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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느 한 순간, 정재승 교수님의 신작 '열두 발자국'을 읽다가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따끈따끈한 신간이죠.

제목대로 총 12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일곱번째 발자국, 즉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에는 여러분들이 어디선가 익히 보셨을 유명한 그림 하나가 등장합니다.

바로 이 그림입니다.

네. 많이 보시던 그림이죠.

살바도르 달리 의 1951년작,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 입니다.

(책과 제목을 다르게 쓴 이유가 있습니다. 조금 더 보시면 알게 됩니다.^^)

컬러로 보시면 이런 그림입니다.

 '열두 발자국'에서는 이 그림을 창의적 발상을 설명하는 예로 들고 있습니다.

지금도 '십자가를 그려 보라'고 하면 세상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우리가 많이 보던, 정면에서 보는 십자가와 거기 매달린 예수님을 그릴 겁니다. 화가들의 그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십자가와 예수를 그린 수만장의 그림 가운데 99% 이상은 아마 정면에서 본 예수님의 모습일겁니다.

그런 면에서 이 그림은 혁신적인 구도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다니. 그렇다면 이 구도는 하나님의 시선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저 높은 곳에서, 사랑하는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길을 형상화 한 듯한 구도인 것이죠.

상당수 해석자들은 이 구도가 바로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보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이 그림을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어제 처음으로 이 그림의 제목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Christ of Saint John of the Cross. 묘한 제목입니다. 한글로는 뭐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망설이게 됩니다. 그래서 대체 저게 무슨 뜻인가 검색해 보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다짜고짜 영어로 세인트 존(St. John), 즉 성 요한 이라고 하면 1차적으로 복음서의 저자인 사도 요한 을,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세례 요한 을 떠올리게 됩니다. 물론 요한이라는 이름은 성경시대나 지금이나 넘쳐 나기 때문에 '성 요한'은 한두명이 아닙니다. 그런데 저 그림 제목에 나오는 성 요한은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듣도 보도 못했다는 것은 제 기준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저 그림 제목에 나오는 성 요한은 바로 이 스케치를 남긴 사람의 이름이고, 카톨릭에서는 매우 유명한 성자였습니다. 이 분의 이름은 바로 '십자가의 성 요한 Saint John of the Cross' 였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 님이 저 스케치를 남긴 것은 대략 1574~1577년 정도로 추정되며, 그 당시에도 '아니, 예수님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다니!'라는 시선은 대단히 충격적으로 여겨졌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유명한 '십자가의 성 요한' 님의 유물이었으므로 오늘날까지 소중한 보물로 간직되어 왔고, 어느날 저 스케치를 본 살바도르 달리가 저 구도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유명한 십자가 그림을 남긴 것입니다.

이 분이 바로 그 유명한 '십자가의 성 요한' 님입니다. 여러 정보를 종합해 보면 이 분은 1542년에 태어나 1591년에 돌아가신 스페인의 성직자입니다. 종교개혁의 물결 속에서 오랜 전통의 카톨릭 교단은 개혁의 필요성에 맞닥뜨리게 되었죠. 마침 그 이그나티우스(이냐시오) 로욜라의 예수회 학교에서 교육받은 요한님은 카톨릭 개혁의 선봉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아빌라의 테레사와 함께 맨발의 가르멜(Carmelite) 수도회를 일으키게 되고... 뭐 다양한 업적을 남기시고 카톨릭 교회의 성인에 오른 분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 분은 왜 '십자가의 요한 John of the Cross'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일까요? 혹시 저 유명한 '위에서 내려다 본 예수' 스케치 때문에? 이 궁금증은 쉽게 풀리지 않았지만, 최소한 그것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 일단 밝혀졌습니다. 이 분이 스스로 자신을 '십자가의 요한'이라고 불러 달라고 한 것이 1568년. 저 그림을 그리기 전의 일입니다. 그럼 혹시 십자가에 매달려서 순교라도? ...아닙니다. 이분은 단독(丹毒)에 걸려서 사망하셨습니다.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십자가의 요한의 일생을 소개한 글 에 답이 있었습니다. (알아보면 볼수록 십자가의 요한, 대단한 분입니다.)

원문은 http://w2.vatican.va/content/benedict-xvi/en/audiences/2011/documents/hf_ben-xvi_aud_20110216.html 

For several months they worked together, sharing ideals and proposals aiming to inaugurate the first house of Discalced Carmelites as soon as possible. It was opened on 28 December 1568 at Duruelo in a remote part of the Province of Avila.

This first reformed male community consisted of John and three companions. In renewing their religious profession in accordance with the primitive Rule, each of the four took a new name: it was from this time that John called himself “of the Cross”, as he came to be known subsequently throughout the world.

그러니까 무슨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 그냥 '순수했던 원시 기독교의 믿음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에서 스스로를 '십자가의 요한'이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것 같습니다. 하긴 이 분이 모셨던 성녀 아빌라의 테레사 역시 스스로 '예수의 테레사 Teresa of Jesus' 라고 불렸다니, '십자가의 요한'과 손발이 척 맞는 작명이네요.

결론적으로 저 그림의 제목은 한글로 하자면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라야 할 것 같습니다. 한글에 밝은 사람들에겐 뭔가 어색한 제목이지만, 저 제목이 붙은 이유를 생각하면 그렇게 부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여기까지 쓰고 나서 다시 한번 후회되는 것은...

남들은 12회나 기념비적인 명강의를 해서 이런 책까지 쓰고 있는데 너는 지금 이 시간에 블로그에 이런 글이나 쓰고 혼자 씩 웃고 있다니 이게 참 할 말이냐... 라는 자괴감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포스팅도 이 글을 누가 읽고 공감해 주리라는 기대보다는, 대체 저 그림 제목은 무슨 뜻일까,,, 를 알아내는 데 쓴 시간이 아까워서, 그냥 기록이라도 남겨 두자는 차원인 것이죠. 예. 맞습니다.)

그런데(읭?) '열두 발자국'은 참 읽으면 읽을 수록 대단한 책입니다.

대체 뭐 하자는 짓이냐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구글 어스를 개발한 존 행크 가 이걸 어디다 써먹을까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 결국 만들어 낸 것이 바로 포켓몬 고 였다는 대목에서는 절로 무릎을 탁 쳤습니다. 아톰과 비트의 결합이라는 말이 정말 실감나는 대목입니다. 얼마전 "만약 아인슈타인에게 자동차 운전자가 길을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라는 프로젝트를 줬다면 결코 상대성 이론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글을 읽고 그게 그렇구나 싶었는데, 이 이야기와 묶어 보니 이런 것이 바로 장자가 말한 무용(無用)의 대용(大用) 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또 인공지능을 발전시키려면 빅 데이터가 필수적인데 한국은 빅 데이터는 커녕 데이터 자체가 없다... 이 역시 평소 생각했던 문제지만 이 책에서 읽고 보니 더욱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얼마 전 '모두 거짓말을 한다'를 읽으면서 느꼈던 공허함의 뿌리와, 그동안 빅데이터라는 이름을 걸고 혹세무민을 시도했던 몇몇 분들의 얼굴이 새삼 스쳐가는. (왜 그런지는 책에서 확인하시는 걸로.)

아무튼 '결정장애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 매우 친숙한^^) '우리는 왜 미신에 빠져드는가'에서 '혁명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까지 읽고 보면, 과연 한 사람이 이 방대한 내용을 다 건드릴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경이적인 사고와 지식의 스펙트럼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여기저기 술자리에 빠지지 않는(술은 안 드시지만) 이 분을 보고 있으면 혹시 이미 집안에 대필 인공지능 시스템이 완성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곤 합니다. 대략 1.4KG 내외, 누구나 비슷비슷한 크기의 뇌인데 어디서 이런 차이가.

(지금 막 뭐라고 항변하시려는 분들을 위해 이 책에는 '얼굴이 크다고 뇌가 큰 것은 아니다'라는 방어벽이 쳐져 있습니다. 네. 철벽이죠.)

조금 이상한 내용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이 책, 생각의 자극이 필요하신 분들-아마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 거의 대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만-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P.S. 그리고 이런 책은 가능하면 남들보다 빨리 읽으시는게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써먹고 싶어지는 이야기가 그득하거든요. 어젯밤 술자리에서 상무님을 감탄하게 했던 김대리 의 구라가 이 책에 나오는 얘기라는 걸 오늘 알고 나면 얼마나 분통이 터지시겠어요. 그러니까...

 

 

P.S.2. 그리고 마지막으로 퀴즈 하나.

이 글을 읽는 동안 저는 줄곧 이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첫번째로 정답을 맞추시는 분에게는 제가 맛난 밥 한끼 정도 사겠습니다. 응모는 여기 쓰시든, 페북에 댓글로 다시든, 트위터에 다시든 알아서. (넌센스 아님. 의외로 쉬울지도...) 노파심에서 단서 하나 달자면, '음반 관계자' 관련은 답이 아닙니다.

키워드 몇개를 조합하시는 것이 포인트.

그리고 상품으로 방금 나온 '차이나는 클라스' 1권 단행본도 추가하겠습니다. (어차피 이 책도 따로 리뷰가 있을 겁니다.)

자, 분발하세요.^^

 

 

** 요즘 나오는 '열두 발자국'에는 본문의 내용이 수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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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실제로 이랬을 리는 절대 없을]

 

"은. 시간이 별로 없어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네. 통역 필요 없지? 지금부터 잘 듣게."

방에 들어서자마자 D는 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뭐라는 거야, 대꾸할 새도 없이 D는 통역을 한쪽 구석 화장실로 몰아넣고 문을 잠갔다. 방 한켠의 디지털 타이머에서 시간이 조금씩 깎여 나가고 있었다. 43:36, 43:35, 43:34...

방에 들어온지 2분도 지나지 않아 이 키 큰 백인 남자와 단 둘만 남게 되고 보니 위산이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게 느껴졌다. 은은 콜라를 마시고 싶었다.

"은. 퀴즈를 하나 내겠네. 자네는 내가 왜 대통령이 됐다고 생각하나?"

뭐지? 이건 누구나 다 아는 거 아닌가?

"젊은 시절부터 꿈이 대통령 아니었습니까?"

"낫 배드 앤써.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그렇게 얘기하면 대통령 되는게 내 인생의 얼티밋 골 처럼 들리잖아. 그런 사람이 꽤 많겠지만 나는 아니야."

이렇게 질문의 여지를 남기고 대화를 주도하는 스타일은 싫다. 은은 잠자코 D의 눈을 바라봤다. 1946년생. 일흔 두 살. 나이는 노인의 초입이지만 장난기 내지 광기는 젊은 사람 같았다. 며칠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궁금증이 떠올랐다. 단 둘이 있을 때 그걸 물어봐도 될까? D는 은의 마음 속을 읽기라도 한 듯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

"나는 대통령을 내 커리어의 마지막으로 삼을 생각은 추호도 없어. 나이? 그게 뭐 문제야. 내게 있어 유에스 프레지던시란 그 다음 비즈니스들을 더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경험일 뿐이야. 유 노, 대통령이란게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역시 그런가. 이렇게 솔직하게 이런 얘기를 할 줄은 몰랐다.

"감동적입네다."

"대통령 임기, 재선 해봐야 8년이야. 특히 자네를 위해선 내가 재선되는게 아주 좋을 거야. 내가 시간 절약을 위해 영상을 하나 준비했어. 길지 않으니까 같이 한번 보자고."

 

4분 정도 길이였다. 그리 잘 만든 영상은 아니었다. 편집은 좀 촌스러운 80년대 감성이었고, 대사는 누군가 영어로 쓴 것을 한국을 떠난지 꽤 오래 된 사람이 한국어로 다시 번역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이 끝날 때 쯤 은은 눈물이 찔끔 나오려 했다.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은, 잘 듣게. 내가 이걸 다 해 줄 수 있어. 해 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

물론이다. 다 해서 떠먹여 주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가능성은 열어줄 수 있을 거다.

"자네 나라의 예쁜 비치들마다 자네가 숙박중인 세인트 레지스 처럼 멋진 호텔들을 백사장 삥 둘러 지어줄 수 있어. 아시아의 어틀랜틱 시티로 만들어 줄 수도 있지. 마카오에 질린 중국 갑부들이 떼돈을 들고 바카라 테이블을 꽉꽉 채우겠지. 하지만 이건 공짜가 아니야. 그것도 알고 있지? 자, 나 같은 부동산 전문가가 내 돈을 어디엔가 투자하려면 그 사업의 지속 가능성에 조금도 불안감이 있어선 안 돼."

"물론입니다. 하지만..."

"말해보게."

"그 핵폐기 말인데요,"

"핵폐기가 뭐가 어쨌다는 건가. 그건 그동안 보고받은 걸로 다 알고 있다고."

이 늙은이, 나도 말 좀 하자.

"솔직히 CVID가 정말로 가능한 건가? 아니라는 거 알아. 심지어 자네는 황해북도 평산에 꽤 훌륭한 유레이니엄 마인까지 갖고 있잖아. 아이 노. 남한처럼 핵원료를 전량 수입하는 나라도 가끔 장부상 보유 물량이 실제 보유량과 안 맞아 난리가 날 때가 있는데, 우라늄을 채굴할 수 있는 나라의 핵원료 잔량을 어떻게 정확하게 체크하겠나. 재주 있으면 갖고 있어 보라고. 하지만 갖고 있다 걸리면 바로 죽음이야. 알지? 중요한 건 '없다'고 자네 입으로 공언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거야."

물론이다. 핵무기의 의미는 갖고 있다고 얼러댈 수 있는 데 까지다. 직접 쓰는 건 정말 최후에나, 아니, 최후의 최후의 최후에나 생각해 볼 일이다. 내 입으로 없다고 선언한 뒤에는 그건 갖고 있어도 갖고 있는게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뭐라고 대답해야 적절한 대답일까?

"제일 좋은 방법은, 그걸 쓸 이유가 없게 만들어 주는 거겠죠."

D의 얼굴이 확 펴졌다.

"부라보. 그거지 그거. 내가 그렇게 만들어 주겠어. 물론 1,2년에 뭐가 확 달라지진 않을거야.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자네가 '내가 그때 이걸 안 했으면 어쩔뻔 했을까'라고 생각하게 해 줄거야. 그걸 위해서 나는 앞으로 한 7년 더 대통령을 할 거고, 그 동안 우리의 사업을 위해 모든 조건을 마련해 놓을 거야. 그 뒤에는 자네랑 사업을 할걸세. 파트너."

"파트너?"

"자네도 아직 젊잖아. 한 10년 더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뭐 그건 자네 선택이니까 강요하진 않겠네. 하지만 말이야, 남자는 일단 돈을 벌어야 해. 돈을."

사실 지금까지 은의 인생에서 '돈'이라는 게 그렇게 절실한 적은 없었다. 2009년, 화폐개혁 대 실패 때 겁먹었던 아버지와 새파랗게 질린 장성들의 모습을 보고 돈이라는건 양 같은 인민들도 늑대로 만들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을 뿐이다. 하지만 D의 입에서 나오는 '머니'라는 말은 마치 여가수의 비음처럼 끈끈하게 사람을 잡아 끄는 데가 있었다.

"그렇지. 머니. 이 세상에서 아워 헤븐리 파더, 하나님이 자네를 사랑하시는 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재산의 축적 뿐이야. 그래서 남자는 일단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노력해야 해. 잠들었을 때나 깨어 있을 때나, 언제나 돈을 생각해야지. 머니. 유 노, 자네가 좋아하는 그 요다 같이 생긴 포머 차이니즈 체어맨이 얘기한 적 있지. 검은 고양이나 황색 고양이나 쥐만 잘 잡으면..."

"흰 고양이 아닙니까?"

"와튼 스쿨에선 정설만 취급한다네, 파트너. 내가 확인한 바론 중국에는 퓨어 화이트 캣이 없어. 그리고 쓰촨성에서는 오래 전부터 헤이마오후앙마오(黑猫黃猫)라는 속담이 있다네. 아무튼 시간도 없는데 쓸데없는 소리는 됐고, 혹시 자네 슈퍼마켓이 뭔지 아나?"

"평양에도 마켓 있습니다."

"굿. 그 마켓에 살 물건이 넘쳐 나고, 내 주머니에 그 물건들 살 돈이 있는데 오디너리 피플이 무슨 불만이 있겠나. 분명히 말할게. 돈을 벌어. 자네도 벌고, 유어 피플도 벌어. 그걸로 행복하게 살아. 그럼 자네도 안전하고, 피플도 행복하고, 아메리칸 시티즌도 좋아할거야. 2차대전 이후에 아메리카 합중국은 이 나라 저 나라 수도없이 돈을 퍼 줬어. 근데 한국 빼면 미국 원조 받아서 안 망한 나라가 별로 없어. 나는 한국 사람 DNA를 믿어. 다 잘 될거야."

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조선? 남조선이라면 너무나 잘 안다. 그 흐물흐물하고 설렁설렁하는 것들도 지구상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부지런하단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그런 걸로 따지면 우리 인민들은 상질중의 상질이다. 그것들도 저렇게 잘 벌고 잘 먹고 사는데, 우리가 못할 게 뭐가 있나. 할 수 있다.

"다 좋은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D의 얼굴에 잠깐 긴장이 흘렀다. 무슨 시간?

"지금 그동안 인민들한테 해 놓은 말이 있단 말입니다. 그 말을 주워담고 자 이제는 정의의 보검이 중요한게 아니라 인민의 풍요가 진짜로 중요한 거다, 이런 걸 납득을 시킬라문 지금까지 우리가 잘 해왔다. 그러면서..."

"오케이, 아이 풀리 언더스탠. 그러니까 당장 대외적인 합의에 뭔가 구체적인 얘기를 쓰는 건 부담스럽다, 뭐 그런 거지? 아이 노. 돈 워리. 발표문 같은 건 대강 하자고. 진짜 중요한 건 사업이야. 유 노, 우리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비즈니스가 뭔지 합의했으면 그걸로 됐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거만 알아 둬."

그 다음, 은은 태어나서 가장 무서운 인간의 얼굴을 봤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자네가 실수든 아니든, 뭔가 밑의 애들 컨트롤을 잘못해서 내 비즈니스에 1달라라도 손해를 끼치면, 그 다음엔 진심으로 각오해야 할거야. 명심해. 나 아직 미국 대통령이야. 캐리어와 F35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야."

은은 얼굴에서 싹 빠져나갔던 피가 다시 들어오는 걸 느꼈다. 잠시 쫄았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렇게 마무리할 수는 없다. 뭔가 인상적인 말을 해서 국면 전환을 해야지.  

"그럼 일 잘 되면 조단 한번 만날 수 있습니까?"

은 스스로 생각해도 좀 엉뚱한 얘기였다. 하지만 D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건 자네 하기 달렸지. 미스터 조단도 훌륭한 비즈니스맨이야. 명예욕도 큰 사람이고. 북한 땅 한 구석에 최초로 건설되는 72홀짜리 컨트리 클럽 이름이 마이클 조단 CC라면 그렇게 기분나빠할 것 같지는 않군."

"어디에 지으면 좋을까요?"

"음... 곧 지어질 NK 디즈니 월드 근처가 어떨까?"

하하하. 타이머는 아직 5분 정도를 남겨 놓고 있었다.

"아 참, 그리고 이 기회에 한미연합훈련 이런 거 중단합시다. 평화의 상징으로 좋지 않습니까. 어차피 주한미군 인제 주둔해 봐야 별로 할 일도 없을테고..."

호오. D는 생각했다. 이건 꽤 날카로운데? 이 아이는 지금 주한미군이 자기 때문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모르는 건가? 이렇게 순진한 데가 있는지 몰랐는걸? 하지만 다음 순간, D의 머리엔 노회한 X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실 주한미군을 본토로 철수시키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할 사람은 X다. 아마 그 주한미군의 가족들보다 더 기뻐할 것이다. 이 아이가 지금 X의 사주를 받고 이런 소리를 하는 건가? 은이 X의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에 왔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D는 갑자기 부아가 치밀었다.

하지만 D는 금세 다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까짓 거, 지금은 하잔 대로 다 해 주자. 뭐 훈련이야 안 하면 기름 값 굳고 좋지. 이럴 때 면도 살려 주고, 이걸로 M에겐 군 주둔 비용과 관련해 또 다른 계산서를 내밀 수도 있다. 

물론 어떤 경우든, 작은 내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 있는 중국의 동향을 체크할 수 있는 뷰티풀 군산 에어 베이스를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지 지금은 모든 것에 살짝 ? 표를 그려 놓아야 할 시점일 뿐이다.

"자네 말대로 하지. 은. 좋은 생각이야. 당장 공동 훈련 취소하겠네. 자, 그럼 기다리고 있는 애들 다 들어오라고 할까?"

 

건물 밖 주차장, 작전차량 안의 P는 D의 말에 헤드폰을 벗었다. 굳이 두 사람이 먼저 만나겠다는 이유가 이런 것이었군. 그렇다고 정말 둘만의 대화가 될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우리 CIA를 뭘로 보는 건가.

이 시대의 만남은 결국 D의 치적이 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P 자신의 공로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D가 왜 그렇게 NK 해결에 매달리는지 P는 대략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듣고 보니 그동안 이해가 가지 않았던 퍼줄이 한방에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까짓 거, 어쨌든 핵을 실은 ICBM의 위협을 제거하는 것은 미 합중국의 국익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거기까지는 협조다. NK를 위험하지 않은 나라로 돌려놓는 것 역시 OK. 하지만 그 이상의 뭔가를 하려면 분명히 내게 잘 보여야 해. D. 왜냐하면 나는 그때 유 에스 프레지던트가 되어 있을테니까. 

 

보좌 인력들의 입장을 기다리던 은은 둘만 있을 때 미처 묻지 못한 질문이 다시 생각났다. D의 머리는 가발일까 아닐까. 가발이라면 어디부터 가발일까. 아 왜 이런게 갑자기 궁금해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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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영화가 끝나 갈 무렵, 이 영화, '쓰리 빌보드' 의 악영향에 대해 잠시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꽤 적지 않은 수의 시나리오 작가 혹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키보드를 던져 버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플롯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건 진정 신의 축복이기란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 정도로 '쓰리 빌보드'는 대략 근 5년간 본 영화들 가운데 최소한 대본에서만큼은 최고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화 시작. 

 

살인사건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미국 남부의 어느 조용한 읍내. 한 여자가 그 시골에서도 외진 길 쪽에 있는 다 쓰러져가는 광고판 세 개를 사서 광고를 냅니다. 광고의 내용은,

 

RAPED WHILE DYING

내 딸이 강간당해 죽었어.

 

AND STILL NO ARRESTS?

그런데 아직 아무도 체포하지 못했다고?

 

HOW COME, CHIEF WILLOUGHBY?

윌로비 서장,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가출한 10대 딸이 강간당해 죽고, 불에 타다 만 시신이 발견되고, 그 뒤로 7개월이 지났는데 아무도 체포하지 못하고 있는 경찰의 무능에 대한 어머니의 분노가 이렇게 표현됩니다.

 

이 부분까지 보고 나면 관객의 90%는 영화의 방향을 짐작합니다. 이것은 딸을 잃고 분노에 가득 찬 백인 하층민 엄마의 외로운 싸움을 그린 사회성 영화로구나. 이 엄마는 결국 무능하고 나태한 시골 경찰을 질타하고, 어디선가 론 레인저 한 사람이 나타나고, 이 영웅(혹은 반영웅)은 대다수 사람들의 외면 속에 엄마를 도와 딸의 원혼을 달래 줄 수 있....

 

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정상일 뿐만 아니라 매우 우수한 관객입니다. 하지만 '쓰리 빌보드'를 계속해서 본다면 당신의 그 모든 예측이 이렇게 벗어날 수 있다는 데 진정 놀라게 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은 분이 있다면, 지금 바로 키보드 앞에 앉아서 샘솟는 아이디어로 바로 대본을 쓰시기 바랍니다. 정말입니다. 한국의 영화계/드라마 업계는 바로 당신 같은 분을 찾고 있습니다.)

 

사실 글 첫머리에서는 이 작품으로 인해 좌절할 작가 지망생들에 대해서만 썼지만, 반대로 한 두 작품 해 보고 아 난 안 되는구나 하신 분들에게도 이 영화는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각본/감독을 겸한 마틴 맥도나의 이전 작품들을 보면 이런 수준의 작품을 써 낼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의 전작 중 제가 본 작품은 '킬러들의 도시(In Bruge)' 하나 뿐인데, 일부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대본상으로 별로 뛰어나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맥도나 감독의 세번째 장편영화 시나리오입니다. 최소한 세 번은 써 봐야 하실 이유가 또 생긴 셈입니다.  

 

자꾸 다른 얘기로 빠지지만, 이 영화의 리뷰를 쓰면서 줄거리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건 별 의미가 없을 듯 합니다. 이 대목에서 할 말은 딱 한마디. 지금 바로 극장으로 달려가세요. 언제 상영관이 없어질지 모릅니다. 다음주까지... 물론 국산이든 외산이든 흥행용 대작 영화가 없는 3월이긴 하지만, 한국의 극장 상황에선 낙관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지금부터는 스포일러 작렬입니다. 영화를 보실 분은 여기서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 인물은 세 사람. 간판에도 언급된 시골 읍내 경찰서장인 윌로비(우디 해럴슨), 문제의 엄마인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먼드), 그리고 윌로비의 부하인 꼴통 경찰관 딕슨(샘 록웰)입니다.

 

 

 

세 사람 중 아마도 전통적인 주인공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윌로비 서장입니다. 할리우드 영화에 꽤 자주 등장하는 미국 소규모 지역사회의 영웅이죠. 굳이 고전 영화로 비교하자면 '앵무새 죽이기'의 아티커스 핀치 변호사(그레고리 펙이 연기하는)같은 인물입니다. 정의감이 투철한데다 두뇌가 명석하고, 딕슨 같은 개망나니도 따르게 하는 이상적인 인간에 가깝습니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도 그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로서도 밀드레드 딸의 강간 살인 사건은 난제입니다. 수사를 하려 해도 증거도 증인도 없습니다. 시체에서 남자의 DNA가 검출되긴 했지만 비교할 용의자가 없는 실정입니다. 

 

반면 밀드레드에겐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증거가 없다는 윌로비의 말에 왜 이 동네의 모든 남자, 나아가 전 미국의 모든 남자로부터 DNA를 추출하지 않느냐고 우겨댑니다. 자신이 중시하는 정의의 실현을 위해선 고려해야 할 다른 요소(이를테면 국가 권력이 닥치는대로 민간인의 DNA를 추출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인권 침해 같은)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매우 극단적이긴 하지만, 사실 이런 사람들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하나의 이익이 주어질 때 내놓아야 할, 지금까지 누리고 있었던 편익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법입니다.

 

밀드레드의 일방통행적인 생각은, 딸을 잃은 엄마라는 당위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사지 못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밀드레드가 공격하는 윌로비 서장이 평판 좋은 인물인데다 암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밀드레드는 자신이 암에 걸려 있다는 윌로비의 말에도 "그럼 시간이 없을테니 더 서둘러 수사하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합니다. 진정 비호감 캐릭터죠. 이런 밀드레드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선두에 딕슨이 있습니다.

 

 

 

물론 딕슨에겐 밀드레드에 대한 구체적인 미움 같은 것이 없습니다. 애당초 딕슨은 스스로 생각하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일찍 죽은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그의 성장 과정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고, 인종주의를 비롯한 갖가지 편견도 다 어머니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그 결과 딕슨은 엄청난 효자가 되었습니다^^). 어쨌든 어머니 외에 그가 믿고 따르는 것은 윌로비 서장 뿐이고, 그 윌로비 서장에게 맞서다 결국 윌로비 서장을 죽게 하는(이건 좀 다시 얘기할 필요가 있죠) 밀드레드는 진정 용서할 수 없는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윌로비 스스로 밝히고 있듯, 그의 죽음은 더 지속해 봐야 고통만 더할 뿐인 암 치료의 연장을 피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광고 때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 때문에 밀드레드를 더욱 비난할 것임을 짐작하고 있고, 그 때문에 밀드레드에게 광고판 임대료를 자신이 지불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당연히 그의 예견대로 밀드레드는 더욱 고립되지만 밀드레드는 서장의 마지막 편지를 공개하지 못합니다. 죽을 사람을, 그리고 이렇게 솔직하고 선량한 사람을 괴롭혔다는 죄책감 때문이죠.

 

이 영화는 '인간의 용서와 화해', '다른 인간의 입장에 대한 역지사지', '더불어 살기의 미묘함' 처럼 너무나 기본적인, 심지어 너무 자주 다뤄져서 하품이 날 지경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제껏 관객들이 접해 보지 못한 새로운 국면으로 관객들을 몰아넣고 절묘한 공감의 체험을 하게 한다는 것이 최고의 미덕입니다.

 

아울러 그 가운데서도 코미디, 특히 블랙코미디로서의 위치를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는 또 다른 강점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인간 내면을 성찰하는 이야기'와 '유머 감각'은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쉽게 단정해 버리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살인의 추억'과 송강호의 개그가 절대 따로 놀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쓰리 빌보드'에서는 딕슨이 주로 이 역할을 맡습니다. "아니에요! 열두시까지 들어간다고 했다구요!" "왜? 소금은 원래 상처에 좋은 것 아닌가?" 같은 대사는 너무나 유쾌합니다. (개인적 취향이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겠죠.^^)

 

 

 

이 세 사람을 둘러 싼 여러 마을 사람들은 각각 이 세 사람 중 한쪽 편에 서서 갈등과 웃음을 조율합니다. 특히 '왕좌의 게임'으로 월드스타가 된 난장이 배우 피터 딘클리지가 연기하는 제임스는 몇 신 나오지 않지만 이 영화의 색깔을 대변하는 중요한 기능을 갖습니다. 그가 맡은 역할을 '낙관'이죠. 희망이라곤 없는 밀드레드에게 잠시 인생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인물입니다. 역시 같은 역할을 하는 페넬로페(사마라 위빙) 역시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빙 Weaving 이란 이름에서 '혹시?' 하셨다면: 네. 스미스 요원님의 조카딸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정말 대단한 이야기를 봤어!'라는 생각이 들지만 누군가로부터 '대체 그 영화는 뭐에 대한 영환데?'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한 두 마디로 이 영화가 어떤 영화라는 점일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어떻게 변해 가는가를 다룬 다른 위대한 영화들, 예를 들어 '타인의 삶' 같은 영화를 설명한다면 '도청이라는 수단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엿보다, 그 사람의 인생에 감화되어 자신의 인생이 바뀌는 이야기' 처럼 얘기할 수 있겠지만 '쓰리 빌보드'를 이런 식으로 정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 어머니가 딸이 죽은 사건을 추적하다가 인생에 눈뜨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 '서로 미워하고 갈등하던 사람들이 인간은 어떤 경우에서든 화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 이야기'라고 하면 과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이렇게 특별한 사건이랄 게 딱히 등장하지 않는데도, 놀랍도록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 이 영화의 신비로운 요소라 할 수 있겠습니다.

 

라스트 시퀀스.

 

차 안에서 딕슨과 밀드레드는 발견된 악을 스스로 징벌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고민합니다. 하지만 이제 그건 오히려 덜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중요한 건 두 사람 사이에 정의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고, 그 둘은 이제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서로를 지지해 주는 힘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거죠.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끝까지 인간성에 대한 낙관을 잃지 않습니다. 이 낙관이 너무 나이브하게 느껴진다는 사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혀 실망스럽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을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이런 마무리를 충분히 싫어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아, 물론 저 이 영화 굉장히 좋아합니다.)

 

맥도먼드와 록웰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안긴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논하는 것은 시간낭비. 그 밖의 배우들도 눈부십니다. 이 화려한 연기가 맥도나 감독의 대본과 디렉션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작품상, 최소한 각본상은 주어졌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물론 상은 운이죠. 어쩌면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받은게 불운의 시작...

 

 

 

 

 

P.S. 물론 가장 마음에 드는 대사는 라스트 신 직전에 나오는 밀드레드와 딕슨의 대화 = "이봐, 사실 그때 경찰서에 불 지른 건 나였어." "...그럼 당신 아니면 대체 누구겠어?" - 입니다. 아마도 오래 전, "우리 이제 끝난 걸까?"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어"('키즈 리턴') 이후 가장 훈훈한 대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P.S. 2 이 영화의 여운을 느끼며 들을 만한 노래는 아마도 이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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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베를린 동물원 Zoologischer Garten Berlin 정문이 동아시아식(뭔가 한국/중국/일본/베트남/태국식을 조금씩 합한 듯한 느낌?) 기와지붕으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동물원으로 유명한 도시는 그리 많지 않다. 샌디에에고? 아사히카와? 사실 내가 동물원을 꽤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베를린 동물원은 무려 1844년에 개장한데다 현재도 전 세계 동물원 가운데 사육 종수 1위라는 기록을 갖고 있는 곳이다.

 

 

위 지도에서 '베를린'이라는 글자 위치가 대략 박물관 섬 정도 되는 지역인데, 통일이 된 지금 사람들은 베를린의 중심이 대략 저 정도 위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 쳐도 동물원은 그 중심에서 차로 20분 이내 정도의 위치(저 지도 왼쪽의 붉게 표시된 지역이다).

 

그리고 통일 전에는 이 동물원이야말로 서베를린의 중심이었다. 지금도 베를린에서 가장 부티나는 동네가 바로 이 베를린 동물원 부근인 거다. 지금도 오래된 베를린 토박이 상류층들은 '동물원 동쪽으로는 안 가'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어쨌든 그런 건 동물원에 뭐가 있냐는 것과는 상관이 없고, 동물원은 우리가 묵었던 호텔 바로 앞에 있었다. 정문까지 걸어서 10분 이내. 그리고 베를린 웰컴 카드로 무료입장할 수 있는 시설이기도 했다.

 

게다가 마지막날의 비행 스케줄이 오후인데다 베를린은 공항과 시내가 매우 가까워서(정확하게 말하면 초 역에서 가까워서), 오전 시간을 쓸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베를린 웰컴 패스로 무료 입장할 수 있는 시설 중 하나. 이런데 안 갈 이유가 없잖아!

 

 

 

...해서 호텔 체크아웃 때까지 시체놀이를 하고 싶었던 동행인을 설득,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고 동물원 구경에 나섰다.

 

그런데 입장 직후부터 뭔가 살짝 꼬이는 느낌을 받았다. 맹수관이 수리중이라는 거다.

 

아니 뭐니 뭐니 해도 동물원은 사자 호랑이 아닌가. 이래도 되는 건가 이거?

 

그래서 안내판이 인도하는대로, 아쉽지만 사자/호랑이를 볼 수 있는 실내 축사로 향했는데...

 

 

 

이 친구는 아마도 삵쾡이 종류인가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새끼 사자였던 것 같다.

 

매우 수줍음을 타서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가 없었다.

 

아무튼 야행성인 고양이과 동물인데 오전에 밖에 나와 있다는게 신기하다 싶더니...?

 

 

바로 옆 칸에 이 암사자 언니가 있었다.

 

 

거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꽤 가깝다.

 

 

사실 동물원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맹수 축사는 대개 관람 라인으로부터 동물이 꽤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고 그 동물들은 대개 - 특히 고양이과의 큰 맹수들은 - 축 늘어져 있는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 누나는 뭔가 아침부터 심사가 뒤틀린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엔 아마도 조반 시간인데 사육사가 늦잠을 자서 타이밍을 못 맟춘게 아닐까 싶다.

 

갑자기 으르렁 으르렁 어흥 사자후를 토해내기 시작한다.

 

 

이렇게 철창에 바로 코를 박고 어흥 하는데... 오줌 쌀뻔 했다.

 

이게 실내라 소리가 좀 울려 주는 효과도 있긴 했을텐데, 바로 저 약 2m 거리에서 라이브로 사자후를 들으니 그냥 오금이 저리고 도망가고 싶어지는 거였다. 금세라도 저 철창을 뜯어내고 내 내장을 파먹으러 뚸쳐나오실 것 같은 박력이 느껴지더란 얘기다. 사자후라는 말은 괜히 만들어 낸 게 아니었다.

 

아무튼 그만치 무시무시했다.

 

아 무서. 생각해 보면 지금도 오금이 저리다.

 

 

그리고 밖에 나오니 표범과 저 이름 모를 새의 조화가.

 

 

37만 제곱미터라고 하는데, 이렇게 도심 한 복판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아름다울 뿐이다.

 

물론 37만 제곱미터도 절대 작은 규모는 아니지만 사실 규모는 과천대공원이 훨씬 더 크다.

 

 

그리고 동물과 가까이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하려고 애쓴 흔적이 크다.

 

이를테면 기린 같은 경우엔 아예 맘 먹으면 슥 나올 수도 있을 정도.

 

 

그리고 가장 인상깊었던 하마관.

 

 

이런 식으로 물 반, 땅 반의 구조다. 물론 땅 쪽에선 봐도 별 게 없다.

 

 

다들 물 쪽에서 하마를 보고 있다.

 

 

사실 누가 봐도 그렇게 환영받을 생김새는 아닌데,

 

 

이 상황에선 다들 너무 반가워한다.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는 위풍당당

 

 

그리 날렵하진 않지만

 

 

 

어쨌든 물속 모습을 보여주니 다들 너무나 좋아한다.

 

 

 

하마인가 바다코끼리인가

 

 

아무튼 하마 안녕

 

 

그리고 개인적으로 대단히 애착을 갖고 있는 백곰을 보러 갔다.

 

 

애착의 이유를 묻지 말라고

 

 

아 씨원해

 

 

야 콜라 마셔

 

 

응 콜라 어디?

 

 

에잇 젠장

 

아무튼 매우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북극에서 이 정도 거리였다면... 그냥 점심이 되었겠지만.

 

 

그리고 또 매우 감명깊었던 늑대 축사

 

 

이렇게 먹이를 준다.

 

대략 봐도 소고기인 듯 한데 덩어리가 2kg 정도는 될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좋은 고기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쟤 먹이려면 비용이 장난 아닐 듯.

 

 

아무튼 적나라하게 먹어준다.

 

 

가깝긴 한데 얘도 가끔씩 고기 먹다가 고개 들어 쳐다보면 눈빛이 일반 개 종류는 아니다.

 

 

조금 떨어져서 사진.

 

 

그리고 바다사자관.

 

 

먹이 주고 할건 다 하는데 다른 동물원처럼 특별히 교육받은 애교나 쇼는 없다.

 

뭐 동물 스트레스 주지 않으려는 의도라면 그런가 보다 하고.

 

그런 거 보시려면 한국이나 일본 가세요.

 

 

아무튼 5일간 웰컴카드, 뮤지엄 패스 사서 잘 쓰고 다녔다.

 

베를린에선 꼭 필요합니다. 사 두세요.

 

아, 내가 태어나서 택시 이하론 타 본 적이 없어 하는 분들은 없어도 됩니다. 죄송.

 

 

베를린 공항 라운지. 규모는 프랑크푸르트가 훨씬 크지만 이쪽이 더 알차다.

 

음식도 맛나고.

 

 

유럽 대륙 내에서의 항공사 비즈니스석은 사실 좌석 편의성 면에선 아무 의미가 없다. 요즘 유행하는 풀 플랫, 그러니까 180도로 펴지는 좌석 절대 아니고, 다소 무시하듯 부르는 '우등고속형 좌석' 도 물론 아니다. 그냥 똑같은 이코노미 좌석이 3석 나란히 있으면 그 중 가운데 좌석을 비워 주는 것 정도가 비즈니스석의 현실이다.

(안 타본 사람은 잘 모름)

 

 

그래서 비즈니스석의 유일한 장점이라봐야 '라운지에서 술과 밥을 준다' 정도.  

 

 

독일답게 상당히 양질의 화이트 와인을 준다.

 

 

그렇게 해서 근 열흘간의 프라하/베를린 여행이 끝났다.

 

 

폴커 안녕. 다음에는 좀 더 자연과 도시가 만나는 지역으로 가 봐야겠다.

 

베를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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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의 5박이

 

첫날: 프라하에서 열차로 이동. 쉴러 극장에서 '파우스트의 겁벌' 관람.

2일: 베를린 가이드 투어 + 베를린오페라에서 발레 '백조의 호수' 관람.

3일: 베르그루엔+샤프 게르스텐베르크 미술관, 사진 박물관, 포츠다머플라츠

4일: 베를린 박물관 섬 + 자연사박물관 + 함부르크 역 미술관

5일: 쇼핑, 휴식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6일: 오전 베를린 동물원 + 오후 출국

 

박물관+미술관+공연장이 너무 비중이 큰 것 같긴 한데, 아무튼 게으르게 보낸 것 같지도 않은데 4일이 후루룩 가 버렸다.

 

전 같으면 베를린 중앙 공원이나 베를린 시민들의 휴식처라는 반제(Wannsee, See가 독일어로 호수)도 가보고 했겠지만 시내에서 가보고 싶은 곳들이 많아 거기까지 발을 뻗지 못했다. 좀 아쉽다.

 

 

그리고 뭣보다 이런 문화행사의 수준과 규모가 남다른 도시라 기왕 간 김에 공연을 보지 않기도 어려웠다.

 

한여름이었으면 어떻게 해서든 발트뷔네 콘서트를 가 봤겠지만 지금은 6월초.

 

 

느즈막히 일이나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최고의 쇼핑 스팟이라는 카데베에 입성했다.

 

 

카데베의 텍스 리펀드 시스템. 그리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시스템은 잘 되어 있다.

 

아무튼 요약하면 백화점에서 먼저 돈으로 다 받고, 공항에서는 등록만 하는 것이 제일 낫다.

 

아무튼 백화점 전문가인 마나님의 말씀으론 '한국 백화점이 훨씬 화려한 것 같다'고.

 

 

그런데 카데베의 놀라운 점은 꼭대기 층과 그 아래층의 식당가에 있었다.

 

카데베 탑 플로어 레스토랑의 위용.

 

맨 윗 사진을 보면 건물 꼭대기층의 오른쪽에 이런 아치가 보인다.

 

그걸 안에서 보면 이런 장관이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 거대한 카페테리아 + 부페식 레스토랑이 있다.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이 깔려 있고, 중간 중간에 즉석 요리 코너가 있다. 스테이크부터 바베큐까지 다양하다.

 

집은 요리 만큼 마지막 계산대에서 지불하게 되어 있어 합리적이다.

 

똑같이 돈 내는 부페보다 훨씬 합리적이다.

 

 

등심 스테이크, 구운 야채와 파스타, 프레시 샐러드, 견과류 수프까지 10만원 안짝.

 

(Schwein이란 깃발이 왜 꽂혀 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소고기다^^)

 

 

전망도 그만, 음식의 맛도 그만.

 

꼭 가보시기를 강추한다.

 

 

꼭대기층에 저런 대형 레스토랑이 있고, 바로 아래층에는 소규모 식당가가 있는데 가격은 이 한 층 아래가 더 비싸다.

 

저 작은 한 집 한 집이 꽤 유명한 레스토랑의 분점이라는 얘기.

 

어쨌든 쇼핑을 마치고(...많이 샀다), 배불리 먹고 베를린 필하모닉 홀로 향했다.

 

 

호텔에서 주요 관광지로 가는 200번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중간에 베를린 필하모닉 홀 정류장이 있다.

 

그래서 이 노란 건물을 자주 보긴 했지만 드디어 오늘, 들어가는 날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하는 공연을 본다는 건 어떤 사람에겐 대단한 일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다.

 

캄프 누 에서 축구 경기를 본다든가, 부도칸 에 가서 라이브 공연을 본다든가 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터.

 

아무튼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몇 차례 공을 들였다.

 

일정을 한번 바꾸는 바람에 처음에 예매했던 리카르도 무티의 공연은 공으로 날릴 뻔 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티켓 환불 따위 해 주지 않는다. 결국 그 공연은 절반 이하의 가격에 누군가 횡재를 했다.ㅜㅜ)

 

처음부터 꼭 사이먼 래틀의 공연을 보려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일정에 맞추다 보니 구스타보 두다멜과 인연이 닿았다.

(2018.6.8, 6.9)

 

https://www.digitalconcerthall.com/ko/concert/23517

 

 

이때가 2017년 2월. 결국 3월초쯤 이 공연도 매진됐다.

 

베를린 여행을 계획하신 분들이라면 일정을 잡자 마자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 예매를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국내에서 40~60만원씩 하는 티켓을 10만원 내외로 살 수 있다. 물론 매진되기 전에 손이 닿아야 가능하다.

 

아, 베를린에 온 김에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이나 한번 보고 가면 어떨까, 했을 때 늘 좌석이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 두시길.

 

(만약 그랬다면 당신은 매우 운이 좋았던 셈이다. 하긴, 에베레스트도 날씨만 좋으면 운동화 신고 정상 등반에 성공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정문 후문의 공식적인 구분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버스 정류장 반대편인 이 출입구가 약간 후문의 느낌이 난다.

 

멀리서 봐도 그렇고, 가까이서 봐도 그렇고, 이 건물은 이제 오랜 세월 베를린의 상징처럼 여겨져서 자연스럽게 느껴질 뿐이지 처음 건설될 때에는 꽤 말이 많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딘가 가건물 내지는 창고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건물을 설계한 베른하르트 한스 헨리 샤로운 Bernhard Hans Henry Scharoun 님의 구상이었던 것 같은데, 이 양반의 작품들은 대개 다 그냥 상자곽같은 느낌을 준다. 그나마 이 건물은 뭔가 임팩트를 준 덕분(?)인지 서커스 텐트같은 느낌이 들어서 '카라얀의 서커스 Zirkus Karajani' 라고 불린다고 한다.

 

 

해가 긴 베를린. 후문쪽으로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고 있다.

 

 

 

여기까지 왔는데 당연히 인증샷.

 

 

정류장 이름은 그냥 단순하게 'Philhamonie'다. 베를린 필하모닉이니 뭐니 설명이 필요없다는 뜻.

 

1887년, 베를린 필하모닉은 통일 독일의 융성한 기운을 배경으로 태어났다. 17세기, 30년 전쟁의 여파로 신성로마제국이 사실상 해체된 이후 독일은 50여개의 자잘한 나라들로 해체됐다. 표면적으로는 제후국이었지만 사실상 각각의 나라들은 모두 독립국이었고, 19세기까지도 느슨한 상태의 '독일 연방'이 있었을 뿐 하나의 독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1871년,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는 프랑스와의 전쟁('정치적 후광의 대명사' 나폴레옹 3세가 상대였다)에서 승리한 뒤 독일의 통일을 선언했다.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함에 따라 신성로마제국 이후 중부 유럽의 정치적 중심지는 빈에서 베를린으로 이동한다.

 

역사적으로 크게 주목받은 적이 없는 북부 독일의 도시, 일개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에서 전 통일 독일의 수도로 거듭난 '신 수도' 베를린은 새로운 문물의 도움으로 당시 세계 최첨단의 도시로 탈바꿈한다. 당시 세계 문명의 최첨단 기술은 바로 전기였다. 베를린은 전기 활용에서 전 세계를 리드했다.

 

 

1879년, 독일 지멘스 사(지금도 건재한)가 최초로 상용 전철을 개통시킨 도시가 바로 베를린이었다. 이런 세련되고 멋진 신도시에는 거기 걸맞는 문화의 향기도 필요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베를린 필하모닉이 탄생했고, 초대 지휘자로 당대 최고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가 취임했다.

 

(한스 폰 뷜로는 브람스와 바그너의 대다수 작품을 초연한 '전문 지휘자의 시조'로도 유명하지만 바그너에게 아내를 빼앗긴 남자로도 유명하다. 문제의 여자는 리스트의 딸 코지마. 아마도 코지마가 바그너에게 가겠다고 한 뒤 뷜로는 스승인 리스트에게 찾아가 징징댔을 것 같고, 리스트는 뷜로에게 이런 식으로 얘기했을 것 같다.

"울지 말게. 원래 내 딸은 자네가 감당할 여자가 아니었어.")

 

 

20세기 들어 베를린 필하모닉은 2대 지휘자 아르투르 니키슈, 3대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에 의해 세계 최강의 자리를 점점 더 굳혀 간다. 물론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겪으면서 나치 부역 혐의의 망령이 이 오케스트라의 원죄처럼 드리우게도 되지만, 중론은 '음악이 뭔 죄냐' 쪽인 것 같다.

 

예술가에게도 정치적인 공정성, 혹은 도덕적/이성적 엄밀성을 요구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예술가는 그가 구현하는 미적 결과물의 가치에 와 개인의 도덕성을 구분해서 평가받아야 하는 존재인가. 이 질문은 아마도 먼 훗날까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지휘자로서 위대했던 푸르트벵글러 앞에서 인증샷.

 

이 바로 옆에 카라얀의 사진도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을 얘기하면서 카라얀을 건너 뛸 수는 없다. 단지 클래식 음악을 얘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20세기 인류 문명을 이야기 하면서 카라얀과 동급으로 거론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해 보면 그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끼게 된다. 피카소? 엘비스? MJ? 아인슈타인? 마틴 루터 킹? ...마하트마 간디?

 

워낙 유명한 양반이다 보니 그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그치지 않는다. 이미 정평이 난 인성 문제는 차치하고(답이 나와 있다), 정말로 정말로 그가 최고의 지휘자인가...하는 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많은 사람들의 소일거리가 되어 온 것 같다.

 

물론 감히 그런 논의에 끼어들 수준은 안 되는 것을 인정하고 얘기하면, 어쨌든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취향상 그보다 다른 지휘자를 더 좋아할 수는 있어도, 그를 무시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특히 그 말도 안 되는 레퍼토리의 폭을 보면 정말 그는 난 사람이다.

 

아울러 그분이 남겼다는 말씀들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말은 이거다. 

 

"당신은 오페라를 눈을 감고 보나?"  

 

 

어쨌든 베이브 루스가 뉴욕 시민들에게 양키 스타디움을 선사했듯 카라얀이 없었다면 이 콘서트홀은 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각별한 건물인데,

 

건물 안에서 받은 인상은 '참 이모저모로 각졌다'...는 것.

 

 

드디어 들어왔다.

 

대공연장은 2440석.

 

 

공연장 안으로 들어와도 문제의 각진 느낌, 혹은 2015년 이후 렉서스의 그릴 디자인 같은 느낌은 이어진다.

 

하긴 렉서스 디자인을 여기서 따온 것일 수도 있을 듯.

 

 

네. 이거 얘기였어요.

 

 

정면의 괜찮은 자리.

 

베를린에서 공연장에 3번 갔는데 세번 모두 관람객의 평균 연령이 60세는 되는 것 같았다.

 

(농담이 아니라 베를린 오페라의 경우엔 인터미션이 15분이라도 짧을 것 같았다. 관객들의 평균 이동 속도가...)

 

그나마 베를린 필하모닉은 꽤 젊은 편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1라운드 끝.

 

존 아담스의 '시티 누아르 City Noir' 라는 재즈 냄새가 짙은 곡을 연주했다.

 

곡이 끝났는데 아무도 박수를 칠 수가 없었다, 는 말로 감상을 대신하고자 한다.

 

(아마도 관계자 누군가가 박수를 치기 시작한 듯 하다.)

 

 

 

 

 

인터미션이 거의 30분쯤 되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들 뭔가 먹고, 마시고, 떠든다.

건물 1층 뿐만 아니라 꽤 넓은 이 안마당이 관객들로 가득 찬다.

 

이 시간이 매우 의미있게 느껴진다.

 

공연이 곧 시작이라는 직원들의 안내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두다멜의 성명절기인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다. 이번 여행의 앞부분인 프라하에서 드보르작의 묘소를 방문하고 오는 길이었다는 점에 의미를 더욱 더 부여하고 싶다.

 

아무튼 두다멜의 이 곡 연주는... 말해 뭘 할까, 박력 그 자체.

 

 

예술의 전당 같으면 어림없겠지만 두다멜의 앵콜 무대 때 거의 모든 관객이 일어서서 박수를 치며 사진을 찍는다.

 

이래도 되나 싶지만 베를린에 오면 베를린 법을 따라야 하는 법.

 

 

두다멜은 자신이 받은 꽃다발을 단원들에게 한송이씩 나눠주며 활짝 웃었다.

 

 

 

공연이 끝나도 하나도 급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

 

해가 지고 밤이 되니 제법 쌀쌀한데 다들 공연장 밖에 서서 웃고 떠들고... 버스가 와도 곧바로 타고들 갈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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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들른 곳은 나름 공룡 뼈 마니아(공룡 마니아 아니다)인 마나님의 요청에 따른 베를린 자연사 박물관.

 

 

 

멋지긴 한데 이 브라키오사우르스의 뼈는 어째 좀 진실성이 결여되어 보인다.

 

저 표본의 몇%가 진짜 뼈일지... 음...

 

 

아무튼 세계 어디를 가나 어린이들은 역시 공룡의 편.

 

그런데 자연사 박물관에서 다음 목표인 함부르크 역 미술관까지 가는데 동선이 좀 꼬였다.

 

가이드북 상으로는 두 포인트가 지척이라고 했으나,

 

도보로 약 30분 거리...

 

 

어쨌든 나타나기는 나타났다. 함부르크 역 Hamburg Bahnhof 미술관.

 

이름은 함부르크역이지만 현재의 베를린 메인 역이 나오기 전까지는 베를린의 메인 역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미술관이다.

 

오르세와 같은 팔자. 건물로서는 참 괜찮은 팔자라고 할 수 있겠다.

 

 

건물 밖은 한산한데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은,

 

 

그렇다. 누가 봐도 로버트 인디애나. 약간 뒤집었을 뿐이다.

 

 

안셀름 키퍼(Anselm Kiefer)의 'Folk Thing Zero'라는 작품이 문 앞을 지키고 있다.

 

인디애나만큼 유명한 작가는 아닌 듯 하지만 아무튼 인상적이다.

 

 

 

문을 들어서면 이런 비현실적인 사이즈가 기다리고 있다. 역시 기차역이었던 건물다운 포스.

 

그런데 여기서 정지 신호등이 켜졌다.

 

.

 

동행인의 에너지 소모가 심해 충전이 필요한 상황.

 

사라 뷔너(Sarah Wiener)라는, 아마도 사장님의 성함이 내걸린 미술관 내 레스토랑.

 

 

 

 

바나나가 들어간 얇은 팬케이크. 비싸지만 맛있다.

 

여기서 식사하면 60~70유로 정도 예상. 미술관 옆 레스토랑이 대부분 그렇듯 미니멀하고 천장 높은 분위기도 일품이다.

 

 

 

자, 본격적으로 관람 시작.

 

 

일단 1층 동쪽에 현대 미술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거장들의 작품을 한데 모아 놓았다.

 

'우리 이런 미술관야'라는 느낌의 화력시범이다.

 

 

로이 리히텐스타인의 '해변 마을 Coastal Village'를 시작으로,

 

 

 

 

전시 스타일도 시원시원.

 

 

로버트 로셴버그의 '마인 Mine'.

 

...광산 관련은 아니겠지.

 

 

 

로셴버그의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이 '뮬 사슴 Mule Deer'.

 

뮬 사슴은 그냥 사슴의 종류다. 거꾸로 매달린 의자가 사슴 머리 박제를 연상시키고, 그 아래는 거울이다.

 

보는 사람 자신을 볼 수 있게 한 설계.

 

 

 

그리고 싸이 톰블리를 넘어 저 멀리 보이는 저 작품은...

 

 

조셉 보이스의 'Das Kapital Raum'.

 

(다스 카피탈은 그 자본론 맞다.)

 

역시 조셉 보이스답게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 없다.  

 

궁금하신 분들은 해설을 보시기 바람.

 

 

 

아무튼 누가 봐도 앤디 워홀의 누가 봐도 마오 형님을 다시 보고 돌아나오면,

 

 

사이즈가 사람을 압도하는 메인 전시장.

 

그런데 이게 하나의 작품이라는거다.

 

 

이런 광활한 공간에 세 개의 데스크가 설치되어 있다.

 

관람각은 이 세 데스크를 거치며 데스크 직원의 응대를 받는다.

 

(데스크 직원의 머리 뒤에는 약간 공허할 수도 있는 목표 구호 따위가 쓰여 있다.)

 

 

데스크에서 설명을 들은 뒤에는 관람객도 무슨 서류에 서명을 하게 되어 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 잘 모르겠다.)

 

 

이 작품의 제목이다. 에이드라언 파이퍼, '개연성있는 신용 등록: 게임의 법칙 #1~3'

Adrian Piper, The Probable Trust Registry: The Rules of the Game #1~3

 

...음;; 2015 베니스 비엔날레 대상 수상작이라고.

 

뭔가 현대 사회의 지나친 합리성/공식성 추구에 대한 비판이라고 합니다만.

 

 

그 다음은 대규모 작가진이 참여하는 기획 전시.

 

 

 

댄 플래빈의 '무제'.

 

궁금한 것은 왼쪽의 조명이 작품에 포함된 요소일까, 이 건물에 포함된 요소일까 하는 것.

 

 

이 조명 얘기다.

 

 

흥미로운 요소. 이 전시를 보는 동안, 근세 노동자 복장을 한 인물이 전시장 안을 왔다갔다 한다.

 

처음에는 전시장 관리인인가 했는데 행동거지를 보면 전시의 일부다.

 

조셉 보이스의 Unschlitt/Tallow.

 

 

그밖의 상설 전시에는 George & Gilbert를 비롯해 상당히 흥미로운 전시품이 많있다.

 

 

 

물론 가장 큰 볼거리는 미술관 그 자체.

 

 

 

온 카와라 On Kawara의 I got up.

 

 

그리고 이 미술관이 미는 아티스트인 듯한 한네 다르보벤 Hanne Darboven의 Menschen Und Landschaften.

 

 

직역하면 '인간들과 풍경' 이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룬 대작(?).

 

 

허위허위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긴 베를린의 햇살도 저물어 가고 있다.

 

살짝 어두워지니 건물의 조명이 더 빛을 발한다.

 

 

나오다 보니 예사롭지 않은 나무 장식이 눈길을 끈다.

 

 

 

고된 하루를 보낸 뒤끝으로 호텔로 돌아와 기절.

 

 

그리고 비상용으로 아껴 뒀던 호텔 바로 옆 그리스 식당에서 수블라키를 먹었다.

 

수블라키는 언제나 옳다. 감탄할 만한 맛.

 

 

베를린에서 5박인데 5박이 하루 같다.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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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섬의 박물관들 가운데 가장 사진발이 잘 받는 곳을 꼽자면 아무래도 구 국립미술관 Alte Nationalgalerie 일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파란 하늘 아래 있으면 자못 멋지다.

 

 

 

독일어 한 마디도 못하지만 Alte는 old, Neue는 new다. 따라서 Alte가 있으면 Neue가 있다.

 

(예를 들어 뮌헨에도 Alte Pinakothek 과 Neue Pinakothek이 나란히 있다.)

 

물론 어디까지가 Alte고 어디부터 Neue 일까는 그때 그때 다를 수밖에 없지만 대략 20세기 이전이냐, 이후냐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 베를린의 구 국립미술관도 19세기 후반, 살짝 넘쳐 봐야 20세기 초반까지의 독일 화가들이 남긴 작품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베를린의 신 국립미술관, 즉 Neue Nationalgalerie 은 언젠가부터 수리에 들어가 아직 폐쇄되어 있었다. 언제 다시 개장할지는 모르겠다. 물론 파울 클레나 막스 에른스트 등 20세기 전반 베를린을 빛나게 했던 작가들의 작품은 좀 더 작은 국립미술관 - 앞에 방문기를 썼던 두 미술관도 규모가 크지 않아 그렇지 당당한 Nationalgalerie다 - 에서 꽤 많이 보았으므로 크게 아쉽지는 않다.)

 

어쨌든 지금 온 곳은 Alte 니까 19세기 이전 독일 화가들의 작품을 주로 소장하고 있다.

 

 

 

내부도 뭔가 부티가 풀풀.

 

 

언젠가부터 유럽 미술관에 들어가 보면 이런 어린이들을 찍게 된다.

 

테이트 모던, 프라도, 알테 피나코텍, 어디나 이렇게 엎어져 그림을 그리는 어린이들이 있었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오크가 있는 수도원'. .

 

프리드리히라면 누구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생각하겠지만 그 그림은 함부르크에 있다.

 

 

이 박물관의 스타는 아르놀트 뵈클린 Arnold Boecklin. 그의 45세 때 자화상이다.

 

(독일 상징주의의 대표 화가 중 한명이지만 사실은 스위스 출신이다)

 

자신의 어깨 뒤에서 사신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광경을 그리다니. 악취미긴 한데,

 

 

세기말의 냄새가 물씬 나는 이런 '십자가 아래에서의 눈물' 같은 그림이 그의 작품이다.

 

 

그리고 수없이 패러디된 그의 대표작. '죽음의 섬'.

 

딱 봐도 음산하고 무섭다. 2차원의 그림인데 3D 효과도 너무나 선명하다.

 

 

자세히 보니 절벽에 AB 라는 그의 이니셜이 써 있다.

 

 

그리 큰 그림이 아닌데도 을씨년스러움이 온 전시실을 휘감는다.

 

 

역시 인기다.

 

 

'Ocean Breaker (The Sound)' 라는 제목인데, 오딧세우스 신화의 키르케를 묘사한 것일까?

 

 

 

그런데 미술관의 전시 상태에 좀 불만이 있다.

 

그림에 바로 자연광이 떨어지는 환경이라 반사가 심하다. 그 탓에 그림의 세부를 보기가 쉽지 않아 아쉬웠다.

 

아니 세계적인 미술관이 왜 이래.

 

 

그리고 지나는 길에 이건 누가 봐도 오노레 도미에의 누가 봐도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

 

 

 

갑자기 이 형님은 여기 왜 계신지.

 

 

그리고 독일에도 인상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막스 리베르만 Max Liebermann의 '정원의 벤치'

 

 

중간의 테라스에서 베를린 돔이 보인다.

 

3층과 2층에서는 사실 뵈클린과 프리드리히 외에 큰 관심 가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았다(개취).

 

내 생각에는 1층에 있는 20세기 초 독일 화가들의 컬렉션이 아무래도 이 미술관의 진수가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프란츠 폰 슈투크 Franz von Stuck의 '죄악'.

 

 

 

여인의 얼굴과 뱀의 표정에서 사악함이 뭉클뭉클.

 

 

'키르케를 연기하는 Tilla Durieux' 라는 제목. 역시 비슷한 느낌이다.

 

틸라 두리유(?)는 당대의 유명한 여배우라고.

 

 

 

이런 사악한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슈투크는 이렇게 생겼다.

 

어째 그럴 것 같은 얼굴이다.

 

 

역시 슈투크의 작품인 '폰(Faun)과 인어'. 그런데 인어가 왜 하체가 갈라지는거야. ;;

 

혹시 인어 스타킹?

 

 

그러고 보니 이 전시실의 이름은 분리파(Secessionen)/ 세기말(Jahrhundertwende).

 

프랑스에서 기성 화단에 반항해 일어난 것이 인상파라면 좀 늦은 독일에선 분리파가 기성 화단을 부정하고 일어섰다.

 

슈투크 등의 화가들이 뮌헨에서 일어난데 이어 빈에서는 클림트가 그 깃발을 이어받은 셈이다. 

 

물론 분리파는 사조의 이름은 아니다. 다만 슈투크와 클림트는 상징주의의 화풍에서 공통점이 있는 셈이다.

 

 

토마스 데오도르 하이네의 '악마'.

 

 

이 전시실의 분위기와 딱 맞는다.

 

 

막스 클링거의 '조개껍질을 탄 비너스'

 

 

프레디 머큐리를 연상시켜서 담았다. 아르투르 캄프 Arthur Kampf의 '연기자' (광대?)

 

물론 전통적으로 베를린을 대표하는 화가는 이들보다는 아돌프 멘젤 Adolph Menzel 이다.

 

프로이센 왕국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이런 우아한 궁정 그림이 멘젤의 대표적인 화풍인데,

 

여기 전시된 다른 그림들을 보면 꼭 그렇게 우아한 것만을 고집한 사람은 아니다.

 

 

 

뭔가 격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 그림은,

 

 

제목이 '프라하의 유태인 묘지 Judenfriedhof in Prag.

 

움베르토 에코의 '프라하의 묘지'가 생각나는 그림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기심.

 

 

이렇게 해서 박물관 섬의 다섯개 박물관 가운데 세 개를 기를 쓰고 돌아봤다. 꽤나 힘들다.

(3개를 가든 5개를 가든 입장료는 모두 베를린 뮤지엄 패스로 해결된다. 꼭 사라.)

 

베를린 구 박물관과 보데 박물관까지는 여력이 미치지 않아 그대로 패스. 구 박물관은 그리스/로마 시대 조각이 많다고 하고, 보데 박물관은 중세 기독교 관련 유물이 많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무리일 것 같아 나름 순위를 매겨 상위 3개를 돌아봤다.

 

미안해요. 건물 외관 예쁜 보데 박물관. 그리고 정면 멋진 구 박물관.

(하지만 다음에 와도 들르겠다는 말은 못하겠어요. ;;)

 

아직 가 볼 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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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박물관 섬의 다섯 박물관은 정말 뭉쳐 지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관람객들은 멀리 왔다갔다 하지 않아서 좋지만 외곽에 위치한 구 박물관, 신 국립미술관, 그리고 보데 박물관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건물 전경을 찍기가 쉽지 않다.

 

아무튼 그래서 페르가몬 박물관에 이어, 신 박물관 Neues Museum 도 전경은 없다.

 

 

 

일단 박물관/미술관은 제일 높은 층부터 간다는 원칙에 따라 3층(그러니까 4층)으로 직행.

 

가 보니 인류 발달사를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는 대형 모니터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석기시대부터 인류가 발달해 온 과정을 간략하게 보여주는데, 마음 바쁜 관광객도 자리를 지키고 보게 할 만큼 그래픽과 내용이 흥미로웠다.

 

 

 

3층 한 구석에는 이 박물관의, 어쩌면 베를린 전체를 대표하는 간판 유물인 '황금 모자 Berliner Goldhut'가 있다.

 

그렇다. 저 가운데 번쩍번쩍 빛나는 뾰죽한 물건이 바로 모자다.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생겼다.

 

 

유물의 비중이 비중인 만큼 설명 페이지를 붙여 둔다. 청동기시대의 왕 또는 제사장 같은 신분의 사람이 썼던 것으로 추정될 뿐, 이 황금모자와 관련된 다른 사료나 증거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그냥 생각만 해 봐도 그 옛날에 저 정도의 황금 모자를 만들었을 정도라면 상당히 강력한 지도자였음은 분명할 것 같다.

 

그런데 그 옛날에도 금 좋은 건 다들 알았었다니.

 

 

 

황금 모자를 넋놓고 바라보다 박물관의 다른 한 편으로 넘어간다. 박물관 중간의 계단실이 이 정도의 규모다.

 

 

창밖으론 잠시 후 갈 신 국립미술관이 보인다.

 

 

기원전 5천년 전 정도의 그릇받침.

 

 

신 박물관의 3층은 어찌 보면 '문명 이전의 베를린 지역'에 대한 향토 박물관 같은 느낌을 준다.

 

그 당시 석기/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사냥했을 엘크의 뼈가 전시돼 있기도 하다.

 

엘크, 진짜 크다.

 

 

약 1만3천년 전의 것 정도로 추정되는 말 모양의 토기 하며,

 

 

 

베를린 인근 지역을 거쳐간 수많은 문명의 흔적들이 전시돼 있다.

 

하기야 대륙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와는 달리, 대륙 복판의 베를린 지역은 수많은 민족들이 밀고 들어왔다 밀고 나기기를 반복했을테니 흘리고 간 유물도 다양할 수밖에.

 

 

 

라고 생각하면서 2층으로 내려오면 동네 잔치는 이제 그만.

 

이집트 어딘가에서 온 유물들이 줄줄이 줄줄이 쏟아진다. 시종 목상이다.

 

 

 

 

그런데 시종 Chamberlain, 혹은 Hepetni 라고 이름 붙은 좌상들은 전부 저렇게 오른손은 뭔가를 쥐고, 왼손은 편 상태다.

 

뭘까?

 

 

 

아이들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축소해서 표현하는 스타일도 흥미롭다.

 

 

 

이런 식으로 이집트 유물들이 죽 전시되어 있는데,

 

다른 유럽 지역 미술관/박물관에 비해 사진 촬영에 대단히 관대한 베를린 사람들이 유독 찍지 못하게 하는 유물이 있다.

 

이집트 출신으로 클레오파트라 다음으로 유명한 여자.

 

물론 나도 엄중한 관리를 뚫고 찍을 생각까지는 없었다. ABC뉴스에 활용된 보도 사진.

 

아마도 고대의 여인상 가운데 가장 유명한 조각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진으로만 봤을 때에는 목상인가, 아니면 토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은 석회암(limestone) 조각이다. 그 밖에 장식용의 접착재료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봐도 미인이지만 당시에도 미인으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BC 14세기 이집트의 미적 감각이 현대인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건 이상하게 안도감을 준다.

 

남편 아케나톤 Ahkenaton 은 전통적인 다신교 신앙을 가졌던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신 아톤 Aton 을 유일신으로 하는 종교개혁을 시도했을 정도로 강력한 왕이었다(이상하게도 옛날 교과서에서는 이크나톤이라고 배웠다. 이집트어에서 모음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아마르나 유적지에서 당시의 대 조각가인 투트모세 Thutmose의 작업장을 발굴하다가 출토된 덕분에, BC 1345년이라는 제작 연도도 추정 가능했다.

 

이 완벽한 조각상의 한가지 흠결은 수정으로 조각된 오른쪽 눈과 달리 왼쪽 눈이 없다는 것. 이 때문에 네페르티티가 본래 왼쪽 눈이 없는 인물인지, 아니면 단순히 조각상이 파손된 것인지도 얘기가 분분했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아케나톤과 네페르티티는 그 유명한 투탄카멘의 부모라고도 한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이설들이 있다. 다른건 다 떠나서 BC 14세기 인물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상세한 기록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는 데 이집트 문명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솟는다.)

 

아무튼 실물로 본 네페르티티, 역시 미인이더라.

 

 

 

네페르티티의 방을 지나가면 그 못잖게 유명한 젊은이가 있다.

 

크산텐의 젊은이. Xantener Knabe.

 

 

 

라인강까지 진출한 로마인들의 유물이다.

 

BC 1세기 경의 것으로 1858년 라인강의 어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

 

 

아마도 오른팔은 이런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 검투사들의 모습을 조각한 것들이 많은데,

 

(당연히 저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로마인들이 흘린 물건들)

 

 

 

그런데 너무 귀엽잖아.

 

 

응? 저게 에... 에로스라고?

 

 

거기 비하면 이건 누가 봐도 머큐리(헤르메스) 이긴 하네.

 

 

 

그리고 이렇게 그럴듯한 로마 시대 조각품이 있는가 하면

 

 

갑자기 이런 토템 조각 같은 것이 등장한다.

 

이 박물관... 뭔가 약간 어지러워.

 

그리고 다시 이집트 조각과 묘지 벽화의 습격.

 

 

그리고 이 박물관의 마지막 스타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베를린의 녹색머리 Berlin Green Head.

 

 

녹색편암을 이용한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조의 작품. BC 1세기 언저리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가 살던 시대의 작품이라는 얘기.

 

그런데 놀랍도록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돌의 가공 상태는 물론이고 좌우 균형에서 뒤통수의 주름까지, 완벽하다.

 

 

마지막으로 이집트 무덤 속으로 들어간다.

 

 

0층이 바로 각종 관을 전시한 곳이다. 주로 이집트에서 출토된 것들이다.

 

1층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뜨악 놀란다.

 

 

우르크, 혹은 와르카라 불리는 고대 도시의 거대한 꽃병....

 

꽃병이라기엔 좀 너무 크고, 예식용의 꽃꽂이용 청동 항아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3천년 넘은 물건이라고.

 

 

 

이런 물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긴 처음인데 멋지다.

 

 

이건 로마시대의 석관(Sarcophagus).

 

사르코파구스의 어원은 '사람을 먹어치우는 돌'이라고 한다.

 

 

 

이집트 석관은 내부에도 이렇게 조각이 되어 있다.

 

 

뭘 많이 보다 보니 화장실 표시도 굉장히 있어 보인다.

 

 

어느새 대낮.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이럴땐 매점행이다.

 

 

 

그리고 이렇게 날씨가 좋아져 있을 줄이야. 박물관 앞 잔디밭에 앉기 딱 좋은 날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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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가몬 박물관 2층으로 올라가면 뜬금없이 방 하나가 나타난다.

(혼동을 막기 위해 다시 한번 강조하면, 한국식으로는 3층에 해당한다)

 

알레포의 방 Aleppo Room 이라는 전시물이다.

 

 

 

이 대목에서 알레포가 누구야, 라고 하시면 안됨.

 

왜냐하면 알레포는 지명이라서.

 

 

 

지도 보시다시피 알레포는 레반트 지역의 북쪽, 시리아 북부의 도시다.

 

십자군 전쟁 관련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오래 된 도시.

 

 

 

이 방은 17세기 초, 알레포의 기독교인 거주구역에 있던 한 부유한 상인의 집에서 방 하나를 통째 뜯어내 재현한 것이다.

 

(독일 분들은 뭔가 통째 뜯어와 재현하는 걸 참 좋아하지 싶다.)

 

 

옆방은 여전히 복원 공사가 진행중이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방 안의 치장이 정교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는 엄청난 양탄자의 습격이다.

 

 

 

뭔가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이런 작품도 있고,

 

(왠지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보이는 형상들이 날고 있다)

 

 

 

이 박물관 전시품들 중 가장 큰 카펫. 7.68 x 2.98 m 크기로 무게만 50kg에 달한다.

 

무굴 제국의 샤 자한이 자신의 왕궁 또는 아내의 무덤(타지 마할)에 깔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그렇다고 인도에서 만든 것은 아니고, 만들어진 곳은 바그다드 근처로 추정된다고.)

 

 

 

 

본래 카펫에는 동물 그림은 넣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 이 카펫은 용과 불사조가 그려져 있다.

 

뭐 실물이 있는데, 해도 되는 거겠지.^^

 

아무튼 양탄자 사진만 한 20장 찍어왔는데 양탄자에 토하실 수도 있으니 이 정도로 한다.

 

 

 

안쪽으로 죽 들어가 보면 역시 꽤 큰 형상에 눈길을 끈다.

 

므샤타 Mshatta 의 궁전 성벽을 홀랑 뜯어 와서 전시중이다.

 

Mshatta를 대체 어떻게 읽어야 하나... 음샤타? 므샤타? 어디를 봐도 별 지침이 없어 곤란했는데 유네스코 페이지는 친절하게 Mushatta 라고 표기해 놓고 있다. 고마워요 유네스코.

 

(바르셀로나 화이팅)

 

 

 

 

 

우마이야 조 Umayyad 는 이슬람교의 성립 이후 최초로 등장한 통일 아랍 왕조다.

(아랍어를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으므로 중역 과정에서 옴미아드 혹은 옴미야드 조라고 배운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사실 그런걸 누가 다 기억해. ) 

 

지배자는 칼리프 caliph 혹은 칼리파 Khalifah. 기독교 문화권에 비교하면 칼리프는 교황, 술탄은 황제라고 보면 된다...고 예전에 배운 것 같다.

 

 

이 므샤타 유적이 건설된 시기는 8세기, 그러니까 우마이야 조의 말기라고 보는 것 같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안 가봤지만 공항 가는 길이라고)

 

 

 

이런 유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뭐 여기서 뜯어가고 저기서 뜯어가고... 했겠지.

 

그래도 아직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이라니 대단하다.

 

사람이 사는 게 유적 보호에 좋은지, 안 사는게 유적 보호에 좋은지, 늘 궁금하다. 

 

 

 

아무튼 페르가몬 박물관에 와서 30여년만에 들어보는 고유명사들을 다시 영접하려니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이 일 한국(Il-Khanate)만 해도 그렇다.

 

몽골 제국은 징기스칸 사후 서서히 대원제국과 네 개의 한국으로 정리되어 간다. 중국과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원(元)제국은 익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 원나라고, 네 개의 한국은 각각 일 한국, 킵차크 한국, 차가타이 한국, 오고타이 한국이다.

 

차가타이(징기스칸의 2남)와 오고타이(징기스칸의 3남, 공식 후계자) 한국은 중앙아시아 지역을 남북으로 나눴고, 징기스칸의 손자들이며 위대한 정복자 바투(친자 여부가 의심스러운 징기스칸의 장남 주치의 아들)와 훌라구(4남 툴루이의 아들, 쿠빌라이의 동생)는 그보다 더 서쪽으로 진출했다. 그래서 훌라구는 아랍 지역을 차지해 일 한국을, 바투는 러시아를 거쳐 폴란드와 헝가리까지 진출해 킵차크 한국을 세웠다. 만약 바투가 몽골 제국의 황위 계승 분쟁 때문에 귀환조치를 받지 않았다면 서유럽도 몽골 제국의 일부가 되었을 지 모른다.

 

[징기스칸 전기와 그 부록 - 징기스칸의 후예들이 세운 나라들 - 을 열심히 읽은 것이 근 40년 뒤에 이런 데 도움이 될 줄이야.]

 

어쨌든 독일 제국의 관심사는 중근동 지방이었으므로 페르가몬 박물관은 일 한국의 유물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물론 그런 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알 뿐이지, 그 나라의 문화가 어땠는지, 심지어 어디 말을 썼는지, 그런 거야 알 바 아니다. 일 한국의 영토가 이란, 이라크, 동부 터키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었으니 당연히 그 지역 문화에 흡수됐겠지... 하는 정도.

 

생각해보면 학교 다닐 때 몽골 제국의 후예들이 4개의 한국을 세웠다는 말에 오오 우리가 몽골 제국의 후손인가 하는 바보들도 좀 있었는데, 이 한국은 韓國이 아니라 汗國, 즉 '칸(汗, Khan)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Khanate.

 

(요즘은 이렇게 한국이란 이름이 혼동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한국에서도 '칸국'이란 말을 더 많이 쓴다고 한다.)

 

뭐 그렇다고.

 

 

그렇다고 생각하고 보니 어쩐지 짙은 몽골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알함브라에서 본 듯한 이런 것도.

 

알함브라 얘기를 하고 있자니 진짜 알함브라에서 뜯어 온 것도 있다.

 

 

알함브라 돔 Alhambra Dome 이라고 불리는 목조 천장

 

알함브라의 나스르 궁을 가 보신 분들은 이것과 거의 비슷한 천장을 많이 보셨을 거다.

 

차이가 있다면 이 천장은 목조고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다.

 

아르투르 폰 귀너 Arthur von Gwinner라는 독일 은행가가 알함브라 지역의 부동산을 샀다가 스페인 정부에 다시 기증한 댓가로 이 목조 천장을 뜯어 올 권리를 얻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유물 하나.

 

상아로 만든 뿔피리(Oliphant)다. 서사시 '롤랑의 노래'에 나오는, 롤랑이 불고 죽은 바로 그 피리...는 아니지만, 아무튼 그 피리와 같은 종류의 올리펀트다. 길이 50cm 정도. 꽤 크다.

 

 

중세 내내 아랍령이었던 시실리 지역에서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모양의 올리펀트는 유럽 전역과 북아프리카에 걸쳐 발견된다. 심지어 조각된 문양에도 비잔틴, 아랍, 기독교 양식의 특징이 골고루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 뿔피리 하나에 유럽과 중근동의 역사가 다 담겨 있는 셈이다.

 

 

 

아무튼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사이에 페르가몬 박물관을 훑고 나오는 동안 우마이야 조, 사마라, 압바스 조, 파티마 조, 티무르 제국, 호라즘, 셀주크 투르크, 사파비 조, 앗시리아, 사산 조, 수메르 등등 언젠가 뇌 한 구석에 들어왔다 나갔던 수많은 고유명사들이 다시 한번 머리 속을 명멸하는 것을 느꼈다.

 

아마 죽을 때까지 내가 저런 고유명사들의 의미를 다시 알게 될 일은 없을 지도 모른다. 그만치 인생은 짧고, 인류가 구축해 놓은 유산들은 너무나 많다.

 

50이 되면 이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건 그만 둘 때가 된 거라고 며칠 전에 한 선배가 말씀하셨지만, 아직은 그 이야기를 부정하고 싶다. 세상은 넒고 알고 싶은 건 아직 너무나 많은데.

 

 

사실 페르가몬을 보고 왔지만, 정작 페르가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거대한 '페르가몬의 제단'은 보지 못했다.

 

기적적으로 2차대전 때 살아남은 이 유물은 현재 대대적인 보수에 들어가 있고, 2020년에야 다시 공개될 전망이다.

 

밀레투스의 시장 문도 어마어마했지만 이 제단에 비하면 소규모 유물인 셈인데.

 

 

과연 언제 또 베를린에 들러서 저 제단의 계단을 직접 밟아 볼 일이 있을까, 솔직히 장담할 수가 없다.^^ 

 

아무튼 저 제단 때문에 페르가몬박물관에 가 볼 날을 꿈꿨지만, 저 제단 없이도 페르가몬은 충분히 위대했다.

 

 

 

밖으로 나오니 하늘엔 한껏 구름이 끼어 있다.

 

박물관 하나 보고 나왔는데 벌써 다리가 아파 온다. 자, 박물관 섬에서 두번째 박물관으로 황금 모자를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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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걷는 날이 될 거란 확신 때문에 아침을 든든히 먹기로 했다.

 

(물론 다른 날이라고 부실하게 먹은 건 아니겠지.)

 

베를린 풀먼 호텔의 조식은 지금까지 가 본 수많은 호텔들 가운데서도 손끕을만 한 퀄리티다. 너무 맛있고 재료도 풍성하다.

 

 

 

 

 

베를린을 가로(세로?) 지르는 슈프레강 한 복판에 양말같이 생긴 약간 길쭉한 섬이 있다.

 

이 섬의 이름이 바로 박물관 섬이다. 독일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다섯개의 박물관이 이 섬에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섬의 왼쪽, 그러니까 북서방향에 다섯개가 오밀조밀 몰려 있다.

 

 

 

이렇게 다섯개가 사이좋게 붙어 있다.

 

루스트가르텐 Lustgarten 이라고 불리는 정원 쪽에서부터 A. 구 박물관, B. 신 박물관, C. 구 국립 미술관, D. 페르가몬 박물관, E. 보데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사이좋게 차곡차곡 붙어 있다.

 

사실 이렇게 보면 맨 앞(?)에 나와 있는 구 박물관이 뭔가 약간 왜소해 보이는데,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다.

 

 

 

베를린 관광의 필수 노선인 시내버스 200을 타고 루스트가르텐 Lustgarten 역에 내리면 제일 먼저 보이는 건물은 바로 이 어마어마하게 큰 베를린 돔이다. 이 사진은 약간 옆에서 봐서 그런데, 정면에서 보면 정말 위압감 느끼게 큰 건물이다.

 

 

 

 

그런데 시선을 약간 왼쪽으로 돌리면 다른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잔디밭이 바로 루스트가르텐이고 저 앞의 무식하게 큰 건물이 바로 구 박물관.

 

시선이 꽉 찬다. 어마어마하게 좌우로 길고 크다.

 

 

 

 

 

 

 

그리고 이 풍경이 보일 때 쯤이면 베를린 돔 앞을 지나가고 있다.

 

베를린 돔도 꽤 유명한 관광 스팟이지만 미안하다. 너한테까지 할애할 시간은 없단다. 오늘 형이 좀 바빠.

 

 

 

 

사실 저 어마어마하게 큰 구 박물관은 그냥 통과.

 

박물관 마니아로서 안타깝지만 저 구 박물관까지 돌아보다간 다리가 부러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내셔널갤러리 앞을 통과하면,

 

 

 

뭔가 공사판 한 구석처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야 오늘의 첫번째 목적지 페르가몬 박물관 Pergamon Museum 을 갈 수 있다.

 

 

 

자. 복습이다. 루스트가르텐에서 A, B, C를 모두 통과해야 D, 즉 페르가몬 미술관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건물 자체가 저렇게 다른 건물들에 포위되듯 둘러싸여 있어 어떻게 해도 전경을 찍을 수가 없다.

 

페르가몬 미술관 외경에 대한 자료 사진이 없는 데에는 다 이런 이유가 있다.

 

하지만 왼지 뒷문 같은 음침한 입구를 통해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즉 0층을 통과해 1층 -한국의 2층 - 으로 올라간 순간)

 

 

 

건물 내부인데 이런 경악스러운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이슈타르의 문'이다.

 

베를린에 수없이 많은 박물관들이 있고, 거기에도 나름 가치 있는 유물들이 차고 넘치지만 솔직히 말해 런던에는 대영 박물관이 있고 파리에는 루브르가 있다. 로마? 로마는 도시 자체가 인류사에 남을 유물의 덩어리다.

 

이런 유럽의 슈퍼 박물관들에 대항할만한 베를린 박물관의 에이스가 있다면 아무래도 페르가몬이다. 이 베를린의 자존심 페르가몬을 구경하기 위해서 이 아침부터 박물관 앞에 손님들이 줄을 서는 것이다.

 

(페르가몬 박물관을 가실 분이 있다면 무조건, 개장 시간에 맞춰 줄을 서라. 오후가 되면 줄은 더 길어진다. 박물관 정원제에 따라 일정 인원 이상이 입장한 상태에서는 일단 입장객들이 퇴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원전 6세기, 신 바빌로니아 왕국의 수도 바빌론에 있던 성문 중 하나를 통째로 옮겨 온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바빌론, 공중정원, 니네베, 뭐 이런 얘기로 넘어가면 그게 시대가 어느 시대인지, 전설인지 역사인지 아물아물해진다.

 

(이게 막 지구라트와 바벨 2세가 나올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전설의 시대가 이런 새파란 벽돌의 모습을 하고 눈앞에 나타나니... 감동적이다.

 

 

 

 

파란 벽돌(타일)을 보니 은근히 사마르칸트의 기억이 떠오르는데,

 

생각해 보면 이 파란 벽돌은 사마르칸트에서 본 색보다 조금 짙고 어두운 느낌이 돈다.

 

(물론 14세기 티무르 제국 유적과 6세기 신바빌로니아 유적을 한데 묶어 생각할 이유는 전혀 없다. 어쨌든 그냥 파란 벽돌을 보니 반가웠다는 정도로 정리해 두자. )

 

 

 

문을 등지고 서면 이렇게 성벽의 벽돌 모자이크 부분을 다 뜯어와서 복원해놓고 있다.

 

 

 

 

 

그러니까 외성문에서 내성문으로 들어가는 길이 이런 식으로 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이걸 허락 안 받고 뜯어 온 거라면 정말 기가 찰 노릇인데,

 

페르가몬 박물관 측은 극구 "대영박물관의 엘긴 대리석과는 달리 합법적으로 가져온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뭐 그러려니 할 밖에. 모자이크라기엔 부조에 좀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이 사자들은 바로 마르두크 신의 상징이고,

 

 

 

이건 당시 바빌로니아 신화에 등장하는 용, 뮤슈수(Mushussu)라고 한다. 이 성벽의 부조에 등장하는 동물은 무슈수, 사자, 그리고 역시 신성한 동물인 황소(아우로크 Auroch 라고 한다) 뿐이다.

 

 

 

그리고 이슈타르의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놀랄 거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밀레투스의 시장 문(Market Gate of Miletus) 이다.

 

밀레투스는 소아시아 지역, 그러니까 터키 서부 해안을 따라 그리스인들에 의해 건설된 도시 중 하나다. 이들 도시 중 가장 유명한 곳들이 트로이 전쟁으로 파괴된 트로이, 그리고 호메로스의 출생지인 스미르나(오늘날의 이즈미르) 등이다.

 

 

이 시장의 정문은 기원후 2세기, 그러니까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만들어진 것으로 10세기 경 지진으로 파괴됐다. 그걸 근세에 발굴하면서 복구했고, 그게 지금 베를린에 와 있는 것이다.

 

높이 16미터, 폭 30미터의 엄청난 사이즈인데,

 

 

 

이 모형의 왼쪽 귀퉁이에 있는 바로 저게 이 시장의 문이다.

 

그러니까 당시 밀레투스의 거대한 도시 규모에 비하면 이 웅장한 문이 별 것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리 보니 귀엽네.

 

 

 

 

아무튼 시장 문과 한 세트인 건너편 제단은 어느 신전의 한쪽 벽면이었던 것 같다.

 

 

 

 

 

물론 크게 상관 없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물들도 함께 전시돼 있다. 2세기 경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의 에로스 부조,

 

 

 

그리고 이건 레바논의 바알벡(Baalbek) 유적에서 나온 빗물 배출용 사자 머리 가고일이다. 역시 AD 2세기.

 

 

아무튼 쉽게 눈길을 뗄 수 없는 시장의 정문을 뒤로 하고,

 

 

뭔가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앗시리아 유적 속으로.

 

(대체 왜 친근감을 느끼냐고 하시면 뭐라 대답할 말은 없지만서도)

 

 

 

니네베(니느웨)의 궁전 벽에서 나온 사자 사냥 부조다. BC 7세기.

 

 

 

친절한 베를린 분들은 이 돌이 어디서 나온거냐 하면... 을 이렇게 지도로 꼭 같이 표기해 준다.

 

물론 그래 봐야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겠지만.

 

 

좀 알만한 지도로 바꿔 보면 앗시리아의 대표 도시인 니네베와 님루드는 이렇게 붙어 있다.

 

 

 

이건 라마스(Lamassu), 그러니까 '날개 달린 인면 사자상'인데,

 

 

사실 대영박물관에서 그 천장에 닿을 듯 한 거대한 라마스를 본 사람에겐 약간 애교스러운 사이즈.

 

 

 

아마도 영국이 먼저 털고 간 자리에 뒤늦게 독일인들이 도착한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얘들은 다리가 다섯개다!

 

대체 왜 ;;

 

(혹시 실수로 다섯 개?)

 

 

 

 

 

이것은 국왕의 모습으로 추정되는데, 신상들 사이에 위치해 왕=신의 느낌을 주려는 배치라고.

 

 

 

이런 식으로 앗시리아 왕궁의 한 방을 그대로 뜯어와 재현했다.

 

 

 

 

온갖 유물들이 다 있고,

 

 

 

이것은 앗시리아 시대 자유도시였던 사말(Sam'al)에서 뜯어 온 대형 돌사자들.

 

사말은 또 어디야... 생전 처음 들어본다.

 

터키 남부에 있는 유적이다. BC 10세기.

 

 

 

뭔가 마법적인 보호력을 기원하고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묘하게도 민화 속 호랑이를 연상시킨다.

 

 

 

 

 

누가 봐도 그렇지?

 

 

휴. 간신히 한 층을 끝냈다.

 

페르가몬 박물관, 한 층 보기가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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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둘쨋날. 작지만 알찬 박물관 두 개를 돌아보고 나니 어느새 오후.

 

미친듯이 관광 포인트를 도는 여행은 둘 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천천히 다시 시내로 이동, '사진 박물관'을 찾았다.

 

 

 

 

 

분명히 영어로 하면 museaum for photography. 사진 박물관 맞는데 사실 사진박물관이라기보다는 개인 박물관의 느낌이다.

 

힌트는 왼쪽 벽에 붙어 있는 '헬무트 뉴튼 재단'.

 

헬무트 뉴튼이라면 바로 그 유명한 사람, 그 왜 엄청 유명한 셀렙들과 번쩍번쩍 빛나는 비닐 장화 '만' 신은 누드의 슈퍼모델들을 즐겨 찍었다는 그 양반! 사진 작가이면서 그 자신이 셀렙인.

 

 

이 박물관은 뉴튼의 유지에 따라 이뤄진 것이고, 뉴튼의 유물들이 전시품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 박물관인 만큼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인데 어떤 분위기라는 것은 전하고 싶어서 한장 찍어 봤다.

 

 

 

굳이 말하면 '사진의 신' 뉴튼에게 바치는 헌정의 공간이랄까. 신전 같은 느낌이었다.

 

 

뉴튼의 전시 공간 외에도 상당 부분이 다른 작가들의 사진을 전시하는 데 활용되고 있었다.

 

뉴튼의 사진을 보고 나니 왠지 허기가 밀려왔다.

 

미술관 카페에서 뭘 좀 먹었는데 그걸로는 부실했던 모양.

 

마침 베를린을 대표하는 먹거리라는 커리부어스트의 대표적인 맛집이 초 역 바로 앞에 있었다.

 

 

 

관광책자에도 나온다는 Curry 36.

 

 

소문난 맛집답게 당연히 줄을 서야 한다.

 

 

 

노점풍의 분위기답게 사서 들고 먹거나, 저렇게 길가의 보도 난간에 놓고 먹는다. 격식 따위 전혀 없다.

 

 

 

 

 

 

사실 뭐 별거 없다. 소시지에 튀김옷을 입히고, 케찹 위주의 소스(뭔가 좀 섞긴 섞은 것 같다. 단순히 케찹은 아니다) 에 커리 파우더를 뿌려 먹는게 전부다. 가격은 대략 1.5~2유로 정도. 여기에 저 소스와 찰떡궁합이라는 감자튀김을 곁들이면 3유로까지도 올라간다. 소시지 하나로는 끼니가 되지 않으니 감자 튀김으로 양을 늘려 본다는 느낌이다.

 

맛은... 맛 없을 요소가 없으니 당연히 맛있다. 찍어 먹는 방식이나 뭐나 가기 전부터 '떡볶이 비슷해요'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전혀 매운 맛이 아닌데도 어쩐지 떡볶이를 먹는 기분이 든다. 아무튼 맛있다. 그런데 매우 단순한 맛이라 대체 이 정도의 음식에 맛집이 따로 있다니 그건 또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ㅎ

 

아무튼 프라하-베를린을 쉼 없이 달렸으니 약간의 낮 휴식.

 

(불량체력의 중년 여행객에겐 강행군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내친 김에 아예 관광객 티를 내기로 작정하고 포츠다머 플라츠로 향했다.

 

 

포츠다머 플라츠 1층의 린덴브로이 Lindenbrau.

 

베를린에 간 사람 - 중에서도 초행인 촌스러운 사람들은 모두 한번씩 가 보고야 만다는 바로 그 집이다.

 

 

 

 

사실 우리가 아는 독일 음식이란 게 대부분 돼지고기 요리다. 오래 전 혼자 독일에 왔을 때에는 아이스바인을 먹었고, 한국에서도 이제는 꽤 많은 곳에서 학센을 맥주 안주로 먹을 수 있다. 물론 독일 대중식의 상징 같은 소시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전날 낮, 베를린 주민이신 가이드님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독일 사람들은 왜 그렇게 돼지고기를 많이 먹죠?"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독일 사람 돼지고기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아요.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 많이 먹죠. 오히려 돼지고기는 별로 안 먹을 걸요?"

 

"아 그래요?"

 

"작년에 남편(독일 사람. 굉장히 유명한 분이라고)이랑 한국 나갔는데 하루 삼겹살, 하루 제육볶음 먹더니 남편이 그러던걸요. '한국 사람은 돼지고기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아.' "

 

너무나 충격적인 이야기.

 

"아니 그럼 그 학센이며 아이스바인이며 이런 것들은 다 누가 먹나요?"

 

"누가 먹긴요. 관광객들이 다 먹죠."

 

으음 ;;

 

"한국에서도 신선로 구절판 이런거 평소에 먹는 사람 없잖아요. ㅎㅎㅎㅎ"

 

그래서 학센을 주문하지는 않았다.

 

 

 

여담이지만 독일 사람들은 뭘 섞어 마시는 걸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약간 흰색이 도는 바이스비어는 뭔가를 섞어서 저렇게 다양한 음료로 다시 태어난다.

 

물론 한국에서도 맥주와 사이다를 같이 시켜서 섞어 먹는 사람이 꽤 있지만 저걸 저렇게 술집에서 아예 메뉴판에 써놓고 팔진 않잖아.

 

게다가 저건 약과다.

 

아주 오래 전 독일에 왔을 때, 카페의 메뉴에 별 희한한 것들이 다 있어서 놀란 적이 있다. 지금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콜라+환타, 닥터페퍼+환타, 콜라+맥주 등등이 다 메뉴판에 써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얘기를 했더니 사람들이 안 믿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들 했는데,

 

 

 

 

 

마침 그 증거를 발견했다.

 

위 메뉴의 소프트드링크 항목 아래를 보면 펩시 콜라와 미린다(물론 오렌지 맛이다)를 섞은 음료를 슈페찌 Spezi 라고 부른다고 써 있다. 봐! 보라고! 독일에선 이런 걸 판다고!

 

* 아울러 한국에서 한때 환타의 경쟁 음료였던 오렌지 음료를 '미란다'라고 기억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이 음료의 이름은 '미린다'다. '미란다 원칙' 아니다. M.I.R.I.N.D.A. 미린다라고 미린다.

 

(물론 지금도 열심히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 술집이 펩시콜라 친화적이라 슈페지도 '펩시+미린다'였던 듯. 만약 코카콜라 가맹점이었다면 코카콜라+환타의 슈페지를 내놨을 것이다.

 

 

카페에서만 반반 섞어 파는 게 아니라 이렇게 다양한 슈페찌 음료들이 아예 상품화되어 팔리고 있다. 참 희한한 동네 아닌가 싶다.  아무튼 슈페지의 맛은 예전에 다들 해보셨을 것 같은 - 음료 자판기에서 이맛 저맛을 돌려가며 섞은 바로 그 맛, 어찌보면 닥터 페퍼 같은 맛 - 그 맛이다. (이번에 먹어봤다는 뜻은 아님. 오래전에...)

 

여담이지만 환타라는 음료가 태어난 곳도 바로 이곳, 베를린이다. 이건 긴 얘기니 다음 기회에...

 

 

 

어쨌든 먹어 봐야 뻔한 맛인 슈페찌를 주문한 건 아니고, 독일 전통식인 소시지 샐러드 (Wurstsalat. 글자만 봐도 눈치챘겠지만 소시지가 바로 독일어로 Wurst. 커리부어스트 별거 아니었어), 그리고 독일 전통 감자 샐러드 Kartoffelsalat 를 곁들인 닭 반마리 구이를 시켰다.

 

(의도적으로 학센, 아이스바인 피한거 맞다)

 

요 며칠 새(당연히 독일에 머물던 그 며칠 새) 계속 먹고 있지만 감자와 오이를 잘게 썰어 만든 저 카르토펠살라트는 새큼하면서도 입에 붙는 맛이라 고기 요리를 먹을 때 아주 잘 어울린다. 물론 독일이니까 자우어크라우트를 줘도 좋겠는데, 이 린덴브로이의 카르토펠살라트는 좀 너무 짰다.

 

짜니까 맥주를 많이 마셔야 하잖아...

 

 

 

이렇게 앉아서 색깔이 변하는 포츠다머플라츠 소니 타워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6월이지만 해가 떨어지니 날씨가 스산해지던 참인데 비바람이 몰아치니 막 춥다.

 

 

물론 저 천장도 괜히 있는 건 아니어서 비바람이 불어도 밖에 앉아서 맥주 마시고 하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지만, 기온이 점점 내려가는게 느껴진다. 이럴 땐 미련 떨지 않고 후퇴하는 게 상책이다.

 

 

서울 못잖게 편리한 베를린의 대중교통체계. 200번만 타면 어쨌든 집(호텔)에 간다.

 

역시 낯선 도시의 숙소는 교통이 가장 중요.

 

 

비에 젖은 차창 밖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홀이 보인다. 걱정하지마. 곧 갈거야.

 

이렇게 비가 오면 내일은 어쩌나 걱정했지만 미리 걱정해 봤자 아무 소용 없는 변덕스러운 베를린 날씨.

 

 

 

 

그리고, 다음날 박물관 섬에서는 이렇게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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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과 함께'를 봤습니다.

 

2017 연말은 '강철비'-'신과 함께' - '1987'이 잇달아 개봉하는 대목입니다. 겨울방학의 시작이고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이 가장 영화를 많이 보는 시즌인데다 크리스마스와 1월1일이 모두 연휴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대작들이 1주일 간격으로 개봉하는 것은 좀 이례적인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방학도 긴데 이렇게 꼭꼭 붙어 개봉을 해야 하는지 약간 의문입니다.

 

그 세 작품 중 가장 먼저 '신과 함께'를 보았습니다.

 

일단 만족도는 최상. 오랜만에 훌륭한 순수 오락영화를 봤습니다.

 

흔히 오락성=상업성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어떤 작품이 상업적이냐 아니냐의 기준에는 오락성 외에도 여러 조건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굳이 '순수 오락 영화'라고 한 것은 정치적인 상황, 개봉 당시의 사회적 이슈 같은 외적 요인을 최대한 배제하고 영화 안에 내재하는 고유의 오락성이라는 요소에 주목할 때 매우 탄탄하고 충실한,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의미입니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 만들어진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이 좀 지나칠 정도로 내수 전용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신과 함께'는 꽤 특이한 영화입니다. '광해', '변호인', '국제시장' '명량' 등 역대 천만 영화들, 그리고 기획 순간 바로 천만을 바라봤던 '군함도', 'VIP'같은 2017년의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한국 역사의 질곡이나 독특한 정치 상황에 주목한 작품들이 상당히 많았던 점을 생각하면 제가 얘기하는 '내수 전용'이라는 말의 의미는 쉽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굳이 말하자면 '신과 함께'는 이런 영화들에 비해 매우 보편성을 띤 영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12금이라는 점도 '한국형 블록버스터'들과는 좀 다르죠.

 

아무튼 들어가는 말이 길었습니다. 그럼 줄거리.

 

(이 정도면 '출발 비디오 여행' 수준에 비쳐 볼 때 거의 스포일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스포일러가 있다고 느끼신 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아무튼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소방관 자홍(차태현)은 위험한 화재현장에서 소녀를 구해 함께 추락합니다. 일순 소녀를 구해냈다는 안도감을 느끼지만, 자신을 데리러 온 차사 해원맥(주지훈)과 덕춘(김향기)을 보고 자신이 죽었음을 깨닫습니다. 어머니를 만나기 전엔 죽을 수 없다는 항변에도 불구하고 자홍(의 혼)은 저승으로 날아가고, 자홍은 거기서 차사들의 우두머리 강림(하정우)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망자들은 49일 동안 일곱 차례의 재판을 통해 이승에서 저지른 죄를 평가받게 되며, 그 결과에 따라 환생할 것인지 지옥에서 세월을 보낼 것인지 결정된다는 설명을 듣습니다. 

 

(네. 천당행...은 여기선 선택지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한 의인으로서의 죽음 덕분에 자홍은 귀인(貴人)으로 대접받지만 그래도 모든 인간은 살면서 생각지도 못한 죄를 짓고 사는 법이죠. 통과하는 재판마다 자홍은 조금씩 위기에 빠집니다. 그리고 차사들은 차사들대로, 천년 동안 49인의 망자를 각각 49일 안에 환생시키면 그들도 환생을 맞을 수 있다는 저승의 법에 따라 안간힘을 씁니다. 강림-해원맥-덕춘 조는 자홍에 앞서 47인의 의인을 환생시킨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홍이 통과하면 딱 한명 남게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자홍과 세 차사의 앞에는 지옥귀들이 나타나 재판길을 방해하고, 이것이 이승에서 망자의 직계 가족이 원귀로 변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강림은 이승으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자홍의 동생 수홍(김동욱)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을 당해 원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죠. 제대를 앞둔 육군 병장이었던 수홍의 원귀는 자신의 죽음과 관련된 관심병사 동연(도경수)의 주변을 맴돌고... 그 과정에서 자홍이 이미 15년 전 집을 나가 단 한번도 어머니와 동생을 만나지 않았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집니다.

 

대체 효성과 우애가 유난히 깊은 의인 김자홍이 어머니와 동생을 15년간 외면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이 영화의 뒤쪽 절반을 차지하는 미스테리이고, 강력한 반전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꼭 휴지나 손수건을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특히 여자분들은 눈화장이 녹아 민망해질 수 있습니다.

 

 

 

 

앞부분, 자홍이 죽은 이유와 일곱 대왕이 지배하는 일곱 지옥의 설정, 자홍과 세 차사들의 캐릭터가 설명되는 부분은 흠 없이 매끄럽게 흘러갑니다. 사실 '신과함께'의 초기 홍보 과정에서 가장 많이 부각된 부분은 '상상을 초월하는 CG 효과로 저승의 거대한 비주얼이 표현될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CG는 명불허전, 대단합니다. 자홍과 세 차사가 가는 저승길의 비주얼은 한국 영화에서 이제껏 볼 수 없었던 규모의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다가 아니죠. '신과 함께' 제작진은 자칫 이런 작품의 제작진이 빠질 수 있는, '자, 이게 우리가 제공한 스펙터클이야. 어때, 멋지지?'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에서 김용화 감독은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보여집니다.

 

화려한 저승의 그래픽을 밑에 깔고 그 위에 메인 요리로 인물들의 디테일과 사랑받을만한 사연이 허술하지 않게 들어 찼다는 점이 '신과 함께'의 첫번째 강점입니다. 당연히 사건을 풀어 가는 메인 주인공은 하정우의 강림 역(원작의 강림도령과 변호사 진기한을 합친 캐릭터)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단순무식과격한 무적의 전사 해원맥이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해원맥은 차사들의 우두머리 강림도 위급할 때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강력한 전사입니다. 단 머리 쓰지 않는 일일 때만. ^^ 

 

 

 

 

그래서 해원맥은 사뭇 진지한 강림과 영화 내내 걱정이 태산인 자홍 때문에 자칫 무거워질수도 있는 영화에 웃음과 힘을 제공합니다. 아, 한국인이 좋아하는 배우 차태현의 위력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정우-차태현-주지훈-김향기 라인은 이들 외에 어떤 배우를 끼워넣어도 이 이상의 효과를 내기 힘들 정도로 탄탄합니다. 여기에 딱 세 장면 등장하지만 주인공으로 착각할 정도로 존재감이 뚜렷한 이정재가 있고, 영화 시작 30분 이내에 장광 김해숙 오달수 임원희 유준상(응? 어디?) 가 쏟아져 나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물반 고기받으로 쏟아진다는 점에서 진정한 블록버스터의 향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흠을 잡자면 초반엔 자홍의 재판이 너무 안이하게 쉽게 풀려나간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지옥귀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영화 '신과 함께'는 장르가 바뀝니다. 수홍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테리와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뜻밖의 이야기들이 관객을 서서히 클라이막스로 이끌어 갑니다.

 

마지막, 올해 한국 영화 중에서는 가장 강력한 '한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듭니다.

 

이 '한방'에 대해 꽤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너무 신파다'라는 일부 평자들의 주장입니다만, 부모 자식간의 정에 대한 이야기로 관객의 심금을 건드리는 것은 어떤 영화든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이고,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관객의 몫입니다. 이 영화에는 가족사에 관련된 강력한 최루성 코드가 있고, 저는 그 부분이 '신과 함께'라는 영화의 훌륭한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네. 이 영화의 후반 30분은 관객 모두가 '우리도 알고 보면 모두 죄인임' 을 인정하게 만들어 버리는 힘이 있습니다.

 

 

 

물론 '신과 함께'가 완전무결한 영화는 아닙니다. 주인공 중 하나인 자홍의 초반 감정은 관객들이 따라가기에 다소 아슬아슬한 부분도 있고(이 역할을 연기한 것이 '한국인이 사랑하는 배우' 차태현이 아니었다면 좀 심각한 위협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전자 제품에 대한 집착은 좀 지나쳐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후반부가 자아내는 거대한 공감의 크기는 그런 사소한 흠결들은 충분히 덮고 갈 수 있는 힘들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영화 본편이 끝났다 싶으면, 역대 한국 영화 사상 최강의 쿠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심 빵 터집니다.)

 

 

 

무시무시한 싱크로...^^

 

 

 

P.S. 도경수가 연기한 캐릭터 이름 '원동연'은 이 영화의 제작사인 리얼라이즈 픽처스 원동연 대표의 이름에서 따 온 것입니다. 따라서 촬영장 분위기 충분히 상상이 갑니다. "동연아 임마! 야 이 자식아!"....

 

 

 

아무튼 도경수의 연기력은 아이돌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 한 사람의 배우로서 훌륭합니다.

 

 

 

P.S.2. 그래도 개인적으로 이 영화 때문에 가장 크게 득 볼 배우는 주지훈김동욱이라고 생각.

 

P.S.3. 이 영화가 갖는 감동의 핵심은 관객의 죄책감을 공략한다는 데 있습니다. 특정한 장면이 평소 관객들이 갖고 있던 죄책감의 단초를 확 폭발시키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이 부분에서 김용화 감독은 매우 탁월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주위에 잘 하셨던 분들은 그런 느낌이 덜 할 수도 있지만, 대다수 관객들은 이 대목에서 왈칵 밀려드는 감정을 느낄 거라는 생각. ^^ 여러분은 어떤지 한번 시험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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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안으로 프라하/베를린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정진하겠습니다.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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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xx일.

 

베를린 체류기간중의 예보는 내내 비. 하지만 베를린 주민님의 제보에 따라 베를린에서 비란 그냥 일상의 일부이며 언제 왔다 언제 갈지 모르는 그런 존재라는 걸 이미 알아버렸다.

 

그래서 그런 건지 다음날 아침은 정말 맺힌 데 없는 푸른 하늘.

 

물론 푸른 하늘이라고 더운 건 아니다. 오전엔 꽤 선선한 편이다. 물론 낮이 되어 해가 쨍하게 비치면 좀 덥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반팔 입을 날씨는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의 목적지인 샤를로텐부르크 궁 앞에 갔을 때에는 그런 날씨를 종일 기대해선 안된다는 먹구름이 매우 낮게 드리워 있었다. 심지어 흘러가는 빗발까지.

 

하지만 우산이 필수인 런던과는 달리 베를린에선 우산을 상비한 사람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이유는 거의 모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척 하다가 사라질 것임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6일 동안 제대로 장대비가 오는 것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거의 매일 비가 왔으나 30분 이상 내린 경우는 없었다. (아, 밤에는 자는 사이 꽤 비가 온 듯한 흔적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이 샤를로텐부르크도 가이드북에 꼭 나오는 주요 관광지기는 하나, 우리의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고...

 

 

 

바로 샤를로텐부르크 궁 정문 건너편에 있는 베르그루엔 미술관 Berggruen museaum.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당당한 '글립미술관'이다. 물론 짐작하겠지만 베를린에는 이런 규모의 국립미술관이 여러 군데 있다.

 

아무튼 이 미술관도 베를린의 강력한 뮤지엄패스에 의해 무료 입장. 개별적으로 방문하면 10유로 정도의 입장료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1층으로 입장하면 바로 보이는 자코메티 선생의 입상. 누가 보든, 어디서 보든 자코메티의 작품을 못 알아볼 리는 절대 없다. 그만치 강력한 아이덴티티. 이런 거 좋아한다.

 

 

 

베르그루엔 미술관이 있기까지는 하인츠 베르그루엔 Heinz Berggruen 이라는 분의 콜렉션 기부가 있었다는 얘기....일 것으로 추정되는 글월이 있다. 설마 토마토 케찹(!)을 발명하신 분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

 

어쨌든 독일어다. 못 읽는다.

 

베르그루엔 미술관은 아담한 3층 건물 규모. 하지만 파울 클레, 파블로 피카소, 자코모 자코메티... 뭐 그러한 20세기 전반기의 내로라 하는 화가들의 알짜 작품들이 모여 있다.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흔치 않은 피카소의 조각 작품. 제목은 '학'.

 

그러게 누가 봐도 학.

 

 

 

 

그리고 알기 쉬운, 누가 봐도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인 '광장 2'.

 

참 이렇게 알기 쉬운 작가들이 좋다. 그냥 한방에 누구 작품인지 알아볼 수 있는.  

 

 

 

 

앙리 마티스의 후기작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뜯어붙이기도 있고,

 

 

 

 

파울 클레의 상징 같은 저 쭉 찢어진 눈의 소녀. '노란 빵모자를 쓴 빨간 소녀'

 

 

 

 

 

그림을 보면 뭔가 음악적인 느낌이 드는데, 제목 역시 이채롭다.

 

'Abstract Color Harmony in Squares with Vermilion Accents'... 억지로 옮기면 '주홍색 액센트의 사각형들 속에 추상적인 색채 하모니' 정도? 뭔가 청각적 이미지를 색으로 옮기고 싶었다는 느낌을 정확하게 주고 있다.

 

이것도 역시 파울 클레 작품.

 

 

 

 

이 그림의 제목이 '네크로폴리스', 즉 '죽은 자들의 도시'라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림이 아닐 수 없다.

클레가 본 피라미드들이다.

 

 

 

 

 

물론 이렇게 특유의 동심의 세계를 그린 작품도 있고,

 

 

 

이렇게 사물의 본질에 깊숙히 접근한 작품도 있다.

 

제목을 들으면 이해가 간다. '카페트'. 가로실과 세로실이 교차하며 짜여진 카펫을 현미경 눈으로 들여다 본 느낌이다.

 

 

'거울을 든 젊은이, 누드, 팬파이프 연주자, 어린이'

 

라는 제목의 스케치를 한 화가는 어느 순정만화가가 아니라 파블로 피카소.

 

 

 

 

피카소의 그림은 수없이 봤지만, 이렇게 만화풍의 그림은 드물게 본 것 같다.

 

제목은 '실레누스와 춤추는 패거리 Silenus and Dancing Company'.

 

실레누스는 어린 바쿠스(디오니소스)를 키워준 양부로 사람이 아니라 사튀로스다.

 

호색과 술주정이 특징인 사튀로스의 느낌이 너무나 즐겁게 표현돼 있다. 

 

 

 

 

 

3층으로 된 전시장을 돌아보고 밖으로 나오니 다시 활짝 갠 날씨에, 독특한 모습의 조각이 정원을 장식하고 있다.

 

자기만큼 큰 동생을 업은 착한 형... 이었으면 좋겠으나 제목은 'United Enemies'. 적과의 동침이다.

 

Thomas Schutte 라는 작가의 2011년 작품. 매우 인상적이다.

 

 

아무튼 작지만 내실있는 미술관.

 

워낙 미술관을 좋아하는 동반자와 같이 간 터라 이 미술관을 찾는 데에는 전혀 고민이 없었는데, 대체 왜 유럽만 가면 미술관을 가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분들이라면 과감하게 일정에서 빼시길 권한다.

 

쉴새없이 명소와 명소를 건너 뛰는 여행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비추. 마치 그 도시로 이사간 듯, 그 도시에 사는데 어쩌다 휴일을 맞은 듯 들르실 분들이라면 추천.

 

 

 

베르그루엔의 바로 뒤쪽에 브뢰한 뮤지엄이라는 작은 미술관이 붙어 있다. 일단 문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 미술관도 1층은 뮤지엄 패스의 무료 입장 구역이라 유유자적 들어갔다.

 

 

 

알고 보니 이 미술관은 공예/생활용품/포스터/인테리어 중심의 미술관.

 

특히 20세기 초 아르누보 스타일의 '도대체 저런 물건이 실용적인 가치가 있었을까' 느낌의 생활용품/가재도구/가구들이 잔뜩 있다. 관심 있는 분들에겐 꽤 흥미로울 듯.

 

 

 

 

그 다음, 강추하고 싶은 미술관이 길 건너편에 있다.

 

바로 잠룽 샤프-게르스텐베르크 Sammlung Scharf-Gerstenberg 미술관이다.

(http://www.smb.museum/en/home.html)

 

 

입구로 들어가면 막스 에른스트의 주물 작품 하나가 서 있다. 제목은 'The Most Beautiful'.

 

 

 

그리고 뜬금없이 이집트 어디선가 뜯어 온 신전 문짝이 하나 있고

(물론 이건 정복자들이 무단으로 가져온 건 아니고 문화재 보호 협약에 따라 어쩌고...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 문짝을 보고 이 미술관의 성격을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이 미술관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초현실주의 전문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마침 쉬르레알리즘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었는데, 이 미술관을 만들게 한 샤프씨와 게르스텐베르크씨의 관심사가 모두 초현실주의 작품 컬렉팅이었다는 것이다.

 

 

 

 

장 뒤비페 Jean Dubuffet 의 '암콤 She-Bear'.

 

뒤비페는 이 미술관이 특히 사랑하는 작가이기도 한데, 이 미술관은 초현실주의의 출발점을 1761년 조바니 바티스타 피라네시의 판화 작품 '카르체리 Carceri (감금, 은둔, 감옥 등의 의미)', 프란치스코 고야가 1799년 내놓은 판화집 '로스 카프리초스 Los Caprichos (변덕, 수시로 바뀌는 기분의 의미)'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이후의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본격적인 전시는 2층부터지만 1층에도 희한한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를테면,

 

 

마네의 '까마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던 마네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그리고 다음 그림,

 

 

놀랍게도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빅토르 위고다. 그 빅토르 위고 맞다.

 

제목은 무제, 혹은 '섬의 회상'

 

 

 

 

이렇게 피라네시의 이름을 맨 위에 올려놓은 만큼 그 위층에는 피라네시의 '카르체리'에 방 하나를 할애하고 있다. 제목 그대로 '카르체리'는 피라네시가 상상한 엄청난 규모의 지하 뇌옥을 소재로 하고 있다. 말이 뇌옥이지, 사실 내 눈에는 피라네시가 상상한 지옥의 모습으로 보였다. 물론 첫 그림만 봐도, 그런 의도가 충분히 있었을 것으로 엿보인다.

 

 

 

아무튼 상상력의 규모가 압도적이다.

 

 

 

 

그리고 이 미술관에서 '우리 초현실주의파의 둘째 형님' 정도로 봅는 화가가 바로 프란치스코 고야다.

 

고야라면 '옷입은 마야'와 '옷벗은 마야'를 바로 떠올리는 분들이 거의 대부분이겠지만, 일생을 호의호식/권력총애/부귀영화 속에서 보낸 것으로 유명한 고야는 인생 만년에 매우 독특한 화풍을 선보였다.

 

바로 인간 내면의 악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인데,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을 가 보신 분은 고야의 '블랙 페인팅'이라고 이름지어진 전시실을 기억할 것이다. 말년의 걸작들, 예를 들어 '아이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같은, 일면 공포감을 일으키는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이들 그림에선 냉소적이면서도 인간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진다.

 

위 그림의 제목도 '어리석음, 혹은 대단한 전사'

 

 

 

물론 '카프리초'에 수록된 당나귀 그림도 여기서 빠지지 않는다.

 

 

 

 

 

오스카 도밍게스의 '안전핀'은 어딘가 달리를 연상시켜서 찰칵.

 

 

그리고 무척 좋아하는 회가 르네 마그리트의 청년기 그림인 '학생의 꿈'이다.

 

 

 

이건 말년에 그린 대표작 중 하나인 '밤의 가스파르'. 뭔가 사진의 부름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이 시기 초현실주의 화가 진용에서 빠질 수 없는 대가가 막스 에른스트.

 

그의 인상적인 작품 '사이프러스'도 여기 있다.

 

 

 

 

 

그리고 보기만 해도 음산한 한스 벨머의 '세 소녀와 죽음'.

 

 

 

 

 

아무튼 작지만 알찬 박물관이다.

 

 

그리고 박물관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공간, 박물관 카페가 무척 아름답다.

 

 

 

 

특별히 조경에 신경쓴 것도 아닌 듯 하지만 미술관 다운 높은 천장과 나무, 숲, 거리,

 

그리고 너무 사람이 많지도, 아주 없지도 않은 적당한 조용함. 따뜻한 햇살.

 

왠지 너무나 마음이 가는 풍경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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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영화의 바다에 풍 빠져보고 온갖 행사에 참석하고 하면 2박3일 정도의 일정이야 슝 날아가 버리는게 부산행이지만, 그래도 먹을 건 챙겨 먹어야 합니다. 특히 온갖 풍부한 먹거리가 넘쳐나는 도시 부산에서라면.

 

왕년에는 부산에 꽤 자주 가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몇번 가다 보니, 가던 곳만 가게 되는 폐단이 있더라구요. 사실 그렇게 오래 머물수 있는 것도 아닌데 검증되지 않은 곳을 가는 건 또 불안하기도 하고... 그래서 이번엔 좀 맘 먹고 안 가보던 곳을 가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부산 토박이 및 부산 마니아들의 증언을 참고했습니다.

 

 

일단 황혼무렵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아, 제목은 '맛집 가이드'지만 실상은 '술집 및 해장 가이드' 입니다.

 

 

 

새로 개발된 해운대 주상복합군이 몰려 있는 마린시티 옆 도로 쪽에서 보면 황혼무렵 하늘은 환상적입니다.

 

 

 

그중 어느 건물 1층에 아넬로 AGNELLO 라는 맥주집이 있습니다.

 

 

사실 이 일망무제의 하늘과 바다, 광안대교 풍경은 공짜입니다

 

다만 해질녘 바닷가에 앉아서 풍경을 즐기려면 어딘가 앉을 곳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음식이나 술 사진은 없습니다. 그냥 풍경을 즐기기 위한 부산물.. 사실 이 풍경에 뭘 먹으면 맛이 없겠습니까.^^

 

 

 

자리에 앉아 해가 완전히 질때면 이런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렇게 신선놀음처럼 풍경을 줄기다가,

 

 

 

해가 져서 이동했습니다. 사실 그동안 청사포를 많이 가봤는데 아무래도 시내에서 너무 멀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시내에서 가깝고 청사포의 장점을 갖고 있는 지점을 찾다가 <미포끝집>으로 갔습니다.

 

 

 

미포는 해운대의 끝자락, 그러니까 해운대 백사장 한 복판에서 조선비치호텔 반대쪽으로 쭉 걸어가다 보면 해수욕장이 끝나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가 바로 미포 항구입니다.

 

그 미포에서 바다를 따라 난 2차선 도로 끝까지 가면 거기가 미포끝집입니다.

 

 

거기서 조선비치호텔 쪽을 바라보면 이런 야경이 드러납니다.

 

오른쪽 중간쯤, 국회의사당 비슷하게 노란색으로 빛나는 건물이 조선비치호텔입니다.

 

 

창이 넓은 2층 방에 자리를 잡고,

 

 

구이 세트메뉴를 주문했습니다.

 

위칸에 저렇게 조개가 덮여 있고, 조개를 다 구우면 장어가 나타납니다.

 

 

이렇게 구이 메뉴와 우럭매운탕을 합해서 세트메뉴. 싼 집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양도 푸짐하고 먹을만 한데, 사실 음식도 음식이지만 분위기가 그냥 끝내줍니다.

 

음식 타박보다는 눈과 귀로 즐기시길.

 

바다 옆에 사시는 분들 아니라면 만족하실겁니다.

 

 

 

 

청사포에서 누릴 수 모든 것 + 야경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면 대개 3차 정도로 그랜도호텔 뒤쪽의 술집촌을 많이 가게 됩니다. 특히나 부산국제영화제의 주요 공간이 그랜도호텔이다보니, 이 시기 밤거리는 그랜드호텔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꼭 가야 하는 건 아닌데 왠지 발길이 그 쪽으로 향합니다.]

 

재수가 좋으면 옆자리에 톱스타들이 앉아서 한잔 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죠.

 

3차이다보니 대부분 오뎅이나 해물에 소주를 한잔 기울이게 됩니다. 대략 비슷비슷합니다. '삿포로', '미나미', '붉은수염' 같은 집들이 유명한데 이틀 밤을 돌아다녀보니 특별히 강추할 만한 곳이 있는 건 아닌 듯 합니다. 거기서 거기... 기왕이면 넓은 집이나 대로에 면한 집을 가시면 더 유리할(?) 수 있겠죠. 서울식 서비스가 그리운 분들은 서울에서 원정 온 '이상'이나 '천하의 문타로' 분점을 가실 수도 있습니다.

 

 

 

 

평소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영화제 기간중 유난히 북적이는 곳이 바로 이 포장마차촌인데 이번에 가 보니 거의 '랍스터 전문점'으로 운영되는 곳들이 몇군데 있더군요. 포장마차 특유의 소박한 느낌을 기대하셨다간 큰일 날수도 있을 듯 합니다. 세가 비싸가 그런지 가격도 만만찮고... 아무튼 혹시 가시면 자리에 앉기 전에 그 집의 분위기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늦게까지 들이키고, 또 들이키고... 올해는 밤에 비가 부슬부슬 내려 백사장에서 술 마실 환경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백사장에서 캔맥주까지 마시고 비몽사몽간에 숙소로 들어가면, 당연히 아침에 속쓰림과 함께 눈을 뜨게 됩니다.

 

그럼 해장국으로는 해운대에선 복국과 대구탕이 제격이죠.

 

복국은 유명한 금수복국을 많이들 가시지만, 아는 사람들은 미포(간밤의 미포끝집이 있던 바로 그 미포)로 갑니다. 할매집이 있기 때문에.

 

 

들어갈 때 약간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 집이 워낙 잘 나가기 때문에 주변에 비슷한 이름을 가진 복집들이 즐비합니다.

 

너무 가짜들이 많아서 아예 '할매집 원조복국' 이라는 이름 앞에 '박옥희'라는 할머니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엘시티 공사장에서 바로 옆 골목으로 들어가 오른쪽 집입니다. 왼쪽에도 복국집이 있는데 그집 아님.

 

 

 

이렇게 보글보글 끓어 나오는 복국에 식초를 살짝 뿌리면... 크아.

 

 

이집 보내고 후회했다는 사람 못 봤습니다. 강추.

 

찬도 깔끔한데 혹시 멸치젓 좋아하시는 분들은 멸치젓 청하면 주십니다. 침 넘어갑니다.

 

대구탕도 대개 이 미포 언저리에 잘 하는 집들이 몰려 있는데, 그동안 강자로 군림했던 한국콘도 옆 '속씨원한 대구탕' 도 장소를 살짝 옮겨 이 미포 골목 안에서 영업중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부산 토박이들 사이에서 '아저씨 대구탕' 이 최강자로 뜨고 있다고 합니다.

 

 

2박3일이면 대개 하루는 복국, 하루는 대구탕으로 변화를 줘서 활용하시는 것도 방법일 듯.

 

그런데 유명한 '속씨원한 대구탕'도 '시원한 대구탕', '할매집 원조복국'도 '미포 할매복국' '미포복국 할매집' 등으로 유사품들이 넘쳐납니다. 마찬가지로 해운대 암소갈비가 유명해지자 온갖 비슷한 집들이 넘쳐납니다. 해운대 갈비, 해운대 이름난 암소갈비...

 

진짜 원조는 여기, '해운대 소문난 암소갈비' 입니다.

 

 

 

알고보니 35년전에도 가본 집... 물론 갈비가 맛이 없을 수는 없겠으나, 저는 굳이 타지에서 가실 분이라면 해운대까지 가서 갈비를 드셔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주변의 거성갈비 도 요즘 뜨고 있는 맛집이라고 하네요. 

 

(물론 그리고 잠깐 왔다 가는 사람 기준입니다. 여담이지만 2002년에 부산에서 한달을 살아 보니, 딱 일주일 지나니까 회 생각은 전혀 없고 고기가 먹고 싶어 환장을 하겠더군요. 사람이 원래 이것 저것 골고루 먹어야 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부산에 왔는데 회를 먹어야지 왜 횟집 얘기는 안 하고 헛소리만 하냐는 분들, 사실 어느 횟집을 가거나 서울에서 먹는 것보다는 훨씬 우수합니다만, 그래도 일단 맛이냐 가격이냐의 승부는 있습니다.

 

일단 인원도 꽤 있고 하니 가격과 푸짐함으로 승부하겠다는 분들이 가시는 곳은 민락동 어판장,

 

 

 

여기도 물론 잘 알려져서 옛날같지 않다고 하지만, 흔히 '민락 회센터'라고 불리는 광안리 해수욕장 한켠의 집들보다는 훨씬 싸고 푸짐합니다.

 

그런데 일행중에 그래도 나는 제대로 된 세팅에서 맛있는 회를 먹어야겠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부산 현지민들은 광안리 삼삼회집 이나 칠성회집 을 추천합니다. 맛과 가격의 균형점.

 

 

 

 

 

 

깔끔하고 바다도 막 보이고 그런 집을 기대하시는 분들에게는 칠성횟집이라고 합니다. (이건 직접 가본게 아니라서)

 

마지막으로 어 부산을 떠나야 하는데 밀면을 못 먹었네 하시는 분들에게 부산역에서 가까운 초량밀면 추천.

 

 

 

한약재향이 폴폴 나는 돼지 육수에 후루룩 먹기 딱 좋습니다.

대짜가 4500원. 가격도 저렴. 먹고 역까지 천천히 걸어서 10분.

 

 

 

해운대에도 분점이 있는데 본점만 못하다는 말이 많네요.

 

 

 

혹시 시간이 좀 더 되시는 분들은 부산역 바로 건너편에 있는 신발원에 가서 만두를 드셔도 좋습니다.

 

부산역 맞은편은 예전부터 유명한 차이나타운. 요즘은 러시안 타운과 겹칩니다.

 

아무튼 차이나타운에 딱 들어서자마자 왼쪽으로 있는 '신발원' 은 만두와 꽃빵, 꽈배기만 파는 이색 중국집입니다. 그냥 만두집이죠.

 

 

단 신발원은 좌석이 많이 없습니다. 자리가 있으면 그 자리에 앉아서 먹고, 안 되면 포장해서 들고 나와 드셔야 합니다.

 

기차 시간에 맞춰 가서 포장을 들고, 달리는 기차 안에서 먹는 것을 추천합니다.

 

생강향이 밴 육즙이 줄줄 흐르는 만두를 딱 깨물면 그냥 막...

 

혹시 신발원이 너무 붐비면 그 라이벌인 마가만두 로 가셔도 됩니다.

 

 

 

신발원 얘기는 여러번 해서 지겨우실 분도 있을테니 여기까지.

 

신발원은 센텀시티에도 분점이 들어섰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영화 보시다가도 가실 수 있겠네요.

 

물론 술만 마신 건 아니고 영화를 3편 봤는데 그중 2편은 추천할만 합니다.

 

 

 

션 베이커 감독의 '플로리다 프로젝트'. 시간 맞는 분들은 꼭 보세요.

 

'실질적 노숙자'들이 살아가는 모텔이 배경이고 주인공은 어린이들입니다.

 

2시간 내내 깔깔 웃다가 마지막에 심장이 무너집니다. 쿠쿵.

 

 

 

 

사무라 히로아키의 걸작 만화 '무한의 주인'을 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영화화한 '불멸의 검'. 물론 일본어로는 영화 제목도 그냥 '무한의 주인'인데 수입사가 만화에 별 관심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저만 해도 '어 이상한데...'하고 찾아보지 않았으면 이 영화가 '무한의 주인'의 실사판이라는 걸 몰랐을 듯.

 

어쨌든 만화는 잘 그리지만 실사판으로 영화만 만들면 이상해지는 일본적인 특징을 무시하고 영화를 봤는데, '실사판 치고는 권할만' 합니다. 뭐 만지 역을 기무라 타쿠야가 한다는 것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을 듯.

 

아무튼 부산 잘 다녀오시길. 뭐 올해 못 가면 또 내년이 있잖아요?

 

*** 드넓은 부산 맛집을 다 담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냥 부산역-해운대 중심으로 제가 알만한 집들을 써 봤습니다. 틀린 정보 수정 및 다른 집들 추천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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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늦어지는 데 대한 변명: 나이를 먹었는지 기억은 안 나고 눈은 침침하고(이건 아니지만)... 4개월 전의 일이지만 어찌나 지난 세기 같은지. 휴일 동안 엄청나게 진도를 나가야겠다는 마음도 먹었었으나, 이래 저래 개인사가 복잡한 터라... 일은 많고 시간은 없고. 아무튼 그래도 최선을 다 해 보겠습니다. ]

 

하케셔마크트 Hackescher Markt 라는 철자를 보면 대략 의미를 짐작할 수 있듯, 하케셔마크트는 '하케의 시장'이라는 뜻이다. 18세기 Hacke라는 사람이 베를린 시장일 때 형성된 market 지역으로, 중심지가 된 역사가 200년이 넘는다.

 

물론 지금도 활발한 시장이며 베를린 시내의 교통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유명한 이유는 바로 이 하케셴 회페 Hackeshen Höfe 덕분인 것 같다. 1906년부터 건설됐다는 이 건축단지는 아르누보 시대의 미적 감각을 지금껏 유지하고 있는 유서깊은 곳인데, 독일 통일 이후 쇼핑 타운 + 젊은 예술가들의 활동 무대로 개발되어 OLD BUT NEW의 상징 같은 곳이 되어 있다.

 

 

 

맨 윗 사진의 입구로 딱 들어서면 바로 이런 중정 中庭, 그러니까 스페인 식으로 말하면 파티오가 나타난다.

 

본래 Höfe 라는 말이 바로 정원 중에서도 중정을 의미했다고 한다. 딱 보기에도 아르누보 스타일. 건물 상층부의 곡선이 예사롭지 않다.

 

 

 

그러니까 여러개의 중정이 이렇게 겹쳐 있는게 이 하케셴 회페의 특징이다. 건물 아래로 난 통로로 들어가면 또 다른 정원이 나오고, 거기서 빠져 나오면 또 다른 중정과 만나게 되어 있는 미로 같은 구조다.

 

물론 보시다시피 주상복합 구조로 되어 있다. 건물 아래층은 상가, 위층은 거주 공간으로 꾸며져 있는데, 보기엔 참 그럴듯하지만 막상 여기서 산다고 하면 꽤 시끄러울 것 같다. (하기야 바르셀로나의 카사 바트요에도 지금 입주해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취향이니 존중하겠지만 막상 살려면 피곤하지 않을가 싶다.)

 

 

 

아무튼 건물과 상점들이 꽤나 신경 쓴 형태다. 위 가게는 양복점.

 

 

 

생각해보면 1970년대쯤엔 한국에도 이런 식의 중정이 있고 1층에 상가가 있는 아파트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 언뜻 철거중인 서소문 아파트 생각이 나기도 한다. 물론 절대 이렇게 예쁘게 꾸며져 있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이 정도만 꾸며져 있어도 그럴듯 하다.

 

 

거기서 또 다른 터널을 지나면,

 

 

아예 대놓고 거리 예술가들을 위해 열어놓은 공간을 만나게 된다.

 

 

 

어찌 보면 정신 산란한 난개발(?) 지역인데, 이쪽 건물들의 내부는 대개 실험적인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어디 하나 빈 자리만 있으면 작품이 치고 들어온달까...

 

 

 

 

모퉁이를 돌고 돌다가 만난 이 파란 간판을 만나게 됐다.

 

그래, 인증샷은 이런 자리에서.

 

 

 

 

온몸을 다 넣지 말고, 이렇게 딱 클로즈업해서 어쩌고 하는데 동작이 그냥 다 찍혔다.

 

 

골목 사이사이에 이런 바가 있다. 오후지만 아직도 이 동네 사람들에겐 왠지 꼭두새벽 같으 느낌.

 

 

 

사진으로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음악은 클럽 분위기. 어두워진 다음에 맥주 한잔 하면 좋을 느낌이다.

 

 

물론 맥주 말고 다른 것(?)도 많이들 할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치안이 좋은 지역이라 새벽까지 있어도 안전한 곳이라고.

 

 

 

동네를 돌면서 벽 구경만 해도 심심치 않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한 작품 ㅎ.

 

팬더에게 당하는 미키마우스... 어딘가 미중관계를 상징하는 듯도 하고.

 

 

 

하케셔마크트에서 전철을 타고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를 향해 가는 동안 알렉산드르플라츠 Alexander Platz에 있는 TV타워를 볼 수 있었다. 어찌나 상해 동방명주탑과 똑같은지. 베를린 주민이신 가이드님도 그런 말 많이 듣는다며 웃는다. 공산주의자들의 미적 감각은 가끔 눈을 썩게 만든다. 모스크바의 스탈린 양식 건물들은 어쩌면 양반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네 정거장을 달려 Berlin Warschauer Straße station. 여기서 대로변 내리막길로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따라 죽 걸어가면 그야말로 긴 대로 한켠에 이스트사이드 갤러리가 나타난다.

 

 

 

베를린 가실 생각을 하신 분들 중에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를 모를 분이 있을까 싶지만 의무적으로 그냥 설명하면,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란 왕년에 건재했던 베를린 장벽의 일부로, 긴 벽화가 그려진 지역을 말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전 세계의 유명 화가에서 거리 아티스트까지 실로 다양한 인물들이 그 벽에 벽화를 그리고 싶다는 제안을 해 왔고, 거기에 부응하기 위해 장벽의 일부 지역을 수많은 구간으로 쪼개 벽화를 위해 분양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의 길이는 1.3KM. 그림이 그려진 한 구간의 길이는 6~7m 정도 돼 보이는데, 넉넉잡고 10m라고 해도 130개의 그림이 있는 셈(실제로는 한 200개 되는 것 같다)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국 작가의 작품은 없다고 한다. 왜?

 

 

작가들의 이메일 주소가 쓰여 있기도 하고,

 

 

 

작가를 기다리는 이런 공간도 있다.

 

 

물론 낙서 수준의 작품도 많은데, 아무래도 가장 유명한 작품은 이것.

 

"Mein Gott, hilf mir, diese tödliche Liebe zu überleben"

 

- 신이시여, 이 치명적인 사랑으로부터 살아남게 도와주소서. -

 

'형제의 키스 Bruderkuss'라는 제목인데, 이걸 보고 동서독의 수장들이 만난 것을 기념하는 그림이라고 써 놓은 블로그도 봤다. 상상력을 동원한 것이겠지만 전혀 다른 내용. 왼쪽 사람은 1980년대 구 소련 서기장이었던 브레즈네프, 그리고 오른쪽 사람은 동독 서기장 호네커다. 두 사람은 실제로 형제국(?)의 결속을 의미하는 키스를 자주 나눴다고 한다.

 

이렇게.

 

 

그 통일전의 구질구질했던 끈끈함을 비꼬고 있는 그림이다.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무슨 느낌일지. 하긴 러시아는 구 소련 서기장 쯤은 우스울 수도 있는 '짜르' 푸틴의 지배하에 있으니 오히려 저 시절보다 역행했는지도.

 

 

위 작품을 그린 작가들의 이름이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경구.

 

Du hast gelernt was Freiheit heisst und das vergiss nie mehr.

"너는 자유의 의미를 배웠고, 이제 그것을 잊지 말라" 는 뜻이라고 함.

 

자, 여기서 거의 항상 나오는 질문.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란 이름은 베를린 장벽의 동쪽 사면, 그러니까 구 동독 쪽 면에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그럼 그 장벽의 반대쪽 면, 즉 서쪽 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거기도 그림이 있긴 하다. 있긴 있는데... 낙서다. 자조적인 표현으로 '웨스트사이드 갤러리'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뭐 서쪽도 꽤 작품성(?)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리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이상하다고 느낄 부분이 있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 막상 가 보면 슈프레강을 따라 장벽이 그어져 있고, 강 반대쪽이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그리고 강 쪽이 웨스트사이드 갤러리라고 되어 있다. 갑자기 베를린 2일차의 지리 감각이 흔들린다. "시내에서 장벽(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 동쪽으로 꽤 가면 슈프레강이 나왔다"는 것을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감각에 따르면 강쪽이 동쪽, 강 반대쪽이 서쪽이어야 하는데 실제는 그와 반대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베를린 주민도 질문하자 바로 답이 안 나온다. '어, 왜 그렇지?' 라는 반응.)

 

 

하지만 이건 일직선이 아닌 베를린 장벽의 장난이다. 위 지도에서 보면 브란덴부르크 문 남쪽 지역에서 슈프레강은 '대부분' 장벽의 동쪽에 있다. 하지만 안 그런 부부닝 한 군데 있다. 바로 그 지점이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지점이다.

 

 

이렇게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부분만 장벽이 살짝 강을 건너 와 있다. 장벽 자체가 슈프레강의 동쪽으로 건너 와 있기 때문에 이 저점에서는 강 반대쪽이 동쪽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평소 길치라는 말을 자주 듣는 분들은 이런 이야기 자체가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을테니 그냥 넘어가시면 된다. 반면 본능으로 길을 찾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당황했을 부분이다.)

 

 

갤러리(?) 구경을 마치고 전철역 쪽으로 돌아오다 보면 슈프레 강 위에 오베르바움 다리 Oberbaumbruke 라는 유서깊은 다리가 있다.

 

 

 

다리 위에 성곽 같은 구조물이 있고, 인도 부분으로 들어가 보면 이렇다.

 

 

그리고 다리 위에서 슈프레강을 바라보면 이렇게 알리안츠 본사가 보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다리를 중심으로 양쪽이 모두 한밤에 불야성을 이루는 나이트클럽 밀집 지역이다.

 

 

 

저런 데가 다 유명 클럽. 사람들이 베를린 간다고 하면 다 '클럽 가냐'고 하는데, 체력이 달려서 한번도 못 가봤다. 

 

 

그렇게 해서 대략 베를린 핵심 투어를 마치고 도이체오퍼 Deutcheoper 역으로 이동.

 

Oper는 글자 그래도 오페라라는 뜻. 그런 역 답게 벽이 줄줄이 유명 작곡가들의 이름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땅 위로 올라가면,

 

 

바로 나타나는 매우 모던한 오페라하우스.

 

 

여행중에 어디를 가 봐도 가장 취향에 맞는 곳은 공연장/미술관에 딸려 있는 카페들인데, 여기도 역시 맘에 들었다.

 

 

카페 겸 대기공간.

 

 

 

 

여담이지만 베를린의 공연장에서는 카페/대기공간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체감상 좌석 간격이 한국보다 좁다. 심지어 한국보다 관객들의 평균 다리 길이가 더 길텐데도 그렇다.

 

그러다 보니 인터미션 때 안쪽에서 누가 밖으로 나가려 하면 바깥쪽에 앉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계속 일어서서 비켜주느니 그냥 같이 나갔다가 시간 맞춰 들어오는 것이 낫다. 실제로 인터미션 때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다들 이렇게 샴페인이든 소다든 맥주든 마시면서 담소를 나눈다.

 

여기도 좌석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국보다는 많이 앉는 느낌이다.

 

세상에서 가장 서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영국 사람들인 것 같다.

 

 

아, 오페라하우스지만 공연은 '백조의 호수'.

 

커튼콜 때 사진촬영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하다(거의 모든 관객이 사진을 찍고 있다). 따라 찍었다.

 

 

 

          아침 일찍부터 돌아다닌 터라 오페라를 보고 나오니 꽤 지쳐 있었다. 어느새 마음의 고향이 된 초 역(동물원 역)에 내려 거대한 피자로 저녁식사. 슬쩍 밤 구경을 다녀 볼 법도 하지만 중년 부부의 저질 체력상 여기서 더 이상의 행군은 무리라는 결론.

 

...보기보다 피자 맛도 괜찮다. 물론 저게 1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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