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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요리랄 것도 없는 음식을 야매로 만들어 먹곤 합니다만, 이번 경우엔 노력 대비 효과가 깜짝 놀랄 정도라 올려 봅니다.

위에서 보이는 비주얼을 보면 대략 뭐가 들어갔는지 보이실 겁니다.

이름은 카르토치오(Cartoccio), 이탈리아어로는 '봉지'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재료 리스트 나갑니다.

- 흰살 생선 (도미, 가자미, 광어, 민어 등등. 그런데 검색해보면 연어로 하신 분도 있고, 고등어나 꽁치를 쓰신 분도 있다고 합니다.)

- 마늘 (다진 것. 꽤 많이)

- 올리브유, 식용유, 버터 (대략 적당량)

- 조개류 (바지락, 모시조개, 홍합 등등 아무거나)

- 양파, 토마토

- 그밖의 야채 (뭐든지. 샐러리, 당근, 감자, 아스파라가스, 있으면 있는대로 다)

- 소금, 후추, (기타 허브 종류 뭐든지. 케이퍼, 바질, 딜, 등등등)

야매 요리는 본래 분량 표시가 없습니다. 그냥 다 "대강" 넣으시면 됩니다. 간은 원래 알아서 맞추는 겁니다.

흰살 생선이면 된다길래 마침 마트에서 파는 냉동 가자미살을 썼습니다. 뼈와 껍질을 제거해 바로 쓰면 되는 간편상품입니다. 물론 맛은 생물이 당연히 더 낫겠죠. 여유 되시는 분은 수산시장 가서 도미 잡아 손질해 오시면 됩니다.

500g에 9800원인가 하는데 300g을 해동해서 썼습니다. 올리브유, 소금, 후추를 손가락으로 살살 발라 둔 뒤 조금 휴식시간을 줍니다.

다음 바지락. 이것도 마트 상품으로 2000원짜리 2봉지 사서 해감을 시켰습니다. (해감법은 각자 알아서 하시구요)

싼 바지락이라 그런지 알도 작고 그리 만족스럽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다진마늘과 함께 약한 불로 볶기 시작하면 금세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확 납니다. 이때 버터를 약간 넣으시면 풍미가 더 좋아집니다.

주의사항: 물은 절대 넣을 필요 없습니다. 이 요리 자체가 물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렇게 볶다 보면 바지락들이 줄줄이 입을 벌리고, 거기서 물이 나옵니다. 물이 흥건해지면 불을 빨리 꺼야 합니다. 국물이 다 졸아붙을 때까지 볶으면 큰일납니다.

조개를 건져내고, 국물을 따로 모아 둡니다. 이 국물이 제일 중요합니다.

은박지를 넓게 펴고, 가장자리를 접어 그릇처럼 만든 다음, 거기에 재료를 차곡차곡 쌓기 시작합니다.

1. 제일 먼저 은박지 바닥에 버터나 식용유, 올리브유를 바릅니다. 당연히 재료가 붙지 않게 하기 위해섭니다.

2. 맨 아래층은 양파. 오래 조리할 게 아니기 때문에 얇게 썰어야 합니다.

3. 그 다음 층은 감자(있으면). 저는 이번엔 귀찮아서 안 넣었습니다. 아무튼 역시 얇게 써는게 중요.

4. 그 위에 생선을 차곡차곡 쌓습니다.

5. 그 위엔 아무거나. 제가 넣은 건 토마토, 올리브, 케이퍼, 조개, 쓰다 남은 다진 마늘입니다.

6. 아까 조개를 볶아 나온 진국을 살살 뿌립니다. 국물이 넘치지 않도록 은박지 주변을 잘 접은 뒤에 뿌리는 겁니다.

7. 그리고 술을 좀 뿌립니다. 저는 맛술과 먹다 남은 소주를 뿌렸습니다.

정상적으로는 화이트와인을 넣는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엔 확실히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호일을 대략 여미고(아마 위까지 여며지지 않을 겁니다), 위까지 호일로 뚜껑을 만들어 덮습니다.

대강 덮는게 아니라 안에서 국물이 새 나오지 않도록 밀폐하는게 중요합니다.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뿐만 아니라 국물이 끓으면서 올라오는 증기로 재료들이 쪄 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와인 향이 온 재료에 배는 것이 포인트라고 합니다.

싸맨 다음에는 본래 오븐에 넣고 찌는 것이 정식 방법인데 솔직히 말해 저는 오븐 사용법을 모릅니다.

저렇게 무쇠 팬 위에 올려 놓고 찌면 됩니다.

(저걸 어떻게 올려 하는 분들, 그러니까 처음부터 무쇠 팬 위에 은박지를 깔고 그 위에 재료를 쌓는 겁니다. 이해 가시죠?)

그리고 약한 불로 찝니다.

찌는 시간은 - 알아서 쪄야 합니다. 저는 생선 두께가 1cm 미만이라서 한 10분 쪘습니다.

주의: 찌는 동안 은박지 위쪽에 손 대면 큰일 납니다. 뜨거워요.

다 쪄 지고 뚜껑을 개봉하면 이렇습니다.

원래 뚜껑을 개봉할 때 나는 향기가 이 요리의 핵심이라고들 합니다. 그래서 항상 밀봉상태에서 식탁으로 가져와 개봉한다네요.

화이트와인을 썼다면 이때 효과가 확실했을텐데, 뭐 조개 국물 냄새 자체를 워낙 좋아하는 터라 이 냄새도 맡을 만 했습니다.

제가 처음 먹어 본 이 요리의 상태도 이랬습니다. 이건 종이 호일에 싸서 오븐에 구운 프로의 솜씨...

아무튼 이걸 먹어 보고, '내가 직접 해 봐야지!'라는 생각을 한 거였습니다.

그래서 결과는...

뭐 생선 300g과 바지락 두봉지가 그리 많은 양은 아니죠.

아무튼 잠시 후 이렇게 됐습니다. 2인분으로 적당한 양이었던 듯.

그런데 저 국물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맛나서.

그래서 적당량의 스파게티 면 투입.

(혹시 모르시는 분이 있을까봐: 스파게티 면은 따로 삶아서 넣어야 합니다. 저 위에 스파게티 넣고 끓이는 거 아닙니다. ;; )

문득 라면사리라면 그래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물을 좀 부어서...

스파게티 면도 타오르는 식욕 앞에선 그리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설거지감이 좀 나와서 그렇지 만드는 법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간단합니다.

아무튼 한번 해보고 얻은 교훈:

1. 생선이 좋을수록 맛있을 것이 분명하다. 냉동 가자미로 이 정도라면 생물은 정말 환상적일 듯.

2. 싼 화이트와인을 한병 사 둬야겠다. 요리용으로.

3. 새우를 몇마리 넣는 것도 좋겠다. (오징어...?)

4. 토마토 소스, 청양고추, 타바스코 소스 등도 활용 가능할 듯.

5. 어차피 먹을 거라면 스파게티 면은 좀 일찍 삶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최소한 먹기 시작할 때 물도 끓이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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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이었던 '신과 함께 - 죄와 벌'의 속편 '신과함께 2: 인과 연'이 개봉했습니다.

가끔 사람들이 '신과 함께'의 흥행 열풍이 갖는 의미를 물어보곤 합니다. 물론 흔히 거론되는 의미만 해도 이미 여러가지입니다. 우선 한국영화 최초로 대작 2편을 동시에 제작했다는 점이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식한 용감한^^ 기획입니다. '신과 함께'가 흥행 초대박을 기록하면서 1편만으로 두 편 모두의 순익분기점을 넘기는 쾌거가 이뤄졌지만, 만약 1편이 흥행에서 쓴 맛을 봤다면 2편은 아예... 상상하기도 싫은 대재앙이죠. 또 '판타지=마법사, 요정, 드라곤이 등장하는 서구풍 이야기' 라는 등식을 깨고, 한국 고유의 설정을 기반으로 최초의 본격 판타지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뭣보다 웹툰 원작의 폭발력을 입증한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밖에, 얼마전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두 가지 면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갖는다고 얘기했습니다.

첫째. '수출용 상품으로 적절한 한국 영화는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에 가장 충실한 답을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근래 한국의 대형 흥행작들을 살펴 볼 때, 철저하게 한국 로컬 관객들을 노린 '한국형 블럭버스터'들이 주류를 이뤘다는 점이 특징으로 드러납니다. 예를 들면,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대표적입니다. '1987'이나 '택시운전사'가 대표적이고, 흥행 참사를 기록하긴 했지만 '군함도'도 개봉 직전까지 '실패할 수 없는 영화'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작품들은 누구나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듯, 일단 소재면에서 철저하게 한국 관객들의 취향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해외 진출에서는 주목할 만한 결과를 낳지 못했습니다.

이에 비해 '신과 함께'는 누가 봐도 훨씬 문화적 장벽을 넘기 쉬운 작품입니다. 예를 들어 '신과 함께' 1편의 모자간 정서 같은 것은 지극히 한국적이면서 동시에 전 인류에게 어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죠. 그 밖에도 '신과 함께'를 보는데 한국 현대사나 정치 구도에 대한 선이해, 혹은 큰 관심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런 보편성이야말로 '신과 함께' 프랜차이즈의 큰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둘째는 한국 영화 시장에서 의외로 천대(?) 받아온 가족영화의 성공입니다. 한국 영화 제작자들에게 왜 가족영화, 즉 패밀리 무비를 만들지 않느냐고 물으면 어떤 제작자들은 약간 모욕을 받은 표정을 짓곤 합니다. "내가 그 따위 영화나 만들 사람으로 보이냐"는 속내인 것이죠. 이런 제작자들에게 있어 '가족영화'란 '유치한 저예산 영화'와 거의 동의어로 느껴지는 듯 합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제작자들은 아직도 '한 시대를 관통하는 뜨거운 메시지를 담아 성인 관객들을 격동시키는' 작품들을 선호합니다. 사회성 강한 영화와 폭력물, 메시지가 강한 사극 등이 주로 한국 영화에서 흥행이 잘 되는 장르로 여겨지는 것도 한 몫을 하겠죠.

그런데 굳이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이, 역대 할리우드 영화 흥행 순위를 보면 상위권에는 PG, 혹은 PG-13 등급의 가족 관람을 겨냥한 영화, 즉 패밀리 무비들이 압도적입니다. 왕좌의 게임, 쥬라기공원, 해리 포터, 스타워즈 시리즈를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죠. 특히 여름/겨울 방학 시즌을 노리는 영화라면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패밀리 무비의 수요는 압도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영화 역대 흥행 순위 1위인 '명량'이 동원한 1700만명의 관객 중에도 부모님과 함께 온 초등학생들의 수가 만만찮게 포함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충무공의 위업을 다룬 영화'의 교육적인 효과 때문에 15세 이상 관람가라는 등급을 무시하고 자녀들을 데리고 극장을 찾은 부모님들이 적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신과 함께' 이전에도 12세 관람가 판정을 받은 흥행 대작으로 '국제시장'을 들 수 있겠지만, 엄밀히 말해 이 영화 역시 지금 이 글에서 의미하는 패밀리 무비를 겨냥한 작품은 아닙니다. ('그때 그 시절,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 라는 이 영화의 캐치프레이즈를 보더라도 충분히 짐작 가능합니다^^.) 반면 '신과 함께'는 개봉 직후부터 '자녀들과 함께 관람하기 좋은 한국영화 대작'임을 대대적으로 알린 작품이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속편들을 통해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가족 영화 프랜차이즈 블럭버스터'를 만들었다고 평가할 만 합니다.

요약하면

1. 최근 한국 흥행작 가운데 드물게 해외 시장에서 수출용 상품으로 가치를 가진 영화다. 

2. 어른들도 흔쾌히 함께 볼 수 있는 온 가족용 프랜차이즈라는 새 시장을 개척했다. 

..도입부가 너무 길었군요. 2부는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48번째 귀인인 자홍(차태현. 2부엔 안 나옵니다)의 재판을 성공적으로 마친 세 차사 강림(하정우) 해원맥(주지훈) 덕춘(김향기) 앞에 또 하나의 귀인 수홍(김동욱)이 등장합니다. 자홍의 동생 수홍이 49번째 귀인이므로, 수홍까지 환생시키면 세 차사 역시 천년의 의무에서 풀려나 환생할 수 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순간입니다.

하지만 수홍의 정당한 재판을 요구하는 세 차사에게 염라대왕(이정재)은 두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당연히) 49일 안에 수홍의 재판을 모두 마칠 것. 그리고 지상에서 많은 차사들을 괴롭혀 온 성주신(마동석)을 제압하고 허춘삼(남일우) 노인을 저승으로 데려오라는 것.

하지만 성주신은 전투력이라면 절대 남부럽지 않았던 해원맥을 한방에 무릎꿀립니다. 게다가 성주신은 "너희 죽을 때 내가 저승사자였는데... 나 기억 안 나냐?"는 충격적인 말까지 던집니다. 과거를 잊은 해원맥과 덕춘은 큰 충격을 받죠. 아울러 수홍은 자신을 지옥 재판정으로 인도하는 강림에게 끈질기게 캐묻습니다. "대체 왜 내 재판에 이렇게 집착하는 거지? 내 재판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거 아냐?"

그렇게 해서 '신과 함께2'는 해원맥과 덕춘이 어떻게 저승사자가 됐는지, 그리고 성주신과 허춘삼 노인은 어떻게 되는지, 전편에 이어 등장하는 염라대왕과 강림은 대체 무슨 사연인지 세 갈래의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사실 수홍은 1편에서만큼 중요한 활약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엔딩에서 그가 뭔가 더 큰 빅 픽처의 일부였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알려지면 스포일러가 될 내용이 참 많아 조심스럽네요. 게다가 뒤집은 32의 등장은 정말이지... ^^]

1편이 자홍의 죽음, 망자가 저승에서 겪어야 할 재판의 과정, 한 인간의 삶에 대한 평가 등을 보여주며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큰 주제에 도달하는 다소 단순한 흐름이라면, 2편에서는 지상과 저승의 이야기가 비틀리고 꼬이며 비슷한 비중으로 흘러갑니다. 특히 2편에서는 성주신-해원맥-덕춘 라인과 강림-수홍-염라 라인이 팽팽합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논리적인 얼개도 1편보다는 2편이 더 탄탄합니다.

게다가 1편에 없었던 철학적인 질문이 2편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현세에서 죄를 지은 인간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형벌이 죽음, 즉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는 죄를 지을 수 없도록 강제로 차단하는 것'이라면 이미 죽음을 맞은 이후인 저승에서 죄인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형벌은 무엇일까요?

말을 바꿔 보면, 만약 이승에서의 삶이 끝난 뒤 저승에서도 한 인격의 정체성이 유지된다면, 그래서 그 인격이 소멸되지 않고 존재를 이어간다면, 영원에 가까운 세월 동안 그 존재를 가장 괴롭게 할 형벌은 무엇일까요? 불구덩이? 얼음 벌판? 매일 날아와 심장을 파 먹는 독수리? '신과 함께 2'는 한 인간을 천년 동안 괴롭힐 수 있는 신선한 방안을 제시합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인간으로부터 레테 여신의 선물을 빼앗는다는 것인데요, 그게 어떤 것인지는 직접 영화를 보시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  

1편에 비해 2편의 가장 큰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주지훈의 매력 발산입니다. 1편에서도 나름 멋졌던 해원맥은 2편에서 고려 최강의 무사, 여진족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흰 삵' 으로 변신해 여심을 강타합니다. '뇌는 없고 행동력만 최강인' 현재의 해원맥에 비해, '흰 삵' 버전의 주지훈은 쓸쓸한 눈빛의 츤데레 검객,  즉 고전 순정만화의 전형적인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여기에 예고편 2초 등장 만으로도 2편에 대한 흥미를 100포인트 이상 상승시켰던 마동석의 근육미(?)도 열일을 합니다. 마동석 표 코미디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면 조금 아쉬울 수도 있지만, 아무튼 마동석은 만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모습으로 열연을 펼칩니다. 마동석이 아니라면 누가 했어도 '이렇게 적절할 수' 없는 자리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구성을 통해 '신과 함께 2'는 전편에 비해 손색 없는 거대한 엔터테인먼트의 도가니에 관객을 집어던집니다. 개인적으로는 1편의 강렬한 결정타 - 많은 지식인들이 '신파'라고 짜증스러워했던 -가 2편에는 없고, 전반부 수홍의 발걸음이 좀 무겁다는 점에서 2편보다는 1편이 더 가슴에 와 닿지만(개취입니다)이미 1편을 보신 분들은 2편에 올라타지 않을 재간이 없겠죠. 뭣보다 2편을 보시면 다시 3편을 기다리게 될 겁니다. 벌써 2편은 개봉일 역대 최다 관객 기록을 세웠군요.

1편도 그랬지만 '신과 함께' 시리즈의 관람이란 행위는 전통적인 영화 관람이라기보다는 롤러코스터 탑승에 비교하고 싶습니다. 그 흐름에 저항하면 턱이 아프고, 어깨가 아프고, 두통이 올 수도 있습니다. 저 새까만 곳에서 떨어지는 청룡열차에, 독수리요새에 몸을 맡기고 그 아찔함을 즐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원해집니다.

P.S. 그런데 이미 나오기로 했다는 3편은 언제쯤 개봉? 아무래도 내년 여름은 힘들겠죠? (염라는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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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이지는 며칠 전에 냈던 문제의 정답과 관련된 해설입니다.

혹시라도 "어, 나 퀴즈 좋아하는데, 퀴즈라면 풀어봐야지"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신작 '열두 발자국'을 읽다가 떠오른 예수와 십자가의 비밀 http://fivecard.joins.com/1387

이 글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라면 그냥 아래 글을 계속 읽거나, 그냥 나가셔도 됩니다.

참여는 겁나게 저조했지만 아무튼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으니 답을 공개합니다.

 

일단 시간 제한도 없고, 공간 제약도 없는 퀴즈에선 검색을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당연히 문제를 내는 사람도 그걸 전제로 문제를 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정상이겠죠. 이 문제를 이미 머리 속에 있는 지식만으로 해결하려 하셨다면 거기서 이미 자격 미달입니다. 세상 그렇게 쉽게 살려 하시면 안 됩니다.^^

구글에는 이미지 검색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주어진 이미지를 넣고 검색을 해 봅니다.

 

 

사실 별 쓸만한 결과를 주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뒤에 있는 배경이 에펠탑이라는 누구나 다 아는, 쓸데없는 정보가 먼저 나옵니다.

하지만 그 아래로 내려가면,

 

 

사진에 있는 다섯 명의 촌스러운 옛날 남자들을 Duran Duran 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걸로 충분합니다.

물론 총기 있는 분들은 이 페이지를 죽 넘기다가,

 

 

이런 페이지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즉 주어진 사진이 Duran Duran 이라는 그룹이 007 시리즈 중 하나인 A view to a kill 이라는 영화의 주제가를 불렀을 때의 모습이라는 걸 가르쳐주는 웹 페이지입니다.

물론 여기까지 한방에 도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 단계, 그러니까

google 에서 duran duran과 eiffel tower 를 한꺼번에 입력하면 결국은 A view to a kill 로 연결해 주기 때문입니다.

 

 

약간 돌아 오긴 했지만 이제 출제자가 원하는 것이 바로 영화 A view to a kill 과 관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대체 십자가와 성 요한에 대한 글과 무슨 관련이 있어서 저 영화가 떠올랐다는 것일까요?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키워드를 몇개 추려서 조합해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1. A view to a kill + 정재승

2. A view to a kill + 열두 발자국

3. A view to a kill + Salvadore Dali

4. A view to a kill + St. John

(극적인 효과를 위해 순서를 4번으로 배치했지만 사실 정상적으로는 4번을 가장 먼저 검색해 보는게 답이겠죠.)

 

 

이걸로 끝.

로저 무어가 주연한 007 시리즈 영화인 A view to a kill 에는 St. John 이라는 캐릭터가 나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영화에서 로저 무어가 쓰는 가명이 St. John Smythe 입니다. 그런데 발음이 매우 특이합니다. 세인트 존 스미스라고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이름인데, 실제 발음은 '신 진 스마이드' 입니다. 영화 속에서도 로저 무어가 초대장에 쓰인 이름을 읽지 못하는 직원에게 '스마이드, 신진 스마이드' 라고 정정해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실 이 장면이 인상적인 것은 대부분의 007 영화에서 지켜지는, '007은 가명을 쓰지 않는다'는 원칙에 어긋나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호텔 예약 등은 가명으로 하기도 하지만 상대방 눈 앞에서 이름을 밝혀야 할 때 우리의 007은 거의 언제나 느끼한 웃음을 얼굴 가득 머금고 '보온드, 제임스 보온드' 라고 실명을 밝혀 왔기 때문입니다. 뭐 이건 다 그냥 그렇다 치고.)

어쨌든 그래서 정답은,

"St John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영화 A view to a kill 에서 로저 무어가 사용했던 가명인 'St. John'이 생각났다"

입니다.

 

 

 

 

...아니 표정들이 왜 그래요.

그럼 제가 여기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 이름은 뭔가요?" 같은 문제를 낼 거라고 기대하셨단 말입니까?

뭐 아무튼 이 책들에게 지속적인 성원 부탁드립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이벤트 http://fivecard.joins.com/1388  는 아직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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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질문 못하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에선 똑똑한 질문 길이 막혀 있었습니다.

심지어 질문이 건방지거나 무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꼰대들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드러내놓고 말하기 힘든 비밀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바보가 되어 갔습니다.

이래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 놓을 시도를 시작했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질문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이런 분도 나오고

이런 분도 나왔습니다.

물론 이런 분도 나왔죠.

그리고 판이 열렸습니다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죠.

영특한 손님들도 많이 왔습니다.

가슴 떨리는 손님도 왔었고,

아무튼 판이 점점 커지고

주제도 다양해졌습니다.

내용은 점점 더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이런 강연들을 한번 방송으로만 보기엔 아쉽다는 의견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책이 나왔습니다.

60여회를 진행하면서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명강연이었지만, 그 중에서 일단 아홉 분의 강연을 먼저 담았습니다.

이름들만 봐도 한국 지성계의 에이스들이십니다.

프로그램의 특징에 맞게 강연을 질문/응답의 구조로 구성했습니다.

또 차이나는 클라스의 특징인 화려한 도해 CG들도 책으로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시청자들이 보시는 강연은 한시간 내외지만, 실제 녹화장에서는 네 시간을 훌쩍 넘깁니다. 물론 강연의 고갱이는 방송본에 고스란히 담깁니다만, 간혹 분량 때문에 빠지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책에는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내용들도 함께 수록됐습니다.

지식에 대한 갈증을 이렇게 시원하게 풀어주는. 차이나는 클라스 제1권,

다음 질문에 답을 주시는 분들 중 3분을 추첨(!) 해서 책을 보내 드립니다.

본래 퀴즈를 낼까 했지만, 요 바로 전번 퀴즈 이벤트 참여가 저조한 탓에 일종의 앙케이트로 전환합니다.

문제 나갑니다.

 

1. '차이나는 클라스'의 가장 좋았던 강연은? 그리고 그 이유는?

2.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앞으로 들어 보고 싶은 강연 주제나 강사는?

3. '차이나는 클라스'에 느끼는 아쉬움이나 기대, 조언이 있다면? (없으면 안 쓰셔도 됩니다)

 

위 문항에 대한 답과 함께 본인의 실명, 그리고 연락처 를 담아서 fivecard@naver.com 으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분께 책을 드리면 참 좋겠지만, 보내주신 분들 중 3분을 추첨해 책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응모 인원이 많아지면 출판사에서 드리는 책 수를 늘릴 수도 있겠죠? ^^ 열심히 답변 부탁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기한이 빠졌네요. 기한은 이번주 일요일(15일) 밤 11시 까지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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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느 한 순간, 정재승 교수님의 신작 '열두 발자국'을 읽다가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따끈따끈한 신간이죠.

제목대로 총 12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일곱번째 발자국, 즉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에는 여러분들이 어디선가 익히 보셨을 유명한 그림 하나가 등장합니다.

바로 이 그림입니다.

네. 많이 보시던 그림이죠.

살바도르 달리 의 1951년작,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 입니다.

(책과 제목을 다르게 쓴 이유가 있습니다. 조금 더 보시면 알게 됩니다.^^)

컬러로 보시면 이런 그림입니다.

 '열두 발자국'에서는 이 그림을 창의적 발상을 설명하는 예로 들고 있습니다.

지금도 '십자가를 그려 보라'고 하면 세상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우리가 많이 보던, 정면에서 보는 십자가와 거기 매달린 예수님을 그릴 겁니다. 화가들의 그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십자가와 예수를 그린 수만장의 그림 가운데 99% 이상은 아마 정면에서 본 예수님의 모습일겁니다.

그런 면에서 이 그림은 혁신적인 구도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다니. 그렇다면 이 구도는 하나님의 시선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저 높은 곳에서, 사랑하는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길을 형상화 한 듯한 구도인 것이죠.

상당수 해석자들은 이 구도가 바로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보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이 그림을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어제 처음으로 이 그림의 제목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Christ of Saint John of the Cross. 묘한 제목입니다. 한글로는 뭐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망설이게 됩니다. 그래서 대체 저게 무슨 뜻인가 검색해 보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다짜고짜 영어로 세인트 존(St. John), 즉 성 요한 이라고 하면 1차적으로 복음서의 저자인 사도 요한 을,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세례 요한 을 떠올리게 됩니다. 물론 요한이라는 이름은 성경시대나 지금이나 넘쳐 나기 때문에 '성 요한'은 한두명이 아닙니다. 그런데 저 그림 제목에 나오는 성 요한은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듣도 보도 못했다는 것은 제 기준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저 그림 제목에 나오는 성 요한은 바로 이 스케치를 남긴 사람의 이름이고, 카톨릭에서는 매우 유명한 성자였습니다. 이 분의 이름은 바로 '십자가의 성 요한 Saint John of the Cross' 였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 님이 저 스케치를 남긴 것은 대략 1574~1577년 정도로 추정되며, 그 당시에도 '아니, 예수님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다니!'라는 시선은 대단히 충격적으로 여겨졌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유명한 '십자가의 성 요한' 님의 유물이었으므로 오늘날까지 소중한 보물로 간직되어 왔고, 어느날 저 스케치를 본 살바도르 달리가 저 구도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유명한 십자가 그림을 남긴 것입니다.

이 분이 바로 그 유명한 '십자가의 성 요한' 님입니다. 여러 정보를 종합해 보면 이 분은 1542년에 태어나 1591년에 돌아가신 스페인의 성직자입니다. 종교개혁의 물결 속에서 오랜 전통의 카톨릭 교단은 개혁의 필요성에 맞닥뜨리게 되었죠. 마침 그 이그나티우스(이냐시오) 로욜라의 예수회 학교에서 교육받은 요한님은 카톨릭 개혁의 선봉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아빌라의 테레사와 함께 맨발의 가르멜(Carmelite) 수도회를 일으키게 되고... 뭐 다양한 업적을 남기시고 카톨릭 교회의 성인에 오른 분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 분은 왜 '십자가의 요한 John of the Cross'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일까요? 혹시 저 유명한 '위에서 내려다 본 예수' 스케치 때문에? 이 궁금증은 쉽게 풀리지 않았지만, 최소한 그것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 일단 밝혀졌습니다. 이 분이 스스로 자신을 '십자가의 요한'이라고 불러 달라고 한 것이 1568년. 저 그림을 그리기 전의 일입니다. 그럼 혹시 십자가에 매달려서 순교라도? ...아닙니다. 이분은 단독(丹毒)에 걸려서 사망하셨습니다.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십자가의 요한의 일생을 소개한 글 에 답이 있었습니다. (알아보면 볼수록 십자가의 요한, 대단한 분입니다.)

원문은 http://w2.vatican.va/content/benedict-xvi/en/audiences/2011/documents/hf_ben-xvi_aud_20110216.html 

For several months they worked together, sharing ideals and proposals aiming to inaugurate the first house of Discalced Carmelites as soon as possible. It was opened on 28 December 1568 at Duruelo in a remote part of the Province of Avila.

This first reformed male community consisted of John and three companions. In renewing their religious profession in accordance with the primitive Rule, each of the four took a new name: it was from this time that John called himself “of the Cross”, as he came to be known subsequently throughout the world.

그러니까 무슨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 그냥 '순수했던 원시 기독교의 믿음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에서 스스로를 '십자가의 요한'이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것 같습니다. 하긴 이 분이 모셨던 성녀 아빌라의 테레사 역시 스스로 '예수의 테레사 Teresa of Jesus' 라고 불렸다니, '십자가의 요한'과 손발이 척 맞는 작명이네요.

결론적으로 저 그림의 제목은 한글로 하자면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라야 할 것 같습니다. 한글에 밝은 사람들에겐 뭔가 어색한 제목이지만, 저 제목이 붙은 이유를 생각하면 그렇게 부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여기까지 쓰고 나서 다시 한번 후회되는 것은...

남들은 12회나 기념비적인 명강의를 해서 이런 책까지 쓰고 있는데 너는 지금 이 시간에 블로그에 이런 글이나 쓰고 혼자 씩 웃고 있다니 이게 참 할 말이냐... 라는 자괴감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포스팅도 이 글을 누가 읽고 공감해 주리라는 기대보다는, 대체 저 그림 제목은 무슨 뜻일까,,, 를 알아내는 데 쓴 시간이 아까워서, 그냥 기록이라도 남겨 두자는 차원인 것이죠. 예. 맞습니다.)

그런데(읭?) '열두 발자국'은 참 읽으면 읽을 수록 대단한 책입니다.

대체 뭐 하자는 짓이냐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구글 어스를 개발한 존 행크 가 이걸 어디다 써먹을까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 결국 만들어 낸 것이 바로 포켓몬 고 였다는 대목에서는 절로 무릎을 탁 쳤습니다. 아톰과 비트의 결합이라는 말이 정말 실감나는 대목입니다. 얼마전 "만약 아인슈타인에게 자동차 운전자가 길을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라는 프로젝트를 줬다면 결코 상대성 이론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글을 읽고 그게 그렇구나 싶었는데, 이 이야기와 묶어 보니 이런 것이 바로 장자가 말한 무용(無用)의 대용(大用) 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또 인공지능을 발전시키려면 빅 데이터가 필수적인데 한국은 빅 데이터는 커녕 데이터 자체가 없다... 이 역시 평소 생각했던 문제지만 이 책에서 읽고 보니 더욱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얼마 전 '모두 거짓말을 한다'를 읽으면서 느꼈던 공허함의 뿌리와, 그동안 빅데이터라는 이름을 걸고 혹세무민을 시도했던 몇몇 분들의 얼굴이 새삼 스쳐가는. (왜 그런지는 책에서 확인하시는 걸로.)

아무튼 '결정장애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 매우 친숙한^^) '우리는 왜 미신에 빠져드는가'에서 '혁명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까지 읽고 보면, 과연 한 사람이 이 방대한 내용을 다 건드릴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경이적인 사고와 지식의 스펙트럼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여기저기 술자리에 빠지지 않는(술은 안 드시지만) 이 분을 보고 있으면 혹시 이미 집안에 대필 인공지능 시스템이 완성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곤 합니다. 대략 1.4KG 내외, 누구나 비슷비슷한 크기의 뇌인데 어디서 이런 차이가.

(지금 막 뭐라고 항변하시려는 분들을 위해 이 책에는 '얼굴이 크다고 뇌가 큰 것은 아니다'라는 방어벽이 쳐져 있습니다. 네. 철벽이죠.)

조금 이상한 내용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이 책, 생각의 자극이 필요하신 분들-아마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 거의 대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만-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P.S. 그리고 이런 책은 가능하면 남들보다 빨리 읽으시는게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써먹고 싶어지는 이야기가 그득하거든요. 어젯밤 술자리에서 상무님을 감탄하게 했던 김대리 의 구라가 이 책에 나오는 얘기라는 걸 오늘 알고 나면 얼마나 분통이 터지시겠어요. 그러니까...

 

 

P.S.2. 그리고 마지막으로 퀴즈 하나.

이 글을 읽는 동안 저는 줄곧 이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첫번째로 정답을 맞추시는 분에게는 제가 맛난 밥 한끼 정도 사겠습니다. 응모는 여기 쓰시든, 페북에 댓글로 다시든, 트위터에 다시든 알아서. (넌센스 아님. 의외로 쉬울지도...) 노파심에서 단서 하나 달자면, '음반 관계자' 관련은 답이 아닙니다.

키워드 몇개를 조합하시는 것이 포인트.

그리고 상품으로 방금 나온 '차이나는 클라스' 1권 단행본도 추가하겠습니다. (어차피 이 책도 따로 리뷰가 있을 겁니다.)

자, 분발하세요.^^

 

 

** 요즘 나오는 '열두 발자국'에는 본문의 내용이 수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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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실제로 이랬을 리는 절대 없을]

 

"은. 시간이 별로 없어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네. 통역 필요 없지? 지금부터 잘 듣게."

방에 들어서자마자 D는 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뭐라는 거야, 대꾸할 새도 없이 D는 통역을 한쪽 구석 화장실로 몰아넣고 문을 잠갔다. 방 한켠의 디지털 타이머에서 시간이 조금씩 깎여 나가고 있었다. 43:36, 43:35, 43:34...

방에 들어온지 2분도 지나지 않아 이 키 큰 백인 남자와 단 둘만 남게 되고 보니 위산이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게 느껴졌다. 은은 콜라를 마시고 싶었다.

"은. 퀴즈를 하나 내겠네. 자네는 내가 왜 대통령이 됐다고 생각하나?"

뭐지? 이건 누구나 다 아는 거 아닌가?

"젊은 시절부터 꿈이 대통령 아니었습니까?"

"낫 배드 앤써.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그렇게 얘기하면 대통령 되는게 내 인생의 얼티밋 골 처럼 들리잖아. 그런 사람이 꽤 많겠지만 나는 아니야."

이렇게 질문의 여지를 남기고 대화를 주도하는 스타일은 싫다. 은은 잠자코 D의 눈을 바라봤다. 1946년생. 일흔 두 살. 나이는 노인의 초입이지만 장난기 내지 광기는 젊은 사람 같았다. 며칠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궁금증이 떠올랐다. 단 둘이 있을 때 그걸 물어봐도 될까? D는 은의 마음 속을 읽기라도 한 듯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

"나는 대통령을 내 커리어의 마지막으로 삼을 생각은 추호도 없어. 나이? 그게 뭐 문제야. 내게 있어 유에스 프레지던시란 그 다음 비즈니스들을 더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경험일 뿐이야. 유 노, 대통령이란게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역시 그런가. 이렇게 솔직하게 이런 얘기를 할 줄은 몰랐다.

"감동적입네다."

"대통령 임기, 재선 해봐야 8년이야. 특히 자네를 위해선 내가 재선되는게 아주 좋을 거야. 내가 시간 절약을 위해 영상을 하나 준비했어. 길지 않으니까 같이 한번 보자고."

 

4분 정도 길이였다. 그리 잘 만든 영상은 아니었다. 편집은 좀 촌스러운 80년대 감성이었고, 대사는 누군가 영어로 쓴 것을 한국을 떠난지 꽤 오래 된 사람이 한국어로 다시 번역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이 끝날 때 쯤 은은 눈물이 찔끔 나오려 했다.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은, 잘 듣게. 내가 이걸 다 해 줄 수 있어. 해 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

물론이다. 다 해서 떠먹여 주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가능성은 열어줄 수 있을 거다.

"자네 나라의 예쁜 비치들마다 자네가 숙박중인 세인트 레지스 처럼 멋진 호텔들을 백사장 삥 둘러 지어줄 수 있어. 아시아의 어틀랜틱 시티로 만들어 줄 수도 있지. 마카오에 질린 중국 갑부들이 떼돈을 들고 바카라 테이블을 꽉꽉 채우겠지. 하지만 이건 공짜가 아니야. 그것도 알고 있지? 자, 나 같은 부동산 전문가가 내 돈을 어디엔가 투자하려면 그 사업의 지속 가능성에 조금도 불안감이 있어선 안 돼."

"물론입니다. 하지만..."

"말해보게."

"그 핵폐기 말인데요,"

"핵폐기가 뭐가 어쨌다는 건가. 그건 그동안 보고받은 걸로 다 알고 있다고."

이 늙은이, 나도 말 좀 하자.

"솔직히 CVID가 정말로 가능한 건가? 아니라는 거 알아. 심지어 자네는 황해북도 평산에 꽤 훌륭한 유레이니엄 마인까지 갖고 있잖아. 아이 노. 남한처럼 핵원료를 전량 수입하는 나라도 가끔 장부상 보유 물량이 실제 보유량과 안 맞아 난리가 날 때가 있는데, 우라늄을 채굴할 수 있는 나라의 핵원료 잔량을 어떻게 정확하게 체크하겠나. 재주 있으면 갖고 있어 보라고. 하지만 갖고 있다 걸리면 바로 죽음이야. 알지? 중요한 건 '없다'고 자네 입으로 공언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거야."

물론이다. 핵무기의 의미는 갖고 있다고 얼러댈 수 있는 데 까지다. 직접 쓰는 건 정말 최후에나, 아니, 최후의 최후의 최후에나 생각해 볼 일이다. 내 입으로 없다고 선언한 뒤에는 그건 갖고 있어도 갖고 있는게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뭐라고 대답해야 적절한 대답일까?

"제일 좋은 방법은, 그걸 쓸 이유가 없게 만들어 주는 거겠죠."

D의 얼굴이 확 펴졌다.

"부라보. 그거지 그거. 내가 그렇게 만들어 주겠어. 물론 1,2년에 뭐가 확 달라지진 않을거야.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자네가 '내가 그때 이걸 안 했으면 어쩔뻔 했을까'라고 생각하게 해 줄거야. 그걸 위해서 나는 앞으로 한 7년 더 대통령을 할 거고, 그 동안 우리의 사업을 위해 모든 조건을 마련해 놓을 거야. 그 뒤에는 자네랑 사업을 할걸세. 파트너."

"파트너?"

"자네도 아직 젊잖아. 한 10년 더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뭐 그건 자네 선택이니까 강요하진 않겠네. 하지만 말이야, 남자는 일단 돈을 벌어야 해. 돈을."

사실 지금까지 은의 인생에서 '돈'이라는 게 그렇게 절실한 적은 없었다. 2009년, 화폐개혁 대 실패 때 겁먹었던 아버지와 새파랗게 질린 장성들의 모습을 보고 돈이라는건 양 같은 인민들도 늑대로 만들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을 뿐이다. 하지만 D의 입에서 나오는 '머니'라는 말은 마치 여가수의 비음처럼 끈끈하게 사람을 잡아 끄는 데가 있었다.

"그렇지. 머니. 이 세상에서 아워 헤븐리 파더, 하나님이 자네를 사랑하시는 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재산의 축적 뿐이야. 그래서 남자는 일단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노력해야 해. 잠들었을 때나 깨어 있을 때나, 언제나 돈을 생각해야지. 머니. 유 노, 자네가 좋아하는 그 요다 같이 생긴 포머 차이니즈 체어맨이 얘기한 적 있지. 검은 고양이나 황색 고양이나 쥐만 잘 잡으면..."

"흰 고양이 아닙니까?"

"와튼 스쿨에선 정설만 취급한다네, 파트너. 내가 확인한 바론 중국에는 퓨어 화이트 캣이 없어. 그리고 쓰촨성에서는 오래 전부터 헤이마오후앙마오(黑猫黃猫)라는 속담이 있다네. 아무튼 시간도 없는데 쓸데없는 소리는 됐고, 혹시 자네 슈퍼마켓이 뭔지 아나?"

"평양에도 마켓 있습니다."

"굿. 그 마켓에 살 물건이 넘쳐 나고, 내 주머니에 그 물건들 살 돈이 있는데 오디너리 피플이 무슨 불만이 있겠나. 분명히 말할게. 돈을 벌어. 자네도 벌고, 유어 피플도 벌어. 그걸로 행복하게 살아. 그럼 자네도 안전하고, 피플도 행복하고, 아메리칸 시티즌도 좋아할거야. 2차대전 이후에 아메리카 합중국은 이 나라 저 나라 수도없이 돈을 퍼 줬어. 근데 한국 빼면 미국 원조 받아서 안 망한 나라가 별로 없어. 나는 한국 사람 DNA를 믿어. 다 잘 될거야."

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조선? 남조선이라면 너무나 잘 안다. 그 흐물흐물하고 설렁설렁하는 것들도 지구상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부지런하단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그런 걸로 따지면 우리 인민들은 상질중의 상질이다. 그것들도 저렇게 잘 벌고 잘 먹고 사는데, 우리가 못할 게 뭐가 있나. 할 수 있다.

"다 좋은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D의 얼굴에 잠깐 긴장이 흘렀다. 무슨 시간?

"지금 그동안 인민들한테 해 놓은 말이 있단 말입니다. 그 말을 주워담고 자 이제는 정의의 보검이 중요한게 아니라 인민의 풍요가 진짜로 중요한 거다, 이런 걸 납득을 시킬라문 지금까지 우리가 잘 해왔다. 그러면서..."

"오케이, 아이 풀리 언더스탠. 그러니까 당장 대외적인 합의에 뭔가 구체적인 얘기를 쓰는 건 부담스럽다, 뭐 그런 거지? 아이 노. 돈 워리. 발표문 같은 건 대강 하자고. 진짜 중요한 건 사업이야. 유 노, 우리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비즈니스가 뭔지 합의했으면 그걸로 됐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거만 알아 둬."

그 다음, 은은 태어나서 가장 무서운 인간의 얼굴을 봤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자네가 실수든 아니든, 뭔가 밑의 애들 컨트롤을 잘못해서 내 비즈니스에 1달라라도 손해를 끼치면, 그 다음엔 진심으로 각오해야 할거야. 명심해. 나 아직 미국 대통령이야. 캐리어와 F35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야."

은은 얼굴에서 싹 빠져나갔던 피가 다시 들어오는 걸 느꼈다. 잠시 쫄았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렇게 마무리할 수는 없다. 뭔가 인상적인 말을 해서 국면 전환을 해야지.  

"그럼 일 잘 되면 조단 한번 만날 수 있습니까?"

은 스스로 생각해도 좀 엉뚱한 얘기였다. 하지만 D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건 자네 하기 달렸지. 미스터 조단도 훌륭한 비즈니스맨이야. 명예욕도 큰 사람이고. 북한 땅 한 구석에 최초로 건설되는 72홀짜리 컨트리 클럽 이름이 마이클 조단 CC라면 그렇게 기분나빠할 것 같지는 않군."

"어디에 지으면 좋을까요?"

"음... 곧 지어질 NK 디즈니 월드 근처가 어떨까?"

하하하. 타이머는 아직 5분 정도를 남겨 놓고 있었다.

"아 참, 그리고 이 기회에 한미연합훈련 이런 거 중단합시다. 평화의 상징으로 좋지 않습니까. 어차피 주한미군 인제 주둔해 봐야 별로 할 일도 없을테고..."

호오. D는 생각했다. 이건 꽤 날카로운데? 이 아이는 지금 주한미군이 자기 때문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모르는 건가? 이렇게 순진한 데가 있는지 몰랐는걸? 하지만 다음 순간, D의 머리엔 노회한 X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실 주한미군을 본토로 철수시키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할 사람은 X다. 아마 그 주한미군의 가족들보다 더 기뻐할 것이다. 이 아이가 지금 X의 사주를 받고 이런 소리를 하는 건가? 은이 X의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에 왔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D는 갑자기 부아가 치밀었다.

하지만 D는 금세 다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까짓 거, 지금은 하잔 대로 다 해 주자. 뭐 훈련이야 안 하면 기름 값 굳고 좋지. 이럴 때 면도 살려 주고, 이걸로 M에겐 군 주둔 비용과 관련해 또 다른 계산서를 내밀 수도 있다. 

물론 어떤 경우든, 작은 내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 있는 중국의 동향을 체크할 수 있는 뷰티풀 군산 에어 베이스를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지 지금은 모든 것에 살짝 ? 표를 그려 놓아야 할 시점일 뿐이다.

"자네 말대로 하지. 은. 좋은 생각이야. 당장 공동 훈련 취소하겠네. 자, 그럼 기다리고 있는 애들 다 들어오라고 할까?"

 

건물 밖 주차장, 작전차량 안의 P는 D의 말에 헤드폰을 벗었다. 굳이 두 사람이 먼저 만나겠다는 이유가 이런 것이었군. 그렇다고 정말 둘만의 대화가 될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우리 CIA를 뭘로 보는 건가.

이 시대의 만남은 결국 D의 치적이 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P 자신의 공로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D가 왜 그렇게 NK 해결에 매달리는지 P는 대략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듣고 보니 그동안 이해가 가지 않았던 퍼줄이 한방에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까짓 거, 어쨌든 핵을 실은 ICBM의 위협을 제거하는 것은 미 합중국의 국익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거기까지는 협조다. NK를 위험하지 않은 나라로 돌려놓는 것 역시 OK. 하지만 그 이상의 뭔가를 하려면 분명히 내게 잘 보여야 해. D. 왜냐하면 나는 그때 유 에스 프레지던트가 되어 있을테니까. 

 

보좌 인력들의 입장을 기다리던 은은 둘만 있을 때 미처 묻지 못한 질문이 다시 생각났다. D의 머리는 가발일까 아닐까. 가발이라면 어디부터 가발일까. 아 왜 이런게 갑자기 궁금해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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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영화가 끝나 갈 무렵, 이 영화, '쓰리 빌보드' 의 악영향에 대해 잠시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꽤 적지 않은 수의 시나리오 작가 혹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키보드를 던져 버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플롯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건 진정 신의 축복이기란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 정도로 '쓰리 빌보드'는 대략 근 5년간 본 영화들 가운데 최소한 대본에서만큼은 최고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화 시작. 

 

살인사건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미국 남부의 어느 조용한 읍내. 한 여자가 그 시골에서도 외진 길 쪽에 있는 다 쓰러져가는 광고판 세 개를 사서 광고를 냅니다. 광고의 내용은,

 

RAPED WHILE DYING

내 딸이 강간당해 죽었어.

 

AND STILL NO ARRESTS?

그런데 아직 아무도 체포하지 못했다고?

 

HOW COME, CHIEF WILLOUGHBY?

윌로비 서장,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가출한 10대 딸이 강간당해 죽고, 불에 타다 만 시신이 발견되고, 그 뒤로 7개월이 지났는데 아무도 체포하지 못하고 있는 경찰의 무능에 대한 어머니의 분노가 이렇게 표현됩니다.

 

이 부분까지 보고 나면 관객의 90%는 영화의 방향을 짐작합니다. 이것은 딸을 잃고 분노에 가득 찬 백인 하층민 엄마의 외로운 싸움을 그린 사회성 영화로구나. 이 엄마는 결국 무능하고 나태한 시골 경찰을 질타하고, 어디선가 론 레인저 한 사람이 나타나고, 이 영웅(혹은 반영웅)은 대다수 사람들의 외면 속에 엄마를 도와 딸의 원혼을 달래 줄 수 있....

 

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정상일 뿐만 아니라 매우 우수한 관객입니다. 하지만 '쓰리 빌보드'를 계속해서 본다면 당신의 그 모든 예측이 이렇게 벗어날 수 있다는 데 진정 놀라게 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은 분이 있다면, 지금 바로 키보드 앞에 앉아서 샘솟는 아이디어로 바로 대본을 쓰시기 바랍니다. 정말입니다. 한국의 영화계/드라마 업계는 바로 당신 같은 분을 찾고 있습니다.)

 

사실 글 첫머리에서는 이 작품으로 인해 좌절할 작가 지망생들에 대해서만 썼지만, 반대로 한 두 작품 해 보고 아 난 안 되는구나 하신 분들에게도 이 영화는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각본/감독을 겸한 마틴 맥도나의 이전 작품들을 보면 이런 수준의 작품을 써 낼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의 전작 중 제가 본 작품은 '킬러들의 도시(In Bruge)' 하나 뿐인데, 일부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대본상으로 별로 뛰어나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맥도나 감독의 세번째 장편영화 시나리오입니다. 최소한 세 번은 써 봐야 하실 이유가 또 생긴 셈입니다.  

 

자꾸 다른 얘기로 빠지지만, 이 영화의 리뷰를 쓰면서 줄거리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건 별 의미가 없을 듯 합니다. 이 대목에서 할 말은 딱 한마디. 지금 바로 극장으로 달려가세요. 언제 상영관이 없어질지 모릅니다. 다음주까지... 물론 국산이든 외산이든 흥행용 대작 영화가 없는 3월이긴 하지만, 한국의 극장 상황에선 낙관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지금부터는 스포일러 작렬입니다. 영화를 보실 분은 여기서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 인물은 세 사람. 간판에도 언급된 시골 읍내 경찰서장인 윌로비(우디 해럴슨), 문제의 엄마인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먼드), 그리고 윌로비의 부하인 꼴통 경찰관 딕슨(샘 록웰)입니다.

 

 

 

세 사람 중 아마도 전통적인 주인공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윌로비 서장입니다. 할리우드 영화에 꽤 자주 등장하는 미국 소규모 지역사회의 영웅이죠. 굳이 고전 영화로 비교하자면 '앵무새 죽이기'의 아티커스 핀치 변호사(그레고리 펙이 연기하는)같은 인물입니다. 정의감이 투철한데다 두뇌가 명석하고, 딕슨 같은 개망나니도 따르게 하는 이상적인 인간에 가깝습니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도 그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로서도 밀드레드 딸의 강간 살인 사건은 난제입니다. 수사를 하려 해도 증거도 증인도 없습니다. 시체에서 남자의 DNA가 검출되긴 했지만 비교할 용의자가 없는 실정입니다. 

 

반면 밀드레드에겐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증거가 없다는 윌로비의 말에 왜 이 동네의 모든 남자, 나아가 전 미국의 모든 남자로부터 DNA를 추출하지 않느냐고 우겨댑니다. 자신이 중시하는 정의의 실현을 위해선 고려해야 할 다른 요소(이를테면 국가 권력이 닥치는대로 민간인의 DNA를 추출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인권 침해 같은)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매우 극단적이긴 하지만, 사실 이런 사람들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하나의 이익이 주어질 때 내놓아야 할, 지금까지 누리고 있었던 편익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법입니다.

 

밀드레드의 일방통행적인 생각은, 딸을 잃은 엄마라는 당위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사지 못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밀드레드가 공격하는 윌로비 서장이 평판 좋은 인물인데다 암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밀드레드는 자신이 암에 걸려 있다는 윌로비의 말에도 "그럼 시간이 없을테니 더 서둘러 수사하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합니다. 진정 비호감 캐릭터죠. 이런 밀드레드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선두에 딕슨이 있습니다.

 

 

 

물론 딕슨에겐 밀드레드에 대한 구체적인 미움 같은 것이 없습니다. 애당초 딕슨은 스스로 생각하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일찍 죽은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그의 성장 과정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고, 인종주의를 비롯한 갖가지 편견도 다 어머니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그 결과 딕슨은 엄청난 효자가 되었습니다^^). 어쨌든 어머니 외에 그가 믿고 따르는 것은 윌로비 서장 뿐이고, 그 윌로비 서장에게 맞서다 결국 윌로비 서장을 죽게 하는(이건 좀 다시 얘기할 필요가 있죠) 밀드레드는 진정 용서할 수 없는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윌로비 스스로 밝히고 있듯, 그의 죽음은 더 지속해 봐야 고통만 더할 뿐인 암 치료의 연장을 피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광고 때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 때문에 밀드레드를 더욱 비난할 것임을 짐작하고 있고, 그 때문에 밀드레드에게 광고판 임대료를 자신이 지불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당연히 그의 예견대로 밀드레드는 더욱 고립되지만 밀드레드는 서장의 마지막 편지를 공개하지 못합니다. 죽을 사람을, 그리고 이렇게 솔직하고 선량한 사람을 괴롭혔다는 죄책감 때문이죠.

 

이 영화는 '인간의 용서와 화해', '다른 인간의 입장에 대한 역지사지', '더불어 살기의 미묘함' 처럼 너무나 기본적인, 심지어 너무 자주 다뤄져서 하품이 날 지경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제껏 관객들이 접해 보지 못한 새로운 국면으로 관객들을 몰아넣고 절묘한 공감의 체험을 하게 한다는 것이 최고의 미덕입니다.

 

아울러 그 가운데서도 코미디, 특히 블랙코미디로서의 위치를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는 또 다른 강점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인간 내면을 성찰하는 이야기'와 '유머 감각'은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쉽게 단정해 버리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살인의 추억'과 송강호의 개그가 절대 따로 놀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쓰리 빌보드'에서는 딕슨이 주로 이 역할을 맡습니다. "아니에요! 열두시까지 들어간다고 했다구요!" "왜? 소금은 원래 상처에 좋은 것 아닌가?" 같은 대사는 너무나 유쾌합니다. (개인적 취향이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겠죠.^^)

 

 

 

이 세 사람을 둘러 싼 여러 마을 사람들은 각각 이 세 사람 중 한쪽 편에 서서 갈등과 웃음을 조율합니다. 특히 '왕좌의 게임'으로 월드스타가 된 난장이 배우 피터 딘클리지가 연기하는 제임스는 몇 신 나오지 않지만 이 영화의 색깔을 대변하는 중요한 기능을 갖습니다. 그가 맡은 역할을 '낙관'이죠. 희망이라곤 없는 밀드레드에게 잠시 인생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인물입니다. 역시 같은 역할을 하는 페넬로페(사마라 위빙) 역시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빙 Weaving 이란 이름에서 '혹시?' 하셨다면: 네. 스미스 요원님의 조카딸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정말 대단한 이야기를 봤어!'라는 생각이 들지만 누군가로부터 '대체 그 영화는 뭐에 대한 영환데?'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한 두 마디로 이 영화가 어떤 영화라는 점일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어떻게 변해 가는가를 다룬 다른 위대한 영화들, 예를 들어 '타인의 삶' 같은 영화를 설명한다면 '도청이라는 수단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엿보다, 그 사람의 인생에 감화되어 자신의 인생이 바뀌는 이야기' 처럼 얘기할 수 있겠지만 '쓰리 빌보드'를 이런 식으로 정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 어머니가 딸이 죽은 사건을 추적하다가 인생에 눈뜨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 '서로 미워하고 갈등하던 사람들이 인간은 어떤 경우에서든 화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 이야기'라고 하면 과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이렇게 특별한 사건이랄 게 딱히 등장하지 않는데도, 놀랍도록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 이 영화의 신비로운 요소라 할 수 있겠습니다.

 

라스트 시퀀스.

 

차 안에서 딕슨과 밀드레드는 발견된 악을 스스로 징벌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고민합니다. 하지만 이제 그건 오히려 덜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중요한 건 두 사람 사이에 정의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고, 그 둘은 이제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서로를 지지해 주는 힘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거죠.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끝까지 인간성에 대한 낙관을 잃지 않습니다. 이 낙관이 너무 나이브하게 느껴진다는 사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혀 실망스럽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을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이런 마무리를 충분히 싫어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아, 물론 저 이 영화 굉장히 좋아합니다.)

 

맥도먼드와 록웰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안긴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논하는 것은 시간낭비. 그 밖의 배우들도 눈부십니다. 이 화려한 연기가 맥도나 감독의 대본과 디렉션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작품상, 최소한 각본상은 주어졌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물론 상은 운이죠. 어쩌면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받은게 불운의 시작...

 

 

 

 

 

P.S. 물론 가장 마음에 드는 대사는 라스트 신 직전에 나오는 밀드레드와 딕슨의 대화 = "이봐, 사실 그때 경찰서에 불 지른 건 나였어." "...그럼 당신 아니면 대체 누구겠어?" - 입니다. 아마도 오래 전, "우리 이제 끝난 걸까?"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어"('키즈 리턴') 이후 가장 훈훈한 대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P.S. 2 이 영화의 여운을 느끼며 들을 만한 노래는 아마도 이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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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베를린 동물원 Zoologischer Garten Berlin 정문이 동아시아식(뭔가 한국/중국/일본/베트남/태국식을 조금씩 합한 듯한 느낌?) 기와지붕으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동물원으로 유명한 도시는 그리 많지 않다. 샌디에에고? 아사히카와? 사실 내가 동물원을 꽤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베를린 동물원은 무려 1844년에 개장한데다 현재도 전 세계 동물원 가운데 사육 종수 1위라는 기록을 갖고 있는 곳이다.

 

 

위 지도에서 '베를린'이라는 글자 위치가 대략 박물관 섬 정도 되는 지역인데, 통일이 된 지금 사람들은 베를린의 중심이 대략 저 정도 위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 쳐도 동물원은 그 중심에서 차로 20분 이내 정도의 위치(저 지도 왼쪽의 붉게 표시된 지역이다).

 

그리고 통일 전에는 이 동물원이야말로 서베를린의 중심이었다. 지금도 베를린에서 가장 부티나는 동네가 바로 이 베를린 동물원 부근인 거다. 지금도 오래된 베를린 토박이 상류층들은 '동물원 동쪽으로는 안 가'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어쨌든 그런 건 동물원에 뭐가 있냐는 것과는 상관이 없고, 동물원은 우리가 묵었던 호텔 바로 앞에 있었다. 정문까지 걸어서 10분 이내. 그리고 베를린 웰컴 카드로 무료입장할 수 있는 시설이기도 했다.

 

게다가 마지막날의 비행 스케줄이 오후인데다 베를린은 공항과 시내가 매우 가까워서(정확하게 말하면 초 역에서 가까워서), 오전 시간을 쓸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베를린 웰컴 패스로 무료 입장할 수 있는 시설 중 하나. 이런데 안 갈 이유가 없잖아!

 

 

 

...해서 호텔 체크아웃 때까지 시체놀이를 하고 싶었던 동행인을 설득,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고 동물원 구경에 나섰다.

 

그런데 입장 직후부터 뭔가 살짝 꼬이는 느낌을 받았다. 맹수관이 수리중이라는 거다.

 

아니 뭐니 뭐니 해도 동물원은 사자 호랑이 아닌가. 이래도 되는 건가 이거?

 

그래서 안내판이 인도하는대로, 아쉽지만 사자/호랑이를 볼 수 있는 실내 축사로 향했는데...

 

 

 

이 친구는 아마도 삵쾡이 종류인가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새끼 사자였던 것 같다.

 

매우 수줍음을 타서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가 없었다.

 

아무튼 야행성인 고양이과 동물인데 오전에 밖에 나와 있다는게 신기하다 싶더니...?

 

 

바로 옆 칸에 이 암사자 언니가 있었다.

 

 

거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꽤 가깝다.

 

 

사실 동물원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맹수 축사는 대개 관람 라인으로부터 동물이 꽤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고 그 동물들은 대개 - 특히 고양이과의 큰 맹수들은 - 축 늘어져 있는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 누나는 뭔가 아침부터 심사가 뒤틀린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엔 아마도 조반 시간인데 사육사가 늦잠을 자서 타이밍을 못 맟춘게 아닐까 싶다.

 

갑자기 으르렁 으르렁 어흥 사자후를 토해내기 시작한다.

 

 

이렇게 철창에 바로 코를 박고 어흥 하는데... 오줌 쌀뻔 했다.

 

이게 실내라 소리가 좀 울려 주는 효과도 있긴 했을텐데, 바로 저 약 2m 거리에서 라이브로 사자후를 들으니 그냥 오금이 저리고 도망가고 싶어지는 거였다. 금세라도 저 철창을 뜯어내고 내 내장을 파먹으러 뚸쳐나오실 것 같은 박력이 느껴지더란 얘기다. 사자후라는 말은 괜히 만들어 낸 게 아니었다.

 

아무튼 그만치 무시무시했다.

 

아 무서. 생각해 보면 지금도 오금이 저리다.

 

 

그리고 밖에 나오니 표범과 저 이름 모를 새의 조화가.

 

 

37만 제곱미터라고 하는데, 이렇게 도심 한 복판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아름다울 뿐이다.

 

물론 37만 제곱미터도 절대 작은 규모는 아니지만 사실 규모는 과천대공원이 훨씬 더 크다.

 

 

그리고 동물과 가까이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하려고 애쓴 흔적이 크다.

 

이를테면 기린 같은 경우엔 아예 맘 먹으면 슥 나올 수도 있을 정도.

 

 

그리고 가장 인상깊었던 하마관.

 

 

이런 식으로 물 반, 땅 반의 구조다. 물론 땅 쪽에선 봐도 별 게 없다.

 

 

다들 물 쪽에서 하마를 보고 있다.

 

 

사실 누가 봐도 그렇게 환영받을 생김새는 아닌데,

 

 

이 상황에선 다들 너무 반가워한다.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는 위풍당당

 

 

그리 날렵하진 않지만

 

 

 

어쨌든 물속 모습을 보여주니 다들 너무나 좋아한다.

 

 

 

하마인가 바다코끼리인가

 

 

아무튼 하마 안녕

 

 

그리고 개인적으로 대단히 애착을 갖고 있는 백곰을 보러 갔다.

 

 

애착의 이유를 묻지 말라고

 

 

아 씨원해

 

 

야 콜라 마셔

 

 

응 콜라 어디?

 

 

에잇 젠장

 

아무튼 매우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북극에서 이 정도 거리였다면... 그냥 점심이 되었겠지만.

 

 

그리고 또 매우 감명깊었던 늑대 축사

 

 

이렇게 먹이를 준다.

 

대략 봐도 소고기인 듯 한데 덩어리가 2kg 정도는 될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좋은 고기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쟤 먹이려면 비용이 장난 아닐 듯.

 

 

아무튼 적나라하게 먹어준다.

 

 

가깝긴 한데 얘도 가끔씩 고기 먹다가 고개 들어 쳐다보면 눈빛이 일반 개 종류는 아니다.

 

 

조금 떨어져서 사진.

 

 

그리고 바다사자관.

 

 

먹이 주고 할건 다 하는데 다른 동물원처럼 특별히 교육받은 애교나 쇼는 없다.

 

뭐 동물 스트레스 주지 않으려는 의도라면 그런가 보다 하고.

 

그런 거 보시려면 한국이나 일본 가세요.

 

 

아무튼 5일간 웰컴카드, 뮤지엄 패스 사서 잘 쓰고 다녔다.

 

베를린에선 꼭 필요합니다. 사 두세요.

 

아, 내가 태어나서 택시 이하론 타 본 적이 없어 하는 분들은 없어도 됩니다. 죄송.

 

 

베를린 공항 라운지. 규모는 프랑크푸르트가 훨씬 크지만 이쪽이 더 알차다.

 

음식도 맛나고.

 

 

유럽 대륙 내에서의 항공사 비즈니스석은 사실 좌석 편의성 면에선 아무 의미가 없다. 요즘 유행하는 풀 플랫, 그러니까 180도로 펴지는 좌석 절대 아니고, 다소 무시하듯 부르는 '우등고속형 좌석' 도 물론 아니다. 그냥 똑같은 이코노미 좌석이 3석 나란히 있으면 그 중 가운데 좌석을 비워 주는 것 정도가 비즈니스석의 현실이다.

(안 타본 사람은 잘 모름)

 

 

그래서 비즈니스석의 유일한 장점이라봐야 '라운지에서 술과 밥을 준다' 정도.  

 

 

독일답게 상당히 양질의 화이트 와인을 준다.

 

 

그렇게 해서 근 열흘간의 프라하/베를린 여행이 끝났다.

 

 

폴커 안녕. 다음에는 좀 더 자연과 도시가 만나는 지역으로 가 봐야겠다.

 

베를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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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의 5박이

 

첫날: 프라하에서 열차로 이동. 쉴러 극장에서 '파우스트의 겁벌' 관람.

2일: 베를린 가이드 투어 + 베를린오페라에서 발레 '백조의 호수' 관람.

3일: 베르그루엔+샤프 게르스텐베르크 미술관, 사진 박물관, 포츠다머플라츠

4일: 베를린 박물관 섬 + 자연사박물관 + 함부르크 역 미술관

5일: 쇼핑, 휴식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6일: 오전 베를린 동물원 + 오후 출국

 

박물관+미술관+공연장이 너무 비중이 큰 것 같긴 한데, 아무튼 게으르게 보낸 것 같지도 않은데 4일이 후루룩 가 버렸다.

 

전 같으면 베를린 중앙 공원이나 베를린 시민들의 휴식처라는 반제(Wannsee, See가 독일어로 호수)도 가보고 했겠지만 시내에서 가보고 싶은 곳들이 많아 거기까지 발을 뻗지 못했다. 좀 아쉽다.

 

 

그리고 뭣보다 이런 문화행사의 수준과 규모가 남다른 도시라 기왕 간 김에 공연을 보지 않기도 어려웠다.

 

한여름이었으면 어떻게 해서든 발트뷔네 콘서트를 가 봤겠지만 지금은 6월초.

 

 

느즈막히 일이나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최고의 쇼핑 스팟이라는 카데베에 입성했다.

 

 

카데베의 텍스 리펀드 시스템. 그리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시스템은 잘 되어 있다.

 

아무튼 요약하면 백화점에서 먼저 돈으로 다 받고, 공항에서는 등록만 하는 것이 제일 낫다.

 

아무튼 백화점 전문가인 마나님의 말씀으론 '한국 백화점이 훨씬 화려한 것 같다'고.

 

 

그런데 카데베의 놀라운 점은 꼭대기 층과 그 아래층의 식당가에 있었다.

 

카데베 탑 플로어 레스토랑의 위용.

 

맨 윗 사진을 보면 건물 꼭대기층의 오른쪽에 이런 아치가 보인다.

 

그걸 안에서 보면 이런 장관이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 거대한 카페테리아 + 부페식 레스토랑이 있다.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이 깔려 있고, 중간 중간에 즉석 요리 코너가 있다. 스테이크부터 바베큐까지 다양하다.

 

집은 요리 만큼 마지막 계산대에서 지불하게 되어 있어 합리적이다.

 

똑같이 돈 내는 부페보다 훨씬 합리적이다.

 

 

등심 스테이크, 구운 야채와 파스타, 프레시 샐러드, 견과류 수프까지 10만원 안짝.

 

(Schwein이란 깃발이 왜 꽂혀 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소고기다^^)

 

 

전망도 그만, 음식의 맛도 그만.

 

꼭 가보시기를 강추한다.

 

 

꼭대기층에 저런 대형 레스토랑이 있고, 바로 아래층에는 소규모 식당가가 있는데 가격은 이 한 층 아래가 더 비싸다.

 

저 작은 한 집 한 집이 꽤 유명한 레스토랑의 분점이라는 얘기.

 

어쨌든 쇼핑을 마치고(...많이 샀다), 배불리 먹고 베를린 필하모닉 홀로 향했다.

 

 

호텔에서 주요 관광지로 가는 200번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중간에 베를린 필하모닉 홀 정류장이 있다.

 

그래서 이 노란 건물을 자주 보긴 했지만 드디어 오늘, 들어가는 날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하는 공연을 본다는 건 어떤 사람에겐 대단한 일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다.

 

캄프 누 에서 축구 경기를 본다든가, 부도칸 에 가서 라이브 공연을 본다든가 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터.

 

아무튼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몇 차례 공을 들였다.

 

일정을 한번 바꾸는 바람에 처음에 예매했던 리카르도 무티의 공연은 공으로 날릴 뻔 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티켓 환불 따위 해 주지 않는다. 결국 그 공연은 절반 이하의 가격에 누군가 횡재를 했다.ㅜㅜ)

 

처음부터 꼭 사이먼 래틀의 공연을 보려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일정에 맞추다 보니 구스타보 두다멜과 인연이 닿았다.

(2018.6.8, 6.9)

 

https://www.digitalconcerthall.com/ko/concert/23517

 

 

이때가 2017년 2월. 결국 3월초쯤 이 공연도 매진됐다.

 

베를린 여행을 계획하신 분들이라면 일정을 잡자 마자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 예매를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국내에서 40~60만원씩 하는 티켓을 10만원 내외로 살 수 있다. 물론 매진되기 전에 손이 닿아야 가능하다.

 

아, 베를린에 온 김에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이나 한번 보고 가면 어떨까, 했을 때 늘 좌석이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 두시길.

 

(만약 그랬다면 당신은 매우 운이 좋았던 셈이다. 하긴, 에베레스트도 날씨만 좋으면 운동화 신고 정상 등반에 성공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정문 후문의 공식적인 구분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버스 정류장 반대편인 이 출입구가 약간 후문의 느낌이 난다.

 

멀리서 봐도 그렇고, 가까이서 봐도 그렇고, 이 건물은 이제 오랜 세월 베를린의 상징처럼 여겨져서 자연스럽게 느껴질 뿐이지 처음 건설될 때에는 꽤 말이 많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딘가 가건물 내지는 창고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건물을 설계한 베른하르트 한스 헨리 샤로운 Bernhard Hans Henry Scharoun 님의 구상이었던 것 같은데, 이 양반의 작품들은 대개 다 그냥 상자곽같은 느낌을 준다. 그나마 이 건물은 뭔가 임팩트를 준 덕분(?)인지 서커스 텐트같은 느낌이 들어서 '카라얀의 서커스 Zirkus Karajani' 라고 불린다고 한다.

 

 

해가 긴 베를린. 후문쪽으로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고 있다.

 

 

 

여기까지 왔는데 당연히 인증샷.

 

 

정류장 이름은 그냥 단순하게 'Philhamonie'다. 베를린 필하모닉이니 뭐니 설명이 필요없다는 뜻.

 

1887년, 베를린 필하모닉은 통일 독일의 융성한 기운을 배경으로 태어났다. 17세기, 30년 전쟁의 여파로 신성로마제국이 사실상 해체된 이후 독일은 50여개의 자잘한 나라들로 해체됐다. 표면적으로는 제후국이었지만 사실상 각각의 나라들은 모두 독립국이었고, 19세기까지도 느슨한 상태의 '독일 연방'이 있었을 뿐 하나의 독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1871년,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는 프랑스와의 전쟁('정치적 후광의 대명사' 나폴레옹 3세가 상대였다)에서 승리한 뒤 독일의 통일을 선언했다.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함에 따라 신성로마제국 이후 중부 유럽의 정치적 중심지는 빈에서 베를린으로 이동한다.

 

역사적으로 크게 주목받은 적이 없는 북부 독일의 도시, 일개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에서 전 통일 독일의 수도로 거듭난 '신 수도' 베를린은 새로운 문물의 도움으로 당시 세계 최첨단의 도시로 탈바꿈한다. 당시 세계 문명의 최첨단 기술은 바로 전기였다. 베를린은 전기 활용에서 전 세계를 리드했다.

 

 

1879년, 독일 지멘스 사(지금도 건재한)가 최초로 상용 전철을 개통시킨 도시가 바로 베를린이었다. 이런 세련되고 멋진 신도시에는 거기 걸맞는 문화의 향기도 필요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베를린 필하모닉이 탄생했고, 초대 지휘자로 당대 최고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가 취임했다.

 

(한스 폰 뷜로는 브람스와 바그너의 대다수 작품을 초연한 '전문 지휘자의 시조'로도 유명하지만 바그너에게 아내를 빼앗긴 남자로도 유명하다. 문제의 여자는 리스트의 딸 코지마. 아마도 코지마가 바그너에게 가겠다고 한 뒤 뷜로는 스승인 리스트에게 찾아가 징징댔을 것 같고, 리스트는 뷜로에게 이런 식으로 얘기했을 것 같다.

"울지 말게. 원래 내 딸은 자네가 감당할 여자가 아니었어.")

 

 

20세기 들어 베를린 필하모닉은 2대 지휘자 아르투르 니키슈, 3대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에 의해 세계 최강의 자리를 점점 더 굳혀 간다. 물론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겪으면서 나치 부역 혐의의 망령이 이 오케스트라의 원죄처럼 드리우게도 되지만, 중론은 '음악이 뭔 죄냐' 쪽인 것 같다.

 

예술가에게도 정치적인 공정성, 혹은 도덕적/이성적 엄밀성을 요구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예술가는 그가 구현하는 미적 결과물의 가치에 와 개인의 도덕성을 구분해서 평가받아야 하는 존재인가. 이 질문은 아마도 먼 훗날까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지휘자로서 위대했던 푸르트벵글러 앞에서 인증샷.

 

이 바로 옆에 카라얀의 사진도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을 얘기하면서 카라얀을 건너 뛸 수는 없다. 단지 클래식 음악을 얘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20세기 인류 문명을 이야기 하면서 카라얀과 동급으로 거론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해 보면 그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끼게 된다. 피카소? 엘비스? MJ? 아인슈타인? 마틴 루터 킹? ...마하트마 간디?

 

워낙 유명한 양반이다 보니 그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그치지 않는다. 이미 정평이 난 인성 문제는 차치하고(답이 나와 있다), 정말로 정말로 그가 최고의 지휘자인가...하는 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많은 사람들의 소일거리가 되어 온 것 같다.

 

물론 감히 그런 논의에 끼어들 수준은 안 되는 것을 인정하고 얘기하면, 어쨌든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취향상 그보다 다른 지휘자를 더 좋아할 수는 있어도, 그를 무시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특히 그 말도 안 되는 레퍼토리의 폭을 보면 정말 그는 난 사람이다.

 

아울러 그분이 남겼다는 말씀들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말은 이거다. 

 

"당신은 오페라를 눈을 감고 보나?"  

 

 

어쨌든 베이브 루스가 뉴욕 시민들에게 양키 스타디움을 선사했듯 카라얀이 없었다면 이 콘서트홀은 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각별한 건물인데,

 

건물 안에서 받은 인상은 '참 이모저모로 각졌다'...는 것.

 

 

드디어 들어왔다.

 

대공연장은 2440석.

 

 

공연장 안으로 들어와도 문제의 각진 느낌, 혹은 2015년 이후 렉서스의 그릴 디자인 같은 느낌은 이어진다.

 

하긴 렉서스 디자인을 여기서 따온 것일 수도 있을 듯.

 

 

네. 이거 얘기였어요.

 

 

정면의 괜찮은 자리.

 

베를린에서 공연장에 3번 갔는데 세번 모두 관람객의 평균 연령이 60세는 되는 것 같았다.

 

(농담이 아니라 베를린 오페라의 경우엔 인터미션이 15분이라도 짧을 것 같았다. 관객들의 평균 이동 속도가...)

 

그나마 베를린 필하모닉은 꽤 젊은 편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1라운드 끝.

 

존 아담스의 '시티 누아르 City Noir' 라는 재즈 냄새가 짙은 곡을 연주했다.

 

곡이 끝났는데 아무도 박수를 칠 수가 없었다, 는 말로 감상을 대신하고자 한다.

 

(아마도 관계자 누군가가 박수를 치기 시작한 듯 하다.)

 

 

 

 

 

인터미션이 거의 30분쯤 되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들 뭔가 먹고, 마시고, 떠든다.

건물 1층 뿐만 아니라 꽤 넓은 이 안마당이 관객들로 가득 찬다.

 

이 시간이 매우 의미있게 느껴진다.

 

공연이 곧 시작이라는 직원들의 안내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두다멜의 성명절기인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다. 이번 여행의 앞부분인 프라하에서 드보르작의 묘소를 방문하고 오는 길이었다는 점에 의미를 더욱 더 부여하고 싶다.

 

아무튼 두다멜의 이 곡 연주는... 말해 뭘 할까, 박력 그 자체.

 

 

예술의 전당 같으면 어림없겠지만 두다멜의 앵콜 무대 때 거의 모든 관객이 일어서서 박수를 치며 사진을 찍는다.

 

이래도 되나 싶지만 베를린에 오면 베를린 법을 따라야 하는 법.

 

 

두다멜은 자신이 받은 꽃다발을 단원들에게 한송이씩 나눠주며 활짝 웃었다.

 

 

 

공연이 끝나도 하나도 급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

 

해가 지고 밤이 되니 제법 쌀쌀한데 다들 공연장 밖에 서서 웃고 떠들고... 버스가 와도 곧바로 타고들 갈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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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들른 곳은 나름 공룡 뼈 마니아(공룡 마니아 아니다)인 마나님의 요청에 따른 베를린 자연사 박물관.

 

 

 

멋지긴 한데 이 브라키오사우르스의 뼈는 어째 좀 진실성이 결여되어 보인다.

 

저 표본의 몇%가 진짜 뼈일지... 음...

 

 

아무튼 세계 어디를 가나 어린이들은 역시 공룡의 편.

 

그런데 자연사 박물관에서 다음 목표인 함부르크 역 미술관까지 가는데 동선이 좀 꼬였다.

 

가이드북 상으로는 두 포인트가 지척이라고 했으나,

 

도보로 약 30분 거리...

 

 

어쨌든 나타나기는 나타났다. 함부르크 역 Hamburg Bahnhof 미술관.

 

이름은 함부르크역이지만 현재의 베를린 메인 역이 나오기 전까지는 베를린의 메인 역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미술관이다.

 

오르세와 같은 팔자. 건물로서는 참 괜찮은 팔자라고 할 수 있겠다.

 

 

건물 밖은 한산한데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은,

 

 

그렇다. 누가 봐도 로버트 인디애나. 약간 뒤집었을 뿐이다.

 

 

안셀름 키퍼(Anselm Kiefer)의 'Folk Thing Zero'라는 작품이 문 앞을 지키고 있다.

 

인디애나만큼 유명한 작가는 아닌 듯 하지만 아무튼 인상적이다.

 

 

 

문을 들어서면 이런 비현실적인 사이즈가 기다리고 있다. 역시 기차역이었던 건물다운 포스.

 

그런데 여기서 정지 신호등이 켜졌다.

 

.

 

동행인의 에너지 소모가 심해 충전이 필요한 상황.

 

사라 뷔너(Sarah Wiener)라는, 아마도 사장님의 성함이 내걸린 미술관 내 레스토랑.

 

 

 

 

바나나가 들어간 얇은 팬케이크. 비싸지만 맛있다.

 

여기서 식사하면 60~70유로 정도 예상. 미술관 옆 레스토랑이 대부분 그렇듯 미니멀하고 천장 높은 분위기도 일품이다.

 

 

 

자, 본격적으로 관람 시작.

 

 

일단 1층 동쪽에 현대 미술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거장들의 작품을 한데 모아 놓았다.

 

'우리 이런 미술관야'라는 느낌의 화력시범이다.

 

 

로이 리히텐스타인의 '해변 마을 Coastal Village'를 시작으로,

 

 

 

 

전시 스타일도 시원시원.

 

 

로버트 로셴버그의 '마인 Mine'.

 

...광산 관련은 아니겠지.

 

 

 

로셴버그의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이 '뮬 사슴 Mule Deer'.

 

뮬 사슴은 그냥 사슴의 종류다. 거꾸로 매달린 의자가 사슴 머리 박제를 연상시키고, 그 아래는 거울이다.

 

보는 사람 자신을 볼 수 있게 한 설계.

 

 

 

그리고 싸이 톰블리를 넘어 저 멀리 보이는 저 작품은...

 

 

조셉 보이스의 'Das Kapital Raum'.

 

(다스 카피탈은 그 자본론 맞다.)

 

역시 조셉 보이스답게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 없다.  

 

궁금하신 분들은 해설을 보시기 바람.

 

 

 

아무튼 누가 봐도 앤디 워홀의 누가 봐도 마오 형님을 다시 보고 돌아나오면,

 

 

사이즈가 사람을 압도하는 메인 전시장.

 

그런데 이게 하나의 작품이라는거다.

 

 

이런 광활한 공간에 세 개의 데스크가 설치되어 있다.

 

관람각은 이 세 데스크를 거치며 데스크 직원의 응대를 받는다.

 

(데스크 직원의 머리 뒤에는 약간 공허할 수도 있는 목표 구호 따위가 쓰여 있다.)

 

 

데스크에서 설명을 들은 뒤에는 관람객도 무슨 서류에 서명을 하게 되어 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 잘 모르겠다.)

 

 

이 작품의 제목이다. 에이드라언 파이퍼, '개연성있는 신용 등록: 게임의 법칙 #1~3'

Adrian Piper, The Probable Trust Registry: The Rules of the Game #1~3

 

...음;; 2015 베니스 비엔날레 대상 수상작이라고.

 

뭔가 현대 사회의 지나친 합리성/공식성 추구에 대한 비판이라고 합니다만.

 

 

그 다음은 대규모 작가진이 참여하는 기획 전시.

 

 

 

댄 플래빈의 '무제'.

 

궁금한 것은 왼쪽의 조명이 작품에 포함된 요소일까, 이 건물에 포함된 요소일까 하는 것.

 

 

이 조명 얘기다.

 

 

흥미로운 요소. 이 전시를 보는 동안, 근세 노동자 복장을 한 인물이 전시장 안을 왔다갔다 한다.

 

처음에는 전시장 관리인인가 했는데 행동거지를 보면 전시의 일부다.

 

조셉 보이스의 Unschlitt/Tallow.

 

 

그밖의 상설 전시에는 George & Gilbert를 비롯해 상당히 흥미로운 전시품이 많있다.

 

 

 

물론 가장 큰 볼거리는 미술관 그 자체.

 

 

 

온 카와라 On Kawara의 I got up.

 

 

그리고 이 미술관이 미는 아티스트인 듯한 한네 다르보벤 Hanne Darboven의 Menschen Und Landschaften.

 

 

직역하면 '인간들과 풍경' 이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룬 대작(?).

 

 

허위허위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긴 베를린의 햇살도 저물어 가고 있다.

 

살짝 어두워지니 건물의 조명이 더 빛을 발한다.

 

 

나오다 보니 예사롭지 않은 나무 장식이 눈길을 끈다.

 

 

 

고된 하루를 보낸 뒤끝으로 호텔로 돌아와 기절.

 

 

그리고 비상용으로 아껴 뒀던 호텔 바로 옆 그리스 식당에서 수블라키를 먹었다.

 

수블라키는 언제나 옳다. 감탄할 만한 맛.

 

 

베를린에서 5박인데 5박이 하루 같다.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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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섬의 박물관들 가운데 가장 사진발이 잘 받는 곳을 꼽자면 아무래도 구 국립미술관 Alte Nationalgalerie 일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파란 하늘 아래 있으면 자못 멋지다.

 

 

 

독일어 한 마디도 못하지만 Alte는 old, Neue는 new다. 따라서 Alte가 있으면 Neue가 있다.

 

(예를 들어 뮌헨에도 Alte Pinakothek 과 Neue Pinakothek이 나란히 있다.)

 

물론 어디까지가 Alte고 어디부터 Neue 일까는 그때 그때 다를 수밖에 없지만 대략 20세기 이전이냐, 이후냐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 베를린의 구 국립미술관도 19세기 후반, 살짝 넘쳐 봐야 20세기 초반까지의 독일 화가들이 남긴 작품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베를린의 신 국립미술관, 즉 Neue Nationalgalerie 은 언젠가부터 수리에 들어가 아직 폐쇄되어 있었다. 언제 다시 개장할지는 모르겠다. 물론 파울 클레나 막스 에른스트 등 20세기 전반 베를린을 빛나게 했던 작가들의 작품은 좀 더 작은 국립미술관 - 앞에 방문기를 썼던 두 미술관도 규모가 크지 않아 그렇지 당당한 Nationalgalerie다 - 에서 꽤 많이 보았으므로 크게 아쉽지는 않다.)

 

어쨌든 지금 온 곳은 Alte 니까 19세기 이전 독일 화가들의 작품을 주로 소장하고 있다.

 

 

 

내부도 뭔가 부티가 풀풀.

 

 

언젠가부터 유럽 미술관에 들어가 보면 이런 어린이들을 찍게 된다.

 

테이트 모던, 프라도, 알테 피나코텍, 어디나 이렇게 엎어져 그림을 그리는 어린이들이 있었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오크가 있는 수도원'. .

 

프리드리히라면 누구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생각하겠지만 그 그림은 함부르크에 있다.

 

 

이 박물관의 스타는 아르놀트 뵈클린 Arnold Boecklin. 그의 45세 때 자화상이다.

 

(독일 상징주의의 대표 화가 중 한명이지만 사실은 스위스 출신이다)

 

자신의 어깨 뒤에서 사신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광경을 그리다니. 악취미긴 한데,

 

 

세기말의 냄새가 물씬 나는 이런 '십자가 아래에서의 눈물' 같은 그림이 그의 작품이다.

 

 

그리고 수없이 패러디된 그의 대표작. '죽음의 섬'.

 

딱 봐도 음산하고 무섭다. 2차원의 그림인데 3D 효과도 너무나 선명하다.

 

 

자세히 보니 절벽에 AB 라는 그의 이니셜이 써 있다.

 

 

그리 큰 그림이 아닌데도 을씨년스러움이 온 전시실을 휘감는다.

 

 

역시 인기다.

 

 

'Ocean Breaker (The Sound)' 라는 제목인데, 오딧세우스 신화의 키르케를 묘사한 것일까?

 

 

 

그런데 미술관의 전시 상태에 좀 불만이 있다.

 

그림에 바로 자연광이 떨어지는 환경이라 반사가 심하다. 그 탓에 그림의 세부를 보기가 쉽지 않아 아쉬웠다.

 

아니 세계적인 미술관이 왜 이래.

 

 

그리고 지나는 길에 이건 누가 봐도 오노레 도미에의 누가 봐도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

 

 

 

갑자기 이 형님은 여기 왜 계신지.

 

 

그리고 독일에도 인상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막스 리베르만 Max Liebermann의 '정원의 벤치'

 

 

중간의 테라스에서 베를린 돔이 보인다.

 

3층과 2층에서는 사실 뵈클린과 프리드리히 외에 큰 관심 가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았다(개취).

 

내 생각에는 1층에 있는 20세기 초 독일 화가들의 컬렉션이 아무래도 이 미술관의 진수가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프란츠 폰 슈투크 Franz von Stuck의 '죄악'.

 

 

 

여인의 얼굴과 뱀의 표정에서 사악함이 뭉클뭉클.

 

 

'키르케를 연기하는 Tilla Durieux' 라는 제목. 역시 비슷한 느낌이다.

 

틸라 두리유(?)는 당대의 유명한 여배우라고.

 

 

 

이런 사악한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슈투크는 이렇게 생겼다.

 

어째 그럴 것 같은 얼굴이다.

 

 

역시 슈투크의 작품인 '폰(Faun)과 인어'. 그런데 인어가 왜 하체가 갈라지는거야. ;;

 

혹시 인어 스타킹?

 

 

그러고 보니 이 전시실의 이름은 분리파(Secessionen)/ 세기말(Jahrhundertwende).

 

프랑스에서 기성 화단에 반항해 일어난 것이 인상파라면 좀 늦은 독일에선 분리파가 기성 화단을 부정하고 일어섰다.

 

슈투크 등의 화가들이 뮌헨에서 일어난데 이어 빈에서는 클림트가 그 깃발을 이어받은 셈이다. 

 

물론 분리파는 사조의 이름은 아니다. 다만 슈투크와 클림트는 상징주의의 화풍에서 공통점이 있는 셈이다.

 

 

토마스 데오도르 하이네의 '악마'.

 

 

이 전시실의 분위기와 딱 맞는다.

 

 

막스 클링거의 '조개껍질을 탄 비너스'

 

 

프레디 머큐리를 연상시켜서 담았다. 아르투르 캄프 Arthur Kampf의 '연기자' (광대?)

 

물론 전통적으로 베를린을 대표하는 화가는 이들보다는 아돌프 멘젤 Adolph Menzel 이다.

 

프로이센 왕국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이런 우아한 궁정 그림이 멘젤의 대표적인 화풍인데,

 

여기 전시된 다른 그림들을 보면 꼭 그렇게 우아한 것만을 고집한 사람은 아니다.

 

 

 

뭔가 격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 그림은,

 

 

제목이 '프라하의 유태인 묘지 Judenfriedhof in Prag.

 

움베르토 에코의 '프라하의 묘지'가 생각나는 그림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기심.

 

 

이렇게 해서 박물관 섬의 다섯개 박물관 가운데 세 개를 기를 쓰고 돌아봤다. 꽤나 힘들다.

(3개를 가든 5개를 가든 입장료는 모두 베를린 뮤지엄 패스로 해결된다. 꼭 사라.)

 

베를린 구 박물관과 보데 박물관까지는 여력이 미치지 않아 그대로 패스. 구 박물관은 그리스/로마 시대 조각이 많다고 하고, 보데 박물관은 중세 기독교 관련 유물이 많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무리일 것 같아 나름 순위를 매겨 상위 3개를 돌아봤다.

 

미안해요. 건물 외관 예쁜 보데 박물관. 그리고 정면 멋진 구 박물관.

(하지만 다음에 와도 들르겠다는 말은 못하겠어요. ;;)

 

아직 가 볼 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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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박물관 섬의 다섯 박물관은 정말 뭉쳐 지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관람객들은 멀리 왔다갔다 하지 않아서 좋지만 외곽에 위치한 구 박물관, 신 국립미술관, 그리고 보데 박물관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건물 전경을 찍기가 쉽지 않다.

 

아무튼 그래서 페르가몬 박물관에 이어, 신 박물관 Neues Museum 도 전경은 없다.

 

 

 

일단 박물관/미술관은 제일 높은 층부터 간다는 원칙에 따라 3층(그러니까 4층)으로 직행.

 

가 보니 인류 발달사를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는 대형 모니터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석기시대부터 인류가 발달해 온 과정을 간략하게 보여주는데, 마음 바쁜 관광객도 자리를 지키고 보게 할 만큼 그래픽과 내용이 흥미로웠다.

 

 

 

3층 한 구석에는 이 박물관의, 어쩌면 베를린 전체를 대표하는 간판 유물인 '황금 모자 Berliner Goldhut'가 있다.

 

그렇다. 저 가운데 번쩍번쩍 빛나는 뾰죽한 물건이 바로 모자다.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생겼다.

 

 

유물의 비중이 비중인 만큼 설명 페이지를 붙여 둔다. 청동기시대의 왕 또는 제사장 같은 신분의 사람이 썼던 것으로 추정될 뿐, 이 황금모자와 관련된 다른 사료나 증거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그냥 생각만 해 봐도 그 옛날에 저 정도의 황금 모자를 만들었을 정도라면 상당히 강력한 지도자였음은 분명할 것 같다.

 

그런데 그 옛날에도 금 좋은 건 다들 알았었다니.

 

 

 

황금 모자를 넋놓고 바라보다 박물관의 다른 한 편으로 넘어간다. 박물관 중간의 계단실이 이 정도의 규모다.

 

 

창밖으론 잠시 후 갈 신 국립미술관이 보인다.

 

 

기원전 5천년 전 정도의 그릇받침.

 

 

신 박물관의 3층은 어찌 보면 '문명 이전의 베를린 지역'에 대한 향토 박물관 같은 느낌을 준다.

 

그 당시 석기/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사냥했을 엘크의 뼈가 전시돼 있기도 하다.

 

엘크, 진짜 크다.

 

 

약 1만3천년 전의 것 정도로 추정되는 말 모양의 토기 하며,

 

 

 

베를린 인근 지역을 거쳐간 수많은 문명의 흔적들이 전시돼 있다.

 

하기야 대륙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와는 달리, 대륙 복판의 베를린 지역은 수많은 민족들이 밀고 들어왔다 밀고 나기기를 반복했을테니 흘리고 간 유물도 다양할 수밖에.

 

 

 

라고 생각하면서 2층으로 내려오면 동네 잔치는 이제 그만.

 

이집트 어딘가에서 온 유물들이 줄줄이 줄줄이 쏟아진다. 시종 목상이다.

 

 

 

 

그런데 시종 Chamberlain, 혹은 Hepetni 라고 이름 붙은 좌상들은 전부 저렇게 오른손은 뭔가를 쥐고, 왼손은 편 상태다.

 

뭘까?

 

 

 

아이들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축소해서 표현하는 스타일도 흥미롭다.

 

 

 

이런 식으로 이집트 유물들이 죽 전시되어 있는데,

 

다른 유럽 지역 미술관/박물관에 비해 사진 촬영에 대단히 관대한 베를린 사람들이 유독 찍지 못하게 하는 유물이 있다.

 

이집트 출신으로 클레오파트라 다음으로 유명한 여자.

 

물론 나도 엄중한 관리를 뚫고 찍을 생각까지는 없었다. ABC뉴스에 활용된 보도 사진.

 

아마도 고대의 여인상 가운데 가장 유명한 조각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진으로만 봤을 때에는 목상인가, 아니면 토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은 석회암(limestone) 조각이다. 그 밖에 장식용의 접착재료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봐도 미인이지만 당시에도 미인으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BC 14세기 이집트의 미적 감각이 현대인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건 이상하게 안도감을 준다.

 

남편 아케나톤 Ahkenaton 은 전통적인 다신교 신앙을 가졌던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신 아톤 Aton 을 유일신으로 하는 종교개혁을 시도했을 정도로 강력한 왕이었다(이상하게도 옛날 교과서에서는 이크나톤이라고 배웠다. 이집트어에서 모음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아마르나 유적지에서 당시의 대 조각가인 투트모세 Thutmose의 작업장을 발굴하다가 출토된 덕분에, BC 1345년이라는 제작 연도도 추정 가능했다.

 

이 완벽한 조각상의 한가지 흠결은 수정으로 조각된 오른쪽 눈과 달리 왼쪽 눈이 없다는 것. 이 때문에 네페르티티가 본래 왼쪽 눈이 없는 인물인지, 아니면 단순히 조각상이 파손된 것인지도 얘기가 분분했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아케나톤과 네페르티티는 그 유명한 투탄카멘의 부모라고도 한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이설들이 있다. 다른건 다 떠나서 BC 14세기 인물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상세한 기록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는 데 이집트 문명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솟는다.)

 

아무튼 실물로 본 네페르티티, 역시 미인이더라.

 

 

 

네페르티티의 방을 지나가면 그 못잖게 유명한 젊은이가 있다.

 

크산텐의 젊은이. Xantener Knabe.

 

 

 

라인강까지 진출한 로마인들의 유물이다.

 

BC 1세기 경의 것으로 1858년 라인강의 어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

 

 

아마도 오른팔은 이런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 검투사들의 모습을 조각한 것들이 많은데,

 

(당연히 저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로마인들이 흘린 물건들)

 

 

 

그런데 너무 귀엽잖아.

 

 

응? 저게 에... 에로스라고?

 

 

거기 비하면 이건 누가 봐도 머큐리(헤르메스) 이긴 하네.

 

 

 

그리고 이렇게 그럴듯한 로마 시대 조각품이 있는가 하면

 

 

갑자기 이런 토템 조각 같은 것이 등장한다.

 

이 박물관... 뭔가 약간 어지러워.

 

그리고 다시 이집트 조각과 묘지 벽화의 습격.

 

 

그리고 이 박물관의 마지막 스타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베를린의 녹색머리 Berlin Green Head.

 

 

녹색편암을 이용한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조의 작품. BC 1세기 언저리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가 살던 시대의 작품이라는 얘기.

 

그런데 놀랍도록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돌의 가공 상태는 물론이고 좌우 균형에서 뒤통수의 주름까지, 완벽하다.

 

 

마지막으로 이집트 무덤 속으로 들어간다.

 

 

0층이 바로 각종 관을 전시한 곳이다. 주로 이집트에서 출토된 것들이다.

 

1층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뜨악 놀란다.

 

 

우르크, 혹은 와르카라 불리는 고대 도시의 거대한 꽃병....

 

꽃병이라기엔 좀 너무 크고, 예식용의 꽃꽂이용 청동 항아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3천년 넘은 물건이라고.

 

 

 

이런 물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긴 처음인데 멋지다.

 

 

이건 로마시대의 석관(Sarcophagus).

 

사르코파구스의 어원은 '사람을 먹어치우는 돌'이라고 한다.

 

 

 

이집트 석관은 내부에도 이렇게 조각이 되어 있다.

 

 

뭘 많이 보다 보니 화장실 표시도 굉장히 있어 보인다.

 

 

어느새 대낮.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이럴땐 매점행이다.

 

 

 

그리고 이렇게 날씨가 좋아져 있을 줄이야. 박물관 앞 잔디밭에 앉기 딱 좋은 날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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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가몬 박물관 2층으로 올라가면 뜬금없이 방 하나가 나타난다.

(혼동을 막기 위해 다시 한번 강조하면, 한국식으로는 3층에 해당한다)

 

알레포의 방 Aleppo Room 이라는 전시물이다.

 

 

 

이 대목에서 알레포가 누구야, 라고 하시면 안됨.

 

왜냐하면 알레포는 지명이라서.

 

 

 

지도 보시다시피 알레포는 레반트 지역의 북쪽, 시리아 북부의 도시다.

 

십자군 전쟁 관련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오래 된 도시.

 

 

 

이 방은 17세기 초, 알레포의 기독교인 거주구역에 있던 한 부유한 상인의 집에서 방 하나를 통째 뜯어내 재현한 것이다.

 

(독일 분들은 뭔가 통째 뜯어와 재현하는 걸 참 좋아하지 싶다.)

 

 

옆방은 여전히 복원 공사가 진행중이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방 안의 치장이 정교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는 엄청난 양탄자의 습격이다.

 

 

 

뭔가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이런 작품도 있고,

 

(왠지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보이는 형상들이 날고 있다)

 

 

 

이 박물관 전시품들 중 가장 큰 카펫. 7.68 x 2.98 m 크기로 무게만 50kg에 달한다.

 

무굴 제국의 샤 자한이 자신의 왕궁 또는 아내의 무덤(타지 마할)에 깔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그렇다고 인도에서 만든 것은 아니고, 만들어진 곳은 바그다드 근처로 추정된다고.)

 

 

 

 

본래 카펫에는 동물 그림은 넣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 이 카펫은 용과 불사조가 그려져 있다.

 

뭐 실물이 있는데, 해도 되는 거겠지.^^

 

아무튼 양탄자 사진만 한 20장 찍어왔는데 양탄자에 토하실 수도 있으니 이 정도로 한다.

 

 

 

안쪽으로 죽 들어가 보면 역시 꽤 큰 형상에 눈길을 끈다.

 

므샤타 Mshatta 의 궁전 성벽을 홀랑 뜯어 와서 전시중이다.

 

Mshatta를 대체 어떻게 읽어야 하나... 음샤타? 므샤타? 어디를 봐도 별 지침이 없어 곤란했는데 유네스코 페이지는 친절하게 Mushatta 라고 표기해 놓고 있다. 고마워요 유네스코.

 

(바르셀로나 화이팅)

 

 

 

 

 

우마이야 조 Umayyad 는 이슬람교의 성립 이후 최초로 등장한 통일 아랍 왕조다.

(아랍어를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으므로 중역 과정에서 옴미아드 혹은 옴미야드 조라고 배운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사실 그런걸 누가 다 기억해. ) 

 

지배자는 칼리프 caliph 혹은 칼리파 Khalifah. 기독교 문화권에 비교하면 칼리프는 교황, 술탄은 황제라고 보면 된다...고 예전에 배운 것 같다.

 

 

이 므샤타 유적이 건설된 시기는 8세기, 그러니까 우마이야 조의 말기라고 보는 것 같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안 가봤지만 공항 가는 길이라고)

 

 

 

이런 유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뭐 여기서 뜯어가고 저기서 뜯어가고... 했겠지.

 

그래도 아직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이라니 대단하다.

 

사람이 사는 게 유적 보호에 좋은지, 안 사는게 유적 보호에 좋은지, 늘 궁금하다. 

 

 

 

아무튼 페르가몬 박물관에 와서 30여년만에 들어보는 고유명사들을 다시 영접하려니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이 일 한국(Il-Khanate)만 해도 그렇다.

 

몽골 제국은 징기스칸 사후 서서히 대원제국과 네 개의 한국으로 정리되어 간다. 중국과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원(元)제국은 익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 원나라고, 네 개의 한국은 각각 일 한국, 킵차크 한국, 차가타이 한국, 오고타이 한국이다.

 

차가타이(징기스칸의 2남)와 오고타이(징기스칸의 3남, 공식 후계자) 한국은 중앙아시아 지역을 남북으로 나눴고, 징기스칸의 손자들이며 위대한 정복자 바투(친자 여부가 의심스러운 징기스칸의 장남 주치의 아들)와 훌라구(4남 툴루이의 아들, 쿠빌라이의 동생)는 그보다 더 서쪽으로 진출했다. 그래서 훌라구는 아랍 지역을 차지해 일 한국을, 바투는 러시아를 거쳐 폴란드와 헝가리까지 진출해 킵차크 한국을 세웠다. 만약 바투가 몽골 제국의 황위 계승 분쟁 때문에 귀환조치를 받지 않았다면 서유럽도 몽골 제국의 일부가 되었을 지 모른다.

 

[징기스칸 전기와 그 부록 - 징기스칸의 후예들이 세운 나라들 - 을 열심히 읽은 것이 근 40년 뒤에 이런 데 도움이 될 줄이야.]

 

어쨌든 독일 제국의 관심사는 중근동 지방이었으므로 페르가몬 박물관은 일 한국의 유물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물론 그런 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알 뿐이지, 그 나라의 문화가 어땠는지, 심지어 어디 말을 썼는지, 그런 거야 알 바 아니다. 일 한국의 영토가 이란, 이라크, 동부 터키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었으니 당연히 그 지역 문화에 흡수됐겠지... 하는 정도.

 

생각해보면 학교 다닐 때 몽골 제국의 후예들이 4개의 한국을 세웠다는 말에 오오 우리가 몽골 제국의 후손인가 하는 바보들도 좀 있었는데, 이 한국은 韓國이 아니라 汗國, 즉 '칸(汗, Khan)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Khanate.

 

(요즘은 이렇게 한국이란 이름이 혼동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한국에서도 '칸국'이란 말을 더 많이 쓴다고 한다.)

 

뭐 그렇다고.

 

 

그렇다고 생각하고 보니 어쩐지 짙은 몽골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알함브라에서 본 듯한 이런 것도.

 

알함브라 얘기를 하고 있자니 진짜 알함브라에서 뜯어 온 것도 있다.

 

 

알함브라 돔 Alhambra Dome 이라고 불리는 목조 천장

 

알함브라의 나스르 궁을 가 보신 분들은 이것과 거의 비슷한 천장을 많이 보셨을 거다.

 

차이가 있다면 이 천장은 목조고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다.

 

아르투르 폰 귀너 Arthur von Gwinner라는 독일 은행가가 알함브라 지역의 부동산을 샀다가 스페인 정부에 다시 기증한 댓가로 이 목조 천장을 뜯어 올 권리를 얻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유물 하나.

 

상아로 만든 뿔피리(Oliphant)다. 서사시 '롤랑의 노래'에 나오는, 롤랑이 불고 죽은 바로 그 피리...는 아니지만, 아무튼 그 피리와 같은 종류의 올리펀트다. 길이 50cm 정도. 꽤 크다.

 

 

중세 내내 아랍령이었던 시실리 지역에서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모양의 올리펀트는 유럽 전역과 북아프리카에 걸쳐 발견된다. 심지어 조각된 문양에도 비잔틴, 아랍, 기독교 양식의 특징이 골고루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 뿔피리 하나에 유럽과 중근동의 역사가 다 담겨 있는 셈이다.

 

 

 

아무튼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사이에 페르가몬 박물관을 훑고 나오는 동안 우마이야 조, 사마라, 압바스 조, 파티마 조, 티무르 제국, 호라즘, 셀주크 투르크, 사파비 조, 앗시리아, 사산 조, 수메르 등등 언젠가 뇌 한 구석에 들어왔다 나갔던 수많은 고유명사들이 다시 한번 머리 속을 명멸하는 것을 느꼈다.

 

아마 죽을 때까지 내가 저런 고유명사들의 의미를 다시 알게 될 일은 없을 지도 모른다. 그만치 인생은 짧고, 인류가 구축해 놓은 유산들은 너무나 많다.

 

50이 되면 이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건 그만 둘 때가 된 거라고 며칠 전에 한 선배가 말씀하셨지만, 아직은 그 이야기를 부정하고 싶다. 세상은 넒고 알고 싶은 건 아직 너무나 많은데.

 

 

사실 페르가몬을 보고 왔지만, 정작 페르가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거대한 '페르가몬의 제단'은 보지 못했다.

 

기적적으로 2차대전 때 살아남은 이 유물은 현재 대대적인 보수에 들어가 있고, 2020년에야 다시 공개될 전망이다.

 

밀레투스의 시장 문도 어마어마했지만 이 제단에 비하면 소규모 유물인 셈인데.

 

 

과연 언제 또 베를린에 들러서 저 제단의 계단을 직접 밟아 볼 일이 있을까, 솔직히 장담할 수가 없다.^^ 

 

아무튼 저 제단 때문에 페르가몬박물관에 가 볼 날을 꿈꿨지만, 저 제단 없이도 페르가몬은 충분히 위대했다.

 

 

 

밖으로 나오니 하늘엔 한껏 구름이 끼어 있다.

 

박물관 하나 보고 나왔는데 벌써 다리가 아파 온다. 자, 박물관 섬에서 두번째 박물관으로 황금 모자를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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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걷는 날이 될 거란 확신 때문에 아침을 든든히 먹기로 했다.

 

(물론 다른 날이라고 부실하게 먹은 건 아니겠지.)

 

베를린 풀먼 호텔의 조식은 지금까지 가 본 수많은 호텔들 가운데서도 손끕을만 한 퀄리티다. 너무 맛있고 재료도 풍성하다.

 

 

 

 

 

베를린을 가로(세로?) 지르는 슈프레강 한 복판에 양말같이 생긴 약간 길쭉한 섬이 있다.

 

이 섬의 이름이 바로 박물관 섬이다. 독일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다섯개의 박물관이 이 섬에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섬의 왼쪽, 그러니까 북서방향에 다섯개가 오밀조밀 몰려 있다.

 

 

 

이렇게 다섯개가 사이좋게 붙어 있다.

 

루스트가르텐 Lustgarten 이라고 불리는 정원 쪽에서부터 A. 구 박물관, B. 신 박물관, C. 구 국립 미술관, D. 페르가몬 박물관, E. 보데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사이좋게 차곡차곡 붙어 있다.

 

사실 이렇게 보면 맨 앞(?)에 나와 있는 구 박물관이 뭔가 약간 왜소해 보이는데,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다.

 

 

 

베를린 관광의 필수 노선인 시내버스 200을 타고 루스트가르텐 Lustgarten 역에 내리면 제일 먼저 보이는 건물은 바로 이 어마어마하게 큰 베를린 돔이다. 이 사진은 약간 옆에서 봐서 그런데, 정면에서 보면 정말 위압감 느끼게 큰 건물이다.

 

 

 

 

그런데 시선을 약간 왼쪽으로 돌리면 다른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잔디밭이 바로 루스트가르텐이고 저 앞의 무식하게 큰 건물이 바로 구 박물관.

 

시선이 꽉 찬다. 어마어마하게 좌우로 길고 크다.

 

 

 

 

 

 

 

그리고 이 풍경이 보일 때 쯤이면 베를린 돔 앞을 지나가고 있다.

 

베를린 돔도 꽤 유명한 관광 스팟이지만 미안하다. 너한테까지 할애할 시간은 없단다. 오늘 형이 좀 바빠.

 

 

 

 

사실 저 어마어마하게 큰 구 박물관은 그냥 통과.

 

박물관 마니아로서 안타깝지만 저 구 박물관까지 돌아보다간 다리가 부러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내셔널갤러리 앞을 통과하면,

 

 

 

뭔가 공사판 한 구석처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야 오늘의 첫번째 목적지 페르가몬 박물관 Pergamon Museum 을 갈 수 있다.

 

 

 

자. 복습이다. 루스트가르텐에서 A, B, C를 모두 통과해야 D, 즉 페르가몬 미술관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건물 자체가 저렇게 다른 건물들에 포위되듯 둘러싸여 있어 어떻게 해도 전경을 찍을 수가 없다.

 

페르가몬 미술관 외경에 대한 자료 사진이 없는 데에는 다 이런 이유가 있다.

 

하지만 왼지 뒷문 같은 음침한 입구를 통해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즉 0층을 통과해 1층 -한국의 2층 - 으로 올라간 순간)

 

 

 

건물 내부인데 이런 경악스러운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이슈타르의 문'이다.

 

베를린에 수없이 많은 박물관들이 있고, 거기에도 나름 가치 있는 유물들이 차고 넘치지만 솔직히 말해 런던에는 대영 박물관이 있고 파리에는 루브르가 있다. 로마? 로마는 도시 자체가 인류사에 남을 유물의 덩어리다.

 

이런 유럽의 슈퍼 박물관들에 대항할만한 베를린 박물관의 에이스가 있다면 아무래도 페르가몬이다. 이 베를린의 자존심 페르가몬을 구경하기 위해서 이 아침부터 박물관 앞에 손님들이 줄을 서는 것이다.

 

(페르가몬 박물관을 가실 분이 있다면 무조건, 개장 시간에 맞춰 줄을 서라. 오후가 되면 줄은 더 길어진다. 박물관 정원제에 따라 일정 인원 이상이 입장한 상태에서는 일단 입장객들이 퇴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원전 6세기, 신 바빌로니아 왕국의 수도 바빌론에 있던 성문 중 하나를 통째로 옮겨 온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바빌론, 공중정원, 니네베, 뭐 이런 얘기로 넘어가면 그게 시대가 어느 시대인지, 전설인지 역사인지 아물아물해진다.

 

(이게 막 지구라트와 바벨 2세가 나올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전설의 시대가 이런 새파란 벽돌의 모습을 하고 눈앞에 나타나니... 감동적이다.

 

 

 

 

파란 벽돌(타일)을 보니 은근히 사마르칸트의 기억이 떠오르는데,

 

생각해 보면 이 파란 벽돌은 사마르칸트에서 본 색보다 조금 짙고 어두운 느낌이 돈다.

 

(물론 14세기 티무르 제국 유적과 6세기 신바빌로니아 유적을 한데 묶어 생각할 이유는 전혀 없다. 어쨌든 그냥 파란 벽돌을 보니 반가웠다는 정도로 정리해 두자. )

 

 

 

문을 등지고 서면 이렇게 성벽의 벽돌 모자이크 부분을 다 뜯어와서 복원해놓고 있다.

 

 

 

 

 

그러니까 외성문에서 내성문으로 들어가는 길이 이런 식으로 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이걸 허락 안 받고 뜯어 온 거라면 정말 기가 찰 노릇인데,

 

페르가몬 박물관 측은 극구 "대영박물관의 엘긴 대리석과는 달리 합법적으로 가져온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뭐 그러려니 할 밖에. 모자이크라기엔 부조에 좀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이 사자들은 바로 마르두크 신의 상징이고,

 

 

 

이건 당시 바빌로니아 신화에 등장하는 용, 뮤슈수(Mushussu)라고 한다. 이 성벽의 부조에 등장하는 동물은 무슈수, 사자, 그리고 역시 신성한 동물인 황소(아우로크 Auroch 라고 한다) 뿐이다.

 

 

 

그리고 이슈타르의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놀랄 거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밀레투스의 시장 문(Market Gate of Miletus) 이다.

 

밀레투스는 소아시아 지역, 그러니까 터키 서부 해안을 따라 그리스인들에 의해 건설된 도시 중 하나다. 이들 도시 중 가장 유명한 곳들이 트로이 전쟁으로 파괴된 트로이, 그리고 호메로스의 출생지인 스미르나(오늘날의 이즈미르) 등이다.

 

 

이 시장의 정문은 기원후 2세기, 그러니까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만들어진 것으로 10세기 경 지진으로 파괴됐다. 그걸 근세에 발굴하면서 복구했고, 그게 지금 베를린에 와 있는 것이다.

 

높이 16미터, 폭 30미터의 엄청난 사이즈인데,

 

 

 

이 모형의 왼쪽 귀퉁이에 있는 바로 저게 이 시장의 문이다.

 

그러니까 당시 밀레투스의 거대한 도시 규모에 비하면 이 웅장한 문이 별 것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리 보니 귀엽네.

 

 

 

 

아무튼 시장 문과 한 세트인 건너편 제단은 어느 신전의 한쪽 벽면이었던 것 같다.

 

 

 

 

 

물론 크게 상관 없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물들도 함께 전시돼 있다. 2세기 경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의 에로스 부조,

 

 

 

그리고 이건 레바논의 바알벡(Baalbek) 유적에서 나온 빗물 배출용 사자 머리 가고일이다. 역시 AD 2세기.

 

 

아무튼 쉽게 눈길을 뗄 수 없는 시장의 정문을 뒤로 하고,

 

 

뭔가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앗시리아 유적 속으로.

 

(대체 왜 친근감을 느끼냐고 하시면 뭐라 대답할 말은 없지만서도)

 

 

 

니네베(니느웨)의 궁전 벽에서 나온 사자 사냥 부조다. BC 7세기.

 

 

 

친절한 베를린 분들은 이 돌이 어디서 나온거냐 하면... 을 이렇게 지도로 꼭 같이 표기해 준다.

 

물론 그래 봐야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겠지만.

 

 

좀 알만한 지도로 바꿔 보면 앗시리아의 대표 도시인 니네베와 님루드는 이렇게 붙어 있다.

 

 

 

이건 라마스(Lamassu), 그러니까 '날개 달린 인면 사자상'인데,

 

 

사실 대영박물관에서 그 천장에 닿을 듯 한 거대한 라마스를 본 사람에겐 약간 애교스러운 사이즈.

 

 

 

아마도 영국이 먼저 털고 간 자리에 뒤늦게 독일인들이 도착한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얘들은 다리가 다섯개다!

 

대체 왜 ;;

 

(혹시 실수로 다섯 개?)

 

 

 

 

 

이것은 국왕의 모습으로 추정되는데, 신상들 사이에 위치해 왕=신의 느낌을 주려는 배치라고.

 

 

 

이런 식으로 앗시리아 왕궁의 한 방을 그대로 뜯어와 재현했다.

 

 

 

 

온갖 유물들이 다 있고,

 

 

 

이것은 앗시리아 시대 자유도시였던 사말(Sam'al)에서 뜯어 온 대형 돌사자들.

 

사말은 또 어디야... 생전 처음 들어본다.

 

터키 남부에 있는 유적이다. BC 10세기.

 

 

 

뭔가 마법적인 보호력을 기원하고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묘하게도 민화 속 호랑이를 연상시킨다.

 

 

 

 

 

누가 봐도 그렇지?

 

 

휴. 간신히 한 층을 끝냈다.

 

페르가몬 박물관, 한 층 보기가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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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둘쨋날. 작지만 알찬 박물관 두 개를 돌아보고 나니 어느새 오후.

 

미친듯이 관광 포인트를 도는 여행은 둘 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천천히 다시 시내로 이동, '사진 박물관'을 찾았다.

 

 

 

 

 

분명히 영어로 하면 museaum for photography. 사진 박물관 맞는데 사실 사진박물관이라기보다는 개인 박물관의 느낌이다.

 

힌트는 왼쪽 벽에 붙어 있는 '헬무트 뉴튼 재단'.

 

헬무트 뉴튼이라면 바로 그 유명한 사람, 그 왜 엄청 유명한 셀렙들과 번쩍번쩍 빛나는 비닐 장화 '만' 신은 누드의 슈퍼모델들을 즐겨 찍었다는 그 양반! 사진 작가이면서 그 자신이 셀렙인.

 

 

이 박물관은 뉴튼의 유지에 따라 이뤄진 것이고, 뉴튼의 유물들이 전시품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 박물관인 만큼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인데 어떤 분위기라는 것은 전하고 싶어서 한장 찍어 봤다.

 

 

 

굳이 말하면 '사진의 신' 뉴튼에게 바치는 헌정의 공간이랄까. 신전 같은 느낌이었다.

 

 

뉴튼의 전시 공간 외에도 상당 부분이 다른 작가들의 사진을 전시하는 데 활용되고 있었다.

 

뉴튼의 사진을 보고 나니 왠지 허기가 밀려왔다.

 

미술관 카페에서 뭘 좀 먹었는데 그걸로는 부실했던 모양.

 

마침 베를린을 대표하는 먹거리라는 커리부어스트의 대표적인 맛집이 초 역 바로 앞에 있었다.

 

 

 

관광책자에도 나온다는 Curry 36.

 

 

소문난 맛집답게 당연히 줄을 서야 한다.

 

 

 

노점풍의 분위기답게 사서 들고 먹거나, 저렇게 길가의 보도 난간에 놓고 먹는다. 격식 따위 전혀 없다.

 

 

 

 

 

 

사실 뭐 별거 없다. 소시지에 튀김옷을 입히고, 케찹 위주의 소스(뭔가 좀 섞긴 섞은 것 같다. 단순히 케찹은 아니다) 에 커리 파우더를 뿌려 먹는게 전부다. 가격은 대략 1.5~2유로 정도. 여기에 저 소스와 찰떡궁합이라는 감자튀김을 곁들이면 3유로까지도 올라간다. 소시지 하나로는 끼니가 되지 않으니 감자 튀김으로 양을 늘려 본다는 느낌이다.

 

맛은... 맛 없을 요소가 없으니 당연히 맛있다. 찍어 먹는 방식이나 뭐나 가기 전부터 '떡볶이 비슷해요'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전혀 매운 맛이 아닌데도 어쩐지 떡볶이를 먹는 기분이 든다. 아무튼 맛있다. 그런데 매우 단순한 맛이라 대체 이 정도의 음식에 맛집이 따로 있다니 그건 또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ㅎ

 

아무튼 프라하-베를린을 쉼 없이 달렸으니 약간의 낮 휴식.

 

(불량체력의 중년 여행객에겐 강행군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내친 김에 아예 관광객 티를 내기로 작정하고 포츠다머 플라츠로 향했다.

 

 

포츠다머 플라츠 1층의 린덴브로이 Lindenbrau.

 

베를린에 간 사람 - 중에서도 초행인 촌스러운 사람들은 모두 한번씩 가 보고야 만다는 바로 그 집이다.

 

 

 

 

사실 우리가 아는 독일 음식이란 게 대부분 돼지고기 요리다. 오래 전 혼자 독일에 왔을 때에는 아이스바인을 먹었고, 한국에서도 이제는 꽤 많은 곳에서 학센을 맥주 안주로 먹을 수 있다. 물론 독일 대중식의 상징 같은 소시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전날 낮, 베를린 주민이신 가이드님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독일 사람들은 왜 그렇게 돼지고기를 많이 먹죠?"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독일 사람 돼지고기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아요.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 많이 먹죠. 오히려 돼지고기는 별로 안 먹을 걸요?"

 

"아 그래요?"

 

"작년에 남편(독일 사람. 굉장히 유명한 분이라고)이랑 한국 나갔는데 하루 삼겹살, 하루 제육볶음 먹더니 남편이 그러던걸요. '한국 사람은 돼지고기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아.' "

 

너무나 충격적인 이야기.

 

"아니 그럼 그 학센이며 아이스바인이며 이런 것들은 다 누가 먹나요?"

 

"누가 먹긴요. 관광객들이 다 먹죠."

 

으음 ;;

 

"한국에서도 신선로 구절판 이런거 평소에 먹는 사람 없잖아요. ㅎㅎㅎㅎ"

 

그래서 학센을 주문하지는 않았다.

 

 

 

여담이지만 독일 사람들은 뭘 섞어 마시는 걸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약간 흰색이 도는 바이스비어는 뭔가를 섞어서 저렇게 다양한 음료로 다시 태어난다.

 

물론 한국에서도 맥주와 사이다를 같이 시켜서 섞어 먹는 사람이 꽤 있지만 저걸 저렇게 술집에서 아예 메뉴판에 써놓고 팔진 않잖아.

 

게다가 저건 약과다.

 

아주 오래 전 독일에 왔을 때, 카페의 메뉴에 별 희한한 것들이 다 있어서 놀란 적이 있다. 지금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콜라+환타, 닥터페퍼+환타, 콜라+맥주 등등이 다 메뉴판에 써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얘기를 했더니 사람들이 안 믿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들 했는데,

 

 

 

 

 

마침 그 증거를 발견했다.

 

위 메뉴의 소프트드링크 항목 아래를 보면 펩시 콜라와 미린다(물론 오렌지 맛이다)를 섞은 음료를 슈페찌 Spezi 라고 부른다고 써 있다. 봐! 보라고! 독일에선 이런 걸 판다고!

 

* 아울러 한국에서 한때 환타의 경쟁 음료였던 오렌지 음료를 '미란다'라고 기억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이 음료의 이름은 '미린다'다. '미란다 원칙' 아니다. M.I.R.I.N.D.A. 미린다라고 미린다.

 

(물론 지금도 열심히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 술집이 펩시콜라 친화적이라 슈페지도 '펩시+미린다'였던 듯. 만약 코카콜라 가맹점이었다면 코카콜라+환타의 슈페지를 내놨을 것이다.

 

 

카페에서만 반반 섞어 파는 게 아니라 이렇게 다양한 슈페찌 음료들이 아예 상품화되어 팔리고 있다. 참 희한한 동네 아닌가 싶다.  아무튼 슈페지의 맛은 예전에 다들 해보셨을 것 같은 - 음료 자판기에서 이맛 저맛을 돌려가며 섞은 바로 그 맛, 어찌보면 닥터 페퍼 같은 맛 - 그 맛이다. (이번에 먹어봤다는 뜻은 아님. 오래전에...)

 

여담이지만 환타라는 음료가 태어난 곳도 바로 이곳, 베를린이다. 이건 긴 얘기니 다음 기회에...

 

 

 

어쨌든 먹어 봐야 뻔한 맛인 슈페찌를 주문한 건 아니고, 독일 전통식인 소시지 샐러드 (Wurstsalat. 글자만 봐도 눈치챘겠지만 소시지가 바로 독일어로 Wurst. 커리부어스트 별거 아니었어), 그리고 독일 전통 감자 샐러드 Kartoffelsalat 를 곁들인 닭 반마리 구이를 시켰다.

 

(의도적으로 학센, 아이스바인 피한거 맞다)

 

요 며칠 새(당연히 독일에 머물던 그 며칠 새) 계속 먹고 있지만 감자와 오이를 잘게 썰어 만든 저 카르토펠살라트는 새큼하면서도 입에 붙는 맛이라 고기 요리를 먹을 때 아주 잘 어울린다. 물론 독일이니까 자우어크라우트를 줘도 좋겠는데, 이 린덴브로이의 카르토펠살라트는 좀 너무 짰다.

 

짜니까 맥주를 많이 마셔야 하잖아...

 

 

 

이렇게 앉아서 색깔이 변하는 포츠다머플라츠 소니 타워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6월이지만 해가 떨어지니 날씨가 스산해지던 참인데 비바람이 몰아치니 막 춥다.

 

 

물론 저 천장도 괜히 있는 건 아니어서 비바람이 불어도 밖에 앉아서 맥주 마시고 하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지만, 기온이 점점 내려가는게 느껴진다. 이럴 땐 미련 떨지 않고 후퇴하는 게 상책이다.

 

 

서울 못잖게 편리한 베를린의 대중교통체계. 200번만 타면 어쨌든 집(호텔)에 간다.

 

역시 낯선 도시의 숙소는 교통이 가장 중요.

 

 

비에 젖은 차창 밖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홀이 보인다. 걱정하지마. 곧 갈거야.

 

이렇게 비가 오면 내일은 어쩌나 걱정했지만 미리 걱정해 봤자 아무 소용 없는 변덕스러운 베를린 날씨.

 

 

 

 

그리고, 다음날 박물관 섬에서는 이렇게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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