 이 사진은 약간 옆에서 봐서 그런데, 정면에서 보면 정말 위압감 느끼게 큰 건물이다.

 

 

 

 

그런데 시선을 약간 왼쪽으로 돌리면 다른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잔디밭이 바로 루스트가르텐이고 저 앞의 무식하게 큰 건물이 바로 구 박물관.

 

시선이 꽉 찬다. 어마어마하게 좌우로 길고 크다.

 

 

 

 

 

 

 

그리고 이 풍경이 보일 때 쯤이면 베를린 돔 앞을 지나가고 있다.

 

베를린 돔도 꽤 유명한 관광 스팟이지만 미안하다. 너한테까지 할애할 시간은 없단다. 오늘 형이 좀 바빠.

 

 

 

 

사실 저 어마어마하게 큰 구 박물관은 그냥 통과.

 

박물관 마니아로서 안타깝지만 저 구 박물관까지 돌아보다간 다리가 부러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내셔널갤러리 앞을 통과하면,

 

 

 

뭔가 공사판 한 구석처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야 오늘의 첫번째 목적지 페르가몬 박물관 Pergamon Museum 을 갈 수 있다.

 

 

 

자. 복습이다. 루스트가르텐에서 A, B, C를 모두 통과해야 D, 즉 페르가몬 미술관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건물 자체가 저렇게 다른 건물들에 포위되듯 둘러싸여 있어 어떻게 해도 전경을 찍을 수가 없다.

 

페르가몬 미술관 외경에 대한 자료 사진이 없는 데에는 다 이런 이유가 있다.

 

하지만 왼지 뒷문 같은 음침한 입구를 통해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즉 0층을 통과해 1층 -한국의 2층 - 으로 올라간 순간)

 

 

 

건물 내부인데 이런 경악스러운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이슈타르의 문'이다.

 

베를린에 수없이 많은 박물관들이 있고, 거기에도 나름 가치 있는 유물들이 차고 넘치지만 솔직히 말해 런던에는 대영 박물관이 있고 파리에는 루브르가 있다. 로마? 로마는 도시 자체가 인류사에 남을 유물의 덩어리다.

 

이런 유럽의 슈퍼 박물관들에 대항할만한 베를린 박물관의 에이스가 있다면 아무래도 페르가몬이다. 이 베를린의 자존심 페르가몬을 구경하기 위해서 이 아침부터 박물관 앞에 손님들이 줄을 서는 것이다.

 

(페르가몬 박물관을 가실 분이 있다면 무조건, 개장 시간에 맞춰 줄을 서라. 오후가 되면 줄은 더 길어진다. 박물관 정원제에 따라 일정 인원 이상이 입장한 상태에서는 일단 입장객들이 퇴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원전 6세기, 신 바빌로니아 왕국의 수도 바빌론에 있던 성문 중 하나를 통째로 옮겨 온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바빌론, 공중정원, 니네베, 뭐 이런 얘기로 넘어가면 그게 시대가 어느 시대인지, 전설인지 역사인지 아물아물해진다.

 

(이게 막 지구라트와 바벨 2세가 나올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전설의 시대가 이런 새파란 벽돌의 모습을 하고 눈앞에 나타나니... 감동적이다.

 

 

 

 

파란 벽돌(타일)을 보니 은근히 사마르칸트의 기억이 떠오르는데,

 

생각해 보면 이 파란 벽돌은 사마르칸트에서 본 색보다 조금 짙고 어두운 느낌이 돈다.

 

(물론 14세기 티무르 제국 유적과 6세기 신바빌로니아 유적을 한데 묶어 생각할 이유는 전혀 없다. 어쨌든 그냥 파란 벽돌을 보니 반가웠다는 정도로 정리해 두자. )

 

 

 

문을 등지고 서면 이렇게 성벽의 벽돌 모자이크 부분을 다 뜯어와서 복원해놓고 있다.

 

 

 

 

 

그러니까 외성문에서 내성문으로 들어가는 길이 이런 식으로 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이걸 허락 안 받고 뜯어 온 거라면 정말 기가 찰 노릇인데,

 

페르가몬 박물관 측은 극구 "대영박물관의 엘긴 대리석과는 달리 합법적으로 가져온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뭐 그러려니 할 밖에. 모자이크라기엔 부조에 좀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이 사자들은 바로 마르두크 신의 상징이고,

 

 

 

이건 당시 바빌로니아 신화에 등장하는 용, 뮤슈수(Mushussu)라고 한다. 이 성벽의 부조에 등장하는 동물은 무슈수, 사자, 그리고 역시 신성한 동물인 황소(아우로크 Auroch 라고 한다) 뿐이다.

 

 

 

그리고 이슈타르의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놀랄 거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밀레투스의 시장 문(Market Gate of Miletus) 이다.

 

밀레투스는 소아시아 지역, 그러니까 터키 서부 해안을 따라 그리스인들에 의해 건설된 도시 중 하나다. 이들 도시 중 가장 유명한 곳들이 트로이 전쟁으로 파괴된 트로이, 그리고 호메로스의 출생지인 스미르나(오늘날의 이즈미르) 등이다.

 

 

이 시장의 정문은 기원후 2세기, 그러니까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만들어진 것으로 10세기 경 지진으로 파괴됐다. 그걸 근세에 발굴하면서 복구했고, 그게 지금 베를린에 와 있는 것이다.

 

높이 16미터, 폭 30미터의 엄청난 사이즈인데,

 

 

 

이 모형의 왼쪽 귀퉁이에 있는 바로 저게 이 시장의 문이다.

 

그러니까 당시 밀레투스의 거대한 도시 규모에 비하면 이 웅장한 문이 별 것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리 보니 귀엽네.

 

 

 

 

아무튼 시장 문과 한 세트인 건너편 제단은 어느 신전의 한쪽 벽면이었던 것 같다.

 

 

 

 

 

물론 크게 상관 없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물들도 함께 전시돼 있다. 2세기 경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의 에로스 부조,

 

 

 

그리고 이건 레바논의 바알벡(Baalbek) 유적에서 나온 빗물 배출용 사자 머리 가고일이다. 역시 AD 2세기.

 

 

아무튼 쉽게 눈길을 뗄 수 없는 시장의 정문을 뒤로 하고,

 

 

뭔가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앗시리아 유적 속으로.

 

(대체 왜 친근감을 느끼냐고 하시면 뭐라 대답할 말은 없지만서도)

 

 

 

니네베(니느웨)의 궁전 벽에서 나온 사자 사냥 부조다. BC 7세기.

 

 

 

친절한 베를린 분들은 이 돌이 어디서 나온거냐 하면... 을 이렇게 지도로 꼭 같이 표기해 준다.

 

물론 그래 봐야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겠지만.

 

 

좀 알만한 지도로 바꿔 보면 앗시리아의 대표 도시인 니네베와 님루드는 이렇게 붙어 있다.

 

 

 

이건 라마스(Lamassu), 그러니까 '날개 달린 인면 사자상'인데,

 

 

사실 대영박물관에서 그 천장에 닿을 듯 한 거대한 라마스를 본 사람에겐 약간 애교스러운 사이즈.

 

 

 

아마도 영국이 먼저 털고 간 자리에 뒤늦게 독일인들이 도착한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얘들은 다리가 다섯개다!

 

대체 왜 ;;

 

(혹시 실수로 다섯 개?)

 

 

 

 

 

이것은 국왕의 모습으로 추정되는데, 신상들 사이에 위치해 왕=신의 느낌을 주려는 배치라고.

 

 

 

이런 식으로 앗시리아 왕궁의 한 방을 그대로 뜯어와 재현했다.

 

 

 

 

온갖 유물들이 다 있고,

 

 

 

이것은 앗시리아 시대 자유도시였던 사말(Sam'al)에서 뜯어 온 대형 돌사자들.

 

사말은 또 어디야... 생전 처음 들어본다.

 

터키 남부에 있는 유적이다. BC 10세기.

 

 

 

뭔가 마법적인 보호력을 기원하고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묘하게도 민화 속 호랑이를 연상시킨다.

 

 

 

 

 

누가 봐도 그렇지?

 

 

휴. 간신히 한 층을 끝냈다.

 

페르가몬 박물관, 한 층 보기가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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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둘쨋날. 작지만 알찬 박물관 두 개를 돌아보고 나니 어느새 오후.

 

미친듯이 관광 포인트를 도는 여행은 둘 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천천히 다시 시내로 이동, '사진 박물관'을 찾았다.

 

 

 

 

 

분명히 영어로 하면 museaum for photography. 사진 박물관 맞는데 사실 사진박물관이라기보다는 개인 박물관의 느낌이다.

 

힌트는 왼쪽 벽에 붙어 있는 '헬무트 뉴튼 재단'.

 

헬무트 뉴튼이라면 바로 그 유명한 사람, 그 왜 엄청 유명한 셀렙들과 번쩍번쩍 빛나는 비닐 장화 '만' 신은 누드의 슈퍼모델들을 즐겨 찍었다는 그 양반! 사진 작가이면서 그 자신이 셀렙인.

 

 

이 박물관은 뉴튼의 유지에 따라 이뤄진 것이고, 뉴튼의 유물들이 전시품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 박물관인 만큼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인데 어떤 분위기라는 것은 전하고 싶어서 한장 찍어 봤다.

 

 

 

굳이 말하면 '사진의 신' 뉴튼에게 바치는 헌정의 공간이랄까. 신전 같은 느낌이었다.

 

 

뉴튼의 전시 공간 외에도 상당 부분이 다른 작가들의 사진을 전시하는 데 활용되고 있었다.

 

뉴튼의 사진을 보고 나니 왠지 허기가 밀려왔다.

 

미술관 카페에서 뭘 좀 먹었는데 그걸로는 부실했던 모양.

 

마침 베를린을 대표하는 먹거리라는 커리부어스트의 대표적인 맛집이 초 역 바로 앞에 있었다.

 

 

 

관광책자에도 나온다는 Curry 36.

 

 

소문난 맛집답게 당연히 줄을 서야 한다.

 

 

 

노점풍의 분위기답게 사서 들고 먹거나, 저렇게 길가의 보도 난간에 놓고 먹는다. 격식 따위 전혀 없다.

 

 

 

 

 

 

사실 뭐 별거 없다. 소시지에 튀김옷을 입히고, 케찹 위주의 소스(뭔가 좀 섞긴 섞은 것 같다. 단순히 케찹은 아니다) 에 커리 파우더를 뿌려 먹는게 전부다. 가격은 대략 1.5~2유로 정도. 여기에 저 소스와 찰떡궁합이라는 감자튀김을 곁들이면 3유로까지도 올라간다. 소시지 하나로는 끼니가 되지 않으니 감자 튀김으로 양을 늘려 본다는 느낌이다.

 

맛은... 맛 없을 요소가 없으니 당연히 맛있다. 찍어 먹는 방식이나 뭐나 가기 전부터 '떡볶이 비슷해요'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전혀 매운 맛이 아닌데도 어쩐지 떡볶이를 먹는 기분이 든다. 아무튼 맛있다. 그런데 매우 단순한 맛이라 대체 이 정도의 음식에 맛집이 따로 있다니 그건 또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ㅎ

 

아무튼 프라하-베를린을 쉼 없이 달렸으니 약간의 낮 휴식.

 

(불량체력의 중년 여행객에겐 강행군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내친 김에 아예 관광객 티를 내기로 작정하고 포츠다머 플라츠로 향했다.

 

 

포츠다머 플라츠 1층의 린덴브로이 Lindenbrau.

 

베를린에 간 사람 - 중에서도 초행인 촌스러운 사람들은 모두 한번씩 가 보고야 만다는 바로 그 집이다.

 

 

 

 

사실 우리가 아는 독일 음식이란 게 대부분 돼지고기 요리다. 오래 전 혼자 독일에 왔을 때에는 아이스바인을 먹었고, 한국에서도 이제는 꽤 많은 곳에서 학센을 맥주 안주로 먹을 수 있다. 물론 독일 대중식의 상징 같은 소시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전날 낮, 베를린 주민이신 가이드님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독일 사람들은 왜 그렇게 돼지고기를 많이 먹죠?"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독일 사람 돼지고기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아요.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 많이 먹죠. 오히려 돼지고기는 별로 안 먹을 걸요?"

 

"아 그래요?"

 

"작년에 남편(독일 사람. 굉장히 유명한 분이라고)이랑 한국 나갔는데 하루 삼겹살, 하루 제육볶음 먹더니 남편이 그러던걸요. '한국 사람은 돼지고기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아.' "

 

너무나 충격적인 이야기.

 

"아니 그럼 그 학센이며 아이스바인이며 이런 것들은 다 누가 먹나요?"

 

"누가 먹긴요. 관광객들이 다 먹죠."

 

으음 ;;

 

"한국에서도 신선로 구절판 이런거 평소에 먹는 사람 없잖아요. ㅎㅎㅎㅎ"

 

그래서 학센을 주문하지는 않았다.

 

 

 

여담이지만 독일 사람들은 뭘 섞어 마시는 걸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약간 흰색이 도는 바이스비어는 뭔가를 섞어서 저렇게 다양한 음료로 다시 태어난다.

 

물론 한국에서도 맥주와 사이다를 같이 시켜서 섞어 먹는 사람이 꽤 있지만 저걸 저렇게 술집에서 아예 메뉴판에 써놓고 팔진 않잖아.

 

게다가 저건 약과다.

 

아주 오래 전 독일에 왔을 때, 카페의 메뉴에 별 희한한 것들이 다 있어서 놀란 적이 있다. 지금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콜라+환타, 닥터페퍼+환타, 콜라+맥주 등등이 다 메뉴판에 써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얘기를 했더니 사람들이 안 믿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들 했는데,

 

 

 

 

 

마침 그 증거를 발견했다.

 

위 메뉴의 소프트드링크 항목 아래를 보면 펩시 콜라와 미린다(물론 오렌지 맛이다)를 섞은 음료를 슈페찌 Spezi 라고 부른다고 써 있다. 봐! 보라고! 독일에선 이런 걸 판다고!

 

* 아울러 한국에서 한때 환타의 경쟁 음료였던 오렌지 음료를 '미란다'라고 기억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이 음료의 이름은 '미린다'다. '미란다 원칙' 아니다. M.I.R.I.N.D.A. 미린다라고 미린다.

 

(물론 지금도 열심히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 술집이 펩시콜라 친화적이라 슈페지도 '펩시+미린다'였던 듯. 만약 코카콜라 가맹점이었다면 코카콜라+환타의 슈페지를 내놨을 것이다.

 

 

카페에서만 반반 섞어 파는 게 아니라 이렇게 다양한 슈페찌 음료들이 아예 상품화되어 팔리고 있다. 참 희한한 동네 아닌가 싶다.  아무튼 슈페지의 맛은 예전에 다들 해보셨을 것 같은 - 음료 자판기에서 이맛 저맛을 돌려가며 섞은 바로 그 맛, 어찌보면 닥터 페퍼 같은 맛 - 그 맛이다. (이번에 먹어봤다는 뜻은 아님. 오래전에...)

 

여담이지만 환타라는 음료가 태어난 곳도 바로 이곳, 베를린이다. 이건 긴 얘기니 다음 기회에...

 

 

 

어쨌든 먹어 봐야 뻔한 맛인 슈페찌를 주문한 건 아니고, 독일 전통식인 소시지 샐러드 (Wurstsalat. 글자만 봐도 눈치챘겠지만 소시지가 바로 독일어로 Wurst. 커리부어스트 별거 아니었어), 그리고 독일 전통 감자 샐러드 Kartoffelsalat 를 곁들인 닭 반마리 구이를 시켰다.

 

(의도적으로 학센, 아이스바인 피한거 맞다)

 

요 며칠 새(당연히 독일에 머물던 그 며칠 새) 계속 먹고 있지만 감자와 오이를 잘게 썰어 만든 저 카르토펠살라트는 새큼하면서도 입에 붙는 맛이라 고기 요리를 먹을 때 아주 잘 어울린다. 물론 독일이니까 자우어크라우트를 줘도 좋겠는데, 이 린덴브로이의 카르토펠살라트는 좀 너무 짰다.

 

짜니까 맥주를 많이 마셔야 하잖아...

 

 

 

이렇게 앉아서 색깔이 변하는 포츠다머플라츠 소니 타워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6월이지만 해가 떨어지니 날씨가 스산해지던 참인데 비바람이 몰아치니 막 춥다.

 

 

물론 저 천장도 괜히 있는 건 아니어서 비바람이 불어도 밖에 앉아서 맥주 마시고 하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지만, 기온이 점점 내려가는게 느껴진다. 이럴 땐 미련 떨지 않고 후퇴하는 게 상책이다.

 

 

서울 못잖게 편리한 베를린의 대중교통체계. 200번만 타면 어쨌든 집(호텔)에 간다.

 

역시 낯선 도시의 숙소는 교통이 가장 중요.

 

 

비에 젖은 차창 밖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홀이 보인다. 걱정하지마. 곧 갈거야.

 

이렇게 비가 오면 내일은 어쩌나 걱정했지만 미리 걱정해 봤자 아무 소용 없는 변덕스러운 베를린 날씨.

 

 

 

 

그리고, 다음날 박물관 섬에서는 이렇게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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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안으로 프라하/베를린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정진하겠습니다.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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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xx일.

 

베를린 체류기간중의 예보는 내내 비. 하지만 베를린 주민님의 제보에 따라 베를린에서 비란 그냥 일상의 일부이며 언제 왔다 언제 갈지 모르는 그런 존재라는 걸 이미 알아버렸다.

 

그래서 그런 건지 다음날 아침은 정말 맺힌 데 없는 푸른 하늘.

 

물론 푸른 하늘이라고 더운 건 아니다. 오전엔 꽤 선선한 편이다. 물론 낮이 되어 해가 쨍하게 비치면 좀 덥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반팔 입을 날씨는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의 목적지인 샤를로텐부르크 궁 앞에 갔을 때에는 그런 날씨를 종일 기대해선 안된다는 먹구름이 매우 낮게 드리워 있었다. 심지어 흘러가는 빗발까지.

 

하지만 우산이 필수인 런던과는 달리 베를린에선 우산을 상비한 사람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이유는 거의 모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척 하다가 사라질 것임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6일 동안 제대로 장대비가 오는 것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거의 매일 비가 왔으나 30분 이상 내린 경우는 없었다. (아, 밤에는 자는 사이 꽤 비가 온 듯한 흔적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이 샤를로텐부르크도 가이드북에 꼭 나오는 주요 관광지기는 하나, 우리의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고...

 

 

 

바로 샤를로텐부르크 궁 정문 건너편에 있는 베르그루엔 미술관 Berggruen museaum.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당당한 '글립미술관'이다. 물론 짐작하겠지만 베를린에는 이런 규모의 국립미술관이 여러 군데 있다.

 

아무튼 이 미술관도 베를린의 강력한 뮤지엄패스에 의해 무료 입장. 개별적으로 방문하면 10유로 정도의 입장료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1층으로 입장하면 바로 보이는 자코메티 선생의 입상. 누가 보든, 어디서 보든 자코메티의 작품을 못 알아볼 리는 절대 없다. 그만치 강력한 아이덴티티. 이런 거 좋아한다.

 

 

 

베르그루엔 미술관이 있기까지는 하인츠 베르그루엔 Heinz Berggruen 이라는 분의 콜렉션 기부가 있었다는 얘기....일 것으로 추정되는 글월이 있다. 설마 토마토 케찹(!)을 발명하신 분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

 

어쨌든 독일어다. 못 읽는다.

 

베르그루엔 미술관은 아담한 3층 건물 규모. 하지만 파울 클레, 파블로 피카소, 자코모 자코메티... 뭐 그러한 20세기 전반기의 내로라 하는 화가들의 알짜 작품들이 모여 있다.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흔치 않은 피카소의 조각 작품. 제목은 '학'.

 

그러게 누가 봐도 학.

 

 

 

 

그리고 알기 쉬운, 누가 봐도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인 '광장 2'.

 

참 이렇게 알기 쉬운 작가들이 좋다. 그냥 한방에 누구 작품인지 알아볼 수 있는.  

 

 

 

 

앙리 마티스의 후기작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뜯어붙이기도 있고,

 

 

 

 

파울 클레의 상징 같은 저 쭉 찢어진 눈의 소녀. '노란 빵모자를 쓴 빨간 소녀'

 

 

 

 

 

그림을 보면 뭔가 음악적인 느낌이 드는데, 제목 역시 이채롭다.

 

'Abstract Color Harmony in Squares with Vermilion Accents'... 억지로 옮기면 '주홍색 액센트의 사각형들 속에 추상적인 색채 하모니' 정도? 뭔가 청각적 이미지를 색으로 옮기고 싶었다는 느낌을 정확하게 주고 있다.

 

이것도 역시 파울 클레 작품.

 

 

 

 

이 그림의 제목이 '네크로폴리스', 즉 '죽은 자들의 도시'라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림이 아닐 수 없다.

클레가 본 피라미드들이다.

 

 

 

 

 

물론 이렇게 특유의 동심의 세계를 그린 작품도 있고,

 

 

 

이렇게 사물의 본질에 깊숙히 접근한 작품도 있다.

 

제목을 들으면 이해가 간다. '카페트'. 가로실과 세로실이 교차하며 짜여진 카펫을 현미경 눈으로 들여다 본 느낌이다.

 

 

'거울을 든 젊은이, 누드, 팬파이프 연주자, 어린이'

 

라는 제목의 스케치를 한 화가는 어느 순정만화가가 아니라 파블로 피카소.

 

 

 

 

피카소의 그림은 수없이 봤지만, 이렇게 만화풍의 그림은 드물게 본 것 같다.

 

제목은 '실레누스와 춤추는 패거리 Silenus and Dancing Company'.

 

실레누스는 어린 바쿠스(디오니소스)를 키워준 양부로 사람이 아니라 사튀로스다.

 

호색과 술주정이 특징인 사튀로스의 느낌이 너무나 즐겁게 표현돼 있다. 

 

 

 

 

 

3층으로 된 전시장을 돌아보고 밖으로 나오니 다시 활짝 갠 날씨에, 독특한 모습의 조각이 정원을 장식하고 있다.

 

자기만큼 큰 동생을 업은 착한 형... 이었으면 좋겠으나 제목은 'United Enemies'. 적과의 동침이다.

 

Thomas Schutte 라는 작가의 2011년 작품. 매우 인상적이다.

 

 

아무튼 작지만 내실있는 미술관.

 

워낙 미술관을 좋아하는 동반자와 같이 간 터라 이 미술관을 찾는 데에는 전혀 고민이 없었는데, 대체 왜 유럽만 가면 미술관을 가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분들이라면 과감하게 일정에서 빼시길 권한다.

 

쉴새없이 명소와 명소를 건너 뛰는 여행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비추. 마치 그 도시로 이사간 듯, 그 도시에 사는데 어쩌다 휴일을 맞은 듯 들르실 분들이라면 추천.

 

 

 

베르그루엔의 바로 뒤쪽에 브뢰한 뮤지엄이라는 작은 미술관이 붙어 있다. 일단 문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 미술관도 1층은 뮤지엄 패스의 무료 입장 구역이라 유유자적 들어갔다.

 

 

 

알고 보니 이 미술관은 공예/생활용품/포스터/인테리어 중심의 미술관.

 

특히 20세기 초 아르누보 스타일의 '도대체 저런 물건이 실용적인 가치가 있었을까' 느낌의 생활용품/가재도구/가구들이 잔뜩 있다. 관심 있는 분들에겐 꽤 흥미로울 듯.

 

 

 

 

그 다음, 강추하고 싶은 미술관이 길 건너편에 있다.

 

바로 잠룽 샤프-게르스텐베르크 Sammlung Scharf-Gerstenberg 미술관이다.

(http://www.smb.museum/en/home.html)

 

 

입구로 들어가면 막스 에른스트의 주물 작품 하나가 서 있다. 제목은 'The Most Beautiful'.

 

 

 

그리고 뜬금없이 이집트 어디선가 뜯어 온 신전 문짝이 하나 있고

(물론 이건 정복자들이 무단으로 가져온 건 아니고 문화재 보호 협약에 따라 어쩌고...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 문짝을 보고 이 미술관의 성격을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이 미술관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초현실주의 전문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마침 쉬르레알리즘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었는데, 이 미술관을 만들게 한 샤프씨와 게르스텐베르크씨의 관심사가 모두 초현실주의 작품 컬렉팅이었다는 것이다.

 

 

 

 

장 뒤비페 Jean Dubuffet 의 '암콤 She-Bear'.

 

뒤비페는 이 미술관이 특히 사랑하는 작가이기도 한데, 이 미술관은 초현실주의의 출발점을 1761년 조바니 바티스타 피라네시의 판화 작품 '카르체리 Carceri (감금, 은둔, 감옥 등의 의미)', 프란치스코 고야가 1799년 내놓은 판화집 '로스 카프리초스 Los Caprichos (변덕, 수시로 바뀌는 기분의 의미)'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이후의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본격적인 전시는 2층부터지만 1층에도 희한한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를테면,

 

 

마네의 '까마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던 마네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그리고 다음 그림,

 

 

놀랍게도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빅토르 위고다. 그 빅토르 위고 맞다.

 

제목은 무제, 혹은 '섬의 회상'

 

 

 

 

이렇게 피라네시의 이름을 맨 위에 올려놓은 만큼 그 위층에는 피라네시의 '카르체리'에 방 하나를 할애하고 있다. 제목 그대로 '카르체리'는 피라네시가 상상한 엄청난 규모의 지하 뇌옥을 소재로 하고 있다. 말이 뇌옥이지, 사실 내 눈에는 피라네시가 상상한 지옥의 모습으로 보였다. 물론 첫 그림만 봐도, 그런 의도가 충분히 있었을 것으로 엿보인다.

 

 

 

아무튼 상상력의 규모가 압도적이다.

 

 

 

 

그리고 이 미술관에서 '우리 초현실주의파의 둘째 형님' 정도로 봅는 화가가 바로 프란치스코 고야다.

 

고야라면 '옷입은 마야'와 '옷벗은 마야'를 바로 떠올리는 분들이 거의 대부분이겠지만, 일생을 호의호식/권력총애/부귀영화 속에서 보낸 것으로 유명한 고야는 인생 만년에 매우 독특한 화풍을 선보였다.

 

바로 인간 내면의 악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인데,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을 가 보신 분은 고야의 '블랙 페인팅'이라고 이름지어진 전시실을 기억할 것이다. 말년의 걸작들, 예를 들어 '아이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같은, 일면 공포감을 일으키는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이들 그림에선 냉소적이면서도 인간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진다.

 

위 그림의 제목도 '어리석음, 혹은 대단한 전사'

 

 

 

물론 '카프리초'에 수록된 당나귀 그림도 여기서 빠지지 않는다.

 

 

 

 

 

오스카 도밍게스의 '안전핀'은 어딘가 달리를 연상시켜서 찰칵.

 

 

그리고 무척 좋아하는 회가 르네 마그리트의 청년기 그림인 '학생의 꿈'이다.

 

 

 

이건 말년에 그린 대표작 중 하나인 '밤의 가스파르'. 뭔가 사진의 부름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이 시기 초현실주의 화가 진용에서 빠질 수 없는 대가가 막스 에른스트.

 

그의 인상적인 작품 '사이프러스'도 여기 있다.

 

 

 

 

 

그리고 보기만 해도 음산한 한스 벨머의 '세 소녀와 죽음'.

 

 

 

 

 

아무튼 작지만 알찬 박물관이다.

 

 

그리고 박물관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공간, 박물관 카페가 무척 아름답다.

 

 

 

 

특별히 조경에 신경쓴 것도 아닌 듯 하지만 미술관 다운 높은 천장과 나무, 숲, 거리,

 

그리고 너무 사람이 많지도, 아주 없지도 않은 적당한 조용함. 따뜻한 햇살.

 

왠지 너무나 마음이 가는 풍경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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